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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7.01 23:30

성찬의 의미 / 고전 11:2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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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11:23-29 성찬의 의미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를 유효하게 만드는 기독교의 종교 의식을 가리키는 말이 성례입니다.  어거스틴은 성례를 "보이지 않는 실체에 대한 보이는 표지"라고 정의하였고 오늘날까지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성례는 성화시키는 은혜의 통로(수단)로 세례와 성찬이 있습니다. 세례는 1회뿐인 예전으로, 죄에 죽고, 새로운 생명으로 사는 것을 표시하고, 성찬은 빵과 포도주를 받은 일에 의해, 그리스도와의 지속적인 교제를 표시하며, 반복적으로 행할 수 있습니다.

성찬(Communion[라]Communio, Eucharist, Holy Communio)은 세례식과 함께 중요시되는 그리스도 교회의 성례(Sacrament)입니다.

  웨스터민스터 소요리 문답은 주의 성찬은 곧 성례이니 그리스도의 정하신 대로 떡과 포도즙을 주며 받는 것으로 그 죽으심을 나타내는 것이다. 합당하게 받는 자들은 육체와 정욕으로 참예함이 아니요 믿음으로써 그 몸과 피에 참예하여 자기의 신령하게 받는 양육과 은혜 중에서 장성함으로 그의 모든 효험을 받음이다(96문-하문호 기초 교의신학 교회론) 라고 합니다.

  웨스터민스터 대요리 문답은 주의 성찬은 신약의 성례이니 예수 그리스도께서 정하신대로 떡과 포도즙을 주고 받으므로 그의 죽으심을 나타냄이다. 합당하게 받는 자들은 그의 몸과 피를 받아먹고 신령하게 양육 받고 은헤 안에서 성장하고 주님과 연합하고 교통함을 알게 되고 하나님께 감사하며 하나님의 사람과 교제를 증거하고 새롭게 한다(168문-하문호 위책) 고 합니다.


  바울은 [주의 만찬]이라는 말을 사용했습니다(고전 11:20).

주의 만찬(Lord's Supper, 그 kuriakon deipnon)은 주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기 전날 밤, 예루살렘에 있는 이층 다락방에서, 제자들과 함께 한 기념의 만찬을 가리키는 말(막14:22-24,마 26:26-28,눅 22:12-20)입니다.

그는 한가지로 [주의 상], [주의 잔](고전 10:21)이라는 말도 쓰고 있습니다. 이 만찬의 기원을 바울은 [최후의 만찬]에서 찾고 있습니다(고전 11:23-25). 이것은 공관복음에 기록되어 있는 것과 부합합니다(마26:20-25, 막 14:17-25, 눅 22:14-38).

예수는, 죽음이 임박한 것을 아시어, 떡과 포도주를 나누어, 제자들에게 먹게 하시며 자기의 몸이며, 많은 사람을 위해 흘리는 자신의 언약의 피라고 하시고, 죽으심을 기념하며 이 기념의 만찬 즉 성찬을 행하도록 분부 하셨습니다.

최후의 만찬이 유월절 식사와 관계되어 있고, 바로 유월절의 어린 양의 피가 이스라엘 민족을 구원한 것에 관련하여 이제 죄인을 구원하시기 위한 예수의 피가 흘려지셨습니다(마 26:28).

고린도전서에 의해, 주의 만찬이 초대 교회에 있어서 이미 지켜진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바울은 그 예전을 주 예수로부터 유래한 것임을 말하고, 교회가 이어왔음을 알게 합니다(고전11:23).

주의 만찬은, 세례와 함께 그리스도 교회에 있어서의 중요한 예전입니다. 세례가 중생(거듭남-신생)의 표상으로 다만 1회 신자에게 주어지는 것임에 대하여, 주의 만찬 곧 성찬은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는 새로운 언약의 확립, 그리스도와의 사귐, 새 생명의 유지, 또는 성장의 표상으로서, 거듭 반복해서 시행 됩니다.

이 같은 주의 만찬에 의해 그리스도의 속죄의 역사가 알려지고 있습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의 재림의 날까지 거듭 지켜지는 것에 의해, 구원의 은혜의 기념과, 그리스도의 임재에 대한 증명이 교회에 있어서 행해지고, 신앙생활이 유지 됩니다.

특히 주의 만찬을 지키는 일의 의의는, 믿는 자에게 예수의 피에 의해 자기가 속량된 것을 상기케 하고, 자기가 구원된 것을 끊임없이 감사하여, 전 세계의 구원의 날의 도래를 간절히 대망케 합니다.
   
바울은 주께서 성찬식을 제정하실 때의 근본적인 의미를 설명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잡히시기 전에 제정하신 성찬 의식은 주의 십자가의 죽음을 상징합니다.

주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심을 상징하는 성찬식은 그리스도 안에서 구속받은 자의 징표로서 행하는 믿음의 표현입니다.

성도는 이러한 성찬을 통하여 주의 죽으심의 의미를 상기하고 기념하며 복음을 증거하여야 합니다.

또한 모든 성도가 그리스도의 살과 피를 마심으로써 서로가 하나 됨을 확인하는 의미가 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한 새 사람으로 태어났으므로 서로가 사랑으로 하나가 되어야합니다.

성례주일을 지키며 성찬의 의미를 다시 한번 살펴보고자 합니다.


  주의 만찬에 참여하며 하늘 식탁을 미리 맛보는 상징적 의미가 있습니다.

너희도 내 나라에 있어 내 상에서 먹고 마시며 또는 보좌에 앉아 이스라엘 열 두 지파를 다스리게 하려 하노라(눅22:30)고 합니다.

'내 나라'는 하나님의 나라를 뜻하는데 종말적 심판의 때에 도래할 완성된 하나님의 나라를 말합니다.

하늘나라에서 예수와 함께하는 잔치가 벌어집니다. 이 잔치는 하늘나라에서 이루어지는 해방과 구원의 유월절 축제라는 생각을 갖게 합니다.

(계 3:20,21)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내 보좌에 함께 앉게 하여 주기를 내가 이기고 아버지 보좌에 함께 앉은 것과 같이 하리라

  므비보셋의 일에서 예표적 교훈을 받습니다.

(삼하 9:13) 므비보셋이 항상 왕의 상에서 먹으므로 예루살렘에 거하니라 그는 두 발이 다 절뚝이더라 고 합니다.

므비보셋이 다윗의 상에 앉았던 것처럼 거룩한 상에 앉을 수 있게 될 뿐만 아니라 거룩한 보좌가 마련되어 있을 줄 믿습니다.

므비보셋은 항상 왕의 상에서 먹는 영광을 누렸습니다. 사울 왕의 토지를 회복시켜 주는 것보다 다윗의 상에서 함께 식사할 수 있는 귀빈의 위치로 높이는 것은 더 큰 은총입니다.

항상 왕과 함께 식사한다는 것은 그를 왕자 중 하나처럼 대우해 주었습니다. 다윗이 므비보셋에게 베푼 은혜는 오늘날 전 인류에게 베풀어 주고 계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예표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오늘날 영적 절뚝발이와 같은 우리들에게도 그리스도와의 언약을 기억하고선 영생의 축복을 허락해 주신 하나님의 사랑을 나타내 주기에 충분합니다.

(엡 2:12-19) 그 때에 너희는 그리스도 밖에 있었고 이스라엘 나라 밖의 사람이라 약속의 언약들에 대하여 외인이요 세상에서 소망이 없고 하나님도 없는 자이더니 이제는 전에 멀리 있던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와졌느니라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중간에 막힌 담을 허시고 원수 된 것 곧 의문에 속한 계명의 율법을 자기 육체로 폐하셨으니 이는 이 둘로 자기의 안에서 한 새 사람을 지어 화평하게 하시고 또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 원수 된 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시고 또 오셔서 먼 데 있는 너희에게 평안을 전하고 가까운 데 있는 자들에게 평안을 전하셨으니 이는 저로 말미암아 우리 둘이 한 성령 안에서 아버지께 나아감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그러므로 이제부터 너희가 외인도 아니요 손도 아니요 오직 성도들과 동일한 시민이요 하나님의 권속이라 고 합니다.

성찬에 참여하는 우리 모두에게 이 영광된 역사가 함께 하는 줄 믿습니다.


기념하며 영적으로 임재함을 믿는 신앙적인 의미가 있습니다.

주님께서 친히 제자들을 향해「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24,25)말씀하셨는데 마26:26절 등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주님을 기념한다는 뜻은 주님의 죽으심만을 단순하게 기억하고 기념한다는 뜻이 아니라 주님께서 우리를 위해 이루신 모든 일을 포함합니다. 다시 말해 이 세상에 육신으로 오셔서 스스로 섬김의 종으로 사시면서 백성을 치유하시고 위로하시고 뿐만 아니라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고 부활하셔서 승천하신 후 지금은 우리 가운데 성령으로 친히 동행하시는 모든 삶의 모습을 우리가 닮아가고 구체화시킨다는데 그 뜻이 있습니다.


  토마스 아 캠피스의 명저 <그리스도를 본받아>에 이런 글이 있다합니다.

  "그리스도인은 십자가에서 도망칠 수는 없다. 십자가를 피한다면 이미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가 아니다. 그대가 밖으로 도망쳐도 거기 십자가가 있고, 안으로 숨어도 거기 십자가를 볼 것이다. 위로 올라가도 십자가가 기다리고, 밑으로 파고들어도 십자가가 있을 것이다"

코르시카의 사틴 마을에서는 해마다 고난절이 되면 유명한 십자가 행렬을 한다고 합니다. 이 행사는 중세기부터 이 마을에서 계속되어 온 전통이라고 합니다. 십자가를 진 사람은 31파운드의 쇠사슬을 끌면서 1마일 반을 맨발로 행진합니다. 그는 다른 사람이 알아보지 못하도록 얼굴에 붉은 마스크를 씁니다. 행진할 거리의 절반도 못 가서 십자가를 진 사람의 발에서는 피가 흐르기 시작합니다. 가는 도중 몇 번이나 쓰러지는데 그것은 십자가가 너무 무거웠기 때문입니다. 비록 1마일 반이지만 그 고생은 형용할 수가 없습니다. 십자가를 진 사람은 그야말로 땀과 피를 쏟으며 이 어려운 역할을 해내야만 합니다. 하지만 코르시카의 십자가 행렬을 위하여 십자가를 자진하여 지겠다는 예약자는 이미 40년분이 등록되어 있다 합니다. 그들은 가장 좋은 참회의 방법이 예수님 대신 십자가를 지는 이 행사에 참여하는 일이라고 믿고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코르시카에 가지 않아도 얼마든지 예수님의 십자가를 대신 질 수 있습니다.  손바닥에 못을 한번 박아보고 또 매달려 본다고 해서 그 십자가의 고통과 아픔을 알 수 있겠습니까?

예수의 십자가의 고난은 단순한 육체적 고통만이 아니기 때문에 사랑의 봉사, 헌신의 생활, 남을 위하여 대신 고통을 받고 손해를 본다면 무엇이나 예수의 십자가를 대신 지는 것이 됩니다.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누구든지 나를 따르고자 하는 자는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의 십자가의 고통을 좇을 것이니라"( 십자가-디럭스바이블)

성만찬의 현장에 말씀과 성령의 사역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가 임재하시되 실체로서의 현존이 아니라 그의 권능과 효험이 신앙을 통해서 현존한다고 믿습니다. 주님이 지금 영적으로 임재해 계신다고 믿습니다.

우리는 임재하시는 주님을 인식하고 날마다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러나 그러지 못하는 때도 많이 있습니다.

어떤 부부의 대화 내용입니다. 남편이 말합니다. 아니 맨날 예수를 본받는다더니, 겨우 그 모양 그 꼴이야 예수가 웃겠다 웃겠어 할려면 똑똑히 할 것이지. 부인이 질세라 에이구 그러는 당신은  남 말 말고 당신이나 제대로 닮아 보세요 예수가 통곡하겠구려.  화가 난 남편이 당신 말 다했어. 부인이 누가 먼저 말 꺼냈는데요.  남편이 당신이나 예수 닮어 난 다 걷어 칠테니까. 부인 '핑계 났네. 언제는 당신이 예수 닮았었수. 이쯤 되면 그리스도를 본받는 것이 아니라, 예수 전쟁이 일어날 판입니다. 서로 먼저 예수를 본받아야지 누구더러 큰 소리 치는거야 라고 한다면, 예수님은 이곳저곳, 기웃거리시다가, 슬픈 표정으로 우리를 떠나시고 말지 않겠습니까.

열여덟 살의 한 청년이 있었습니다. 그는 성인식을 마친 후 마을에서 가장 연로한 노인을 찾아가 자문을 구했습니다. “오늘부터 저는 성인이 됐습니다.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충고를 좀 해주시지요” 노인이 청년에게 물었습니다. “네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냐” 청년의 대답. “비누와 양초를 만드는 일은 자신있습니다” 노인은 청년의 손을 잡고 충고를 해주었습니다. “네가 좋아하는 일을 하라. 단 한가지 조건이 있다. 예수 그리스도를 네 사업의 동업자로 모셔들여라. 그리고 수입의 10분의 1은 반드시 동업자에게 드려라” 청년은 이 충고를 받아들여 큰 사업가로 성공했습니다. 이 사람의 이름은 윌리엄 콜게이트 세계적인 치약, 비누회사의 설립자입니다. 그는 또 콜게이트 대학을 설립해 회사의 수입을 사회에 환원했다고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인생의 동역자로 모시고 사는 사람은 놀라운 복을 받는 줄 믿습니다.


  교제하며 감사하는 실제적인 의미가 있습니다.

성찬을 커뮤니온 서비스 혹은 홀리 커뮤니온 (Communion Service or Holy Communion)라고도 하는데 교제를 뜻하는 말입니다. 성찬이 음식물을 매개로 한 사귐의 면에서 이름 붙여졌습니다. 하나님과의 만남은, 구약에 있어서의 희생제물과도 중요한 관계가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성찬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주님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아 한 지체가 된 사람들로서 사람을 살아가는데 있어서 같은 목적과 같은 방향을 추구하고 서로를 위한 합심기도를 통해 신앙의 성숙을 이루게 됩니다. 떡을 먹고 포도주를 마심을 그리스도의 몸에 참여하는 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고전 10:16,17) 우리가 축복하는 바 축복의 잔은 그리스도의 피에 참여함이 아니며 우리가 떼는 떡은 그리스도의 몸에 참여함이 아니냐고  떡이 하나요 많은 우리가 한 몸이니 이는 우리가 다 한 떡에 참여함이라 고 합니다. 떡과 잔을 나눔으로써 그리스도와 함께 성취된 신비한 결합에 참가하게 됩니다. 이것은 성도들이 무엇인가를 시작함으로써 비롯되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하나님이 믿음을 통해 성도들과 연합을 시작하는 하나님의 행동입니다.

가구를 만들어 파는 가게에 한 손님이 들어 왔습니다. 그 가게의 가구들은 모두가 튼튼하고 멋지게 보였습니다. 손님은 가게 한 켠에서 열심히 대패질을 하고 있는 목수에게 "여기 일하는 사람이 모두 몇입니까?" 라고 물었습니다. "둘이요"라고 목수가 대답했습니다. 손님은 다른 사람이 또 있나 둘러보았습니다. 목수는 웃으며 "하나님과 내가 여기서 일하지요. 하나님은 나무를 만드시고, 나는 침대를 만들어요." 라고 말했습니다.

주님과 교제하며 성도와 교제하며 복된 삶을 살아야 합니다.

성찬이라는 말을 유카리스트(Eucarist  라 eucharistia 그 eucharistia)라고도 하는데 감사를 뜻합니다.

주 예수께서 최후의 만찬 때 떡을 떼어 제자들에게 주기 전에 감사하신 사실에 관련되어 있습니다. 이것이 [성찬]을 가리키는 말로 된 것은, 익나티우스(lgnatius Antiochenus-107/110 사도시대의 교부)의  문헌에 의하는  것으로  알려집니다.

(고전 14:16) 그렇지 아니하면 네가 영으로 축복할 때에 무식한 처지에 있는 자가 네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지 못하고 네 감사에 어찌 아멘 하리요 의 감사가 유카리스트입니다.

따라서 우리를 위해 베푸신 하나님 아버지의 모든 일에 대해 진정한 감사를 드리는 것이 바로 성찬입니다.

칼빈은 주님의 만찬이란 우리가 감사함으로 받아야 할 하나님의 은사라고도 했습니다.

오랫동안 중국에서 선교사역을 한 헨리 프로스트는 이런 사실을 발견하고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합니다.

“집으로부터 슬픈 소식을 전해들은 후 깊은 어두움의 그림자가 내 영혼을 덮었다. 기도를 하여도 그 어두움은 사라지지 않았다. 혼자 견디어 보려고 애를 써 보아도 어두움은 점점 깊어만 갈 뿐이었다. 그런 후 내륙 선교 본부에 들르게 되었는데 그 선교 본부의 벽에 이런 글이 쓰여져 있는 것을 보았다. “감사를 연습하십시오.” 나는 그대로 해보았다. 그러자 곧 모든 어두움의 그림자가 사라지고 다시는 나에게 되돌아오지 않았다. 그렇다. 시편 기자의 말이 옳다. ‘하나님께 감사함이 좋으니이다.’”

감사할 때 기적이 일어나고, 감사기도 해야 기도가 응답된다는 설교를 들은 어느 여집사가 한숨을 내쉬고 있었습니다. 그녀의 남편은 매일 같이 술이 만취되어 늦게 귀가하는 술고래 형이었기 때문입니다. 그 여집사는 나도 남편문제로 인해 감사 기도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그 날도 인사불성이 되어 집 앞에 쓰러진 남편을 힘들게 끌어다가 겨우 눕혔습니다. 그 부인이 잠자리에 들기 전에 기도를 하려고 하니 자기 신세가 처량하여 하나님께 기구한 자기의 팔자타령만 하였습니다. "하나님, 나는 왜 이런 남자와 결혼해서 이런 고생을 해야 합니까?"하며 훌쩍훌쩍 울었습니다. 그러던 중에 감사기도 해야 응답이 온다는 설교가 떠올랐습니다. 그러나 감사조건을 찾으려고 노력해도 감사조건을 찾을 수가 없어서 "하나님, 감사조건 없는 것을 감사드립니다. "고 기도하였습니다. 그래도 계속 감사조건을 찾으니, 참으로 감사한 일이 있기는 있었습니다. 옆에서 코 골며 자는 남편을 쳐다보니 그래도 과부보다는 낫고, 언젠가는 좋은 남편이 될 가능성이 있어서 감사하고, 저토록 술에 취했어도 다른 데 안가고 집을 찾아오니 감사하고, 토요일은 술을 더 많이 마셔서, 주일 날 집을 지켜줘서 고맙고, 주일 날 계속 자니 교회 나오는 데 불편하지 않아 감사하고... 그 부인은 계속해서 기쁨으로 감사하였습니다. 그 때 자다가 갈증을 느낀 남편이 잠을 깨고 보니, 부인이 웃으며 기도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놀란 남편이 말했습니다. "여보, 한밤중에 잠은 안자고 미친 사람처럼 뭐 하는 거야. 뭐가 좋아서 그렇게 싱글싱글 웃는 거야?" "여보, 당신하고 사는 것이 너무 감사해서 그래요." 자기가 이제껏 기도했던 감사조건을 다 말했습니다. 그랬더니 남편에게서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여보, 내가 예수 믿는 게 그렇게 소원이면, 오늘부터 예수 믿어 줄께" 10년 동안 기도해도 이루어지지 않던 소원이 단 한 번의 감사기도로 이루어 졌다고 그 여집사는 더 기쁜 감사기도를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성찬은 주의 만찬에 참여하며 하늘 식탁을 미리 맛보는 상징적 의미가 있습니다. 주님을 기념하며 영적으로 임재 함을 믿는 신앙적 의미가 있습니다. 교제하며 감사하는 실제적 의미가 있습니다.

이 의미를 되새기며 자신을 분변하고 동참하며 은헤와 복을 누리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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