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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낙망하지 않는 신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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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e  강목사
Subject  낙망하지 않는 신앙

초대교회 교부 중에 크리소스톰이라는 분이 계셨습니다. 이 분은 박해가 극심하던 시대에 황제숭배를 거절한 이유로 로마황제 칼리귤라앞에 서게 되었습니다. 거듭된 회유와 설득에도 끝까지 황제숭배를 거절하는 크리소스톰을 보고 황제는 화가 머리 끝까지 났습니다. 화가 난 황제가 외쳤습니다.
" 저 죄인을 당장 끌어다가 최고악질 범죄자들이 득실거리는 중죄인의 감방에 집어넣어라..." 그러자 곁에 섰던 신하가 고개를 저으며 말합니다.
"황제폐하, 안됩니다. 만약 그랬다가는 저 크리소스톰 때문에 그 방의 다른 범죄자들도 전부 그리스도인이 되어버릴 것입니다. 그렇게되면 그 흉악자들의 감방에서 찬송소리가 울려퍼질 것입니다"

그러자 황제가 말합니다. "그러면 홀로 있는 고독의 두려움을 맛보도록 독방에다가 쳐넣어라" 또 그 신하가 걱정스러운 듯 말합니다. "폐하 그건 더욱 안되는 말씀입니다. 만약 그랬다가는 두려워하기는커녕 오히려 혼자서 기도할 기회를 얻게 되었다고 좋아할 것입니다."

그 말에 황제는 더 이상 말할 것도 없다는 듯이 다시 말합니다. "그러면 저 놈을 당장에 밖에 끌고가서 그 목을 쳐서 죽여버려라 골치 아프게 살려 둘 것 뭐 있느냐?" 그러자 그 신하는 답답하다는 듯이 이렇게 말합니다. "폐하 그건 저 크리소스톰이 정말로 원하는 것입니다. 지금 저 그리스도인들이 제일로 소원하는 것이 바로 순교의 제물이 되는 것입니다. 지금 당장 저 자를 죽이면, 그건 저 크리소스톰을 순교자로 만들어 주는 것이 되고, 그러면 저 크리소스톰은 성자가 되어서 사람들에게 길이길이 추앙을 받을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되냐?" 낙망한 황제가 묻자 신하가 이렇게 대답합니다. "폐하 도무지 낙망할 줄 모르는 저 그리스도인들은, 그냥 건드리지 않고 가만히 놓아두는 것이 더 좋을 뻔 하였습니다."

성도 여러분, 초대교회 성도들이 보여준 불굴의 신앙은 그리스도인이란 도대체 어떤 사람들인가 하는 것을 세상 가운데 똑똑히 보여 주었습니다. 그것은 그리스도인이란 어떠한 시련이나 문제앞에서도 결코 낙망하지 않는, 낙망할 수 없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을 로마의 황제보다도 더 믿고 강하게 의지하며 살기 때문에, 세상이 두려워하는 것을 우습게 알고, 세상이 무서워하는 것을 오히려 즐기면서 그 속에서 새로운 가능성과 하나님의 희망을 볼 줄 아는 사람이 바로 그리스도인입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이런 그리스도인을 가리켜서 "세상이 감당치 못할 사람"이라고 불렀습니다.

세상의 시련이 이 사람을 굴복시키지 못합니다. 독방의 위협도, 굶주림이나 무시무시한 형벌의 두려움도 결코 이 사람을 낙망시키지 못합니다. 혼자 있으면 기도할 틈을 얻게 되었다고 좋아하며, 여럿이 함께 두면 그 사람들을 전도할 수 있게 되었다고 좋아하고, 설혹 죽음의 위협이 있다고 해도 그것으로 순교의 영광스러운 제물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며 오히려 감사하고 기뻐할 줄 아는 사람이 바로 초대교회 성도들이 보여준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모습인 것입니다.

오늘 많은 사람들이 문제앞에서 낙망하고 있습니다. 세상을 살아가다가 별다른 어려움도 아니고 주식시세가 좀 떨어졌다고 낙망해 버립니다. 공부를 하다가 성적이 잘 안 오른다고 낙망하고, 내가 원하던 대로 일이 잘 진행이 되지 않는다고 세상이 다 끝난 듯이 낙망을 해 버립니다.

그저께 해외 뉴스를 보니까 프랑스에서 최고의 요리사로 이름을 날리던 사람이 자살을 했습니다. 왜 그런가해서 사람들이 유서를 살펴보았더니 얼마전에 이 사람이 운영하는 레스토랑에 대해서 한 잡지사가 평가를 하고 평점을 실었는데 지난달 보다 평점을 2점 낮게 매겼다고 해서 자존심이 상한다고 자살을 해 버렸답니다.

여러분, 이런 웃기는 일이 있습니까? 한 사람의 죽음을 두고 웃긴다는 표현을 쓰는 것이 좀 문제가 있지만 그래도 그렇지 어떻게 점수 2점이 내려갔다고 해서 그것 때문에 그 소중한 목숨을 스스로 끊는다는 말입니까? 사람들이 실수를 할 수도 있는 것이고, 그날 자기 컨디션이 좀 좋지 않았을 수도 있고, 사람이 어떻게 완벽할 수 있습니까? 이런 저런 이유로 요리나 맛이 저번 보다 좀 못할 수도 있는 것이지 그것 때문에 스스로 목숨을 끊어야 할만큼 그게 그렇게 대단한 일입니까? 아무리 생각을 해도 이해가 잘 안갔습니다만은 그러나 가만히 생각을 해보니까 하나님을 부정하는 무신론 사상과 철학이 지배하고 있는 프랑스에서는 얼마든지 그럴 수 있다는 생각을 다시 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모르는 인생이 무슨 짓을 못하겠습니까?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인생에게 자기 자존심이나 자기 명성보다 더 중요한게 어디 있겠습니까? 자기를 믿고 자기를 숭배하며 살아왔는데 그게 무너진다고 생각하니까 더 이상 세상을 살 가치가 없다고 생각된 것 아니겠습니까? 낙망이란 것은 이렇게 하나님 모르는 마음 가운데로 찾아오는 것입니다. 자기를 믿고 자기를 신뢰하고 나 이외의 가치가 없다고 생각하는 교만한 인간의 마음 속에 낙망은 이렇게 쉽게 찾아오고, 그 낙망은 이렇게 쉽게 인생을 망치고 끝내게 하는 것입니다.

잘 먹고 잘 사는 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언제나 찾아올 수 있는 인생의 바람과 고비앞에서 낙망하지 않는 든든한 자아를 가지는 것이 중요합니다.
환란이나 문제, 혹은 뼈아픈 실패나 실수앞에서도 쉽게 넘어지지 않는 강한 마음이 문제입니다. 여러분은 낙망하지 않는 강한 마음을 가지고 사십니까? 문제나 어려움 앞에서 쉽게 흔들리지 않는 든든한 자아를 가지고 살아가십니까?

오늘 우리의 진정한 문제는 우리 안에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겉으로 얼마나 돈을 많이 가졌느냐, 얼마나 공부를 잘하고, 얼마나 알아주는 출세를 했느냐?......이것이 아니라 얼마나 위기 앞에서 낙망하지 않는 강한 마음을 가졌느냐? 얼마나 그 중심에 든든한 심령을 품고 사느냐? 하는 이것이 훨씬 더 중요한 문제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자녀를 낙망하는 자녀로 키우겠습니까? 공부는 잘하고 출세는 하지만, 문제앞에서 쉽게 낙망하고 쉽게 인생을 포기해버리는 그런 자녀가 된다면 거기에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무릇 지킬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고 했습니다. 겉보다는 속을, 환경이나 조건보다는 그 내면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성경적 가치관으로 이 세상을 살아갈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오늘 읽은 본문은 요셉이라고 하는 한 강인한 인물을 우리에게 소개해줍니다.
그는 수많은 인생의 역경을 겪었던 사람입니다. 어릴 때 친형들로부터 인신매매를 당했습니다. 그것만해도 엄청난 충격입니다. 그리고 그 형들의 손에 의해 살해될 위기에 몰리기도 했습니다. 상인들의 손에 팔려서 남의 집 노예가 되기도 했고, 누명을 쓴 죄수의 신세가 되어서 악명높은 애급왕 바로의 지하감옥에서 짐승보다 못한 생활도 했어야 했습니다. 요셉의 일생을 가만히 생각해보면 이 사람보다 더 기구한 인생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정말로 꼬일대로 꼬이고, 비틀릴 대로 비틀린 인생입니다. 얼마든지 낙망하고 얼마든지 생을 포기할 만도 한 절대절망의 인생이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그 숱한 어려움들이 있었지만 그 어려움 앞에서 요셉은 항상 인생을 긍정하는 사람으로 나타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한번도 그가 낙망했다는 흔적을 찾아볼 수 없습니다.

오히려 그가 처한 현실에서 항상 그는 자기가 맡은 일에 적극적이고, 그 자리에서 무언가 큰 희망을 품은 사람처럼 자기 일에 열심 으로 임하고 있습니다. 보디발 집에서도 그는 인정받는 사람이었습니다. 누명을 쓰고 바로의 지하감옥에 가서도 그는 오히려 다른 죄수들을 돌보면서 다른 사람들의 원한과 고민을 들어주고 상담해주는 카운셀러의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어디서나 요셉은 인정을 받았고 어디서나 그의 성실함과 긍정적인 그의 삶은 칭찬을 받았습니다. 요즘 말로 하면 요셉은위기극복 지수가 상당히 높은 사람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부잣집 응석받이 도련님에 불과하던 요셉이 언제, 어떻게 이런 강인한 마음을 가지게 되었을까요? 어릴 때 아버지 집에서 형들의 잘못한 일을 아버지에게 고자질하기를 잘하던 속좁은 어리광쟁이가 어떻게 그 숱한 환난과 어려움들 속에서도 낙망하지 않고 누구를 원망하지도 않는 넓고 풍성한 마음을 품게 되었을까요?

오늘 본문에는 그런 요셉의 너그럽고 강인한 삶의 비결이 나와있습니다.
5절- 8절

지금 요셉은 자기를 노예로 팔아먹어버린 형들앞에 서 있습니다. 그것도 노예나 죄수의 신분이 아니라 대제국 애급의 국무총리의 고귀한 신분이 되어서 식량을 얻으러온 형들 앞에서 연설을 하는 장면입니다.
이 순간을 얼마나 기다렸을까요? 자기의 인생을 꼬이게 만든 그 장본인들 아닙니까? 다행히 지금 이렇게 총리가 되었지만 지나온 그 숱한 세월의 고통과 원한을 어떻게 잊을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요셉은 지금 자기가 지나온 삶을 어떻게 생각하고 살았는지를 말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그 낙망의 세월동안 낙망하지 않을 수 있었는지, 그 심각하고 비참한 인생의 위기 앞에서 넘어지지 않았는지, 그 이유를 밝히고 있습니다.

그 비결은 무엇이었습니까?

1. 내 삶의 주관자는 사람이 아닌 하나님이시라는 믿음 때문입니다.

이 짧은 본문에 '하나님'이라는 말이 네 번이나 나옵니다. 그것도 세 번이 문장의 주어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5절을 보세요. 당신들이.....아니라 하나님이 보내셨습니다/
7절--하나님이 이 큰 구원을 주시려고 나를 보내셨습니다/
8절--당신들이 아니라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이 나를 애급의 치리자로 삼 으셨습니다.........

요셉의 인생을 붙들어준 믿음은 인생은 사람이 이끌어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이끄신다고 하는 하나님 주권에 대한 믿음입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형들이 나를 판 것 같지만 그 팔리는 과정을 하나님이 허용하지 않으셨으면 나는 팔리지 않았을 것인데 묵묵히 허용하시는 것을 보니 거기에 하나님의 섭리가 있다, 이건 형들이 한 일이기는 하지만 하나님이 허용하신 일이다 그렇다면 순종하자....,,,,//

보디발의 집에서 누명을 뒤집어쓰고 감옥에 잡혀갈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의를 지키고 정결을 지키다가 억울하게 누명을 쓴 것 아닙니까? 그러면 하나님이 거기에 개입하셔야 됩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하나님믿는 신앙 때문에 누명을 썼는데 하나님이 개입하지 아니하시면 됩니까? 반드시 개입하셔야 되고 또 개입하셔서 요셉이 옳았다는 것을 밝혀주셔야 됩니다. 그런데도 요셉은 감옥으로 잡혀갔습니다. 이게 어떻게 된 일입니까? 하나님이 살아계신 것이 아닙니까? 하나님의 이런 처사를 원망해야 됩니까? 아닙니다. 요셉은 여기서도 자기를 감옥으로 보낸 것이 보디발의 아내가 아니라 하나님이라고 믿었습니다. 아니 잘못은 보디발의 아내가 했지만 하나님이 그것을 그대로 허용하고 계십니다. 그렇다면 여기엔 순종을 해야 하는 겁니다. 하나님이 허용하신 일이니 여기엔 하나님의 생각이 있고 하나님의 뜻이 있다는 것을 요셉은 지금 믿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누구를 원망하겠습니까? 보디발의 아내를 원망하고 복수와 저주의 칼을 갈겠습니까? 아닙니다. 보디발의 아내가 저지른 잘못이지만 하나님이 허용하셨습니다. 그러면 그건 하나님이 하시는 일입니다. 하나님이 허용하신 일인데 어떻게 거역하겠습니까? 어떻게 낙망하면서 누군가를 원망하고 복수의 칼을 갈 수 있겠습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 말씀 하시기를 '참새 한 마리가 땅에 떨어지는 것도 하나님이 허용하지 아니하시면 결코 일어나지 않는다'고 하셨습니다. 우리 인생을 향한 하나님의 뜻이 있음을 믿으십니까? 참새 한 마리에 대해서도 뜻과 섭리를 가지고 운행하시는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과 같은 당신의 자녀의 인생을 아무 생각, 아무 계획없이 그냥 내버려두시겠습니까?

내 인생을 하나님이 이끌고 계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형들도 아니고, 보디발도 아니고, 애급의 지배자 바로가 내 인생을 이렇게 저렇게 만들어 가는 것이 아닙니다. 나는 오직 전능하신 하나님, 사랑의 아버지께서 내 삶을 이끌어 가고 계십니다. 때로 악한 일을 만나고 어이없는 사건도 만나지만 그 속에는 하나님의 허용하심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막으시려면 얼마든지 막으실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내 인생을 이끄시는 하나님께서는 그 일을 통해서 하시려는 뜻이 있고, 그 일을 통해 궁극적으로 우리에게 주시려는 복이 있기 때문에 그대로 당하게 하십니다. 묵묵히 허용해 주십니다. 그래서 노예로 팔리기도 하고, 감옥에 내려가기도 합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나를 그리로 보내신 분은 다른 누가 아니라 하나님이라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이 이끌어가고 계시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니 누구를 원망할 것도 없습니다. 억울하다고 낙망할 필요도 없습니다.오직 뜻을 가지고 그 일을 허용하신 하나님을 바라보고 그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까지 그 일에, 그 환경에 성실히 최선을 다해 살아갈 뿐입니다.

때가 되면 밝혀주실 것입니다. 때가 되면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는 그 날, 우리앞에 명명백백하게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 누가 옳았고, 누가 억울했는지, 누가 의를 지켰고 누가 악을 행했는지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그 날에 분명하게 밝혀질 것입니다. 요셉은 이 믿음으로 그 험악한 세월의 고통을 훌륭하게 잘 이겨낸 것입니다.
따라서 합시다.
"하나님이 내 인생의 주관자이시다", "하나님이 허용하신 일이다, 낙망할 필요가 없다"
인생의 고난앞에서 이렇게 외치며 하나님을 바라보는 여러분 되시기를 바랍니다.

2. 고난속에서 요셉을 지켜낸 또 하나의 힘은 " 나는 사명자다. 나는 하나님의 쓰시는 도구이다" 라는 자기 인식입니다.

5절;; 하나님이 '나를' 당신들 앞서 보내셨다....
7절:: 하나님이 '나를' 보내셨다...
8절:: 하나님이 나로 ..치리자를 삼으셨다...

이런 요셉의 말 속에는 자신이 하나님의 일을 이루기 위해 하나님이 사용하신 도구...라는 강한 자기 인식이 있습니다. 말하자면 할 일이 있어서 나를 여기에 서게 하셨다....라고 하는 사명자 의식입니다.

여러분, 어떤 사람이 낙망하지 않습니까? 할 일이 있어서 내가 여기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할 일이 있고 역할이 있어서 여기 왔는데 왜 낙망을 하겠습니까? 그것도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 때문에 여기 왔는데 왜 낙망을 하겠는가 말입니다.

식당 집사님;;; 내가 이런 일이나 할 사람이 아닌데 어쩔 수 없이 여기 갇혀있다....고 생각하니 그렇게 힘들 수가 없더라는 것...재미도 없고 먹고 살기 위해 이 일을 해야 한다니....남들은 교회봉사도 하고 모임도 재미있게 하는데 나는 여기 갇혀서 아무 것도 못하니 이렇게 살아야 되나....?

그런데 어느날 극동방송을 듣는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더라...
"하나님이 나를 여기에 보내셨다.....이 식당을 좋아하고 찾아오는 많은 사람들. 특히 학생들이 많은데 돈은 많이 못 벌어도 학생들은 얼마나 많이 만나는가? .....내가 갇혀있는게 아니라 사람들이, 학생들이 나에게로 찾아온다.....다른 사람들은 전도하러 여기저기를 다니지만 나는 가만히 있어도  시간마다 저렇게 많은 학생들이 찾아오니 얼마나 복인가?......여기엔 하나님의 뜻이 있다.....이렇게 생각하니 그렇게 마음이 가벼울 수 없더라는 것.....

그러니 지금 하는 식당일이 하나님의 일이다....맛있는 음식을 먹으러 찾아오는 아이들에게 내가 만난 예수님, 내가 경험한 하나님 이야기를 해주자....

이렇게 생각하니 지금 하는 이 일이 얼마나 귀한지.....여기가 하나님의 일을 할 일터다......보람과 만족, 행복하단다......아무도 없는 식당에서 주인 집사님의 신앙고백을 듣는 목사의 기쁨.....

왜 세상을 사는 것이 재미가 없습니까? 할 일을 만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아니 할 일은 있는데 그 일에 담긴 의미와 하나님의 뜻을 제대로 깨닫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누구에게나 달란트를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 달란트를 발휘할 일터와 일거리를 주십니다. 그것이 지금 여러분이 살고 있는 현장이고 여러분이 일하고 있는 바로 그 자리입니다.

여러분의 직업속에 하나님의 뜻이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이 해야할 하나님의 일이 여러분이 지금 처해 있는 바로 그 상황 속에 있음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빌 하이벨스 목사 : 어느 눈 내린 겨울 시카고에서 한 장애 할머니가 슈퍼마켓에 들어가려고 하는 것을 우연히 보았다. 그런데 눈더미에 막혀서 그 가게 앞으로 들어가지를 못하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면서 지나치는데 갑자기 이 분 마음속에 하나님의 음성이 들렸다. 지금 이 지구상에 있는 60억명의 사람 가운데에서 지금 저 노인을 도울 수 있는 사람은 딱 한 사람 밖에 없다....지금 네가 여기를 지나가는 것은 60억명 가운데서 저 할머니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서 하나님이 선택하신 것이다. 그 생각이 드니까 그냥 있을 수가 없었다. 가까이 가서 그 할머니를 두 팔로 번쩍 들어올려서 가게 안으로 모셔 들였다....그리고는 그 생각을 교인들에게 전했다...누군가 여러분 곁에서 도움을 필요로 할 때에는 당신은 60억명 가운데서 그 일을 하도록 하나님께 선택된 사람입니다. 그 하나님의 일을 피하지 마십시오.......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선 곳이 어떠한 곳이든지 그 곳은 바로 하나님이 세우신 곳입니다. 여러분이 만나는 사람이 어떠한 사람이든지 그 사람과의 만남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을 하도록 하기 위해서 여러분을 60억 가운데에서 선택하신 것입니다. 그 하나님의 선택을 기꺼이 받아들이십시오. 기꺼이 순종하십시오. 어려운 곳이면 어려울수록 내가 해야할 하나님의 일이 있고, 어두운 곳이면 어두울수록 내가 감당해야할 하나님의 일이 있는 것입니다. 그 일을 위해 여러분이 선택받은 것입니다.

요셉은 이런 믿음으로 어떤 자리에서든지 성실히 일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어디서든지 하나님의 뜻을 이루었고,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었습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사람을 통해 일하십니다. 하나님의 원하시는 일을 위해 사람을 세우시고 파송하십니다. 오늘 여러분이 선 자리가 어떠한 곳이든지, 여러분이 어떠한 처지에 있든지 불평하지 마십시다. 누구를 원망하지도 마십시다. 낙망하지는 더더욱 마십시오. 여러분을 그리로 보낸 분은 오직 하나님이십니다. 뜻이 있고 사명이 있어서 보낸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직 그곳에서 성실히 하나님의 뜻을 이루며 사십시오. 하나님의 선한 일꾼, 성실한 청지기로 사십시오. 선한 청지기들에게는 하나님의 상급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에 참예할 특권을 주십니다.

낙망할 것 많은 이 땅의 답답한 현실 속에서도 오직 하나님을 바라보면서 하나님의 뜻과 목적을 성실히 이루며 살아가는 선한 청지기로 살아가서 하나님의 빛나는 영광에 참예하는 복된 여러분 모두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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