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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고난주일,종려주일] 다 이루기까지 / 창 28: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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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ten by 차재일목사  (태은교회)

저는 1년전에 TV에서 방영된 병원 24시에서 직장암에 걸려 배에 구멍을 뚫고 인공항문을 만들어 변을 빼내도록 하는 수술을 8시간을 하는 등 고통스런 항암치료에 매달릴 수 밖에 없는 한 의사가 태국의 오지로 의료봉사를 떠나는 모습을 보면서 참으로 그 평안한 모습에 가슴이 뭉클한 적이 있었습니다.
이번 달 감리교 잡지에 그분의 얼굴이 나와 반가웠습니다.
그분은 제천제일교회 오흥룡권사였습니다. “제가 아무리 발버둥쳐도 내 뜻대로 되는 것은 하나도 없고 모두 하나님의 뜻대로 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실패없이 탄탄대로를 달려온 그에게 신앙은 형식적이었습니다. 그러던 95년 둘째딸 영심이가 7개월만에 패혈증에 걸려 태어났습니다. 몸무게 1.2kg 절망입니다. 자신이 의사였지만 할 수 있는 일은 없었습니다. 차라리 자신을 아프게 하고 낫게 해 달라며 새벽마다 기도했습니다. 한쪽 시력을 잃기는 했지만 살아났습니다.
“봉사하고 싶은 마음은 있었지만 나중에 시간이 나면 하겠다고 자꾸 미루며 살았어요. 아프고 나서야 더 늦기전에 해야겠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언제 하나님이 부르실지 모른다는 생각에 제대로 살고 싶었습니다.”
지금 오권사는 매년 2회 태국, 라오스 중국에 자비량 의료선교를 떠납니다. 교회에서는 교사와 성가대로 충성합니다. 지금 자신의 정형외과 의원을 다시 문을 열었는데 할머니 할아버지를 위해 영정사진을 찍어줍니다.
주님을 만나기 이전의 신앙생활과 고난속에서 만남, 그 이후의 삶이 분명하게 다릅니다.

우리는 오늘 본문에서 헌신자를 찾으시는 하나님을 봅니다.
우리는 때로 내 의도와는 상관없이 힘든 여정을 떠나야 할 때가 있습니다. 이제까지 야곱은 터프한 형 에서와는 달리 오직 어머니의 지극한 보호속에 살아왔습니다.

그런 그가 브엘세바에서 떠나 하란으로 향합니다.
가고 싶어서 가는 것이 아닙니다. 이번 주간은 고난주간입니다. 예수님도 마26:39-“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하며 십자가의 길을 걸어 가셨습니다.
그 긴 여정은 쉽게 끝나지 않습니다. 하란으로 가는 길은 외로움을 각오해야 하는 길입니다.

하란은 꼭 가야만 하는 길입니다.
지금까지는 아버지의 아들, 나를 사랑하는 어머니 리브가의 아들로서 살았습니다. 그러나 이제 나만의 사명, 내 인생을 살기 위해 꼭 떠나야 하는 길입니다.
이 힘든 하란의 여정을 포기한다면 그 사람은 평생 내 인생이 아닌 어머니의 인생을 살뿐입니다. 하나님은 내가 좋은 아들로서, 어머니의 치마폭에 감싸인 딸로서 머물기를 원치 않으십니다.
이삭의 하나님은 오늘 야곱의 하나님이 되고 싶어하십니다. 너의 사명을 이루기 위해 하란으로 마음을 굳게 하고 떠나라는 것입니다.

하란을 향해 가는 길은 피곤한 길입니다. 두려운 길입니다. 인류는 언제나 피곤을 각오한 사람들에 의해서 발전해 왔습니다. 저는 우리 태은 성도들이 피곤을 각오하면 하나님의 축복을 체험할 것을 믿습니다. 늘 어제가 피곤했다는 이유로 아침을 뒤죽박죽으로 시작하는 사람에게 신선한 기쁨을 체험할 수가 없습니다. 안일한 태도, 편안한 것을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퇴보만 있을 뿐입니다.
하란을 향해서 가려면 위험도 각오해야 합니다. 도둑떼나 사나운 맹수를 만날 수도 있는 길입니다. 그러나 야곱은 포기하지 않고 그 길을 걸어갔습니다.

루스라는 곳에 이르렀을 때에 해가 졌습니다. 야곱은 빈들에서 밤을 지내게 되었습니다.
외롭고 처량한 신세입니다.
하나님은 쓰시고자 하는 사람은 여러 가지로 연단하시는데 그 중의 하나가 외로움입니다.
해가 지고 추위가 몰려오는 견디기 힘든 외로움이 몰려옵니다. ‘이런 식으로 내 인생 끝나는 것 아닌가?’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하나?’ 그럴수록 점점 더 두려움이 밀려오고, 마음도 몸도 생각도 점점 오그라져 슬픈 인생이 되고 맙니다.

하나님의 헌신된 사역자는 철저히 외로움을 경험한 사람이어야 합니다. 이 시대 가장 큰 비극의 사람은 외부와 단절된 나만의 폐쇄공간에서 외롭게 사는 사람입니다. 그렇게 굳어진 채로 살아가는 사람은 가장 불행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 외로움을 믿음의 눈을 떠서 극복한 자에게는 인생의 사명을 찾은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외로워 힘들어하는 나를 찾으시는 하나님입니다. 이 시간 주님은 나를 찾으십니다. 하나님은 너무 바쁘셔서 100명 단위로 만나십니까? 그래서 기둥 뒤에 숨은 듯이 앉아있는 나는 관심이 없으신 것 같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내 이름을 아십니다. 부르십니다.
삭개오야 내려오라! 나사로야 나오너라! 에바다 열려라! 너의 닫혀진 마음이 열려라! 하나님은 각각의 내 이름을 부르십니다. 하나님 체험은 개인적인 접촉입니다. 하나님은 일대일로 만나십니다.

성도 여러분! 지금 너무나 외롭고 힘겹고 고달픈 분이 계십니까? 그렇다면 틀림없이 이 시간 주님은 여러분을 향해 손을 내밀고 계십니다.

고독하고 처량한 야곱에게 하나님체험은 놀랍습니다.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은 나의 하나님이십니다. 여러분! 단순히 믿음좋은 할아버지와 신실한 아버지 때문에 나를 찾아 주신다는 말입니까? 옳습니다. 그러나 그 이상입니다. 지금 외로워서 두려워서 떠는 나! 지금의 힘겨운 나를 주시하시며 돌보시는 하나님이심을 알아야 합니다.
사닥다리가 땅에 놓였는데 하늘에 닿았습니다.
무슨 뜻입니까? 약속의 하나님은 하늘의 언약과 약속을 이루실 땅을 하나로 연결시키셨습니다.
하나님은 here and now로 역사하십니다. 하나님의 관심은 지금 여기입니다.
사닥다리로 찾아오신 하나님은 오늘 지금 인격적인 교제를 갖기를 원하십니다. 예배가운데, 언약의 말씀가운데 하나님을 만나 마음을 나누고, 삶을 나누고, 느낌을 나누고, 생각을 나누시기를 원하십니다.

우리는 때로 성경을 읽으며, QT를 하면서 하나님이 아닌 다른 것들, 일에 맞추고, 스토리나 사건, 내용에만 관심이 있습니다. 어떤 경우에는 하나님은 보이지않고 성경에 등장하는 인물이 보이거나 나 자신의 초라한 모습만 보입니다.
아브라함에 관해서, 다윗이야기를 읽으며 그에게 관심을 갖습니다.
‘나는 왜 이 모양일까, 성령받으면 권능을 받는다고 했는데 나는 문제가 많구나. 원수를 사랑하라고 했는데 그를 위해 기도하라고 했는데 기도는커녕 마음속에 분노만 일어나고 있으니 나는 도대체 안되겠구나!’

이것은 아닙니다. 우리의 최대 관심은 하나님을 만나 뵙는 겁니다. 내게 어떤 것이 유익한지는 그 다음의 문제입니다. 자비로우시고, 은혜로우신 하나님의 성품이 내게 들어올 수 있도록 하나님과 더불어 교제를 나누어야 합니다.

일년만에 고향집에 갔습니다. 아들은 고향집에 도착해보니 토방에 나무토막이 널브러져 있습니다. 옷을 벗어놓고 그것을 치웁니다. 내일 가지고 갈 쌀가마니를 챙겨놓습니다.
그것은 잘못된 겁니다. 먼저 안방문을 열고 “아버지! 저 왔어요. 별고 없으셨지요?” 그 다음에 지나온 이야기를 하며 나중에 필요한 일을 하는 겁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야곱이 루스에서 하나님을 체험했듯이 오늘 이 예배가 루스가 되기를 바랍니다.
엘리야가 사역에 지치고 탈진되어 절망의 잠을 잘 때 하나님은 천사를 동원하여 떡과 물을 공급하심으로 사십주 사십야를 행하여 하나님의 산 호렙에 이른 것처럼, 야곱은 루스에서 하나님을 만남으로 힘을 얻고 그 힘으로 하란까지 이를 수 있었습니다.

야곱에게 하나님은 어떤 분이셨습니까?
1) 살아계신 하나님입니다.
13절 -‘나는 여호와니 너의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라’ 과거의 역사교과서 속에 계신 신화적인 하나님이 아닙니다. 오늘 살아계신 야곱의 하나님입니다. 곧 저와 여러분의 하나님이십니다.
2) 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13절이하- ‘너 누운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네 자손이 티끌같이 되어서 동서남북에 편만할지며’ 지금의 고달프고 답답한 인생을 펼치시며 희망으로 바꾸실 능력이 하나님이십니다. 차가운 땅바닥이 젖과 꿀이 흐르는 행복의 땅으로 바꾸실 것입니다.
3)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14절- ‘땅의 모든 족속이 너와 네 자손을 인하여 복을 얻으리라’ 사는 것이 사는 것 같지 않은 여러분의 인생이 여러분 때문에, 하나님을 영접한 나 때문에, 아들과 딸이 가족이라는  울타리가 얼마나 큰 축복이요, 은혜라는 것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4) 임마누엘의 하나님입니다.
15절-‘내가 너와 함께 있어---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나님은 언제나 어디서나 함께 하십니다.
이렇게 놀라운 하나님이 바로 내 하나님이십니다. 고단한 내 인생의 길목에 찾아 오셨습니다. 믿음을 떠날 것 같은 위태위태한 순간이 있었는데 그때마다 나를 붙잡으신 분이 하나님이셨습니다.

오늘 이 예배를 드리는 저와 여러분이 오늘 이 만남이 내 생애에 획을 긋는 역사적인 사건이 되기를 바랍니다. 야곱의 인생이 변했습니다.

야곱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여호와께서 과연 여기 계시거늘 내가 알지 못하였도다.”
이 간증은 내가 하나님 앞에 있음을 깨닫는 고백입니다. 내가 하나님 앞에 있음을 알고 사는 삶이 곧 영적인 삶입니다. 이 깨달음이 나를 영적이게 하고, 도덕적이게 합니다. 이 깨달음이 나를 진실하게 하고, 투명하게 합니다. 거짓을 떠나게 합니다. 성결하게 합니다. 믿음이 가는 사람이 되게 합니다.
이 깨달음으로 살 때 보고싶은 사람이 됩니다. 의지하고 싶은 사람이 됩니다. 마음을 열게 합니다. 순결하게 만듭니다.
저는 이렇게 살고 싶습니다! 우리 태은 성도들이 이렇게 사는 행복을 누리기를 원합니다. 저는 기도합니다. 하나님! 태은공동체에서 작은 예수를 만나게 해 주십시오. 그 모습을 보고 싶습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발을 세상에 들여놓아 보십시오. 모든 관계가 이익관계입니다. 저 사람이 내게 얼마나 도움을 될 것인가를 먼저 봅니다. 먹고 먹히는 생존관계입니다. 너무나 피곤하고 지치게 합니다. 겉으로는 웃으면서 속으로는 계산합니다. 그 속셈이 너무나 뻔히 보여 나를 우울하게 합니다.
우리는 단호히 거부해야 합니다. 아닌 것을 아니라 해야합니다.
나는 하나님의 사람이라고 선언해야 합니다. 나는 믿음의 방법대로 살겠다고 결단해야 합니다.
창39장에 요셉은 보디발 장군의 아내의 달콤한 유혹을 단호히 거부했습니다. 그리고 감옥에 갔습니다. 화려함 속에 감춰진 부패보다 가난한 청렴이 나를 행복하게 합니다. 그에게 두려움이 없습니다. 당당함이 있습니다.

저는 지금 대심방 중에 있습니다. 제가 홈페이지 목회서신에도 글을 올렸습니다만, 어떤 성도님을 방문했습니다. 몸이 많이 불편하십니다. 그럼에도 정성껏 심방을 기다리고 계셨습니다. 그런데 창밖에 수천평의 ‘멋진 우리집 정원’을 소개합니다. 용마폭포 공원입니다. 정말 멋있습니다. 그 정원에 개나리꽃이 흐드러지게 펴있는 모습이 그 성도님의 마음을 보는 듯 했습니다. 몸은 많이 아프고 넉넉한 가정은 아니어도 그 마음의 아름다움은 저에게 감동을 주었습니다. 

돈이 우리가 살아가는데 정말 필요합니다. 지난 주일에는 김병욱선교사가 주일 설교를 했습니다. 이번에 제게 간증하는 것이 아이들을 중국학교에 보냈는데 두 아이라 교육비가 힘이 듭니다. 그런데다가 이번에 올랐다는겁니다. 260만원을 내야 하는데 아무리 아끼고 모았어도 60만원밖에 없었습니다. 큰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우리교회 집사님이 200만원을 보내주신 겁니다. 하나님의 응답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재물이 언제나 나를 행복하게 하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쿵따리샤바라’ 가수 강원래씨
연예계에 데뷔해 박미경 옆에서 춤출 때 일당 3만원을 받으면서 지독하게 안 쓰고 1억을 모았습니다. 빵과 자장면으로 살았습니다. 그런데 쿵따리샤바라로 1년에 10억을 벌었습니다. 그럼에도 돈을 모으겠다고 그때도 룸살롱 한번 가지 않았답니다.
그런 그가 2년반전에 오토바이타고 가다 사고를 만나 하반신이 불구가 되었습니다. 얼마 전에 보험으로 21억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그가 말하기를 - “그러나 지금 돈의 의미가 없어요. 솔직히 지금 사는 목적이 없어요. 지금 컴퓨터와 TV앞에 갇힌 삶이 2년이에요. 휠체어에 앉아 벤즈를 타면 뭐해요!”
다시 걸을 수 있다면 무엇을 하고 싶으냐고 기자가 물었습니다. “시원하게 대소변을 보고 싶습니다. 지금 소변은 호스를 꽂아서 4시간에 한번씩 빼고, 대변은 항문에서-- 배설의 느낌이 없습니다.”

태은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오늘 무엇을 기대하고 예배에 참석하셨습니까?
좋으신 하나님이 이 시간 여러분을 찾으십니다. 만나시기를 바랍니다. 영접하기를 바랍니다.
야곱은 하나님을 만난 이후 하나님이 축복하시는 인생이 됩니다. 내 인생을 가게 됩니다.
내게 맡긴 사명을 찾게 됩니다.

모든 이들이 그곳을 루스라고 부릅니다. 그러나 야곱은 그곳을 벧엘이라고 바꾸었습니다. 벧엘- 하나님의 집이라는 말입니다.
이곳이 태은교회라고 모든 이들이 말합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내 인생이 바뀐 하나님의 집이 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을 만나면 자기가 사는 환경이 바뀝니다. 지옥을 천국으로 바꾸게 됩니다. 인생의 목적이 바뀝니다.
여러분의 환경이 최악이었습니까? 최선의 환경으로 바꿀 수 있습니다. 성령님께서 여러분을 도우실 것입니다.

“두 손들고 찬양합니다. 다시 오실 왕 여호와께 오직 주만이 나를 다스리네 나 주님만을 섬기리. 헛된 마음 버리고 성령이여 내 영혼 충만하게 하소서. 주님 앞에 내 생명 드리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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