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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님을 떠난 민족 / 호 7: 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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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제목 :  하나님을 떠난 민족 
> 설교자  :  황요한 목사 
> 본문    : 호세아 7: 8-16


4월이 되었습니다. 교회 앞 샬롬 공원에도 벚꽃이 만개하여 교회를 찾는모든 분들에게 활짝 웃는 모습으로 환영하고 있습니다. 사순절 특별새벽기도회에 참석하시느라 진해 군항제를 비롯한 전국의 벚꽃 축제에 못 가셔서 서운할 분들이 계시겠지만 오히려 새벽에 도우시는 주님을 만나는 기쁨으로 충만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주님께서는 육체의 정욕을 위해 살아가는 이스라엘의 모습을 말씀하신 후, 하나님을 떠난 민족이 어떤 결과를 얻게될 것인가를 오늘 본문을 통하여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떠난 민족의 첫 번째 특징은 8절에 보면, ‘뒤집지 않은 전병과 같다’고 했습니다. 여러분들은 대개 부침개를 부쳐본 경험이 있을 것입니다. 남자 분들도 계란 프라이는 해 보셨을 것입니다. 적당히 뒤집어야 앞뒤가 골고루 익게 마련입니다. 그런데 뒤집지 않은 전병이라면 한 쪽은 설익고, 한 쪽은 새카맣게 타버린 상태가 되었음을 의미하고 있는 것입니다.

또한 9절에 보면 ‘백발이 얼룩얼룩한 상태’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아마 우리나라의 상황으로 교훈했다면 ‘백지에 먹물을 튀겨놓은 것 같은 상태'라고 했을지도 모릅니다. 하얀 백발에 얼룩이 있다는 것은, 그들의 순결함에 문제가 있을 뿐 아니라 누구든지 얼룩의 상태를 쉽게 깨달을 수 있는 상황임을 지적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지금 깨닫지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친구 중에 시력이 나쁜 친구가 있었습니다. 영등포 역전에서 만나기로 했는데, 시간에 맞추어 약속된 장소를 가다보니 친구가 먼저 기다리고 있어서 그 친구 앞으로 반갑게 가고 있는데 아무 반응이 없는 것입니다. 이쯤되면 손을 흔들면서 반갑다는 표를 해 주어야 하는데, 그냥 쳐다만 보고 있어 제 마음이 상했습니다. ‘나를 무시하는 건가.....’

사람이 제일 기분 나쁠 때가 무시당한다고 느낄 때이지요. 아내가 남편을 무시할 때, 남편이 아내를 무시할 때 우리는 분노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거 이상하다’ 하고 좀더 가까이 다가가자 그제야 ‘ 너 왔느냐’ 며 반기는 것이었습니다. '내가 오는 것 안 보여...' 하며 언짢게 반문했더니 '미안해. 사실은 내가 시력이 안 좋아서 20 - 30m만 떨어져 있어도 흐릿하게만 보이지 누군지 구별이 안돼.....’ 그 이야기를 듣고 나서야 제 서운한 마음이 좀 풀렸어요.

육신의 시력이 떨어져도 자기를 향해 다가오는 사람도 구별하지 못하는 아쉬움을 가지고 있습니다만, 지금 이스라엘의 상태는 영적인 안목이 완전히 떨어진 상태였습니다. 자신들의 상태를 하나님께서 분명하게 보여주지만 전혀 깨닫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뿐만 아니라 10절에 보면, '이스라엘의 교만은 그 얼굴에 증거가 된다'고 했습니다. 사람의 얼굴은 마음을 표시해 주는 바로미터가 됩니다. 눈을 마음의 창이라고 하지만 넓은 의미에서 얼굴 전체가 마음의 창입니다. 얼굴을 통해 겸손한 모습과 교만한 모습도 구별할 수 있습니다. 슬픈 마음과 행복한 마음도 읽을 수 있습니다. 얼굴은 우리의 마음속 다양한 상태를 다 드러내 주는 온도계입니다.

지금 이스라엘의 교만이 무엇인가요?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 교만인 줄 믿습니다. 죄악 중에 죄악은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는 거예요. 그들은여호와께로 돌아오지도 아니하며 구하지도 아니하고 있었습니다. 전적으로 창조주 하나님을 무시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순결한 삶을 포기하고 이방의 여러 신들을 필요에 따라 섬기는 혼합된 삶을 살고 있었습니다. 8절에서 ‘에브라임이 열방에 혼합되니 뒤집지 않은 전병이로다’ 고 말씀하시는 비유는, 단순히 앗수르에 의해서 이스라엘이, 바벨론에 의해서 유다가 민족적 순수함이 훼손되었음을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가장 싫어하는 것이 몇 가지가 있는데, 그 중에 하나가 혼합된 신앙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예배를 위해서는 성전을 찾아가고, 육신의 정욕과 인간적인 삶을 위해서는 바알과 아세라를 찾아가는 그런 의식을 가진 민족을 주님은 정말로 분노하고 계신 것입니다. 열방에 혼합되었다는 말씀은 바로 영적인 순수함을 잃어버렸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들은 육신의 문제가 생길 때마다, 그들은 본문 말씀 11절에 보면 애굽을 향하여 부르짖고, 앗수르를 향해서 발걸음을 달렸습니다. 당시의 애굽이나 앗수르는 강대국이었습니다. 미국이나 영국 같이 강대국이었습니다. 요즘 이라크 전쟁을 바라보면서, 저는 참 마음이 착잡합니다. 근본적으로 전쟁은 반대해야 하고, 또 그 전쟁은 일어나지 말았어야 하지만, 이제 전쟁은 시간이 퍽 지났습니다. 전쟁은 군인들간의 일이지만, 군인과 상관없는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고, 부상을 당해서 고통을 받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초기에는 프랑스와 독일 같은 나라를 중심해서 미국의 전쟁을 반대할 때, ‘그 나라는 꽤 괜찮은 나라인가보다’라고 착각하신 분도 계셨을 겁니다. 하지만 제가 볼 때에는, 전쟁을 하자는 미국이나 영국과 해서는 안 된다는 프랑스와 독일이 똑같은 사람들, 똑같은 나라들입니다. 요즘에 프랑스와 독일이 무엇이라고 얘기하고 있습니까? 반대하던 그들이 ‘우리는 미국이 이기기를 원한다’고 말합니다. 보름도 안 지나서 그렇게 태도를 바꾸고, 말을 바꾸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라크 정권이 무너지기를 바란다’ 보름 전에는 상상도 못 하던 이야기들을 하고 있습니다.

왜 그런가요? 미국이 전쟁에 다 이겨가니까, 미국과 영국이 이라크의 석유를 다 차지할 것 같으니까 ‘이제 우리도 조금 나눠줘’ 그 얘기입니다. 세계의 정치는 이해관계에 따라서 정의도 없고, 선도 없는 그런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우리가 여기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신들의 육체의 어떤 목적을 위해서 때로는 앗수르를 찾아가고, 때로는 애굽을 찾아가지만, 우리 주님이 볼 때는 그저 안타까운 일입니다.

다윗의 고백이 요즘 우리의 마음을 더욱더 새롭게 해 줍니다.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이니 활과 창에 수효에 있지 아니하도다’ 많은 무기를 가졌다고 이기는 것도 아니고, 적은 군사라고 지는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신들의 삶의 문제가 생길 때마다 세상에 힘을 가진 애굽과 앗수르를 찾아다니면서, 조공을 바치고 ‘우리의 힘이 되어 주세요. 우리의 방패가 되어 주세요.’ 하고 그들이 열심이지만, 주님께서 보실 때는 아니라는 겁니다. 마치 그들의 모습은 어리석은 비둘기 같이 보인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비둘기 모이 주어본 적 있으십니까? 그냥 가면 비둘기들이 훠억 날아가지만, 비둘기 먹이 한 봉지를 사들고 멀리멀리 뿌려주다가 점점 가까이 뿌려주면 나중에는 발밑에까지 옵니다. 그냥 덥썩 잡는 거 간단해요.

애굽이 도와주는 것 같고, 앗수르가 도와주는 것 같아서 한 걸음 한 걸음 다가가지만, 결국 애굽과 앗수르는 이스라엘과 유다를 한 입에 삼켜버리고 말았어요. 16절에 결론이 나와 있습니다. ‘그 방백들은 그 혀의 거친 말로 인하여 칼에 엎드러지고....’ 에브라임이 의지했던 애굽과 앗수르는 오히려 그들의 지도자들을 한 칼에 쳐버리고 말았습니다.

결국 이스라엘은 애굽의 조롱거리가 되었습니다. ‘창조주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더니... 그 백성도 별거 아니었구만...’ 세상은 이렇게 결론 내립니다. 세상이 우리를 도와줄 것 같지만, 결코 세상의 권세잡은 사탄의 세력은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임함을 원치않기에 도움이 아니라 지배의 칼날로 억압할 따름입니다. 잠시 이해관계로 돕는 시늉만 할 뿐임을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

오늘 주님께서는 호세아 선지자를 통해서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너희들이 어리석은 비둘기 같이, 백발이 얼룩얼룩한 그런 상태 같이, 뒤집지 않은 전병 같이 그런 상황에 있는 너희를 주의 종을 통해서 말씀하지만 그들은 돌아오지 않습니다. 구하지 않습니다. 오늘 본문 14절에 보면 성심으로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부르지도 않습니다.

하지만 우리 주님은 이스라엘, 에브라임을 얼마나 사랑하셨는지 15절에 보면 ‘내가 저희 팔을 훈련시켜 강건하게 하였다’라고 하셨습니다. 야구 선수 중에 가장 주목받는 사람이 투수이지요? 투수가 잘 해야 경기가 잘 풀려갑니다. 그러기 위해서 그는 여름뿐만 아니라 겨울철에도 비닐하우스로 스프링 캠프를 만들어 놓고 하루에도 수 백번씩 투구연습을 해야합니다. 팔이 강건해 지고 어깨가 강해져야 좋은 투구를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팔을 훈련시켜서 강건하게 하였다라는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께서 그들의 모든 삶의 상황 속에서 승리할 수 있는 능력들을 충분하게 준비시켜 주셨다는 것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물질도 충분히 주셨고, 건강도 넉넉히 주셨습니다. 하나님 앞에 예배할 수 있는 시간도, 충성할 수 있는 넉넉한 능력도 주셨다는 겁니다.

20세기 최고의 역사학자 아놀드 토인비는 이렇게 말합니다. ‘모든 역사는 껍질을 벗기고 나면, 결국 영적인 부분만 남는다.’ 여러분 역사를 어떻게 바라보십니까? 역사란 권력을 잡은 자들이 투쟁해서 승리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역사는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영적인 스토리인줄로 믿습니다. 지금은 깨어있을 때입니다. 세계의 급변하는 상황이나 우리 자신의 삶속에서 하나님의 세미한 음성의 메시지를 들을 수 있고 볼 수 있는 안목을 가져야 할 줄로 믿습니다.

우리 한국 사회도 영적으로 심각한 상황에 있습니다. 먹을 것이 모자라거나, 입을 것이 부족해서, 생기는 문제가 아닙니다. 물론 어려움에 도움을 청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 어려움의 문제는 우리나라가 이제 만불을 회복했는데, 아직 우리나라가 선진국이 아니기 때문에 그런 사람이 생기는 것은 아닙니다. 3만불이 넘는 미국이나 스위스에도 거지들은 있어요. 중요한 것은 지금 우리 사회의 문제는, 지금 우리들의 문제는 교육의 기회가 없거나 교육의 환경이 부족하거나 우리의 환경이 불충분해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사회복지 시설이 부족해서 생기는 문제가 아니라는 거예요.

무슨 말씀 입니까? 지금 우리가 가지고 있는 문제는 모자람의 문제도 아니고, 불충분의 문제도 아니라는 겁니다. 영적인 문제인줄 믿습니다. 희망을 보여주는, 하나님의 사람들이 비전을 가지고 세상을 향해서 빛을 비추어주어야 해요. 그 빛이 다름 아닌 말씀을 통해서 ‘주의 말씀은 내 발의 등이요 내 길의 빛이니이다’ 말씀을 통해서 우리 민족이 갈 길을 비추어주고, 여러분들의 인생길에 말씀이 비전이 되어주어서, 여러분이 이끌어주어야 하는데, 그게 아니라 앗수르가 어디입니까? 애굽이 어디입니까? 거기에 연줄 대기에 바쁘다고 하면 우리의 결론은 너무나도 분명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책망만 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13절에 보면 ‘화있을진저 패망할 진저’ 무서운 말씀을 선포하지만, 희망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16절에 보면 ‘저희가 돌아오나 높으신 자에게로 돌아오지 아니한다’라고 말합니다. 무엇인가 바삐 가긴 갑니다. 무엇인가 열심히 하긴 합니다. 그런데 헛수고 하고 있는 겁니다. ‘요즘 어때요?’ ‘바쁩니다’ 그렇게 바쁜데 집에 가져오는 것도 없지요? 우리 아내들이 제일 짜증나는 게 뭐예요? 남편은 새벽부터 밤까지 정말 바쁜데, 가져 오는게 없어요. 기다리는 것도 하루 이틀이지, 그 무슨 얘기예요? 헛수고 하고 있다는 얘기예요. 주머니가 터졌는데, 거기다가 아무리 갖다가 부은들 그게 남아나겠습니까? 주머니가 터졌는데...

너희의 삶 속에 황충이 먹지 않도록 하시는 하나님의 손길. 그런데 황충이 들면 소용없잖아요. 지금 이스라엘은 바쁩니다. 분주합니다. 열심히 삽니다. 그런데 헛수고예요. 그들이 지금 돌아는 가는데, 여호와 하나님, 크신 하나님, 높으신 하나님께로 돌아가지 않는다는 거예요. 이 말은 바꾸어 말하면, 그 속에 해답이 있는 거예요. 높으신 하나님 여호와께로 그들이 발걸음을 돌리면 이스라엘에 희망이 있다는 것입니다. 지금 이스라엘의 문제는 바로 우리들의 문제입니다. 이 사회의 문제입니다.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인간의 힘을 의지했던 그 발걸음들이 돌이켜서 전능하신 하나님께로 발걸음을 돌릴 때 이 민족은 애굽의 조롱거리가 된 것이 아니라 세상 속에서 여호와 닛시에 깃발을 높이 드는 승리의 사람들이 될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승리하는 것을 기뻐하십니다. 세상에 나아가지만, 하나님은 권세를 주셔서 귀신을 내어 쫓고, 병을 고치고, 천국이 가까웠다는 복음을 전하는 당당한 승리자들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이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을 떠난 민족에 특징을 보이고 있는 이스라엘, 에브라임, 오늘 이 나라 이 민족이 하나님을 떠나서 세상을 의지하고 그것에 분주한 그 삶, 그것이 이제 나의 문제라고 고백하고, 인정하면서 ‘하나님 이제라도 전능하신 하나님 주님 앞에 돌아가기를 원합니다’ 진정으로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운동과 역사의 흐름이 바로 이 자리, 평안의 공동체로부터 시작될 수 있도록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기도하시겠습니다.

좋으신 하나님, 우리의 모습을 바로 보지 못하고 영적으로 어두워져 있었음을 고백합니다. 교만함과 완악함이 그 얼굴에 증거가 되었던 이스라엘의 모습속에서 오늘 우리의 현 주소를 알게하시고 새롭게 하옵소서.
삶의 문제가 생길 때마다 어리석은 비둘기 같이 애굽을 향하고 앗수르를 찾았던 우리의 발걸음을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이제 높으신 하나님께로 돌아가 희망이 넘치는 삶을 살게 하옵소서. 주님께로 돌아가는 운동이 일어나게 하시고, 기도의 운동이 회복되게 하시고, 전도의 운동이 새롭게 일어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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