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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십자가를 쳐다보는 사람들 / 눅 23:3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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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부 1


십자가를 쳐다보는 사람들 <눅 23:32-43>


(또 다른 두 행악자도 사형을 받게 되어 예수와 함께 끌려 가니라 해골이라 하
는 곳에 이르러 거기서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고 두 행악자도 그렇게 하니 하나
는 우편에, 하나는 좌편에 있더라 이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아버지여 저희를 사
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하시더라 저희가 그의 옷
을 나눠 제비 뽑을쌔 백성은 서서 구경하며 관원들도 비웃어 가로되 저가 남을
구원하였으니 만일 하나님의 택하신 자 그리스도여든 자기도 구원할찌어다 하
고 군병들도 희롱하면서 나아와 신 포도주를 주며 가로되 네가 만일 유대인의
왕이어든 네가 너를 구원하라 하더라 그의 위에 이는 유대인의 왕이라 쓴 패가
있더라 달린 행악자 중 하나는 비방하여 가로되 네가 그리스도가 아니냐 너와
우리를 구원하라 하되 하나는 그 사람을 꾸짖어 가로되 네가 동일한 정죄를 받
고서도 하나님을 두려워 아니하느냐 우리는 우리의 행한 일에 상당한 보응을 받
는 것이니 이에 당연하거니와 이 사람의 행한 것은 옳지 않은 것이 없느니라 하
고 가로되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생각하소서 하니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하
시니라)  <눅 23:32-43>

오늘은 고난주간이 시작되는 주일입니다.
이번 우리교회의 항존직 72명이 순교지를 답사하면서 순교자들의 신앙을 되새겨
보았습니다. 이 한 주간 동안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주님의 고난 받으심을 묵상
하면서 지내는 주간이기에 우리도 십자가를 새로운 눈으로 보게 되기를 바랍니
다.

주님의 십자가는 언제나 우리 자신을 성찰하게 하는 계기가 됩니다.
찬송가 작사자의 '늘 울어도 눈물로써 못 갚을 줄 알아 이 몸 밖에 없어 이 몸
바칩니다' 라고 한 것 처럼, 우리가 십자가 밑에 설 때 마다 주님의 사랑 앞에
무슨 말을 더 할 수 있겠습니까?
2000년 전 그 옛날 주님의 십자가 밑에서 하염없이 눈물 짓던 여인들처럼 눈물
밖에 더 흘릴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또 한편 오늘의 세상을 바라보면서 그 시대의 사람들과 달라진 것이 무
엇인가 할 때, 과학기술과 인간의 지적 능력은 많이 발전하였다고 해도, 인간
의 본성은 변한 것이 하나도 없다는 사실입니다.
모든 인간은 예나 지금이나 죄의 세력 하에 있다는 사실은 변한 것이 없다는 말
입니다. 그때도 로마의 세력은 무력으로 세계를 정복하고 지배했던 것 처럼, 오
늘도 무력의 힘은 변한 것이 없이 세계를 지배하고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 한 주간 주님의 십자가를 쳐다보면서 우리 자신의 신앙을 재
정립하는 기회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1. 먼저 십자가를 쳐다보는 사람들 중에는 구경꾼들이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남의 불행을 곧잘 구경들을 합니다.
불난 집 구경이나 교통사고를 구경하는 경우들 처럼, 예수님의 십자가를 구경하
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죄 없으신 주님이 십자가를 지셨지만 십자가와 자기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는
사람들입니다. 주님의 죽음의 의미를 전혀 알지 못하는 사람들입니다.
주님이 우리 죄를 위하여 대신 십자가에 못 박혔지만 그 말이 전혀 귀에 들려지
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오로지 구경꾼일 뿐이었습니다.
한 때는 보리떡과 물고기를 얻어먹었던 사람들이기도 합니다.
앉은뱅이와 소경이 눈을 뜨는 것을 직접 본 사람들이기도 합니다.
오늘도 바로 이러한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일평생 예수와는 무관심으로 지내는 사람들이 바로 그런 사람들입니다.
교회의 십자가를 보지만 그것이 자기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이 지내는 사람들입
니다. 바로 교회 앞뜰에 살면서도, 교회 옆에 살면서도, 교회 안에서 무슨 일
이 일어나는지, 교회가 무엇을 하는 곳인지 관심도 없이 지내는 사람들입니다.
어렸을 때는 교회에서 주는 빵도 과자도 얻어먹은 사람들입니다.

어쩌면 이런 사람들은 교회 안에도 있을 수 있습니다.
십자가가 자기의 죄와 아무런 관계가 없다는 듯이 무관심으로 믿는 사람들입니
다. 오늘 그렇게 나와 앉아있는 내 자신은 아닌지 자신을 살펴야 합니다.
십자가 없는 신앙생활은 단순히 구경꾼일 뿐입니다.
그래서 예배도 드리러 오지않고 예배보려고 옵니다.
예배 보러 왔으니, 사람들만 보이지 주님은 보이지 않습니다.
성가대 찬양소리만 들으러옵니다.
교제하는 남자가 있으니, 맘에 드는 여자가 있으니 사람들 만나러 나옵니다.
이것이 바로 십자가를 구경으로 쳐다만 보고 있던 사람들입니다.
2. 십자가를 쳐다보는 사람들 중에는 죽이는 데 앞장 선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① 대제사장 가야바와 안나스와 일부 서기관과 장로들이 그런 사람들이었습니
다. 저들은 예수의 소문과 이적과 능력의 역사가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지자, 그
것을 시기하며 두려워했습니다. 자신들의 권위와 자리에 대한 도전으로 여겼습
니다.
그래서 그를 죽이려고 하였습니다. 예수가 성전에서 비둘기 팔고 돈 바꾸는 자
들의 상을 뒤엎었을 때 부터 '네가 무슨 권세로 이런 일을 행하였느냐'고 물었
던 것 처럼, 자신들의 권위상실로 인하여 주님을 죽이려고 했었습니다.

오늘도 이런 사람들이 얼마든지 있을 수 있습니다.
교권을 등에 업고 자신의 세를 과시하며, 자신의 권위를 지키려는 사람들이 바
로 이런 사람들입니다. 그 당시 제사장과 장로들이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으라
고 했지 일반 사람들이 그런 것이 아니었습니다. 요즘도 이렇게 볼 때, 교회에
서 주님을 십자가에 못 박는 일은 목사나 장로들이 하는 것이지 일반 교인들이
하는 것이 아니란 말입니다. 크게 깊이 반성해 보아야할 일입니다.

② 그들의 주장을 꺽지 못하고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내어준 빌라도가
그런 사람들입니다. 빌라도는 식민지 지역의 치안을 담당한 로마 행정관이었습
니다. 막강한 세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사람을 죽이고 살릴 수 있는 권세를
가졌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갈릴리 어촌에서 나온 나사렛 예수라는 청년에
게서 죽일 죄목을 발견하지 못하고 유대인들의 종교적인 문제로 시기로 고소하
는 것을 다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면서도 그를 십자가에 내어준 것은 자신의 자리 지키기 위함이었습니다. 유
대인들이 민중을 동원하여 데모할까봐, 그렇게 되면 자신의 공적사항에서 치명
타를 입을 것 같아서 그래서 주님을 내어 주었던 사람입니다.

오늘도 바로 이런 사람들이 있습니다.
자신의 이해관계에서 예수를 버리는 사람들입니다.
신앙을 버리고 교회를 떠나는 사람들을 보면, 모두 빌라도 같은 그런 경우입니
다. 출세 줄에서 떨어질까봐, 사업확장에서 소외될까봐, 친구들로부터 왕따당할
까봐, 그래서 예수의 십자에서 멀어지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모두 진리인 예수를 외면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저들은 모두 자기들의 <
권위>와 <지위>가 흔들릴까봐 그것이 두려웠습니다.
이들은 모두 자기들의 이해관계에서 예수를 버린 사람들입니다.

오늘도 이런 사람들 많습니다.
예수의 이름을 팔아서 출세의 길로 나서려는 사람들이 그런 사람들입니다. 예수
의 이름을 빌어 이권을 차리려는 사람이 바로 그런 사람들입니다.
예수로 자기의 지위를 높이려는 사람들입니다.

저는 이번 순교지 탐방을 하면서 순교자들의 고귀한 신앙의 절개 앞에 머리를
들 수 없었음을 고백합니다. 같은 주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같은 목사의 길을
걸어가면서 얼마나 저들 앞에 부끄러운 모습이었는가를 깊이깊이 반성하고 속으
로 얼마나 많이 울었는지 모릅니다.
신사참배를 끝까지 거절하여 옥사한 주기철목사님의 설교문(1940년 여름)에서
깊은 도전을 받을 구절이 있었습니다. 지금 양지에 있는 총회 순교자 기념관 앞
뜰에 이 주기철 목사님의 마지막 설교문의 구절이 비석에 이렇게 적혀있습니다.

주님 위하여 오는 고난을 내가 피하였다가이 다음에 내 무슨 낯으로 주님을 대
하오리까?
주님을 위하여 이제 당하는 수옥(囚獄)을 내가 피하였다가이 다음 주님이 "너
는 내 이름과 평안과 즐거움을 다 받아 누리고고난의 잔은 어찌하고 왔느냐"고
물으시면나는 무슨 말로 대답하랴!
주님을 위하여 오는 십자가를 내가 이제 피하였다가 이 다음 주님이 "너는 내
가 준 유일한 유산(遺産)인 고난의 십자가를 어찌하고 왔느냐"고 물으시면 나
는 무슨 말로 대답하랴!

우리의 선배들은 이렇게 신앙의 지조를 지켰는데, 나는 지금 어떤 모습으로 주
님의 종이라고 칭호를 받고 살고 있는가? 자꾸만 자신을 반성하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순교자의 피는 교회의 씨앗이다' 라는 교부 터툴리안의 말 처럼, 오늘 한국의
교회들이 이 만큼의 성장과 자유를 누리며, 나라가 경제적 성장을 이루게 된 것
은 전적으로 순교자들의 고귀한 희생의 피의 대가라고 여겨집니다.
저들이 흘린 피의 보답으로 하나님께서 축복해 주었다는 사실입니다.

3. 십자가를 쳐다보는 사람들 중에는 구주로 고백한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① 먼저 오른편 강도가 그런 사람입니다. 왼편 강도는 도리어 주님을 조롱하고
욕했지만, 그는 예수를 보고 자기를 구원해 달라고 하였습니다.
'주여! 당신의 나라가 임할 때 이 죄인도 기억하여 주옵소서' 라고.....

오늘도 이런 사람들이 있습니다. 죽으면서 구원 얻는 사람들이 바로 이런 사람
들입니다. 평생 세상의 모든 죄란 죄는 다 지었지만, 죽으면서 주님을 영접하
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계시록14:13절에 '자금 이후로 주 안에서 잠든
자들이 복이 있도다'라고 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이해할 수 없는 사랑의 은
혜란 말입니다.
아침 부터 포도원에 들어가 일한 사람이나, 저녘 5시에 들어가 한시간 일한 사
람이나, 하루 삯을 동일하게 주었다는 비유가 바로 이런 구원의 비유입니다. 그
래서 어떤 사람들은 나는 죽을 때 믿겠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고 하는 사람입니다.

② 그리고 예수의 십자가를 쳐다보면서 하염없이 눈물만 흘리는 여인들이 있었
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에 그냥 눈물만 흘릴 뿐이었습니
다. 갈릴리로 부터 온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와 또 다른 마리아를 포함한 몇
몇 부인들은 로마의 총검 앞에 대항하지 않고 십자가에 달린 예수를 쳐다보면
서 눈물만 흘렸던 사람들이었습니다. 무슨 힘이 있어야 할텐데 아무런 힘이 없
었습니다.

오늘도 이런 사람들이 있습니다.
교회 안에서도 이런 사람들이 있습니다.
누구보다 마음 속으로는 주님을 사랑하지만, 현실적으로 주님을 위해 할 수 있
는 것이란 아무 것도 없는 그런 사람들입니다. 그저 마음 뿐인 사람들이 그런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교회는 그런 사람들의 기도와 눈물로 성장해간다는 사실
을 기억해야합니다.

③ 그런가하면 공회원인 아리마대 사람 부자 요셉이 있었습니다.
그는 예수님의 죽음을 막지는 못했지만 시신이라도 정중히 장사지내야겠다는 생
각으로 빌라도를 찾아갔습니다. 그리고 주님의 시체를 자신의 무덤에 장사 지냈
습니다. 이것도 예언자들의 예언의 성취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는 강도와 함
께 죽었지만, 부자의 묘실에 장사되었다는 이사야 53:9절의 말씀대로 되었습니
다.

오늘도 이런 사람들이 있습니다.
공회원이라면 오늘에는 국회위원에 상응하는 지위입니다.
지금 국회위원들 중에 이런 사람들이 있습니다.
높은 공권력의 자리에서 예수를 믿는 사람들이 이런 사람들입니다.
자신의 지위와 부(富)로 섬기는 사람들이 이런 사람들입니다.

결론입니다.

우리 모두 십자가 밑에 선 사람들입니다.
어떤 마음으로 지금 십자가를 쳐다보고 있습니까?
구경꾼입니까, 아니면 십자가의 원수로 쳐다보십니까? 아니면 방관자로, 아니
면 이해관계로 저 십자가를 쳐다보십니까?
어떤 시선으로 십자가를 지금 쳐다보십니까?
이 한 주간 십자가 밑에 선 자신을 깊이 깊이 생각하면 지내는 한 주간이 되기
를 바랍니다.
그리고 새롭게 십자가의 증인들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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