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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받았으니 / 골 2: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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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받았으니  (성완석 목사)
본문 : 골로새서 2장 6~7절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받았으니 그 안에서 행하되 그 안에 뿌리를 박으며 세움을 입어 교훈을 받은대로 믿음에 굳게 서서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    골로새서 2장 6~7절 말씀


  오늘도 복된 주의 전에 나아왔습니다. 어지러운 세상 속에서도 주께서 우리 마음을 주장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세상이 줄 수 없는 신령한 것들로 채워 주시기를 축원합니다. 나아올 때는 무거운 마음으로 나아왔을지라도 돌아갈 때의 마음이 가벼워지기를 축원합니다. 


  어떤 사람은 인생은 20부터라고 말하는데, 그 이유는 하고 싶은 것도 젊어서 하지 늙으면 못한다는 거예요. 어떤 사람은 인생은 40부터라고 말합니다. 인생에는 어느 정도 경륜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지요. 어떤 사람은 인생은 60부터라고 말합니다. 산전수전 다 겪고 60이 넘어야 비로소 인생이 뭔가를 좀 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알아야 할 중요한 사실이 있다면 인생은 십자가로부터 시작한다는 것입니다. 아멘! 이것을 알아야 헛된 인생 살지 않아요. 가치있는 인생삽니다. 후회하지 않는 인생 살게 되는 거예요. 십자가의 의미를 깨닫는 사람만이 진정으로 복된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이 땅에 살아가면서 마음에 문제나 번민이나 갈등이 없는 사람 없습니다. 누구에게나 말하지 못할 어려움은 있는 거예요. 누구에게나 실패의 때가 있고, 잘 안 되는 일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생각이오 중심입니다. 이럴 때 어떤 태도를 갖느냐? 그 심령이 하나님 앞에서 어떠하냐? 주님 의지하고 바라보는 믿음 있느냐? 미래를 보는 믿음 있느냐? 주님 주실 좋은 결말을 바라보는 믿음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문제나 환경에 어떻게 대처하느냐에 따라 결과는 달라집니다. 현실은 우리를 힘들게 합니다. 믿을 것 없는 현실임에도 불구하고 주님이 손을 대시면 환경도, 남편이나 자녀도, 나에게 상처를 주는 사람도 얼마든지 달라지고 변화 될 줄로 믿습니다. "주의 약속은 어떤 이의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결국은 주님이 이루시는데, 우리의 구하는 것이나 생각하는 것에 더 넘치도록 축복해 주실 줄로 믿습니다. "지체치 아니하리라" "때가 되면 영광 보리라" "때가 되면 이루리라" "때가 되면 받으리라" "생각한 것 이상으로 주시리라"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풍족하게 주실 것이다" 믿음으로 주의 약속이 성취되는 것을 체험하는 복된 성도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내 마음대로 안 되는 상황 속에서라도 쉽게 주저앉거나 포기하지 아니하고, 방황하지 아니하고, 원망하고 한탄하지 아니하고 승리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우리가정과 일터와 삶의 현장에서 날마다 체험되는 능력의 역사가, 이런 축복이 오늘 복된 자리에 나오신 여러분에게 충만히 임하시기를 축원합니다. 


  6절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받았으니 그 안에서 행하되" "주"라는 말은 "상전, 주인"이라는 뜻입니다. 이전에는 내가 주인이었기에, 욕심의 종 되어 살았고, 육신의 종 되어 살았는데, 이제는 상전이 바꿔지고, 주인이 바꿔졌다는 거예요. 이제는 내 인생의 주인이 내가 아니라는 거예요. 내 사업장도 내 것이 아니라 주님의 것이고, 나의 인생 전체가 주님의 것이라는 거예요. 주님의 것이 되면 실패가 없어요. 주님의 것으로 고백하고 맡기면 주님이 책임져 주실 줄로 믿습니다. 이제는 주님이 나의 주인이십니다! 이런 고백이 있으시기를 축원합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 밤이 있고, 낮이 있잖아요? 차를 타고 가도 평탄한 길도 있고, 꼬불꼬불 힘드는 길도 있잖아요? 때로는 터널도 지나가고, 때로는 확 트인 길도 지나갑니다. 우리가 살아 가면서 울기도 하고, 웃기도 하고, 성공하기도 하고 때로는 실패하기도 하는데,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실패가 실패로 끝나지 않더라는 거예요. 바꾸어 주시는 주님,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어 주시는 주님을 바라보시기를 축원합니다. 예수님을 주인으로 받아들였으니 이제는 주인의 부름에 합당하게 살라는 것입니다. 주님 떠나면 자신도 죽고, 주변을 살릴만한 힘도, 능력도 다 잃어버리게 되기에 주안에서 행하라고 말씀합니다. 그리스도 예수를 주인으로 받은 우리! 이제 주님께 속한 자예요. 주님께 속한 자는 주안에서 살아야 합니다. 그것이 잘 되는 길이요, 후회하지 않는 길이 될 줄로 믿습니다. 같이합니다. "주님께 속한 자는 주안에서 살아야 합니다" 아멘! 벗어나면 나도 죽고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우게 되더라는 것입니다. 주안에서, 십자가 붙들고 나아가면 능력있는 삶을 살게 됩니다. 


  고전 1:18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본래 십자가는 로마제국에서 내란을 일으킨 정치범이나 살인자, 강도 등과 같이 중한 죄를 지은 범죄자를 처벌하는 사형도구였습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십자가는 무능력한 패배자의 상징이었으며, 심지어는 십자가가 하나님의 저주라고까지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또한 이방인들에게도 십자가는 어리석고 미련하고 나약함의 상징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주님이 십자가를 지심으로 의미가 달라져 버린 거예요. 실제로 십자가의 고통은 우리의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었고, 예수님이 받은 상처는 이루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잔인하고 큰 것입니다. 로마 사람들이 사용하던 채찍은 6미터 정도 되는 것으로 6-8개의 납덩이가 붙어 있습니다. 채찍질을 할 때 납덩이들이 등과 가슴 몸 전체에 파고듭니다. 채찍을 잡아당기면 그것들이 몸에 긴 고랑을 만들며 풀어집니다. 채찍에 맞아 온 몸은 갈기갈기 찢어졌고 상체는 머리에서 떨어지는 피로 가득하다가 흐르던 피가 응고되어 눈을 뜰 수 없는 정도에 이르렀을 때 십자가가 지워집니다. 손과 발에 못박는 것도 그렇습니다. 로마 사형법을 연구해보면 양 손바닥과 발등에 못을 박는 것이 아닙니다. 양 손목에 박아야 몸의 무게로 살이 찢어질 때 관절에 걸려 땅으로 떨어지지 않는다고 합니다. 몸의 무게가 한쪽에 쏠리면 그쪽 살은 찢어집니다. 달리 몸을 추스리면 또 그쪽 살이 찢어집니다. 나의 주님이 그런 끊이지 않는 아픔 속에서 여섯 시간이나 십자가에 달려 계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 달리실 때 단순히 육신의 고통만 당하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육신의 고통도 컸지마는 정신적인 고통도 컸을 것입니다. 예수님이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에 입성할 때는 "유대인의 왕으로 오시는 이여, 호산나 만세!"를 부르며 많은 사람들이 왕으로 환영을 했습니다. 예수님을 통하여 병 고침 받은 자가 한 둘이 아니에요. 기적을 체험하고, 은헤받은 자들이 많았습니다. 가까이 따르던 제자들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다 배반하고, 다 달아나 버렸어요. 그 심령의 고통이 얼마나 컸던지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 온 세상 사람이 다 나를 버릴지라도, 하나님 아버지만 나를 버리지 않으면 되는데, 하나님에게 버림받는 아픔을 겪으셨더라는 거예요.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이 고통을 감당하신 것은 나의 죄 문제 해결해 주실뿐만 아니라 영육간에 강건하게 살게 하시려는 것임을 믿습니다. 주님의 십자가의 피로 이미 용서 받았습니다. 이미 구원받았습니다. 이 고백이 확실해지기를 바랍니다. 오늘 이 은혜에 우리 모두가 잠기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온 동네가 믿음으로 살고, 이 마을에는 술집도 창녀도 없는 깨끗한 것을 자랑삼고 사는 엄격한 마을이 있었습니다. 어느 처녀가 잘못하여, 결혼하기 전에 아이를 갖게 되었는데, 그 마을 풍습이 아이의 아버지를 대지 못하면 간음죄로 추방을 당하게 되거나 맞아죽게 됩니다. 그런데 이 마을에는 한 수도사가 있었는데 마을의 궂은 일을 다 하면서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임신한 처녀가 아이의 아버지가 누구라는 것을 말을 안 해 곧 죽게 되었는데, 죽음의 위기 직전에 말하기를 "저 수도사" 그랬어요. 수도사가 끌려가서 많은 몰매를 맞고 고역을 당하고 감옥에 들어갔는데, 시름시름 앓다가 감옥에서 죽게 됩니다. 죽은 다음에 시신을 염하면서 보니까 이게 남자가 아니고 여자예요. 남장을 한 여자였더라는 거예요. 이것을 안 동네 사람들이 숙연해집니다. "내 아이가 아니다. 사람들이 안 믿어주면 나는 남자가 아니다" 얼마든지 빠져 나올 수 있었는데 왜 그 말을 안 했을까요? 비록 잘못하여 죄지은 처녀였지마는 그를 살리기 위해서 묵묵히 몰매와 고역을 감수한 거예요. 주님은 나를 대신하여, 나 때문에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떳떳한 죽음이 아니였어요. 짐승같이 비참한 죽음을, 한 마디 변명도, 불평도 없이 묵묵히 감당 하신 것입니다. 주님은 말을 하실 때마다 호흡을 하실 때마다 몸이 찢어지는 그런 고통속에서 제일 먼저 하신 말씀이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용서의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용서받지 못할 죄도 없고, 용서받지 않아도 될 만큼 죄 없는 자도 없습니다. 고난 주간을 보내면서 먼저 하나님과 아무 가로막힘이 없는 활짝 열린 관계로 회복되어지시기를 바랍니다. 또한 사람과도 가로막고 있는 것들이 무너지는 역사를 체험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아직 용서하지 못한 사람, 아직 씻지 못한 상처, 아직 풀지 못한 응어리가 있다면 주님의 깊은 은혜를 체험하면서 깨끗이 씻어버리고 풀어버리고 잊어버리고 새 출발하시는 복된 은혜가 임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오래 전 일인데, 팔당 댐에 대학생인 아들을 데리고 낚시를 간 아버지가 있었습니다. 토요일 밤에 가서 밤새도록 낚시를 한 거예요. 아내는 교인이라 가지 말라고 말렸는데, 기어이 간 거예요. 그런데 갑자기 수문을 열게 되어서 급류가 몰아 닥치고 낚시를 하면서 타고있던 배가 뒤집힌 거예요. 아버지는 학생 시절에 수영선수였는데, 이 분이 교육부 장관도 하고, 청와대에서 수석 비서관을 지내던 분이었는데, 그 날 죽었습니다. 그런데 수영을 전혀 할 줄 모르는 아들은 살아난 거예요. 아들이 배가 뒤집혀서 정신 없이 떠내려가고 있는데 밑에서 아버지가 계속 받쳐 준 거예요. 그래서 자기는 겨우 물가로 밀려 나와서 살게 되었는데, 아버지는 아들을 살리려고 몸 부림치다가 기진 맥진해서 떠내려 가다가 결국은 헤어 나오지 못하고 죽은 거예요. 수영 선수 출신이라 혼자 몸만 살려고 하면 얼마든지 나올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아들을 살리려고 하다가 대신 죽은 거예요. 믿음 생활에 있어서 무엇은 해야 하고 무엇은 하지 말아야하고 보다 더 중요한 것 있다면 주님의 십자가를 바라보는 것입니다. 십자가를 바라보면 거기에 능력이 있습니다. 세속에 물들지 않습니다. 믿음 생활 잘 하는 비결은 어떤 경우라도 주님만 바라보는 것이요, 십자가만 바라보는 것입니다. 절망스럽고, 한스럽고, 정말 죽고만 싶을 때라도 나를 위해 십자가의 뜨거운 피를 뚝뚝 흘리시던 주님 바라보면 새 힘이 납니다. 넉넉히 이길 수 있습니다. 믿음의 눈으로 십자가를 바라보면 거기에 사는 길이 있고, 믿음의 손으로 십자가를 붙들면 주의 능력을 힘입게 됩니다. 어두운 세상 가운데에도 주님과 동행하는 축복을 누리게 되는 거예요. 이런 믿음의 자리로 나아가시기를 축원합니다. 십자가를 생각하며 감격하는 가슴 있어야 합니다. 이 감격 없으면, 이 감격 식어지면 우리는 자꾸 흔들립니다. 주님이 주신 살과 피에 우리의 온 몸을 적시는 깊은 은혜의 자리로 들어가시는 복된 성도님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아무리 좋은 기회, 아무리 좋은 재능, 아무리 좋은 기술이 있어도 마음이 무너지면 아무 것도 못합니다. 죽고 사는 권세가 마음에 있단 말이에요. 성공하는 사람들, 행복하게 사는 사람들은 마음부터 승리하는 거예요. 시시한 것에, 하찮은 것에 목숨 거는 어리석은 인생 살지 말아야 됩니다. 리차드 칼슨이 "우리는 사소한 일에 목숨을 건다" 이런 책을 썼어요. 우리가 마음을 쓰고, 목숨을 거는 일들도 오늘이 내 생애의 마지막 날이라고 생각해 보면 별거 아니라는 거예요. 그런데 우리는 하찮은 일, 별로 중요하지도 않는 일에 목숨을 걸고, 이웃 차가 달리니까 나도 달리고, 옆에 사람이 뛰니까 나도 뛰고, 사소한 일에, 한 번 더 생각해 보면, 지나고 보면 별것 아닌 일에 목숨을 건다는 것이지요. 결론은 우리는 모두 오늘이 내 생애에 마지막 날처럼 생각하고 살자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죽음이 가까워 오면 세 가지를 후회한다고 합니다. 조금 더 참을걸, 참지 못해서 흥분하고 열내고 하던 일, 조금 더 참을 걸, 또 하나는 조금 더 베풀 걸, 내가 있을 때 조금 더 베풀었으면 좋았을 것을, 다 쓰지도 못하고 베풀지도 못하고 어리석게 살았구나! 그렇게 후회 한다는 거예요. 또 한가지는 짧은 인생, 좀 더 웃으며 살걸, 작은 것 때문에 티격 태격, 열내고, 다투지 말고, 위로하고 격려하고 웃으며 살걸, 그렇게 못산 것을 후회하게 된다고 합니다. 


  인생은 내가 스스로 어떻게 만들어 가느냐? 이것이 중요한 거예요. 말 한마디 때문에 연연해하지 마세요. 믿음 안에서 좀 넓게 사세요. 좀 크게 사세요. 아멘! 서로 인사합니다. "믿음 안에서 넓게 삽시다! 크게 삽시다" 생각 잘못하면 출세하고도 후회하는 인생 살게 됩니다. 1952년에 슈바이처는 노벨 평화상을 타고, 까뮈는 노벨 문학상을 타게 됩니다. 노벨상에는 큰 상금이 나오는데, 아프리카에 병원을 짓고 평생동안 흑인들을 돌보며 생사고락을 함께 하던 슈바이처는 그 돈을 전부 흑인들을 위한 병원에 사용합니다. 그런데 같은 해에 노벨 문학상을 탄 까뮈는 받은 상금을 가지고 굉장히 큰집과 좋은 차를 삽니다. 그러다가 며칠이 안되어 자동차 사고로 죽고 맙니다. 많은 것 이룬 것 같았는데, 인생 허무한 것이더라는 거예요. 어느 재벌이 임종을 앞두고 아들들을 다 불렀는데, 일생동안 돈도 많이 벌었고, 명예도 얻었고, 그리고 권세도 가지고 살았던 분입니다. 아들, 딸들 다 모아놓고 아버지께서 눈물을 흘리면서 손을 잡더니 이 세상에서 가장 비참한 사람이 여기 죽어가고 있다고 하더랍니다. 자녀들이 "아버지, 아버지는 성공하신 분입니다. 사업에도 성공했고 인생에도 성공해 수많은 사람들이 부러워하지 않습니까" "아니다. 이 세상에서 내가 돈 모으느라고 양심을 잃었고. 명예를 얻기 위해서 친구를 버렸고, 출세하기 위해서 가정을 돌보지 않았고, 세상 영광을 얻고자 하나님도 외면하고, 믿음도 제대로 갖지 못한 체 지금까지 살아왔다. 그러나 이제 나를 돌아보니 남은 것은 아무 것도 없고, 내 인생이 이렇게 끝나는가 생각하니 심히 후회스럽다. 너희들이 아버지를 보면서 성공했다고 생각하는 자체가 부끄러운 일이다. 내 자신이 불쌍해지는구나" 이런 고백을 하더라는 거예요. 나만을 위해 사는 것이 행복하고 좋을 것 같아도 남길 것이 없는 인생은 불행한 인생입니다. 내 가정에, 내 주변에, 주의 몸된 교회에 남길 것이 있는 복된 삶을 사시기를 축원합니다. 주님이 은혜 주실 때 은혜받고, 주님 주시는 능력 받아서 주님 기뻐하시는 복된 길로 행하므로 영육간에 풍성한 복을 누리시기를 축원합니다. 


  우리 인생 길에 어둠이 있습니까? 가정에 문제가 있습니까? 예수님 들어가시면 해결됩니다. 주님이 치료의 광선을 발하시면 그 앞에서 악한 영의 역사는 물러가고, 주의 영광 드러날 줄로 믿습니다. 주님이 치료의 광선을 발하시므로 외양간에서 나온 송아지가 기뻐 뜀과 같은 회복의 역사가 우리 가정에 나타나기를 축원합니다. 문제가 해결되는 축복이 임하시기를 축원합니다. 감히 사탄이 손 못 대는 가정되시기를 축원합니다. 하나님의 역사 앞에서는 무릎을 꿇어야 합니다. 버티면 버틸수록 손해예요. 결국은 이루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니까. 인생을 살아가는데 항상 평탄한 길만 갈 수는 없는 거예요. 때로는 가시밭길. 험한 산길도 걸어가야 되는 것입니다. 때로는 비바람이 불고 눈보라가 치는 때도 있는 거예요. 그런데 누구를 통하든지, 어떤 환경 가운데든지 "이것이 사탄의 역사다" 생각되면 흔들리지 않는 담대한 믿음으로 대적하고 이기시기를 바랍니다. 담대한 믿음으로, 흔들리지 않고 나아가면 결국은 승리합니다. 히브리서 13:5-6 "내가 과연 너희를 버리지 아니하고 과연 너희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그러므로 우리가 담대히 가로되 주는 나를 돕는 자시니 내가 무서워 아니하겠노라 사람이 내게 어찌하리요" 믿으시기를 축원합니다. 주님 함께 하시는 축복의 성도로 살아가시기를 축원합니다. 


  7절 상반에 보면 "그 안에 뿌리를 박으며 세움을 입어 교훈을 받은 대로 믿음에 굳게 서서" 왜 뿌리를 깊이 박으라고 했습니까? 깊이 뿌리를 내리지 않으면 흔들리기 쉽기 때문입니다. 악한 사람들이 그냥 버려두지 않기 때문이에요. 자꾸 넘보기 때문입니다. 세상이 우리를 유혹하고, 악한 영의 역사들이 우리를 흔들어 자꾸 주님의 은혜의 자리에서 멀어지게 하려고 하더라는 거예요. 그래서 뿌리를 깊이 내릴 뿐만 아니라 믿음에 굳게 서야 합니다. 그러면 흔들리지 않아요. 안 그러면 믿음 좋은 것 같은데 쉽게 돌아서고, 자꾸 달라지는 변덕스러운 사람 됩니다. 뿌리가 깊은 나무처럼 흔들리지 않고, 요란스럽지 않고, 변덕스럽지 않은 깊은 믿음의 사람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일심으로 행하여 형통한 삶 사시기를 축원합니다. 


  무디는 가난하여 초등학교 졸업도 못할 정도였는데, 어느 집회에 가서 큰 은혜를 받고, 열심히 기도 했더니 가슴이 뜨거워 지고 믿음에 불이 붙더라는 거예요. 밥을 지을 때 계속해서 끊기만 하면 죽이 되는 거예요. 밑은 타도 위는 죽이 되는 거예요. 한참 끊은 다음에는 뜸을 들여야 맛있는 밥이 되지요. 우리의 믿음 생활도 끓기만 해서는 안됩니다. 말씀의 깊이를 체험하고 깊은 은혜를 맛 보아야 합니다. 그래야 성숙해 져요. 그래야 쉽게 흔들리지 않는 든든한 믿음의 사람이 되는 거예요. 이번 주간은 특별히 우리가 힘을 모아 기도하는 주간입니다. 주님 주신 좋은 기회예요. 잘 준비하여 큰 은혜, 깊은 은혜받고 체험하는 복된 주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누가 뭐라고 할지라도 흔들리지 않는 든든한 믿음의 뿌리를 내리는 복된 기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새로운 세계를 보는 은혜가 임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오믈 말씀의 결론은 7절 하반에 "믿음에 굳게 서서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 은혜받았으니, 십자가의 은혜를 체험했으니 어려운 시대 가운데에도 감사하며 살라는 것입니다. 믿음의 결론은 생활 속에서의 감사예요. 믿음없는 사람도 잘 되는 일에는 얼마든지 감사할 수 있습니다. 질병이 치료되고, 사업이 잘되고, 얽힌 일들이 풀려지면 감사하기 쉬워요. 그러나 주님이 주신 모든 환경과 조건에 감사하는 삶은 믿음없이는 불가능합니다. 믿음의 눈으로 보고, 믿음으로 생각해 보면,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은혜가 크거니와 우리 교회에 베푸신 은혜는 말로 다 할 수가 없습니다. 지금까지도 은혜를 베푸셨거니와 앞날에 더 큰 은혜 주실 거예요. 문제는 우리의 생각입니다. 우리가 때때로 겪는 시련이나 환경 속에서 한탄하고, 낙심하는 삶이 아닌 언제 어디서나 믿음으로 감사 할 수 있다면, 그것이 가장 큰 축복인 줄로 믿습니다. 이런 축복의 자리로 나아가시기를 축원합니다. 똑같이 예수 믿어도 은혜받고, 참 기쁘고 즐겁게 행복하게, 신바람 나게 예수 믿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늘 불평하고 짜증내고 불행하게, 찌들려 예수 믿는 사람도 없지 않습니다. 어떻게 사는 것이 좋을는지는 두말할 필요가 없겠지요. 우리 모두가 성숙한 감사의 사람으로 살아가시기를 축원합니다. 길지 않은 인생 행복하게 즐겁게 살아가시기를 축원합니다. 


  독일에 흉년이 들어 많은 사람들이 굶주릴 때의 이야기입니다. 어떤 돈 많은 부자 노인 부부가 매일 빵을 만들어 와서 동네 아이들에게 나누어 주었다고 합니다. 아이들에게 하나씩만 집어가도록 하였더니 서로 크고 좋은 것을 집으려고 난리가 난 거예요. 그런데 그 중에 언제나 맨끝으로 하나 남은 가장 작고 못난 빵을 집어가는 키가 작은 여자아이가 있었답니다. 그런데 이 아이가 다른 아이들과 다른 점은 빵을 가져갈 때 서로 좋은 것 가져간다고 정신이 없었는데, 이 아이만은 항상 할아버지께 감사하다는 말을 잊지 않더라는 거예요. 이 날도 역시 작고 못생긴 빵이 그 아이의 몫이 되었는데, 그 작고 못난 빵 속에 "너 같이 감사하는 자를 위해 선물을 준비했단다" 메모지와 함께 금화 한닢을 넣어두었다고 합니다. 주님의 은혜에 감사하는 마음과 함께 입술로 고백하고 생활로 실천하며 살 수 있다고 하면 주님께서 더욱 기뻐하시고 더 큰 복을 주실 줄로 믿습니다. 어려운 시대일수록 신앙의 철학이 분명해야 합니다. 내 생각부터 바꾸고, 말부터 바꾸어야 모든 것이 바꾸어집니다. 저주가 축복으로 바꾸어지고, 불행이 행복으로 바꾸어지고, 슬픔이 기쁨으로 바꾸어지는 거예요. 생각을 안 바꾸면 아무리 교회에 오래 나와도 안 바꾸어져요. 인생이 열리지 않아요. 가정이 달라지지 않아요. 여러분의 생각이 믿음의 생각으로 바꾸어지기를 바랍니다. 말이 감사의 말로 바꾸어지기를 축원합니다. 하나님이 돌보시면, 그곳이 사막이든지, 바다 한 복판이든지 상관이 없어요. 불경기든지, 경제 불황이든지 염려할 것 없습니다. 환경 좋다고 성공하는 것 아니에요. 하나님이 돌보시는 한 우리의 미래는 안전합니다. 믿어지시면 아멘! "네가 하는 모든 일이 형통하리라" "어디로 가든지 형통할 것이다" 아멘! 우리 심령에 감사가 생활화되고, 이미 십자가의 은혜입은 우리, 꿈속에서라도 감사하시는 성도님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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