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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자비하신 하나님 / 신 4:26 ~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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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자비하신 하나님
본문 :  신명기  4 : 26 ~ 31



26내가 오늘날 천지를 불러 증거를 삼노니 너희가 요단을 건너가서 얻는 땅에서 속히 망할 것이라  너희가 거기서 너희 날이 길지 못하고 전멸될 것이니라 27여호와께서 너희를 열국 중에 흩으실 것이요 여호와께서 너희를 쫓아보내실 그 열국 중에 너희의 남은 수가 많지 못할 것이며 28너희는 거기서 사람의 손으로 만든 바 보지도 못하며 듣지도 못하며 먹지도 못 하며 냄새도 맡지 못하는 목석의 신들을 섬기리라 29그러나 네가 거기서 네 하나님 여호와를 구하게 되리니 만일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그를 구하면 만나리라 30이 모든 일이 네게 임하여 환난을 당하다가 끝날에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와서 그 말씀을 청종하리니 31네 하나님 여호와는 자비하신 하나님이심이라 그가 너를 버리지 아니하시며 너를 멸하지 아니하시며 네 열조에게 맹세하신 언약을 잊지 아니하시리라

이 세상에서, 현재의 자신의 삶에 대하여 만족해하며 사는 사람은 별로 많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현재보다 좀더 나은 환경에서 살고 싶어하는 바램이 있습니다. 좀더 넓고 쾌적한 집에서 살고 싶어하고, 좀더 좋은 자동차로 바꾸어 타고 싶어하며, 지금보다 더 나은 수입을 꿈꾸며 풍족하게 살기를 원합니다.
마찬가지로 출애굽하여 광야에서 생활하고 있던 이스라엘 백성들도 하루 속히 이 메마른 광야를 벗어나 하나님이 지시하시는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 살고 싶어하는 간절한 소망이 있었을 것입니다.
사실 이들이 40년이라는 오랜 세월동안 광야에서의 삶을 살고 있었으니 그 생활이 얼마나 고달프고 권태로웠겠습니까. 누구나 이런 척박한 환경에서 오랜 기간 동안 생활하라고 한다면 아마 원망불평하지 아니할 사람이 별로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들이 고대하던 가나안 땅에 들어간다고 해서 반드시 행복이 보장되리라는 생각 또한 잘못된 것입니다. 행복은 환경이 만들어주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어떤 환경에서 사느냐하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어떻게 사느냐하는 것입니다. 환경은 우리가 어떻게 사느냐 하는 것에 따라 달라집니다. 변화됩니다.
성경을 보면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아니하고 사신우상()을 섬기고 인간들이 악해지고 타락하고 방탕하면 그 땅이 저주를 받아 사막과 같이 황무지로 바뀌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신 28:23-24).
그러나 이와 반대로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하나님을 잘 섬기면 사막이 변하여 살기 좋은 에덴동산으로 바뀌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사 32:15, 겔 36:35).
그러므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루라도 속히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살기를 원했지만, 그것보다도 더 중요한 것은 가나안 땅에 들어가 어떻게 하나님을 잘 섬기며 사느냐 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모세의 고별설교 부분에 해당됩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영감을 받아 삼, 사백 년 후에 되어질 일을 이렇게 예언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 아들과 딸을 낳고 손자와 손녀를 낳고 오래오래 잘 살게 되면 부패하게 되고 사신우상을 섬기게 될 것이라고 말씀했습니다.
사람들이 아무리 잘 살게 되어도 겸손하고 하나님을 잘 섬기면 좋겠는데 도무지 그렇지를 못한 것이 문제입니다. 조금이라도 잘 살게 되면 교만해지기 시작하고 하나님을 멀리하게 되며, 그 결과 마음이 부패해지고 타락하게 되는 것입니다.

기독교가 전파된 후로 지금의 구라파는 모두 그리스도인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교인들의 교회출석률이 5%에 불과하다고 합니다.
미국도 청교도들이 세운 나라로 하나님을 잘 믿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교인들의 교회 출석률이 20%라고 합니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50%의 교인들만이 교회에 출석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나머지 50%의 교인들은 장사를 하고 있든지 들과 산으로 놀러갔든지 골프장에 갔든지 딴 짓을 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앞으로 주 5일 근무제가 전 직종으로 확대되면 금요일이나 토요일에 멀리 여행을 떠나는 사람들이 더 많아질 것입니다. 자연히 주일을 지키지 못하게 되고 신앙생활을 제대로 하지 않게 되며 하나님을 멀리하다가 죄를 짓고 결국에는 우상숭배를 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십계명 중의 제 1계명이 하나님 외에는 다른 신을 너희에게 두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 외에 다른 신은 우상입니다. 돌부처만이 우상이 아닙니다.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것이 모두 우상입니다.
디모데후서 3:1-5에서, 사도 바울은 말세를 사는 사람들에게 무엇이 우상인지에 대하여 말씀하고 있습니다. 『네가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리니 사람들은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긍하며 교만하며 훼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치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무정하며 원통함을 풀지 아니하며 참소하며 절제하지 못하며 사나우며 선한 것을 좋아 아니하며 배반하여 팔며 조급하며 자고하며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는 자니 이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고 했습니다.
이들은 하나님보다 자기자신을 더 사랑하므로 자신이 곧 우상입니다. 하나님보다 돈을 더 사랑하므로 돈이 우상입니다. 하나님보다 쾌락을 더 사랑하므로 쾌락이 우상입니다.

과연 오늘날 이 말씀대로 이루어지고 있지 않습니까? 주일성수를 제대로 하지 않는 사람들은 “바빠 죽겠는데 교회출석이 문제냐? 당장 돈이 필요한데 십일조가 문제냐?” 라고 자신을 합리화시킵니다. 이처럼 자기 자신 위주로 살다보니 말씀도 저버리고, 주일도 지키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가장 미워하는 죄는 우상숭배의 죄입니다. 신명기 13:9을 보면, 우상숭배를 권하거나 참여시키는 자는 긍휼히 여기지도 말고 불쌍히 여기지도 말며 용서하지도 말고 아예 죽이라고 명하셨습니다. 이는 누군가 우상숭배를 하기 시작하면 우상숭배를 시작한 그 사람만 망하는 것이 아니라 온 집안이 망하고 그 민족과 나라까지 망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 26절에서 모세는 『내가 오늘날 천지를 불러 증거를 삼노니 너희가 요단을 건너가서 얻는 땅에서 속히 망할 것이라 너희가 거기서 너희 날이 길지 못하고 전멸될 것이니라』고 예언하고 있습니다.
이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우상숭배하다가 결국 전멸당하게 된다는 참으로 무서운 말씀입니다.

여호수아 24:20에서도 『만일 너희가 여호와를 버리고 이방신들을 섬기면 너희에게 복을 내리신 후에라도 돌이켜 너희에게 화를 내리시고 너희를 멸하시리라』고 했습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 잘살다가도 하나님을 저버리고 이방신을 섬기며 우상숭배를 하기 시작하면 하나님이 내리시던 축복이 그치고 대신 화를 내리시고 이들을 멸하시겠다는 경고의 말씀입니다.

오늘날의 캄보디아는 가난한 나라에 속해 있습니다만, 한 때 태국 라오스 베트남 전역을 지배했고, 중국 황제가 면담을 요청했으나 돌려보낼 정도로 강대한 나라였습니다. 그러나 극한 우상숭배로 저들의 영광은 짧게 지나갔고, 그 자손들이 오늘날까지 저주 아래 놓여있습니다. 자원이 없는 것도 아니면서 온 국민들이 가난에 허덕이며 비참하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캄보디아 국민들은 불교를 숭상하며 특별히 뱀을 좋아하고 뱀을 극진히 섬깁니다. 그러다 보니 집에도 뱀의 그림이 많고, 장난감을 비롯하여 먹는 그릇에 조차도 뱀의 그림이 그려져있으며, 다리의 난간도 온통 뱀을 징그럽게 그려놓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 나라를 대표하는 비행기에 조차도 일곱 머리 달린 뱀이 그려져 있을 정도입니다.

그런데 캄보디아하면 세계적으로 유명한 건축물이 있습니다. 세계 7대 불가사의 중의 하나인 앙코르사원(Angkor War)입니다. 앙코르사원은 그 옛날 수리아 바르만 2세가 20만 명의 사람을 동원하여 20년에 걸쳐 건축했습니다. 그런데 밀림 한가운데서 발견된 이 사원이 어디에서 어떻게 그 많은 돌을 가져다가 지었는지 아직도 밝혀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더구나 사원에 쓰인 돌 하나 하나마다 우상들이 잘 조각되어져 있습니다.

이 사원뿐 아니라 1181년부터 1218년까지 통치했던 자야 바르만 7세는 얼굴사원을 건축했습니다. 그러나 백 년이 지난 후 그렇게 강성했던 이 나라도 소리 소문없이 저절로 없어졌습니다. 이는 외부의 침략에 의해 무너진 것이 아님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600년이 지난 후 프랑스의 고고학자에 의해 앙코르 사원이 밀림 속에서 발견되었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에게도 알려지지 않은 채 어떻게 이렇게 짧은 시간에 강성했던 한 나라가 비참하게 망해갔는지 고고학자들이 연구하다가 이 민족이 몽땅 문둥병으로 죽은 사실을 밝혀냈습니다.
그들이 돌에 새겨놓은 사람들의 얼굴 모습을 연구하다가 알아낸 것입니다. 점차 성한 얼굴에서 코가 떨어져나가고 귀가 떨어져나가고 점점 얼굴 형태가 일그러지는 모습의 조각에서, 이곳에 문둥병이 창궐했던 것을 알아낸 것입니다. 결국 우상을 섬기던 이 성을 하나님이 저주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우상숭배죄가 얼마나 무서운 죄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오늘날 북한은 김일성을 신격화했습니다. 김일성 동상 앞에서 절해야 하며, 그가 죽고 난 후에도 방부처리를 하여 궁에  모셔놓고 숭배하고 있습니다.

북한 주민만 절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북한을 방문하는 사람들에게조차도 절을 하도록 강요하고 있습니다. 만일 북한을 방문한 남쪽인사들이 그들이 시키는 대로 절을 했다면 심각하게 회개해야 할 것입니다.
우상숭배가 극에 달한 북한정권은 하나님의 방법으로 심판을 받고 망하게 될 것입니다. 이처럼 북한은 온 백성들을 김일성 앞에 절하게 만들고 신으로 만들어 우상화했기 때문에 그 땅이 저주를 받아 무슨 농사를 지어도 되는 일이 없습니다. 아무리 남한 연구소에서 그 토양에 알맞는 신품종을 개발하여 심어보아도 농사가 잘 되지를 않고 있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입니다. 우리의 과거와 현재는 물론 미래까지도 다 알고 계십니다. 우리 자신이 얼마나 부족하고 허물이 많고 연약한지 아시면서도 우리를 창세 전에 택하시고 하나님의 정하신 때에 불러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를 모르고 택하신 것이 아닙니다. 다 아시고 부르셨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은사와 부르심에는 후회하심이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롬 11:29).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잘 살게 되면 하나님을 멀리하게 되고 타락하게 되며 사신우상을 섬기다가 결국 망하게 될 것을 미리 아셨습니다. 더구나 전쟁에 죽지 않고 살아남은 사람들도 다른 나라에 포로가 되어 열국 중에 흩어지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본문 28절에서 『너희는 거기서 사람의 손으로 만든 바 보지도 못하며 듣지도 못하며 먹지도 못 하며 냄새도 맡지 못하는 목석의 신들을 섬기리라』고 했듯이, 그 나라에 포로로 잡혀가서 듣도 보도 못한 우상을 강제로, 그것도 지겹도록 섬기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심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은 사람은 이것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반드시 회개하고 돌아오게 만듭니다.

오늘 본문 29~30절을 보면 『그러나 네가 거기서 네 하나님 여호와를 구하게 되리니 만일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그를 구하면 만나리라 이 모든 일이 네게 임하여 환난을 당하다가 끝날에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와서 그 말씀을 청종하리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은 하나님의 백성의 특징입니다. 참으로 우리 인간들은 간사합니다. 편안하게 잘 살면 하나님을 멀리하다가 매를 맞고, 고통으로 죽을 지경이 되면 하나님 앞에 두손들고 돌아오는 것입니다. 마치 찬송가 330장의 가사처럼, 고통의 멍에를 벗으려고 예수님께로 나오는 것입니다.
집을 나간 탕자도 모든 것이 잘 되고 계속해서 잘 살았다면 결코 아버지께로 돌아오지 않았을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을 멀리하고 타락의 생활을 하는 사람에게 오는 환난과 고통은 하나님께 돌아오게 만드는 축복이 된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오늘 본문 31절을 보면 『네 하나님 여호와는 자비하신 하나님이심이라 그가 너를 버리지 아니하시며 너를 멸하지 아니하시며 네 열조에게 맹세하신 언약을 잊지 아니하시리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말씀일 뿐만 아니라 하나님이 택하신 백성들에게도 약속하신 말씀입니다.

불택자와 택자의 차이점는?

1. 택함 받은 사람도 타락할 수 있습니다.
2. 그러나 택자는 환난과 고통이 오면 반드시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옵니다.
3. 자비하신 하나님은 택자를 결코 버리지 아니하십니다. 

우리 하나님은 참으로 자비하신 하나님입니다. 예레미야애가 3:48-49을 보면 『처녀 내 백성의 파멸을 인하여 내 눈에 눈물이 시내처럼 흐르도다 내 눈의 흐르는 눈물이 그치지 아니하고 쉬지 아니함이여』라고 했습니다.

예레미야 선지자는 나라가 망한 후에 죽지 않고 살아남은 사람들이 고통을 당하는 것을 보고 눈물을 흘리며 슬퍼하고 울부짖었습니다. 그러나 낙심 중에도 소망을 가지게 된 것은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이 무궁하시므로 하나님의 백성이 결코 진멸되지 않는다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며, 하나님의 백성들을 불쌍히 여겨주시고 다시 회복시켜주실 것을 믿고 소망을 갖게 되었기 때문입니다(애 3:20-22).

예레미야애가 3:33을 보면 『주께서 인생으로 고생하며 근심하게 하심이 본심이 아니시로다』라고 했습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이 사랑하는 자들에게 여러 가지로 고생하게 하시는 것은 이들이 미워서가 아니라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택한 백성들을 구원하기 위해, 축복하기 위해 그리고 영생을 주시기 위해, 회개시키기 위해 주시는 징계라는 말씀입니다.
시편 103편을 보면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라 내 속에 있는 것들아 다 그 성호를 송축하라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며 그 모든 은택을 잊지 말지어다... 여호와는 자비로우시며 은혜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 하시며 인자하심이 풍부하시도다 항상 경책지 아니하시며 노를 영원히 품지 아니하시리로다 우리의 죄를 따라 처치하지 아니하시며 우리의 죄악을 따라 갚지 아니하셨으니 이는 하늘이 땅에서 높음같이 그를 경외하는 자에게 그 인자하심이 크심이로다... 아비가 자식을 불쌍히 여김같이 여호와께서 자기를 경외하는 자를 불쌍히 여기시나니 이는 저가 우리의 체질을 아시며 우리가 진토임을 기억하심이로다... 여호와의 인자하심은 자기를 경외하는 자에게 영원부터 영원까지 이르며』라고 시편기자는 하나님의 자비하심을 찬양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에베소서에서 성도들을 향하여, 너희의 허물과 죄로 죽었고, 이 세상 풍속을 좇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며 육체의 욕심을 따라 살아서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으나, 긍휼에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셔서 우리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살리시고 은혜로 구원을 얻게 하셨다고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선포하고 있습니다(엡 2:1-6).

자비하신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리시기 바랍니다. 자비는 하나님의 성품이요 성령의 열매입니다. 그러므로 긍휼에 풍성하신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은 저와 여러분은 하나님의 성품을 본받아 모든 사람들에게 긍휼을 베풀며 사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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