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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 / 빌 2: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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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 
본문 : 빌립보서 2:5~11 (이사야 50:4~9 참조) 

 
  이라크 전쟁과 괴질 확산에 대한 소식 때문에 나라 안팎이 온통 뒤숭숭합니다. 경제 사정도 그 어느 때보다 나쁘다고 하지 않습니까? 가진 것이 별로 없는 서민들로서는 하루하루 사는 것 자체가 매우 불안합니다. 그래도 겨울은 가고 봄이 왔습니다. 온 천지에 꽃이 만발하지 않았습니까? 탄천 뚝방 길에 활짝 핀 개나리꽃은 좀 과장하면 화사하다 못해서 어지러울 정도입니다. 그러나 그 화려함은 오래 가지 못합니다. 이미 꽃잎을 휘날리며 지고 있지 않습니까? 바람에 흩날리는 꽃잎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약간 슬프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래서 누군가 4월을 가리켜서 잔인한 달이라고 했는지 모르겠습니다. 흩날리는 꽃잎을 바라보면서 약간 엉뚱한 것을 생각해봤습니다. 만약 벚꽃 나무가 그 꽃을 피우는 것을 거부한다면 과연 어떻게 될까 하는 것을 생각해봤습니다. 더 이상 그 자리에 있을 수 없을 것이 분명합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으심을 받은 참으로 귀한 존재라고 성경은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괜히 인간을 만물의 영장이라고 부르는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인간은 죄를 범하고 타락한 다음 그 본래의 모습을 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추악한 모습으로 살게 되었습니다. 어쩌다가 이렇게 되었습니까? 여러 가지 핑계를 댈 수 있겠지만 진짜 이유는 단 한 가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보다 더 큰 문제는 불순종한 그 죄의 심각성을 제대로 깨닫지 못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그런 점에 있어서 예나 지금이나 별로 다를 바가 없는 것 같습니다.

  선지자 이사야가 활동하던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도 자신들이 저지른 잘못을 전혀 깨닫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때문에 저들은 자신들이 겪고 있는 고난을 매우 억울하게 생각했습니다. 불평과 원망을 그치지 않았습니다. 마치 오늘 우리의 모습을 보는 것 같지 않습니까? 그러나 오늘 선지자는 불평과 원망을 일삼고 있는 저들과는 극히 대조적인 한 인물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온갖 수난과 고통을 다 당하면서도 하나님의 뜻에 온전히 순종한 종을 우리에게 소개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 종이 누구입니까? 온 인류의 죄를 대신 짊어지시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아닙니까?

  바울 사도는 오늘 봉독한 빌립보서의 말씀을 통해서 빌립보 교회 교인들에게 간곡히 당부하고 있습니다. 그가 무엇을 당부하고 있습니까?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을 품을 것을 당부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가 왜 그런 당부를 했습니까?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겠지만 가장 급하고 중요한 문제는 저들이 하나가 되지 못하고 계속해서 싸움만 하고 있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교회가 도대체 무엇입니까?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리고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그 몸의 지체들이라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지체들이 머리이신 그리스도를 영화롭게 해야 합니까 아니면 욕되게 해야 합니까? 오직 그리스도의 영광만을 위해 살고 또 죽어야 마땅하지 않습니까? 그러기 위해서 진정 겸손으로 하나가 될 것을 권면하고 있는 바울 사도는 그 겸손의 본보기로 바로 그 그리스도 예수를 제시합니다. 여기서 그가 본보기로 그리스도 예수를 제시한 궁극적인 목적은 겸손 그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모든 그리스도인들로 하여금 삶의 현장에서 그리스도 예수의 겸손에 동참함으로써 참 영광을 얻게 하려는 데 있습니다.

  그렇다면 빌립보 교회 교인들뿐 아니라 오늘 우리도 본받아야 할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은 과연 어떤 것입니까? 첫째, 우리가 본받아야 할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은 자기를 비우는 마음입니다. 그는 본래 하나님의 본체십니다. 여기서 본체라는 말은 변할 수 없는 본질적인 형체를 의미합니다. 그리스도 예수가 본래 하나님의 본체시라는 것은 그가 바로 하나님이시라는 뜻입니다. 즉 성육신하시기 전의 그는 그 위엄과 영광이 성부 하나님과 동일하신 분이십니다. 그런데 그가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하시지 않고 자기를 비우셨습니다. 자기를 비우시되 놀랍게도 종의 형체를 가지셨습니다. 자기를 비우셨다는 것은 그가 자신의 모든 것, 영광까지도 온전히 포기하셨다는 뜻입니다. 자기를 온전히 비우는 마음이 바로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입니다.

  그러나 요즘 사람들은 자기를 비우는 것을 싫어합니다. 오히려 자기 안에 많은 것을 채우고 싶어합니다. 채우고 또 채워도 채워지지 않는 아니 결코 채워질 수 없는 타락한 본성을 채우려고 사람들은 그 속에 온갖 세상의 더러운 것들로 가득 채웁니다. 그것이 얼마나 부끄러운 일인 줄 모른 채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을 채우려고 얼마나 애를 쓰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더욱 안타까운 것은 소위 하나님의 백성들이라는 사람들도 이런 추한 경쟁에 행여나 뒤질세라 앞다투어 뛰어들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우리가 본받아야 할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은 자기를 비우는 마음이라는 사실입니다.

  다음으로 우리가 본받아야 할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은 자기를 낮추는 마음입니다. 그는 낮아지시되 더 이상 낮아질 수 없는 자리까지 낮아지셨습니다. 영이신 하나님께서 육신을 가지셨습니다. 사실 그리스도 예수의 성육신 사건은 그 당시 유대인들이나 헬라인들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사건이었습니다. 헬라 사람들은 육신의 세계는 추하고 더러운 것인 반면 정신의 세계는 귀하고 아름다운 것이라는 이원론적 사고에 젖어 있었습니다. 때문에 그들에게 있어서 거룩하신 하나님, 영이신 하나님께서 육신을 가지셨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사건이었습니다. 이와 같은 헬라 철학의 영향 때문에 초대 교회 안에 많은 이단들이 등장하게 되었습니다. 그 대표적인 것이 바로 영지주의입니다.

  하여간 그리스도 예수가 하늘의 영광을 버리시고 이 낮은 땅에 오신 사건 자체가 모든 사람들에게 있어서 매우 충격적인 사건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분명히 자기를 낮추시되 한 인간이 되셨습니다. 더 이상 낮아질 수 없을 정도로 낮아지셨다는 말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본받아야 할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입니다. 그러나 요즘 사람들은 어떻게 해서라도 높아지려고 할 뿐 낮아지려고 하지 않습니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높은 자리에 올라가려고 합니다. 필요하면 남을 짓밟고서라도... 그리고 더욱 안타까운 것은 주님의 몸된 교회 안에서도 낮아지려고 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맡기신 직분을 마치 무슨 계급처럼 생각합니다. 때문에 집사 때에는 겸손하게 봉사를 잘 하다가 장로가 되고 권사가 되면 아주 교만하게 행동합니다.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에 역행하는 마음입니다. 우리가 본받아야 할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은 자기를 낮추는 마음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끝으로 우리가 본받아야 할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은 죽기까지 복종하는 마음입니다. 그리스도 예수는 자기를 낮추시되 죽기까지 복종하셨습니다.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하나님 아버지께 복종하신 그의 삶은 자기 비하와 순종의 극치를 보여 주는 것입니다. 진실로 그의 십자가 죽음은 자기 비하와 순종의 극치입니다. 그의 죽음은 사람들에게는 비참하고 초라한 죽음이었으며 하나님께는 저주스럽기 짝이 없는 죽음이었습니다. 왜냐하면 그 당시 로마 당국은 도망치다 붙잡힌 노예들이나 반역자들과 같은 정치범들만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기 때문입니다. 그만큼 가혹한 형벌이 십자가 처형이었다는 말입니다. 또한 유대인들의 율법에 의하면 나무에 달려 죽는 것은 그 어떤 죽음보다 수치스럽고 저주스러운 죽음이었습니다. 때문에 바울 사도의 말처럼 십자가는 유대인들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었으며 또한 이방인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 예수는 바로 그 십자가의 죽음을 마다하지 않으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습니다. 죽기까지 복종하는 마음, 즉 다시 말해서 자기 십자가를 달게 지는 마음이 바로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입니다.

  그러나 요즘 사람들은 자기가 죽는 것도 별로 달갑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자기는 살고 다른 모든 사람들은 죽어도 좋다고 생각하며 그렇게 행동합니다. 자기가 많이 갖기 위해서 다른 사람들의 것을 마구 빼앗습니다. 심지어 자기가 살기 위해서 다른 사람들을 함부로 죽이기까지 합니다. 물론 간혹 다른 사람들을 살리기 위해서 자기 목숨을 기꺼이 버리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경우는 극히 예외적인 경우이고 대부분의 경우 다른 사람의 어려움 따위는 아랑곳하지도 않습니다. 자기와 자기 식구들만 잘 먹고 잘 살면 그만이지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되든지 상관조차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한 번 가만히 생각해 봅시다. 인간은 서로 관계를 맺고 더불어 사는 존재라고 했습니다. 모두가 죽고 난 다음 나 혼자서 어떻게 하겠다는 것입니까?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죽기까지 복종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과연 어떤 마음을 가지고 살아야 하겠습니까? 그 대답은 아주 분명해졌습니다!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을 품고 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자기를 비우는 마음입니다! 자기를 낮추는 마음입니다! 죽기까지 복종하는 마음입니다! 이런 마음이 있는 곳에 생명이 다시 싹틀 것입니다! 이런 마음이 있는 곳에 살림의 역사가 다시 시작될 것입니다! 이제 모두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을 품고 자기를 비웁시다! 자기를 낮춥시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죽기까지 복종합시다! 그럼으로 말미암아 미움이 있는 곳에 사랑을, 상처가 있는 곳에 용서를, 의심이 있는 곳에 믿음을, 절망이 있는 곳에 희망을, 어둠이 있는 곳에 광명을, 슬픔이 있는 곳에 기쁨을 주는 평화의 사도들이 다 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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