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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불시험을 두려워 말라 / 벧전 4:1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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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김상복목사
본문말씀 : 벧전 4:12-19
제목 : 불시험을 두려워 말라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를 시험하려고 오는 불 시험을 이상한 일 당하는 것같이 이상히 여기지 말고 오직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예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이는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너희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 함이라. 너희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욕을 받으면 복있는 자로다 영광의 영 곧 하나님의 영이 너희 위에 계심이라 너희 중에 누구든지 살인이나 도적질이나 악행이나 남의 일을 간섭하는 자로 고난을 받지 말려니와 만일 그리스도인으로 고난을 받은즉 부끄러워 말고 도리어 그 이름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 . .

  하나님께 용서를 구하고 싶은 심정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위해 아름다운 세계를 창조하시고 좋은 것으로 가득 채워 주셨지만 인간은 타락과 욕심으로 서로 싸우고 질투하고 해를 끼치고 죽이며 아픔과 상처를 주며 살고 있습니다. 이라크 전쟁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불안해합니다. 이 작은 지구에서 왜 저렇게 싸워야 하는 건지 . . . 남북한을 합쳐도 별로 크지도 않은 나라가 50년이 지나도록 아직도 왜 서로 위협해야 되는 건지 . . . 하나님께서 좋은 기업과 직장을 주셨는데, 작은 회사들도 아니고 대기업들이 왜 부정을 저질러서 나라의 경제를 어지럽혀야 되는지 . . . 신용카드라는 좋은 제도를 주셨는데 절제 없이 마구 사용해서 나라의 경제를 흔들어 놓고 서로 불안하게 하는 우리 백성들 . . . 좋은 가족을 주셨는데 왜 우리는 서로 상처와 고통을 일으키면서 사는지 . . . 귀한 신체를 주셨는데 왜 제대로 관리하지 않아서 고통을 자초하는지 . . . 하나님께 용서를 구하고 싶습니다.

  인생은 참 어렵습니다. 힘든 일들이 많아요. 야고보는 고난의 종류가 여러 가지라고 했습니다. 솔로몬은 날 때가 있으면 죽을 때가 있고 웃을 때가 있으면 울 때가 있다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대인관계의 불화, 이해집단간의 갈등으로 고생을 많이 합니다. 국가간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심한 스트레스로 몸과 정신이 망가지고 가정이 파괴됩니다. 하나님이 주신 에덴동산을 망쳐놓고 고생을 합니다. 본문에 보니 “너희 중에 누구든지 살인이나 도적질이나 악행이나 남의 일을 간섭하는 자로 고난을 받지 말라”(15절) 하였습니다. 마음속의 미움은 때로 살인의 고난을 일으킵니다. 도둑질을 하되 남의 물건 뿐 아니라 남의 시간, 남의 명예까지 빼앗음으로 서로 고통을 주고받습니다. 온갖 유혹과, 질병과, 노쇠현상과, 죽음 때문에, 사업의 실패와, 미래에 대한 염려 때문에 우리는 많은 시련을 당합니다.

  그러나 성경에 따르면 인생의 시련은 누구나 당하는 것입니다. 나만 특별히 당하거나 특별히 빠지는 것이 아닙니다. 언제인지는 모르나 반드시 누구나 시련과 고통을 겪습니다. 바울 사도는 “사람이 감당할 시험 밖에는 너희에게 당한 것이 없다”(고전10:13)고 하였습니다. 영어로는 “common to man”, 즉 시련은 모든 사람이 당한다는 것입니다. 남들이 다 체험하는 것들을 내가 체험하는 것입니다. 시련을 당하지 않은 사람은 없고, 앞으로 시련을 당하지 않을 사람도 없습니다. 바울 사도는 “피조물이 다 이제까지 함께 탄식하며 함께 고통한다”(롬8:22)고 하였습니다. 우주만물 전부가--그 안에 짐승도 있고 사람도 있고 자연의 세계도 있는데-- 죄로 인해 파괴되어 고난을 당한다는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 때부터 오늘 이 시간까지 이 땅에 태어나서 살아본 사람들은 예외 없이 탄식을 했다는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또 그것을 “우리가 안다”고 하였습니다. 심지어 처음 익은 열매, 즉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한 우리들까지도 속으로 탄식하며 양자될 것, 곧 우리 몸의 구속을 기다린다고 하였습니다. 불교에서도 존재 자체가 ‘苦’라고 하였어요. 참 현실을 정확하게 보았어요.

  이에 대해 베드로 사도는 “너희를 시험하려고 오는 불 시험을 이상한 일 당하는 것같이 이상히 여기지 말라”(12절)고 하였습니다. 여러분, 신앙적 훈련과 성경적 사고방식이 없으면 사는 것이 좀 더 힘듭니다. 성경은 분명합니다. 고난과 시련은 모든 피조물이 함께 당하는 것이므로 이상하게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이상하게 생각하면 충격과 불안과 공포가 일어나고, 스트레스를 받아서 정신과 육체와 삶이 파괴됩니다. 아침에 동쪽에서 해가 뜨고, 저녁에 서쪽으로 해가 지고, 밤이 되면 어두워지고, 봄이 되면 꽃이 피고, 여름이 되면 덥고, 가을이 되면 단풍이 들고, 겨울이 되면 찬바람이 몰아치는 것처럼 인생의 고난은 당연한 일입니다. 그러므로 놀라지 말고 이상하게 생각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것을 이상한 일 생긴 것처럼 생각하여 놀라면 그 사람이 이상한 것입니다. 우리가 인생의 시련과 고난과 도전들을 겪어보았기 때문에 잘 압니다. 모든 만물이 시련을 공유하고 있으니 시련이 오더라도 마음을 편안하게 가지세요. 다 같은 배를 탄 사람들입니다.

  하나님도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니라”(사41:10) 하셨습니다. 세상이 제멋대로 가는 것 같아도 하늘의 하나님이 통치하고 계십니다. 그분이 나의 하나님이니까 놀라거나 두려워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육체적인 어려움이든지, 대인관계의 어려움이든지, 경제적인 어려움이든지, 영적 싸움에서 실패한 어려움이든지, 어떤 종류의 어려움이든지 놀라거나 두려워하지 말고 살라는 것입니다. 심적으로 요동하면 더 힘들어진다는 것입니다. 어떤 때는 생각 때문에 고생을 더 합니다. 여러분! 오늘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시련을 당할 때 이상한 일 당한 것처럼 생각하지 않고 그저 누구나 다 거쳐 가는 인생의 여정으로 받아들이고 편안한 마음으로 인생을 살아가십시오.

  성경 속의 인물들도 모두 고난을 당했습니다. 히브리서 11장에 나오는 믿음의 사람들을 보십시오. 거기 기록된 수 십 명이 모두 고난을 당했습니다. 어떤 사람은 죽고 나서도 그 시체가 두 동강이 났습니다. 얼마나 인간이 악한지 죽은 사람인데 그냥 두면 어때요? 그러나 그들은 더 좋은 세계와 더 좋은 삶이--하나님의 나라가--자기를 기다리고 있음을 믿고 다 견뎌냈습니다. 믿음의 사람들은 똑같이 어려움을 당하면서도 마음에 평화가 있었습니다.

  예수님도 그랬습니다. 가난하여 입은 옷 한 벌밖에 없었습니다.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거처가 있으되 오직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마8:20)고 하셨습니다. 여러분, 가난하십니까? 예수님을 바라보고 위로를 받으십시오. 최소한 여러분에게는 옷이 두 벌이라도 있잖아요? 구두도 서너 켤레 되지요? 예수님은 옷 한 벌 있었던 것 마저 마지막에 로마 군인들에게 빼앗겼어요. 그 뿐 아니라 예수님은 사람들의 배척과 멸시를 받으셨습니다. 창조주 하나님의 아들이 피조물에 의해 침뱉음을 당하기까지 했습니다. 저 같으면 못 참았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배반한 자기 제자에 의해 은전 30에 팔렸습니다. 그리고 십자가에서 육신의 고통은 모두 체험하셨습니다. 로마 군인들이 십자가 사형수에게 주는 마취제인 담즙을 주었지만 예수님은 마시지 않았습니다. 왜? 심적, 육체적, 영적인 고통을 다 경험하고자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여러분의 아픔과 슬픔과 고통을 다 아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고통과 싸우지 않고 오는 대로 수용하셨습니다. 이상한 일 당하는 것처럼 생각하시지 않았으므로 마음에 늘 안정이 있었습니다.

  감사하게도 하나님은 “사람이 감당할 시험 밖에는 너희에게 당한 것이 없다”(고전10:13)고 하셨습니다. 물론 우리는 능력차가 있습니다. 어떤 사람을 10 정도만 감당할 수 있지만, 어떤 사람은 20, 30 40, 100까지 감당합니다. 각자가 다 다릅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정하시는 것입니다. 그 능력 이상의 시련은 하나님이 허락하시지 않는다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감당할 수 있다는 겁니다. 시련을 당할 때 도저히 견디지 못하고 낙심하여 자살하는 사람이 있어요. 그 현실을 감당할 수 없어서가 아니라 감당할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최근에도 어느 초등학교 교장 선생님이 너무 고통스러운 나머지 자살을 하셨지요. 견딜 수 없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인 여러분은 어떤 종류의 시련도 감당할 수 있다고 믿으십시오. 감당할 수 없는 것은 하나님이 허락하지 않으십니다. 감당할 수 없다고 생각하면 마음고생이 더 큽니다. 대부분의 일들은 우리의 생각에 달렸습니다. 제대로 생각하면 제대로 되고, 잘못 생각하면 고통을 당합니다. 감당하지 못하겠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못하고, 할 수 있다는 사람은 합니다. 생각을 조심해야 합니다. 어떤 인생의 도전이 있든지,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빌4:13) 외치십시오. 말씀으로 늘 자신을 굳건히 하시기 바랍니다. 마음이 약해지면 안 됩니다. 물론 저는 저 피아노를 혼자서 못 듭니다. 그러면 어떻게 합니까? 더 쉽습니다. 내가 감당할 것이 아니기 때문이지요. “하나님, 저 피아노는 제가 못 듭니다. 제겐 한계가 있는데 그런 일을 어떻게 감당합니까?” 하면 됩니다. 여러분 자신이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을 구별하는 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할 수 없는 것을 하려고 죽도록 고생하지 마십시오. 그저 하나님께 맡기십시오. 할 수 있는 것들은 하나님께 감사하면서 찬송하면서 하십시오.

  하나님은 “시험당할 즈음에 피할 길을 주사 너희로 감당케 하신다”(고전10:13) 약속하셨습니다. 저 피아노를 드는 방법은 앞에 있는 남자 10명만 나와 달라고 요청하면 되는 겁니다. 제가 “하나, 둘, 셋!”하면 제 손가락 하나 깜짝 안 하고 듭니다. 요즘 여러분의 삶 속에서 너무 힘든 것이 있습니까? 그것 때문에 잠이 안 오고 혈압이 올라가고 소화가 안 되고 스트레스가 심해서 몸이 점점 굳어집니까? 그것은 여러분이 감당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제가 이 피아노를 들기 위해서 40일 금식기도하면 들 수 있을까요? 어리석은 짓이지요. 사실 감당할 수 없는 것일수록 더 쉽습니다. 하나님께 맡겨 버리면 되니까요. 그분께 해결해달라고 하세요. 왜 내가 할 수 없는 것을 끌어안고 고민하여 나를 해칩니까? 감당할 수 있는 것은 내가 하고, 감당할 수 없는 것은 하나님께 맡기면 되는 것입니다.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겨 버리라. 이는 저가 너희를 권고하심이니라”(벧전5:7). “너희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 저를 의지하면 저가 이루시고 네 의를 빛같이 나타내시며 네 공의를 정오의 빛같이 하시리로다”(시37:5-6). 우리가 감당할 수 없는 일이 닥칠 때마다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체험할 기회입니다. 하나님께 맡기고 하나님을 신뢰하면 하나님께서 나타내실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마음에 평화를 갖고 사는 것입니다.

  그런데 왜 우리에게 시련이 올까요? 우리를 유익하게 하려고 오는 것입니다. “너희를 시험하려고 오는 불시험”(12절)에서 시험이란 훈련을 뜻합니다. 우리는 어려움을 당할 때마다 시험을 보며 훈련을 받습니다. 시험을 한 번, 두 번, 세 번을 보면 시험 보는 능력이 점점 더 생깁니다. 야고보 사도는 “우리를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1:4)고 하였습니다. 온전하게 한다는 것은 성숙하게 한다는 뜻입니다. 우리는 시험을 통해 성숙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어려서 고난을 당한 분들도 있지요? 물론 그 때 참 힘들었어요. 그런데 지나고 보니까 그것이 축복이었지요. 그것 때문에 우리의 인격이 강해졌고, 인생의 지혜를 배웠고, 하나님을 의지하는 법을 배웠고,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많이 알게 되었으므로 이제 웬만한 것들은 능히 견디게 되었습니다.

  우리 한국인이 이렇게 잘 된 이유는 시련을 많이 당했기 때문입니다. 일제의 시련, 6.25의 시련, 가난의 시련 . . . 고 함석헌 선생은 우리 민족을 ‘시련의 여왕’이라고 하였습니다. 우리 민족은 고난을 많이 받았기 때문에 질깁니다. 앞으로의 많은 어려움도 우리는 반드시 이겨낼 것입니다. 4,500년을 이겼는데 4,600년을 못 이기겠어요? 더욱이 옛날에는 하나님 없이 고생을 했지만 이제는 위대하신 하나님을 아는 사람들이 1,200만이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나라는 어떤 어려움이나 시련도 반드시 이겨 낼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고, 이제 우리도 영적인 세계와 진리를 알기 때문에 과거 언제 보다도 더 힘 있게 사는 민족이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고난을 받는 자들은 또한 선을 행하는 가운데 그 영혼을 미쁘신 조물주께 부탁할지어다”(19절). 졸지도, 주무시지도 않고 우리를 돌보시며 우리의 결과를 아름답게 하시는 신실한 하나님께 맡기라는 것입니다. 우주의 창조주, 전능하신 하나님이 여러분과 저의 하나님입니다. “내게 능력 주시는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빌3:14). 내게 주신 능력이 있기 때문에 감당할 수 있고, 내 능력 이상의 것은 하나님께서 처리하시니까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생각을 하나님의 말씀대로 잘 하는 것이 대단히 중요합니다. 성경의 가르침을 제대로 알고 살면 우리에게 엄청난 힘이 됩니다.

  불같은 시련을 당하면 어떻게 하라고 했습니까? “오직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예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이는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너희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 함이라”(13절). 풍랑이 일면 바람을 이용해 배가 더 나아갈 수 있습니다. 독수리는 맞바람을 이용해 하늘로 솟아오릅니다. 시련과 고통은 하나님의 백성에게는 더 높이, 더 멀리 날아가게 하는 수단이 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버리지 아니하시므로 위기는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할 절호의 기회입니다. 감당할 수 없을 때마다 성령님의 도움을 구해야 됩니다. 보혜사 성령님은 우리를 도와주시려고 우리 속에 대기하고 계십니다. ‘보혜사’란 ‘돕는 분’이라는 뜻입니다. 지혜를 구하면 지혜를, 용기를 구하면 용기를, 판단력을 구하면 판단력을, 힘을 구하면 힘을, 건강을 구하면 건강을 주시는 성령님께 도움을 구하십시오.

  하나님이 말씀하십니다.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니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 손으로 너를 붙들리라”(사41:10). 예수님이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믿음과 이해력을 주셔서 어떤 고난 속에서도 하나님의 평화가 여러분의 마음과 생각을 지켜주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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