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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놋뱀을 쳐다 본즉 살더라 / 민 2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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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강문호 목사 
놋뱀을 쳐다 본즉 살더라( 민 21;4-9)


고난 주일입니다.
예수님의 고난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살펴 보려고 합니다.
먼저 이런 이야기 하나 드림으로 오늘 이야기를 열겠습니다. 이조 태종 때였습니다. 일본에서 코끼리 한 마리를 선물로 보내왔습니다. 사복사라는 절에서 기르다가 어느 날 수많은 구경꾼들에게 코끼리를 보여 주었습니다. 그 때 구경꾼 한 명이 코끼리가 추하다고 침을 뱉었습니다. 그 때 코끼리는 화가 나서 그 사람을 짓밟아 죽였습니다. 이런 모습을 보고 병조 판서 유 정현은 동물 재판을 열었습니다.

<사람을 죽인 동물은 사형이다>

이렇게 판결하였습니다.
이런 이야기를 듣고 태종은 사면권을 사용하였습니다. 그래서 그 코끼리를 죽이지는 말고 전라도 노루 마을에 유배시키라고 명령하였습니다. 그래서 그 코끼리를 유배시킨 적이 있습니다.

오늘의 본문이 그런 이야기입니다. 살펴 보려고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40년을 지내며 가나안으로 향하고 있었습니다. 이제 조금만 더 가면 가나안 땅입니다. 에돔 족속이 가나안 근처에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에돔은 에서의 후손입니다(창36;9-10)
이 세상은 심고 거두는 법칙이 지배하고 있습니다. 에서와 야곱은 쌍둥이였습니다. 어머니 리브가 태속에 두 쌍둥이가 잉태되어 있을 때부터 야곱은 에서에게 싸움을 걸었습니다. 그 후 에서의 후손은 야곱의 후손을 괴롭혔습니다. 심고 거두는 법칙이었습니다.
모세는 에돔 왕에게 사람을 보내서 길을 내달라고 요청하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당신의 형제 이스라엘의 말에 우리의 당한 모든 고난을 당신도 아시거니와 우리 열조가 애굽으로 내려갔으므로 우리가 애굽에 오래 거하였더니 애굽인이 우리 열조와 우리를 학대하였으므로 우리가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니 우리 소리를 들으시고 천사를 보내사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셨나이다. 이제 우리가 당신의 변방 모퉁이 한 성읍 가데스에 있사오니  청컨대 우리로 당신의 땅을 통과하게 하소서. 우리가 밭으로나 포도원으로나 통과하지 아니하고 우물물도 공히 마시지 아니하고 우리가 왕의 대로로만 통과하고 당신의 지경에서 나가기까지 좌편으로나 우편으로나 치우치지 아니하리이다>(민20;14-17)

그 때 에돔 왕이 이렇게 대답하였습니다.

<너는 우리 가운데로 통과하지 못하리라. 내가 나가서 칼로 너를 맞을까 염려하라>

그러나 모세는 한 술 더 떠서 만일 이스라엘 백성들이 지나가다가 물을 마시면 물값도 주겠다고 하였습니다. 길 외에 다른 곳은 밟지 않겠다고 하였습니다. 오직 길만 빌려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에돔 왕은 거절하였습니다. 한이라는 것이 이렇게 무서운 것입니다. 에돔 왕은 군대를 동원하였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는 길을 막아 버렸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멀고 험한 길로 돌아 가야 했습니다. 날은 덥고 먹을 것을 시원치 않았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짜증이 났습니다.
길로 인하여 마음이 상하였다고 민21장 4절은 말해 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과 모세를 원망하였습니다. 광야에서 너무나 고생을 시킨다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원망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불뱀을 보내셨습니다. 불뱀이라는 이름이 붙은 이유가 있습니다.
1. 불과 같은 맹렬한 독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2. 이 뱀에 물리면 불과 같이 펄펄 끓는 열이 나기 때문입니다.
3. 뱀이 불길같은 색깔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나는 브라질 쌍파울에서 불뱀을 직접 본 적이 있습니다. 모래 색깔입니다. 모래위에서 기어 다니면 도저히 구별할 수가 없습니다. 사막에서 이슬만 적고 자랐기에 맹독이 있어서 한번 물리면 그대로 즉사하는 무서운 뱀입니다.
수많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 불뱀에 물려 죽었습니다.
이런 모습을 보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우연이 아니라고 믿었습니다. 틀림없이 하나님이 벌을 준 것이라고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모세에게 말했습니다.

<우리가 여호와와 당신을 향하여 원망하므로 범죄하였사오니 여호와께 기도하여 이 뱀들을 우리에게서 떠나게 하소서>(민21;7)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하여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였습니다. 그 때 하나님께서 해결책을 알려 주셨습니다. 불뱀을 놋으로 만들어 장대 위에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놋뱀을 들고 다니면서 불뱀에 물려 죽어가는 사람들에게 보게 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면 살 것이라고 생명의 길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모세는 그렇게 하였습니다. 놋뱀을 만들어 장대에 달았습니다. 그리고 불뱀에 물려 고통을 받고 있는 이들에게 찾아 갔습니다. 그리고 장대를 들고 이 불뱀을 보는 이들은 다 살 것이라고 외쳤습니다.
믿음으로 그 놋뱀을 보는 이들은 다 생명을 받았습니다. 오늘 본문 이야기입니다.


놋뱀에 대한 예수님의 해석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요3;14)
놋뱀 해석에서 성경에서 가장 귀중한 진리 요한복음 3장 16절이 나왔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요3;16)
장대에 달린 놋뱀은 바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였습니다. 이 해석을 바울은 더 피부에 와 닿게 말해주고 있습니다.


놋뱀에 대한 바울의 해석

바울은 이렇게 말해 주고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갈3;13)
불뱀이 저주받은 것은 예수님이 우리 대신 십자가에서 저주받으신 것으로 바울은 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불뱀을 보는 사람마다 고침받은 것은 예수 십자가를 보는 이마다 생명을 얻은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모세가 만든 놋뱀은 정확하게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어떤 의미에서 그런 것일까요?


1. 비천하여 지신 예수님

하나님은 모세에게 금으로 뱀을 만들라고 하시지 않았습니다. 은으로 만들거나 다이아몬드로 만들라고 하시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불뱀을 만들어 장대에 달라고 하실 때에 하필이면 놋으로 만들라고 하셨습니다. 놋은 당시 가장 흔한 금속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하필이면 놋으로 뱀을 만들라고 하신 데에는 여러 가지 해석이 있습니다.

첫째 해석은 색깔해석입니다.
놋으로 뱀을 만들어 장대에 달면 햇빛에 비취면서 놋이 꼭 불뱀 색깔을 내기 때문에 놋으로 불뱀을 만들라고 하셨다는 이론입니다.

두 번째 해석은 놋은 열에 가장 잘 견디는 금속이기 때문입니다.
영국 소방수들이 불에 금속들을 넣어서 몇 도에 녹는다를 실험하여 보았습니다. 금은 1069도로 아주 높은 온도에서 녹았습니다. 그런데 놋은 금보다 더 강한 불인 1085도에서 녹았습니다. 불에 잘 견디는 금속이 놋이기 때문에 놋으로 뱀을 만들었다는 설입니다.

세 번째 이론은 가장 흔한 금속이 광야에서 놋이기 때문에 놋으로 불뱀을 만들었다는 이론입니다.
광야에서 가장 천한 금속입니다. 놋뱀은 바로 우리 주 예수님의 상징입니다. 우리 주님은 이 땅에 가장 비천한 몸으로 오셨습니다. 마굿간에 오셨습니다. 목수의 아들로 이 땅에 오셨습니다. 버림받으신 비천하신 예수님의 모습을 나타내기 위하여 놋으로 불뱀을 만들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의도였을 것입니다. 성막은 뜰, 성소 그리고 지성소 세 부분으로 되어 있습니다. 뜰에 있는 성물 번제단과 물두멍은 놋으로 만들었습니다. 성소안에 있는 세 성물, 분향단과 떡상은 겉에만 금을 입혔습니다. 지성소안에 있는 법궤는 겉에서 속에도 금으로 만들었습니다. 갈수록 귀한 성물입니다. 놋은 당시 제일 흔하고 천한 금속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천한 분이 아니라 천하게 되신 분이십니다. 바울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자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을 인하여 너희로 부요케 하려 하심이니라>(고후8;9)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빌2;5-11)

이 말씀에서 예수님은 세 번 변신을 하셨습니다.
제1단계 하나님이 사람으로.
제2단계 사람이 종으로.
제3단계 종이 사형수로 변신하셨습니다. 그 이유는 꼭 하나 죄인된 우리를 구원하시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금뱀이 아니라 놋뱀입니다. 비천하여지신 분이십니다.


2. 저주받으신 예수님

놋뱀은 저주받은 뱀입니다. 장대에 달린 뱀입니다. 살아 있는 뱀이 아닙니다. 죽어서 장대에 걸려 있는 저주받은 뱀입니다. 이는 저주받으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합니다.
불뱀이 저주받은 것을 본 이들은 살았습니다. 예수님께서 내 저주를 담당하셨음을 믿기만 하면 내 저주가 살아지게 됩니다. 예수님은 우리은 우리 저주를 담당하신 분이십니다. 살아 있는 뱀이 아니라 저주 받은 뱀입니다.

남편을 일찍 여의고 외동딸과 함께 외롭게 살아가는 한 중년 여인이 있었습니다. 그렇게 사랑하는 딸이 가출하여 술집에서 남자들의 술이나 따라 주면서 살고 있다는 소문을 들었습니다. 그 여인은 가슴이 미어지는 것같아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어머니는 딸이 있을 만한 곳을 다 다니면서 전단지를 뿌렸습니다. 그 전단지에는 어머니의 사진과 함께 이런 글이 적혀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딸아. 어미가 너를 간절히 기다리고 있단다. 너를 사랑한단다>
어머니는 딸의 사진을 넣으면 딸이 부끄러움을 당할 가 두려워 자기 사진을 넣은 것입니다. 결국 딸 사진 대신 자기 사진을 넣은 것입니다. 드디어 딸은 어머니 품으로 돌아 왔습니다. 그리고 통회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어머니의 깊은 사랑을 도저히 외면할 수 없었어요. 저를 위하여 대신 수치를 당하신 은혜와 사랑에 감사드려요"
이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입니다.
이 세상에 지금 존재하는 사람 가운데 가장 악한 사람 두 명을 들라 하면 후세인과 김 정일입니다.

지금 이라크 전쟁이 한창입니다. 이라크 대통령 후세인이 제거될 날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후세인은 일년에 10만 명 이상을 죽인 독재자입니다. 회의를 하다가 자기와 의견이 맞지 않는 사람이 있으면 그 자리에서 권총을 꺼내 직접  죽여 버린 일도 있는 철저한 독재자입니다. 쿠르드 족 25만명을 한꺼번에 죽여 버린 일도 있었습니다.

김 정일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 이북에서는 일년에 100만명이 얼어 죽고, 200만명이 굶어 죽고 있습니다. 어느 글을 보니까 어느 어린아이가 너무나 배가 고팠습니다. 그 때 어머니가 돌아 가셨습니다. 배고픔을 이기지 못 하여 어머니 살을 도려내어 먹었다는 기사입니다. 이북 사람들을 굶는 이유는 식량이 없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다른 이유가 있습니다. 이런 말이 있습니다.
<식량이 남아 돌아도 개는 굶겨라. 그래야 말을 잘 듣는다>
굶겨야 딴 생각하지 않고, 배고파야 양식을 주는 사람을 배반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북 사람을 배고프게 하는 것도 일종의 정책이라는 것입니다.

미국이 지구상에서 악의 축을 몰아내며 십자가 지겠다고 나섰습니다. 석유를 빼앗으려고 미국이 전쟁을 치룬다는 이기적인 목적이 숨어 있다 할 지라도 그런 후세인과 김정일을 겨냥하고 있는 것은 대단히 고마운 일입니다.
이것이 대신 십자가 지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장대에 달린 놋뱀처럼 저주받으신 분이십니다.


3. 독이 없으신 예수님

장대에 달린 놋뱀은 불뱀 모양이지만 독이 없는 뱀입니다. 성경에서 뱀은 두가지 인상을 동시에 전하여 주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뱀을 생각하면 제일 먼저 어떤 생각이 떠오릅니까? 징거럽다. 소름이 끼친다. 무섭다 이런 생각이 들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뱀만 보면 때려 죽이려고 합니다.
후세인은 미국이 바그다드로 점점 다가 오자 이렇게 말했습니다.
<미국과 영국군은 뱀이다. 바그다드로 입성하여 오면 뱀처럼 토막내어 죽이고 말겠다>
그러나 뱀에게는 좋은 인상도 있습니다.
예수님은 뱀과 같이 지혜로우라고 하였습니다. 뱀은 참으로 지혜로운 동물입니다. 나는 우리 수양관에 가면 산에 꼭 오릅니다. 그 때 뱀을 가끔 만납니다. 그런데 죽은 듯이 가만히 있는 모습을 종종 보게 됩니다.
세상 사람들도 뱀에 대하여 두 가지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징그럽다고 여기는 이가 있습니다. 그러나 뱀을 사랑하고 애완용으로 기르는 이도 있습니다. 침대밑에 뱀을 넣어 두고 자는 이들이 있습니다. 냉혈동물이라 너무나 시원하다는 것입니다. 뱀이 사랑스럽다고 목에 걸치고 다니는 이도 있습니다.
불뱀은 없어야 할 뱀이지만 놋뱀은 꼭 필요한 뱀입니다. 예수님은 놋뱀입니다.

중국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공산주의 박해를 피하여 몰래 가정에서 숨어서 예배를 드리는 진실된 성도들이 있었습니다. 30여명은 늘 똘똘 뭉쳐서 늘 지하실에 모여 하나님을 찬양하였습니다. 이들중에 어머니와 아들이 있었습니다. 이들은 오직 예수였습니다. 내세의 소망과 부활을 바라보며 예배시간마다 결석하지 않았습니다. 남편은 늘 집을 비우는 아내와 아들이 싫었습니다. 그래서 아들에게 늘 말했습니다.

<나는 예수믿는 며느리가 싫다. 절대로 예수 쟁이와 결혼하지 말아라>
그러나 아들은 분명히 말했습니다.
<아버지! 저는 예수 안 믿는 처녀와는 결혼하지 않을 것입니다>
아버지는 화가 났습니다. 그래서 이들이 몰래 예배드릴 때 경찰에 고발하여 버렸습니다. 경찰에 붙잡혀간 이들은 벌금형을 받았습니다. 있는 돈이란 모두 선교비에 사용하였기에 돈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몸으로 때우기로 하고 유치장에 들어 갔습니다. 이들은 잘 되었다고 생각하고 늘 기도하고 찬송을 붙렀습니다. 유치장에 들어 온 이들을 모조리 전도하여 예수믿게 하였습니다. 늘 유치장이 시끄러웠습니다. 거기에다가 하루 세끼 밥까지 해다 주어야 했습니다. 경찰들은 골칫거리였습니다. 낭패였습니다. 경찰은 고발한 아버지를 불렀습니다. 그리고 호통을 쳤습니다.
<그까짓 것 가지고 남자가 째째하게 고발을 합니까? 더구나 자기 마누라와 자기 자식까지 있는 데...>
그리고 30명 교인들을 다 내보냈습니다. 유치장에 들어 갔지만 전혀 남에게 피해를 주지않는 독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믿음만 있고 사랑만 넘치고 경건을 지니고 있는 이들이었습니다.

예수님으 놋뱀입니다. 놋뱀은 독이 없습니다. 예수님을 죽이려는 이에게 <저들이 몰라서 그러니 용서하여 주옵소서>라고 기도하였습니다. 그렇기에 예수님을 닮은 이들은 독이 없습니다. 자기 아들을 죽인 원수를 아들로 삼습니다. 용서합니다. 사랑합니다.

요즈음 미국은 나무마다 온통 노란 리본이 펄럭이고 있다고 합니다. 이라크 전쟁에 나간 군인들이 살아서 돌아 오기를 기다리는 소망의 표시입니다. 그 유래가 있습니다.
뉴욕 감옥에 수감된 죄수 빙고가 있었습니다. 늘 감옥을 안방 드나들 듯이 드나드는 이였습니다. 이제 아내도 지겨워졌습니다. 그 때 그 죄수가 편지를 썼습니다.
<혼자 사는 것이 괴로우면 나를 잊으라>
그리고 3년 반 동안 편지 한 통 주고 받지 않았습니다. 가석방을 앞두고 아내에게 편지를 썼습니다.
<나를 용서한다면 마을 앞 참나무에 노란 손수건을 매어 두라. 지나가다가 노란 수건이 걸려 있으면 용서하는 것으로 알고 집으로 들어 가겠다. 만일 안 걸려 있어도 원망하지 않고 지나가리라>
빙고는 버쓰를 탔습니다. 버쓰에 탄 이들에게 사정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그 마을 앞을 지날 때 승객들 모두는 초긴장을 하였습니다. 갑자기 젊은이 한 명이 일어나 두 팔을 벌리고 환성을 질렀습니다. 눈이 좋아서 제일 먼저 노란 손수건을 보았습니다. 버쓰가 다가 갔을  때 모두가 보였습니다. 참나무에는 온통 노란 리본 투성이였습니다. 성탄 추리같았습니다.

10년전 미국에서 베스트 셀러가 된 <노란 손수건> 이야기입니다. 100 판 이상 나간 책입니다.
그 후 토니 올란도가 <참나무에 노란 리본을 다세요>라는 노래를 불러 유명하여졌습니다.
놋뱀은 독이 없는 뱀입니다. 예수님도 독이 없고, 우리도 독이 없어야 합니다.


4. 회복이신 예수님

불뱀은 죽음이었고, 놋뱀은 생명이었습니다. 불뱀은 병이었고, 놋뱀은 회복이었습니다. 예수님은 회복입니다.
놋뱀을 쳐다보는 사람은 다 살았습니다. 믿음으로 보는 이들은 다 건강하여졌습니다. 불뱀에 물렸으면 약을 쓰고 주사를 맞는 것이 아니라 놋뱀을 보면 살 수 있습니다. 상식으로 회복되는 것이 아니라 비상식적으로 고침받았습니다. 놋뱀이 신비한 능력이 있는 것이 아니라 순종하는 믿음에 하나님이 회복의 역사를 주신다는 의미입니다. 믿음은 회복약입니다.
십자가는 회복입니다.

그렇습니다.
놋뱀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놋뱀은 예수님의 네 가지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 주고 있습니다.

1. 비천하여 지신 예수님
2. 저주 받으신 예수님
3. 독이 없으신 예수님
4. 회복하시는 예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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