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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평강과 기쁨 / 요 20:1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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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 평강과 기쁨
성경본문 : 요한복음 20장 19~20절
 

"이날 곧 안식 후 첫날 저녁때에 제자들이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모인 곳에 문들을 닫았더니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가라사대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이 말씀을 하시고 손과 옆구리를 보이시니 제자들이 주를 보고 기뻐하더라"
(요한복음 20장 19~20절) 
<목회기도>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로 우리에게 구원의 길과
영생의 복을 허락하신 하나님!
모든 영광과 찬양을 받으시옵소서.
우리는 부활과 영생을 믿지만… 여전히 이 땅의 삶에 얽매여 살고
죽음과 막연한 삶 때문에 근심하는 나약한 존재입니다.
세상을 이기신 예수님,
죄와 사망을 이기신 예수님을 모시고 사는 승리자가 되기 원합니다.
하나님, 여기 삶에 지치고 사람들에게 실망한 이들이 모였습니다.
죽음 같은 절망, 무덤 같은 캄캄함, 돌문 같은 장애…
모든 것에서 승리하는 부활을 믿습니다.
새 힘을 주옵소서. 소망으로 하늘을 보게 하옵소서.
하나님, 오늘은 몸이 불편한 채로 살아가는 장애인들을 기억하며…
함께 사는 지혜와 넉넉한 마음을 가지기를 권하는 '장애인의 날'입니다.
우리가 먼저 베풀고 배려하는 마음을 갖게 하여 주시옵소서.
몸이 불편한 장애인들도… 힘들지만 낙심치 않는 담대함을 주시옵소서.
사랑하는 자녀를 군대에 보낸 가족들,
외국에 나가 공부를 하고, 사업을 하며, 직장생활을 하면서
가족과 고국, 그리고 기둥교회를 그리는 이들…
피치 못할 사정으로 기둥교회를 떠나 먼 곳에 있으면서도
인터넷으로 예배에 동참하는 이들…
병들어 몸이 괴로운 이들 그리고 가족들…
모두에게 부활의 기쁨과 영생의 소망을 갖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 귀한 시간 성령께서 우리와 함께 계실 줄로 믿고
예수님 거룩하신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할렐루야!
죄와 죽음을 이기시고 절망의 무덤문을 여신 예수님이 부활하신 날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승리가 우리의 승리가 됨을 믿습니다.
여러분 모두 주 안에서 승리하는 삶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오늘은 <장애인의 날>입니다.
10명 중 1명이 몸이 불편하여 어렵게 살아간다고 합니다.
건강한 사람들은 힘들고 어려운 사람들을 도와야 할 마땅한 책임이 있습니다.
더욱이 신앙생활하는 사람들은 넉넉한 마음으로, 배려하는 마음으로…
장애인들을 도와야 합니다.
우리 교회는 장애인들과 함께 신앙생활 합니다.
여러분이 불편하고 때로는 포기해야 하는 것들이 있지만
함께 예배드리는 농아교회 성도들을 잘 배려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우리 교회에서는 2개의 노인복지회관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거기서 하는 많은 일 가운데는
거동하기가 불편한 노인들을 위해 집으로 반찬을 배달하기도 합니다.
이렇게 우리 교회가 2개의 노인복지회관을 운영하는 데 보내는 지원금은
결코 적은 것이 아닙니다.
그 많은 손들이 여러분이 드린 헌금 중에 구별하여 보내지고 있습니다.
만약 우리 교회가 노인복지회관을 운영하지 않는다면
부목사님을 5명을 더 두어도 되고, 선교사를 5명 정도 더 파송할 수 있고,
선교사를 10~20여명을 넉넉하게 도울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것을 접고 어려운 노인들을 위해 노인복지회관을 운영하는 것입니다.
이 일에 여러분이 적극적으로 관심과 사랑으로 봉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앞으로 어려운 분들, 장애자들, 노인들을 위해 더 많이 봉사하는 교회가 되도록
여러분이 많이 벌고, 하나님께 풍성하게 드리고
이웃을 위해 넉넉히 베풀며 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부활을 믿습니까?
 
기독교 변증학자였던 [프랜시스 쉐퍼]박사(Dr. Francis A. Schaeffer)가
미국의 젊은 신학자와 예수님의 부활에 대해서 TV토론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쉐퍼박사는 젊은 신학자에게 [부활을 믿습니까?]라고 질문을 했습니다.
젊은 신학자는 분명히 [믿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쉐퍼박사가 다시 [예수 그리스도께서 정말로 죽었다가
                  3일만에 살아났다고 믿습니까.]
[부활이 역사적이고 실재적인 사건이었다고 믿습니까?]라고 질문하자
젊은 신학자는 머뭇거리다가
[그것이 중요합니까. 우리에게 의미가 있는 것은
부활의 역사성이 아니라 부활이 주는 교훈입니다.
절망을 딛고 일어서는 그런 것 말입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쉐퍼박사는 그 젊은 신학자에게
[부활 사건이 없었다면 그것이 주는 교훈이나 의미도 존재할 수 없습니다.
없었던 사건에서는 아무런 교훈도 나오지 않기 때문입니다.]라고
분명하게 말했습니다.
 
부활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그 사건이 과연 역사적으로 실존했느냐 하는 문제입니다.
여러분은 예수님을 믿습니까?
죽은 지 3일만에 죄와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믿습니까?
 
어떤 사람은 하나님은 믿는데… 창조주 하나님은 믿는데…
예수님이 세상에 사람의 몸으로 오셔서 살다가
십자가에 처형당하고 3일 만에 부활하신 것을 못 믿겠다고 합니다.
그런 사람은 창조주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아닙니다.
 
 
부활은 관념이 아닙니다.
 
예수님께 자신의 목숨을 걸고 따르겠다고 큰소리 친 사람이 베드로였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붙잡히고 재판 받고 십자가에 처형당하셨을 때
예수님 앞에서 베드로가 한 말과 행동은 너무나 한심한 비겁자의 모습이었습니다.
그는 세 번이나 예수님을 모른다고 부인했습니다.
그런 베드로에게 예수님의 제자로서 기대할 수 있는 것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베드로는 달라졌습니다.
사도행전 1장에 보면, 베드로는 120명이 모인 자리에서
가룟 유다의 빈자리를 채우는 일을 주도합니다(행1:15~26).
베드로는 사도 선출 자격을
"우리로 더불어 예수의 부활하심을 증거 할 사람"(행1:22)이라고
단정지어 말했습니다.
'예수의 부활 증거'가 사도직의 초점인 것을 명백하게 규정지은 것입니다. 
 
오늘날 신앙생활하면서, 신학을 공부하고 목사가 된 사람들 가운데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증거할 줄 모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믿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은 목사를 하지 말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사도의 자격은 "예수의 부활을 증거"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목회자가 예수의 부활을 증거할 수 없다면 그는 가짜입니다.
 
'예수님을 모른다'고 배신했던 베드로가 십자가에서 공개 사형 당한
예수님이 다시 살아나셨다고(행2:22~36),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고…(행2:21) 외쳤습니다.
베드로의 예수님의 부활에 대한 외침은 확신에 찬 증거였습니다.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
 
예수님의 부활은 기독교 신앙의 핵심입니다.
예수님은 죽음에서 다시 살아나심으로 사망권세를 정복하셨으며,
죽음에 얽매여 사는 인류에게 부활의 소망을 주셨습니다(고전15:20, 히2:14).
왜냐하면 예수님의 부활은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기 때문입니다(고전15:20,23).
 
<첫 열매>가 되셨다는 것은 <예수님의 부활이 나중에 모든 성도들이
부활할 것을 보증해 주는 첫 사건이 되었다>는 의미입니다(고전15:13).
"만일 죽은 자의 부활이 없으면 그리스도도 다시 살지 못하셨으리라"(고전15:13)
물론 여기서 말하는 부활은 '육체'의 부활을 뜻합니다.
 
일부 믿음 없는 신학자들, 확신없는 목회자들, 신앙생활 사람들 가운데
예수님의 부활을 정신적인 의미에서의 '새로운 삶'이나
'희망찬 미래' 로 표현합니다.
그런식의 표현은 '부활'이란 단어의 세속화이며
믿음 없는 사람들이 함부로 말하는 오용입니다.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는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의 몸
 
부활하신 예수님은 분명히 '살'과 '뼈'를 가지고 계셨으며,
제자들과 함께 생선도 잡수셨습니다(눅24:39~43).
그러나 분명히 해 둘 것이 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의 몸은 부활하시기 전의 몸과 완전히 동일하지는 않았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문이 잠겨 있는 곳에도 그냥 들어가셨고(요20:19,26),
- "이날 곧 안식 후 첫날 저녁때에 제자들이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모인 곳에 문들을 닫았더니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가라사대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요20:19) 했습니다.
본문에서 "문들을 닫았더니"라는 말은 번역이 잘못 된 것입니다.
원문에서는 "문을 잠갔다"고 표현되어 있습니다.
제자들이 문을 잠갔는데 예수님은 그곳에 들어가셨던 것입니다.
그리고 아무런 기구도 없이 하늘로 올라 가셨습니다(행1:9).
 
부활하신 예수님의 몸은 공간의 제한을 받지 않으셨고
자연법칙이나 중력 법칙의 지배를 받지 않으셨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예수님이 문이 잠겨 있는데도 그냥 들어가셨고
아무런 기구도 없이 하늘로 올라가셨다는 사실에 대해
비과학적이고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런 생각을 갖고 있는 사람들은 정말 무식한 사람들입니다.
아인슈타인은 4차원 혹은 그 이상의 시(時) 공간이 존재할 수 있음을
분명히 보여 주었습니다.
원리적으로 4차원의 존재가 3차원 시공간 이동하는 것은 충분히 가능합니다.
그렇다고 제가 예수님의 부활을 과학적으로 설명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지금 아무리 과학이 발달되었어도
과학으로 해결할 수 없는 일이 많습니다. 과학이 모르는 것이 많습니다.
우리는 그 모든 것을 알 수도 없고, 이해할 수도 없지만
부활하신 예수님의 몸은 현재 우리의 몸과 달랐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이에 대해 사도 바울은 우리가 '육의 몸'으로 심고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산다고 했습니다(고전15:44).
  "죽은 자의 부활도 이와 같으니 썩을 것으로 심고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며 욕된 것으로 심고
영광스러운 것으로 다시 살며 약한 것으로 심고
강한 것으로 다시 살며
육의 몸으로 심고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사나니
육의 몸이 있은즉 또 신령한 몸이 있느니라"(고전15:42~44) 

 
 
역사적 사실인 부활
 
부활은 역사적 사실이지 신화가 아닙니다.
베드로서후서 1장 16절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과 강림하심을 너희에게 알게 한 것이
공교히 만든 이야기를 좇은 것이 아니요
우리는 그의 크신 위엄을 친히 본 자라" (벧후1:16)라고 했습니다.
그리스도의 부활은 우리가 믿는 복음의 중심입니다.
우리가 매주일 신앙고백하는 사도신경의 중심내용이 예수님 부활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나타나
그의 부활하심을 확실히 보여 주셨습니다.
고린도전서 15장 6절에 보면
"그 후에 오백여 형제에게 일시에 보이셨나니 그 중에 지금까지
태반이나 살아 있고 어떤 이는 잠들었으며"(고전15:6)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가운데 50세 미만인 분들,
우리나라에 6.25전쟁이 있었다는 것을 아십니까?
여러분 경험해 보셨습니까?
우리 교회에도 6.25 전쟁을 경험한 분들이 태반이나 살아 계십니다.
우리 가운데 6.25 전쟁을 경험해 보지 못한 사람들이 많지만
전쟁을 경험하고 살아있는 사람들이 증인으로 남아 있습니다.
그것으로 우리가 6.25 전쟁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바울이 부활을 증거할 때도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사람들 태반이 살아 있었습니다.
-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육신이 사람들에게 만져진 일도 
  두 번이나 있었고(마28:9, 요20:17),
-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손과 발을 보고 나인 줄 알라, 나를 만져 보라"하셨고(눅24:39)
- 요한복음 20장 27절에서는 도마에게도 상처를 만져 보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의심하는 사람들 가운데
(1) 예수님의 육신이 무덤에서 도난 당했다고 생각합니다.
로마인이나 유대인 혹은 제자들이 그랬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참으로 어리석은 생각 수 있습니다.
≫ 로마인은 예수님의 육신을 훔칠 이유가 어디 있습니까?
  그들은 단지 지배하고 있는 지역이 조용하기를…  바랄 뿐이었습니다.
≫ 유대 종교 지도자들은 죽은 예수의 육신을 훔칠 이유가 더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렇게 되면 그들이 예수님을 없애버리려고
  노력했던 것을 다시 일으키는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만일 유대 지도자들이 예수님의 육신을 훔쳤다면,
  그들은 분명히 제자들에게 시체를 보여 주며
  예수가 죽음에서 부활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했을 것입니다.
≫ 예수님의 제자들이 훔쳤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이 죽은 예수의 시체를 훔쳐 감추고
  그 거짓을 위해 자신들의 생명을 내어놓았겠습니까?
≫ 예수님을 따르던 수많은 무리들도 부활하신 예수님을 증거하며
  자신들의 생명을 내어놓는 순교를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이 꾸며낸 거짓이었다면 그 거짓을 위해 죽어갔을까요?
  시체를 감추고 "예수님이 살았다"고 부르짖고 그 거짓말 때문에
  짐승의 밥이 되고 목이 잘려 죽고 불에 타 죽으면서도 찬송했을까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입니다.
 
(2) 어떤 사람들은 '기절'을 말합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지 않았고
거의 죽어가던 중에 기적적으로 소생되었다는 것입니다.
이것도 참으로 말이 안되는 이야기입니다.
여러분, 생각해 보세요.
예수님은 재판을 받은 후 가시관을 쓰시고, 로마인들의 채찍을 맞으시고,
십자가에 달리셔서 창에 옆구리를 찔리고, 많은 양의 피를 흘렸습니다.
그리고 운명하셨고… 무덤에 묻히셨습니다.
무덤 입구를 막아 놓은 큰돌이 있었고, 무덤을 지키는 병사들이 있었는데…
거기서 소생(resuscitation)하여 나왔겠습니까?
여러분, 기절했다가 소생하는 것과 죽었다가 부활하는 것은 큰 차이가 있습니다.
기절 이론은 정말 어리석은 것입니다.
 
예수님은 "부활(resurrection)하셨습니다.
기독교의 역사는 부활을 믿는 사람들의 역사입니다.
그 믿음 때문에 세상 사람들에게 박해받고 조롱받기도 합니다.
그 믿음 때문에 오늘 우리가 예배드립니다.
♬ 찬송가 151장 1절에 보면 ♬
"다시 사신 구세주 나 항상 섬기네 / 온 세상 조롱해도 주 정녕 사셨네"
세상이 조롱해도, 믿음 없는 사람들이 부활을 믿는 우리를 바보 취급해도
예수님은 부활하셨습니다.
 
 
평강이 있을지어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신 후에 제자들이 모여 불안에 떨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문을 닫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거기 들어오셔서 하신 말씀이 본문 19절 말씀입니다.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불안에 떨며 문 잠그고 염려하고 근심하는
제자들을 향해 "평강이 있을지어다" 하셨습니다.
이 세상을 살아가는 것이 힘들고, 어렵고 장래의 불투명함으로
염려하고 근심하는 여러분에게도 부활하신 예수님이 선언하십니다.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세상이 줄 수 없고, 세상이 알 수도 없는 평강,
하나님을 모시고, 하나님의 나라를 꿈꾸며, 영생을 꿈꾸는 사람들이 가진
평강을 여러분도 소유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절 말씀을 보면
"이 말씀(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을 하시고 손과 옆구리를 보이시니
제자들이 주를 보고 기뻐하더라"(요20:20)
"기뻐하더라"(~were overjoyed~)는 기쁨이 넘쳤다는 것입니다.
-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사람은…,
-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 예수님을 구주로 믿고 천국을 꿈꾸며 사는 사람은…
- 영원히 살 것을 믿는 사람은…,
- 망하지 않는 복을 받은 사람은…
기쁨의 삶이어야 합니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항상 기뻐하라"(살전5:16)했고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빌4:4) 했습니다.
 
엄밀히 말해 그리스도인들은
매주일 기쁨으로 예수님의 부활을 기념해야 합니다.
오늘날 교회와 성도는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안식 후 첫 날인 주일에 모여, 예배드립니다.
그래서 우리는 주일마다 부활의 의미가 가득하게 기쁨으로 보내야 합니다.
 
우리는 다음과 같이 자문해 보아야 합니다.
<과연 나는 매일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매일, 매 순간을 그분의 부활 생명으로,
기쁨으로, 감사함으로 살아가고 있는가?>
 
 
예수님은 부활하셔서 우리에게 영생의 소망을 주셨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 세상을 살기가 쉽지 않습니다.
우리가 부활과 영생을 믿지만 여전히 여러 시험과 환난이 우리에게 닥칩니다.
그러나 부활을 믿는 성도는… 부활과 영생을 믿는 믿음으로 시험을 이기고
승리의 삶의 간증자가… 되어야 합니다.
 
지난 주간 어느 신문 한 구석에 보니까 이런 글이 있었습니다.
  믿음 좋은 어느 며느리가 시어머니의 핍박을 받으며 신앙생활을 했습니다.
그럼에도 며느리는 시어머니를 위해서 눈물로 기도했습니다.
그때마다 찬송가 395장 '너 시험을 당해 범죄치 말고’를 불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교회에서 심방 온 성도들이 시어머니에게 전도했습니다.
"예수 믿으세요. 며느님이 늘 어머님을 위해서 눈물로 기도합니다.”
그러자 시어머니가 말했습니다.
"내 며느리는 왕내숭이에요. 무서운 아이입니다.
날 위해 기도한다기에 들어보니
시어미 이기자는 노래만 부르고 있었습니다.”
다시 성도가 물었습니다. “무슨 노래를 불렀는데요?”
그러자 시어머니는 곧장 395장 찬송을 불렀습니다.
  "너 시어밀 당해 범죄치 말고 너 용기를 다해 곧 물리쳐라
    너 시어밀 이겨 새 힘을 얻고 주 예수를 믿어 늘 승리하라”
<국민일보 2003년 4월 15일> 

 
 
여러분, 우리가 신앙생활하면서 때로 사람들에게 오해를 받기도 합니다.
며느리의 찬송을 정확히 이해하지 못하고 미워했던 할머니처럼
우리의 찬송을, 기도를… 잘못 이해하고
우리를 향해 손가락질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것 때문에 실망하거나 범죄치 말고 이기시기 바랍니다.
 
♬ 함께 찬양합시다. 찬송가 395장 1절 ♬
"너 시험을 당해 범죄치 말고 / 너 용기를 다해 곧 물리쳐라
너 시험을 이겨 새 힘을 얻고 / 주 예수를 믿어 늘 승리하라
우리 구주의 힘과 그의 위로를 빌라 / 주님 네 편에 서서 항상 도우시리"
 
우리의 찬양이나 우리의 기도, 신앙이 오해 받을 수도 있습니다.
그것 때문에 어려움을 겪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부활을 믿는 사람은
모든 시험을 이기고 범사에 평안함과 기쁨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범사에 감사하며 사는 승리자가 되시기 바랍니다.
범사에 승리자로… 부활하신 예수 믿음으로 당당히 하나님께 나아가고(엡3:12)
낙심치 말고 당당히 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엡3:13)
 
 
<기도>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감사합니다.
우리의 찬양이, 우리의 기도가, 우리의 신앙이
세상사람들에게 오해가 되어 돌아올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시험을 이기게 하여 주시옵소서.
부활하신 주님이 주신 평안과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 제자들이 가졌던 그 기쁨을
우리들이 소유하며 살게 하여 주시옵소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믿음으로 예수 믿음으로 당당히 하나님께 나아가고
낙심치 말고 신앙생활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2003년 4월 20일 주일 낮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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