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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십자가의 도 (갈 6: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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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의 도 (갈 6:11-15)


몇 년 전 미국에서 베스트 셀러가 된 책 중에 Robert Bly가 쓴 The sibling society라는 책이 있다. 그는 자기 책에서 말하기를 '우리 사회는 어른은 없고 아이들만 있어 서로 다투고 싸우는 사회'라고 말했다.
이런 문화는 자기 눈 높이에 보이는 것, 자기 마음에 편한 것, 자기 생각에 맞는 것에만 머물려고 하지 그 이상의 높이까지 자라려고 하지 않는다. 텔레비전 톡 쇼는 가정을 대치했고 컴퓨터 인터넷은 예술을, 쇼핑몰은 더불어 살아가는 공동체를 대치했다고 말했다.

그래서 결론적으로 인간다운 삶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위를 바라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위를 바라본다는 말이 무엇을 뜻하는가? 바울은 골로새서 3장 1-2절에서 "위엣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니라. 위엣 것을 생각하고 땅엣 것을 생각지 말라"고 했다. 즉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라는 말이다. 

  그래서 오늘은 수난 주간의 중심이 되는 예수님의 십자가를 묵상함으로써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한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믿는 기독교를 여러 가지 면에서 설명해 볼 수 있지만 한 마디로 말해서 <십자가의 宗敎(종교)>라고 표현할 수 있다.

  사도 바울은 본문 14절에서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라고 고백했다. 그는 고린도교회에 써 보낸 편지에서도 비슷한 고백을 했다(고전 2:1-3).
그럼 바울이 말하는 십자가의 도란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 오늘 이 시간 세 가지 면에서 갈보리 언덕에 세워졌던 주님의 십자가의 의미를 생각해 보고자 한다.


첫째로, 하나님 편에서 십자가를 바라볼 필요가 있다.

이런 면에서 십자가를 바라볼 때 이 십자가는 하나님의 고통하는 사랑을 비춰준다. 여기에 어떤 어머니가 한 분 계시는데 그에게 귀한 아들이 하나 있다고 가정하자. 그 어머니는 자기 아들을 극진히 사랑하며 그의 장래에 대하여 큰 희망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불행히도 이 아들이 천만 뜻밖에 꿈에도 생각 못할 큰 죄를 범했다. 그렇게 될 때 그 죄의 결과로 제일 먼저 상처를 입는 이가 누구냐 하면 어머니이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다. 그의 사랑은 무한하시고 영원하시고 불변하신다. 로마서 5장에서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가 연약할 때도 우리를 사랑해 주시고 우리가 죄인 되었을 때 사랑해 주시며.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도 우리를 사랑하시는 사랑이라 했다. 사람들은 흔히 잘 되고 성공하고 부요하며 권력이 있을 때는 사랑하다가도 실패하고 가난하게 되면 외면하고 되돌아선다. 남에게 베풀고 유익을 줄 때는 아는 척하고 사랑하다가도 실패하고 감옥에 가면 배반하는 얄팍한 사랑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가 연약하고 죄인 되고 원수 되었을 때도 우리를 찾아오시고 감싸주시며 사랑으로 품어주시는 그런 아가페의 사랑이다. 


둘째로, 그리스도 편에서 십자가를 바라볼 필요가 있다.

그렇게 바라볼 때 이 십자가는 무엇보다도 우리의 죄를 대속해 주시기 위한 <속죄의 십자가>란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다시 말해서 대속의 제사요 희생의 제물이란 것을 깨닫게 된다. 세례요한은 예수님께서 광야에 나타나셨을 때 여러 차례 증거해서 말하기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어린 양을 보라"고 외쳤다. 하나님의 어린양은 속죄 제물을 상징하는 말이다. 예수님 자신도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함이 아니라 오히려 섬기려 하고 내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기 위하여 왔노라"고 했다. 예수님은 십자가상에서 화목 제물로 자신을 바치셨다.

우리가 쉽게 생각하면 '하나님은 사랑이시니까 그저 용서해 주면 되지 않는가'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가 기억할 것은 용서가 그렇게 쉬운 것은 아니다.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인 동시에 공의의 하나님이시다. 만일 하나님 자신이 이 공의의 질서를 깨뜨린다면 이 우주에 도덕적 질서가 무너지고 만다. 그러기에 구약시대에는 죄를 사함 받기 위해서는 양을 잡아 하나님 앞에 제사를 드림으로 인간의 죄를 대속할 수 있는 길을 열어 주셨다. 그러나 이런 방법을 반복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하나님은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시어 그로 하여금 인간의 모든 죄를 짊어지고 십자가에서 희생제물이 되게 하셨다. 이렇게 함으로써 하나님은 그 공의를 세우시고 동시에 하나님의 사랑을 유감없이 나타내셨다.


셋째로는, 인간 편에서 십자가를 바라볼 필요가 있다.

십자가는 하나님의 고통하는 사랑과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죽음을 통해 우리에게 주신 은혜의 선물이다. 그리고 십자가는 그리스도인의 위대한 삶의 원리를 보여 준다. 자신이 죽고 희생함으로써 자기를 포함해서 가정과 교회가, 사회와 민족이, 세계와 인류가 산다는 것을 보여 준다.
바울은 고린도전서 1장 18절에서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했다. 무엇을 말하는가? 십자가의 진리가 어리석게 보일지 모르지만 분명한 사실 하나는 이 십자가의 진리를 따라 살 때에 그것이 개인이든 가정이든 사회든 국가든 하나의 놀라운 능력을 경험하게 된다는 사실이다.

우리가 역사적으로 살펴볼 때 세계를 지배하고 변혁시킨 최대의 세력은 무력이 아니라 십자가였다. 십자가의 빛이 비치는 곳에서 죄인은 눈물을 흘렸다. 불량배가 변하여 자선사업가가 되었다. 도둑이 변하여 전도자가 되었다. 죄의 종이 해방되어 자유인이 되었다. 수난의 역사가 기쁨의 역사로 어둠의 역사가 광명의 역사로 갈등과 증오의 역사가 화해와 사랑의 역사로 바꾸어진 것이다. 이 십자가 가는 곳마다 노예가 해방을 얻고 이 십자가의 복음이 전파되는 곳마다 자유와 민주주의의 꽃이 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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