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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잊어버린 하나님의 형상 부활 / 창 1:2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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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어버린 하나님의 형상 부활
창1:26-31,2003.04.20.

2003년 부활절을 맞이하였습니다. 할렐루야!!

오늘 우리 주님께서 사망의 권세를 이기시고 무덤에서 부활하셔서 온 인류에게 소망과 기쁨을 주신 영광의 날이자 축복의 날입니다. 만약에 우리 주님의 부활이 없었다면 온 인류는 흑암과 절망과 죽음의 그늘에서 헛된 욕망과 개인의 안일과 쾌락을 위해 살다가 소돔과 고모라 땅처럼 멸망당하고 말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능력과 사랑의 주님께서 이 부활의 아침에 부활하심으로 온 세상에는 믿음과 소망과 사랑의 태양이 여전히 떠오르게 되었습니다.

2003년 부활절을 맞이하여 오늘은 특별히 색다른 부활절 설교를 드리고자 합니다. 예고한대로 우리 속에 「잊어버린 하나님의 형상」에 대하여 말씀을 증거 하고자 합니다. 「잊어버린 하나님의 형상」이란 설교를 하게되는 이유는 우리가 부활의 영광이 예수님의 부활의 영광에 그치지 않고 우리의 삶에 구체적인 부활의 역사로 나타나야 한다는 절체 절명의 소명감아래 그렇다면 어떠한 부활이 우리에게 일어나야 하겠는가?를 고민하던 중 "하나님의 형상"에 대한 조직신학자의 강의를 듣고 부활절설교를 준비하게 되었습니다.


Ⅰ. 하나님의 형상


하나님이 만물을 창조하신 후 마지막으로 인간을 창조하셨는데 하나님의 형상대로 만드셨다고 본문 26-27절에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가라사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로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육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하나님이 자기의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자, 그런데 "하나님이 인간을 자기의 형상대로 창조하셨다."고 말씀하셨는데 그렇다면 "하나님은 인간처럼 눈과 코, 입과 팔, 다리를 가지셨다는 말인가? 아니면 하나님은 남자인가, 여자인가, 아니면 중성인가? 또한 하나님도 음식을 잡수시는가?" 등등, 많은 의문과 질문들이 생길 것입니다.

존 로빈슨이 저술한 「신에게 솔직히」라는 책에서 보면, 이러한 성경구절 때문에 많은 교인들이 하나님의 모습을 인간의 모습으로 상상하기 일 수라고 말합니다. 다시 말하면, 저 높고 높은 곳에 앉으신 하나님은 '거룩한 모습을 가지시고 하얗고 빛나는 수염을 달고 계신 신선과 같은 분'으로 교인들은 막연히 믿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나라 식으로 말하면 무슨 산신령처럼 생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들에게 묻기를 "하나님이 자기의 형상대로 인간을 만드셨다는 말씀하셨는데 이 말의 뜻이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의 모습을 가지셨다는 말입니까? 아니면 무엇을 가르치는 내용입니까?" 대답하기가 곤란할 것입니다. 저 역시 그동안 "하나님의 형상"에 대하여 막연한 상상과 짐작으로만 알고 있었지 구체적으로 배워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번 공부를 통하여 분명하게 깨닫게 되었고 여기에다 설교학적인 눈으로 말씀을 만들게 된 것입니다.

자, 그렇다면 인간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좇아 창조하셨다는 의미가 무엇입니까?

1. 실체적 형성관 (Substantive View) - 이성과 도덕,의지의 형상-

실체적으로 보여지는 일반적인 하나님의 형상관은 우리 개신교에서 「하나님의 이성」 「하나님의 도덕성」「하나님의 의지」를 포함한 인격을 말합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영적 형상을 따라 지으심을 받았다는 뜻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이 인간을 흙으로 육신으로 지으신 후, 그 육신에다 하나님의 영적인 형상인 인격을 넣어주심으로 동물과는 다른 차원의 피조물이 되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오리겐과 이레네우스 등의 중세 신학자들은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을 두 차원으로 이해하였으며, 특별히 이레네우스는 "형상"은 아담이 이성과 자유의지를 가지고 있음을 의미하였고, "모양"은 성령의 작용을 통하여 소유한 일종의 초자연적인 재능을 뜻한다고 보았습니다. 다시말해 "모양"은 '하나님의 도덕적 자질'로, "형상"은 '하나님의 자연적 속성들'로 본 것입니다.

인간이 선악과를 따먹은 후 타락하였을 때 '선하고 거룩한 존재'로서의 모양은 손상되었지만, '형상'으로서의 인간은 여전히 완벽한 존재를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보았습니다. 이것은 자연주의 신학과 카톨릭 신학의 토대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마틴 루터는 용어상의 차이를 근거한 이 견해를 반대하며,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은 다른 것이 아니라 히브리어에 흔히 나타나는 병행어법으로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는 같은 것을 말하는 것으로 루터는 인간의 타락이후 하나님의 형상의 모든 양상은 다 타락했지만, 타락 후에도 형상의 잔재가 미약하나마 인간에게 남아있다고 보았습니다. 이에 대하여 장로교의 칼빈도 동일한 주장을 펴고 있습니다.


2. 관계적 견해(Relational Views) - 책임과 자유의 형상-

이 견해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형상을 인간의 본성안에 내재해 있는 어떤 것으로 인식하지 않고, 관계의 경험으로 생각하였습니다." 이 문제에 관심을 가진 대표적인 사람은 '에밀 브룬너'로서 그는 하나님의 형상이 지닌 의미를 두 가지로 구분하고 있는데, 하나는 형식적인 의미요, 다른 하나는 물질적인 의미로 보았습니다.
형식적인 의미의 하나님의 형상은 '책임과 자유'를 지닌 이성적인 존재로서의 인간을 말하는 것으로서, 죄인으로서의 인간이라 할지라도 이 형상의 의미는 조금도 상실하지 않았다고 보았습니다. 아울러 물질적인 의미의 형상관은 '책임과 자유'를 지닌 인간으로서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구체적이고 실제적인 반응의 행위를 인간에게 요구하고 계시는데 이것이 물질적 형성관을 이룬다고 보았습니다.

그리고 이 관계를 하나님과 인간으로만 국한시키지 않고 이웃과의 관계로 확대하여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진정한 인간성을 구성하는 것이라고 보았습니다.

결론적으로 말해 인간은 고독한 한 개인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만나는 두 인격으로 존재하는데 '하나님과 인간의 만남', 그리고 '인간과 인간의 만남'에서 「책임과 자유의지」를 가지고 하나님과 개인과 이웃을 사랑하며 섬길 줄 아는 아름다운 관계로 창조되었다는 것입니다.

3. 기능적 견해 (Functional View)- 지배, 통치권의 형상-

이 견해는 인간이 다른 동물들과는 달리 지배와 통치권을 가진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었다는 의미입니다. 레오나르드 버뎅(L.Verduin)은 "인간이 자연을 지배하고 다스릴 수 있는 통치권을 소유하고 있기 때문에 창조자의 형상 안에 있는 것으로 보았습니다."

그러나 이런 통치와 지배가 인간 개인의 목적을 위하여 피조물을 착취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피조물들의 가능성을 충분히 실현시키는 방향으로 피조물을 다스리고 돌보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구체적으로 텔레비전에 나오는 "동물의 왕국" 같은 곳에서 자연과 동물 보호자들이 동물들의 개체수를 적당하게 늘리고 줄임을 통하여 동물계와 자연계를 보호하려는 역할운동을 펼쳐보이는 것처럼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을 받은 인간들에게는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고,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28절)는 기능적 형상의 역할이 주어졌다는 것입니다.

이렇듯 사람은 육신적으로는 동물들과 비슷하지만 영적으로나 정신적으로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 받았기 때문에 다른 피조물들과는 감히 비교할 수 없는 높은 수준의 능력과 영향력을 소유하게 된 것입니다. 즉, 이치를 생각하고 사물을 분별할 수 있는 이성적인 능력도 있고, 양심이 있어서 도덕적으로 옳고 그른 것이 무엇인가 알 수가 있으며, 의지가 있어서 모든 것에 대해서 책임을 질 수 있는 능력도 지니게 되었던 것입니다.


Ⅱ. 인간의 타락


사람이 동물과는 달리 생각할 줄 알고 창조할 줄 알고 말과 글, 음악과 미술을 통해서 문화와 과학을 창조하고 윤리와 도덕을 통해서 종교를 만들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입니다. 인간이 평화를 운운하고 사회정의, 사회복지를 표준하여 권선징악(勸善懲惡)의 사회를 이루고 있는 것도 바로 하나님의 형상을 닮았기 때문에 가능한 것입니다. 사실, 인간의 힘은 얼마나 놀랍습니까? 각종 예술작품, 무선전신, TV, 비행기, 인공위성, 컴퓨터, 핵, 등 그 발명품은 끝도 없습니다.

앞으로 로봇 인간을 만들어서 우리 인간들이 집안에서는 가정부로, 직장에서는 직원으로 마음대로 부려먹을 날도 머지 않습니다. 더 놀라운 것은 앞으로 불로장생(不老長生) 약이 곧 나올 것 같다는 소식입니다. 미국 텍사스대학 사우스 웨스턴 메디컬센터의 과학자들이 정상적인 사람 세포를 조작해 수명을 획기적으로 연장시키는데 성공했다는 것입니다. 사람의 정상 세포는 일생을 통해 약 70번 정도 분열하는데 텍사스대학 연구팀이 시험관에서 배양하고 있는 세포는 지금까지 90번이나 분열했지만 정상을 유지하고 있다는 하면서, 연구팀은 "세포가 무한정 분열을 계속토록 만들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뿐만이 아닙니다. '인간의 체세포지도인 게놈지도"가 완성되어졌고, 미확인이지만 "유전자조작을 통한 복제인간이 탄생하였다."는 발표도 있었습니다.

이 같은 모습은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을 따라 지어졌다는 사실 중 "이성과 윤리와 도덕," 그리고 "책임과 의무" 사항을 배제한 '통치와 지배권'의 형상만을 강조한 잘못된 욕심과 타락에 의한 인간의 잘못된 행동들입니다.

인간들이 한 가지 잊어서는 안될 중요한 사실은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을 덧입었지만 육체는 흙으로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흙이 무엇입니까? 흙은 땅에 있는 먼지를 뜻합니다. 티끌로 만든 인간이기에 죽으면 땅에 돌아가 결국 티끌이 됩니다. 육신을 흙으로 지었다는 것은 두 가지 요소의 의미로 첫째는 인간이 아무리 피조물의 황제라 할지라도 육체는 짐승과 비슷한 요소를 가지고 있으므로 잘못사용하면 육체적 쾌락과 타락의 길을 걸어 짐승보다 더 못한 살육과 음행과 도적질과 전쟁 등의 부끄러운 일들을 통하여 스스로가 무너진다는 경고성과 둘째는 티끌과 같은 하찮은 존재임을 명심하고 겸손하게 서로 도우며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가르쳐 주는 영적 의미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아담과 하와의 타락이후 점차 지구의 종말을 향한 발걸음을 더 빠르게 진행하고 있습니다. 이라크를 비롯한 중동 연합국들과 미·영 연합군과의 치열한 전쟁, 그로 인한 수많은 인명살상과 문화재 파괴 약탈과 방화의 무질서, 성적타락과 음란한 쾌락의 문화, 각종 이혼과 성전환 수술, 동성연애자들의 합법화, 유전자조작을 통한 복제인간의 생산 등으로 인해 미약하게나마 남아있는 마지막 인간의 하나님의 형상을 파괴해가고 있습니다. 그 결과 인간에게 주어진 것들이 무엇입니까?

1. 죄의 결과

1). 개인에게 미친 영향

① 노예화
죄는 그것을 범한 사람에게 영향력을 갖습니다. 이 영향은 다양하고 복잡하게 나타납니다. 죄의 영향 중 하나는 그를 죄의 노예로 만들어 가는 것입니다. 죄는 습관이 되거나 심지어 중독이 되어 나타나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술, 담배, 마약 등이 그 대표적인 예입니다. 뿐만 아니라 죄는 또 다른 죄를 일으키기도 합니다. 이렇듯 죄는 죄지은 사람에게 다가가 죽을 때까지 그를 죄의 노예화로 만들어 갑니다.

② 현실로 부터의 도피
죄는 또한 현실을 직면하지 않으려는 결과를 낳습니다. "책임과 자유의지"를 통한 가정과 사회참여를 하지 않고 후세인처럼 나 혼자만 영원히 살 것처럼 행동해보지만 사람은 히9:27에 나타나 있는 것처럼 사람은 누구나 한번 죽게 되어있고 그 이후에 영의 심판이 있다는 것을 받아드려야 합니다. 불로초를 먹고 미이라를 만들어 자신의 생을 지속하려 해보지만 티끌로 흙으로 돌아가는 인생을 결코 바꿀 수가 없습니다.

③ 죄의 부정
죽음에 대한 우리의 부정은 자신의 잘못된 행위에 대한 고통스러운 인식을 지우려는 한가지 방법입니다. 죄를 부정하는 또 다른 방식은 우리가 행한 것의 잘못됨을 인정하면서도 그것에 대해 책임지기를 거부하는 것입니다. 마치 아담은 하와에게 하와는 뱀에게 책임을 전가하듯이 -자신의 합리화와 핑계를 통하여 죄를 모면하려고 하지만 이것은 불가능합니다.

④ 자기 기만 - 대표적인 사람들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 (마7:3,렘17:9)
⑤ 무감각 - 하나님의 경고와 정죄를 거절함으로 '양심에 화인 맞은 사람들'-
딤전4:2, 롬1:21
⑥ 자기 중심성 - 다른 사람들은 상관하지 않고 자신의 욕구와 필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안면몰수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팽배가 심화되어가고 있다.
⑦ 쉬지 않음 - 쉬지 않음도 자신을 향한 죄의 특성 중에 하나입니다. 왜 사람들이 쉬지 못합니까? 욕심 때문입니다. 만족하지 못하는 습성 때문입니다. 죄는 인간에게 있어 완전한 만족을 이루지 못하도록 사람들을 유혹합니다. 악인은 결코 평화에 도달하지 못합니다.

나는 이 부분에 대하여 커다란 충격을 받았습니다.
너무나 많은 일들로 인하여 쉬지 못하여 생기는 여러 질병들과 각종 스트레스, 교통사고로 인하여 생겨진 목 디스크의 고통이 재발되어지고 매일 매일 양방과 한방의 치료를 하지만 신속한 치료효과를 보지 못하는 것은 매어진 일과 삶에 대한 스트레스 때문입니다. 요사이 한국 사람들의 행복지수 중에 첫째가 건강이라고 합니다. 주일에 몸과 마음을 쉬면서 하나님을 찬양하며 함께 은혜 생활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어지기를 바랍니다.(마11:28-30)


2).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에 미치는 영향

① 경쟁
가장 중요한 것 중의 하나는 경쟁의 급증입니다. 인간의 경쟁 중에서 가장 극단적이고 엄청난 규모의 경쟁은 전쟁입니다. 야고보는 탐욕의 죄가 살인과 전쟁의 죄로 이끈다는 주장하고 있습니다.(약4:1-2)

② 공감할 수 없음
타인에게 공감할 수 없음은 죄의 주된 결과입니다. 모든 사람, 모든 사건과 행동들을 타인의 관점에서 바라보고 생각하기보다는 타락한 인간들은 자신의 관점에서 욕심에서 생각하고 판단하기 때문에 갈등과 분열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빌2:3-5=그리스도의 마음만이 이를 극복하게 합니다.)

③ 권위의 거부
권위의 거부는 종종 죄의 사회적 결과입니다. 요사이 권위와 질서가 무너지는 시대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가정 안에서도 부모와 자식의 권위가 무시되고 학교에서는 교사와 학생들의 교권이 상실되어가고, 교회에서는 목사와 성도간의 권위가 무시되어가고 거부되어 가는 그런 시대에 살아가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런 사회와 자신 속에서 하루빨리 하나님의 형상으로 회복되어 주님께로 돌아와야 합니다.

④ 사랑할 수 없음
죄는 미움과 증오와 멸시와 사망을 가져옵니다. 특별히 죄는 사랑의 황폐화를 가져옵니다. 경쟁시대에 살면서 이해와 협조와 양보와 사랑보다는 힘이 지배하는 시대가 되어지다보니 모두가 위협과 경쟁상대가 되어보입니다. 우리는 아가페적인 사랑을 가지고 베드로를 찾아가서 "내 어린양을 먹이라"고 말씀하신 예수님의 사랑을 회복해야 합니다.

이렇듯 죄의 결과는 심각한 것입니다. 죄는 그 한 사람으로 끝나지 않고 다른 사람에게 영향을 주고 또 멀리까지 미쳐서 우리와 하나님의 관계, 우리와 우리 자신의 관계, 그리고 우리와 다른 사람들의 관계에까지 영향을 줍니다.

따라서 우리가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을 회복하지 않는 한 저와 여러분들은 행복한 생활을 하지 못함은 물론 영광된 형체로서의 부활의 영광에 참여하지 못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신앙은 이론이 아니라 실체가 되어야 하고 나타나는 현상과 축복이 기쁨이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기독교를 이론의 종교로 이상의 종교로 만들지 맙시다. 하나님의 형상을 막연한 신비주의자의 말로 받아드리지 말고 우리 삶 속에 현실로 실체로 나타나게 하기 위하여 우리가 지금 내 자신과 교회와 사회를 위하여 변화시킬 것이 무엇인가를 살펴보고 이를 변화시키기 위한 성령의 능력과 주님의 부활의 능력을 간구하는 저와 여러분의 모습이 되어지기를 원합니다.


Ⅲ. 회복되어질 하나님의 형상

1. 찬양과 경배를 통한 하나님의 형상회복

우리가 하나님의 위대하심에 완전히 감화되었을 때 나타나는 자연적인 현상은 찬양과 경배입니다. 왜 그럴까요? 하나님의 형상은 찬양과 경배로 가득한 곳이기 때문입니다. 천지창조 때 "빛이 있으라"(창1:3)할 때에 울려 퍼지는 찬양의 웅장함은 예수님의 탄생과 침례식 그리고 부활과 승천 때에도 나타났습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형상과의 경험을 우리는 영적 예배를 통하여 경험할 수가 있습니다. 예배는 창조주 하나님을 인정하는 경배행위입니다. 예배에 있어 찬양을 필수입니다. 아울러 참된 경배와 찬양은 하나님의 임재 안에서 '놀라운 경이감과 압도적인 사랑'을 느끼며 영, 혼, 육 모두를 가지고 하나님을 높여 드리는 행위입니다.

특별히 요4:24절에서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지니라." 하였으며 롬12:1절에서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 하였습니다.

우리는 오늘 이 귀한 부활절의 경배와 찬양을 통하여 하나님의 형상을 되찾는 은혜의 시간이 되어지기를 바랍니다.

2. 말씀의 회복을 통한 하나님의 형상회복

이 시대의 나타나는 음란과 타락과 방탕과 살인 등의 죄악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못한 영적 기갈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입니다.

아모스 선지자는 암 8:11절에서 "기근을 땅에 보내리니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며 물이 없어 갈함이 아니요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라."하였습니다. 왜 노아 시대와 소돔과 고모라 땅이 물과 유황불로 멸망을 심판을 받았습니까? 그것은 저들이 시집가고 장가가고 밭 갈고 장사하는 등 자기 일에만 바빴으며, 죄악이 관영 하였기 때문입니다.(창6:1-5,18:20)

오늘 부활절 예배 겸 부활절 총동원 주일을 맞이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예배에 참여치 못한 사람들의 모습이 무엇 때문일까요? 그것은 대부분이 자신의 일에 바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예배에 참여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강단에서 선포되는 말씀을 통하여 시대를 분별할 줄 아는 영적 지혜와 참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니라."(딤후3:16-17)하였습니다.

우리는 살아있는 말씀을 통하여 잃어버린 하나님의 형상을 되찾을 수 있습니다.
3. 인간의 위치회복을 통한 하나님의 형상회복

1) 무너진 도덕성과 인간성을 회복해야합니다.
아버지가 자식을 자식이 아버지를 죽이기도 하고 내어버리기도 하는 시대입니다. 그것도 비참하게 토막을 내서 말입니다. 그 뿐만이 아니라 곳곳에서 인신매매와 원조교제가 판을 치는 시대입니다. 요사히 서교장의 자살사건 이후 전교조와 교권침해로 인한 다툼으로 학교가 시끄럽습니다. 부끄러운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하루빨리 무너진 도덕성과 인간성을 회복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해야 합니다.

2) 겸손과 섬김을 통한 하나님 형상의 회복입니다.
제자들의 발을 친히 씻겨주시고 십자가에 하나뿐인 자신의 생명을 내어 죽기까지 순종하신 예수님의 겸손과 섬김의 모습을 본받아 십자가의 고난과 부활의 영광에 참여하기를 원합니다.

3) 자연을 지키고 사랑함으로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해야 합니다.
사람들이 철기문화와 자동차문화 화약류를 만든 후 곳곳에서 산들이 벌거숭이로 초토화되어지고 있습니다. 이로 인한 홍수와 가뭄피해와 같은 자연재앙이 전 세계적으로 심각하게 일어나고 있습니다. 거기다 각종 동물들과 짐승 등의 무자비한 포획으로 그 개체수가 현격히 줄어들어 모든 것이 부조화를 이루어가고 있습니다. "땅을 정복하고 다스리고 충만케 하는 사역"에 대하여 다시 한번 깊이 생각해 볼 때입니다.

4. 가정과 사회회복을 통한 하나님의 형상회복

가정사역자로 이 말을 빼놓을 수가 없었습니다. 파괴되어져 가는 가정을 살려야 합니다. 가정의 위계질서는 곧 하나님의 창조질서입니다. 이혼율을 막고 성 매매와 성전환 수술, 그리고 동성연애자들을 합법화 시켜서는 안됩니다. 물론 이들도 한 인간이지만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을 떠난 잘못된 행동과 모습들은 원상태로 돌려놔야 합니다.

더 나아가 사회복지 시설 등을 확충하여 아동학대와 미혼모 출산, 노인 치매로 인한 버려진 아이들과 노인들을 양육하고 돌보는 사회시설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이제라도 우리는 이러한 시설에 눈을 돌려서 선교하는 일에 합심해야 합니다.

결론으로 말씀드립니다.

2003년 부활절 우리는 잊혀져버린 하나님의 형상 즉 이성과 도덕과 자유의지, 그리고 책임과 자유 그리고 지배와 통치권을 개인의 영광과 쾌락을 위하여 사용하지 말고 그 분의 영광과 하늘나라 천국을 이 땅에 이루기 위하여 하나님의 사랑이 이 땅위에 충만히 임하여 하나님께로 수많은 사람들이 돌아오는 일에 우리 모두가 한 알의 밀알로 다시금 태어나는 영광의 부활절이 되기를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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