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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 속에 들어있는 회복의 능력(계21장1-8) 2003.04.20.
예수 부활 이전에는 그리스도인이 없었다

예수님의 부활을 되새기는 감격의 2003년 부활절 새아침! 죽음의 어두운 장막이 걷히고 영광스럽고 감격에 찬 생명의 새아침을 맞이하였습니다. 부활 생명의 은총이 주님의 전에 나아와 예배드리는 여러분들과 여러분의 가정 그리고 경영하시는 모든 일들 위에 항상 충만하시기를 기원합니다. 부활은 우리 기독교 신앙의 핵심이 되는 개념입니다. 우리 모든 신앙의 중심과 목표가 바로 부활에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바로 이 부활 하나를 바라보고 세상 사람들이 상상하기 어려운 투자를 하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부활이 없다면 우리처럼 불쌍한 사람은 있을 수 없을 것입니다.

벤 부렌의 유명한 말이 있습니다. "예수 부활 이전에는 그리스도인이 없었다." 그렇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를 믿는 믿음, 그 믿음을 가지고야 믿음의 사람이 됩니다. 나를 믿을 수 있고 남을 믿을 수 있고 세상을 믿을 수 있고, 하나님을 믿을 수 있고 하나님의 나라를 믿게 됩니다. 이런 믿음의 사람만이 생명의 길을 알 것입니다.

성경은 우리들에게 두 가지 부활이 있음을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하나는 생명의 부활이요 또 다른 하나는 사망의 부활입니다. 오늘 성경 본문대로 표현하자면 하나는 새 하늘과 새 땅으로의 부활이요 또 다른 하나는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으로의 부활입니다. 성경은 그것을 둘째 사망이라고 말씀합니다. 둘째 사망의 특징은 영원히 죽지 않는 사망이라는 것입니다. 그곳에서는 죽지 않고 죽음의 고통을 당합니다. 그곳에서는 죽을 수 있다는 것이 축복이 됩니다. 그러나 그곳에는 그러한 축복이 없습니다. 꺼지지 않은 불 못에서 영원히 죽지 않고 죽음의 삶을 사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믿고 소망하는 부활은 생명의 부활입니다. 새 하늘과 새 땅으로의 부활입니다. 그것이 진정한 의미의 부활인데 바로 생명의 부활인 것입니다. 이 생명의 부활에는 다음과 같은 매우 중요한 두 가지 개념이 있습니다. 첫째는 회복이고 둘째는 부흥입니다.

생명의 부활 속에는 회복의 능력이 있습니다. 부활을 통하여 모든 것들이 회복됩니다. 부활 속에 들어있는 회복의 능력에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습니다.

생명으로의 회복

부활을 통하여 모든 죽음이 생명으로 회복됩니다. 부활은 모든 죽음을 생명으로 다시 회복시키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우리 주님께서 사망 권세를 깨뜨리고 다시 사셨습니다. 이제 다시 우리가 생명 없는 것을 붙들어야 되겠습니까? 생명 없는 것을 붙들고 그것을 어루만지면서 낙심하고 슬퍼하고 있는 우리에게 다시 사신 주님께서 우리 가운데에 오신 것입니다. 다시 사신 주님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다시 사신 주님께 가까이 나아가십시오. 다시 사신 주님을 만나시길 바랍니다. 그분의 생명을 만지고 느끼고 그 분과 생명의 관계를 회복하고 기쁨과 희망을 가지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여러분들의 신앙과 삶이 회복되는 역사가 있기를 바랍니다.

아름다움으로의 회복

오늘 본문의 말씀에 의하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예비하신 새 하늘과 새 땅은 마치 신부가 신랑을 위하여 단장한 것처럼 아름다웠다고 합니다. 죄로 말미암아 상실했던 모든 깨끗함과 아름다움이 부활을 통하여 다시 회복 될 것입니다. 온 세상이 깨끗하고 아름다울 것입니다.

그러나 보다 중요한 것은 세상이 아름다워지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아름다워질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사람이 미워질 때가 있고 흉해 보일 때가 있습니다. 추하게 사는 사람도 없지 않아 많습니다. 그리고 그와 같은 모습은 누구를 막론하고 다 있습니다.

그런데 부활의 날에는 하나님을 믿음으로 구원을 얻은 사람들의 모든 얼굴과 삶이, 인격과 성품이 아름답게 변화하게 될 것입니다. 죄로 말미암아 잃어 버렸던 하나님의 형상을 다시 회복하게 될 것입니다. 이 아름다움으로의 회복이 생명의 회복 못지 않게 중요합니다.

완전함으로의 회복

죄로 말미암아 타락 한 세상은 불완전한 세상입니다. 그래서 세상은 늘 불안전하고 그래서 세상에서의 삶은 늘 불안하고 초조한 것입니다. 그러나 부활은 그러한 우리 인간의 모든 불완전함을 완전함으로 회복시킬 것입니다. 모든 불완전함이 완전함으로 회복될 것입니다. 그래서 그 나라에는 눈물도 애통도 없습니다. 완전한 세상이기 때문입니다.

생명의 부활 속에는 부흥의 능력이 들어 있습니다. 부활은 단순한 회복에서 그치지 않습니다. 회복만으로도 큰 은혜가 되지만 부활은 부흥의 능력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회복과 부흥은 본시 창조의 원리요 원칙입니다.

모든 것이 주안에서 다 회복되고 있습니다. 사람도 자연도 다 회복되고 있습니다. 회복은 창조의 원리요 원칙인 것입니다. 부흥과 성장도 창조의 원리입니다. 밀알 하나를 심으면 그것이 30배 60배 100 배가 된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최소한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사실은 100배도 넘습니다. 하나님의 원칙과 질서 안에 있으면 부흥하고 성장하는 것이 원칙입니다.

시편 1편에도 보면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는 사람은 시냇가에 심은 나무와 같이 시절을 좇아 열매를 맺으며, 하는 일마다 형통할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열매를 맺고 형통한 삶을 사는 것이 원칙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러므로 부활하게 될 때 우리의 삶은 단순히 회복되는데서 그치지 않고 부흥하고 발전하게 될 것입니다.

부활이라는 단어를 영어 사전에서 찾아보면 보통 부활은 다음과 같은 세 가지 단어로 설명되어 집니다. Resurrection(부 활). Restoration (회복). Revival (부흥)입니다.

부활은 예수님의 재림과 심판을 통하여 이루어지게 될 것입니다. 그 날과 시한은 우리가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부활의 때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미래가 될 것이지만 그 부활의 능력은 후에 나타나는 것이 아니고 살아있는 지금부터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바르게 그리고 온전히 믿으면 이 땅에서도 우리는 부활의 능력을 덧입으면서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그 부활의 능력은 회복과 부흥으로 우리의 삶에 나타나게 될 것입니다. 모든 죽음과 실패는 생명과 성공으로 회복 될 것입니다. 우리의 악함과 추함은 선함과 아름다움으로 회복될 것입니다. 우리의 불완전하고 불안전한 모든 삶은 완전하고 안전한 삶으로 바뀌게 될 것입 니다. 그리고 우리의 삶에는 진정한 부흥의 역사가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성경이 약속한 바와 같이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시절을 좇아 열매를 맺는 것과 같은 현상이 우리의 삶에 구체적으로 나타나게 될 줄을 믿습니다. 부활의 능력이 나타나게 되면 모든 어그러진 것들은 바르게 회복될 것이고 모든 약하고 죽어 가는 것들은 강하고 생명력 있는 것으로 바뀌게 되어 진정한 부흥의 역사가 삶의 구체적인 현장에 나타날 것입니다.

이 부활의 능력을 덧입기를 원하신다면 이 부활의 능력을 어떻게 얻을 수 있는가를 알아야만 합니다. 이 놀라운 부활의 능력과 축복은 오직 믿음으로만 얻을 수 있습니다. 돈은 귀하고 좋은 것입니다. 세상의 온갖 좋은 것들을 살 수 있습니다. 그러나 돈으로 구원과 부활을 살수는 없습니다. 세상의 그 어떤 지식으로도 그리고 세상의 그 어떤 권세로도 구원과 부활을 살수는 없습니다. 구원과 부활은 오직 믿음으로만 살 수 있습니다.

오직 믿음의 부유함으로만 이 부활의 능력을 소유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들의 문제는 이 믿음이 부유하지 못하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믿음은 참으로 가난하며 초라할 때가 너무 많습니다. 믿음이 없는 것은 아닌데 그것이 너무 보잘 것 없고 초라하여 부활의 능력을 덧입지 못하고 참으로 가난한 삶, 구차한 삶을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는 삶

사람을 동물로 비유하여 분류하면 두 종류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개형과 고양이형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개는 일반적으로 사람들을 잘 따릅니다. 하지만 고양이는 그렇지 않습니다. 왜 그럴까요? 그것은 그들이 기억하고 있는 것 때문입니다. 개는 주인이 아홉 번 잘못하다가도 자신에게 잘해준 것이 한번 있으면 그  한번의 잘해준 것을 기억한다는 것입니다. 그런 기억이 개로 하여금 사람을 잘 따르도록 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고양이는 그렇지 않다고 합니다. 아홉 번 사람이 잘 해주다가 한번 잘못한 것이 있으면 그 한번을 기억하고 그 기억이 사람을 잘 따르지 못하게 한다고 합니다. 실상은 고양이에게 개보다 더 많이 잘 해 주었는데도 불구하고 고양이는 사람을 잘 따르지 않습니다. 이런 구분은 실제 개와 고양이를 정확하게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그런 말과 다르게 나타나는 경우도 있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을 관찰해 보면 그런 사람들을 볼 수 있습니다. 한번의 사랑을 받고도 감사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여러 번의 큰사랑을 받고도 감사하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무엇이 그렇게 사람을 나누겠습니까? 그것은 그가 무엇을 기억하고 있는가에 따라 달라집니다. 사랑을 기억하는 사람과 상처를 기억하는 사람의 차이입니다. 대개는 사람들이 사랑을 기억하기보다는 상처를 기억합니다. 사랑은 금방 잃어버리면서 상처는 오래 기억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영원히 잊을 수 없는 사랑과 은혜를 받은 존재이기도 하지만 사명자의 입장에서 본다면 우리는 은혜를 맡은 자들입니다. 은혜를 아는 자들이 있고, 은혜를 받은 자들이 있고, 은혜를 맡은 자들이 있는데 받은 바 은혜에 보답할 수 있는 자는 은혜를 맡은 자입니다.

안 믿는 것은 아닌데 믿음에 집중하지 못합니다. 때문에 믿음이 영 시원치 않습니다. 평생을 믿어도 자라지 않습니다. 그러면 혹 하나님이 이렇게 말씀하시지 않으시겠습니까? 열심히 믿으려고만 하지 말고 바르게 믿으려고 힘쓰라! 바르게 믿는 믿음은 은혜로 믿는 믿음입니다. 부활신앙은 죽음 후에 다시 사는 삶의 가치로 살기에 모든 것을 은혜로 해석하는 신앙입니다.

축복을 누리지 못하는 이유

성경은 우리들에게 입으로 주여 주여 한다고 다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고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그저 성전 뜰만 밟고 다니는 것이라고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교회 다닌다고 구원을 얻는 것이 아닙니다. 교회 봉사는 중요한 것이지만 봉사한다고 모두가 구원 얻는 것이 아닙니다. 봉사는 열심히 하는데 예수를 믿는 믿음은 정작 보잘 것 없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헌금을 많이 한다고 꼭 구원을 얻는 것도 아닙니다. 구원은 오직 믿음으로만 얻습니다. 믿으면 반드시 얻습니다. 그러나 믿지 않는다거나 믿음이 부족하다면 세상의 그 어떤 것으로도 구원을 얻을 수 없습니다.

믿음으로만 구원을 얻을 수 있습니다. 구원을 얻으면 죽어서도 물론이지만 이 땅에서도 부활의 능력을 덧입게 될 것입니다. 모든 죽음과 실패는 회복될 것이고 모든 삶과 일에는 하나님의 부흥의 원칙이 나타나게 될 것입니다.

그 구원과 부활의 능력은 가정에도 나타나고 세상에도 나타나고 교회에도 나타나고 마음속에도 나타나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는다고 하면서도 그 놀라운 축복을 누리지 못하고 있는 까닭은 우리의 믿음이 부족한 때문입니다. 우리가 입으로만 주를 믿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성전 뜰만 밟고 다니고 있기 때문입니다.

믿음의 부유함을 사모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믿음으로 살고 일하기를 위하여 힘쓰고 노력하며 기도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가정 생활을 믿음으로 하고 직장 생활을 믿음으로 하고 교회 생활을 믿음으로 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렇게 되면 믿음으로 한 모든 일에 구원과 부활의 역사가 나타날 줄을 믿습니다. 믿음의 부요한 자들이 되어 구원과 부활의 증인이 되는 삶을 사시는 여러분들이 다 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주님이 죽으셨을 때에는 제자들이 다 뿔뿔이 흩어져버렸습니다. 그러나 부활하신 것을 사실로 알게되자 제자들의 인생은 180도 방향이 전환되었습니다. 절망이 희망으로 바꾸어진 것은 말할 것도 없겠습니다. 슬픔이 기쁨으로 바꾸어졌습니다. 의심이 확신으로 바꾸어졌습니다. 옹색하던 사람들이 너그러운 사람으로, 겁쟁이들이 용기 있는 사람들로 바꾸어졌습니다. 생각도 바뀌었고, 행동도 바뀌었고, 가치관도, 모든 것들이 다 바뀌었습니다. 죽어도 다시 산다는 이 사실이 저들의 모든 것들을 다 변화시켜버렸던 것입니다. 부활을 믿는 자들에게는 사실 누구에게나 이런 변화가 일어납니다.

우리 죄인들의 진정한 친구 예수님

런던 타임즈가 설문조사를 해서 친구의 정의를 내 놓았는데 그 첫째가  모든 사람이, 온 세상 사람이 다 나를 버릴 그때에 나를 찾아오는 사람, 어떤 이유로든지 모든 사람이 나를 배척하고 버릴 때에 나에게 가까이 오는 사람이 친구이며 둘째는 나의 침묵을 이해하는 사람이라고 합니다. "나는 너를 안다. 네 억울함을 안다. 네 고통을 안다. 네가 바로 하고 있다는 것도 안다. 네 진실을 안다" 고 말하면서 나의 침묵을 충분히 이해하는 것, 그것이 진정한 친구이고 또 하나는 나의 기쁨을 곱해 주기도 하고 나의 슬픔을 쪼개 주는 자라고 합니다. 그와 만나면 기쁨이 제곱으로 커지고 슬픈 마음으로 만나면 슬픈 마음이 자꾸만 작아져서 없어지는 그것이 진정한 친구라고 합니다. 참 훌륭한 해석이 아니겠습니까?

예수님께서는 죄인을 사랑하십니다. 그 사랑을 우리가 때때로 너무 쉽게 감상적으로 생각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한다는 그 사랑의 의미를 우리가 잘 깨닫질 못합니다. 우리가 가진 편견과 그 집착된 잘못된 관념 때문에 참 사랑에 대한 이해가 없습니다. 참 사랑을 깨닫는 순간, 벌써 나는 새 사람이 됩니다. 참 사랑을 베푸는 순간, 전혀 다른 세계가 내 앞에 전개되는 것입니다.

사랑은 위대합니다. 예수님 보세요. 우리 죄인을 사랑한 결과로 세리와 죄인의 친구라고 하는 반갑지 않은 오명을 받았습니다. 명예롭지 못한 이름을 가졌습니다.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우리가 알아야 합니다. 사랑은 변화시킵니다. 사랑하면 변화됩니다. 먼저 사랑을 하는 순간 내가 변합니다. 누구를 사랑하는 순간에 내가 달라집니다. 달라지지 않으면 사랑이 아닙니다. 먼저는 듣는 마음이 생깁니다. 깊은 관심을 가지고 그의 말을 듣습니다. 그게 사랑입니다. 들어주는 게 사랑입니다. 비판이 없습니다. 지루함도 없습니다. 계속해서 들을 뿐만 아니라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이해됩니다. 이것이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이해 못할 일이 하나도 없습니다. 사랑한다면 그 누구라도 충분히 이해가 됩니다. 전에 같으면 비판했는데 이제는 비판할 마음이 없어요. 이제는 충분히 이해가 되니까요. 또 하나는 애정의 눈으로 봅니다. 사랑의 눈으로 보니 다 아름답습니다. 아름답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그리고 희망적으로 봅니다. 사랑에는 낙심이 없습니다.

어떤 자를 사랑했든지 사랑하는 순간 그에게서 소망이 보입니다. 희망적입니다. 사랑은 절대로 절망하지 않습니다. 실망이란 없습니다. 환하게 미래가 보입니다. 그것이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또 사랑은 내가 그에게로 가까이 갑니다. 저가 나에게 오기를 바라지 않습니다. 내가 그에게로 갑니다. 그리고 그의 처소에 머뭅니다. 그와 함께 합니다. 그와 함께 먹습니다. 함께 잡니다. 함께 삽니다. 그리고 책임을 같이 집니다.

톨스토이의 부활이라는 작품이 왜 그렇게 감동을 줄까?

그 책은 인간의 본성을 적나라하게 드러냅니다. 네폴류도프 공작이 주인공으로 나오는데 그는 겉으로는 근사하나 속으로는 정욕과 안일만을 추구하는 인생이며 그가 어린 하녀를 농락했지만 인간의 죄성, 죄에 대한 불감증으로 아무런 가책을 모릅니다. 그러나 또 하나 부활에서 보여준 위대한 사상은 인간은 그렇지만 또 한편의 구석에는 진실을 향한 양심의 소리를 듣는다는 것입니다. 네풀르도프가 배심원이 되어 한 살인자 여자를 판결하는데, 그 살인을 한 여자가 바로 다름 아닌 자기가 농락하고 버린 여자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저 여자가 그런 사람이 된 원인이 자기에게도 있다는 것을 자각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양심이 깨어나서 그는 인생에 U턴을 합니다. 즉 바르게 살겠다고 하여 양심에 모든 것들을 버리고 카츄사와 함께 시베리아로 떠납니다.

톨스토이는 이 전환을 부활이라고 합니다. 이 책을 사람들이 많이 읽었고 당시 인류최고의 책이라고 격찬을 했지만 사람들은 회심을 하지는 않았습니다. 톨스토이 자신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당시 러시아는 이 위대한 부활을 읽었지만 10년도 안되어서 부정부패로 인하여 무신론자들인 공산주의자들에게 무너져버리고 말았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도덕의 부활로는 사람을 변화시키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사람의 변화는 감동으로만은 안 된다는 것입니다. 감동은 사람을 순간적으로는 움직이지만 변화를 시키지는 못합니다. 사람을 바꾸는 것은 무엇인가요? 사실입니t다. 오직 사실만이 사람을 바꾸고 변화시키는 것입니다. 예수의 부활은 사실이었습니다. 그래서 12명의 제자들이 다 180도가 변화되어서 새로운 삶을 산 것입니다. 우리가 톨스토이의 부활을 읽지 않아도 우리가 예수의 부활을 믿으면 우리의 죽은 양심이 깨어나는 것뿐만 아니라, 우리의 저 양심의 능력, 진리의 능력이 나타나서 우리가 나만 변화시킬 뿐이 아니라, 이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는 것입니다.

괴테는 노년에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부활을 사실로 믿기 전에는 나의 모든 것은 오류였다." 이 부활 신앙이 있어야만 우리는 허무를 이길 수 있습니다. 이 부활신앙이 있어야만 우리는 환난을 이길 수가 있습니다. 이 부활신앙이 있어야만 우리는 고독도 죽음도 못된 생활도 청산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죽어도 다시 산다는 이 소망 위에서만이, 참으로 바르게 살 수 있는, 세상을 이기는, 죽음을 이기는 능력이 있는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이 놀라운 길을 가르치려고 죽음에서 부활하신 것입니다.

세상에 가장 무서운 것이 있다면 그것은 죽음입니다. 세상에 가장 무서운 사람이 있다면 그것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일 것입니다. 부활 신앙은 우리로 하여금 죽음을 뛰어넘게 합니다. 죽음과도 같은 고통과 환난을 뛰어 넘게 합니다. 그리하여 우리를 참으로 이 세상에서 강한 사람이 되게 합니다.

이 부활의 신앙을 굳게 붙잡으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이 믿음으로 힘들고 어려운 세상에 굴하지 아니하고 꿋꿋하게 세상과 맞서서 당당하게 세상을 정복하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부활의 신앙이 우리에게 주는 유익과 축복은 여기서 그치지 않습니다. 부활의 신앙은 우리를 강하게 할뿐만 아니라 우리를 깨끗하게 하고 반듯하게 합니다. 하늘에 소망을 두고 사는 사람은 땅에서 자유할 수 있습니다. 땅의 욕심으로부터 자유할 수 있습니다. 하늘에 소망을 두고 사는 사람은 땅에 소망을 두지 않기 때문입니다.

땅에 소망을 두고 사는 사람은 하늘에 소망을 둘 수 없습니다. 하늘에 소망을 두고 사는 사람은 땅에 소망을 둘 수 없습니다. 부활의 신앙은 궁극적으로 우리의 소망을 하늘에 두게 함으로 놀랍게도 우리를 땅에 대한 욕심으로부터 자유 하는 삶을 사는 사람이 되게 합니다.

부활신앙은, 죽음이 끝이 아님을 알려줍니다. 영원을 보고 삽시다. 부활신앙은, 우리의 모든 것들을 변화시킵니다. 이 부활신앙을 가질 때 우리는 변화됩니다. 부활은 생명을 의미합니다. 승리를 의미합니다. 향기를 의미합니다. 기쁨을 의미합니다. 부활하신 주님을 믿고 그를 영접하는 이에게는 새로운 생명이 생깁니다. 새로운 능력이 생깁니다. 향기가 나는 생활로 변합니다. 기쁨이 충만하여지는 것입니다. 이 기쁨을 빼앗을 자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다 이 부활의 주님을 영접함으로 참된 건강의 회복, 생명의 회복, 삶의 회복, 승리의 회복, 향기의 회복, 기쁨의 회복, 감사의 회복, 감동과 감격의 회복, 아름다움의 회복, 완전함의 회복, 영성의 회복을 얻어야겠습니다.

한 알의 밀 알은 그 자체로서 자신을 변형시킬 수 있는 능력이 없습니다. 그것은 땅에 심겨지지 않고 그대로 놓아두면 어느 시점에 가서 다 말라 죽게됩니다. 그러나 그것이 땅에 심겨질 때 땅 속에서 썩게 되고 새 생명으로 배태되면서 싹이 돋아나고 줄기가 생기며 꽃이 피고 열매를 맺게 됩니다. 씨의 형태는 없어졌지만 그것이 소멸된 것이 아니고 변형된 것입니다. 우리는 이 표상에서 부활이 뜻하는 바가 무엇인가를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부활은 현세와는 완전히 다른 차원입니다. 부활은 완전히 소멸된 후 새로운 것의 창조가 아니라 영원한 삶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부활은 우리의 삶의 의미며 목적입니다. 부활은 삶의 완성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그리고 부활하셨습니다. 성경은 누구든지 저를 믿으면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으리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이 복음을 믿으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부활이 있습니다. 영생이 있습니다. 이 세상이 전부가 아닙니다. 이 세상은 잠시 보이다 없어지는 안개 같은 세상이요 이 세상 너머에 영원한 세상이 있습니다. 이 세상에 연연하다가 영원한 세상을 놓치는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 세상을 놓치는 것은 대단한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저 세상을 놓치는 것은 참으로 불행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 세상에 대한 욕심 때문에 저 세상을 잃어버리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를 바라보고 죽어서 갈 하나님의 나라를 이 세상에서도 맛보고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또한 예수님의 부활 속에 들어있는 회복의 능력을 누리며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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