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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부활의 기쁜 소식 / 마 28: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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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부활의 기쁜 소식(마 28:5-10) 

할렐루야! 부활절을 맞이하는 여러분의 가정에 부활의 능력과 은총이 충만하게 임재하기를 축원한다. 겨울이 죽음의 상징이요, 봄이 생명의 상징이라면 우리는 얼어붙었던 대지의 해빙과 갇혔던 땅속의 약동하는 생명의 꿈틀거림에서 자연의 부활을 바라본다. 기독교는 부활의 종교이다. 그리스도의 부활이 없었다면 우리의 믿음도 헛것이요, 우리의 선교도 헛되다고 바울은 고백하였다.

첫 부활절 새벽이었다. 무덤을 찾아온 마리아와 몇 여인들에게 천사가 들려준 말은

첫째로 '두려워 말라'는 말씀이었다.

둘째는 '그가 살아나셨다'는 말씀이었다.
인생에게 가장 큰 원수가 죽음이다. 죽음의 공포 속에 사로 잡혀 일생을 종노릇하며 살아간다. 사탄은 죄를 통해 인간에게 죽음과 죽음의 공포를 안겨다 주었다. 그런데 예수님은 부활하심으로 우리에게 죽음을 이기는 부활의 기쁨과 능력을 안겨다 주셨다. 

셋째는 '갈릴리에서 그를 뵈오리다'는 말씀이었다. 이 갈릴리에서 만나 보리라는 말씀이 무엇을 뜻하는가?

오늘 저는 이 말씀을 중심으로 묵상해 보려고 한다.
이 말을 듣고 거룩한 두려움과 큰 기쁨에 가득 찬 여인들이 그곳을 떠나오려는 순간에 부활하신 주님이 친히 나타나셔서 '평안하뇨?' 물으신  다음 두려워 말라고 말씀하신 후 갈릴리에서 만나자고 하셨다. 우리의 신앙은 거룩한 두려움에서부터 시작된다.

그럼 <갈릴리에서 만나자>고 하신 말씀이 무엇을 의미하는가?.

1). 처음 사랑으로 돌아가라는 뜻으로 생각해 볼 수 있다.

저들 11제자들은 모두 갈릴리에서 처음 예수를 만났다. 베드로 형제나 야곱의 형제는 갈릴리 바다에서 고기잡이를 하다가 주님을 만났다(마 4:17-23). 마태는 세관에서(마 9:9) 주의 부르심을 받았다. 그 때 그들의 감격은 너무나 컸다. 그들은 생업을 버리고 주를 따라 나섰고 그의 제자가 되었다. 그것은 첫 감격이요, 주를 향한 첫사랑이었다.

주님은 제자들이 그 처음 사랑을 회복하기를 원하셨다.
계시록 2장에 보면 에베소교회에 주신 책망의 말씀이 있다. 그것은 <처음 사랑을 버렸다>는 경고였다. <성만찬의 화가> 레오날드 다빈치는 50대의 최대의 적은 용기 상실이라고 했다. 실로 인생의 어떤 고비를 넘어 선 사람에게 닥치는 위기는 권태와 용기 상실이다. 그것은 첫 사랑의 상실에 기인하는 것이다.
그러나 처음 사랑으로 돌아간다고 하는 것은 단순히 과거에로의 회복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보다 성숙해 지는 삶을 말한다. 3년이란 고비를 넘어선 제자들은 이제 성숙 단계에 들어서야 했던 것이다.


2). 부활의 사건 아래 그리스도의 행적과 교훈을 재음미해 보라는 뜻으로 생각해 볼 수 있다.
제자들은 3년간 그리스도의 행적을 보았고 더구나 수없이 많은 이적을 목격했다. 놀라운 교훈을 많이 들었다. 갈릴리 지방 도처에서 이런 사역의 유적을 볼 수 있었던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베들레헴에서 나시고, 나사렛에서 성장하였으나 그의 전도의 본거지는 갈릴리 바닷가 가버나움이었다.
그는 간혹 예루살렘으로 가신 적이 있으나 그의 공생애의 대부분을 갈릴리에서 보내셨다. 제자들은 갈릴리 지방 도처에서 주의 행적과 교훈의 말씀을 상기할 수가 있었다. 그들이 그리스도의 사역을 처음 대하였을 때 확실히 경이와 감격을 가졌으나, 그 뜻은 분명히 알지 못하였다. 우선 놀랍고 좋아서 따라 다닌 것뿐이다.

그리스도의 교훈은 단순한 윤리나 수양을 위해서 주신 것이 아니며, 이적 역시 단순한 이적을 위한 것은 아니었다. 그리스도의 이적의 목적은 요한복음 20장 31절에서 밝힌 대로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였다. 그런데 이러한 그리스도의 생애와 교훈은 그리스도의 부활사건을 통해서 바라다 볼 때 분명해졌고 그 의미가 더 새로워졌다.


3). 이 말씀을 우리는 재소명의 뜻으로 이해할 수 있다.

부활하시고 제자들을 떠나가시는 그리스도는 제자들을 전도사업의 옛 고장으로 모으시고 거기에서 그들로 하여금 그들의 직무를 다시 개시시키려는데 큰 의의가 있었다고 본다.

저는 신학교를 졸업하고 몇 달 동안 제 부친이 세운 개척교회에 가서 봉사를 해 준 경험이 있다. 그 수개월의 농촌생활은 저에게 참으로 소중한 교훈과 체험을 갖다 준 기회였다. 교회는 언제나 거대한 수와 돈과 조직에서 안일해지려는 그리고 통계를 자랑하려는 유혹을 극복해야 한다. 그리고 갈릴리와 같이 진실되고 소박한 면모를 견지해야 한다. 작은 데서 큰 데로, 가까운 데서 먼데로, 소박한 데서 깊은 데로, 양보다 질을 추구해야 한다. 이것이 그리스도의 전도 방법이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사역의 원리를 터득해야 하겠다. 주께서 어디서 시작하신지를 명백히 깨닫고 우리도 거기에서 우리의 일을 다시 시작해야 한다. 갈릴리로 돌아가 잃어버린 소명, 잃어버린 열심, 잃어버린 책임, 잃어버린 충성과 소망을 되찾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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