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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유혹 / 창 39: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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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문: 창 39:7~20
▶ 제목 :  유혹 


꿈이 있는 자에게는 시련과 아울러서 유혹도 찾아옵니다.

요셉의 생애를 통해서 그것을 볼 수 있는데 요셉에게는 말할 수 없는 시련도 있었습니다.

그의 형들에게 미움을 받아서 버림을 받고 애굽에 노예로 팔리게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그는 그 시련을 잘 극복했습니다. 지난 시간에 말씀드린 것처럼 하나님과 가까이 하는 삶을 살고 주어진 현재의 일을 충실하게 하면서 기회 있는 대로 하나님을 드러내는 삶을 살았습니다.

자신도 형통한 삶을 살고 주위의 사람들에게도 하나님의 복을 끼쳤던 것을 알고 있습니다.

이렇게 시련만으로 다 끝나는 줄 알았지만 요셉의 생애는 유혹도 있었습니다.

특별히 요셉에게는 이성으로부터의 엄청난 유혹이 있었습니다.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여러 종류의 유혹을 겪지만 이성의 유혹은 아주 교활하고 이기기 어려운 종류의 유혹입니다.

미국의 어떤 패스트 푸드점에서 지배인이 그 날의 수입을 은행에 예금하려고 음식을 싸주는 봉지에 돈을 넣어놓았습니다. 그런데 다른 직원이 드라이브인해서 받아가는 곳의 남녀를 보고 그것이 그들에게 줄 음식인 줄 알고 그들에게 건네주었습니다.

남녀가 공원에서 음식을 먹으려고 봉지를 열어보니 음식이 아닌 돈뭉치가 들어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돈에 있어서 정직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것을 가지고 음식점에 왔더니 그곳에는 경찰차와 tv카메라맨들이 와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 지배인이 신고를 한 것이었습니다. 이 사람들이 지배인에게 돈을 돌려주자 지배인이 너무 기뻐하면서 고마워하여 그들을 뉴스에 나오게 하려고 카메라맨에게 데려가려고 하니까 이분들이 난색을 하면서 부부가 아니라고 하면서 거절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돈에는 정직하고 깨끗한 사람이지만 이성적으로는 그렇지 못한 일들이 많이 있습니다.

특별히 요즘 이 시대는 성적으로 굉장히 문란해져 있는 상황입니다. 사람들이 성적인 면에 있어서 쉽게 넘어가려고 하는 경우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깨끗한 그릇을 쓰십니다. 요셉이 하나님 앞에 쓰임을 받았던 것은 그가 젊어서부터 깨끗한 삶을 살았기 때문입니다.

요셉은 이성적인 유혹을 뿌리치기가 어려웠을 것입니다. 그의 나이가 27쯤 되었을 것입니다.  집 떠난 지 10년쯤 되었을 때, 한참 원기 왕성한 젊은 때이고 객지생활하면서 얼마나 정에 굶주렸겠습니까?

그런데 유혹하는 사람은 자기 집의 여주인입니다. 그 당시 노예들은 주인의 소유물이었습니다. 여자 노예인 경우에는 남자 주인의 ,남자 노예인 경우엔 여자 주인의 성적인 놀이개감으로 쓰일 때가 많이 있었습니다. 

그것을 거절하여 노예가 주인에게 잘못보이면 완전히 끝나는 것입니다. 거절하기 어려운 유혹이었고 오히려 그것을 받아들이면 여주인의 사랑을 입어서 자기 자신이 편할 수 있어서 굉장히 피하기 어려운 유혹이었습니다.

그런데 요셉이 그 유혹을 이깁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사용되고 그의 꿈을 이루어 가는 것을 우리가 보고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들도 요셉처럼 꿈을 가지고 사는 사람들이고 하나님께서 사용할 사람들입니다.

지난 시간에 말씀드린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사람을 낚는 어부로 쓰기를 원하시고 장차 궁창의 별과 같이 빛나는 존재로 세우시기를 원하십니다.

우리도 요셉처럼 유혹을 이겨내야 하고 깨끗한 그릇이 되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어떻게 해야 이런 불같은 유혹에서 벗어날 수 있으며 특별히 요즘같이 성적으로 문란한 시대에 어떻게 이성의 유혹을 이겨낼 수 있는지 요셉의 모습을 보면서 몇 가지 교훈을 얻고자 합니다.

요셉이 이렇게 견디기 어려운 유혹에서 이길 수 있었던 첫 번째 비결은 그가 거절 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는 것입니다.

7절에 그 후에 그 주인의 처가 요셉에게 눈짓하다가 동침하기를 청하니 요셉이 거절하며 자기 주인의 처에게 이르되 ....

요셉은 유혹을 받을 때에 즉각적으로 거절했습니다.

이러한 거절이 유혹에 말려들어가지 않을 수 있는 비결이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들도 유혹을 이기려면 처음부터 거절할 줄 알아야 됩니다.

어떤 사람이 사막에서 낙타를 타고 여행을 하다가 천막을 치고 잠을 자게 되었습니다.

천막 문에서 소리가 나게 되어 깨어보니 낙타가 머리를 천막 안으로 집어넣고 있습니다. 낙타가 너무 춥다고 머리만 천막 안으로 집어넣겠다고 해서 승낙을 하고 자는데 나중에는 두 다리와 어깨까지 들어와 있는 것이었습니다. 이왕 몸이 들어왔으니 허락해달라고 낙타가 사정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더니 낙타의 몸이 점점 더 천막 안으로 들어오더니 나중에는 주인을 발로 툭툭 치면서 이곳이 너무 좁으니 주인님이 나가는 것이 좋겠다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처음부터 거절할 것을 거절하지 않으면 말려들 수 있다는 것을 우화적으로 나타낸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유혹이라는 것은 처음에는 적은 것부터 시작을 하는데 거절하지 않으면 점점 더 부풀어지고 결국은 그 유혹에 넘어가게 됩니다.

우리는 거절할 줄 알아야 합니다. 우리의 자녀에게도 거절하는 것을 가르쳐야 합니다.

미국의 학교에서는 아이들에게 제일 먼저  say NO를  가르칩니다. 유괴범들이 아이들을 유혹하거나 친구들이 담배를 피워보라고 하면 say NO하라고 가르칩니다.

심지어는 가까운 사람이라도 몸에 손을 대고 성추행을 하려하면 say NO하라고 가르칩니다.

그래서 아이들이 학교에서 제일 먼저 NO를 배워 와서 부모들이 정당한 것을 말해도 NO를 가장 잘 씁니다.

한국의 가정이나 학교에서는 NO보다는 YES만을 많이 가르치는 것 같습니다.

이러한 교육을 많이 받았기에 직장에서도 NO할 줄을 모릅니다. 이런 분들이 나라를 다스릴 때 보면 통치자에게 아부만 하고 YES MAN으로만 삽니다.

그러다가 유혹이 올 때도 거절하지를 못합니다.

성경의 모세와 같은 사람도 성장하여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때에 그것을 거절하지 않았는데 그것을 거절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좋아했다고 히브리서 11장 24절에 말씀하고 있습니다.

다니엘도 왕이 먹는 진미와 포도주로 자기를 더럽히지 않기를 청하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다 우상의 제물인줄 알고 먹지만 다니엘과 세 친구는 먹을 수 없다고 거절할 줄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아브라함도 조카 롯을 위해 전쟁에 나갔다가 많은 물질을 가지고 돌아왔습니다. 소돔 왕이 사람은 우리에게 주고 물질은 가져가라고 했을 때에 아브라함은 하나님께 드릴 십분의 일만 멜기세덱에게 드린다고 하며 거절합니다.

여러분 , 우리가 이성적인 유혹이 올 때도 NO할 줄 알아야 이겨낼 수가 있습니다.

요셉은 그 여주인이 자기에게 청하는 것이었지만 거절할 줄 알았습니다.

두 번째로 요셉은 자기에게 허락된 것과 허락되지 않은 것을 구별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사람들이 유혹에 빠지고 죄를 짓는 대부분의 경우를 보면 자기에게 주어진 범위 밖으로 나가기 때문입니다.

요셉은 자기에게 주어진 것과 주어지지 않은 것을 분명하게 구분하고 있었습니다.

8절과 9절에서 요셉이 거절하며 자기 주인의 처에게 이르되 나는 나의 주인이 가중 제반 소유를 간섭지 아니하고 다 내 손에 위임하였으니 이 집에는 나보다 큰 이가 없으며 주인이 아무것도 내게 금하지 아니하였어도 금한 것은 당신뿐이니 당신은 자기 아내임이라 그런즉 내가 어찌 이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득죄하리이까

무슨 말입니까? 요셉은 집안의 모든 것을 마음대로 할 수 있고 처분할 수 있는 권한을 주인이 자기에게 다 맡겨주었지만 여주인만큼은 금한 사람인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는 자기에게 허락된 것과 허락되지 않은 것을 구분할 줄 알고 책임의식이 분명했습니다.

오늘날 우리들도 우리에게 허락된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잘 분별할 때 유혹에서 이길 수 있습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자기에게 허락되지 않은 것에 욕심을 내고 탐하기 때문에 유혹에 빠지게 되는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처음에 범죄할 때에도, 하나님께서 동산에 있는 모든 실과를 다 먹도록 하시고 동산 중앙의 선악을 알게 하는 열매는 먹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하와가 금하신 열매를 자꾸 탐하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을 뱀이 알고 유혹을 하여 결국 그것을 따먹음으로 해서 범죄하게 되지 않습니까?

하나님은 우리를 위해서 많은 좋은 것을 다 주셨습니다. 우리로 하여금 마음껏 누리도록 하십니다. 그런데 우리 인간이 하나님이 허락하신 것으로 만족하지 않고 하나님이 금하신 것을 넘보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다 주시지 않으시고 한 가지를 금하도록 제한을 해 놓으십니다. 그것이 있음으로 인간의 본분을 지키고 위치를 지키기 때문입니다. 그 제한마저 없으면 우리가 하나님과 같이 되려고 회복할 수 없는 곳까지 가게 되니까 금하시는 것이 있습니다.

사회생활을 하면 법과 규칙이 있고 교회 생활도 질서가 있습니다. 자신이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들을 잘 지키는 훈련이 되어 있어야 합니다.

미국의  잘 교육된 가정의 자녀를 보면 배울 것이 많습니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 자기의 책임에 대한 교육을 철저히 시키고 자기 것과 아닌 것을 철저히 구분하도록 훈련을 합니다.

한국에서는 집에서 자기 것에 대한 훈련을 잘 하지 않습니다.

부모님의 것도 자기의 것처럼 여기고 살지 않습니까? 자기 것은 절대로 양보안하고 남의 것도 자기 것이라고 생각하며 삽니다.

일을 하는데 있어서도 자신이 할 것과 남이 할 일에 대한 구분이 분명치 않고 훈련이 잘 되어 있지 않습니다. 사회생활이나 직장생활을 할 때에도 자기 것과 남의 것에 대한 분명한 구분들이 없기 때문에 공과 사를 구분하지 못합니다. 이런 사람들이 커서 나라를 다스리게 되면 공금횡령도 하고 또한 그것을 잘못된 것으로 생각하지도 않습니다.

나라 돈도 내 것 내 돈도 내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러나 요셉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아마도 요셉은 어려서부터 그러한 훈련이 되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가 형들의 잘못을 말하는 정직한 성품을 가지고 있었고 요셉은 자기 것과 남의 것을 잘 구분할 줄 알고 주인이 자기에게 모든 것을 다 맡겨주어도 자기가 받을 것 외에는 전혀 탐을 내지 않았습니다. 주인이 모든 것을 다 맡겨주면 우쭐해서 모든 것을 다 자기의 것으로 생각하기 쉬운데 요셉은 모든 것이 다 맡겨졌어도 주인의 아내만큼은 범위 밖에 있는 것을 알았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성경에 보면 그런 말씀들이 많이 나옵니다.

딤전 6장에 그러나 지족하는 마음이 있으면 경건이 큰 이익이 되느니라 우리가 세상에 아무것도 가지고 온 것이 없으매 또한 아무 것도 가지고 가지 못하리니 우리가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 즉 족한 줄로 알 것이니라

부하려하는 자들은 다시 말해서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으로 족하게 여기지 아니하고 더 부하려 하는 사람들에게 시험과 올무와 여러 가지 어렵고 해로운 정욕에 떨어지나니 곧 사람으로 침륜과 멸망에 빠지게 하는 것이라

물질적으로도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으로 만족할 줄 알아야 합니다. 자꾸 그 이상의 것을 넘보고 내 것이 아닌 것을 내 것으로 삼으려고 한다면 유혹에 빠지게 됩니다.

그러다 보면 뇌물도 받게 되고 공금 횡령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성적인 면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잠5장에 너는 네 우물에서 물을 마시며 네 샘에서 흐르는 물을 마시라 

무엇을 의미하는 말씀입니까?  자신에게 준 아내로 만족하라는 것입니다.

18절에 네 샘으로 복되게 하라 네가 젊어서 취한 아내를 즐거워하라 그는 사랑스러운 암사슴 같고 아름다운 암노루 같으니 너는 그 품을 항상 족하게 여기며 그 사랑을 항상 연모하라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연약함을 아시고 우리가 성적인 존재인 것을 아시기 때문에 남편과 아내를 주십니다. 그리고 그 안에서 마음껏 성을 즐기고 사랑하며 살라고 결혼관계를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 안에서 충실하면서 하나님이 주시는 애정을 충분히 누리면 되는데 엉뚱하게 다른 데 가서 만족하려고 하니까 문제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요셉은 자기에게 허락된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잘 분별하면서 살았습니다. 요셉이 시험에서 이길 수 있었던 것은 이런 훈련이 잘 되어 있어서만도 아닙니다.

아무리 자기 것에 대한 구별훈련이 잘 되어 있고 책임의식이 분명해도 유혹 특별히 성적인 

유혹은 교묘하고 견디기가 어려운 것입니다. 그런데 요셉이 이것을 이겨낸 데에는 또 한 가지 비결이 있으니 그가 하나님 앞에서 사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신전의식이 있었던 것입니다.

9절 하반절에 그런즉 내가 어찌 이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득죄하리이까

요셉은 책임의식이 강한 사람이었기에 주인을 생각해서도 그럴 수 없고 신전의식이 있었기에 유혹을 이겨냈습니다. 요셉은 하나님이 자기 앞에 계시다는 것을 알았고 하나님 앞에서 살기를 힘썼습니다.

우리가 만일 요셉과 같은 신전의식을 가지고 있다면 많은 유혹으로부터 이겨낼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에게는 하나님 앞에서 산다는 신전의식이 없습니다.

집에 손님이 오시면 그 손님들 앞에서 얼마나 싹싹하고 친절하게 행동합니까?

그 손님을 의식해서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육체를 가진 우리들은 보는 것에 능하기 때문에 보이는 사람은 의식하면서 보이지 않는 하나님은 의식하지 않는 것이 우리의  맹점입니다.

보이지 않지만 언제나 우리 앞에 계시는 하나님을 의식하면서 살아갈 때에 많은 유혹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어떤 집에 가면 이런 글이 쓰여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이 집의 주인이시오 식사 때마다 보이지 않는 손님이시며 모든 대화에 말없이 듣는 이시니라

우리 집에 보이는 식구들만 있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주인인 예수 그리스도께서 영으로 늘 계십니다.

그분이 우리의 모든 행동을 보고 계시고 우리의 대화를 듣고 계십니다. 이런 의식을 가지고 가정생활, 직장생활, 교회생활을 하게 되면 많은 유혹을 이겨낼 수 있는 것입니다.

사람들에게 이런 신전의식이 없습니다. 교회 나오고 예수 믿는다고 하면서도 하나님을 의식하지 않고 산다면 그것이 무슨 신앙생활이겠습니까?

여러분 시편139편에 여호와여 주께서 나를 감찰하시고 아셨나이다 주께서 나의 앉고 일어섬을 아시며 멀리서도 나의 생각을 통촉하시오며 나의 길과 눕는 것을 감찰하시며 나의 모든 행위를 익히 아시오니 여호와여 내 혀의 말을 알지 못하시는 것이 하나도 없으시니이다 주께서 나의 전후를 두루시며 내게 안수하셨나이다 이 지식이 내게 너무 기이하니 높아서 내가 능히 미치지 못하나이다 내가 주의 신을 떠나 어디로 가며  주의 앞에서 어디로 피하리이까 내가 하늘에 올라갈지라도 거기 계시며 음부에 내 자리를 펼지라도 거기 계시니이다 내가 새벽날개를 치며 바다 끝에 가서 거할지라도 거기서도 주의 손이 나를 인도하시며주의 오른 손이 나를 붙드시리이다

우리가 이런 의식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어디를 가든지 하나님께서 보고 계시며 붙잡고 계시니 함부로 말하거나 행동하여 하나님 앞에 득죄할 수 있겠습니까?

또한 요셉은 유혹에 대해서 틈을 주지 않았습니다.

10절에 여인이 날마다 요셉을 청하였으나 요셉이 듣지 아니하여 동침하지 아니할 뿐더러 함께 있지도 아니하니라

유혹에 빠지지 않으려면 무엇보다도 먼저 거절하는 것을 배워야 하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허락한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구분해서 살아야 합니다, 더 나아가서 우리에게는 신전의식이 필요합니다.

그다음에 실제로 꼭 기억할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러 면으로 우리를 공격해 옵니다.

이 유혹에 틈을 주지 않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어거스틴은 새가 머리 위로 지나는 것을 어떻게 할 수는 없어도 그 새가 머리 위에 둥지를 틀게 하는 것은 자기의 책임이라고 말했습니다. 

요즘 인터넷을 통해서 음란 싸이트들이 얼마나 범람합니까? 메일만 열면 필요한 메일 보다는 음란싸이트 광고 메일이 얼마나 많이 옵니까?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얼마나 정신을 차리고 살아야 하는지 모릅니다. 여러분 자녀들의 인터넷 속에 원치 않는 음란 사이트들이 찾아오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런 것에 틈을 주지 않기 위해서 거절할 것을 거절하고 닫을 것을 닫으면서 빠져들지 않도록 세심한 노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음란 사이트 한 번 클릭하면 거기에 빨려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요셉처럼 우리가 틈을 주지 않도록 눈길도 주지 않고 귀도 막고 함께 있지도 않는 노력과 태도가 필요합니다.

마지막으로 요셉은 빠져나올 수 없을 때에는 도망쳤습니다.

11절에 요셉이 시무하러 그 집에 들어갔더니 그 집 사람은 하나도 거기 없었더라 그 여인이 그 옷을 잡고 가로되 나와 동침하자 요셉이 자기 옷을 그 손에 버리고 도망하여 나가며

우리가 아무리 피하려고 해도 붙잡힐 때가 있습니다. 막다른 골목에 도달한 것처럼 아무도 없을 때 붙잡히게 됩니다.

그럴 때 요셉은 도망쳤습니다. 도망침으로 그는 누명을 쓰고 더 많은 어려움을 겪게 됩니다. 그래도 그는 도망쳤습니다.

우리가 이 시대를 살면서 도망쳐야 하는 일들이 많이 있습니다.

직장에서 ,사회에서 도망쳐야 하는 유혹들이 얼마나 많이 있는지 모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은 시련도 많지만 유혹도 많습니다.

제가 신학교에 들어가니까 교수님께서 ‘여러분들은 목사가 될 꿈을 가지고 여기까지 오셨는데  목회를 해 나가시면서 이겨내야 할 시험이 있는데 물질의 시험이요, 이성의 시험이요,명예의 시험이다’고 말씀하셨던 것이 생각납니다.

처음에 그 얘기를 들었을 때에는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신학교에 왔는데 겨우 그런 것으로 시험에 들겠는가 하고 너무 유치하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지나고 보니까 그게 아니었습니다. 금년이 목회를 시작한지 30년이 되는데 지나오면서 생각해보니 그 교수님의 말씀이 유치한 것같 으면서도 목회를 하는 길에서 실제적인 돈의 유혹과 이성의 유혹과 명예의 유혹이 있었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어찌 그것이 목회자들뿐이겠습니까?

여러분들이 일하는 직장에서도 똑같은 유혹이 있고 이 세상에 나가면 유혹들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요즘은 TV나 인터넷을 통해서 우리를 쉽게 유혹해 오는데 그런 유혹 가운데서 우리가 막아내기 어려운 유혹이 성적인 유혹입니다.

요셉이 이러한 유혹을 이겨냈던 비결을 생각하면서 우리들도 거절하고 우리에게 허락된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철저히 구분하며 언제나 하나님 앞에서 사는 신전의식을 갖고 유혹에 틈을 주지 않는 지혜를 가져야 하겠습니다.

혹시라도 우리가 어떤 유혹에 빠져든 것처럼 여겨지면 빨리 그곳에서 도망쳐 나오고 하나님의 도움을 힘입어서 벗어날 수 있는 우리가 되어서 요셉처럼 꿈을 이루고 하나님께서 사용하는 복된 사람들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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