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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중생과 부활 / 요 6:39~40, 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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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생과 부활
요한복음 6장 39~40, 44절

사형집행장에서 근무했던 박효진 장로님의 간증책을 보면, 유두영이란 사람은 아주 잔인한 살인범인데 새까만 눈썹이 맞닿은 듯하고 어깨가 딱 벌어진 것이 마주 보기만 해도 소름이 끼쳤는데, 어느 날 불러다가 상담을 하는데 살기가 등등해서 냉소적인 태도로 쳐다보고 있더랍니다. 기도하자고 하니까 눈을 빤히 뜨고 째려보더랍니다. 그래도 얼음이 언 맨바닥에 무릎을 꿇고 기도하다가 성령의 역사로 유두영의 얼굴을 얼싸안고 울었답니다. 그랬더니 그 완악한 유두영도 마음문을 열고 울기 시작하더랍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영접했습니다. 사형집행 날이 되면 사형수들 대부분이 “난 안가, 죽기 싫어.” 한다던지 “어머니, 엄마” 하며 안 끌려가려고 발버둥을 치거나, 바지에 대소변을 보며 벌벌 떨기도 하고 별별 사람이 다 있는데 유두영은 예수님 믿고 거듭난 후부터는 만나는 죄수들마다 “죽을 준비 돼 있어?” 하며 열심히 전도했다고 합니다. 사형집행 날이 되어 유두영이도 끌려가는데 “할렐루야, 할렐루야”를 연발하더랍니다. 그래서 “유두영이 겁이 나는 모양이다”라고 생각하는데 마침 박 장로님 앞을 지나가게 되었을 때, “두영아, 잘 가. 먼저 가.”하면서 더듬거렸더니 도리어 “예, 장로님 먼저 갑니다.” 하고 힘차게 말하더랍니다. 전신에서 풍겨 나오는 영적 권위와 능력 때문에 흠칫 물러서게 되더랍니다. 사형장에 도착해서 소장님이 “오늘 법무부 장관의 명령에 따라 유두영 씨의 사형을 집행합니다.” 하고 떨리는 목소리로 집행 선고를 했더니 유두영은 “아멘” 하더랍니다. 소장이 이름, 생년월일 등 인정 신문을 끝내고 끔찍한 죄상을 요약해 읽어 가는데 유두영이 손을 쳐들더니 “소장님, 부탁이 있습니다.” 하니까 모두 놀라는 표정으로 쳐다보았습니다. “소장님, 지금 읽으시는 그 죄를 제가 다 지었습니다.” “그러나 그 죄는 제가 하나님을 알기 전에 지은 죄였습니다. 제가 하나님을 조금만 더 일찍 알았더라면 절대로 그런 죄를 짓지도 않았을 것이고, 오늘 이와 같이 사형장의 이슬로 사라지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늦게나마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께서 제 죄를 다 용서해 주셨습니다. 기억도 아니하신다고 약속해 주셨습니다.” 하고 말할 때에 형장 안이 숙연해지더랍니다. “이제 예수님 믿고 8년이란 긴 세월을 살다가 아버지 나라도 가게 되었는데 하나님이 다 용서해 주시고 기억도 아니하시는 그 더러운 죄를 다시 듣고 가기가 싫습니다. 용서 받은 깨끗한 영과 몸 그대로 하늘나라에 갈 수 있도록 그 부끄러운 죄를 읽지 말아주시면 좋겠습니다.” 단아하면서도 당당한 목소리로 하는 말에 소장은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이지만 눈에 눈물이 흐르더랍니다.

임종 예배를 드리는데, 유두영이 요한복음 3장 16절을 외우고 자기의 온몸을 장기가 필요한 사람에게 다 기증한다고 하더랍니다. “유언을 남기겠느냐.”고 물으니까 잠시 있더니 “소장님, 그리고 검사님, 제 마지막 부탁은 여기 계신 모든 분들이 다 제가 믿는 예수님을 믿으시는 것 하나밖에 없습니다.”라고 하더랍니다. 수건으로 얼굴을 가리우고 밧줄 올가미를 목에 거는데 어디선가 찬송소리가 들려오는데 누가 부르나 하고 살펴보니까 바로 유두영이 부르더랍니다. “하늘 가는 밝은 길이 내 앞에 있으니 슬픈 일을 많이 보고 늘 고생하여도 하늘 영광 밝음이 어둔 그늘 헤치니…” 찬송을 부른 뒤 “덜커덩” 하고 지하실로 떨어지더랍니다.


  1. 예수의 부활은 우리에게 영생과 부활을 보증하셨습니다.

  유두영 같은 잔인무도한 죄인이 죄사함 받고 천국에 갈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예수님께서 만민의 죄를 대속하여 십자가에 피흘려 죽으셨기 때문이며, 예수님이 3일 만에 무덤 문을 박차고 죽음에서 부활하셨기 때문입니다. 지난 금요일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고 오늘, 3일 만에 사망 권세를 이기시고 부활하셨습니다. 역사가 시작된 이래 이보다 더 큰 기쁨의 사건이 어디 있겠습니까? 이 세상에 어떤 종교의 창시자도 죄의 문제를 해결해 준 사람도 없고, 죽음의 문제를 해결해 준 사람도 없습니다. 기독교는 부활의 종교입니다. 부활 신앙이 없으면 그 사람은 구원받지 못한 사람입니다. 로마서 10장 9절의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얻으리니”라는 말씀은 “예수님의 부활을 믿지 않으면 구원받을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부활 사건은 역사적 사건이지 세상을 살아가는데 어떤 의미를 찾자는 게 아닙니다.

  ① 부활은 신약 성경의 중심 교리이며 초대교회 설교의 중심이었습니다. 부활은 기독교의 본질적 요소입니다. 예수님은 신성을 가진 하나님의 아들이시요, 곧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부활 사건은 당연한 사건입니다.
 
  ② 부활은 예수님의 중심 메시지입니다.
  본문, 요한복음 6장 39절에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이 세상에 오신 목적은 믿는 자를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것, 즉 부활이라고 하셨습니다. 또 40절에도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내가 이를 다시 살리리라 하시니라”고 하셨습니다. 즉 예수님을 믿는 자들이 영생을 얻었다가 마지막 날 즉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 생명의 부활을 얻게 하는 것이 이 땅에 오신 목적이란 말씀입니다. 44절에도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이끌지 아니하면 아무라도 내게 올 수 없으니 오는 그를 내가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리라”고 하셨습니다. 즉 세상 끝 날,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에 생명의 부활을 얻게 하기 위해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1장 25~26절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고 하셨습니다. 부활 신앙을 성경에서 빼 버리면 계란에서 노른자를 빼 버린 것과 같은 것입니다.

  ③ 부활은 사도 바울의 중심 메시지입니다.
  사도 바울은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 변화된 뒤부터는 늘 십자가와 부활을 전했습니다. 고린도전서 15장, 이 기나긴 장 전체를 통해서 부활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습니다. “누가 묻기를 죽은 자들이 어떻게 다시 살며 어떠한 몸으로 오느냐 하리니, 어리석은 자여 너의 뿌리는 씨가 죽지 않으면 살아나지 못하지 않느냐”고 하셨습니다. 봄에 옥수수나 콩을 심으면 죽어 없어지고 맙니까? 다시 수십 배, 수백 배로 다시 사는 것을 보면서 어찌하여 사람은 죽음으로 끝난다고 생각하느냐, 어리석은 사람들아! 하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카이로에서는 3,000년 된 완두콩이 살아나서 열매를 맺었고, 불란서에서는 2,000년 된 무덤에서 찾아낸 꽃씨를 심었더니 싹이 나고 잎이 나서 꽃이 피었습니다.
  고린도전서 15장 14절에 “그리스도께서 만일 다시 살지 못하셨으면 우리의 전파하는 것도 헛것이요 또 너희 믿음도 헛것이며”라고 했고, 15절에서는 “…만일 죽은 자가 다시 사는 것이 없으면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시지 아니하셨으리라”고 했고, 17~18절에 “그리스도께서 다시 사신 것이 없으면 너희의 믿음도 헛되고 너희가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요 또한 그리스도 안에서 잠자는 자도 망하였으리니”, 또 19절에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바라는 것이 다만 이생 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리라”고 하셨습니다. 즉 부활과 내세가 없다면 예수님 믿는 사람이 제일 불쌍한 사람이 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부활을 믿고 영생, 천국의 소망이 있기 때문에 어떤 고난도, 희생도 감수하는 것입니다. 우리 구원받은 성도들은 죽을지라도 재림 나팔소리가 들릴 때 썩지 아니할 몸으로 다시 살아나고, 그 때에 살아 남아 있던 자들은 번데기가 나비가 되듯이 홀연히 부활의 몸과 같이 변화되어 들림 받게 된다고 설교하시는 것입니다. 바울의 전 메시지의 중심은 부활과 영원한 천국입니다.

  ④ 부활은 수제자 베드로의 중심 메시지입니다.
  베드로를 비롯한 전 제자들의 설교 중심은 바로 부활입니다. 사도행전 2장 23~24절에도 “…못박아 죽였으나 하나님께서 사망의 고통을 풀어 살리셨으니 이는 그가 사망에게 매여 있을 수 없었음이라” 했고, 사도행전 2장 31~32절에도 “미리 보는 고로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을 말하되…이 예수를 하나님이 살리신지라”고 했고, 사도행전 3장 14~15절에“너희가 거룩하고 의로운 자를 부인하고 도리어 살인한 사람을 놓아 주기를 구하여 생명의 주를 죽였도다 그러나 하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셨으니 우리가 이 일에 증인이로라”고 외쳤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힐 때 제자들은 겁에 질려 다 도망가 숨었으나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 다음에는 환희에 차서 순교했습니다. 유대인 학자, 핀카스 라피데(Pinchas Lapide)라는 사람은 “예수의 부활”이란 책에서 “골고다의 죽음 직후 예수님의 부활이 없었더라면 기독교는 존재할 수 없었을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옳습니다. 부활이 없고 영생, 천국이 없다면 고생하며 핍박을 받으며 예수님을 믿을 필요가 어디 있겠습니까? 4세기 경의 그레고리 나지안첸(Gregory Nagiangen)은 “인간을 다시 살리기 위해서 육신을 입고 돌아가신 하나님”이라고 했습니다.


  2. 부활은 거듭난 자(重生)에게만 일어납니다.

  진심으로 예수님을 믿고 영접하지 않고 건성으로 교회에 다닌 사람이 부활을 기대하는 것은 무정란을 부화기에 넣고 병아리가 되기를 기다리는 것과 같습니다. 전에 말씀드렸지만 계란에는 무정란, 유정란 두 가지가 있습니다. 무정란은 수탉이 없이 암탉만 가두어 키워서 낳게 한 계란입니다. 유정란은 암탉이 수탉과 함께 살면서 낳은 알입니다. 깨뜨려 보면 그 안에는 생명의 끈이 있습니다. 이런 알은 건강에 좋기 때문에 값도 비쌉니다. 그런데 병아리가 되는 것은 반드시 유정란이어야 됩니다. 무정란은 그 안에 생명의 씨가 없기 때문에 절대로 병아리로 부화하지 않습니다.

  계란이 한 번 태어나서 닭이 될 수 없고,  따뜻한 열을 가해서 다시 한 번 태어나야 닭이 되듯이 사람은 반드시 두 번 태어나야 하나님도 볼 수 있고 천국에도 들어갈 수 있다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요한복음 3장 3~6절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하실 때, 니고데모가 “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날 수 있삽나이까 두번째 모태에 들어갔다가 날 수 있삽나이까” 하고 질문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성령으로 난 것은 영이니”라고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즉 육신이 한 번 태어나고, 성령의 역사로 영혼이 다시 한 번 태어나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거듭나지 못한 사람은 영혼이 죽은 상태에 있기 때문이고(에베소서 2장 1~3절, 로마서 1장 18~32절), 마귀를 따르는 존재이기 때문이고(에베소서 2장 2절), 하나님의 진노 아래 있기 때문입니다(에베소서 2장 3절). 또 부패하고 타락한 인간이기 때문입니다(에베소서 2장 3절, 예레미아 17장 9~10절, 예레미아 13장 23절). 육신이 태어날 때는 세상에서만 살 수 있는 육신의 생명을 갖게 되고, 영혼이 태어날 때는 천국에서 영생할 수 있는 영생을 얻게 됩니다. 그러므로 거듭나지 않으면 결코 부활을 알 수 없고 천국에도 들어갈 수 없습니다. 
 

  3. 어떻게 거듭날 수 있을까요.

  요사이 복제동물, 복제인간을 만들 때 그 사람 혹은 동물에서 DNA를 떼어 접합시키듯이 영적으로 기독교의 신적 DNA를 심령에 받아들여야 합니다. 베드로후서 1장 4절에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여 신의 성품에 참예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하셨으니”라고 한 말씀대로 예수님을 믿고 영접할 때 우리는 신의 성품을 갖게 됩니다. 요한복음 10장 35절에 “성경은 폐하지 못하나니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사람들을 신이라 하셨거든” 하고 말씀했습니다. 즉 예수님을 믿고 영접할 때 예수님과 같이 신의 성품을 갖게 되고 영생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장 12절에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라고 한 말씀대로 예수님이 나를 위하여 피흘려 죽으시고 부활하심을 믿고 영접하며 입으로 고백하면 됩니다. 요한일서 5장 12절에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느니라”, 요한일서 3장 2절에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지금은 하나님의 자녀라 장래에 어떻게 될 것은 아직 나타나지 아니하였으나 그가 나타내심이 되면(예수님이 재림하실 때) 우리가 그와 같을 줄을 아는 것은 그의 계신 그대로 볼 것을 인함이니”라고 하셨습니다.

  성경 전체가 기록된 목적, 특히 요한복음을 기록한 목적은 멸망할 죄인들이 거듭나서 영생을 얻었다가 마지막 날에 생명의 부활을 얻게 하는데 있습니다. 요한복음 20장 31절에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고 하셨습니다.

  이 거듭나는 역사는 인간의 노력이나 도덕 선생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역사로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말씀을 들을 때에 마음속에 성령의 감동이 오는 것을 묵살해 버리면 구원받을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성령을 거역하고 훼방하는 죄는 용서 받을 수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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