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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여호와 삼마는 행복입니다 / 겔 4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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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에스겔 48:35
제목:여호와 삼마는 행복입니다.


  우리가 일상생활 중에서 사용하는 말 중에 만일(If)이라는 말과 왜(Why) 라는 단어는 적게 사용할수록 좋다고 보아집니다. 만약이라는 말은 후회하는 말이고, 왜? 라는 말은 시비가 붙을 수 있는 말이기 때문입니다. 지난 2월 18일 대구지하철 화재사건을 놓고도 만일 기관사가 마스터키를 빼지 않았더라면 만일 1080호의 전동차가 지령실에서 온 교신을 받고 중앙로역에 진입하지 않았더라면 하는 생각입니다. 만일 우리들이 평소에 안전에 대한 관심을 더 가졌더라면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을 것인데 하는 아쉬운 마음을 갖게 됩니다.

만일이라는 말이 없어야 합니다. 만일 “여호와 삼마가 있었더라면” 우리는 참으로 복된 사람으로 살게 됩니다.   여호와 삼마는 ‘하나님이 여기 계시다’ 라는 말입니다.

이스라엘이 땅을 분배하고 성읍을 구축한 후에 이곳 이름을 ‘여호와 삼마’ 라고 하라는 것입니다. 성을 분배하였어도 하나님이 여기에 계셔야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 삶의 주변에 여호와 삼마가 되어야 합니다.


여호와 삼마는 무엇을 의미합니까?

1. 하나님의 사랑을 말합니다.

사람이 언제 행복합니까? 소유에서보다는 사랑 받을 때 행복함을 느끼게 됩니다. 아내는 남편이 나만 사랑한다고 느꼈을 때 그보다 더 행복할 수는 없습니다. 사랑이 무엇입니까? 주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맞습니다. 사랑하지 않으면 줄 수 없습니다. 사랑 없이 주는 것은 어떤 면에서 도적 맞는 거와 같습니다. 사랑하지 않고 줄 때에 얼마나 아깝습니까? 사랑은 용서하는 거라고 말합니다. 그렇습니다. 사랑이 없기에 용서하지 못합니다. 원수를 갚으려고 합니다. 인종차별이 심할 때에 어느 백인이 정원에 앉아서 시원한 바람을 쏘이면서 맥주를 마시고 있습니다. 그때 지나가던 인디언 한 사람이 마침 배가 고프고 목이 말라서 물 좀 달라고 요청하였습니다. 그 백인이 없어 그럽니다. 그러면 마시던 맥주 한 잔만이라도 마실 수 있게 해주세요. 그랬더니 인디언 놈한테는 못 줘 그럽니다.

이 말을 듣고 인디언은 힘없이 떠나왔습니다. 그 뒤 몇 일이 지났습니다. 백인이 사냥을 나갔다가 길을 잃고 조난을 당했습니다. 헤매다가 배가 고프고 목이 말라 쓰러져 있는 것을 인디언이 발견하고 자기 집에 그를 데려다가 간호해 주고 죽을 쑤어 먹임으로 정신을 차리게 되었습니다. 그가 눈을 떠보니 자기가 물 좀 달라고 할 때에 거절했던 그 인디언 추장이었습니다. 기가 막혀 깜짝 놀라니까 인디언이 빙그레 웃으면서 하는 말이 당신이 나에게 한 것처럼 했으면 당신은 이세상 사람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라고 하더랍니다. 이것이 사랑입니다.

그러나 진정한 사랑은 같이 있어 주는 것입니다. 임종이 가까운 노인이 병원에 입원해 있습니다. 이제 사경 속에서 병세가 더 악화됩니다. 정신이 몽롱해진 가운데 들리지도 보이지도 않습니다. 이때 간호사가 큰소리로 외칩니다. 할아버지 아드님이 오십니다. 잘 들리지 않는지 반응이 없자 더 큰 소리로 아드님이 오셨습니다. 그렇게도 기다리던 아드님이 오셨다구요. 그 순간에 건장하게 생긴 해병대 복장을 한 청년이 들어옵니다. 이 노인이 청년의 손을 꼭 붙잡았습니다. 이 때 청년은 두 손으로 노인의 손을 꼭 붙잡았습니다. 그리고는 주고받는 대화도 없었습니다. 그때 간호사는 청년보고 피곤하니까 잠시 눈을 붙이라고 해도 그대로 자리에 앉아서 밤을 세웠습니다. 새벽녘이 되어 이 노인은 세상을 떠났습니다. 간호사가 들어와 산소 마스크를 떼고 주사바늘을 뽑고 있는데 이 청년이 묻습니다. 그런데 저 노인은 누구입니까? 간호사가 묻는 말 그러면 이 노인의 아들이 아닙니까? 아닙니다. 그런데 어떻게 해서 노인과 함께 밤을 세웠습니까? 제가 아버지가 위독하시다고 하는 전화를 받고 이 병실 문을 여는 순간 아차 무슨 착오가 생겼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동명이인이 된 나는 노인의 눈빛을 보는 순간 도저히 나는 당신의 아들이 아닙니다 라고 말할 수 없어서 노인의 자리를 지켜야 했고, 끝까지 임종을 지켜 본 것입니다.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는 영혼을 위한 닭고기 수프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무엇이 사랑입니까? 마지막까지 같이 있어주는 게 사랑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내가 너와 세상 끝 날까지 함께 하리라 하셨습니다. 이것이 사랑하신다는 표현입니다. 하나님은 여기에 계십니다. 여러분 곁에 계십니다. 슬픔 중에 있는 우리 곁에 와 계십니다. 실패하였을 때에도 곁에 계십니다. 실망하였을 때에도 곁에 계십니다. 나이가 들면 찾아오는 사람이 적다고 합니다. 그래서 외롭습니다. 나이 많은 부모들이 자식을 기다립니다. 혹시 전화라도 오지 않을까 기다립니다. 그런데 그들은 무관심합니다.

가정에서 소중하게 여기는데 첫째가 손자, 둘째 귀한 사람은 며느리, 셋째는 가장인 아들, 넷째는 애완용 개나 고양이, 다섯째는 식모, 여섯 번째는 부모인 노인이랍니다. 그래서 노인 아버지가 집을 나가면서 아들에게 하는 말 3등 애비야 6등은 간다 라고 말하고 집을 나선다는 노인이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우리 곁에 계십니다.(할렐루야) 삼마이십니다. 이것이 사랑입니다.


2. 지켜주심을 의미합니다.

왜 곁에 있습니까? 지켜주시기 위함입니다. 우리가 세상에 존재할 수 있음은 하나님의 보호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성장하도록 지켜 주십니다. 어린 시절을 생각해보세요. 부모님의 보호하심이 없었더라면 우리는 존재할 수 없습니다. 이같이 믿음이 연약할 때에 자주 낙심하고 넘어지려고 할 때에 지켜 주셨습니다. 창세기 20:1-7절을 보면 아브라함이 그랄에 내려갔습니다. 그랄 왕 아비멜렉이 사라를 탐하여 취하려 하였습니다. 그때 하나님이 그들을 지켜 주셨습니다. “밤에 아비멜렉에게 현몽하여 네가 취한 그 여인을 인하여 네가 죽으리니 그가 남의 아내임이니라.”(창 20:3) 그 말을 듣고 사라와 가까이 하지 못하게 하셨습니다. “그 사람의 아내를 돌려보내라. 그가 너를 위하여 기도하리니 네가 살려니와 네가 돌려보내지 아니하면 너와 네게 속한 자가 정령 죽을 줄 알지니라.” 하심으로 사라의 정조를 지켜주셨습니다.

인간은 어리석습니다. 약합니다. 잠시 좋은 일이 있으면 그렇게 기뻐 날뛰다가 조금 어려운 일이 생기면 낙심합니다. 영국의 작가 ‘키플링’이 말한 대로  바보는 불에 데서 싸맨 손가락을 또다시 불 속에 집어 넣어본다고 말하였습니다. 아브라함이 25년 전에 애굽에서 바로에게 사라를 누이동생이라 하여 실수한 일이 있었는데 아비멜렉에게 또 같은 말을 하였습니다. 사람은 좋은 습관을 가져야 합니다. 한 번 해본 경험이 있는 사람은 계속 그런 잘못된 일을 반복하게 됩니다. 그럼으로 스스로 위기를 자초합니다. 그러나 위급할 때 그의 곁에 계셨고 하나님은 그를 보호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삼마가 되셔서 지금도 우리를 보호하시고 지켜주시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지금 우리가 시험에 들지 않고 건재한 것은 자신의 의지라고 생각하십니까? 아닙니다. 하나님이 삼마가 되셔서 지켜주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를 지켜주실 수 있는 분은 오직 하나님 아버지뿐이십니다. 수 없는 사단의 유혹에서도 누가 보호하시고 지켜 줄 수 있습니까? 오직 하나님 한 분이십니다.

사단은 지금도 우리를 넘어뜨리려고 온갖 수단과 방법을 동원합니다. 우리는 사단에게 속아서는 안 됩니다. 낚시질 해본 분은 아실 것입니다. 미끼를 달아두면 고기가 입질을 합니다. 건드리는 게 입질이라고 합니다. 그건 밥이 아닙니다. 미끼입니다. 밥과 미끼를 혼돈하면 잡힙니다.
사단은 처음에 좋은 것으로 유혹합니다. 재미있다. 해볼만하다. 좋은 결과를 가져 다 준다 라고 말합니다. 사기 당하는 사람이 왜 사기 당합니까? 좋은 조건을 제시합니다. 그러다가 걸려듭니다.

사단은 우리를 위해주는 존재가 아닙니다. 속지 마세요. 우리편이 아닙니다. 예수 믿는다면 판단력이 있어야 합니다. 아군과 적군을 알아야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습니다. 상식입니다. 적군을 아군이라고 생각하고 아군을 적군으로 알면 패전합니다. 적군이 마귀가 들어와서 우리는 너와 한 편이다라고 말합니다. 잘 판단해야 합니다. "주여! 나를 지켜주시옵소서. 여호와 삼마 되신 아버지여 내 곁에 계셔서 지켜 주옵소서” 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성문에 여호와 삼마라고 한 것 같이 우리의 가정에도 우리의 교회에도 우리나라의 경계선에 여호와 삼마가 있어야 합니다. 지켜주시기 위하여 곁에 계십니다. 지켜주시는데 “주무시지도 아니하신다” 고 하였습니다. 시편 121:3절 “왜 실족치 않게 하시려고” 지켜주십니다. 출입을 지켜주신다고 하였습니다. 시간은 일순간이 아니라 영원까지입니다.(할렐루야)


3. 도우시기 위하여 여호와 삼마이십니다.

약한 자는 강한 자의 도움을 받아야 합니다. 그래서 인간 생활이라고 말합니다. 혼자 살 수 없습니다. 관계 속에서 삽니다. 그래서 사람은 관계를 잘 맺어야 합니다. 먼저 하나님과의 관계입니다. 다음은 사람과의 관계가 원만해야 합니다. 그리고 일과의 관계입니다. 사람관계에서는 서로 도와주고 세워주는 일을 하여야 합니다. 그리고 도와주고 도움 받는 원만한 관계를 형성하여야 합니다.

사람과의 관계에서는 네 가지를 말합니다.

(1) 경쟁자입니다. 항상 상대방을 주시면서 자신이 정신을 차려야 합니다.
(2) 이용자입니다. 서로 편리한대로 이용하는 관계입니다.
(3) 무관자입니다. 서로 알고 지내지만 관심 없는 관계로 삽니다.
(4) 동반자입니다. 동역자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아무리 좋은 관계를 맺고 산다고 하여도 인간은 한계가 있습니다. 그럼으로 전능하신 하나님 나를 지극히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도움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도우시려고 우리 곁에 계시답니다. 지금 우리에게는 여호와 삼마 곁에 계셔서 도와주심이 절실하게 필요한 때입니다. 하나님은 도와주십니다. 나의 마음을 도와주십니다. 용기를 주십니다. 새 힘을 주십니다. 이것이 도움입니다.

일찍이 실존주의 철인 ‘키에르케고르’는 죽음에 이르는 병이 있는데 곧 절망이라고 하였습니다. 사람이 건강하려면 정신이 건강해야 합니다. 몸과 정신은 연결되어 있습니다. 정신적으로 병들면 전철 안에서 시트에 불을 붙입니다. 하나님의 도움을 받으면 새 힘을 얻습니다. 용기가 솟아납니다. 하나님은 내편이 되어 도와주십니다. 그러기 위해서 내 곁에 계신답니다. “여호와는 내편이시라. 내게 두려움이 없나니 내게 어찌할꼬”(시 118:6) 하나님은 내편이 되어주십니다. 마귀가 내편이 될 리가 없습니다. 내편이 되시어서 나를 돕는 자 중에 계시니 그럼으로 나를 미워하는 자를 보응하신다.(시 118:7) 고 하였습니다. 넘어질 때 붙들어주시면서 도와주십니다.(시 118:13) 강한 팔로 붙들어주시면 넘어지지 않습니다. 마귀는 우리 앞에 올무를 놓고 기다립니다. 넘어지도록 유혹합니다. 그때마다 하나님은 내 곁에 계셔서 즉 삼마가 되시어서 붙들어 주신 답니다. 손을 내밀어야 합니다. 그때 붙잡아 주십니다. 그럼으로 내 앞에 장애물을 제거하여 주십니다. 이스라엘의 앞길에 장애인 홍해가 있었으나 갈라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직접 도와주실 때도 있으나 이겨 나갈 수 있는 힘을 주심으로 도와주실 때도 있습니다. 때로는 능력을 주심으로 도우십니다.
풍성한 축복을 주심으로 도와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풍성하신 주님이십니다. 즉, 물질적으로 도와주신다는 말입니다. 빈 그물을 씻어야 하는 실패한 어부 베드로를 찾아가신 주님이 깊은 데로 그물을 내리라고 하시면서 그물이 찢어지도록 고기를 잡게 하셨습니다.

실패한 사람을 성공하도록 도우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사랑의 손길로 우리를 도와주십니다. 나의 곁에 계신 하나님께서 나를 도와주신다는 확신을 갖고 도움을 요청하셔야 합니다. 사업하시는 분들은 주여 내 곁에 계신 여호와 삼마의 하나님 나의 사업을 도와주세요. 공부하는 학생도 삼마의 하나님 나를 도와주세요 기도하셔야 합니다.


4. 인도하여 주시기 위하여 삼마가 되십니다.

사람은 참으로 미련합니다. 어리석습니다. 무지합니다. 그럼으로 아는 사람의 지도를 받아야 합니다. 길을 몰라서 묻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도 길을 잘 모릅니다. 이런 때 안내하는 사람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내일 일을 모릅니다.

우리의 인생 길에 삼마 되신 하나님이 인도하여 주십니다.
어떻게 인도하시나요?

1) 마음으로 인도하십니다.
기도하는데 자꾸 하고싶은 충동이 생깁니다. 한 번만이 아니라 계속적으로 생각이 납니다. 그것이 인도입니다.

2) 환경을 통해서 인도하십니다.
요나가 하나님의 명령대로 니느웨로 가지 않으려 하였으나 풍랑이 일어나게 하여 그곳으로 가도록 인도하셨습니다.

3) 말씀을 통하여 인도하십니다.
사도행전 27:23절을 보세요. “나의 속한 바 나의 하나님의 사자가 내 곁에 서서 말하되” 라고 하였습니다. 말씀을 읽고 듣는 중에 인도하심이 나타납니다. 하나님의 인도를 받으면 좋은 결과가 나타납니다.


여호와 삼마의 하나님을 의지하고 사는 우리는 어떻게 하여야 할까요?

1. 안심하고 평안하게 살아야 합니다.

우리는 불확실한 시대에 살고있습니다. 언제 어떤 사건이 일어날지 모릅니다. 이런 때에 현대인들에게 필요한 것은 세 가지가 있다고 심리학자들이 말합니다.

첫째가 의미라고 합니다. 우리는 옛날보다 잘 살고 잘 먹고 누리고 삽니다. 그러나 옛날보다 더 행복하다고는 말할 수 없습니다. 모두가 죽고 싶다고 말합니다. 행복지수가 바닥을 헤맵니다. 왜 그런가요? 의미를 잊어버렸습니다. 사람은 밥만 먹고 사는 게 아니라 의미를 갖고 살아야 살맛 나는 것입니다.

둘째는 소속의 필요입니다. 고독을 싫어합니다. 고독해서는 안 됩니다. 어디에 소속되어야 합니다. 가정에 집단에 소속되어 있어야 합니다.

셋째는 안전성을 필요로 합니다. 불안한 것을 싫어합니다. 위험한 것을 원치 않습니다. 의식주보다는 정신적으로 평안을 원합니다. 평안하지 못하니까 그것을 잊어보려고 술을 마시고 심하면 마약까지 합니다. 어디에 있어야 안전합니까? 주안에 있어야 합니다. 여호와 삼마가 안전입니다.

2차 세계대전 때 독일의 후방에 침투하여 지하운동을 하던 벨기에 군인이 체포되었습니다. 그는 곧 감옥에 갇히게 되었는데 마침 옆 감방에 벨기에 목사 한 분이 수감되어 있었습니다. 그들이 의사소통을 위해 신호를 정해놓고 벽을 두드려서 연락을 주고 받기로 하였습니다. 군이 먼저 신호를 보냅니다. 이곳이 지옥입니다. 그러자 목사님이 응답했습니다.

비록 우리가 갇혀 있지만 주님과 함께 있으니 여기가 바로 천국입니다. 그 후에 목사님은 군인에게 작은 성경책을 보내주었습니다. 군인은 성경책을 열심히 읽었습니다. 얼마 후 군인은 사형 집행 날이 되었습니다. 사형집행 장에 끌려가는 군인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죽는 게 아니라 다시 사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내 곁에 계십니다. 그럼으로 우리가 있는 곳이 천국입니다. 위기가 와도 걱정하지 마세요. 우리 곁에 전능하신 하나님이 계십니다.

역사 연구의 대가인 ‘아놀드 토인비’는 그의 역사 연구에서 그 동안 역사의 지평에 떠올랐던 21개 문명이 있는데 그 중에 19개는 자멸했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 중 대표적인 것이 무신론과 물질주의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신앙을 가지고 삽니다. 바로 여호와 삼마에 확신을 갖고 삽니다. 그럼으로 행복한 그리스도인입니다.(아멘)


2. 항상 감사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우리에게 위기는 없습니다.  여호와 삼마이기 때문입니다. 불행은 하나님이 멀리 계신 것 같이 생각하고 사는 것입니다. 항상 내 곁에 계심을 믿어야 합니다. 감사가 없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야만인일수록 감사를 모릅니다. 감사를 느끼고 감사하면서 사는 사람은 열린 사람입니다. 그런데 감사는 언제 할 수 있습니까? 나를 진정으로 사랑해주고 덕을 끼쳐주었다라고 느낄 때 감사가 나옵니다. 하나님이 내 곁에 계시다라고 느끼고 사는 사람은 원망하고 싶어도 못합니다. 자녀들에게도 감사를 가르쳐 주어야 합니다. 어떤 유대여자가 별로 배운 것도 없는데 자녀를 훌륭하게 키웠습니다. 그 비결이 어디 있었느냐 물었는데 대답인즉 딱 세 가지를 가르쳤다고 말하더랍니다. 첫째 큰일은 물론 작은 일에도 감사하는 사람이 되어라. 그저 감사합니다. 두 번째는 원망하는 사람과 놀지 말라. 주변에 원망하고 불평하는 사람과는 멀어지는 게 좋습니다. 아무리 가까운 사이라도 감기 걸린 사람 곁에는 가지 않아야 전염되지 않습니다. 원망은 영적인 감기입니다. 멀리해야 영적으로 건강합니다. 세 번째는 감사하는 사람과 친해라. 이 세 마디로 자녀를 양육했다고 말하더랍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항상 감사하고 살아야 합니다. 지금도 하나님께서 우리 아버지가 되시고 내 곁에 계시답니다.


3. 오직 믿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불신앙이 무엇입니까? 나 혼자 살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힘들고 어렵기만 합니다. 내 곁에 하나님이 계시고 나를 도와주신다고 믿어지면 능력 있는 삶이 됩니다. 믿어야 평안합니다. 중국내 지선교회 창설자인 허드슨 테일러 목사님이 임종을 앞두고 몸이 극도로 쇠약해지자 그의 절친한 친구에게 편지를 씁니다. “여보게, 나는 지금 몸이 너무 쇠약해져서 걸을 수가 없네. 성경을 읽을 수도 없고 심지어 기도도 못하고 있네. 단지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하나님의 팔에 안긴 어린아이같이 누워 있는 것이라네. 어린 아이가 엄마를 믿고 안심하듯이 나도 하나님만을 의지하고 평안하게 있은 뿐이라네” 라고 했답니다. 항상 내 곁에 계신 여호와 삼마의 믿음으로 사는 자는 행복자입니다.

여호와 삼마의 은총이 우리 가정, 교회, 이 나라에 임하여 진정 행복한 사람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 아 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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