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예수의 부활이 가져다 준 은혜 / 마 28:1-10

  • 잡초 잡초
  • 237
  • 0

첨부 1


설교제목 : 예수의 부활이 가져다 준 은혜
성경말씀 : 마태복음 28:1-10

오늘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으신 지 사흘 만에 살아나신 것을 축하하는 부활절입니다. 먼저, 알아야 할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꾸며낸 이야기가 아니고 실제로 있었던 사실이라는 점입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것을 자기들의 눈으로 본 사람들로는 막달라 마리아를 비롯한 신실한 여자들과 베드로를 비롯한 열 한 제자가 있습니다. 무덤을 지키던 로마 군병들 역시 증인들입니다. 그들은 그 날 새벽에 천사가 하늘로서 내려와서 무덤 문을 굴러내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들은 그 형상이 번개 같고 그 옷은 눈 같이 흰 천사를 보고 무서워 떨며 죽은 자와 같이 되었습니다.

제자 중 한 사람인 도마는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찾아오셨을 때 그곳에 없었습니다. 나중에 동료들이 주님을 만나보았다고 했을 적에 도마는 그 말을 믿으려 하지 않고, “내가 그 손의 못자국을 보며 내 손가락을 그 못자국에 넣으며 내 손을 그 옆구리에 넣어 보지 않고는 믿지 아니하겠노라”고 했습니다. 그로부터 여드레를 지나서 다시금 주님께서 제자들을 찾아오셨고 도마도 함께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도마에게 이르시기를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보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보라 그리하고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고 하시니 도마가 대답하기를 “나의 주시며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너는 나를 본 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 되도다”고 하셨습니다.

그 후에는 갈릴리 해변에서 제자들을 찾아오셨습니다. 제자들은 간밤에 고기 잡으러 나갔다가 한 마리도 잡지 못했는데, 해변에서 한 사람이 서서 “고기 잡은 것이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없습니다” 그러자 그 사람이 말하기를 “그물을 배 오른편에 던지라 그리하면 얻으리라”고 했습니다. 이에 던졌더니 고기가 많아 그물을 들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해변에 서신 분은 예수님이셨던 것입니다. 제자들이 육지에 올라와 보니 숯불이 있는데 그 위에 생선이 놓였고 떡도 있었습니다. 그 날 아침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나누어주시는 떡과 물고기로 아침을 먹었습니다. 조반 후에 예수님께서는 시몬 베드로에게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고 세 번 물으셨고, 그 때마다 베드로는 주님께 대한 사랑을 고백했습니다.

사도 바울 역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던 사람입니다. 그의 본명은 사울이었는데, 예수 그리스도를 증오하고 교회를 핍박하던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대제사장에게서 공문을 받아 쥐고 기독교인들을 체포하기 위해 다메섹이라는 도시로 가던 중이었습니다. 다메섹이 바라다 보이는 곳에 이르렀을 때였습니다. 갑자기 하늘로서 해보다 더 강한 빛이 그와 그의 일행을 둘러 비추었습니다. 그 빛이 얼마나 강하던지 모두 땅바닥에 엎드러졌습니다. 엎드려서 들으니 소리가 있기를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 하였습니다. “주여, 뉘시오니이까?” 그러자 그 소리가 대답하기를 “나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라”고 하였습니다. 그 날 그는 빛 때문에 눈이 멀고 말았습니다. 사람들의 부축을 받아 다메섹에 들어가 어느 골방에서 사흘 동안 금식하면서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사흘째 되던 날, 아나니아라는 그리스도인이 찾아와서 안수하며 “형제 사울아 주 곧 네가 오는 길에서 나타나시던 예수께서 나를 보내어 너로 다시 보게 하시고 성령으로 충만하게 하신다” 하니 즉시 사울의 눈에서 비늘 같은 것이 벗어져 다시 보게 되었습니다. 이에 일어나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이방인의 사도가 되어 일평생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다가 마지막에는 로마 황제 네로에 의해 순교하였습니다. 열 두 사도 역시 요한을 제외하고는 다 순교하였습니다. 사도들과 바울의 변화는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이 진실됨을 입증해 줍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믿어도 그만, 믿지 않아도 그만인 이야기가 아니라, 믿으면 영생을 얻고 믿지 않으면 영벌을 받는, 우리의 영원한 운명과 직결된 문제입니다. 만약에 예수님께서 죽고 살지 못하셨다면 그 분이 우리의 구주가 되실 수 없고, 그를 믿는 우리의 믿음은 헛것이 될 것이며, 거짓된 것을 믿고 전파하는 그리스도인들은 이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자들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 실제로 사망을 이기시고 살아나셨으므로 우리의 믿음은 참된 것임이 입증되었습니다. 이 시간 저는 부활절을 맞이해서 예수님의 부활이 우리에게 가져다 준 은혜가 무엇인지 말씀해 드리려고 합니다.


첫 번째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심으로 마귀를 멸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이유는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시면서 외치신 말씀은 “회개하라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본격적으로 사역을 하심과 동시에 가까웠던 하나님의 나라가 현실로 나타났습니다.

한번은 사람들이 귀신들려 눈멀고 벙어리 된 자를 데려온 것을 예수님께서 고쳐 주시니 그 벙어리가 말하며 보게 되었습니다. 이에 사람들이 다 놀라며 말하기를 “이는 다윗의 자손이 아니냐”고 했습니다. “다윗의 자손‘이란 곧 메시야를 말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미워하는 바리새인들은 듣고 말하기를 ”이가 귀신의 왕 바알세불을 힘입지 않고는 귀신을 쫓아내지 못하느니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저희 생각을 아시고 말씀하시기를 ”스스로 분쟁하는 나라마다 황폐하여질 것이요 스스로 분쟁하는 동네나 집마다 서지 못하리라 사단이 만일 사단을 쫓아내면 스스로 분쟁하는 것이니 그리하고야 저의 나라가 어떻게 서겠느냐 또 내가 바알세불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면 너희 아들들은 누구를 힘입어 쫓아내느냐 그러므로 저희가 너희 재판관이 되리라 그러나 내가 하나님의 성령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고 하셨습니다. 귀신들을 쫓아내신 일은 곧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임하였다는 증거입니다.

예수님께서 오시기 전에 이 세상은 마귀의 지배 아래 있었습니다. 마귀는 이 세상의 임금으로서 군림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귀신들을 쫓아내심으로 마귀의 나라가 무너지고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게 되었습니다. 요한일서 3장 8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목적에 대하여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니라”고 했습니다.

마가복음 1장에 보면, 예수님께서 어느 안식일에 가버나움의 회당에 들어가 가르치시는데 마침 그 회당에 더러운 귀신 들린 사람이 앉아 있다가 소리 지르기를 “나사렛 예수여 우리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우리를 멸하러 왔나이까 나는 당신이 누구인줄 아노니 하나님의 거룩한 자니이다”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꾸짖어 “잠잠하고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 하시니 그 더러운 귀신이 그 사람으로 경련을 일으키게 하고 큰 소리를 지르며 나왔습니다. 귀신들은 예수님께서 그들을 멸하러 오신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마귀를 멸하신 결정적인 사건은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것입니다. 마귀는 가룟 유다의 마음에 예수님을 팔아먹을 생각을 넣어주었고 유다를 하수인으로 삼아서 예수님을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의 손에 넘겨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게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운명하셨을 적에 마귀는 쾌재를 불렀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마귀의 착각에 불과했습니다. 왜냐하면 십자가야 말로 예수님께서 옛 뱀 곧 마귀의 머리를 깨뜨리신 곳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창세기 3장 14절로 15절에는 하나님께서 하와를 유혹한 뱀에게 저주하신 말씀이 나옵니다. “14)여호와 하나님이 뱀에게 이르시되 네가 이렇게 하였으니 네가 모든 육축과 들의 모든 짐승보다 더욱 저주를 받아 배로 다니고 종신토록 흙을 먹을지니라 15)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하고 너의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이 말씀에 나오는 “여자의 후손”은 곧 동정녀의 몸에서 탄생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킵니다. 그리고 뱀은 마귀를 가리킵니다. 뱀이 여자의 후손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라 함은 예수님께서 십자가 고난을 받으실 것을 가리킨 것입니다. 그리고 여자의 후손이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라 함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마귀에게 결정적인 패배를 안겨주실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창세기 3장 15절의 예언이 실제로 성취되었음을 말해 줍니다.

이제 그리스도인들은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마귀를 대적하여 물리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시기를 “17)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저희가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18)뱀을 집으며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막 16: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뱀을 집는 것은 다 마귀의 권세를 무너뜨리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성도님들께서는 언제나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힙 입어 마귀를 대적하여 승리하는 신앙생활을 영위하시기 바랍니다.


두 번째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심으로 사망을 철폐하셨습니다.

인류의 가장 무서운 적은 죽음입니다. 인류 역사상 죽음을 이긴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이집트의 왕들이 세운 거대한 피라밋들은 그들의 막강한 왕권을 나타낸 것이라기보다는 죽음의 위대함을 말해 주는 기념물이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진시황도 죽었고, 알렉산더 대왕도 죽었습니다. 스탈린이나 모택동, 김일성과 같은 독재자들도 죽었습니다. 그런가하면 인류의 존경을 받는 성현들도 죽었고, 위대한 예술가들도 죽었습니다.

죽음 앞에서는 누구나 다 평등합니다. 현대의 발달한 과학 기술과 의술로도 죽음을 정복하지 못합니다. 인간들이 DNA의 비밀을 다 풀었다고 자랑하고, 또 인간을 복제한다고 교만하게 굴지만 그들 역시 죽음 앞에서는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습니다.

과학으로 죽음을 정복할 수 없는 것은 죄가 죽음의 원인이기 때문입니다. 죄를 해결하지 못하는 한 죽음을 해결할 수 없습니다. 죽음의 문제를 해결하려면 먼저 죄를 해결해야 합니다. 누가 죄를 해결할 수 있습니까? 인류 역사상 수많은 종교가들이 나왔지만 그들 가운데 죄를 해결한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것은 그들이 죽고 살지 못한 것을 보아서 알 수 있습니다.

아담 이후로 죽음을 이긴 사람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한 분밖에 없으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 달려 죽어 무덤에 장사되셨으나 삼일 만에 부활하셨습니다. 이에 대하여 사도행전 2장 24절에는 “하나님께서 사망의 고통을 풀어 살리셨으니 이는 그가 사망에게 매여 있을 수 없었음이라”고 했습니다. 맞는 말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사망에게 매여 있을 수 없는 분이십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하나님의 독생자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과 동등하신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죽음이 감히 하나님의 독생자를 붙들어 둘 수 없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인류의 철천지원수인 죽음이 정복되었음을 의미합니다.

나사로의 무덤 앞에서 주님께서는 말씀하시기를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요 11:)고 하셨습니다. 또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하셨습니다. 히브리서 2장 14절로 16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에 대하여 “14)자녀들은 혈육에 함께 속하였으매 그도 또한 한 모양으로 혈육에 함께 속하심은 사망으로 말미암아 사망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없이 하시며 15)또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일생에 매여 종노릇하는 모든 자들을 놓아 주려 하심이니 16)이는 실로 천사들을 붙들어 주려 하심이 아니요 오직 아브라함의 4)자손을 붙들어 주려 하심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은 죽음을 두려워할 이유가 없습니다. 그리스도인들에게 죽음은 더 이상 저주가 아닙니다. 우리에게 죽음은 천국으로 들어가는 통로와도 같습니다. 그러기에 사도 바울은 말씀하기를 “21)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니라 22)그러나 만일 육신으로 사는 이것이 내 일의 열매일진대 무엇을 가릴는지 나는 알지 못하노라 23)내가 그 두 사이에 끼였으니 떠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을 욕망을 가진 이것이 더욱 좋으나 24)그러나 내가 육신에 거하는 것이 너희를 위하여 더 유익하리라”(빌 1:) “우리가 담대하여 원하는 바는 차라리 몸을 떠나 주와 함께 거하는 그것이라”(고후 5:8)고 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님들께서는 죽음을 이긴 사람으로서 살든지 죽든지 주님을 기쁘게 하는 데 힘쓰시기 바랍니다.


세 번째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심으로 우리의 구원이 확실해졌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이 귀하듯이 부활 역시 귀합니다. 주님의 죽음과 부활은 서로 뗄 수 없는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십자가의 죽음이 없었다면 영광의 부활도 없었을 것입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지 못하셨다면 그 분을 우리의 구세주로 인정할 수 없었을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의 구세주이신 까닭은 죽음에서 부활하셨기 때문입니다. 사망을 철폐할 능력과 권세를 갖고 계시기에 예수님은 우리의 주님이 되신 것입니다.

요즘 서구의 잘못된 신학사상에 물들어서 예수님의 부활을 지어낸 이야기라고 주장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신학대학에서 교수노릇을 하고 교회에서 설교를 합니다. 그러니 그런 자들 밑에서 무엇을 배울 것이며, 그들의 설교가 무슨 유익이 되겠습니까? 그런 자들에 대하여 사도 바울은 말씀하기를 “14)그리스도께서 만일 다시 살지 못하셨으면 우리의 전파하는 것도 헛것이요 또 너희 믿음도 헛것이며 15)또 우리가 하나님의 거짓 증인으로 발견되리니 우리가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셨다고 증거하였음이라 만일 죽은 자가 다시 사는 것이 없으면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시지 아니하셨으리라 16)만일 죽은 자가 다시 사는 것이 없으면 그리스도도 다시 사신 것이 없었을 터이요 17)그리스도께서 다시 사신 것이 없으면 너희의 믿음도 헛되고 너희가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요 18)또한 그리스도 안에서 잠자는 자도 망하였으리니 19)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바라는 것이 다만 이생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리라”(고전 15:)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께서 죽고 부활하지 못하셨다면 우리 믿음은 헛되고 신앙생활을 하는 것은 괜히 시간을 낭비하는 것에 불과할 것입니다. 반면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신 것이 확실하다면 우리의 믿음은 참되고 우리의 구원은 확실한 것이 될 것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이 있기에 그를 믿는 우리의 모든 죄가 사함 받았다고 확신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이 있기에 우리가 영원한 상급을 바라고 주님을 위해 기꺼이 수고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이 있기에 핍박을 이기고 끝까지 믿음을 지킬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님들께서는 주님의 부활을 신앙의 초석으로 삼아서 흔들림 없는 신앙생활을 영위하시기 바랍니다.


네 번째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심으로 우리도 부활에 참여케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은 부활을 믿지 못합니다. 사람이 죽으면 그만이지, 죽어서 한 줌의 흙으로 돌아간 후에 어떻게 다시 살아날 수 있단 말이냐고 합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조금도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성경은 죽음이 끝이 아니며 장차 몸의 부활이 있음을 가르칩니다. 구약성경의 다니엘서 12장 2절에는 “땅의 티끌 가운데서 자는 자 중에 많이 깨어 영생을 얻는 자도 있겠고 수욕을 받아서 무궁히 부끄러움을 입을 자도 있을 것이며”라고 하였고, 고린도전서 15장 35절 이하에는 “35)누가 묻기를 죽은 자들이 어떻게 다시 살며 어떠한 몸으로 오느냐 하리니 36)어리석은 자여 너의 뿌리는 씨가 죽지 않으면 살아나지 못하겠고 37)또 너의 뿌리는 것은 장래 형체를 뿌리는 것이 아니요 다만 밀이나 다른 것의 알갱이 뿐이로되 38)하나님이 그 뜻대로 저에게 형체를 주시되 각 종자에게 그 형체를 주시느니라 … 42)죽은 자의 부활도 이와 같으니 썩을 것으로 심고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며 43)욕된 것으로 심고 영광스러운 것으로 다시 살며 약한 것으로 심고 강한 것으로 다시 살며 44)육의 몸으로 심고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사나니 육의 몸이 있은즉 또 신령한 몸이 있느니라 … 51) 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하리니 52)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고 우리도 변화하리라 53)이 썩을 것이 불가불 썩지 아니할 것을 입겠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으리로다”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친히 말씀하시기를 “54)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니 55)내 살은 참된 양식이요 내 피는 참된 음료로다”(요 6:)고 하셨습니다.

성도들이 부활하게 되는 근거는 우리 주 예수님께서 부활하셨기 때문입니다. 성도들은 예수 그리스도에게 붙은 자들입니다. 다시 말씀하면, 성도들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부활하셨듯이 성도들도 부활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예수님은 부활의 첫 열매와도 같습니다. 이에 대하여 고린도전서 15장 20절에 보니 “…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추석에 햅쌀로 밥을 지어 먹습니다. 그 햅쌀이 바로 첫 열매입니다. 첫 열매를 거둔 것은 그 뒤를 이어서 대대적인 추수가 있을 것을 예고하는 것입니다. 마치 이와 같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음에서 부활하신 것은 장차 그의 뒤를 이어서 수많은 성도들의 부활이 있을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언제 그리스도인들이 부활하게 되는 것일까요?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재림하실 때입니다. 데살로니가전서 4장 16절 이하에 “16)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로 좇아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17)그 후에 우리 살아 남은 자도 저희와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하신 말씀이 그것입니다. 성도들의 궁극적인 소망은 재림의 그날에 부활의 영광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을 믿지 않던 자들은 최후의 심판날에 부활하여 하나님의 심판을 받고 영원한 불못에 던짐 받습니다.

이에 대하여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시기를 “28)이를 기이히 여기지 말라 무덤 속에 있는 자가 다 그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29)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요 5:)고 하셨습니다. 부활은 부활이지만 그 성격이 다릅니다. 성도들의 부활은 영광스럽지만, 불신자들의 부활은 영원한 치욕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성도님들께서는 예수 그리스도 재림 하실 때 부활에 참여할 소망을 가지시고 힘써 주님을 위해서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믿으십니까? 그렇다면 성도님들의 믿음은 구원 받기에 합당한 믿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제 사망 권세를 이기시고 부활하신 주님을 믿는 그 믿음으로 마귀를 물리치고 세상 유혹과 시험을 이기시기 바랍니다. 그뿐 아니라, 주님 재림하시는 그날, 영광스런 부활에 참여할 것을 바라보면서 땅에 살아가는 동안 주의 일에 더욱 힘쓰심으로 상급을 준비하는 슬기로운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