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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무덤을 찾아간 여인들 / 눅 2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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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bject  2003.04.27 / 무덤을 찾아간 여인들 (눅 24:;1-7) 


(서론) 안식일이 가까오자 여인들은 예수님의 시신을 멀리 서서 보고 있다가 돌아가 향품과 향유를 예비하여 안식 후 첫날 새벽에 그 예비한 향품을 가지고 무덤에 찾아 갔다가 천사들로부터 주님이 살아나셨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그러면 이 여인들이 무엇이 있었기에 주님의 부활소식을 처음으로 듣게 되었습니까?


(一) 주님에 대한 식지않은 사랑의 열정이 있었습니다.

1절 보면 안식 후 첫날 새벽에 이 여인들은 예비한 향품을 가지고 예수님의 무덤을 찾아갔다고 했습니다. 이러한 여인들의 모습은 예수님의 부활에 대한 일말의 기대감도 없었다는 것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다만 이 여인들은 오직 생전에 사랑하던 예수님의 시신에 향품을 발라드리기 원해서 무덤에 찾아간 것 뿐입니다. 매 맞고 찢겨진 시신에 향품이라도 발라 드리고자 한 것입니다.
어떻게 보면 부활하신 예수님의 그 권능에 어울리지 않는 일을 하려는 자들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또한 대단히 무지한 자들이라 해도 조금도 과언이 아닌 자들이었습니다.
어떻게 부활의 그 영광스런 아침에 예수님의 시신에 바를 향품이나 가지고 찾아갔다는 말입니까?

그러나 그들은 부활의 소식을 가장 먼저 들은 부활의 첫 목격자들이 되었습니다. 그들은 빈 무덤을 가장 먼저 발견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부활소식을 가장 먼저 들었고, 그 사실을 세상에 알렸습니다.
지금 우리가 듣고 있는 부활의 소식도 바로 이들에게서 비롯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그들은 인류 역사에 일어난 가장 큰 기적의 목격자요, 증인이 되는 행운을 누렸습니다.

그러면 왜 예수님께서는 이들을 부활의 첫 목격자와 증인으로 삼아주셨습니까? 그들 에게는 비록 지식은 없었고, 바로 앞을 내다보는 예지는 부족했지만 무엇보다 그들에게는 예수님에 대한 사랑이 식지 않고 있었습니다. 그들이 무덤을 찾은 때는 예수님이 죽으시고, 이틀이 지난 때였습니다다. 그의 죽음이 완전히 확정된 때였습니다.

성도 여러분! 죽음은 우리에게 무엇을 의미합니까? 모든 것의 끝을 의미합니다. 절망과 허망함을 의미합니다. 왜 죽은 영웅이 산 개만도 못하다고 합니까? 죽음으로 모든 것이 끝이나기 때문입니다. 더 이상의 가능성과 희망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12 제자들조차 예수님을 떠났고 무덤을 찾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바로 이 여인들은 그 절망의 극치 속에서도 예수님을 찾은 것입니다. 그들은 갈릴리에서 예수님을 따라 예루살렘까지 왔습니다. 그리고 죽음의 끝자락에서 다시 예수님을 찾은 것입니다.

이 얼마나 애틋한 사랑인가! 이 얼마나 지고한 사랑인가! 여러분에게는 예수님을 향한 이러한 사랑을 가지고 있습니까?
기적은 거져 체험하는 것이 아닙니다. 아무에게나 기적이 찾아오는 것이 아닙니다. 지식이 많다고, 특별한 직분을 가졌다고 기적이 찾아오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예수그리스도를 뜨겁게 사랑하는 사람에게 기적은 찾아오는 것입니다.

벳세다의 소년을 보십시오. 그가 예수님을 얼마나 사랑했으면 자기가 먹어야 할 도시락 전부를 예수님께 바쳤겠습니까?
기적은 예수님께 대한 식지 않는 뜨거운 사랑에서 비롯되는 것입니다. 주님께 대한 최고의 사랑은 기적을 불러 일으키기도 하고, 또 기적을 맛보게도 하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언제나 변함없이 예수님을 사랑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Paul 사도는 에베소 교인들에게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변함없이 사랑하는 모든 자에게 은혜가 있을지어다"라고 말했습니다. (엡 6:24)

우리도 좋은 조건이나 악조건 속에서도 주님을 뜨겁게 사랑합시다.


(二) 여인들은 주님을 위한 근심하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2-4절 보면 여인들은 예수님의 무덤문이 열려있고, 시신이 없어진 것을 보고 근심했다고 했습니다.
마가의 기록에 따르면 이들은 무덤에 가기 전에도 과연 누가 무덤 문을 열어줄 것인가 근심했다고 했습니다. (막 16:3) 잠언기자 솔로몬은 "심령의 근심은 사람의 뼈를 마르게 한다"고 했습니다. (잠 17:22)
아무리 건강한 사람이라도 근심하게 되면 몸이 마르고 병들어 마지막에는 쓰러지게됩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도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요 14:1)

그렇습니다. 성도는 근심하지 말아야 합니다. 성도는 자기가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하는 생활의 근심을 하지말고, 오직 주님께 맡겨야 합니다. (눅 12:29)

그래서 주님은 "너희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하여 구하지 말며 근심하지도 말라"고 하셨습니다. 오늘과 내일 먹을 양식이 없다고 해도 예수님께 온전히 맡기고 안정된 상태에서 생활해 가는 것이 예수님이 원하시는 성도의 바른 삶의 태도입니다.

그러나 모든 근심이 성도에게 다 해로운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성도들이 가져야 할 근심이 있습니다. 그것은 거룩한 근심입니다. 선한 근심입니다. 나를 위한 근심이 아니라 거룩한 일과 하나님의 일을 위한 근심입니다.

고후 7:10-11 보면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후회할 것이 없는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를 이루는 것이요, 세상 근심은 사망을 이루는 것이니라. 보라! 하나님의 뜻대로 하게 한 근심이 너희로 얼마나 간절하게 하며, 얼마나 변명하게 하며, 얼마나 분하게 하며, 얼마나 두렵게 하며, 얼마나 사모하게 하며, 열마나 열심있게 하며, 얼마나 벌하게 하였는가? 너희가 저 일에 대하여 일절 너희 자신의 깨끗함을 나타내었느니라"고 했습니다.

본문의 여인들도 근심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자기들의 문제 때문에 고민하거나 근심한 것이 아닙니다. 바로 어떻게 하면 예수님의 무덤을 열고 그 시신에 향유를 발라드릴까 하는 근심이었습니다.

또한 그들은 예수님의 시신이 없어진 것을 보고 근심했습니다. 그들은 여인들이었지만 신앙문제나 주님을 사랑하는 일에 있어서는 주님의 제자들 못지 않았습니다. 눅 8:2-3절을 보면 자기들의 소유로 주님과 그의 제자들을 섬겼습니다. (주의 일)

그리고 주님이 승천하신 후 예루살렘 마가의 다락방에 120명의 제자들이 모여 기도할 때 "여자들과 예수의 모친 마리아와 예수의 아우들로 더불어 마음을 같이하여 전혀 기도에 힘쓰니라"고 했습니다. (행 1:14)
이 여인들은 희생적인 주님의 제자였습니다. 사랑을 위대하게 만드는 것은 그 사람의 사회적인 지위가 아닙니다

하나님 앞에 귀하게 쓰임받는 것도 그 사람이 지닌 지식이나 재력이 아닙니다. 그가 얼마나 주님을 위한 마음이 있는가에 있습니다.
내 일, 내 사업, 내 가정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앞서 주님을 위해 염려하고 애쓸수 있는 사람이 하나님께 귀중히 쓰임 받는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오늘날 교회가 어떻게 유지되고 발전해왔는가? 교회 역사를 보면 바로 이 여인들같이 자신보다 주님을 더 사랑하고 주님을 위해 근심할 줄 아는 성도들에 의해 이루어 졌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까지 오직 내 자신의 문제, 내 사업문제로 고민해 오셨다면 오늘부터 주님과 그의 나라와 복음전파를 위해 고민하고 근심할 줄 아는 주의 종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합니다.

Paul은 "내가 그리스도 안에서 참말을 하고 거짓말을 아니하노라. 내가 큰 근심이 있는 것과 마음에 그치지 않는 고통이 있는 것을 내 양심이 성령 안에서 나로 더불어 증거한다"고 했습니다. (롬 9:1,2)
Paul 사도는 예수 안에서 항상 기쁘고 감사하게 살아왔지만 딱 한가지 근심과 고통이 있었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자기 동족의 구원이었습니다. 롬 9:3절에 "나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을 위하여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원하는 바로다"고 했습니다.


(결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번 새생명 전도축제때 주님을 사랑하는 열정과 주님을 위한 큰 근심을 가지고 전도하여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증인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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