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네 부모를 공경하라 / 엡 6:1-3

  • 잡초 잡초
  • 554
  • 0

첨부 1


네 부모를 공경하라(에베소서 6:1-3)

서양 사람들이 한국을 방문했을 때 백발의 노부모님이 손자 손녀들과 함께 한 울타리에서 사는 것을 보고 매우 놀라고 신기하게 여겼다고 합니다. 천국과 같은 모습이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릅니다. 양로원 뜰이나 공원의 벤취에서 무료한 날들을 보내는 서구의 노인들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어느 듯 우리나라도 서구 문화를 반영해서 가족 관계는 급속하게 붕괴되고 부모님을 모시고 효도를 다하며 사는 모습은 점차 사라지고 있습니다. 부모 자식간의 인정과 사랑은 끊어지고 메마르고 가시밭 같은 관계로 변하고 있습니다. 문화는 세련되고 경제적으로는 나아졌지만 좋았던 가족 관계는 급속도로 파괴되고 있습니다. 부모를 공경하던 아름다움은 지난날의 이야기가 되고 있습니다. 오늘은 어버이주일입니다. 성경은 부모를 어떻게 섬기라고 하는지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1.부모 공경 : 지극히 당연한 진리

1)부모를 순종하는 것은 당연한 진리입니다.

“주 안에서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1절).”옳다는 말은 당연하다는 뜻입니다. 인간 사회에서 가장 기본 되는 법이 부모 공경입니다. 부모는 우리의 육신의 생명의 근원입니다. 생명의 가치를 안다면 부모를 귀하게 여길 것입니다. 자기 생명은 미워하는 자나 부모를 원망할 것입니다.
그리고 부모는 우리가 오늘날과 같이 성인이 되도록 양육하고 보살핀 분입니다. 지금은 늙고 보잘 것 없어 보이지만 부모님의 품이 아니었다면 사람이 되지 못했을 것입니다. 한국의 부모님들은 자식을 위해 어떤 희생이라도 아끼지 않으신 분들입니다. 당신은 먹지 못하고 입지 못해도 자식들의 교육을 위해서라면 참고 견디셨습니다. 소를 팔아서라도 서울 유학을 시켰고, 노동을 하면서도 자녀를 위해 희생하셨습니다.

실로 부모님의 품은 우리가 세상에서 처음 다닌 사랑의 학교였습니다. 우리가 경험한 사랑은 부모님에게서 배운 것입니다. 세상 어디서 부모님에게 받은 사랑을 받을 수 있단 말입니까? 부모님의 최초의 스승이고 최고의 스승이었습니다. 부모님은 우리의 삶의 교과서였습니다. 부모님 같은 인생의 선배와 스승을 어디서 만날 수 있습니까? 교도소에 수감된 흉악한 죄수들이 언제 눈물을 흘립니까? “어머니 은혜” 를 부르면 다 눈에 눈물을 흘린다고 합니다. “낳실 때 괴로움 다 잊으시고 /기르실 때 밤낮으로 애쓰는 마음 /진자리 마른 자리 갈아 누시며 /손발이 다 닳도록 고생하셨네 /하늘 아래 그 무엇이 높다 하리요 /어머니의 은혜는 한이 없어라.”  부모님의 은혜는 우리가 다 헤아릴 수 없습니다. 나이를 먹어 가니까 조금은 알 것 같습니다


2)유교에서도 부모를 공경하라고 가르칩니다.

효를 행하는 것이 덕의 근본입니다. 효가 사회질서의 근본입니다. 어른을 공경하지 못하면 아무 것도 못합니다. “어버이를 섬기는 자는 윗자리에 있어도 교만하지 아니하고, 아랫자리에서도 어지럽게 하지 않으며, 동류들끼리 다투지 않는다” 고 했습니다. 효는 진리입니다. 효는 그 사람의 됨됨이는 물론이고 이웃과 사회를 아름답게 하는 실천적인 진리를 담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자녀는 부모를 공경해야 합니다. “부모가 자녀를 미워하면 자녀된 자는 두려워 할 뿐이고 부모를 원망하지 말 것이며, 부모가 잘못하면 자녀된 자는 간하고 거스리지 말 것이라. 간할 때에 공손히 부드러운 음성으로 하고, 들어주지 않아도 공경하면서 효도하고, 그의 마음을 얻은 후에 다시 간할 것이다. 세 번 간해도 부모가 듣지 아니할 때에는 자녀된 자는 울면서 부모를 따라 다녀야 한다” 고 했습니다. 이와 같이 부모를 공경하고 섬긴다면 가정이나 이웃이나 나아가 사회는 질서 정연하고 도덕 윤리가 올바른 세상이 될 것입니다. 유교의 효는 진리입니다.
다만 아쉬운 것은 유교의 효가 부분적이라는 점입니다. 윗분 중의 윗분은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을 공경하는 데까지 이르지 못한 효가 온전한 효가 되지 못합니다. 하나님이 없는 부모 공경은 비진리를 강요하거나 과거의 전통만 고집할 수 있습니다. 세상은 날마다 바뀌고 있습니다. 진리가 더욱 빛을 발하고 있습니다. 잘못하면 부모 순종하고 공경하는 자는 복고주의자로 비췰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 안에서, 진리 안에서 부모를 공경하지 못한다면 낡은 전통과 과거의 유산으로 돌아가는 듯한 인상을 지울 수 없습니다.

역사적으로 볼 때 유교의 효가 죽은 조상을 제사하는 것으로 변질된 것은 문제입니다. 한국적인 상황에서는 불행하게도 부모 공경이 죽은 부모를 섬기는 것으로 둔갑했습니다. 그 동기도 불순해서 부모를 위하기보다는 죽은 부모를 통해 자신이 복을 받자고 한다면 부모 공경은 말뿐입니다. 우상숭배의 길을 연 것과 같습니다. 일이 이쯤 되면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2.부모를 공경하라

1)성경은 부모 공경에 대해 어떻게 가르칩니까?

“네 부모를 공경하라” 고 말씀합니다. 단편적인 진리가 아니라 성경 전체의 대 주제입니다. 십계명 중에 5계명은 부모 공경의 계명입니다.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너의 하나님 나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출20:12).”  그 외에도 성경의 여러 곳에서 부모 공경을 말합니다. “내 아들아 네 아비의 명령을 지키며 네 어미의 법을 떠나지 말고 그것을 항상 네 마음에 새기며 네 목에 매라(잠6:20-21).”  “네 부모를 즐겁게 하며 너 낳은 어미를 기쁘게 하라(잠23:25).”  “하나님이 이르셨으되 네 부모를 공경하라 하시고 또 아비나 어미를 훼방하는 자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셨거늘(마15:4).”

부모를 공경하는 계명은 가장 중요한 계명입니다. “이것이 약속 있는 첫 계명이니(2절)” 라고 합니다. 첫 계명이란 가장 중요한 계명이라는 말입니다. 인간은 두 가지 의무를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는 하나님에 대한 의무이고, 다른 하나는 인간에 대한 의무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의무는 하나님을 공경하는 것에서 시작되고, 인간에 대한 의무는 부모를 공경하는 것에서 시작됩니다. 이 둘은 공통점을 갖고 있습니다. 공경이라는 점입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생활은 하나님을 귀하게 여기고 무겁게 여겨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인간을 섬기는 생활은 부모를 귀하게 여기고 무겁게 여겨야 합니다.


2)그러므로 부모를 공경하는 것은 하나님을 공경하는 것과 연관된 것입니다.

부모를 섬기지 못하는 자는 하나님도 제대로 섬길 수 없습니다. 눈에 보이는 부모님을 공경하지 못하는 사람이 어떻게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공경할 수 있습니까? 눈에 보이는 하나님의 일군들을 존경하지 못하는 사람이 어떻게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섬길 수 있습니까? 교회와 목사님을 존중하지 않는 사람이 어떻게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공경합니까? 그것은 이론이지 실제일 수는 없습니다.

반대로 하나님을 공경하는 자는 부모를 공경합니다. 나를 이 세상에 태어나게 하신 생명의 주인이고 죄인된 나를 구원하신 구원의 하나님을 공경한다면, 어찌 육체를 있게 하신 부모님과 나를 양육하신 부모님을 어찌 모른다 할 수 있습니까? 그러므로 기독교의 효는 인본주의가 아니라 신본주의입니다. 하나님을 생각하고 하나님을 섬기듯, 육신의 부모와 윗분들을 순종하고 공경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부분적이지 않고 전체적입니다. 모든 윗분들과 질서에 대해 공경하는 태도를 가집니다. 또한 비진리와 타협하거나 변질되지 않습니다. 나를 위해 부모님을 이용하지도 않습니다. 오히려 부모님의 영혼을 위해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은총이 있도록 노력합니다. 참으로 효도 중의 효도를 다합니다. 하나님 안에서 부모님을 섬기는 자가 최고의 효를 다합니다. 믿습니까?


3.어떻게 공경합니까?

1)부모님이 자녀들을 마음껏 축복하도록 합시다.

이삭은 죽기 전에 에서와 야곱을 마음껏 축복하고 죽었습니다. “이삭이 나이 많아 눈이 어두워 잘 보지 못하더니 맏아들 에서를 불러 가로되 내 아들아 하매 그가 가로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니 이삭이 가로되 내가 이제 늙어 어느 날 죽을는지 알지 못하노니 그런즉 네 기구 곧 전통과 활을 가지고 들에 가서 나를 위하여 사냥하여 나의 즐기는 별미를 만들어 내게로 가져다가 먹게 하여 나로 죽기 전에 내 마음껏 네게 축복하게 하라(창 27:1-4).”

부모를 즐겁게 하기 위해서는 육신적인 책임을 다 해야 합니다. 우리가 어려서 부모님의 도움을 받았듯이, 이제는 부모님이 우리의 도움을 받아야 합니다. 남은 여생을 육신적으로 즐겁게 지내도록 힘을 다 해야 할 것입니다. 초대교회는 과부를 도와야 했습니다. 그런데 교회가 책임질 과부가 있는가 하면, 가정과 자녀들이 책임질 과부가 있었습니다. “만일 어떤 과부에게 자녀나 손자들이 있거든 저희로 먼저 자기 집에서 효를 행하여 부모에게 보답하기를 배우게 하라 이것이 하나님 앞에서 받으실만한 것이니라(딤전5:4).”  믿는 자들이 부모에 대한 육신적인 책임을 다하지 않는 것은 참으로 잘못된 일입니다. 남의 부모라도 도와야 할 교회입니다. 자기 부모도 섬기지 못한다면 말이 안될 일입니다.


2)부모님의 마음을 충분히 이해합시다.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까지 믿음으로 이해하고 공경합시다. 못난 부모라도, 혹은 불만족스런 부모라도 이제는 이해하고 사랑하고 공경합시다. 지난주간에 어버이날이 있었습니다. 아이들이 효도하라고 임시 휴교하는 학교도 있다고 합니다. 좋은 일입니다. 세상이 많이 바뀌었습니다. 효도가 달리 있습니까? 부모님 마음 이해하고 따뜻하게 해 드리는 것이 효도입니다.

저희도 어머님 모셔서 저녁 한끼 식사를 같이 했습니다. 잠깐 집에서 예배드리고 라빌레뜨에 갔는데 아이들도 좋아하고 어머니도 좋아하셨습니다. 저가 신학한다고 어머니 마음 고생 많이 시켰습니다. 교회 일한다고 마음 고생 많이 시켰습니다. 하나님의 일을 한다는 것이 좋긴 하지만 가정 형편이나 믿음으로 보아서 염려할만 했습니다. 교회를 사임할 때마다, 교회 개척한다고 한 날부터 지금까지 늘 마음에 걱정을 드린 것 같습니다. 지금도 어머니 만나면 “이제는 아들 걱정 안해도 된다” 고 마음의 위로를 드리려고 애를 씁니다. 육신도 육신이지만 마음의 위로를 드리려고 합니다. 지금은 모교회에서 아들 잘 둔 자랑스런 어머니로 대접을 받는답니다. 얼마 전에 교회 “한나회” 에서 단체 여행을 갔는데, 집사님이 팁을 거두면서 저희 어머니를 소개하기를 훌륭한 목사님을 아들로 둔 권사님이라고 했답니다. 그래서 저희 어머니 마음에 만원을 할까 하다가 오천원만 했답니다. 제가 아직도 마음에 위로가 되지 못하는가 봅니다. 내년에는 만원을 아끼지 않고 내도록 마음에 기쁨을 드리고 싶습니다.


3)그리고 부모를 즐겁게 하는 것은 부모에게 기쁨이 될만큼 믿음으로 살고, 말씀대로 순종해서 사는 것입니다.

부모님이 “불신 결혼은 하지 말라”  하셨습니다. 그런데 야곱은 그 말에 순종했지만 에서는 가나안 여자와 결혼했습니다. “에서가 또 본즉 가나안 사람의 딸들이 그 아비 이삭을 기쁘게 못하는지라 이에 에서가 이스마엘에게 가서 그 본처들 외에 아브라함의 아들 이스마엘의 딸이요 느나욧의 누이인 마하랏을 아내로 취하였더라(창28:8-9).”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것이 곧 부모를 기쁘게 하는 삶입니다. 이방인이 아니라 하늘의 거룩한 백성으로 사는 것이 부모에게는 더 없는 자랑입니다. 믿습니까?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축복을 귀하게 여겨야 합니다. 에서는 장자권을 팥죽 한 그릇에 팔았습니다. 성경은 그를 망령된 자라 합니다. 반면 야곱은 형의 발꿈치를 잡고 나온 동생이었지만 하나님의 축복을 간절히 사모했습니다. 부모를 공경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로 인한 구원을 귀하게 여기는 삶입니다. 부모를 공경하는 것은 이 세상보다 천국의 영생을 더욱 귀하게 여기는 것입니다. 부모를 공경하는 것은 교회를 귀히 여기고, 하나님의 나라를 기업으로 삼는 생활입니다. 나봇이라는 순교자를 알고 있습니까? 그는 아합왕이 포도원을 달라는 제의를 거절한 죄로 억울하게 죽었습니다. 조상의 기업을 목숨처럼 귀하게 여겼습니다. 주님 안에서 부모를 공경한다는 것은 조상의 신앙의 유업을 귀하게 여기고 지키는 것입니다. 에스더가 “죽으면 죽으리라”  하고 왕에게 나아가도록 용기를 준 사람은 삼촌 모르드개였습니다. 에스더에게는 부모와 같은 사람입니다. “너는 왕궁에 있으니 모든 유다인 중에 홀로 면하리라 생각지 말라 이 때에 네가 만일 잠잠하여 말이 없으면 유다인은 다른 데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으려니와 너와 네 아비집은 멸망하리라 네가 왕후의 위를 얻은 것이 이때를 위함이 아닌지 누가 아느냐(에스더 4:13-14).”  하나님을 뜻을 따르라는 말씀에 순종할 때 에스더는 유다인을 구원하는 큰 역사를 이룰 수 있었습니다.

저는 지난주 학생 몇과 점심 식사를 하다가 우연히 그 중 한 학생의 아버지가 저희와 같이 공부한 동기생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브라질에서 유학을 와서 대학을 마치고 신학대학원에 진학한 것입니다. 그 학생의 아버지도 이민을 갔다가 늦게 신학을 하기 위해 한국에 와서 공부하신 분이었습니다. 아들도 아버지의 뒤를 이어서 신학을 공부하고 있습니다. 공부를 마치면 브라질도 돌아갈 계획이라고 했습니다. 육신으로 공경하는 것보다 영혼을 공경하는 것은 더욱 아름답습니다. 믿습니까?

부모를 공경하면 어떻게 됩니까? 잘되고 장수합니다. 사람의 말이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잘되고 장수한다는 말이 무엇입니까? 건강하고 부자가 된다는 뜻도 있지만 범사에 하나님의 축복 속에 산다는 것입니다. 좋은 인격자가 되고 세상에서 환영받고 하나님 나라의 일군으로 사는 복을 누립니다. 만일 부모를 공경하지 못하면 어떻게 됩니까? 자기 몸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합니다. 사고나 질병으로 제 목숨대로 살지도 못할 것입니다. 범죄자가 되든지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가 될 것입니다. 다른 사람이나 사회에서 존경받지 못하는 천덕꾸러기가 될 것입니다.

매사에 때가 있습니다. 부모 공경도 언제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시간이 없습니다. 이삭이 죽기 전에 축복을 할터이지 음식을 만들어 오라고 했습니다. 야곱과 에서는 시간을 다투어서 별미를 준비했습니다. 야곱은 거짓말을 하면서까지 시간을 앞당겨 축복을 받았습니다. 조금 늦게 도착한 에서는 대성통곡했지만 소용이 없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에게는 내일이 있을지 몰라도, 늙은 부모님에게는 오늘이 마지막일지 모릅니다. 부모님 살아 계실 때 받을 수 있는 축복을 외면하지 맙시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