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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욥처럼 사십시다 (욥 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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욥처럼 사십시다(욥1:1~5) 

사랑하는 여러분!
지난 한 주간 평안하셨습니까?
행복하셨습니까?
살림살이는 좀 나아지셨습니까?
어버이 주일입니다. 어떻게 살아야 부모처럼 자녀들의 존경받을 수 있을까요?
오늘은 "욥처럼 사십시다"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눌 때에 성령님의 강한 은총이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사람이 인생 70이요 강건하면 80이라는 짧은 인생을 살아가면서도 수많은 희비가 엇갈리게 됩니다. 기쁜 일을 만났을 때에는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가를 가르쳐 주는 것이 구약 성경의 아가서이고 그 반대로 엄청난 고난을 당하였을 때에는 어떻게 처신해야 할지를 가르치는 것이 바로 욥기서입니다. 욥기서는 모두 42장에 달하는 긴 책 중의 하나입니다. 소설가들은 욥기서를 대단한 작품으로도 인정하고 있는데 단테의 신곡이나, 세익스피어의 겨울이야기, 로미오와 줄리엣 괴테의 파우스트와도 비교할 수 없는 세계최고의 작품이라고 말할 정도입니다.

칼라일이라는 사람은 욥기를 읽으면서 너무너무 심취하여 욥기서에 깊이 빼져 들므로 자기가 마치 욥과 같은 사람이 된 것으로 착각하였을 정도였다고 말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그렇게도 고통을 당했던 욥. 얼마나 얼마나 가려웠으면 깨어진 기왓장으로 자신의 몸을 벅벅 긁어 댔겠습니까? 얼마나 비참한 몰골이었으면 10명의 자녀를 낳기까지 같이 살던 아내마저 저주하며 욥의 곁을 버리고 도망하였겠습니까?
그런데 왜 우리를 보고 욥 처럼 욥 같이 살자는 것입니까?

1절을 보십시다. 다같이 읽을까요? 왜 욥처럼 살아야 합니까? "우스 땅에 욥이라 이름하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 사람은 순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더라" 아멘!

첫 번째로> 욥은 순전한 사람이었습니다.
여기 순전하다는 말은 완전하다, 성실하다, 흠이 없다라는 의미입니다.
무엇이 완전하였을까요?
하나님 앞에서도 거리낌이 없었고 사람을 대하여서도 부끄러움이 없다는 말입니다. 다시 말하면 "깨끗한 양심을 가졌다"라는 의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우리에게 무엇을 명령하셨습니까? "내가 온전한 것같이 너희들도 온전하라"만일 거리끼는 것들이 있었다면 버려야 합니다. 멀리해야 합니다. 깨끗해 져야 합니다. 이것이 순전한 모습입니다. 하나님 앞에서도 사람 앞에서도 순전한 사람.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두 번째로> 순전하다는 것은 성실하다라는 말입니다. 교활하지 않았습니다. 거짓말을 생각하거나 계획하지 않았습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무엇을 원하는지 아십니까?
재능입니까? 학벌입니까? 돈벌어서 충성하겠다는데 돈인 줄 아십니까? 절대로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바로 성실입니다. 성실이란 자기 입으로 말한 것은 행동으로 옮기는 것 이것이 바로 성실입니다. 우리 예수님께는 말씀하신대로 사셨기에 "말씀이 육신이 되었다"라고 요 1장에서 말하였던 것입니다. 오늘! 저녁예배까지 성수 하시기를 바랍니다. 아멘!  한대로 생각하고 지켜 나아가는 모습이 바로 성실입니다. 에이! 그러면 아멘 안하면 되지∼ 라고 생각한 분이 계시다면 그건 하나님의 말씀에 도전하는 것이므로 교활한 사람입니다. 거짓의 편에서는 죄악의 사람인 것입니다.
성실한 사람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성실한 사람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성실이란 흠이 없다 라는 의미입니다.

다니엘서 6:4에 보면 "다니엘을 시기하여 고소할 틈을 얻고자 하였으나 능히 아무 틈 아무 허물을 얻지 못하였으니 이는 그가 충성되어 아무 그릇됨도 없고 아무 허물도 없음이더라" 이 얼마나 멋있는 사람입니까?
털어서 먼지 않나는 사람이 어디에 있느냐? 이게 무슨 일이에요?
"흠 없는 사람이 어디에 있느냐?" 그러나 다니엘이나 욥은 흠이 없이 살았다는 것입니다.

소망의 성도들이여!
우리들은 순전한 사람이 되어 가시기를 부탁합니다. 온전한 사람!! 성실한 사람!! 흠이 없는 사람!! 예수 믿고 옛 것에서 순전한 사람의 변화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욥은 정직하였다 하였습니다.
정직이란 말은 "곧바르다" 구브러지지 않았다"
그러나 죄는 우리를 구브러지게 합니다.
목사! 이 속에 죄가 들어오면 독사가 될 수도 있습니다.
장로! 이 속에 죄가 들어오면 깡패가 될 수 있습니다.
집사! 이 속에 죄가 들어오면 잡사가 됩니다.
속장! 이 속에 죄가 들어오면 겉장이 됩니다.
학생! 그 속에 죄가 들어오면 비행 청소년이 되게 합니다.
아내! 그 속에 죄가 들어오면 춤바람이 나서 새벽이슬 맞으며 집에서 뛰쳐나가게 합니다.
성도들 속에 죄가 들어오면 폭도로 변질되게 합니다.
그러나 욥은 정직하였습니다.
그래서 부자였을 때에도 가난해도 자녀가 많은 때나 적을 때나 아내가 있거나 도망쳤거나 그 어떤 상황 하에서도 1장 22절을 보세요
"이 모든 일에 욥이 범죄치 아니하고 하나님을 향하여 어리석게 원망하지 않았다" 하였습니다. 무엇하지 않았다? 원망하지 않았다. 그 어떤 일을 만나도 하나님을 향해, 사람을 향해 원망하지 않는다면 이것이 바로 정직한 사람입니다.

다시 생각해 보겠습니다.
욥이 "완전했다"라는 말은 죄가 전혀 없었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죄에 대해 끊임없이 싸우면서 나갔다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순전한 사람, 정직한 사람에게 하나님은 어떤 복을 주실까요?
하나님께서는 그런 사람에게 3가지 복을 쏟아부어 주셨습니다.

첫째> 2절을 보세요
"그 소생은 남자가 7이요 여자가 3이며" 아멘!
욥은 성실했습니다. 정직하였습니다. 그리고 5절에서는 "아침에 일어나서 그들의 명수대로 번제를 드렸다" 하나님 앞에 예배를 자녀들의 숫자대로 아침에 일어나서 드렸다. 예배를 즐거워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우리 하나님께서도 예배를 어떻게 드리라고 하셨습니까?
요 4:23에서는 "신령과 진정으로" 드려야 하며 하나님께서는 참으로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신다고 하였습니다.
위대한 신앙인들의 기적과 역사는 모두 예배를 어떻게 드리느냐에 의해 이루어 졌던 것입니다. 모세는 그 과격한 성품을 가졌는데도 40일간 금식하며 기도하는 예배자였기에 반석을 쪼개고 홍해를 가르는 기적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베드로도 시간을 맞추어서 성전에서 예배하고 기도하여 올라가다가 앉은뱅이를 그 자리에서 벌떡 일으키는 신유의 기적을 일으켰던 것입니다.
그런데 요즘 우리의 예배 모습은 어떠합니까?
한, 두 번 빠지는 것을 너무나도 쉽게 생각합니다.
뭐 그런 것 가지고 그러냐며 오히려 "부담스럽다"
아니에요! 예배는 즐겁게 드려야 합니다. 즐겁게 예배하면 우리를 기쁘게 받아주신다고 욥 42:8에 말씀하셨습니다. 다윗은 예배하기 위해 성전으로 올라갈 때마다 즐겁에 노래하며 기뻐 춤추며 올라갔다 하였습니다.
우리는 기쁘고 즐겁게 예배를 드려서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 위하여 찾아 주시는 복된 사람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이게 무슨 말이에요? "자손의 복을 받는다"라는 의미입니다. 구약시대에는 자손이 많다는 것은 복중에서도 최고의 복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은총의 복이었고 딸은 시집 보낼 때면 남편 될 사람이 지참금을 가져왔기에 물질의 풍요였고 사람의 힘으로 일하던 시대였기에 사내아이는 풍성한 노동력을 얻을 수 있기에 하나님의 은총이 축복의 표시였습니다.
그저 단순히 애가 많기에 복이 아니라 숫자적으로도 복입니다.
아들 7 칠은 완전 숫자이며
딸 셋의 셋은 삼위일체의 숫자이고
모든 열은 많다의 열이기에 욥은 행복 그 자체 였습니다.
하나님 앞에 정직하고, 성실하게 사는 것이 부담스럽다구요 왜 그 눈에는 부담스러운 것만 보이십니까?
왜 시꺼먼 안경을 끼고 아! 세상이 어두워 하나님 앞에 정직하고 성실하면 내 자녀가 복을 받는 다는 사실입니다.

소망의 성도들이여!
무슨 생각이 떠오르십니까?
부담스럽고, 힘이 들고 어렵고 짜증나고 귀찮고 간섭받고
그것은 하나님 앞에서 정직하지 못했기 때문에 생긴 결과입니다.
그것은 사람에서도 성실하게 살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교활하다는 증거입니다.
거짓말하며 살고 있다는 징표입니다.
잊지 마세요!
하나님 앞에서 성실하면 정직하면 자손의 복을 누리는 것입니다.

두 번째> 3절을 다같이 읽겠습니다.
"그 소유물은 양이 칠천이요, 약대가 3천이요 소가 5백 겨리요, 암나귀가 오백이며, 종도 많이 있었으니 이 사람은 동방 사람 중에 가장 큰 자라"
물질의 축복을 받기 원하시면 아멘 하십니다.
있어야 나누어 줄 것이 아닙니까?
어떤 교회에서는 청년들까지 자비량으로 선교를 떠나는데 한 달에 천만원 가까이 월급을 받는다는 사람은 비행기표 값을 대주어야 가겠다고 하더랍니다.
누가? 부자입니까? 누가 하나님의 복을 받는 사람입니까?
가지기는 했으나 줄 것이 없다면 그건 가난한 사람입니다.
가진 것은 적으나 그 적은 것을 가지고서도 나눌 줄 안다면 하나님의 복을 받을 사람입니다.
소망의 성도들이여!
땅 끝까지 이르러 복음을 선포할 때 비행기 값 대주세요!
한푼 줘 하는 깡통을 다 내버리고
나누어주면서도 부족이 없고
베풀어주면서도 더 나누어주며
꾸어줄지언정 꾸러 다니지 않고
들어가도 복을 받고 나가도 복을 받는 신 28장의 축복이 함께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정직하면 주님은 때를 따라 쏟아 부어 주신다는 말입니다.
사람 앞에서 성실하면 하나님께서는 쌓을 곳이 없도록 주시는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부자 되게 해 달라고 조르지 않아도 됩니다.
그런 탈렌트가 TV광고에서도 한 일입니다.
우리가 정직하고, 순전하고, 성실하면 하나님께서는 물질의 복을 쏟아 부어 주시는 것입니다. 누가 소를 끌고 갈 때 소 궁뎅이를 밀고 갑니까? 아니잖아요.
가느다란 고삐줄만 잡고 가면 그 500-600㎏되는 황소도 저절로 따라오지 않습니까?
성실하면 자손의 복을 받습니다.
정직 물질의 복을 누리게 됩니다.

마지막으로 3절 마지막 부분을 보세요
"이 사람은 동방 사람 중에 어떤 사람이라? 가장 큰자라
이게 무슨 의미입니까?
하나님에게 축복 받을 뿐 아니라 사람들에게도 존경을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저는 8남매 중에 막내입니다.
그런데도 형님이나 누님들이 저에게 언제나 존칭어를 쓰십니다. 어렸을 때에는 그리도 심부름을 많이 시키시더니 이제는 오히려 기도를 부탁하시고 의논하시고 묻는 것도 참 많아졌습니다. 제가 인간적으로 잘났기 때문이 아닙니다.
공부를 봐도 그 분들이 더 잘하셨고
노래를 불러도 둘째 형님은 더 잘 부르시고
가진 재산도 비교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왜 동생인데도 존칭어를 쓰시면서 귀하게 대하시는 것일까요?
그건 순전히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 중에서 가장 큰 사람으로 세워 주시는 분이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신 28장에서는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난 사람이 죄라"고 복을 주신 것입니다. 사람에겐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가 있기에 영안이 열려야 합니다. 그러나 사람에겐 눈에 보이는 세계도 있기에 이 세상에서도 복을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는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 앞에 성실하면 죽어 천당에 가야만 복을 받는 것이 아닙니다.
이 땅에서도 사람 중에 가장 큰 사람이 되게 해 주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 소망의 모든 자녀들이 사람들 위에 뛰어난 사람이 되어서 생육하고, 번성하고 아멘 하십니다.
생육하고 번성하고 충만하여 이 땅을 다스릴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어떻게 하면 그렇게 될 수 있을까요?
옥동자야! 어떻게 하면 그렇게 될 수 있니?
옥동자에게 묻지 마세요!
우리 하나님 앞에서 성실하면 정직하면 만복의 뿌리가 되시는 하나님께서 때를 따라 쏟아 부어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도 욥처럼 사십니다.
동일한 죄를 저지르지 말며 하나님을 성실하게 정직하게 섬기다가 자녀의 축복이 물질의 축복이 사람에게 존귀함을 받는 은총을 누리시기를 축원합니다.
다같이!
우리도 욥처럼 사십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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