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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여호와께서 여기 계시거늘 / 창 28: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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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께서 여기 계시거늘
(창 28: 10-22)

사람으로 이 땅에 태어났다면 누구나 이 땅에 살면서 선한 일을 하고 잘살아봐야겠다고 하는 마음을 한번쯤 안 가져본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마음과는 달리 사람들은 살아가면서 육신에 매여 또 다른 이유로 그 선한 뜻을 실행하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본문의 야곱과 에서의 삶을 살펴볼 때 그 이유를 보다 분명하게 깨달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야곱은 자신의 형편과 처지에도 절망하지 않고 영적 승리를 이끌어냈던 것입니다.


1. 야곱이 브엘세바에서 떠남

  야곱은 자라나면서 점점 형 에서에게 복중에서 장자의 명분을 빼앗겼다고 하는 사실이 견딜 수 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분해하는 것은 단지 땅위의 장자권 때문만은 아닙니다. 그것은 할아버지 아브라함의 언약의 계통을 아버지에 이어 자신을 통해 이어가기를 원하는 간절한 기대와 소망에서 비롯된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의 이런 바람은 마침내 형의 축복을 빼앗게 되는 수단을 키우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그가 팥죽 한 그릇으로 형 에서의 장자 권을 빼앗은 이 사건은 세상으로 볼 때에는 그를 실패자로 만든 계기가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호적이나 상속상의 장자가 아닌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신령한 언약의 장자였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그는 형 에서에게 미움과 원한을 받는 늘 쫓기는 도망자 신세가 되기까지 한 것입니다.

이제 46절에 그 어머니 리브가가 남편 이삭에게 말합니다. “내가 헷사람의 딸들을 인하여 나의 생명을 싫어하거늘 야곱이 만일 이 땅의 딸들 곧 그들과 같은 헷 사람의 딸들 중에서 아내를 취하면 나의 생명이 내게 무슨 재미가 있으리이까” 이렇게 해서 야곱은 이삭의 명을 받고 가나안 사람 중에서 아내를 취하지 않기 위해 브엘세바를 떠나 삼촌 라반에게 갑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당신의 종들을 기름 부을 때에는 반드시 집을 떠나게 합니다. 그리고 고난과 광야의 길을 통과하게 합니다. 여기는 외롭고 고독한 곳입니다. 맹수가 우글거리는 곳입니다. 그러나 그는 그 속에서 많은 고생과 무인지경에서 살아가는 비법을 깨닫게 됩니다. 왜냐하면 이렇게 사람은 이런 혹독한 환경 속에서 절대적인 종속자 하나님과 나와의 일대일의 관계를 맺게 되기 때문인 것입니다.


2. 벧엘의 하나님

  야곱이 길을 떠나 가다가 한 곳에 이르러 해가 짐으로 거기에 유숙하려고 그곳의 한 돌을 취하여 베개 하여 잠을 잡니다. 그런데 야곱은 여기에서 참 놀라운 꿈을 꾸었습니다. 12절에 말씀합니다. “꿈에 본즉 사닥다리가 땅위에 섰는데 그 꼭대기가 하늘에 닿았고 또 본즉 하나님의 사자가 그 위에서 오르락내리락하고” 그런데 여기에서 우리가 깨달을 수 있는 사실이 있습니다. 그것은 이 사다리가 땅과 하늘에 닿았다고 하는 사실입니다. 다시 말해 야곱에게 주신 사다리는 땅에서 하늘로 올라간 사다리가 아니라 바로 하늘에서 땅으로 내려온 사다리인 것입니다. 왜냐하면 땅에서 올라간 사다리는 스스로 결코 하늘에 닿을 수 없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요한복음 3장 13절에서는 “하늘에서 내려온 자밖에는 하늘에 올라갈 자가 없느니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처럼 땅위에서 만들어낸 종교로는 하나님을 만날 수 없는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께서만 우리에게 오실 수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가 성령을 받아야 하고 거듭나야 하는 이유가 여기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우리에게 내려오시지 않는 한 인간 스스로는 결코 하나님을 알 길도, 만날 길도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우리는 하늘에서 내려오는 말씀의 사다리, 성령의 사다리, 십자가의 사다리를 반드시 붙잡아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가 믿는 믿음인 것입니다. 때문에 우리는 이 시간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께서 하늘에서 가지고 내려오신 십자가 앞에 겸손하게 엎드려야 합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신 것입니다.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라.” 그렇습니다. 이 땅에서 어떤 종교도 우리에게 하늘의 사다리를 놓아줄 수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만이 친히 십자가의 다리를 우리에게 놓아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예수의 이름으로 기도를 하고,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말이나 행동이나 다 예수의 이름으로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성도의 삶인 것입니다.


3. 여호와께서 과연 여기 계시거늘 내가 알지 못하였도다.

  15절에 말씀합니다.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신지라.” 이처럼 신약이나 구약이나 하나님께서는 택한 백성을 떠나지 아니하시는 것입니다. 그를 향한 뜻을 다 이루기까지 결코 떠나지 아니하시는 임마누엘의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이처럼 야곱은 구약의 할아버지아브라함과 아버지이삭의 뒤를 이어 언약의 계통을 이어 갔을 뿐 아니라 신약의 임마누엘의 하나님을 직접 만난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내가 자고 있는 여기, 곧 이 세상에서는 나와 함께 할 자가 없는 것입니다. 내 영혼을 대신할 자가 없습니다. 이처럼 우리가 인생을 살아간다고 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홀로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내가 내 인생 가운데 홀로 있다고 하는 것은 다시 말해 “하나님과 내가 어떤 시공간의 제한도 받지 않고 하나”가 될 수 있는 조건이 되기도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이 시간도 야곱을 통해 우리에게 약속해 주시는 것입니다.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15)

그러므로 이 말씀을 깨닫는 자마다 언약을 깨달으므로 인생의 홀로 있는 순간마다 절망하지 말고 하나님과 나 사이에 놓인 영적인 사다리를 붙잡음으로 야곱의 하나님을 내 하나님으로 만들어 가시기를 우리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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