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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기도 응답의 확신이 있습니까? / 마 7: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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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 응답의 확신이 있습니까?
마태복음 7장 7-8절

어느 가난한 농부가 있었습니다. 그는 누구에게 돈을 꾸어달라는 말을 꺼내지 못할 정도로 순진했습니다. 더 이상 견딜 수 없을 정도로 어려워진 그는 생각다 못해 하나님께 편지를 썼습니다. "하나님, 예수님이 내 이름으로 구하면 무엇이든지 다 주신다고 하셨습니다. 제게 500만원만 주십시오."

그는 이 편지를 어디에 보내야 할지 몰라 고민하다가 나라에서 가장 높은 분이 대통령이기에 "대통령 귀하"라 써서 보냈습니다. 대통령은 이 편지를 받고 웃으면서 250만원을 보내 주었습니다.
그는 너무 기뻐 하나님께 말했습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그런데 다음부터는 제게 직접 주십시오. 대통령을 통해 주시니까 반을 떼어먹고 보냈습니다." 정말 순진한 농부였습니다. 믿음의 기도는 응답됩니다.

여덟 살이 된 아이가 며칠 전부터 밤마다 잠자리에 들기 전 침대 밑에다 실내화 한 짝을 던져놓곤 했습니다. 이런 모습을 유심히 지켜보던 엄마가 넌지시 물었습니다. "왜 그렇게 실내화 한 짝을 침대 밑에 놓는 거니?" 그 때 아이는 웃으며 대답했습니다. "교회 선생님이 말씀하셨어요. 잠자리에 들기 전 실내화 한 짝을 침대 밑에 놓으면 아침에 일어나 그 실내화를 찾으려고 침대 곁에서 무릎을 꿇게 되는데 그 때 바로 잊지 말고 기도해야 하거든요. 그러니까 무릎 꿇고 기도하기 위해 그런 거예요."

많은 신앙의 선배들의 말처럼 기도만큼 쉬운 것도 없지만 또 기도만큼 어려운 것도 없는 것 같습니다. 이 말은 기도생활을 통하여 하나님과의 영적인 채널이 항상 열려져 있으면 기도만큼 쉬운 것도 없지만, 그렇지 못할 경우에는 기도하는데 있어서 많은 어려움을 겪게 된다는 말입니다.

사실 규칙적으로 하나님과의 만남의 시간을 갖는 것이 복잡하고 바쁜 시대에 말처럼 쉬운 것은 아닙니다. 때문에 우리는 기도생활을 계획했다가 실패한 쓰라린 경험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신앙인이라면 기도생활은 당연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성공적인 기도생활을 할 수 있는 비결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자신의 주변을 늘 기도할 수 있는 준비된 환경으로 만들어 놓는 일에서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기도는 늘 기도를 생각하는 사람이 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마틴 루터는 "기도하지 않고 기독교인이 된다는 것은 숨쉬지 않고 사는 것처럼 불가능한 일이다."라고 했습니다.

A. 링컨은 "아무 데도 갈 데가 없이 막연할 때 나는 여러 번 무릎을 꿇게 된다. 나의 지혜와 주위의 모든 것이 감당하기에 너무 벅찰 때 나는 기도하게 된다."고 했습니다.

죠지 듀엘은 "기도는 세계를 움직일 수 있다."고 했고, 죤 칼빈은 "우리 주위에 금성철벽을 쌓는 것과 같다."고 했습니다.
기도는 시간을 가장 단축시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역사하시면 그 누구보다 강하고 빠른 것이기 때문입니다. 기도는 하나님과의 친밀한 교제를 완성시켜줍니다.

하나님께서는 성경을 통해서 우리들에게 말씀하시고, 우리는 기도로써 하나님께 응답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성경을 통해서 나타난 하나님의 뜻이 기도를 통해서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때문에 기도는 성도가 누리는 특권 중에 특권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기도 응답의 확신이 있습니다.

1. 기도란 무엇입니까?

기도는 믿음으로 하는 그리스도인과 하나님과의 대화입니다.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확신을 가지고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가 은혜를 구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기자는 "우리가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고 했습니다(히 4:16).

그런데, 기도에 대한 오해가 있습니다.

첫째, 기도는 혼자서 하는 참선이나 명상이 아닙니다.
기도는 살아 계신 하나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기도 할 때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라고 하는 것입니다.

둘째, 기도는 세상의 다른 종교의 신에게 하는 것과는 다릅니다.
기도는 예수를 믿는 사람이 살아 계신 하나님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4장 13-14절에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시행하리니 이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을 인하여 영광을 얻으시게 하려 함이라,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시행하리라."고 했습니다.

셋째, 기도는 예배 때 공중석상에서만 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기도는 골방에서 시작되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6장 6절에 "너는 기도할 때에 네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고 했습니다.

넷째, 기도는 의미 없는 종교적인 말을 되풀이하는 것이 아닙니다.
기도는 구체적인 내용의 전달입니다.
마태복음 6장 7절에 "기도할 때에 이방인과 같이 중언부언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다섯째, 기도는 나의 소원을 일방적으로 청구하는 것이 아닙니다.
기도의 목적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더욱 깊게 하는데 있습니다.
요한복음 15장 7절에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기도란? ① 살아 계신 하나님 아버지께, ②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③ 은밀하게, ④ 구체적인 내용으로, ⑤ 깊은 관계를 맺으며 구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기도는 성령님의 인도로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하나님 아버지께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기도는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유효하게 되고, 성령에 의해 하나님 아버지께 상달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은 삼위의 인격체 중에 한 분이시기 때문에 예수님이나 성령님께 기도하는 것도 가능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가르쳐주신 성경적인 기도는 성부 하나님께 하는 것입니다.


2. 우리의 기도가 어떻게 하나님께 상달(上達) 될까요?

첫째, 천사들의 도움으로 가능합니다.

요한계시록 5장 8절에 "어린 양 앞에... 향이 가득한 금 대접을 가졌으니 이 향은 성도의 기도들이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천상의 모습입니다. 그 모습 중에 어린 양되신 주님의 보좌 앞에 향이 가득하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 향은 성도들의 기도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하여 우리들의 기도가 거기에 이르게 되었을 까요?
요한계시록 8장 3-4절을 봅시다.
"또 다른 천사가 와서 제단 곁에 서서 금 향로를 가지고 많은 향을 받았으니 이는 모든 성도의 기도들과 합하여 보좌 앞 금단에 드리고자 함이라, 향연이 성도의 기도와 함께 천사의 손으로부터 하나님 앞으로 올라가는지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기도 할 때 천사들이 우리의 기도를 금 향로에 담아 가지고 가서 보좌 앞 금단에 드리므로 우리의 기도가 하나님 앞으로 올라가는 것입니다.

둘째, 중보자의 중보 기도로 가능합니다.

"중보자"란 양자의 사이에 서서, 적의의 원인을 제거하고 화해와 일치를 얻게 하는 자입니다. 성경에서는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서서 화해를 가져오는 이를 말합니다.
중보자는 어느 한편만에 속한 자가 아닙니다(갈 3:20). 그러므로 중보자는 오직 한 분 예수 그리스도 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본체의 참 형상으로서 거룩하고 악이 없고 더러움이 없는 완전한 하나님이시며(히 1:3, 7:26-28), 사람의 모양으로 오셔서 인간의 연약함을 체휼하시고, 죄 없으신 자로서 죄를 담당하신 중보자로서의 완전한 자격을 갖추신 분이십니다(히 2:14-18, 4:14-16).
그런데 로마서 8장 34절에 보면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고 했습니다.
누가 우리를 위해 기도하신다고 했습니까? 그렇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하나님 우편에서 우리를 위하여 간절히 기도하고 계신다고 했습니다.
그 뿐 만이 아닙니다. 26-27절에 보면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가 마땅히 빌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마음을 감찰하시는 이가 성령의 생각을 아시나니 이는 성령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고 했습니다.
중보의 영이신 성령님께서도 우리의 연약을 도와 말할 수 없는 탄식을 하면서 하나님의 뜻대로 우리를 위하여 간절히 기도하고 계신다고 했습니다.

여러분 기도할 만하지 않습니까? 우리가 기도 할 때에 나 혼자 그냥 두지 않으시고 예수님께서 하나님 우편에서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시고, 성령님께서는 우리의 연약과 부족을 채워 나를 대신하여 탄식하시며 하나님의 뜻대로 기도하시니 우리의 기도가 하나님께 상달되는 것입니다.


3.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어떻게 응답하십니까?

첫째, "그래"라고 하십니다.

사무엘상 1장에 보면 "한나"라는 여인의 기도가 나옵니다. 한나는 불임의 문제로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금식하며 기도했습니다. 울면서 기도했습니다. 아들을 달라고 서원하며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은 한나의 기도를 들으시고 아들을 주셨습니다. 그가 "사무엘 선지자"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그래"하고 응답해 주십니다.
에스더서에 보면 모르드개와 에스더는 하만의 음모로 인하여 민족과 함께 죽게되었을 때에 죽으면 죽으리라는 각오로 금식하며 민족의 구원을 위하여 기도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기도를 들시고 아하수에로 왕을 통하여 하만이를 모르드개를 죽이기 위하여 만든 장대에 달아 죽이게 하시고, 모르드개를 높여 존귀한 자로 세워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모르드개와 에스더의 기도를 "그래"하고 응답하시므로 슬픔이 변하여 기쁨이 되고 애통이 변하여 길한 날이 되게 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얻을 것이요 찾는 이가 찾을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 열릴 것이니라"고 하신 약속의 말씀대로 우리의 기도를 "그래"하고 즉시 응답해 주십니다(마 7:7-8).

둘째, "기다리라"고 하십니다.

어느 날 베다니에 사는 예수님의 친구 나사로가 병이 들었습니다. 그렌데 매우 위급한 상황이 되었습니다. 그러자 마르다와 마리아 자매는 급히 예수님께 사람을 보내 이 사실을 알렸습니다. 예수님께 자신들의 오라비를 살려달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속히 오시지 않고 그곳에서 이틀이나 더 머물렀습니다. 결국 나사로는 죽었습니다.
그것으로 끝이 났습니까?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나사로가 죽은지 나흘이나 되었는데 그때야 오셨습니다. 늦었다고 원망하는 마리아와 마르다에게 믿으라고 합니다. 무덤의 돌을 옮겨 놓으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무덤을 향하여 큰 소리로 "나사로야 나오라"고 명령하셨습니다. 나사로는 살아났습니다. 요한복음 12장 11절에 보면 "나사로 까닭에 많은 유대인이 가서 예수를 믿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렘 33:3)고 약속하신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기다리라"고도 하십니다. 왜냐하면 크고 비밀한 일을 보이시며, 또한 더 좋은 것을 주시기 위함입니다. 그래서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은 25년 동안을 기다리고, 기다렸다가 아들 이삭이를 선물로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기도하다가 응답이 없다고 낙심하여 포기하시지 말고 계속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크고 비밀한 일이 준비되고 있습니다. 더 좋은 것을 준비하고 계십니다. 더 큰 영광을 보게될 것입니다.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피곤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고 했습니다(갈 6:9).

셋째, 때로는 "안돼"라고 하십니다.

고린도후서 12장에 보면 바울 선생님께서 자신에게 자랑거리가 있다면 약한 것 밖에 없다고 하시면서 자신에게는 "육체에 가시 곧 사단의 사자"가 있다고 하십니다. 그리고 바울 선생님께서는 "이것이 내게서 떠나기 위하여 내가 세 번 주께 간구하였다"고 하십니다. 그러니가 바울 선생님은 자신 육신적인 아픔 때문에 세 번이나 특별 기도를 했다는 고백입니다.
그런데 그 응답이 무엇이었습니까? 고린도후서 12장 9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내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이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내게 머물게 하려함이라."고 했습니다.
우리의 모든 것에 표준이 되신 예수님의 겟세마네 기도에서도 이와 같은 내용을 찾아 볼 수 있습니다.
마태복음 26장 39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기도하시기를 "내 아버지여 만일 할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라고 하십니다. 그러나 그 기도에 대한 하나님의 "그래"라는 응답이 없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라고 기도하셨습니다.

어거스틴은 젊었을 때에 아주 고집스럽고 방탕한 삶을 살고 있었습니다. 그의 경건한 어머니 모니카는 아들을 위하여 쉬지 않고 기도했습니다. 그즈음 아들이 이탈리아로 간다는 말을 듣고 모니카는 그것이 아들의 파멸을 부채질하는 것이 되지 않을까 몹시 걱정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녀는 하나님께서 막으셔서 아들이 이탈리아로 가지 못하게 해주실 것을 위해 기도했습니다. 그녀는 온밤을 꼬박 새우며 기도했습니다. 그러나 바로 그 밤, 어거스틴은 계획대로 배를 타고 이탈리아에 도착했습니다. 그런데 어거스틴은 바로 그곳에서 "암브로스"라는 사제를 만나게 되어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복음을 듣고 개인적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회심하게 되었습니다.
어거스틴은 어머니의 기도에 관한 당시의 일을 이렇게 아주 적절하게 요약하여 표현했습니다. "하나님은 어머니의 기도대로 응답하시진 않았지만 어머니의 소원을 이루어주셨다."
그렇습니다 "안돼"라고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요, 우리에게 더 유익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바울의 기도를 "안돼"라고 응답하신 하나님께서는 약한데서 온전케 하셨습니다. 그것이 자랑거리가 되게 하셨습니다.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항상 머물게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바울 선생님은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핍박과 곤란을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할 그 때에 곧 강함이니라."고 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기도 응답의 확신이 있습니까? 우리의 기도는 응답됩니다.

시카고에 사는 토마스 학개라는 사람은 문제가 있는 회사들을 찾아다니면서 전문적인 충고를 통해서 회사를 살려내는 전문가였는데, 하루는 IGA(식료품 자영업자 연합회)의 회장인 딕 해리슨으로부터 도움을 요청 받았습니다. 재정상의 문제로 파산에 직면하게 되어 비상 이사회를 소집하고는 전문가 토마스 학개를 부른 것입니다. 토마스 학개는 절망하고 있는 회사 중역들 앞에서 이렇게 말을 시작했습니다.
"여러분은 파산한 것이 아닙니다. 돈이 잠시 없는 것뿐입니다. 이 둘 사이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저는 여러분과 같은 상황에 처해 있을 때마다 언제나 하나님 앞에 기도했습니다. 가끔은 머리를 숙이는 것만으로는 부족해서 실제로 무릎을 꿇고 기도해야겠다고 느낄 때가 있습니다. 지금이 그런 때라고 생각합니다. 함께 무릎 꿇고 기도하지 않으시겠습니까?"

한순간 충격으로 중역실이 조용해졌습니다. 한순간 의아해지더니 다음 순간 한 사람씩 의자를 뒤로 밀어놓고는 모두들 땅바닥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학개도 무릎을 꿇으면서 "한 쪽 무릎만 꿇으면 하나님은 그를 반쪽 사람으로 여기시고, 양쪽을 다 꿇으면 그를 온전한 사람으로 여기십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이들이 현재 직면한 위기 너머에 있는 비전을 보게 하옵소서. 이들이 자신들과 자신의 책임에 대해 생각하는 것보다 주님께서 많이 신경을 쓰고 계시다는 사실을 깨닫게 도와주옵소서."
그 기도가 끝난 후, 각자 조금씩 희생을 하면서 지혜와 경험을 한데 모아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를 의논하면서 노력하자, 얼마 되지 않아서 곧 그 위기를 극복하게 되었습니다.
기도하는 사람은 아름답습니다.

결단의 시간 (복음송:오늘 집을 나서기 전)
삶 속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을 우리는 하나님에게 알려드릴 수 있어야 합니다.
그분은 우리의 모든 것을 알고 계시며 우리의 모든 것을 알기 원하십니다.
그러므로 기도를 통하여 하나님의 섭리를 깨닫고 확신하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능력 안에서만 변화를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오! 나의 하나님,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소서!"라고 분명하게 고백해야 합니다.
그 동안 우리의 기도는 "기도의 고백"이라는 시와 같았을 것입니다.

기도의 언어는 있었으나 기도의 능력은 없었습니다.
기도의 소리는 있었으나 기도의 의미는 없었습니다.
기도의 형식은 있었으나 기도의 내용은 없었습니다.
기도의 입술은 있었으나 기도의 가슴은 없었습니다.
기도의 머리는 있었으나 기도의 발길은 없었습니다.
기도의 생각은 있었으나 기도의 손발은 없었습니다.
기도의 풀잎은 있었으나 기도의 열매는 없었습니다.
기도의 하늘은 있었으나 기도의 땅은 없었습니다.

기도가 어떤 것인가를 알았으면 능력 있는 기도, 하나님이 들으사 응답하시는 기도를 드려야 합니다.
성령의 도우심으로 하나님의 중심을 뜨겁게 하는 기도를 드려야 합니다.
존 라이스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기도는 시내 관광 여행을 위한 세련된 자동차가 아니다. 기도는 창고로 직행하여 짐을 싣고 돌아오는 화물차다."
기도는 곧 그리스도인의 삶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기도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바로 그것이 하나님이 바라시는 삶이기 때문입니다.

허브 밀러의 "하나님과의 연결"에 나온 이야기입니다.
한 동네에 나이트클럽이 들어와 개업을 했습니다. 이 나이트클럽은 교회와 가까웠습니다. 그래서 교회 성도들이 철야기도를 했습니다. 나이트클럽을 심판해서 불이 나게 해달라고 말입니다.
얼마 후 벼락이 나이트클럽에 떨어져서 불이 났습니다.
나이트클럽 주인은 교회 성도들이 기도를 해서 불이 났다고 고발했습니다. 재판장은 이렇게 질문했습니다. "나이트클럽 주인은 교회 성도들이 기도해서 불났다고 믿습니까?" "예."
그러나 교회의 화재 책임자들은 이를 부인했습니다. "교회 화재 책임자는 교회 성도들이 기도해서 불났다고 믿습니까?" "아니오."라고 했다고 합니다.

한 농부가 산 속에서 거대한 곰을 만났습니다. 그는 공포에 질려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간절히 기도를 올렸습니다. "하나님, 이 곰의 마음을 순하게 변화시켜 주세요." 농부가 한참 기도를 하고 눈을 떴습니다. 그런데 곰도 마주 앉아서 기도를 하고 있었습니다. 농부는 자신의 기도가 응답된 것에 크게 감동을 받았습니다. "이렇게 빨리 기도 응답을 해주시다니... 내 기도가 곰의 마음을 감동시켰구나." 생각하고 일어서려고 할 때 곰이 기도를 마치고 농부를 그윽한 표정으로 바라보며 말했습니다. "네가 지금 무슨 기도를 했는지 나는 전혀 모른다. 나는 다만 음식을 앞에 놓고 식사기도를 했을 뿐이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가끔 자신이 기도한 대로 모두 응답될 것이라 믿고 결과를 확인해 보기도 전에 응답 받았다고 속단합니다. 그것이 착각이라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는 실망과 좌절을 느낍니다.
하나님의 응답은 우리가 생각한 대로 나타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많은 성도들이 자주 실수하는 영역 중 하나가 기도응답을 단기적인 시야로 보는 것입니다. 너무 성급합니다. 하나님은 결코 우리를 실망시키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물에 빠져 가는 베드로를 건져 주시듯 우리가 위급한 상황에 처했을 때 반드시 우리에게 응답하십니다. 단지 그 시기와 방법이 우리의 생각과 다를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생각은 우리의 생각과는 달리 하늘이 땅보다 높은 같이 하나님의 생각은 높습니다. 때문에 기도에도 인내가 필요한 것입니다.

우리는 지난 주일에 기도란? ① 살아 계신 하나님 아버지께, ②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③ 은밀하게, ④ 구체적인 내용으로, ⑤ 구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기도할 때 성령께서는 우리의 연약을 도와 말 할 수 없는 탄식으로 하나님의 뜻대로 우리의 기도를 붙들어 주시고, 하나님의 천사는 우리의 기도를 금 향로에 담아 하나님의 보좌 앞 제단에 나르면 우리의 기도가 향연이 되어 하나님 앞으로 올라간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중보자 되신 주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신다고 했습니다.
또한 우리의 기도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은 "그래", "기다리라", "안돼"라고 응답하신다고 했습니다.

4.누가 기도할 수 있습니까?

하나님의 자녀의 권세를 가진 자입니다.
주기도문의 첫 머리에 무엇이라고 했습니까? 그렇습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라고 시작합니다. "아버지"라는 말속에는 무엇이 전제되고 있습니까? 그렇습니다. "나는 자녀입니다"라는 고백이 전제되고 있습니다.
마태복음 7장 11절에 보면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얻을 것이요 찾는 이가 찾을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 열릴 것이니라"고 하신 주님께서 말씀하시기를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고 하셨습니다.
그러니까 기도할 사람은 먼저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셔야 합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자녀의 권세를 가진 자만이 하나님 아버지께 기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나님의 자녀의 권세를 얻을 수 있습니까?
요한복음 1장 12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그렇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면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구주와 주님으로 믿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신다고 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까? 하나님의 자녀입니까? 그렇다면 기도하십시오.
주님은 "너희가 내(예수)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시행하리니 이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을 인하여 영광을 얻으시게 하려 함이라, 내(예수)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시행하리라."고 약속 하셨습니다(요 14:13-14).
그래서 우리는 기도할 때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는 것입니다.
베드로와 요한이 어느 날 기도시간이 되어 성전으로 기도하러 가다가 나면서부터 앉은뱅이가 되어 성전입구에서 구걸하며 사는 거지를 만났습니다. 돈을 달라고 하는 앉은뱅이를 향하여 베드로는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곧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걸으라"고 했습니다(행 3:6).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명령했습니다. 어떻게 되었습니까?
사도행전 3장 7-8절을 읽어봅시다.
"오른손을 잡아 일으키니 발과 발목이 곧 힘을 얻고, 뛰어 서서 걸으며 그들과 함께 성전으로 들어가면서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며 하나님을 찬미하니"라고 했습니다.
이 일을 시기하는 종교지도자들과 핍박자들은 어떻게 하든지 앉은뱅이를 일으킨 사건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 아닌 베드로 개인의 능력의 결과로 된 것으로 하려고 합니다. 이것은 사탄의 전략입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분명히 선언합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아 이 일을 왜 기이히 여기느냐 우리 개인의 권능과 경건으로 이 사람을 걷게 한 것처럼 왜 우리를 주목하느냐"
다시 말하면 앉은뱅이가 일어난 것은 개인의 권능이나 경건의 결과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분명히 말하지만 "그(예수) 이름을 믿으므로 그 이름이 너희 보고 아는 이 사람을 성하게 하였나니 예수로 말미암아 난 믿음이 너희 모든 사람 앞에서 이같이 완전히 낫게 하였느니라"고 했습니다(행 3:16).
그렇습니다. 예수의 이름은 생명의 이름입니다. 능력의 이름입니다. 구원의 이름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자녀 된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면 됩니다.


5.어떻게 기도해야 합니까?

첫째, 제목을 분명히 하십시오.

기도 할 때는 기도의 제목을 분명히 해야 합니다. 성경에 기도의 사람들은 모두 분명한 기도의 제목을 가지고 기도했습니다.
야고보서 5장 17-18절에 보면 "엘리야는 우리와 성정이 같은 사람이로되 저가 비 오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한즉 삼년 육개월 동안 땅에 비가 아니 오고, 다시 기도한즉 하늘이 비를 주고 땅이 열매를 내었느니라."고 했습니다.

둘째, 시간을 정하십시오.

다니엘서 6장 10절에 "다니엘이 이 조서에 어인이 찍힌 것을 알고도 자기 집에 돌아가서는 그 방의 예루살렘으로 향하여 열린 창에서 전에 행하던 대로 하루 세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그 하나님께 감사하였더라."고 했습니다.

셋째, 장소를 정하십시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을 비롯한 믿음의 선진들이 가는 곳마다 제단을 쌓았다는 말은 그들이 하나님을 만나는 장소를 정하고 기도했다는 의미일 것입니다. 기도의 여인 한나는 하나님의 성전에 나가 기도했고, 기도의 영웅 다니엘은 예루살렘으로 향한 창문이 있는 방을 기도의 골방으로 정하고 기도했습니다. 예수님을 따르던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승천하신 후 마가의 다락방에서 모여 기도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에게도 기도의 장소가 필요합니다. 기도의 골방이 필요합니다. 그 곳은 때로는 기도원이나 조용한 산 속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기도의 장소로 최고의 장소는 내가 섬기는 교회입니다.

넷째, 기도의 동역자와 함께 하십시오.

마태복음 18장 19-20절에 "진실로 다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에 두 사람이 땅에서 합심하여 무엇이든지 구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저희를 위하여 이루게 하시리라, 두 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고 했습니다.
혼자서 기도해도 괜찮습니다. 그러나 신실한 기도의 사람들과 함께 기도하면 더욱 좋습니다.
야고보서 5장 13-18절에 "너희 중에 고난 당하는 자가 있느냐 저는 기도할 것이요 즐거워하는 자가 있느냐 저는 찬송할지니라, 너희 중에 병든 자가 있느냐 저는 교회의 장로들을 청할 것이요 그들은 주의 이름으로 기름을 바르며 위하여 기도할지니라, 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하리니 주께서 저를 일으키시리라 혹시 죄를 범하였을지라도 사하심을 얻으리라, 이러므로 너희 죄를 서로 고하며 병 낫기를 위하여 서로 기도하라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많으니라, 엘리야는 우리와 성정이 같은 사람이로되 저가 비 오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한즉 삼년 육개월 동안 땅에 비가 아니 오고, 다시 기도한즉 하늘이 비를 주고 땅이 열매를 내었느니라."고 했습니다.

다섯째, 믿음으로 기도하십시오.

요한복음 15장 7절에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고 했습니다.
요한복음 14장 14절에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시행하리라."고 했습니다.
요한복음 16장 24절에 "지금까지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무 것도 구하지 아니하였으나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고 했습니다.
마태복음 21장 22절에 "너희가 기도할 때에 무엇이든지 믿고 구하는 것은 다 받으리라."고 했습니다.
마가복음 11장 24절에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고 했습니다.
마태복음 15장에 보면, 어머니의 기도로 귀신 들린 딸이 고침을 받았습니다. 마가복음 2장에 보면, 친구들의 기도로 중풍병자가 고침을 받았습니다.
사도행전 12장에 보면, 교회의 기도로 감옥에 갇혀있던 베드로가 청사의 인도로 출옥할 수 있었습니다.
민수기 12장에 보면, 모세의 기도로 문둥병에 걸리 미리암이 고침을 받았고, 한나의 기도로 사무엘이 위대한 지도자가 되었습니다.

1998년∼1999년 1년 동안 한국과 미국의 불임치료 공동연구팀은 서울의 한 병원에서 불임치료를 받은 199명과 미국, 캐나다, 호주에 있는 기독교인들을 대상으로 "기도와 임신성공률 관계"를 조사했습니다.
불임치료를 받고 있는 199명의 사진과 이름을 미국, 캐나다, 호주에 있는 기독교인들에게 보내주고 임신할 수 있도록 기도해 달라는 부탁을 했습니다. 그들 기독교인들은 한국의 199명 여인들을 전혀 모르는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기도를 해 준 그룹과 전혀 기도해 준 일이 없는 그룹의 환자들의 임신률을 비교했습니다. 놀라운 것은 임신성공률이 기도해 준 사람이 있는 환자들에게 배나 높게 나타난 것입니다. 이것은 뉴욕타임즈의 보도입니다.
뉴욕타임즈는 임신뿐만이 아니고 심장병 환자의 경우도 같은 결과가 나왔다고 보도했습니다. 한마디로 기도의 능력을 과학적으로도 입증한 것입니다.

바울은 에베소교인들에게도 "나를 위하여 기도하라"(엡 6:19)고 했고, 데살로니가 교회에도 "우리를 위해 기도하라"(살전 5:25)고 당부했습니다.
바울은 자신이 세운 교회들에게 전혀 개인적인 부탁을 한 일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편지를 보낼 때마다 기도를 부탁했습니다. 그것은 기도의 능력과 응답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지금 우리는 국가적으로, 세계적으로 시련과 도전에 직면하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앞이 보이질 않습니다. 그러나 길이 있고, 방법이 있습니다. 그것은 곧 기도하는 일입니다.
마가복음 9장 28절에서 주님은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유가 나갈 수 없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뜻은 귀신도 기도의 능력으로 물러가고, 병도 기도의 능력으로 고치고, 문제도 기도의 능력으로 해결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2차 대전 당시 영국도 1940년 5월 26일을 기도의 날로 선포하고, 전국민이 금식하고 기도했습니다. 그 해 9월 8일 독일군과 2,500척의 적함을 거센 파도로 지리멸렬시켜 승리했습니다. 기도의 결과였습니다.
빌리 선데이(미국전도부흥사)는 "어떤 마귀도 기도하는 어머니의 자녀는 빼앗아 가지 못한다"고 했고, 영국의 사회운동가 에드윈 채드윅은 "마귀가 가장 무서워하는 것은 기도하는 모습이다"라고 했습니다.
믿고 기도합시다. 힘써 기도합시다. 항상 기도합시다. 남을 위해 기도합시다. 자신을 위해 기도합시다.

영국 회중교회 목사인 조지프 파커 박사(1830∼1902)는 누구보다 기도를 강조한 인물이었습니다. 그는 기도가 역사와 공동체, 삶과 미래를 바꿀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그는 말하기를 "기도를 열심히 하는지 안 하는지를 어떻게 알아볼 수 있는지 아십니까? 그것은 얼굴이 증명해 줍니다. 매일매일 하나님과 가까이 하지 않는 사람의 얼굴에는 영혼의 아름다움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풍기는 인상이 기도와 거리가 멀게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늘 주님과 함께 하는 사람에게서는 주의 정원에 피어있는 향기로운 꽃향기를 맡을 수 있습니다."

기도는 나약하고 보잘것없는 사람을 강하고 아름다운 사람으로 만들어 줍니다. 인간의 영혼은 하나님과 함께 있을 때에 진정한 의미와 힘을 갖게 됩니다. 특히 이렇듯 성령님이 함께 하시는 기도의 사람은 매사에 자신감이 있으며 인생이 분명한 확신과 기쁨에 가득 차서 살아갑니다. 기도는 하나님의 능력으로 만사를 변화시키는 방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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