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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얘들아, 너희에게 고기가 있느냐? / 요 2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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얘들아, 너희에게 고기가 있느냐
본문 성경 : 요 21:1~14


예수께서 이르시되 애들아 너희에게 고기가 있느냐 대답하되 없나이다 가라사대 그물을 배 오른 편에 던지라 그리하면 얻으리라 하신대 이에 던졌더니 고기가 많아 그물을 들 수 없더라

(요21:5-6)


오늘 본문은 예수님이 부활하신 후 세 번째로 제자들을 찾아가신 내용입니다. 한번은 예수께서 부활하신 날 저녁에 제자들을 찾아가셨고, 한번은 예수의 부활을 의심하는 도마를 찾아가셨고, 오늘은 수제자인 베드로와 다른 제자들이 고기를 잡고 있는 바닷가로 찾아가셨습니다.

예수님의 수제자인 베드로가 고기를 잡으러 간다고 하자, 어부 출신 제자들은 너도나도 베르로와 함께 고기 잡으러 가겠다고 했습니다. 어느 한 사람도 "무슨 소리요? 우리가 예수님의 제자인데 무슨 고기를 잡으러 갑니까?" 하고 묻지 않았습니다.

잘 들으세요. 진리는 순종하면 할수록 아름다운 것이지만, 진리에서 벗어난 것은 동의하면 할수록 마지막에 불행이 오는 것입니다.

베드로와 어부 출신 제자들이 고기를 잡으러 간 갈릴리 바다는 별명이 여러 가지라서, 게네사렛 호수라고도 하고 디베랴 바다라고도 부릅니다.

베드로는 함께 고기를 잡으러 갈 동지가 생겨서 좋지만, 예수님의 입장에서는 참 가관이었을 것입니다. 그것은 그들이 삼 년 동안 예수님을 따라다니면서 예수님의 기적과 능력을 보고서 죽기까지 주님을 따라다니겠다고 고백한 제자들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주님이 원하시는 것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한 것입니다. 그래서 찬송가 133장은 이렇게 고백하고 있습니다. "어저께나 오늘이나 영원 무궁히 한결 같은 주 예수께 찬양합시다"

그런데 제자들은 변덕을 부렸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삼 년만에 고기를 잡으러 갔습니다. 갈릴리 바다에 대해서 잘 아는 제자들이 거기서 고기를 잡았는데, 참 이상합니다. 그물을 내렸다 올렸다 하는데, 고기가 한 마리도 걸리지 않습니다. 계속해서 그런 헛수고를 반복하고 있을 때, 새벽녘에 우리 주님이 제자들을 찾아오셨습니다.

주님은 제자들에게 먼저 "애들아"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애들아 하는 말은 어른이 아이에게 하는 호칭입니다. 지금 33세인 젊은 예수께서 왜 나이든 제자들에게 "애들아" 하고 말씀했을까요? 그것은 예수께서 보시는 나이가 신앙 나이이기 때문입니다.

천주교에서는 신부들이 신자들에게 절대로 존칭을 쓰지 않고 하대를 합니다. 왜 그럴까요? 그것은 신부라는 말이 하나님 아버지라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천주교 신자들은 신부를 아버지라고 부릅니다.

그것이 어디에서부터 기인되었을까요? 그것은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애들아" 하고 말씀하신 것에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우리 기독교인들은 목사를 알기를 자기들처럼 똑같은 사람인 줄 알고 반말을 하면서 대들지만, 천주교에서는 절대로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혹시 신부가 실수를 하더라도 덮어주지 결코 드러내는 법이 없습니다. 우리 기독교인처럼 고소하지 않습니다. 왜 그럴까요? 그것은 하나님이 하실 일을 우리가 왜 하느냐? 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 다음에 예수님은 "고기가 있느냐?" 하고 물었습니다. 제자들은 "없나이다" 하고 대답했습니다. 그러면 여기서 말하는 고기는 무엇일까요? 이 고기를 다섯 가지로 생각해보았습니다.



첫째, 고기는 말씀입니다



시몬의 배에 오르신 예수님은 시몬에게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던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자 베드로는 "밤이 맞도록 수고를 하였으되 얻은 것이 없지마는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이다" 하고 대답하고 그물을 깊은 곳에 던졌는데, 그물이 찢어질 정도로 많은 고기가 잡혔습니다. 이것은 말씀을 믿었기 때문에 고기가 잡혔다는 뜻입니다.

따라서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애들아, 너희에게 고기가 있느냐" 하고 물었을 때, 제자들이 "없나이다" 하고 대답한 것은 "설교를 1년 365일 동안 들었는데, 뭐가 뭔지 모르겠습니다" 하고 대답하는 것과 같습니다.

1년 365일 52주 동안 말씀을 들었는데, 왜 말씀이 없을까요? 그것은 말씀대로 안 살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엘리야와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 말이 없으면 수 년 동안 우로가 있지 아니하니라"(왕상17:1)

"너희는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요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사6:9)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는 했지만, 그 말씀이 내 속에 없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여러분에게 말씀이 있으면, 고기가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히브리서 4장 12절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나니"



둘째, 고기는 믿음입니다



믿음이 없으면 아무 것도 안 됩니다. 마태복음 8장에 보면 백부장이 예수님 앞에 와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주여, 내 하인이 중풍병으로 누워 괴로워 하니 고쳐주소서" 예수께서 "내가 가서 고쳐주리라" 하고 말씀하자, 백부장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주여, 내 집에 들어오심을 나는 감당치 못하겠사오니 다만 말씀으로만 하옵소서 그러면 내 하인이 낫겠삽나이다. 내 아래도 군사가 있으니 이더러 가라 하면 가고 저더러 오라 하면 오고 내 종더러 이것을 하라 하면 하나이다"

이 말을 들은 예수님은 "이스라엘 중 아무에게서도 이만한 믿음을 만나보지 못하였노라"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셋째, 고기는 은혜입니다



은혜는 허다한 허물을 덮어줍니다. 그러나 정죄는 헤쳐버립니다. 예수께서 요한복음 12장 24절에서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으리라" 하고 말씀하셨는데, 이것이 무슨 뜻일까요?

그것은 한 알의 말이 땅에 떨어졌을 때, 그 씨를 흙으로 덮어주면 싹이 나서 자라 열매를 맺지만, 그것을 덮어주지 않으면 새들이 와서 먹어버린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허다한 허물을 덮어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부모는 자식의 허물을 덮어주고 자식은 부모의 허물을 덮어주어야 합니다.

노아가 홍수 이후에 어느 날 술에 잔뜩 취해서 벌거벗고 잠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함이 아버지 노아의 하체를 보고 밖으로 나가서 두 형제에게 아버지의 허물을 알렸습니다. 그때 셈과 야벳은 아버지의 벌거벗은 모습을 보지 않기 위해서 뒷걸음을 쳐서 들어간 후, 옷으로 아버지를 덮어주었습니다.

이 셈과 함과 야벳 중에서 누가 복을 받았을까요? 아버지의 허물을 덮어준 셈과 함이 복을 받았습니다.

모세가 구스 여자를 취하자, 모세의 누이인 미리암은 모세를 크게 비방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미리암에게 "어찌하여 내 종 모세를 비방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느냐?"(민12:8) 하고 심하게 진노하셨습니다. 그 즉시 미리암은 문둥병에 걸렸습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13장 9절은 "마음은 은혜로써 굳게 함이 아름답고"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늘 여러분에게 "너희에게 은혜가 있느냐?" 하고 물을 때, "아멘"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넷째, 고기는 축복입니다



신앙생활을 했는데도 축복을 받지 못했다면, 오늘부터 그만 두어야 합니다. 항상 남에게 꾸고 남에게 신세를 지고 남에게 해를 끼친다면 무엇 때문에 신앙생활을 합니까?

우리 주님은 나눠줄 수 있는 풍성한 복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 분을 "복의 근원" 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성경 곳곳에서 받는 자보다 주는 자가 더 복이 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복음성가 작사가는 이렇게 고백하고 있습니다.

"주의 사랑은 베푸는 사랑 값없이 거저 주는 사랑 그러나 나는 주는 것보다 받는 것 더욱 좋아하니"

김삼환 목사는 전도사 시절부터 굉장히 어려운 교회에서 목회를 했습니다. 그런데 제가 정념 고등학교 강당에서 부흥회를 할 때 거기에 참석해서 은혜를 받았다고 합니다. 그때 그 목사님은 "아, 나는 언제나 저 장 목사님처럼 저런 축복을 받을 수 있을까?" 하고 그 목적을 놓고서 기도를 했다고 합니다.

"하나님, 장 목사님에게 주신 은혜, 장 목사님에게 주신 축복을 나에게도 주십시오"

지난 번에 그 교회에 가서 저녁 집회를 인도했는데, 집회를 마친 후 그 목사님이 교인들에게 그런 간증을 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여러분에게 "축복이 있느냐?" 하고 물을 때, 과감하게 "아멘" 할 수 있는 성도가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다섯째, 고기는 사랑입니다



예수께서 "애들아, 너희에게 사랑이 있느냐" 하고 물을 때, "사랑이요? 독밖에 없습니다" 하면서 이를 북북 가는 사람은 예수님 곁에 올 자격이 없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궁금한 것은 바다에서 고기를 잡은 경험이 풍부한 어부인 제자들이 왜 고기를 한 마리도 못 잡았을까? 하는 것입니다. 그 까닭은,

1) 사명을 이탈했기 때문입니다

예수께서 어부인 사람들을 제자로 선택했습니다. 이것은 다시는 고기를 잡지 말라는 뜻입니다. 한번 부름을 받은 사람은 끝까지 그 길로 가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 속담에 "한 우물을 파라"는 말이 있습니다.

대개 사람들은 이것도 해보고 저것도 해보려고 하지만, 그렇게 하면 되는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일을 하다가 실패를 하더라도 성공할 때까지 계속해서 해야 합니다.

농촌교회에 있을 때, 거기가 전방이라서 양봉을 하면 꿀을 많이 딸 것이라는 말을 듣고, 양봉에 대해서 잘 몰랐지만, 선교사에게 돈을 빌려서 벌통 세 개를 사다가 양봉을 시작했습니다. 꿀이 많으니까 벌이 막 늘어나서 세 통으로 시작한 것이 15통으로 늘어났습니다. 그런데 겨울을 지내고 나자 전부 죽었습니다. 왜냐하면 과동을 어떻게 하는지 몰랐기 때문입니다.

그 이듬해에는 15통을 사서 50통이 넘게 분봉을 했습니다. 그런데 겨울을 지내고 나자 다섯 통을 제외하고 전부 죽었습니다.

그 다음부터 전문가에게 가서 과동법을 배웠습니다. 3년 동안 실패한 끝에 벌을 제대로 치게 되어서 120통을 만들었습니다. 그때부터 꿀을 따게 되어 그 동네에서 제일 부자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내가 단독으로 예배당을 짓고 사택도 지으면서 거기서 7년 동안 목회를 하다가 서울로 나왔습니다.

어떤 사람은  "시골 교회에 있는 것이 수입상으로 볼 때 더 낫지 않아요?" 하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고기를 한 마리도 못 잡은 제자들에게 많은 고기를 잡게 하신 예수께서 "이제 성공했으니 주님을 위해서 고기 잡는 일을 버려라"하고 말씀하신 대로, 모든 것을 다 버리고 금호제일교회로 왔습니다.

전에 내가 쓴 "목회자의 자급 대책은 무엇인가?" 논문이 기독교 사상에 실린 적이 있는데, 거기서 지적한 것처럼 농촌교회는 목사들의 자급대책이 이루어지지 않는 한, 존속하기가 어렵습니다. 목사들이 생활이 되지 않는데, 왜 시골에 가겠습니까?

과감하게 모든 것을 버리고 금호동에 왔지만, 3년 동안 콩나물죽만 먹는 비극을 만났습니다. 거기서 나는 후두암이란 병을 얻었고 아내는 영양실조에 걸리게 되었습니다. 연탄 배달비를 아끼려고 직접 연탄을 나르다가 지쳐서 쓰러지기도 했고, 동대문에 나갔다가 버스비가 없어서, 걸어오다가 너무 지쳐서, 해가 넘어간 후에야, 겨우 집에 돌아온 적도 있습니다. 친구들에게는 자존심 때문에 이런 이야기를 하지도 못했습니다.

후두암에 걸렸을 때, 무수막 강변으로 나갔는데, 목은 아프고 기도는 나오지 않자, 휘파람으로 노래를 불렀습니다. "고향 떠나 23년에" 그런데 달이 떠오르면서 한강에 붉은 빛을 비추는데 장관이었습니다. 그 모습을 보고서 "참 아름다워라" 하는 찬송가를 불러야 할 텐데, 사람의 신세가 이상해지자, "신라의 달밤"을 불렀습니다. 실제로 당시의 심정은 한강에 빠지고 싶은 심정이었습니다. 내게 병은 생기고 가족 대책은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한강에 풍덩 빠져 죽으면 지옥에 가기 때문에 그저 앉아서 탄식만 했습니다.

제자들에게 왜 고기가 없었을까요? 그것은 주님 곁을 떠나 사명을 이탈했기 때문입니다.

우리 교회에서 1968년 12월 30일에 시작해서 1969년 1월 4일까지 열린 부흥회는 나도 사는 기회가 되었고 우리 금호제일교회도 사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그때 불덩어리가 임하면서, 하나님이 내게서 후두암을 거두어 가시고, 나를 부흥사로 만들어서 세계 만방에 복음을 전하는 종이 되게 하고 기독교 대한 감리회 감독 회장이 되게 하고 아시아 감리교 협의회 의장이 되게 하고 세계 감리교 협의회의 실행위원이 되게 한 것은 모두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은혜이지, 어떻게 내 힘으로 된 것이겠습니까?

2) 주님이 없는 성공은 성공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마28:20) 하고 말씀하셨는데, 이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그것은 주님이 떠나면 결코 안되기 때문입니다.

다윗이 골리앗 장군과 싸우러 나왔을 때 이렇게 말했습니다. "너는 칼과 단창으로 내게 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가노라"(삼상17:46)

그리고 나서 다윗이 돌을 물매로 던졌을 때 그것이 골리앗 장군의 이마에 적중해서 그 자리에서 즉사했습니다. 다윗은 그의 칼을 빼서 그의 목을 베었습니다.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입니까? 여러분에게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복이 있으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 이권을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제자들은 고기를 잡아서 돈을 벌어야겠다는 생각밖에는 없었습니다. 어느 누구도 부활하신 주님의 뜻을 받들어 계속 주의 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오늘 여러분이 동대문 시장에 나가서 100만원 혹은 200만원을 번다고 하면 아마 여기에 오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왜 주님이 말씀하신 후에는 제자들이 고기를 잡을 수 있었을까요? 그것은 말씀을 하신 분이 주님이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되자 먹고사는 문제가 해결되었습니다.

주님은 제자들을 위해서 숯불을 피우고 거기에서 떡과 고기를 굽고 있었습니다. 이처럼 주님은 준비하시는 하나님, 예비하시는 하나님, 우리가 생각지도 못한 것을 주시는 하나님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역사는 "웬 떡이냐?" 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애굽을 떠나 홍해를 건너갈 때 여러 가지 갈등이 있었습니다. 홍해에 막혀 머뭇거리고 있을 때, 모세는 산에 가서 하나님께 기도를 했습니다. 거기서 받은 하나님의 명령대로 모세가 지팡이를 홍해를 향해서 내밀었을 때, 하나님은 밤새 동풍을 동원하여 홍해가 쫙 갈라지게 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홍해를 건널 때 애굽에서 갖고 온 것을 다 버리라고 말씀했기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은 모든 것을 다 버리고 홍해를 건넜습니다. 그런데 이제부터 걱정입니다. 왜냐하면 당장 먹을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다음 날부터 하나님이 만나를 준비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자 만나가 하얗게 내려왔습니다. 지금까지 이스라엘 사람들이 한 번도 보지 못한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이게 뭘까?" 하고 말했는데, 이 말이 이스라엘 말로 만나입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할 때 만나가 많아야 합니다. "이게 뭐야?" 하는 기적을 많이 체험하지 못한 사람은 답답한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의 생활 속에서 "이게 뭐야?" 하는 체험을 많이 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예수님의 부활절을 맞이하신 여러분! 우리 주님의 십자가의 은총을 받으신 여러분! 말씀도 가득하고 믿음도 가득하고 은혜도 가득하고 축복도 가득하고 사랑도 가득해서, 우리 주님에 제자들에게 조반을 먹이신 후 하신 말씀인, "애들아, 너희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하는 사랑의 대화를 나눌 수 있기를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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