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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말씀의 중요성 / 삼하 7:1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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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사무엘하 7:18∼29


다윗이 유대의 왕이 되고 하나님의 궤를 예루살렘으로 옮긴 다음, 하나님은 선
지자 나단을 시켜 다윗에게 여러 가지 복된 일들을 전해 주었습니다(삼하 7:
8∼16).
"내 백성 이스라엘의 주권자로 삼아 주리라"
"네 이름을 위대하게 만들어 주리라"
"네 후손들의 나라를 견고하게 하리라"
"네 집과 네 나라가 내 앞에서 영원히 보전되고 네 왕위가 영원히 견고하리
라"
참 좋은 복된 약속들입니다.

다윗은 이 말을 전해 듣고 감사의 기도를 드립니다. 그것이 오늘의 본문입니다.
다윗은 이 기도에서 먼저 감사를 드리고 그 다음에 자기의 소원을 아뢰고 있습
니다.
오늘의 본문 다윗의 기도는 모두 열두 절로 되어 있는데 18절에서 24절까지
일곱 절은 감사이고 25절에서 29절까지 다섯 절은 소원을 아뢰는 것입니다.
감사와 소원의 비율이 7:5, 우리가 기도할 때 참고가 되는 비율입니다.

다윗의 이 기도를 통해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복을 받았을 때 먼저 감사의 기
도를 드려야한다는 사실을 배우게 됩니다.
시험에 합격했을 때, 취직이 되었을 때, 승진했을 때, 군대에서 제대할 때, 결혼
하게 되었을 때, 어떤 문제가 해결되었을 때, 기뻐 뛰며 이웃에게 자랑하고 여
기 저기 한 턱 내고, 이렇게 하기에 앞서서 먼저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려
야합니다.

영국의 명장 웰링턴 장군이 1815년 워털루 전투에서 나폴레옹을 무찌르고 돌
아왔을 때 영국 국민은 환호하며 그를 환영했습니다.
웰링턴 장군은 여왕에게 개선보고를 드리러 가기 전에 먼저 웨스트민스터 사원
에 가서 하나님께 감사기도를 드렸다고 합니다.

다윗의 기도에는 '말씀'이라는 말이 여덟 번나옵니다. 어디 어디에 나오는지 이
제 차례로 찾게 될 것입니다.

이 말씀들이 모두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뜻은 아닙니다. '말씀'을 영어로 적을
때는 'The Word'라고 대문자로 쓰는데 모두가 그런 의미의 말씀은 아닙니다.
동사도 있고, 명사도 있습니다.
영어 성경을 보면 'word' 'said' 'speak' 여러 단어가 쓰이고 있고, 한문 성경
을 찾아보아도 '언(言)' '설(說)' 여러 글자가 쓰이고 있습니다.
여하튼 한글로는 모두 '말씀'으로 번역되었습니다.
우리의 언어생활과 신앙을 연결할 때 감사한 것 가운데 하나가 '말씀'이라는 말
입니다.
우리는 '말씀'이라는 말을 퍽 무겁게 생각합니다. '공자님의 말씀'은 조선왕조의
통치철학이었습니다.
'어른이 말씀하시는데 그럴 수 있어?' 꾸짖으면 아무리 버릇없는 아이라도 꼼짝
하지 못합니다.
이렇게 '말씀'이라고 하면 퍽 어려워하는 바탕에 말씀의 종교인 기독교가 들어
왔기 때문에 교회에서 말씀의 중요성을 강조하면 모두 잘 이해합니다.
요한복음에 '로고스'라는 말이 여러 번 나옵니다. 아주 중요한 말이지요. '로고
스'를 우리말로 번역할 때 다른 말로 번역할 수도 있지만 말씀이라고 번역한
것은 그 때문인 것 같습니다.
요한복음 1장 1절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로고스, 말씀은 바로 예수님을 가리키는 말인데
이렇게 번역해 놓으니까 예수님에 대해서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우리는 말씀에 대해서 많은 것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말씀의 의미, 말씀의 역
사, 말씀의 중요성, 말씀을 받아들이는 자세, 말씀과 관련된 것들 가운데에서
오늘은 다윗의 기도에 나타난 말씀의 교훈을 일곱 가지로 찾아보려고 합니다.

첫째, 말씀은 장래의 일을 말해줍니다.

19절을 보세요.

주 여호와여 주께서 이것을 오히려 적게 여기시고 또 종의 집에 있을 먼 장
래의 일까지도 말씀하셨나이다 주 여호와여 이것이 사람의 법이니이다

여기 "주 여호와여 이것이 사람의 법이니이다"라는 말씀은 얼른 이해가 되지
않는 말씀인데 '주님, 이것이 어떻게 사람의 법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하는
뜻입니다. 또는 '주님, 주님께서는 아주 귀한 사람을 대하는 것처럼 저를 대해
주셨습니다.' 라고 해석할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다윗 집안의 먼 장래 일을 말씀해 주셨습니다.

여러분, 장래의 일이 궁금하십니까? 나의 장래, 가족들의 장래, 우리 나라의 장
래. 나가서는 세계의 장래가 궁금하십니까?
그러면 말씀을 보시기 바랍니다.

앞일을 알기 위해 점을 치러 가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입시철이 되면, 선거철이
되면 이름난 점쟁이들의 집은 문전성시를 이룹니다.
선거철에 경쟁자끼리 점쟁이 집에서 만나는 경우도 있다고 합니다. 그럴 때 그
점쟁이, 입장이 참 곤란할겁니다.
새로운 사업을 시작할 때마다 고사를 드리고, 새로운 장비를 도입할 때마다 그
앞에 돼지 대가리 놓고 절을 하던 재벌들이 있었습니다.
직원을 채용할 때는 관상쟁이를 옆에 앉히고 그 관상쟁이의 조언에 따라서 채
용할 것인가, 말 것인가를 결정하던 재벌도 있었다고 합니다.
그렇게 하던 기업들이 어떻게 되었는지 우리는 잘 보고 듣고 있습니다.

교회 다니는 사람들 가운데도 그런데 출입하는 분들이 있다는 이야기를 듣습니
다.
여러분, 점치거나 사주 보거나 관상 보지 마세요. 성도로서 할 일이 아닙니다.
성도는 그저 전능하신 하나님, 사랑이 많으신 하나님의 인도를 믿고 따르면 됩
니다.

이제 이런 것들은 종교적인 기능보다 민속적인 면이 강해지고 있습니다. 굿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제 굿은 거의 확실하게 민속의 영역에 속하게 된 것 같습니
다.

미래의 일을 예측하는 것은 일차적으로 역사가들의 책임입니다. 역사가들은 과
거의 일을 살피고 현재를 보고 그 연장선을 그어 미래를 예측합니다.
역사가들은 참으로 귀한 사명을 가지고 있습니다.
말씀이 말하는, 돌아보고 내다보는 범위는 넓습니다. 창조로부터 말세까지입니
다.

말씀에는 먼 장래의 일이 원칙적으로 또는 추상적으로 언급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이 재림하신다'
'재림을 앞두고 전쟁과 난리, 기근과 지진이 일어난다'
'많은 이단이 출현한다,' '
선한 일을 하는 민족이나 개인은 복을 받고 악한 일을 하는 민족이나 개인은
심판을 받는다'
이런 것들은 원칙적인 언급입니다.

말씀에는 동시에 먼 장래의 일이 구체적으로 언급되어 있습니다.
말씀을 읽는 가운데 '아, 세계가 앞으로 이렇게 되겠구나!' '내가 앞으로 이렇게
되겠구나!' 깨달아집니다. 확실하게 깨달아집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들은 '말씀은 살아 있다'라고 말합니다.

말씀을 통해 먼 장래의 일을 알게 해주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시기 바랍니
다.

둘째, 주님은 우리에게도 말씀을 할 수 있게 해 주셨습니다.

20절을 보세요.

주 여호와는 주의 종을 아시오니 다윗이 다시 주께 무슨 말씀을 하오리이까

이 말의 뜻은 겉으로는 '주님께서 나를 잘 아시는데 내가 무슨 말을 더 할 필
요가 있겠습니까?'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속뜻은 '제가 많은 말을 주님께 하고 싶습니다' 또는 '제가 주님께 말하
게 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하는 것입니다.
다윗은 '내가 다시 주께 무슨 말씀을 하오리이까?' 하고서 입을 다물어 버리지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다윗의 기도는 20절에서 끝나야 하는데 그 뒤에도 많이 계속되고 있
습니다.
주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것을 우리는 계시라고 부릅니다.
우리가 주님께 드리는 말씀을 우리는 기도라고 부릅니다.
그리고 주님의 말씀을 받아 다른 사람에게 전하는 것을 우리는 설교, 또는 선
포라고 부릅니다. 또 이것을 예언이라고도 부릅니다.
지난 목요일이 스승의 날이어서 선생님들의 노고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생각하
게 되는데 교회학교 선생님들이 가르치는 것도 여기에 속합니다.

사랑하는 사람끼리는 눈만 보아도 서로의 마음을 안다고 합니다. 그렇다고 사
랑하는 사람끼리 눈만 바라보고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으면 그 관계가 잘 지
속될 수 있을까요?
아니지요. 대화의 양은 사랑의 깊이와 비례합니다. 사랑하는 사이일 수록 대화
가 풍성합니다.
여러분, 하나님을 사랑하면 하나님께 많은 말씀을 드려야합니다.

여러분, 하나님께 많은 말을 하세요.
기도를 많이 하고 선포, 가르침에 힘쓰시기 바랍니다.

셋째, 말씀은 큰 일을 합니다.

21절을 보세요.

주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주의 뜻대로 이 모든 큰 일을 행하사 주의 종에게
알게 하셨나이다

다윗은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큰 일을 하셨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말씀으로 큰 일을 하셨습니다.

무엇보다도 말씀으로 천지를 창조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빛이 있으라" 하시는 말씀으로 빛을 지으셨고(창1:3), 말씀으로 하늘
을 지으셨고, 말씀으로 바다를 지으셨습니다.
창세기 1장에는 "∼하시니"라는 말이 여러 번 나오는데 이것은 '말씀하시니"라
는 뜻입니다.
창세기 1장에는 또 '무엇이라고 부르다' '무엇이라고 이르셨다'라는 말도 여러
번 나오는데 이것도 말씀의 다른 표현입니다.
창세기 1장은 천지 창조의 기록인데 동시에 말씀 역사의 기록이라고 할 수 있
습니다.

찬송가 78장 '참 아름다워라'을 작사한 뱁콕(Babcock) 목사님은 이 찬송가의 3
절에서

참 아름다워라 주님의 세계는
저 산에 부는 바람과 잔잔한 시냇물
그 소리 가운데 주 음성 들리니
주 하나님의 큰 뜻을 내 알듯 하도다

라고 노래하고 있습니다.
'그 소리 가운데 주음성 들리니' 하나님이 지으신 아름다운 피조물을 통해서 하
나님의 말씀을 듣고 하나님의 뜻을 안다는 뜻입니다.
요즘, 5월은 산이나 들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 좋은 계절입니다. 아니 들어
야 하는 때입니다.

예수님은 말씀으로 구원의 역사를 이뤘습니다.

사람의 경우도 힘이나 돈보다 더 큰 일을 하는 것은 말입니다.
지금 이라크에 의무부대와 공병부대가 파병되어 있는데 의무부대의 이름은 제
마 부대입니다. 조선조 말기의 유명한 한의학자 이제마(李濟馬: 1838∼1900)의
이름을 딴 것이지요.
공병부대의 이름은 서희 부대입니다. 서희(徐熙: 942∼998)는 누구입니까?
고려 초기의 정치가이며 외교가입니다. 993년 시대 거란 장수 소손녕(蕭蓀寧)이
대군을 끌고 쳐들어왔는데 말로 담판하여 거란 군대를 물쳤습니다. 서희는 수
십만 대군을 가지고도 하기 어려운 큰 일을 서희는 말을 가지고 했습니다.

남북회담이 열릴 때 우리 쪽에 믿을만한 회담 전문가가 있다고 여겨지면 우
리는 마음이 든든해집니다.

말씀은 사람을 깨닫게 합니다.
말씀은 사람에게 새 힘을 줍니다.
말씀은 사람을 일으킵니다.
말씀은 사람을 변화시킵니다.

여러분, 큰 일을 행하는 말씀의 역사에 자신을 맡기시기 바랍니다.

넷째, 말씀은 영원합니다.

25절을 보세요.

여호와 하나님이여 이제 주의 종과 종의 집에 대하여 말씀하신 것을 영원히
세우셨사오며 말씀하신 대로 행하사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히 서 있습니다. 찬송가 133장의 1절 가사를 보세요.

어저께나 오늘이나 아무 때든지 영원토록 변함없는 거룩한 말씀
믿고 순종하는 이의 생명되시며 한량없이 아름다운 기쁜 말일세
어저께나 오늘이나 영원무궁히 한결같은 주 예수께 찬양합시다
세월 지나고 변할지라도 영원하신 주 예수 찬양합시다.

라고 노래하고 있습니다

결혼식에서 예물교환을 할 때 금반지를 합니다. 금은 변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금보다 더 변하지 않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영원히 변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저희 교회에서는 결혼예배를 드릴 때 선포순서가 되면 성경 위에 먼저
신부의 손을 얹게 하고 그 다음에 신랑의 손을 포개게 합니다. 그 다음에 결혼
하는 가정이 속한 교구를 담당한 부목사님이 손을 얹게 하고 주례목사가 두 사
람이 부부가 되었음을 주례목사가 선포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은 변하지 않습니다.

성경책은 시간이 지나면 낡아집니다.
디자인도 변합니다.
맞춤법의 변화에 따라 표기도 변합니다.

그러나 그 안에 담겨 있는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히 변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더 새로워집니다.

배가 항해를 하는데 꼭 필요한 것은 등대입니다. 등대가 왜 결정적인 도움이
됩니까?
변하지 않고 그 자리를 지키기 때문입니다. 등대가 왔다갔다하면 등대가 아니
지요.
여러분, 살아가는데 말씀을 등대로 삼으시기 바랍니다.

다섯째, 말씀은 용기를 줍니다.

27절을 보세요.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여 주의 종의 귀를 여시고 이르시기를
내가 너를 위하여 집을 세우리라 하셨으므로 주의 종이 기도로 주께 간구할
마음이 생겼나이다

여기 "간구할 마음"은 '간구할 용기'를 말합니다. 「표준새번역개정판」은 이
부분을 "주께 이런 기도를 드릴 용기를 얻었습니다"라고 번역했습니다.

우선 하나님이 나에게 말씀하신다는 것 하나만 가지고도 우리는 용기를 얻습니
다.
그 다음에 그 말씀의 내용이 나에게 격려가 되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더 큰
용기를 얻습니다.

삼차전도여행을 마치고 예루살렘에 들어온 바울이 성전에게 유대인들에게 잡혀
폭행을 당했습니다. 로마 군인들에 의해 간신히 구출되었는데 이번에는 로마
군인들의 영내에 갇혔고 공회 앞에서 재판을 받았습니다.
재판 받을 때 큰 분쟁이 일어나 천부장이 바울이 찢겨질까 염려하여 군인들을
시켜 바울을 빼앗아 가지고 왔다고 했습니다. 신체적인 위해를 많이 받은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예루살렘에 가면 고난을 받는다는 것을 각오했지만 얼마나 힘이 들겠습니까?
그런데 그 날 밤에 주께서 바울 곁에 서서 이르십니다.

담대하라 네가 예루살렘에서 나의 일을 증언한 것같이 로마에서도 증언하여
야 하리라(행23:11)

이 말은 바울에게 큰 용기가 되었을 것입니다.
이 말씀에 용기를 얻어 바울은 자기를 죽이려는 유대인들의 음모도 극복할 수
있었고, 가이사랴에서 지루한 구금생활도 감당할 수 있었고, 로마로 가면서 만
난 풍랑 속에서도 소망을 잃지 않았습니다.

리빙스턴이 아프리카 선교사로 일할 때 힘든 일이 많았습니다. 선교사들도 리
빙스턴을 따돌렸고 백인 노예상인들은 리빙스턴이 하는 일을 방해했습니다. 맹
수의 위험도 있었습니다.
그 때 리빙스턴에게 용기를 주어 선교사업을 계속하게 한 것은 마태복음 28장
20절 뒷부분이었습니다.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여러분, 말씀을 통해 용기를 얻으시기 바랍니다.

여섯째, 말씀은 참됩니다.

28절을 보세요.

주 여호와여 오직 주는 하나님이시며 주의 말씀들이 참되시니이다

주님의 말씀은 진리입니다. 진리 가운데 진리입니다.

예수님은 복음서 여러 곳에서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이른다'고 하셨습니다(눅
9:27 외).
또 '내 증거가 참 되다'고 하셨습니다.
바울 사도는 바울 서신 여러 곳에서 '내가 참 말을 한다'고 했습니다(고후 12:6,
갈 4:16 외)사도 요한은 밧모섬에서 계시를 받을 때 "이 말은 신실하고 참되니
기록하라"(계21:5, 22:6)라는 말씀을 여러 번 들었습니다.

공자는 '시경에 있는 시 삼백 편을 한마디로 하면 거짓이 없다' 하여 '사무사
(思無邪)'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습니다. 이 말을 시를 쓰는 사람들에게 기본적
인 가르침이 되고 있습니다.
'시는 순수한 마음으로 써야 한다' '진실을 추구해야 한다'고 합니다.
성경에는 정말 거짓이 하나도 없습니다.
성경은 진실 덩어리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진리에 젖어 살아야합니다.
고린도후서 13장 8절의 말씀, "우리는 진리를 거슬러 아무 것도 할 수 없고 오
직 진리를 위할 뿐이니" 이 말씀대로 살아야합니다.

마지막으로 일곱째, 말씀은 약속입니다.

29절을 보세요.

이제 청하건대 종의 집에 복을 주사 주 앞에 영원히 있게 하옵소서 주 여
호와께서 말씀하셨사오니 주의 종의 집이 영원히 복을 받게 하옵소서 하니


여기 나오는 말씀은 약속을 말합니다.

25절의 "여호와 하나님이여 이제 주의 종과 종의 집에 대하여 말씀하신 것을
영원히 세우셨사오며 말씀하신 대로 행하사" 여기에 나오는 말씀도 약속이라는
뜻입니다.

말씀은 약속이기 때문에 성경을 우리는 '구약' 과 '신약'으로 부르고 있습니다.

다윗에게 좋은 약속을 하신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에게도 말씀을 통해 좋은 약속
을 하십니다.

'내가 너를 더욱 사랑하리라'
'내가 너와 함께 하리라'
'네가 너에게 복 주리라'

이런 약속을 들으시고 그 약속이 이뤄질 것을 조금도 의심하지 말고 믿으시기
바랍니다.

오래 전에 어떤 사람이 금강산에 다녀와서 기행문을 썼는데 제목을 '산정무한
(山情無限)'이라고 했습니다. '산이 주는 느낌이 무한하다' 이런 뜻이겠지요. 이
글은 고등학교 국어 교과서에도 실려 있습니다.
말씀이야말로 무한합니다. '말씀무한'입니다.

저는 오늘 새벽에 퍽 당황하지 않을 수 없는 일을 겪었습니다.
주일낮예배 초고를 컴퓨터로 작성해서 주일 새벽에 일찍 일어나서 마지막 손질
을 해서 출력을 하는데 오늘 주일 새벽에 일어나서 컴퓨터를 열어보니까 다 날
아가 버렸습니다. 디스켓에 옮겨둔 것, 컴퓨터에 있는 것 둘이 모두 날아가 버
렸습니다. 이런 경우를 경상도 사투리로 '시껍묵는다"고 하지요. 어제 좀 급하
게 퇴근하느라고 컴퓨터를 키를 제대로 사용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야단났지요. 얼른 마음을 진정시키고 새벽기도회에 들어가지도 못하고 다시 작
성하기 시작했습니다.
말씀을 주제로 한 설교였기 때문에 짧은 시간 내에 다시 작성할 수 있었습니
다. 말씀에 대한 말씀드릴 것은 무한하거든요.
만일 다른 것을 주제로 한 설교였으면 기억을 쥐어 짜내느라고 혼이 났을 것입
니다.

여러분, '말씀무한' 이 말을 잘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말씀을 통해 미래의 일을 아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 많은 말씀을 아뢰시기 바랍니다.
말씀을 통해 큰 일이 일어나는 것을 아시기 바랍니다.
말씀은 영원한 것을 아시기 바랍니다.
말씀을 통해 용기를 얻으시기 바랍니다.
말씀은 참된 것을 아시기 바랍니다.
말씀을 통해 귀한 약속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이와 같이 하여 말씀 위에 서는 여러분과 저, 그리고 이 교회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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