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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성령의 기름 부으심 / 사 6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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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제목 성령의 기름 부으심
성경본문 이사야 61:1-3
이용호 목사 (영천교회)


설교내용  연극에 에드리브라는 게 있습니다. 즉흥연기, 변칙행동을 말합니다. 루이 암스트롱이 재즈를 연주할 때 악보에 없는 연주를 통해서 많은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주었는데 그것도 에드리브에 속하는 것입니다.

  얼마 전에 노 대통령이 검사와 토론을 할 때 한 검사가 좀 까다로운 질문을 했습니다. 그 때 '그러면 막가자는 거지요'라고 말했는데 그것도 하나의 에드리브입니다. 예기치 못한, 즉흥적인 말로 대응하는 것을 말합니다.

  영국은 신사의 나라이고 귀족의 나라입니다. 영국의 국회의원들은 전통적으로 귀족들이 많은 의회의 활동을 하는데 한번은 수의사 출신의 의원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옆에 귀족의원이 앉아 있었습니다. 내심 못마땅한 것입니다. 옆에 있는 수의사 출신의원을 얕보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수의사 출신이라면서요?" 그 어투나 표정이 깔보는 식으로 그렇게 한 것입니다. 그러자 수의사 출신의원이 당당하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예 의원님, 어디가 불편하십니까?"


  하나님의 에드리브

  하나님이 에드리브를 잘 하십니다. 깜짝깜짝 놀라게 하십니다. 우리의 생애 속에 내가 예상치 못한 에드리브를 주십니다. 어릴 때는 별 것 아닌 녀석이 수 십년 후에 상상도 못하는 훌륭한 사람으로 변모되어 있는 모습을 봅니다. 하나님이 은혜를 주시면, 여호와 하나님이 주목하시면, 우리의 생애 속에도 우리가 예기치 못한 놀라운 에드리브의 역사가 있을 줄로 믿습니다. 그 중에 하나가 이사야 선지자의 고백입니다.
  1절을 다같이 봅시다. "주 여호와의 신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나를 보내사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전파하며"라고 했습니다.

  "여호와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 매우 상징적인 계시입니다. 이 말뜻을 이해하기 위해서 실제로 연상을 해 보기 바랍니다. 여기 앞에 한 사람을 세워서 기름을 부어보면 어떤 현상이 일어나겠습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왕을 세울 때, 제사장을 세울 때, 선지자를 세울 때 기름을 부었습니다. 기름을 부으면 머리에 부은 그 기름이 흘러 내려서 온 몸을 적시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기름을 부음받은 사람은 꼼짝을 할 수가 없습니다. 기름부음을 받은 그 상태로는 어떤 행동을 할 수가 없습니다. 기름부음을 받는 그 순간에는 꼼짝을 하지 못하고 기름부음을 받아야 됩니다.

  또 하나는 그 부어진 기름에서 나는 향기가 온 주변을 가득 채우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성령의 기름 부으심의 상징적인 의미를 우리에게 줍니다. 여기 기름부음을 받는다는 것은 성령의 기름부음으로 성령이 우리에게 임하신다는 것인데 성령이 임하면 우리가 성령에게 사로잡혀 아무런 반항도 할 수 없는 모습을 상징하는 것이고 향기가 풍긴다는 것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살게 된다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성령의 기름 부으심은 여호와 하나님이 인간을 결정적으로 변화시키고, 결정적으로 사용하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신앙생활에는 성령의 기름 부으심이 일어나야 합니다. 오늘의 이 예배 중에 성령의 부어주시는 은혜, 성령의 기름 부으심이 우리 각자에게 임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성령의 기름 부으심과 치유

  성령의 기름 부으심은 그 효력이 세 가지로 나타나는데 첫째는 치유하심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육체를 고치시고 우리의 영혼을 고치시는 것을 말합니다. 오늘 본문에도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전파하며"라고 했습니다. 성령의 기름 부으심은 우리를 치유하는 것입니다.

  야고보서 5장 14절 "너희 중에 병든 자가 있느냐 저는 교회의 장로들을 청할 것이요 그들은 주의 이름으로 기름을 바르며 위하여 기도할지니라"고 했습니다. '주의 이름으로 기름을 바르라' 즉 주님의 이름으로 성령의 역사를 간구하라는 말입니다. 육체의 치유함, 영혼의 치유함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오늘도 우리 내면에 영혼의 상처가 많이 있습니다. 인간은 불완전합니다. 누구에게 들은 말 한마디가 상처가 되어 예배드리는 이 시간에도 그 상처를 씻지 못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고, 우리의 육체 어디엔가 고장이 나 있는 신체장애가 있을 수도 있습니다. 신앙생활을 보아도 기도없이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내 모습은 하나님 앞에 정상이 아닙니다. 중요한 일을 결정하면서도 기도하지 아니하고 예수님의 이름은 말하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행동은 하면서도 내 자신에게 항상 초점을 두고 살아가고 있는 신앙생활은 일그러진 우리의 영적인 모습입니다.

  하나님은 내 신앙생활에 옐로우 카드를 벌써 주셨는데도 아직도 정신을 차리지 않고 있는 우리 모습입니다. 하나님은 레드카드를 주셨습니다. '이젠 너 끝장이야'라는 경고가 있는데도 불구하고 아직도 흐트러진 우리의 영적인 모습이 정리되지 않고 있는 안타까운 모습을 보게 됩니다. 우리의 영혼에는 독이 있습니다. 이 독을 제거함 받아야 됩니다. 예배를 통하여 성령의 강림하심은 우리의 영과 육을 치유하시는 역사인 것입니다. 이 회복의 축복을 누리는 이 시간 되시길 바랍니다.
  회복은 개인에게만 아닙니다. 치유는 우리 개인만 받는 게 아니라 우리 가정도 우리 사회도 일그러진 모습들이 회복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셀린 디온이라는 유명한 팝 가수가 있습니다. 이 사람은 카나다 출신으로 영화 타이타닉호의 주제가를 불러서 일약 유명해졌습니다. 부와 영광과 인기를 한 몸에 받은 가수입니다. 그런데 이 셀린 디온이 갑자가 가수활동의 중단선언을 했습니다. 왜냐하면 병상에 있는 남편에게 돌아가기 위해서입니다. 남편이 후두암을 앓고 있었는데 그는 남편에게 가장 필요한 사람은 나 자신이다, 내가 지금 부와 명예와 인기가 절정에 달해 있지만 가정의 회복을 위하여 나는 남편에게도 돌아가야 된다고 생각하여 그 영광을 포기하고 가정으로 돌아갔습니다. 남편을 간병하여 그 가정이 회복이 되었습니다.

  여러분, 회복의 역사, 치유의 역사는 사회적이면서도 개인적입니다. 예배 드리는 우리 각자가, 일그러져 있는 우리의 모습이 주안에서 치유되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우리가 머무는 가정, 우리가 일하는 일터, 우리가 머무는 이 사회가 우리로 말미암아 치유의 역사가 일어나기를 바랍니다.


  성령의 기름 부으심과 능력

  둘째로, 성령의 기름 부으심은 하나님의 능력을 입는다는 의미입니다. 우리가 할 수 없는 일을 하게 합니다. 내가 모르던 것을 알게 합니다. 내가 못하던 것을 하게 합니다. 내 자신을 이기게 합니다. 세상을 이기게 합니다. 사탄의 유혹을 극복하게 합니다. 죄를 분별하게 합니다. 이것이 성령의 기름 부으심의 은총인 것입니다.

  워싱턴 DC에 가면 서미소니언이라는 자연사 박물관이 있습니다. 그 박물관 로비에 들어서면 거대한 공룡모형이 나옵니다. 그러나 그 공룡은 움직이지 못합니다. 모형 비행기도 있습니다. 모형 배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비행기는 날지 못합니다. 그 배는 항해를 못합니다. 생명이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들의 신앙생활이 하나님의 능력으로 생명력을 발휘하기 바랍니다.

  오늘의 교회는 제직원 수가 모자라는 게 아니고, 당회원 수가 모자라는 게 아니고, 교역자 수가 모자라는 게 아니고 조직이 모자라는 게 아니고, 성도들의 은사가 모자라는 게 아니고, 성도들의 재산이 없는 게 아니고 오직 한 가지 부족한 것은 여호와의 신이 임하지 않고 있다는 것입니다.

  초대교회는 제직원이 많지 않았습니다. 초대교회는 집사가 일곱명 밖에 없었습니다. 초대교회는 교역자도, 장로들도 많지 않았습니다. 우리처럼 예배당도 없었습니다. 우리처럼 교회 안에 기구도 없었습니다. 그러면서도 초대교회가 오늘날 우리 교회들이 못하고 있는 놀라운 일을 하신 것은 성령의 기름 부으심으로 충만해졌기 때문입니다. 우리들에게 있어서 성령의 기름 부으심은 우리의 재능과 물질과 모든 은사에 필요한 것입니다. 내가 은사를 가지고 있어도, 이 은사가 성령의 기름부음을 받아야 주님을 위해서 쓰여지는 은사가 되는 것입니다.

  윈드서핑은 바람의 힘을 빌려서 타는 것입니다. 수영을 못하는 사람은 자기 힘으로 수영하는데 수영에 익숙한 사람은 물 힘으로 수영을 합니다. 그리스도인이 성령의 기름 부으심을 받으면 성령의 능력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성령의 기름 부으심이 없는 성도는 자기 힘으로 신앙생활을 합니다.

  스가랴 4장 6절에 "이는 힘으로도 되지 아니하며 능으로도 되지 아니하며 오직 여호와의 신으로 되느니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못하는 것이 너무 많습니다. 그러나 성령의 기름 부으심으로 우리 안에서 하게 하고 우리 안에서 이기게 합니다. 우리가 주님의 자녀다움으로 무장될 수 있는 것입니다.


  성령의 기름 부으심과 사명

  셋째로, 성령의 기름 부으심의 효력은 우리를 사명자로 살게 하는 것입니다.

  3절에 "무릇 시온에서 슬퍼하는 자에게 화관을 주어 그 재를 대신하며 희락의 기름으로 그 슬픔을 대신하며 찬송의 옷으로 그 근심을 대신하시고 그들로 의의 나무 곧 여호와의 심으신 바 그 영광을 나타낼 자라 일컬음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고 했습니다. '여호와의 심으신 바 그 영광을 나타낼 자라' 즉 사명자로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낼 자로 살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성령의 기름부은 받은 자에게 일어나는 결과인 것입니다.

  삼손은 놀라운 은사를 가진 사사였습니다. 그러나 삼손의 힘은 헛되이 소모되었습니다. 이스라엘의 사울왕은 훌륭한 권세자였지만 그의 권세와 은사는 헛된 데로 다 소모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일을 하지 아니하면 우리 주님은 다른 길로 우리의 은사를 빼앗아 가시는 것입니다. '슬픈 자에게 화관을 주신다' '재를 대신하여 희락에 기름을 주신다' '근심을 대신하여 찬송의 옷을 입힌다' 모두 여호와의 영광을 드러내는 자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우리는 사명자로 살아야 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우리에게 기름을 부으시는 것은 우리 가운데 치유를 일으킵니다. 우리의 상한 것을 치유하십니다. 그리고 우리의 연약한 것을 강하게 능력을 부어 주십니다. 그리고 주님의 사명자로 살도록 회복시켜 주시는 것입니다. 이 사명의 은총 안에서 성령의 기름 부으심이 결실을 거두시는 것입니다.

  암탉이 달걀을 품고 병아리를 부화하는데 21일만에 부화가 됩니다. 병아리를 품는 암탉을 씨암탉이라고 하는데 암탉이라도 다 달걀을 품고 부화시키는 씨암탉이 아닙니다. 그러니까 사위에게 씨암탉을 잡아준다는 말은 앞으로 병아리를 부화시킬 귀한 닭을 잡아준다는 말입니다. 제대로 된 암탉은 그 21일 동안에 서너 번 밖에 나옵니다. 한번 품으면 한 주간 계속 품고 있습니다. 그런데 농촌에서 낳아 키우는 닭들은 온 종일 돌아다닙니다. 그리고 온 종일 먹습니다. 식사 때가 따로 없습니다. 이런 닭이 한 주간 동안 꼼짝도 않고 그 달걀을 품고 있다는 것은 어마어마한 집념이고 희생이고 고난입니다. 잠깐 나와서 물이나 모이를 먹고는 또 들어가서 한 주간 품고 있습니다. 이렇게 해서 21일만에 병아리를 부화시킵니다. 이것은 놀라운 암탉의 사명감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고약한 닭이 있습니다. 병아리를 품으려는 징조가 나서 달걀을 넣어주는데 매일 튀어나오는 닭이 있습니다. 한번 들어가면 꾸준히 품고 있어야 되는데 매일 나갑니다. 나와서 한참 돌아다니다 들어갑니다. 이런 닭은 달걀도 버리고 씨암탉도 안됩니다. 

  여러분, 우리는 달걀을 품고 병아리를 부화시키는 이 암탉처럼 무언가 집념을 가지고 우리 주님이 맡긴 일을 해내는 이런 사명자의 의식으로 살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사명에 얽매이는 사람이 복된 사람입니다. 이 사명을 저버리면 마음대로 돌아다녀도 됩니다. 그러나 우리는 마음대로 살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사명이 있기 때문에 이것을 이루어 드리고 주님 앞에 가야 됩니다. 성령의 기름 부으심은 이 일을 가능하게 합니다. 우리의 힘으로는 치유가 될 수 없으며 회복이 될 수 없으며 사명을 감당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여호와의 기름 부으심의 은혜가 필요한 것입니다. 우리가 각자에게 이런 충만한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성령의 기름 부으심을 받자

  성령의 기름 부으심을 위해서는 하나님이 두 가지를 요구합니다. 첫째는 사모하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주일을 기다리라는 게 아니라 은혜를 사모하면서 주일을 맞이하길 바랍니다. 은혜를 사모하는 마음이 어제보다 오늘이 더 하고, 매 주일마다 은혜를 사모하는 열정이 점점 더해 가시기 바랍니다. 사모해야만 은혜를 받게 됩니다.

  골프의 홀인원이 있습니다. 볼링에 퍼펙트가 있습니다. 이 홀인원은 예고하고는 절대로 되지 않습니다. 오늘 내가 홀인원을 한다 하고 골프를 쳐서 홀인원이 되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내가 이 게임에 퍼펙트 친다 하고 볼링에서 퍼펙트 치는 선수는 아무도 없습니다. 계속 치다가 보니까 홀인원도 나오고 퍼펙트도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 앞에 계속 은혜를 사모해야 됩니다. 끈기를 가지고 주님의 은혜를 사모하면서 살아야 여호와 하나님이 부어주시는 놀라운 에드리브의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나를 깜짝 놀라게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 나를 완전히 개조시키는 여호와 하나님의 기름 부으심의 역사가 은혜를 꾸준히 사모하는 자에게서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리고 회개해야 됩니다. 그릇이 깨끗해야만 성령의 기름 부으심이 임하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새벽이 두려운 사나이입니다. 이 친구는 뛰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무덤에 갈 때도 무조건 뛰어 가지고 일등했습니다. 도망을 갈 때도 일등으로 도망갔습니다. 예수님이 바닷가에 올 때도 누구보다도 먼저 바닷가에 첨벙 뛰어들었습니다. 좌우간 뛰기에는 베드로가 선수입니다. 그런데 이 친구의 결점은 뛰고 나서 생각하는 것입니다. 뛰고 보니까 잘못된 것입니다. 베드로가 새벽에 닭 울음소리를 듣고 회개하는 그 장면이 나오는데 베드로는 아마 일생동안 닭울음소리를 들으면 잠을 못 자는 사나이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베드로가 회개하고 주 앞에 돌이킨 후에 주님이 쓰시는 놀라운 일군으로 삼아 주셨습니다. 깨끗한 그릇이라야 성령이 임하십니다. 성령의 기름 부어주심이 있는 것입니다.

  노란 콩의 꽃이 무슨 색인지 아십니까? 팥은 자주색인데 팥꽃이 무슨 색인지 아십니까? 노란 콩의 꽃은 자주색입니다. 팥꽃은 생각 외로 노란색입니다. 우리는 노란 콩은 꽃도 노란색으로 인식하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서로 다르면서도 조화가 있습니다. 참으로 하나님의 솜씨가 묘합니다. 노란 콩의 자주색 꽃이 그렇게 아름답습니다. 그러나 사람은 그렇게 겉과 속이 다르면 안됩니다. 사람은 표리가 부동하면 안됩니다. 우리는 겉과 속이 같아야 됩니다. 그래야 주의 성령이 임하시는 그릇이 되는 것입니다.

  깐수교수라는 이야기를 아실 것입니다. 이 사람의 북한 이름은 정수일입니다. 아랍에 가서 공부를 해 가지고 모습도 아랍인처럼 변장을 했습니다. 그래서 레바논계 필리핀인이라는 신분으로 우리나라에 공작원으로 남파가 되었습니다. 이 사람이 우리나라 대학에서 교수로 일하면서 간첩짓을 한 것이 드러났습니다. 이 친구는 이름도 여러 개입니다. 깐수, 정수일, 아랍이름 등이 있고 국적도 여러 개 가지고 있습니다. 이게 레바논 사람인지 필리핀 사람인지 아랍사람인지 북한사람인지 구분이 안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여호와 하나님 앞에서는 이런 모습이 통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그릇이 깨끗해야 됩니다 그리고 성령의 기름 부으심을 사모하는 열정이 있어야 성령의 기름 부으심이 우리의 인격을 적시고 우리의 삶을 치유하실 줄 믿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겸손해야 됩니다. 겸손의 의미를 오늘 성경이 잘 말하고 있습니다. "그 영광을 나타낼 자라" 성경적인 겸손은 얌전하고 조용한 개념이 아닙니다. 성경의 겸손은 하나님을 높이는 것을 말합니다. 나의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높이는 것이 성경이 말하는 겸손함입니다. 여호와 앞에서 겸손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높임으로서 내가 겸손한 것입니다.

  한 때 청와대에서 일하신 대통령비서실장 출신 장로님이 계십니다. 이 장로님은 주일예배에 신실하신 분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 분은 부득이한 일 외에는 주일예배를 드리는 일에 아주 투철하신 신앙인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하나님을 높이는 비서실장은 겸손한 권세자입니다. 대통령 비서실장은 대통령만 없으면 제일 높은 사람입니다. 그 높은 자리에서도 하나님을 높일 때 겸손해지는 것입니다. 재벌이 되어도 그 재벌이 하나님을 높일 때 겸손한 재벌이 될 줄 믿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으로 드러내고 그 분의 영광을 드러낸 것이 겸손입니다. 그것이 유지되어야 됩니다. 그와 같은 그릇에 주의 성령의 기름 부으심이 임하는 것입니다.
  20세기 후반에서 21세기에 들어 가장 화재의 인물은 영국의 토니 블레어 총리라고 합니다. 부시보다도 이 블레어가 더 젊은이들에게 선망의 인물입니다. 그는 지금 나이가 50세입니다. 그런데 이 사람은 44살에 총리가 되었습니다. 이 블레어가 정계에 등장하자 '젊은 피'라는 말이 등장했습니다. 이게 아주 파격적이었습니다. 이 블레어가 수상이 될 때는 청년입니다. 그런데 이 블레어가 왜 이렇게 장기집권을 하고 선망의 인물이 되느냐? 그가 불과 50세의 생일을 맞는데 어째서 그가 세계의 뉴스거리가 되느냐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번에 50세의 생일을 맞을 때 세계 뉴스가 그의 나이가 오십이 되었다고 보도했습니다. 항상 젊은 이미지를 갖고 있었는데 블레어도 어느덧 나이가 오십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블레어는 총리가 되어서 노동당 출신이지만 정책은 보수당의 대처를 따랐습니다. 자기가 총리가 될 때도 영국에는 실업사태와 노동문제가 아주 복잡했습니다. 그는 그것을 수습하는데 반대당의 정책을 끌어안은 것입니다. 그리고 대처의 정책을 따르면서 그것을 수습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자기 당에게 오해를 받으면서도 상대당의 정책을 받아들이면서 언제나 영국의 국익을 위해서 일하는 총리가 되었습니다. 이 젊은 총리가 영국의 국익을 앞세우면서 세계의 영향을 주는 꿈의 정치가로 등단을 한 것입니다. 자기 당에는 비난을 받으면서도 그 모든 것을 극복하고도 이렇게 우뚝 설 수 있었던 유일한 통치이념이 무엇이냐 하면 영국의 영광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 블레어가 국익을 앞세우고 영국의 영광을 구현하니까 그는 항상 영국국민들에게 겸손한 총리가 되고 그 자리가 흐트러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맺는 말

  오늘 우리들의 자리가 흐트러지지 않으려면 하나님의 영광을 높여야 합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낼 자라" 왜 여호와 하나님이 기름을 부어주십니까?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낼 자로 삼기 위해서입니다. 이 일을 할 때 우리는 항상 겸손을 유지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성령의 기름 부으심, 이것은 오늘 우리 교회가 날마다 사모해야 할 은혜입니다. 예배를 드릴 때마다 우리는 성령의 기름부음을 받고 돌아가는 그리스도인의 기쁨을 가져야 됩니다. 오늘도 예배를 드리고 돌아가는 우리가 내 맘대로 살지 않고 주님 뜻대로 사는 기름 부으심의 사로잡힌 주의 성도가 되길 바랍니다. 기름의 향기가 나듯이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자로 살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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