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수건을 벗지 못하는 사람들 / 고후 3:12-18

  • 잡초 잡초
  • 591
  • 0

첨부 1



  수건을 벗지 못하는 사람들 / 고후 3:12∼18   

지난 주 중에 영화 한 편을 보았습니다. 여러분도 잘 아실만한 영화라고 생각되는데 바로 Whoopi Goldberg 주연의 「Sister Act」라는 영화입니다. 영화의 줄거리는 대충 이렇습니다.

「Moonlight」라는 카지노 라운지에서 노래하는 가수인 Deloris 가 어느 날 그녀가 일하는 라운지 사무실에서 우연히 살인 사건을 목격하고 경찰에 신고하게 됩니다. 재판이 있기까지 증인인 Deloris를 보호하기 위해서 담당 형사는 그녀를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어느 성당 수녀원에 들여보냅니다. 수녀원장은 그녀의 문제에 대해서 잘 알고 있었지만 다른 수녀들은 그녀를 단지 Mary Clarence 라는 수녀로만 알고 지냅니다. 자유분방한 삶을 살았던 Deloris에게 수녀원 생활은 참으로 적응하기 힘든 것이었습니다. 그러다가 Deloris는 우연한 기회에 수녀들로 구성된 교회 성가대의 지휘를 맡게 됩니다. 그 동안 실력이 형편없었던 성가대는 Deloris의 지도로 점차 훌륭한 성가대로 바뀌어 갑니다. 문제는 Deloris 와 그녀의 성가대가 부르는 노래가 그 동안 불러왔던 전통적인 형식의 성가곡들이 아니라 빠른 템포와 강한 비트 그리고 신나는 몸동작을 포함하는 획기적이고 현대적인 노래들이라는데 있었습니다. 비록 수녀원장이 그 노래들을 싫어했기 때문에 다소의 갈등이 있었지만 Deloris가 성가대를 지휘하고부터 성가대가 유명해지기 시작했고, 성가대의 찬양을 듣기 위해 교회에 오는 사람들이 늘어나기 시작해서 전에는 빈자리만 가득했던 주일 미사 시간에 모든 자리가 꽉 차기 시작합니다. 뿐만 아니라 교회 주변이 우범지대였던 탓에 경건치 못한 세상을 향해 꼭꼭 문을 닫았던 교회의 철문이 Deloris로 인해서 활짝 열리고 수녀들이 문제가 있는 지역 사회와 문제가 있는 사람들을 직접 찾아가게 됩니다. 그로 인해 교회 주변 지역이 놀랍게 변화되기 시작하고, 그 동안 교회를 멀리했던 사람들이 교회를 찾아오기 시작합니다. 이러한 소식을 전해들은 교황도 샌프란시스코를 방문하는 중에 Deloris 와 그녀가 지휘하는 성가대의 노래를 듣기 위해 주일 밤의 특별한 콘서트를 요청합니다. 모두들 그 소식에 흥분하면서 콘서트 준비에 여념이 없을 때, Deloris 의 위치를 찾아낸 살인자들이 그녀를 납치해서 처치하려 합니다. 그러나 Deloris는 수녀원장과 동료 수녀들의 헌신적인 도움으로 구출되고 마침내 예정된 시간에 교황을 모시고 콘서트를 갖습니다. 그 콘서트의 마지막 곡이 유명한 「I will follow Him」입니다. 그 노래의 가사는 대충 이렇습니다.
"그분을 따르리. 그분이 가는 곳 어디나 그분을 따르리. 나 항상 그분 가까이 있으리. 그 어떤 것도 나를 그 분에게서 멀어지게 할 수 없네. 그 분은 나의 운명. 그분이 내 마음을 만진 그날부터 나 그분을 따르리. 깊은 바다라 해도 또 높은 산이라 해도 나를 그분의 사랑에서 멀어지게 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네."

오래 전에 이 영화를 처음 보았을 때는 그저 '웃긴다' 또는 '재미있다'는 생각뿐이었습니다. 그런데 지난 주중에 다시 한 번 영화를 보면서 복음이 무엇인지를 진지하게 생각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여러분은 복음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물론 우리는 정답을 알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 정답을 한 마디로 요약하라고 한다면 여러분은 어떤 단어로 요약을 하시겠습니까? 저는 복음을 '자유'라는 단어로 요약하고 싶습니다. 복음은 자유의 선언입니다. 복음은 다름 아니라 죄로부터의 자유, 사망으로부터의 자유, 율법으로부터의 자유, 아니 모든 얽매인 것들로부터의 진정한 자유 선언입니다.

예수께서는 이사야 선지자의 예언을 직접 인용하시면서 복음이 무엇인지를 분명하게 설명해 주셨습니다.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케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더라"(눅 4:18∼19)

사도 바울은 이것을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에서 수건을 벗기는 일에 비유했습니다. 출애굽기 34장을 보면 모세가 시내산에서 사십일을 주야로 금식하면서 하나님으로부터 계명을 받았고, 마침내 그 계명이 적힌 두 돌판을 들고 이스라엘 백성에게로 내려옵니다. 그 때 모세의 얼굴에서는 광채가 났고, 백성들은 그것을 무척이나 두려워했습니다. 이에 모세는 수건으로 자기 얼굴을 가리게 됩니다. 모세가 자신의 얼굴을 수건으로 가린 이유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영광 자체가 아니라 자신의 얼굴에 나타난 일시적인 광채에 어떤 절대적인 가치를 부여할까봐 그것을 방지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그런 모세의 의도와는 달리 그들은 모세를 따라 자신들 역시 수건을 뒤집어쓰고야 말았습니다. 그 수건이 무엇이냐 하면 바로 율법이라는 것입니다. 그 율법이라고 하는 수건으로 말미암아 그들은 영적인 눈이 어두워져서 진리를 분별하지 못했고, 진리가 없었기 때문에 단지 껍데기뿐인 종교의 추종자들이 되고 말았습니다. 나아가서 그들은 율법의 노예가 되어서 무거운 종교적 의무와 공허한 형식의 멍에를 메고 힘겹게 살아가야만 했습니다. 그 수건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벗겨주실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 그리스도만이 수건을 벗기고 자유를 주실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주는 영이시니 주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함이 있느니라"(고후 3:17) 수건이 벗겨지고 진정한 자유를 얻은 사람만이 주님을 바라볼 수 있고, 주님을 바라보는 사람만이 주님의 형상을 닮아갈 수 있고, 주님의 형상을 닮아 가는 사람만이 주님의 영광에 참여하게 되는 것입니다.

문제는 그리스도 안에 있다고 하면서도 여전히 수건을 벗지 못한 사람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복음으로 말미암아 자유를 주시고 수건을 벗겨주시려고 하는데, 그 반대로 사람들은 자꾸만 수건으로 자신을 감싸려고 합니다. 애써서 무거운 종교적 의무들을 만들어 내고, 애써서 허무한 종교적 형식들을 만들어 냅니다. 복잡한 의식과 절차를 지켜야만 구원받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고행과 수도 같은 고통스러운 자기 학대를 통해서만 주님을 만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큰 공로나 땀 흘리는 노력으로 주님을 만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진리라고 생각하면서 자꾸만 더 두텁게 두텁게 수건으로 칭칭 감습니다.

영화「Sister Act」에서 수건을 벗지 못한 사람이 바로 수녀원장이었습니다. Deloris와 그녀의 성가대원들이 부른 노래를 듣고 수녀원장은 무척이나 화를 냅니다. 경건해야할 교회 안에서 그런 세속적인 가락의 노래들을 결코 부를 수는 없다고 확신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수녀원장은 복음이 무엇인지 또 복음이 가져다주는 자유의 의미가 무엇인지 알지 못했습니다. Deloris와 그녀의 성가대원들이 아무 감동도 또 생명도 없이 부르던 마치 장송곡 같았던 노래들과 함께 두터웠던 수건을 모두 벗어 던지고, 자유의 노래를 뜨거운 몸짓과 함께 불렀을 때, 그 노래는 복음을 싣고 교회밖에 방황하는 사람들을 찾아갔습니다. 사람들이 그 노래 소리에 이끌려 하나씩 둘씩 교회로 나아오기 시작했습니다. 바로 거기에 예수의 참 생명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결국은 수녀원장 역시 수건을 벗어 던지게 됩니다. 그 동안 자신을 칭칭 감싸고 있던, 그래서 그것이 진리라고 확신하고 있었던 그것을 벗어 던지게 됩니다. 그리고 Deloris와 그녀의 성가대가 온 맘과 온 몸을 다해서 부르는 「I will follow Him」이라는 노래를 환한 미소 속에서 듣게 됩니다. 물론 그것은 단지 영화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 영화는 우리에게 대단히 중요한 영적 진리를 발견하게 해 줍니다. 복음은 자유의 선언이며, 진정으로 자유를 누리는 사람만이 진정으로 주님을 만날 수 있고, 진정으로 주님을 높이며 찬양할 수 있고, 진정으로 주님이 가신 길을 따를 수 있다는 것을 말입니다.

사랑하는 참된 교회 성도 여러분! 교회란 복음으로 말미암아 수건이 벗겨진 사람들의 모임입니다. 거기 주님의 영이 계시다면 그곳에는 분명 자유함이 있습니다. 우리가 주님 앞에 우리의 무릎을 꿇는 것도, 우리가 주님 앞에 우리 자신을 헌신하는 것도, 우리 스스로를 주님의 소유로 인정하는 것도, 우리의 삶 전부를 주님 앞에 드리는 것도 사실은 우리가 자유하기 때문에 가능한 것입니다. 우리는 교회가 다시 수건으로 쌓여지지 않도록 감시해야할 필요가 있습니다. 또한 우리 자신도 다시 수건으로 쌓여지지 않도록 경계해야할 필요가 있습니다. 주님께서 주신 자유의 복음이 싸구려 은혜가 되지 않도록 해야만 합니다. 바라기는 참된 교회가 자유의 복음이 선포되는 교회가 되어서 사람들이 찾아와 수고하고 무거운 모든 짐을 내려놓고 진정한 구원과 참된 안식을 누리는 그런 교회가 되기를 바라고, 성도들 역시 날마다 주님 앞에서 수건을 벗는 그런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