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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속죄제의 의미 / 레 4: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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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속죄제의 의미 / 레 4:1~12   
 

  구약성경 레위기에는 제사제도가 자세하게 기록되어있습니다. 그런데 이 레위기의 제사제도와 다른 모든 종교의 제사제도와는 근본적인 차이점이 있습니다. 다른 모든 제사제도는 사람들이 만들어낸 것인데 비해서 구약의 제사제도는 하나님께서 직접 명령하셔서 만들어진 것이라는 점입니다.

  하나님께서 왜 제사제도를 이렇게 자세하게 만들어주셨을까요? 이 점이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들의 제사를 이해하는 열쇠라 할 수 있습니다. 나아가 초대교회 이래로 오늘에 이르기까지 우리 기독교가 드려온 예배를 이해하는 핵심 내용이라 할 수 있습니다.

  출 24장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과 특별한 언약을 맺으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출 20장 이하의 십계명을 중심한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면,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되실 것이고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이 될 것이라는 약속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 24:7을 보면 하나님의 이 제의에 동의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 사이의 언약이 체결되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언약을 맺을 때 특별한 의식을 치르도록 명하셨습니다. 출 24:6-8을 보면 이렇게 기록되어있습니다. “모세가 피를 취하여 반은 여러 양푼에 담고 반은 단에 뿌리고 언약서를 가져 백성에게 낭독하여 들리매 그들이 가로되 여호와의 모든 말씀을 우리가 준행하리이다. 모세가 그 피를 취하여 백성에게 뿌려 가로되 이는 여호와께서 이 모든 말씀에 대하여 너희와 세우신 언약의 피니라” 한 마디로 피로 언약을 맺으셨다는 것입니다.

  그 내용을 조금 더 자세히 살펴보면 이렇습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제물을 잡고 그 피를 받으라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피를 둘로 나누라고 하셨습니다. 그 피의 반은 하나님을 상징하는 제단에 뿌리고, 나머지 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뿌리라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언약의 피를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들이 함께 바른 셈입니다.

  이렇게 피로 언약 의식을 체결한 것은 이런 뜻입니다. “이 피는 생명을 상징하는 것이다. 만일 언약의 한 쪽 당사자가 언약을 파기하면 자신의 생명을 내어놓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언약을 체결한 뒤에 하나님께서는 어떤 일이 있어도 그 언약을 지키셨습니다. 물론 이스라엘 백성들도 그 언약을 철저하게 지켜야만 했습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이 언약 뒤에 바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제사제도가 기록되어있습니다. 먼저 성막을 짓게 하셨고, 제사장을 세우게 하셨고,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도록 했습니다. 왜 언약을 체결하시자마자 바로 제사제도를 말씀하셨을까요? 여기에 이 제사제도의 깊은 뜻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너무 잘 아셨습니다. 비록 이스라엘 백성이 언약을 체결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겠다고 약속하고 다짐했지만, 앞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미리 어길 것을 아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 언약을 깨뜨릴 것을 아셨습니다. 결국 저들이 언약을 파기한 대가로 피를 흘리지 않으면 안 되게 될 것을 아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미리 피할 길을 마련하신 것입니다. 언약이 파기된 것을 회복할 길을 마련해 놓으신 것입니다. 바로 제사제도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을 대신해서 제물들이 피 흘리게 하셔서 언약 파기의 대가를 치르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과의 언약의 관계를 다시 회복하게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제사제도의 핵심은 하나님과의 언약 관계의 회복입니다. 하나님과의 화해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과의 언약을 깨뜨렸을 때 이것을 다시 회복할 수 있는 은혜의 자리인 것입니다. 결국 제사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지우신 무거운 의무가 아니라 더 할 수 없는 은혜요 축복인 것입니다.

  오늘 우리의 예배가 그렇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구체적인 통로입니다. 하나님과의 구체적인 만남의 자리입니다. 하나님과의 언약을 회복할 수 있는 축복의 자리입니다. 그래서 예배드릴 수 있음이 얼마나 큰 은혜요 축복인지 모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예배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가장 소중한 선물 가운데 하나입니다. 정말 예배드릴 수 있음이 은혜요 축복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리고 이 예배를 소중히 여길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오늘 본문에는 제사제도 중에 특별히 속죄제사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속죄제사는 간단히 말해서 하나님 앞에 지은 죄를 사함 받고, 그 죄 때문에 생긴 하나님과의 잘못된 관계를 회복하는 제사를 말합니다.

  그러면 이 속죄제사의 의미를 보다 깊이 살펴보겠습니다.


하나님이 제정해 주셨습니다.

  앞에서 말씀드린 대로 다른 제사도 다 그렇지만 속죄제 역시 하나님께서 제정해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죄를 범해서 하나님과의 언약을 파기할 것을 미리 아셨습니다. 그래서 죄 사함을 받고 다시 이 언약을 회복할 길을 마련해 주신 것입니다. 

  오늘 본문 3절에 보면 “범죄하여”라고 했습니다. 이 말을 히브리어 원어로 하타아(af;j;)라는 동사를 썼습니다. 이 말의 본래 뜻은 “과녁을 빗나갔다”는 것입니다. 궁사가 활을 당겨서 과녁을 향해 쏘았습니다. 그러나 과녁에 맞추지 못하고 빗나가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러니까 여기서 “범죄하여”라는 말은 나름대로 한다고 하다가 실수한 것을 말합니다. 자기 딴에는 한다고 했는데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하지 못한 것을 말합니다.

  본문 2절을 보면 “그릇 범하였으되”라고 했고, 13절을 보면 “그릇 범하여”라고 했고, 22절을 보면 “부지중에 범하여”라고 했고, 그리고 27절을 보면 “부지중에 범하여”라고 했습니다. 이 말을 영어 성경 KJV에서는 이렇게 같은 말로 번역했습니다. “sins through ignorance” 그러니까 자기도 모르는 중에 하나님의 계명을 어긴 것을 말합니다. 이 말을 영어 성경 NIV에서는 이렇게 번역했습니다. “sins unintentionally...” 그러니까 무심코 하나님의 말씀을 어긴 것을 말합니다. 이렇게 볼 때 속죄제는 우리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무심코 죄를 범했을 때 사함을 받기 위해서 드리는 제사입니다.

  실제로 우리는 잘 믿으려는 마음은 있지만 실수로 하나님의 말씀을 어길 때가 있습니다. 그것이 죄라는 것을 생각하지 못한 채 죄를 저지를 때가 있습니다. 때로는 조심하지 않다가 부주의한 상태에서 하나님의 뜻을 거스를 때가 있습니다. 때로는 게을러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못할 때도 있습니다. 때로는 하고는 싶었는데 능력이 부족해서 하지 못할 때도 있습니다.

  바로 이런 모습이 성경이 말씀하는 우리의 연약함입니다. 속죄제는 이런 연약함 때문에 범한 죄를 사함받는 제사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잊어서는 안 될 것은 하나님께서 이런 우리의 연약함을 잘 알고 계시다는 사실입니다.

  마 26장을 보면 주님께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시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특별히 38절을 보면 주님께서 사랑하시는 제자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 세 제자에게 기도하실 동안 깨어서 기다리라 부탁하셨습니다. “내가 기도하는 동안 나를 위해서 기도하라” 기도부탁을 하실 만 한데 깨어 있으라고만 하셨습니다.

  기도하고 와 보시니 저들이 깨어있지 못하고 자고 있었습니다.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있어 기도하라” 말씀하셨습니다. 주님께서 보실 때 제자들이 시험에 빠져서 기도할 때 기도하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마음은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 그래서 다음번에 와 보실 때 저들이 그렇게 말씀하셨는데 또 자는 모습을 보시고는 가만히 내버려두시고 혼자 기도하셨습니다. 주님께서 제자들의 연약함을 아셨기 때문입니다.

  바로 이것입니다. 제자들 뿐 아니라 우리들도 연약합니다. 기도해야 할 때 기도할 힘이 부족합니다. 시험과 싸워 이겨야 할 때 싸우지 못하고 무너집니다. 해야 한다는 것 알면서도 하지 못합니다. 능력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연약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주님께서 우리의 이런 연약함을 잘 아신다는 것입니다.

  롬 8:26을 보면 이렇게 말씀합니다.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가 마땅히 빌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성령께서도 우리의 이런 연약함을 아시고 돕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이런 연약함 때문에 탄식하면서 기도하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바로 속죄제의 우선적인 의미가 이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가 연약해서 때로 쓰러지고 넘어져 죄를 범할 수 있다는 것을 잘 아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죄를 사하시기 위해서 속죄제라는 특별한 제도를 만드셔서 사함받게 하시고 용서하기기로 하셨다는 것입니다. 다시 하나님의 백성으로 일어서게 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속죄제를 하나님께 드리면서 이런 찬양을 부르게 됩니다.

      “나의 등 뒤에서 나를 도우시는 주
      평안히 길을 갈 땐 보이지 않아도
      지치고 곤하여 넘어질 때면
      다가와 손 내미시네
      일어나 걸어라 내가 새 힘을 주리니
      일어나 너 걸어라 내 너를 도우리”


철저히 사함을 받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속죄제를 제정해 주셨습니다. 이제 우리가 할 일은 속죄제를 통해서 우리의 죄를 철저하게 사함을 받아야 합니다.

  20절을 보면 “속죄한즉 사함을 얻으리라” 했고, 26절을 보면 “속죄한즉 사함을 그가 사함을 얻으리라” 했고, 그리고 35절에 “속죄한즉 그가 사함을 얻으리라” 했습니다. 여기서 속죄한다는 것은 우리 사람이 할 일이고, 사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하실 일입니다.

  그러니까 속죄제를 통해서 우리가 철저하게 해야 할 일은 속죄하는 일입니다. 속죄한다는 말을 본문에서 히브리어 카파르(rp'K;)라는 말을 썼습니다. 이 말은 “씻어내다”, “문질러 없애다”라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할 일은 하나님 앞에서 철저하게 우리 죄를 씻는 일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속죄제를 통해서 우리가 죄를 씻기 위해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야 할까요?


첫째, 죄를 깨달아야 합니다.

  14절을 보면 “그 범한 죄를 깨달으면”이라고 했고, 23절을 보면 “그 범한 죄에 깨우침을 받거든”이라고 했고, 또 28절을 보면 “그 범한 죄에 깨우침을 받거든”이라고 했습니다. 속죄제는  지은 죄의 깨달음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말해 줍니다.

  사실 속죄제는 우리가 부지불식간에 저지른 죄에 대한 속죄이기 때문에 자기가 무슨 죄를 저질렀는지 깨닫는 일이 중요합니다. ‘이것이 죄다’ 하고 알고 저지른 죄라면 죄의식이 깊이 작용할 것입니다. 그러나 죄 지으려다 지은 것이 아니고, 남에게 큰 피해 준 것도 아니고, 대부분 다른 사람들은 모르고 나만 알거나 또 어떤 경우는 나도 모르고 하나님만 아시는 죄일 경우 그것을 죄로 인정하는 것 자체가 힘들 때가 있습니다. 게다가 나만 그런 것도 아니고 다 그렇고 그런데... 라는 마음이 들면 자기가 지은 죄를 죄라고 깨닫기가 쉽지 않습니다.

  톨스토이의 글 가운데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한 부인이 목사님을 찾아와서 죄 지은 것이 별로 없고 잘못한 일이 있기는 있는 것 같은데 그렇게 누구나 범하는 것이고 또 심각하지 않은데 그래도 회개해야 하냐고 물었습니다. 그 때 목사님이 그 부인에게 밖으로 나가서 작은 돌멩이를 치마폭에 가득 주어오라고 했습니다. 이 부인이 치마폭 가득 작은 돌들을 잔뜩 주워왔습니다. 바닥에 늘어놓고 세어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는 됐으니 도로 있던 자리에 갔다가 놓으라고 했습니다.

  부인이 난처해 했습니다. 다시 주워 담는 일도 쉽지 않은 일이지만 있던 자리에 도로 가져다 놓은 일은 불가능합니다. 어떤 것이 어디에 있었는지 도무지 알 길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 때 그 목사님이 말씀했답니다. “이 작은 돌들이 바로 당신이 지은 죄들이요. 당신은 이렇게 많은 죄를 지었으면서도 하찮게 여겼기 때문에 제대로 회개하지 못했고, 그래서 죄가 이렇게 늘어만 간 것입니다. 그런데 이제 회개하려니 그 돌멩이가 어디 있었는지 기억하지 못하는 것처럼, 언제 내가 무슨 죄를 지었는지 알지 못해서 회개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죄에 대해서 너무 무감각해 졌기 때문에 내가 무슨 죄를 지었는지 모릅니다. 내가 죄를 저질러 놓고도 그것이 죄인지도 모릅니다. 마치 동상 걸린 발가락처럼 아무런 감각이 없습니다. 그래서 참회하자고 하면 막연히 “주님 나는 죄인입니다 용서하여 주시옵소서”라고 의례적으로 참회합니다. 주님께서 그래 무슨 죄를 용서해 줄까? 물으시면 답변하기가 곤란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죄에 민감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래서 내가 어떤 죄를 범하고 있는지 깊이 깨달아야 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 내 죄를 아시는데 나는 모르는 일이 없어야 하겠습니다.


둘째, 죄를 고백해야 합니다.

  레위기 4장 속죄제 전체를 살펴보면 그 대상이 네 종류로 구분되어있습니다. 제사장, 온 회중, 족장들, 그리고 평민들입니다. 저들 모두가 자기 직분에 따라 자기 상황에 따라 구체적이고 실제적인 죄를 범한다는 것이 전제한 것입니다. 그리고 네 종류의 대상에 따라 속죄제사법이 다릅니다. 이것은 죄에 따라 죄를 지은 사람들에 따라 속죄 방법이 다르다는 것을 말해 줍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지은 죄에 따라 철저하게 하나님께 그 죄를 고백해야 합니다. 애매하게 나는 죄인입니다. 내 모든 죄를 사해주시옵소서. 이런 식으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게다가 이스라엘 백성들은 한 번에 과거에 지은 죄 지금 지은 죄 또 앞으로 지을 죄 모두를 속죄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죄를 지을 때마다 그 구체적인 죄를 속죄하기 위해 속죄 제사를 드렸습니다.

  그렇습니다. 속죄는 마치 판자에 여러 못이 박혀있으면 하나씩 뽑아내야 하는 것처럼 내 심령 속에 박혀있는 죄들은 주님의 보혈로 하나씩 씻어내야 하는 것입니다. 구체적으로 내가 저지른 죄를 하나님께 고하며 속죄해야 하는 것입니다.

  요한1서 1:8-9을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만일 우리가 죄 없다 하면스스로 속이고 또 진리가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할 것이요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 것이요” 라고 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께서 우리의 죄를 철저하게 남김없이 고백하기를 바라십니다. 그래서 우리의 죄를 낱낱이 빠짐없이 사함 받기를 바라십니다.

  많은 사람들이 죄를 말하면 싫어합니다. 죄인이라는 말 듣기를 싫어합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우리는 죄인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된 지금도 죄를 저지르고 있습니다. 제사장도, 족장도, 평민도, 온 회중도 지속적으로 죄를 범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철저하게 순종하지 못하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못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다른 제사는 자원해서 드리는 제사이지만 이 속죄제만큼은 반드시 드려야 하는 의무제로 세우셨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죄사함 받는 일을 반드시 해야 합니다. 그래서 속죄제는 은혜임과 동시에 의무입니다. 보다 철저한 속죄의 역사가 우리 안에 일어나기를 바랍니다.

# 기도/

        우리의 죄가 생각날 때 마다 속죄하게 하옵소서
        온전한 언약의 관계를 회복하게 하옵소서
        은혜를 기억하고 감사하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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