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준비된 사람이 행복합니다 / 마 25:1-13

  • 잡초 잡초
  • 416
  • 0

첨부 1



  준비된 사람이 행복합니다. / 마 25:1-13   


  어느 대통령이 자기 이미지를 준비된 대통령이라는 말로 표현한 일이 있었습니다.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얼마나 신뢰가 가는지요? 준비된 사람이 있고 그렇지 못한 이가 있습니다.
이왕 할 게 있다면 일찍 준비하는 것이 좋습니다.

첫째, 준비하면 걱정할 것이 없습니다. 시험준비 잘된 학생은 걱정대신 기쁜 마음으로 시험 날짜를 기다립니다. 흔히 하는 말로 유비무환입니다. 승리도 준비된 사람에게 주어집니다.

둘째, 준비된 사람을 하나님께서는 사용하십니다. 모세가 120년을 살았는데 그의 일생을 3단계로 말할 수 있습니다. 40년은 애굽의 학문을 공부하였습니다. 그는 다된 줄로 알았습니다. 그것 갖고는 안됩니다. 다시 40년간 호렙에서 남의 양을 치면서 영적인 수련을 받습니다. 그리고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습니다. 그곳에서 신을 벗습니다. 겸손하게 되었습니다. 그 다음에야 40년 간 사용하셨습니다. 모세는 80년 간 준비 한 이후에 40년 간 하나님께 쓰임 받았습니다. 지금 고난 중에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사용하시기 위한 훈련기간으로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준비하십시오. 준비된 사람을 사용하시기 때문입니다.

셋째, 준비된 사람이 현명한 사람입니다. 미국 캘리포니아는 지진이 자주 일어나는 곳입니다. 그곳에서 평생을 살아온 어느 분이 이런 말을 하였습니다. 지진이 일어나면 창문이 부서지고 전기가 나가지만 신발이 있으면 깨어진 유리조각 위를 걸을 수 있고, 캄캄한 밤이라도 회중 전등만 있으면 어둠 속에서 길을 찾을 수 있습니다. 언제든지 잠들기 전에 침대 밑에는 신발과 회중 전등을 준비하고 잠을 자기 때문이라고 말했습니다. 준비하면 무슨 일을 만나도 해결된다는 말입니다.

누가복음 12:16-21절 『어리석은 부자 이야기』가 나옵니다. 부자입니다. 소출이 많았습니다. 그는 여러 해 잘 먹고 잘 살 수 있는 곡식을 준비하였습니다. 그는 계획을 세웁니다. 보다 큰 창고를 짓고 쌓아두고 잘 살겠다는 계획을 세웠습니다. 그런데 영원한 나라를 위해서는 준비하지 못했습니다. 이 시간 여러분들에게 묻고 싶은 말은 준비되었습니까? 세상 준비가 아닌 영적인 준비가 되었느냐고 묻고 싶습니다. 우리에게는 영원이 있습니다. 그 날이 있습니다.

하루살이와 메뚜기가 친구가 되어 하루 종일 잘 놀았습니다. 저녁이 되자 메뚜기가 하루살이에게 말합니다. 오늘은 그만 놀고 내일 놀자. 그러니까 하루살이는 내일이 뭐냐고 반문합니다. 메뚜기는 설명을 합니다. 캄캄한 밤이 지나면 아침에 밝은 태양이 떠오르면서 오늘과 같은 날이 오는데 그게 내일이라고 하루살이는 이 말을 이해 할 수가 없어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다음날 메뚜기는 개구리와 친구가 되어 열심히 놉니다. 개구리가 메뚜기를 보고 야 이제 그만 놀고 내년에 놀자. 날씨가 추우니까 말이야. 그럽니다. 메뚜기는 도저히 알 수 없습니다. 내년이 뭐야. 개구리가 설명을 합니다. 추위가 오고 눈보라가 치며 얼음이 얼었다가 다시 녹고 오늘과 같이 좋은 때가 오는데 내년이라고 말했으나 메뚜기는 이해하지 못하고 죽고 말았습니다. 어리석은 인간들은 오늘만 알고 삽니다. 우리에게는 영원한 나라가 있습니다. 이 세상에 살면서 미래를 위하여 보험에 가입하고 노후대책은 했는데 영원대책이 없다면 현명하지 못합니다.

우리가 아무리 불확실한 세상에 살지만 확실한 게 있습니다. 사람은 죽는다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라도 즉 지위가 높다든지 많은 것을 가진 사람이라도 한 번 죽는다는 것입니다. 또 하나 기억할 것이 있습니다. 죽은 이후에는 심판이 있습니다. 사람이 죽는 순간을 개인적인 종말이라고 말합니다. 누구라도 종말을 맞게 됩니다. 개인종말입니다. 그리고 종말이 있습니다. 우주적인 종말입니다. 우리 주님이 재림하시는 날입니다. 그리고 반드시 기억할 것이 있습니다. 누구라도 주님의 심판대 앞에 서야한다는 것입니다.

관광지에서 마차를 몰던 사람이 늙어 죽게 되었는데 문병 온 사람들이 보니까, 그가 오른발을 이불위로 내놓고 계속 오그렸다 폈다 하더랍니다. 그래서 왜 그러냐 물으니까 내가 죽으면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야하는데 두려워서 그럽니다. 잘못 산 인생을 회개하지 못했거든요. 죽음을 멈추려고 배가 탄 죽음의 마차의 제동기를 아무리 밟아도 서질 않고 계속 심판대 앞으로 가네 그려 하더랍니다. 우리 앞에 죽음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우리는 심판대 앞에 서야 할 때가 가까이 오고 있다는 말입니다.

우리 주님이 오실 때가 가까워지고 있습니다. 준비는 되었습니까? 준비되지 못한 사람은 슬피 울면서 후회하게 된다고 하였습니다.
재림에 대하여 기억할 것이 있습니다.

하나는 우리 주님은 반드시 오신다는 것입니다. 누가 뭐라 해도 분명히 다시 오십니다.

둘, 다시 오시는 주님은 심판 주로 오십니다. 어린아이로 오시는 초림의 주님이 아닙니다. 잘못 믿은 사람은 바위야 나를 가리워달라 산아 나를 숨겨달라 할 것이요, 바로 믿은 사람은 주 예수여 어서 오시옵소서 하면서 맞이할 것입니다.

셋, 주님이 다시 오시는 주님은 모든 사람이 보는 가운데 오신다고 하였습니다. 찌른 자도 볼 것이요, 판자도 볼 것이라 하였습니다.

넷, 주님 오시는 날은 아무도 모른다고 하였습니다. 안다고 하는 것은 문제입니다.

그러나 준비만 하면 아무런 염려가 없습니다. 우리는 언제 주님이 오시느냐에 대하여 관심을 가질 것이 아니라 그분을 맞이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 하는데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그러면 무엇을 준비하여야 하나요? 그 날을 위한 준비는,


첫째, 순결을 지키는 것입니다.

준비는 하루아침에 되는 게 아닙니다. 날마다 거룩하게 살아가야 합니다. 예수님을 신랑이라고 표현할 때에 그리스도인들은 신부입니다. 본문에서 재림에 대한 비유를 말씀하실 때에 열 처녀 비유로 하셨습니다. 신부가 신랑을 맞이하여야 하는데 그 사람들이 처녀라 하였습니다. 여인들이라고 하여도 될 터인데 왜 처녀라고 하였습니까? 처녀라함은 순결하다는 말입니다. 처녀라고 하면 남자를 모르는 신분입니다. 간음한 일이 없습니다. 세상에서는 처녀가 아니더라도 결혼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을 만나려면 신분은 처녀라야 합니다. 야고보서 4장 4절에 “간음하는 여자들이여 세상과 벗된 것이 하나님의 원수임을 알지 못 하느뇨” 라고 하였습니다. 세상과 더불어 사는 게 간음이라 하였습니다. 주님 신랑을 맞이하려면 신분은 반드시 처녀라야 한다는 말입니다. 죄와 더불어 살지 아니하는 게 처녀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처녀입니까? 세상과 마음껏 짝하고 살았습니다. 세상을 변화시킨다고 말도 하고 이렇게 해서는 안 된다고 그럴듯한 이론을 제시하지만 자신이 그렇게 깨끗하였던가요? 위선입니다.

처녀라야 신랑을 맞이합니다. 이는 깨끗하다는 말입니다. 우리 주님은 마음이 청결한 자가 복이 있나니 저희는 하나님의 나라를 볼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어린아이와 같지 아니하면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광고학에서 광고의 효과에는 ‘3B’가 필수요건이라고 합니다. 첫 번 B는 ‘Beautiful’, 둘째 B는 ‘Best’, 그리고 ‘Baby’ 즉 아름다워야 하고, 동물들을 동원해야 하고 그리고 어린아이를 등장시키면 아주 효과적이라고 합니다. 어린아이는 순진함과 깨끗함을 느끼게 해줍니다. 마음이 깨끗하고 순진해야 합니다. 깨끗해야 합니다. 자신이 영적으로 처녀가 되어야 합니다. 어떻게 처녀가 됩니까? 노력하고 힘쓴다고 처녀 됩니까? 아닙니다. 방법이 있습니다. 복음입니다. 예수 믿고 회개하면 처녀가 됩니다.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회개하고 합당한 열매를 맺으라(마 3:2~8) 회개는 마음의 변화요, 열매는 생활이 달라지는 것을 말합니다. 회개하면 주님은 기억하지 아니하신다고 하였습니다. 홀로 사는 여인이 아들 하나를 데리고 삽니다. 아들이 어머니 말을 듣지 않고 형편없이 살아갑니다. 어머니는 권고도 하고 책망도 했습니다. 생각하다가 아들이 잘못된 일을 할 때마다 자기 집 기둥에다가 못을 하나씩 박았습니다. 아들은 이것을 재미있어 하면서 더 나쁜 일을 합니다.

어느 날 어머니가 중병으로 누워 있습니다. 기둥에 수없이 박인 못을 보면서 어머니를 봅니다 그제야 아들이 깨닫고 회개합니다. 용서를 빕니다. 어머니는 눈물로 아들을 얼싸안고 사랑하는 내 아들아 이제 어미는 죽어도 한이 없다. 너는 이제부터 저 못을 하나씩 빼어야 한다. 네가 착한 일 하나를 하면 못 하나를 빼거라. 아들은 열심히 선을 행합니다. 결국 못은 다 뺐습니다. 어머니는 세상을 떠나고 기둥에 못 자국만 남아 있습니다. 그때부터 못 자국을 볼 때마다 아들은 범죄하지 않고 착하게 살았답니다. 우리 주님이 십자가에서 피 흘려주신 그 십자가를 생각하며 회개하고 깨끗하게 살다 보면 주께서 언제 오시든지 맞이할 수 있게 된 답니다.


둘째, 믿음을 갖고 살아야 합니다.

열 처녀는 등을 갖고 있었다고 하였습니다. 등이란 믿음을 말합니다. 시험준비 한다는 학생을 봅니다. 늘 공부하여 실력을 갖고 있으면 시험은 문제되지 않습니다. 평소 실력 없이 이것이 시험에 나올까 저것이 시험에 나올까 하면서 이것저것 공부해 봅니다. 그러다가 다행스럽게 자기가 공부한 게 나와 괜찮게 시험을 치루면 다행이지만 다른 문제가 나오면 낙방입니다. 평소에 실력이 있어야 합니다. 이와 같이 영적으로는 평소에 믿음을 갖고 살아야 합니다. 하박국서를 보면 왜 악인이 잘됩니까? 그리고 왜 의인이 어려운 일을 당하고 안됩니까? 라는 질문에 대한 답이 있습니다. 모든 게 순간이다. 그리고 “의인은 오직 믿음으로 살리라”(합 2:4)고 답하십니다. 우리는 세상이 악하다. 사람들이 잘못 되었다고 정죄 할 필요도 없습니다. 낙심할 이유도 없습니다. 다만 믿음으로 살면 됩니다. 세상 사람들은 풍요로운 물질로 살려고 합니다. 향락을 추구하면서 삽니다. 의인은 우리 믿음의 사람들은 오직 믿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게 있어야 합니다. 마지막까지 포기할 수 없는 무슨 보화가 있어야 합니다. 어떤 사람은 배를 타고 항해하는 도중에 파선되었는데 자기가 가지고 있는 금궤를 몸에 묶어 가지고 바다를 건너려고 하는데 몸이 금궤로 인하여 무거워 살 수 있었음에도 죽었다고 합니다. 물질 주도형의 사람들은 그것이 가장 가치 있는 일이라고 그것만 붙잡고 살아가다가 마지막이 좋지 못하는 결과를 가져오는 이들이 있습니다. 우리는 믿음을 보배로 알고 간직하여야 합니다.

욥기를 보면 의인 욥이 재난을 당합니다. 먼저 수많은 재산을 잃었습니다. 스바 사람들이 갈대아 사람들에 의하여 다 빼앗겼습니다. 2) 아들 딸 십 남매가 거친 태풍으로 인하여 집이 무너지고 다 죽었습니다. 3) 자기 몸에 못된 병으로 고생하게 되었습니다. 4) 그의 아내가 욥을 저주하고 집을 나갑니다. 5) 친구들이 와서 욥을 정죄합니다. 배신당하였습니다. 6) 마음에서 쫓겨났습니다. 7) 성전에 들어갈 수도 없는 처지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철저하게 망하였습니다. 다 잃었습니다. 그럼에도 그는 믿음은 잃지 아니하였습니다. 무슨 믿음입니까? 욥기 1:20-22절을 보면 1) 하나님을 경배하였습니다. 아무리 어려워도 하나님을 경배하는 게 믿음입니다. 2) 하나님의 주권을 믿었습니다. “주신 자도 하나님, 취하신 자도 하나님”이라는 고백입니다. 3) 감사와 찬송의 믿음입니다. 진정한 믿음은 감사할 수 없음에도 감사하는 것입니다. 4) 범죄하지 않는 믿음입니다. 5) 어리석게 원망하지 않는 믿음입니다. 다 잃었어도 이런 믿음으로 욥은 의인이라고 하는 인정을 받고 갑절이나 더 라는 축복을 받았습니다. 왜 믿음을 버립니까? 등을 버리면 주님 만나지 못합니다. 왜 그것이 그렇게 중요합니까? 믿음만은 굳게 붙잡고 살아야 합니다. “오직 믿음으로 살리라” 믿음을 붙잡고 사는 게 준비입니다.


셋째, 기름이 있어야 합니다.

기름이란 무엇입니까? 한결같이 성령이라고 말합니다. 성령을 상징적으로 불같은 성령이라고 표현합니다. 불은 뜨겁고 빛이라는 뜻입니다. 심령이 뜨거워집니다. 사랑으로 뜨거워지고 열정적인 사람이 됩니다.
성령을 바람이라고 말합니다. 바람은 능력입니다. 바람은 분위기를 새롭게 만듭니다. 바람이 일어난다는 말을 합니다.
물 같은 성령이라고도 합니다. 물은 만족하게 합니다. 시원합니다. 가증이 없어집니다.

성령을 기름이라고 하였습니다. 기름은 아름답게 합니다. 얼굴이 좋은 사람을 그 사람 기름이 주르르 흐르더라고 말한다면 윤택함을 의미합니다. 기름은 화장품입니다. 룻기 3:3절을 보면 룻이 보아스를 만나는데 온몸에 기름을 발랐다고 하였습니다. 성령 충만하면 아름다워집니다. 스데반 집사의 얼굴이 천사와 같았다고 하였는데 그때가 성령 충만하였을 때였습니다. 성령 충만하면 영적으로 미인이 됩니다.

기름은 치유하는 약입니다. 약 5:14절에 “병든 자가 있으면 기도하여야 하는데 장로들은 기름을 바르면 기도하라” 하였습니다. 기름이 무엇입니까? 참기름 아닙니다. 어떤 이는 약을 사용하면서 기도하라고 한다는 것입니다.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실력이 모자라 약을 사용하면서 기도하라는 말씀이 아닙니다. 성령으로 기도하라는 말입니다. 말세 성도들은 성령 충만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이것이 준비하는 것입니다. 기름이 떨어진 다섯 처녀를 미련하다고 하였습니다. 말세에 성령 충만하지 아니하면 미련한 것입니다. 기름은 힘입니다. 에너지입니다. 성령은 능력입니다. 영적전쟁에서 이길 수 있는 능력입니다. 사명을 잘 감당할 수 있는 능력입니다. 환란과 핍박을 이기게 하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잘 수행할 수 있는 힘이 바로 성령의 능력입니다. 성령의 능력, 무슨 능력입니까? 병 고치는 능력 맞습니다. 그보다 더 큰 능력이 있습니다. 사랑할 수 없는 사람을 사랑하게 되고 용서할 수 없는 사람을 용서할 수 있는 능력입니다. 사도행전을 보세요. 베드로, 바울 같은 이 모두 능력을 행하였다고 증언합니다. 병든 자를 고쳤습니다. 그러나 스데반 같은 이는 그런 기적을 행하였다는 기록이 없습니다. 다만 얼굴이 천사와 같았더라 그랬고, 그를 죽이는 많은 무리를 향하여 아버지여 저들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라고 기도한 내용이 나옵니다. 병든 자를 고치거나 어떤 이적을 행하지 않았어도 용서의 기도를 통하여 사울을 바울 되게 하였습니다. 용서할 수 있고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이 성령의 기름입니다. “오직 성령으로 되느니라.”  힘으로도 안되고 능으로도 안되지만 성령으로 된다고 하였습니다. 성령 충만한 기름이 준비되어 있어야 오시는 주님을 신랑으로 맞이할 수 있습니다. 성령의 기름이 있어야 불을 켤 수 있습니다. 믿음 위에 성령의 기름이 있으면 불을 켤 수 있습니다. 우리 심령에 성령의 불이 붙어야 합니다. 불행스럽게도 불이 이미 꺼진 이들도 있습니다. 기름이 있으면 다시 불을 켤 수 있습니다. 이성의 불을 켜야 합니다. 사람에게는 풍부한 감정이 있어야 합니다. 좋습니다. 예배시간에도 아멘, 할렐루야가 풍성하여야 합니다. 감정에 호소하면서 눈물 흘리는 것 좋습니다. 그러나 이성의 불이 꺼지면 문제가 생깁니다. 생각 없이 말하고 기분 나는 대로 행동합니다. 다른 이에게 상처를 줍니다. 문제가 생깁니다. 사람이 동물과 다른 것은 이성이 있다는 것입니다. 깊이 생각하면서 행동할 수 있기에 연구하고 발전합니다. 깨닫게 되고 회개할 수 있습니다.

이성으로 깊이 생각하면서 살아가야 합니다. 이것이 주님이 기뻐하시는 일인가? 내가 하는 일이 많은 사람에게 도움이 되는 건가? 생각할 수 있다면 이성의 불이 켜 있는 것입니다.
양심의 불을 켜야 합니다. 양심이 다 같지 아니합니다. 화인 맞은 양심도 있습니다. 비극입니다. 주일을 지키지 않고도 전혀 양심에 가책 받지 아니 합니다. 불 꺼진 사람입니다.
영적으로 불을 켜야 합니다. 불을 켜려 하면 기름이 있어야 합니다. 말세에 가장 현명한 그리스도인은 성령 기름을 준비한 사람입니다. 성령 충만을 위해 사모하세요. 강청 기도를 해야 합니다.


넷째, 준비는 깨어 있어야 합니다.

깨어 있다는 말은 잠자는 것과는 반대 용어입니다. 기도하는 것을 말합니다. 영적으로 각성하고 경각심을 갖는 것입니다. 세상에 수 없는 유혹과 시험이 옵니다. 이때 깊이 생각을 합니다. 지금이 말세이다. 정신을 차리고 자기 자신을 점검해 봅니다. 자기 자신의 잘못된 일을 생각하고 회개합니다. 믿음의 자리에 돌아옵니다. 이것이 깨어 있는 상태입니다. 세상 사람을 본받는 게 아니라 자기 자신을 돌이켜 조심합니다.

준비된 그리스도인이 됩시다. 이것이 지혜입니다. 준비 된 사람이 승리합니다. 깨끗하게 영적 순결을 잃지 않고 살아야 합니다. 믿음을 갖고 살아야 합니다. 무엇보다 성령으로 충만하여야 합니다. 오늘 주님이 오신다 해도 기쁨으로 주님을 맞이할 수 있는 복된 그리스도인들이 되어지기를 축원합니다.
~ 아 멘 ~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