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가정들아 / 시 101:6-8, 갈 6:6-10

  • 잡초 잡초
  • 313
  • 0

첨부 1


가정들아
(시 101:6-8, 갈 6:6-10 )
 
어느 일본의 건축가가 “한국의 집에는 중심이 없다”고 하였습니다. 건축에는 중심이 있지만 한국 집의 건축 양식에는 중심이 없다는 것입니다. 요즘에는 집은 있지만 가정이 없는 사람이 많습니다. 이것이 우리 사회의 문제입니다. 영어에서 가장 엄숙한 말이 세 말이 있다고 합니다. 어머니(Mother), 가정(Home), 하늘(Heaven)입니다. 하나님이 인간에게 준 가장 좋은 선물이기 때문에 거룩한 것입니다. 세상에서 제일 좋은 것은 부모와 가정입니다. 그리고 이 후에 하늘나라입니다. 이 세상에서 좋은 부모와 좋은 가정은 하늘나라의 모형입니다.

최근 사이버시대에는 가족관계가 많이 흔들리고 있는 것을 봅니다. 10대 청소년의 46.6%가 컴퓨터 문제로 부모와 갈등을 빚고 있다고 합니다. 10명중 3명 꼴로 부모와 “대화가 줄고 친밀감이 감소한다”고 합니다. 많은 대학생들은 가정보다 나의 행복이 우선이라고 합니다. 20년 전만 해도 국가의 안전이 2위였는데 지금은 17위로 내려앉았습니다. 대신 자신의 즐거움은 16위에서 10위로 뛰어올랐습니다. 여기에 가정의 위기가 있습니다.

고린도후서 4:7에는 “우리가 이 질그릇 속에 보화를 가졌나니”라고 합니다. 가정은 누구나 다 있는 것입니다. 부모 없이 태어난 사람 있을까요? 누구나 다 가지고 있기에 너무 소홀한 것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질그릇 같은 집이지만 모든 가정은 보화입니다. 남편과 아내, 아이들이 하나님이 주신 보화입니다. 이 보화들을 믿음으로 발견해야 합니다. 보화를 보화로 알아야 가치가 있습니다. 아무리 비싼 보화지만 보화로 알지 못하면 가치가 없습니다. 옛날 아프리카에서는 다이아몬드로 구슬치기를 했다고 하지 않습니까? 구슬치기를 할 정도면 다이아몬드는 보물이 아닙니다. 가정이 보화인 것을 발견해야 합니다. 갈라디아서 6:10에는 “그러므로 우리는 기회 있는 대로 모든 이에게 착한 일을 하되 더욱 믿음의 가정들에게 할지니라”고 합니다. 믿음의 가정은 복을 받습니다. 믿음의 가정은 덤으로 받는 축복이 있습니다. 믿음의 가정은 착한 일을 많이 얻습니다. 믿음의 가정은 어떤 가정입니까? 믿음의 가정의 조건을 살펴보기를 바랍니다.


첫째, 예수 그리스도가 가정의 기초인 가정입니다.

가정은 바퀴 달린 모빌 하우스가 아닙니다. 아무 데나 끌고 가서 세워놓으면 된다고 생각하면 안됩니다. 가정은 좋은 자리가 있어야 하고, 가정은 좋은 기초 위에 세워져야 합니다. 창세기 2:18에는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사람이 독처하는 것이 좋지 못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고 하십니다. 가정은 하나님의 명령으로 세워집니다. 가정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입니다. 우연이 아니라 필연입니다. “가라사대”란 말은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된 것을 의미합니다.

가정은 하나님의 말씀이 기초가 되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신 분입니다. 집 모퉁이의 머릿돌을 놓기를 원한다면 예수님이 최고입니다. 제일 좋고 든든한 머릿돌입니다. 집의 기초로 말하면 예수 그리스도가 최고의 기초입니다. 집이 높아질수록 기초가 더 든든해야 합니다. 집이 높으면 기초는 더 깊이 내려갑니다. 현대인의 가정들은 점점 높이 올라갑니다. 가정의 기준이 높고, 학식이 높고, 생활수준이 높아집니다. 더 높은 가정을 만들기 위해서는 기초를 더 깊이 파야합니다. 기초가 이전보다 더 든든해야 합니다. 좋은 기초가 있습니다.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아마 여러분은 “예수님은 이 집의 머리시오, 식사 때마다 보이지 않는 손님이시오, 모든 대화에 말없이 듣는 이시라”(Christ is the head of this house, Unseen guest to every meal, Silent listener to every conversation)는 글귀를 보셨을 것입니다. 아마 이 글귀는 오래 전 저의 선친께서 영국에서 처음 이 글을 가져다가 번역하여 한국에 널리 알려진 것 같습니다. 정말 좋은 글입니다.

예수님은 우리 가정의 기초이어야 합니다. 우리 가정의 머리여야 합니다. 우리 가정의 주인이셔야 합니다. 이래야 좋은 가정입니다. 여러분의 가정은 정말 예수님이 주인입니까? 맥스 루케이도는 말했습니다. “진리를 잘 지킨다면 안전한 항해를 보장받는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진리를 무시하면 현실의 울퉁불퉁한 암초에 부딪히고 말 것입니다. 지옥을 두려워하는 것 이상으로 하나님을 사랑하십시오. 중대한 결정은 묘지에서 내리십시오. 보는 사람이 없더라도 누가 지켜보는 것처럼 사십시오. 먼저 가정에서 성공하십시오. 내일 쓸 돈을 오늘 쓰지 마십시오. 초조해하는 것의 두 배만큼 기도하십시오” 가정에서 성공자가 진짜 성공자입니다. 가정에서의 성공자가 안전한 항해자입니다.

세상에서 성공하고 가정에서 실패하여 세상을 다 잃는 사람도 있습니다. 세상에서 다 잃고 가정을 얻어 성공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성경의 고넬료는 가이사랴의 이달리야 대라 하는 군대의 백부장이었습니다. 이 백부장의 가정을 보세요. “그가 경건하여 온 집으로 더불어 하나님을 경외하며 백성을 많이 구제하고, 하나님께 항상 기도하더니”라고 성경은 그의 가정을 소개합니다. 어떻게 이 가정이 이방인 가운데 제일 먼저 베드로를 통해 구원을 얻을 수 있었겠습니까? 그 가정은 경건하였습니다. 그 가정은 열심히 구제하였습니다. 그 가정은 기도하는 가정이었습니다. 이런 예수님 중심의 신앙적 가정이 이방인 가운데 제일 먼저 구원받게 하는 가정이 되었습니다. 바울이 유럽으로 가서 제일 먼저 예수를 믿은 루디아의 가정을 보세요. 루디아는 바울을 통하여 예수님을 믿고 저와 온 가족이 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습니다. 빌립보 감옥의 간수의 가정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온 가족이 예수님을 믿고 같은 예수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습니다. 예수님이 온 가족의 기초가 되었습니다. 이런 가정이 복 받은 가정입니다. 이런 가정이 좋은 가정입니다.

누가복음 19장에 나오는 삭개오의 가정을 보세요. 삭개오는 하나님이 싫어하는 사람입니다. 유대인들도 싫어하는 세리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여리고로 지나가실 때에 예수님을 보고싶어 하는 그의 마음 때문에 예수님이 그의 집에 들어가십니다. 예수님이 유하시는 가정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이 기초인 가정은 예수님이 유하십니다. 뽕나무 위에 올라갔던 삭개오는 예수님께서 자신의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고 하신 말씀을 듣고 급히 내려와 즐거워하며 영접하였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모셔들였습니다. 즐거워하며 모셨습니다. 영접하여 잔치를 벌였습니다. 이런 마음이 그 가정에 예수님을 모시는 마음이었습니다. 이런 가정에 예수님은 주인이 되시고 기초가 되십니다. 우리의 가정에 예수님을 즐겁게 모십시다. 그리고 우리 가정의 주인이 되게 아랫목을 내어 드립시다.


둘째, 삶의 원칙이 성경의 가르침인 가정입니다.

가정에 대한 명령을 들어보십시오. 창세기 1:28에는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고 하십니다. “그들에게”란 아담과 하와에게입니다. 하나님이 만드신 처음 부부이며 처음 가정입니다. 이 말씀은 가정에 주신 가르침이며 특권입니다. 처음 가정에 주신 가르침은 모든 피조물의 세계를 다스리라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의 가정은 하나님의 가정에 대한 태초의 목적을 이루는 가정입니다.

성경은 가정에 대한 가르침을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가정에 가르침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말씀에 기초한 가정되라고 하신 말씀입니다. 갈라디아서 6:6에는 “가르침을 받는 자는 말씀을 가르치는 자와 모든 좋은 것을 함께 하라”고 합니다. 교사와 학생이 모든 좋은 것을 함께 하라는 말입니다. 남편과 아내, 부모와 자녀, 형제와 자매, 서로가 교사가 되어야 합니다. 서로가 좋은 것을 가르치는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가정에서 가르쳐야 할 가장 좋은 것은 “감사”입니다. 어릴 때부터 입에 버릇이 되도록 감사를 가르치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존 고트만은 행복한 결혼생활을 누리는 사람들은 서로 간의 갈등을 해결해나가는 동안에도 감사의 말과 같은 긍정적인 표현들을 부정적인 말보다 5배나 더 많이 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고 하였습니다. 결혼 생활이 파국에 달해 이혼에 이른 부부들은 긍정적인 말보다는 부정적인 말을 많이 하며 살았던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감사를 많이 하는 가정은 건강한 가정입니다. 가족을 보며 감사하세요. 이 남자가 내 남편인 것이 감사하지요. 이 여자가 내 아내인 것이 감사하지요. 우리 아이들이 나를 통해 이 땅에 태어나준 것 감사하지요. 나를 이 땅에 태어나게 하신 부모님이 감사하지요. 가족들을 볼 때마다 감사가 넘칩니다.

성경에서 나쁜 가정의 예를 들 때마다 등장하는 엘리 제사장의 가정을 보세요. 성경은 “엘리의 아들들은 불량자라”고 합니다. 이 말은 히브리말로 ‘베네 벨리야알’이라고 합니다. 이 말은 ‘벨리알의 아들들’이란 말입니다. 벨리알이 무엇이죠? 마귀입니다. 다시 말하면 마귀의 자식들이란 말입니다. 호세아에게 주신 하나님의 말씀을 보세요.

하나님은 가정 제일주의를 선포하십니다. 가정을 회복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일은 없습니다. 한국인들은 가정보다 일을 더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흔히 밖에서는 자상한 남자지만 집에서는 난폭한 남편인 경우가 많습니다. 밖에서 잘 하면 뭘 합니까? 남편에게 잘 해야 합니다. 밖에 나갈 때 화장 짙게 하면 뭘 합니까? 남편에게 잘 보이고 밖에 나갈 때는 대강 하세요. 밖에서 잘 보여봐도 후에 돌이켜 보면 아무 것도 아닙니다. 호세아는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서 가정을 지키기 위해서 노예시장에서 아내를 다시 사옵니다. 가정의 긍지를 지키기 위하여 자신의 긍지를 버립니다. 창녀노릇 하는 아내를 데리고 오려면 자신의 자존심을 버려야 합니다. 자신의 긍지와 가정의 긍지와 바꾸면 가정은 삽니다. 가정을 살리려면 자신의 긍지를 버릴 줄 알아야 합니다.

지난달 통계에 따르면 위기의 부부가 점점 늘어난다고 합니다. 가정들이 점점 문제가 많아집니다. 가정의 모든 문제는 성경이 그 해답입니다. 성경은 가정의 모든 문제를 풀어줍니다. 가정은 성경적으로 세워져야 합니다. 가정이 성경적으로 서면 나라가 삽니다.

제임스 톰슨 박사는 가정에서 마땅히 가르쳐야 할 다섯 가지 교훈을 지적했습니다. 이 다섯 가지 교훈을 가정에서 배운 자녀들이 잘못 서는 것을 자신의 상담경험에서 한번도 본적이 없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가 지적한 교훈은
첫째, 하나님에 대한 경건,
둘째, 이웃에 대한 사랑,
셋째, 권위에 대한 존경,
넷째, 말씀에 대한 순종,
다섯째, 자기에 대한 절제입니다.

가정에서 가르침 가운데 가장 중요한 가르침은 예배입니다. 온 가족이 함께 세례 받았던 루디아나 간수의 가정처럼 온 가족이 예배하는 것입니다. 온 가족이 함께 예배하되 우리 교회에서 함께 예배하는 것입니다. 왜 우리 교회에서 함께 예배해야 하는지 아십니까? 다른 교회에 가서 예수를 더 잘 믿을 확률이 상당히 낮기 때문입니다. 영국의 명제상이었던 글레드스톤은 말했습니다. “나에게는 예배석이 대영제국의 수상석 보다 더 존귀하다”. 예배의 자리가 어떤 자리보다 더 존귀함을 자녀에게, 온 가족에게 가르쳐야 합니다. 예배 자리가 존귀한 가정이 좋은 가정입니다.


셋째, 인간관계의 기초가 성경적 사랑인 가정입니다.

헬라어에는 사랑이라는 단어가 여러 가지입니다. 헬라어의 사랑이란 대표적 단어는 네 가지입니다. 아가페, 필로스, 에로스 그리고 스톨게입니다. 아가페는 하나님의 사랑이고, 필로스는 형제간의 사랑입니다. 에로스는 육체적인 사랑이고, 스톨게는 부모와 자녀의 사랑입니다. 그런데 가정에는 이 네 가지 사랑이 공존하고 있습니다. 이 네 가지 사랑이 골고루 잘 조화된 가정이 좋은 가정입니다.

첫째, 부부간의 사랑을 보세요.

부부간의 사랑은 아가페와 에로스가 적절하게 조화 되어 있어야 합니다. 성경이 말하는 “부모를 떠나라”, “둘이 연합하라”, 아내에게 “복종하라”, 남편에게 “사랑하라”는 명령이 잘 이루어져야 좋은 사랑입니다. “떠나라”는 말은 지리적, 경제적, 사회적 독립을 의미합니다. “연합하라”는 말은 인격적 동질화를 의미하며 정신적 헌신을 의미합니다. 부부는 서로 돕는 배필의 역할을 해야 합니다. 남편이 아내의 “머리”라는데 혼돈하지 마세요. 머리는 지배가 아니라 책임입니다. 최근에 “남존여비”란 말은 남자 존재하려면 여자 비위 잘 맞춰야 한다고 해석합디다. 이것도 잘못되었어요. 여성의 지위가 너무 낮은데서 너무 높아져도 안됩니다. 남녀의 지위가 적절하게 균형을 이루어야 합니다.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가정은 가장 이상적 가정의 모습입니다. 서로 협력하는 가정이었습니다. 함께 장막을 깁고, 함께 교회를 섬기고, 함께 가정을 이루는 조화를 이루는 부부였습니다.

둘째, 부모와 자식간의 사랑인 ‘스톨게’를 보세요.

성경은 자녀에게 부모를 순종하라고 합니다. 부모에게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라 혹은 격노케 하지 말라고 합니다. 순종과 노엽게 하지 않는 일은 사랑에 기초합니다. 사랑이 없으면 순종이 안됩니다. 사랑이 없으면 노엽게 합니다. 사랑은 모든 일을 가능케 합니다. 워즈워드는 “어린이는 어른의 스승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어린이를 사랑하면 배울게 있습니다. 어린이에게서 어른은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습니다. 잭 하일스는 “그리스도인의 삶의 원리”라는 책에서 가정에서 일어나는 99%의 문제는 부모가 자녀들의 친구가 되어주지 않기 때문에 일어난다고 하였습니다. 친구의 사랑이 가장 영원한 사랑입니다. 우정이야말로 가장 지속적인 사랑입니다.

셋째, 형제간의 사랑인 필로스를 보세요.

형제간에는 특별한 사랑이 있습니다. 누가 뭐래도 지울 수 없는 사랑입니다. 가인과 아벨은 형제였지만 가인이 아벨을 죽이므로 형제의 사랑이 무너졌습니다. 에서와 야곱의 사랑도 장자권과 축복 때문에 무너졌습니다. 야곱의 아들들도 형제들이지만 서로 미워하고 갈등이 많았습니다. 죄로 말미암아 깨진 형제간의 사랑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에서와 야곱을 보면 에서가 동생을 죽이려고 할만큼 미워했지만 역시 형제는 어쩔 수 없어요. 두 사람이 서로 만나니 부둥켜안고 웁니다. 금방 화해가 됩니다. 이것이 형제의 사랑입니다. 필라델피아란 ‘필로스’와 형제란 단어인 ‘아델포스’가 합쳐져서 만들어진 말입니다. 이 말은 형제의 사랑이란 뜻입니다.

넷째, 하나님의 사랑인 아가페를 보세요.

가장 헌신적 사랑입니다. 가장 중심적 사랑입니다. 이것이 없으면 다른 모든 사랑은 없습니다. 다른 모든 사랑은 아가페 때문에 가능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가정의 모든 사랑은 하나님의 사랑에 기초한 것입니다.


결론

1852년 4월 10일 미국의 한 소박한 시민이 알제리에서 사망했습니다. 31년이 지난 후 미국 정부는 그의 유해를 가져오도록 했습니다. 뉴욕 항에 유해를 실은 군함이 도착할 때 사람들은 그의 유해를 보기 위하여 인산인해를 이루었습니다. 환영예포는 뉴욕시가 진동하도록 울려 퍼졌습니다. 그 주인공은 전공을 세운 위대한 장군도 아니요, 노벨상을 받은 인물도 아닙니다. 세계적인 정치가나 예술가나 발명가도 아닙니다. 그는 단지 온 세상 사람이 즐겨 부르는 노래를 지은 사람일뿐입니다. 그는 ‘Home, Sweet Home’이라는 유명한 노래를 지은 존 하워드 패인입니다. “즐거운 곳에서는 날 오라 하여도 내 쉴 곳은 작은 집 내 집뿐이리 내 나라 내 기쁨 길이 쉴 곳도 꽃피고 새 우는 내 집뿐이리” 단란주점에서 단란을 찾지 가정에서 단란을 찾으세요. 우리가 진정 쉴 곳은 오직 가정뿐입니다. 우리 나라는 퇴근이 너무 늦어요. 일찍 퇴근하여 가정에서 쉼을 얻도록 합시다. 우리 가정들은 너무나 대화가 없어요. 대화가 꽃피는 곳이 가정이 되게 합시다. 가정을 세운 사람이 칭찬을 듣습니다. 가정을 사랑하는 사람이 사랑 받습니다. 좋은 가정을 세우고, 모든 가정이 이 땅에서 천국을 이루는 가정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