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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사랑해야지 / 요일 4: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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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해야지
요한일서 4:11-12

지난 며칠전 TV에서 어떤 프로그램인지 자세히는 모릅니다만.
백혈병으로 투병생활하는 3학년 아이가 있었습니다. 그날 병원교회에 엄마와 막 들어서다가
눈물을 '왁' 흘립니다. 교회 친구들을 몇 달동안 보지 못해 친구들을 만나는 것이 소원이었
는데 교회강단 앞에서 그 친구를 위해 축복송을 부르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저도 눈시울이 뜨거웠습니다.
우리는 사랑에 관심이 많습니다. 사람들은 사랑받기를 원합니다. 내가 누군가를 사랑할 사람
이 있고, 또 누군가의 사랑을 받고 있다면 나는 행복한 사람입니다.
키가 작은 삭개오는 돈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결코 행복하지 못했습니다. 그는 뽕나무
에 올라가 예수를 만나기를 원했습니다. 그러나 사실은 나무에 올라갔다는 의미는 자신의
자존심 밟고 올라섰다는 것입니다. 자신의 외로움을 딛고 주님께 사랑을 요청했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주님! 나는 주님의 사랑이 너무나 그립습니다!' 는 고백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사랑에 대해서 잘못 생각하고 있습니다.

1) 사랑을 제대로 할수 없는 이유로 나외의 상대방이나 환경의 문제로만 생각합니다.
어떤 분들은 행복한 가정을 꾸미고 싶은데 그렇지 못한 것이 내가 남편이나 아내를 잘못만
나서 그렇게 되었다는 생각이 마음깊은곳에 숨겨있습니다.
'내가 어쩌다 이 인간을 만나서 이렇게 불행한 삶을 살고 있나?'
'어쩌다 미팅에 나가도 저런 인간만 걸리나'
'내가 마음에 드는 사람도 만나면 정말 멋있게 사랑할 수 있을텐데--'
나 자신은 사랑할 수 있는 준비가 완벽하게 갖춰져 있다고 생각합니다. 단지 내가 원하는
그 상대가 없기 때문에 사랑을 못한다고 생각합니다.
정말 그렇습니까?
나는 교회에 헌신하며 사랑하고 싶은데 목사가 맘에 안들어서 헌신을 안하시는 겁니까?
교회 분위기만 좋으면 기도생활하며 봉사할텐데, 충분한 미팅룸이 없어서 사랑을 나누기가
힘드십니까?
사역 프로그램이 다양하지 못해서 신명나게 헌신이 안됩니까?

2) 우리가 사랑에 대해 갖고 있는 오해는 사랑은 낭만의 문제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사랑의 전과정을 받아들이기보다는 사랑하게 되는 최초의 낭만적 순간들에만 관심이
많습니다.
우리는 텔레비전에서 하는 찡하는 감정이 없으면 더 이상 사랑이 아니라고 생각하게 만드는
경향이 있습니다.
- 어떤 여학생에게 남학생이 끈질기게 따라다닙니다. 초콜렛도 주고, 사탕을 주기도 하고
그럴수록 더욱 싫어집니다. 도서관에서 1층에서 공부하다가 그 아이가 꼴보기 싫어 6층에
가서 공부를 합니다. 그런데 어느날 커피를 먹고싶어 복도에 나갔더니 자판기가 망가졌습니
다. 1층까지 내려가려니 그것도 싫고 다시 도서관으로 들어가려는데 그 꼴보기 싫은 아이가
커피두잔을 손에 들고 뛰어오더라는 겁니다. 손에 흘려가면서 그 아이는 헐떡거리며
'미안, 너에게 식지않은 커피를 주려고 급하게 뛰어올라 오다가 너무 많이 흘렸어. 그렇지만
두잔을 합치면 한잔 몫은 될거야!'
그 순간 더 이상 미워할 수없게 되었고, 두잔을 한잔으로 합치지도 못했습니다. 그들의 대화
는 깊어갔고, 그 이후 그들은 결혼했답니다.
우리교회 청년 아가씨들! '당신도 커피 두잔 받으시기 바랍니다.'
얼마나 낭만적입니까? 그러나 이 낭만 자체가 사랑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오해입니다.
저는 우리 태은교회를 사랑합니다.
처음 이 교회에 입당하고서 너무나 사랑스러워 눈물이 그렁거렸습니다. 감격적이었습니다.
우리 성도들은 새벽에 깨어 기도하는 분들이 많았습니다. 수요일에도, 금요일에도, 그리고
평일에도 그냥왔습니다. 서형주집사님은 현대아파트에서 내려다 보다가 창문이 열린 것을보
면 뭐 할 일 없느냐고 그냥 달려왔습니다.
그런데 요새는 꼭 일이 있어야만 오십니다.
처음의 그 감동이 없습니다. 만약 이런 식으로 살아간다면 이 세상에 있어서 한두번은 짜릿
할지 모르지만 나머지는 다 지루한 것이 됩니다.
내 생애에 짜릿한 사람만 찾는다면 그는 수없는 사람을 만난다 해도 끝이 없습니다.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참된 사랑은 낭만적 감정도 중요하지만 정말 중요한 것은 훈련하고 배우면서 얻어지는 것입
니다. 연습하고 훈련하고 실패해도 또 시작하고 배우면서, 그러면서 우리의 사랑은 올바르고
진실한 사랑을 하게 됩니다.
우리의 사랑이 끝까지 아름답게 펼쳐지려면 그 사랑은 신앙적으로 승화되어야 합니다. 처음
에는 설레는 마음으로 사랑했지만 우리의 사랑은 너무 빨리 식어집니다.
익숙해지면 소홀해집니다. 때로 무시하게 됩니다. 우리가 남편이나 아내를 대할 때 모르는
사이에 상대방을 하찮게 대하게 됩니다. 하루 이틀 사는 것이 아니니 사랑의 감정이 식어집
니다. '저 인간 저럴줄 알았으면 -- 내가 뭐에 속았는지 몰라. 사랑은 무슨?'
이럴때는 어떻게 합니까?
여기서 우리의 미흡한 사랑이 신앙의 인도를 받아야 합니다. 우리 가정이 사랑이 넘치는 집
이 되기를 원한다면 반드시 하늘로 열린 신앙의 창문이 있어야 합니다.
상대방만을 사랑하는 사랑은 결국 실패합니다. 아내의 하나님을 사랑해야 합니다. 남편의 하
나님이 나타나셔서 남편이 속을 썩일때도 그를 사랑할 수 있는 힘을 공급해 주십니다. 아이
들이 서운하게 할 때도 아이들의 하나님을 사랑하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지금은 없어진 것 같은데 얼마전까지 서세원씨가 사회보는 프로그램에서
할머니 할아버지가 나와서 퀴즈를 맞추는 프로그램이었습니다. 질문을 했습니다.
'남녀가 만나서 부부로서 오랜세월을 함께 살았습니다. 어쩌면 그렇게 잘 맞는 분인지 모릅
니다. 이럴 때 쓰는  말은?' 할아버지가 '임자하고 나' 그랬더니 할머니 '웬수' 정답은 천생연
분이었습니다. '아니오, 할머니 네 글짜예요.' '평생웬수'
이유인즉, 평생동안 바람을 피워서 여자를 세워놓으면 서울에서 부산까지 설것이랍니다.

나는 늘 베풀기만 했다고 서러워마십시오. 나는 평생동안 자식들에게 주기만 했는데 받은
사랑이 없다고 눈물흘리지 마세요. 우리는 하나님의 사람이지요. 하나님이 아십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부어지는 사랑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가 흔히 하듯이 한두방울 흘
리다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그만두는 것과는 다릅니다. 어떤 의미에서 우리를 향한 하나님
의 사랑은 거룩한 낭비입니다.
스펄젼 목사님은 '하나님의 사랑을 먼저 받으라. 하나님의 사랑을 받으면 변화될 것이다.'
인간은 부모로부터 받은 유전과 내 자신이 살아왔던 환경과 빼놓을 수 없는 자신의 의지로
인해서 내 인생이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어린 시절의 힘겨웠던 순간들이 상처와 열등감과 미움, 증오로 남아있는 이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교회 안에서 사랑하지만, 미움의 상처가 치료되지 않고 그저 의식적으로 사랑하는
것이 가능합니다. 그런데 부흥회를 통해서 큰 은혜를 받으면 사랑이 너무 많이 들어오니까
이 사랑이 흘러 넘쳐서 미워하던 사람을 사랑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부어지는 사랑을 받으면 변화의 길로 들어설 수 있습니다. 물론 미움은 아직 해소
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흘러 넘치는 사랑안에 있을 때 미워하면서도 사랑하는
것이 가능합니다.
내안에는 아직 그를 향한 미움이 남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이 너무 넘치기에 어
쩔 수없이 그를 사랑하게 됩니다. 그순간 내 안에는 간절한 기도와 소원이 생깁니다.
'하나님! 지금 저는 저 인간을 미워하며 사랑합니다. 하나님의 사랑 때문입니다. 이제 더큰
주님의 사랑으로 미워하며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면서 사랑하게 해 주세요.'
우리가 혼자 해결할 수 없는 미움과 증오가 생길 때 너무 집착하지 마십시오. '내안에 미움
이 들어있는데 네가 무슨 목사냐? 권사냐?' 하나님의 부어지는 사랑을 체험함으로서 더 큰
사랑으로 미움을 이길 수 있습니다.

우리는 깨달아야 합니다.
내가 무슨 대단한 자격이 있어서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것이 아닙니다.
로마서 5:6-"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기약대로 그리스도께서 경건치 않은 자를 위하여 죽
으셨도다." 이것이 복음입니다. 내 스스로 경건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면, 나는 복음과 아무
관계가 없습니다. 그냥 혼자 잘 살아가면 됩니다.
우리 태은교회가 참 좋다며 함께 신앙생활하자고 하면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죄가 많아서 못갑니다. 버릴 것 버리고, 끊을 것 끊고 가겠습니다.' 참으로 마음이 착
한 사람이지요. 우리는 완전한 사람이 못되기에 하나님 앞에 나오는 것입니다.
'나는 경건치 못한 사람입니다. 하나님 앞에 나아오기 부족한 사람입니다.'라고 고백한다면
주님은 나에게 큰 은혜를 베푸십니다. 경건치 않은 나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셨고, 피를 흘
리셨으며, 나를 애타게 기다리시며 찾으시는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은 나의 하나님만 되시는 것이 아니라, 내 마음에 들지 않는 그 사람의 하나님
도 되심을 알아야합니다.
대학가에 이런 농담이 유행할때가 있었답니다.
잘생긴 남학생과 못생긴 여학생이 지나가면 사람들이 수근거리기를,
'여자네 아버지가 재벌인가봐!'
잘생긴 여학생과 못생긴 남학생이 걸어가면 '쟤는 고시 패스했나봐'
못생긴 여학생과 못생긴 남학생이 지나가면 '재네 진짜로 사랑하나봐'
대개 사람들의 사랑은 조건과 환경을 가지고 평가하고 결론을 내리기를 좋아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내가 아직 죄인이었을 때 나를 사랑하셨기에 내가 갖고 있는 모든 것이 사라질지
라도 영원토록 사랑하신다는 말입니다.
오늘 이 시대는 남편이 무능력해지면 핀잔하고, 아내가 병들면 귀찮아하고, 부모가 자신들의
필요에 따라 재정적 뒷받침해줄때는 그렇게 알랑거리다가 이제 늙어 병들고 판단력이 희미
해지니 무관심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내가 내세울만한 조건이 아무것도 없을지라도, 지혜가 없어서 마음이 허전
해서 한말을 또하고 또하고 또해도 여전히 사랑의 눈길로 주시하시며 품어주시는 분입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아무 조건없이, 사랑받을만해서가 아니라 먼저 사랑받을만한 사람으로 만
들어가신다는 것입니다.
나를 부르셔서 무조건 사랑하시는 하나님이 또한 우리에게 이 받은 사랑을 가지고 서로 사
랑하라고 하십니다. 부름받은 그 사랑을 가지고 다시금 가정으로 직장으로 우리의 삶의 자
리로 돌아갑니다.
그런데 막상 일상생활로 돌아가면 그 사랑을 계속하기가 힘이듭니다 상대방이 어떤 인격이
든지 사랑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우리가 사랑하려다가 중단해버리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내 마음을 몰라주니
그렇지요. 나는 할만큼 했는데 상대방은 왜 저렇게 하는가? 생각하기 시작하면 금방 시들게
됩니다.
하나님은 아무 조건없이 사랑하셨지만 나는 여전히 어떤 계산을 가지고 다가서니 실패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의 영혼을 향한 것입니다. 내가 사랑하려 하지말고
하나님의 사랑이 흘러서 그 영혼에게 나아가도록 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나를 도구로 사용
하실뿐입니다.'라고 고백해야 합니다.
너무 그렇게 초조하지 마십시오. 하나님도 나를 그렇게 기다리셨습니다. 그 무수한 세월을
하나님은 푸념하지 않으시고 짜증내지 않으시고 기다리셨어요.
그 영혼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이 스며들기 시작하면 모든 환경을 바꾸시는 것은 문제가 안
됩니다.
장발장 이야기를 기억하시지요?
장발장이 신부집에서 하룻밤 자다가 악몽 때문에 은수저를 훔쳐 도망갑니다. 경찰에게 잡혀
서 끌려온 장발장에게 신부는 도리어 '은촛대는 왜 안가지고 갔나?' 너무나 뜻밖의 대답은
들은 장발장은 '왜 제게 이런 은혜를 베푸십니까?'
신부는 말합니다. '내가 이 은으로 자네의 영혼을 사겠네. 이 은으로 자네의 영혼을 사서 하
나님께 되돌려 드리네. 그러니 이제 그 절망과 증오에서 자유하게.'
주님은 십자가의 피흘림의 사랑으로, 대속의 은총으로 여러분의 영혼을 죄악에서, 지옥에서
값을 지불하고 사셨습니다.
나는 여러분이 절망과 괴로움과 증오심에서 참 자유를 누리기를 바랍니다.
주님은 서로 사랑하라 하십니다.
먼저 여러분은 자신을 사랑하십시오. 가족을 사랑하십시오. 성도를 사랑하십시오. 그러나 사
랑이라는 이름으로 포장해서는 안됩니다. 많은 사람들이 집착에다가 껍데기만 살짝 사랑이
라는 비단조각으로 덮어씌우고 있습니다. 있는 그대로의 주님의 사랑이 나를 통과하게 하십
시오. 주의 사랑이 내게 흘러 넘쳐서 내 이웃과 서로 깊은 주님의 사랑을 나누는 우리 모든
성도들이 되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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