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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님의 집 / 딤전 3:1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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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모데전서3:14-16
하나님의 집

사람은 세 종류의 집에서 산다는 말이 있습니다. 첫째는 가정(家庭)입니다. 가정은 우리 식구들이 사는 집으로 서로 삶과 안식과 사랑은 나누는, 인간 생활에 가장 기본이 되는 집입니다.

둘째는 국가(國家)입니다. 우리 동양에서는 나라를 하나의 큰 집으로 생각합니다. 그래서 단어 자체가 나라 국(國), 집 가(家) 둘을 합해 국가라고 합니다. 국가는 우리 민족이 사는 큰 집입니다. 국가가 튼튼해야 국민들이 안심하고 긍지를 가지고 잘 살 수 있습니다.

셋째는 이 우주(宇宙)입니다. 이 우주(宇宙)의 한문 역시 집 우(宇) 집 주(宙)입니다. 우주는 온 인류가 사는 넓은 집입니다. 사람뿐 아니라 하나님이 지으신 모든 피조물들이 거하는 공간입니다. 그러므로 자연 환경이 깨끗해야 세계 인류와 우주 만물이 평안을 누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가정과 국가와 우주라는 집만으로는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인간은 영원을 사모하는 존재로 지음을 받았고, 이 영적 욕구를 이루어 나갈 수 있는 집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교회를 하나님의 집이라고 가르치고 있으며, 우리는 이 교회에서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을 체험하는 것입니다.

사실 교회를 집으로 표현한 것 보다 더 포근하고 아늑하며 다정한 느낌을 주는 것도 없을 것입니다. 우리 믿은 이들은 하나님의 권속, 곧 가족입니다. 우리가 예수 믿고 성령 안에서 거듭날 때, 성령은 우리의 입을 열어서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고 부르게 하십니다. 하나님을 단지 어떤 신이라든지, 어떤 절대자라든지 하는 표현으로가 아니라,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게 하십니다.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면, 그러면 어머니는 누구냐고 묻는 사람이 있습니다. 초대교회에서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교회를 어머니처럼 섬길 수 없는 사람은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를 자격이 없다.”

무슨 말입니까?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시라면, 교회는 마치 영적 어머니처럼 우리를 양육하는 책임을 맡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우리의 신랑으로 비유하고, 성도들을 그분의 신부에 비교한 성경의 말씀은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한 가족이라는 것을 표현하는 아름다운 표현들입니다. 우리 믿는 이들은 하나님의 한 가족입니다. 얼마나 아름다운 말씀인지 모릅니다.

이렇듯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고, 그리스도를 신랑이라고 하며, 신자는 서로 형제라 부르고, 교회는 하나님의 집이라 하며, 천국은 아버지의 집이라 합니다. 진정 교회는 하나님의 집이요, 큰 가정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교회는 행복한 가정과 같아야 합니다. 여기에 신뢰와 사랑이 있어야 합니다. 평안과 행복이 있어야 합니다. 협동과 봉사가 있어야 합니다. 가정이 화목해야 식구들이 건강합니다. 가정이 평안해야 세상에 나가 살 때, 마음이 편하고 할일을 잘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가정이 불화하고, 싸우고, 문제가 많으면 세상에 나가 살 때도, 마음이 불편하고, 일을 제대로 풀어 나가지 못합니다. 우리는 행복한 가정을 세워 나가듯 큰 가정인 교회를 아름답게 세워 나가기에 힘써야 할 것입니다. 교회는 곧 가정처럼 복의 근원이기 때문입니다.

또 오늘의 교회 생활을 통해서 앞으로 영원한 아버지의 집, 곧 하늘나라, 천국에 들어갈 준비를 하는 것입니다. 하늘나라, 영원한 집에서 영원한 안식과 기쁨을 누리는 훈련을 오늘 우리는  이곳 평화 교회에서 하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보다 아름답고 복된 하나님의 가정인 평화 교회를 우리가 세워 나가야 합니다.

이어지는 말씀을 보면 ‘이 집은 살아계신 하나님의 교회요 진리의 기둥과 터니라’고 말씀합니다. 교회는 무엇입니까? 진리의 기둥과 터라고 합니다. 기둥은 지붕을 받쳐 줍니다. 그리고 기둥을 받치고 있는 것은 터입니다.

그런데 교회의 진정한 터와 기둥은 무엇이어야 합니까? 그것은 진리입니다. 터가 기둥을 받치고 기둥이 지붕을 받치듯, 교회는 진리를 받치고 있는 것입니다. 즉 교회는 진리 위에 세워졌고, 진리를 증거 하기 위해 존재합니다.

진리를 소유하지 못한 교회는 이미 죽은 것입니다. 또 교회는 진리를 그 교회 안에 있는 믿음의 식구들에게 가르치고 그것을 생활에 적용하도록 도와야 합니다. 이것이 교회의 사명입니다.

자, 교회는 진리의 기둥과 터입니다. 그렇다면 진리가 무엇입니까? 진리란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추상적인 것이 아닙니다. 성경이 말하는 진리는 철학자들이 말하는 것처럼 형이상학적인 것이 아니라 하나의 인격입니다.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이렇게 말씀하신 그분, 예수 그리스도가 바로 진리이십니다.

이 진리를 세상은 모르고 있기 때문에 본문 말씀을 보니 비밀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교회가 소유하고 있는 비밀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인데, 바울은 이 비밀을 4가지 특성으로 말씀합니다.

첫째는 큰 비밀입니다. 크도다 경건의 비밀이여. 그냥 위대하다는 뜻이 아닌, 정말 중요하다는 의미로 크다는 말을 합니다. 교회가 소유하고 있는 놀라운 비밀, 이 비밀은 아주 크고 위대하고 중요한 비밀입니다. 이 비밀은 바로 그리스도 자신입니다.

둘째는 경건의 비밀입니다. 크도다 경건의 비밀이여. 우리는 경건하다는 말을 잘못 이해할 때가 많습니다. 어떤 금욕적인 생활, 즉 세상 사람들이 즐기는 어떤 음식을 먹지 않고, 어떤 행동을 하지 않는 것을 경건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경건이라는 말은 하나님께 속한 것, 하나님을 닮은 것을 말합니다. 즉 경건의 표준은 이러이러한 일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얼마나 하나님께 속해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본래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알지 못했는데 하나님이 세상을 사랑하셔서 그리스도를 보내 주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하나님의 구원과 사랑을 깨닫게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가장 큰 비밀입니다. 우리를 위해 이제는 공개하시고 우리에게 보여주신 비밀입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만큼, 닮아가는 것만큼 우리는 더욱 경건해 지는 것입니다.

셋째는 인정된 비밀입니다. 크도다, 경건의 비밀이여, 그렇지 않다 하는 이 없도다. 물론 불신자까지 포함한 말은 아닙니다. 우리 그리스도를 체험한 모든 사람에 의해 인정된 가장 놀라운 비밀이라는 말씀입니다.

한 사람이 구원받기 위해 건너야 할 가장 큰 강이 바로 예수님이 하나님이라는 사실입니다. 이것을 깨달으면 다 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의 구세주이시고, 하나님의 아들이며 육신을 입고 오신 하나님이란 사실, 이 엄청난 사실을 체험한 사람에게는 이것이 인정된 비밀이지만, 세상은 이 비밀에 눈멀어 있습니다.

넷째는 한 인격의 비밀입니다. “그는 육신으로 나타난바 되시고.” 이 비밀은 숨겨둔 보물 지도와 같은 것이 아닙니다. 이 비밀은 예수님 그리스도란 인격으로 나타나신 비밀입니다. 이 분은 어떤 분입니까?

그리스도는 육신으로 나타나신바 되셨습니다. 하나님이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인간의 모습으로, 죄인의 모습으로 우리 가운데 오셨습니다.

또 그리스도는 영으로 의롭다 하심을 입으셨습니다. 이 말씀은 십자가와 부활을 말합니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시고 죽으셨지만, 부활하심으로 성령에 의해 의롭다 하심을 입으셨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는 천사들에게 보이셨습니다. 예수님은 스스로를 낮추셔서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러나 부활 승천하셔서 얼마만큼 높아졌는지 우리 눈으로는 볼 수 없습니다. 우리가 볼 수 없는 세계에서 천사들에 의해 높임을 받으셨습니다.

이어지는 말씀을 보면 그리스도는 만국에서 전파되셨습니다. 예수님은 부활하신 후부터 세상에 전파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스도는 영광 가운데 올리우셨습니다. 예수님은 지금 승천하셔서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 앉아 계십니다. 승리자로 앉아 계십니다. 하나님의 대권을 행사하는 분으로 계십니다.

자, 사실 기독교는 바로 그리스도 자체입니다. 기독교가 그리스도를 잃어버릴 때 우리는 모든 것을 다 잃어버리는 것입니다. 우리가 전해야 할 메시지는 오직 그리스도 한 분입니다. 우리 교회는 이 그리스도를 세상에 증거하고 가르치고 나타내도록 부름 받은 믿음의 공동체입니다.

이제 부활 승천하신 그리스도께서는 그냥 가신 것이 아니라, 이 땅에 자신의 몸을 남겨 두셨습니다. 그 몸이 바로 교회입니다. 그래서 ‘교회란 그리스도의 성육신의 연장이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교회가 얼마나 참된 교회인가는 우리가 얼마만큼 그리스도의 몸으로서의 역할을 잘 하고 있는가에 달려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생각해야 할 것은, 우리가 교회를 사랑하되 다음 세 가지 의식을 가지고 사랑해야 합니다. 첫째는 “나의 교회”라는 의식입니다. 본문을 보면 교회를 하나님의 집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바로 나의 아버지입니다. 나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따라서 교회는 곧 아버지의 집이자, 자녀인 나의 집입니다.

나는 주인의식, 곧 “이 교회는 나의 교회이다”하는 주인의식과 책임의식을 가져야 합니다. 나그네로, 손님처럼, 그저 잠간 들렀다 가는 여행객처럼 우리가 신앙 생활해서는 안됩니다. 주인인 내 사랑과 정성이 없이는 교회가 아름답게 세워질 수 없다는 적극적인 자세로 교회를 세워 나가야 할 것입니다.

집 주인은 그 집에 대한 원대하고도 건설적인 계획을 세웁니다. 앞으로 이 셋방에서 어떻게 전세방으로 옮길 것인가, 그리고 언제쯤 내 집을 장만할 것인가, 자라나는 아이들은 어떻게 교육시킬 것인가, 그리고 우리 가정을 통해 이루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어떻게 실천하고 살 것인가 등등을 계획합니다.

그리고 그 계획을 달성하기 위해 땀 흘려 노력하고, 눈물 흘려 기도하고, 피 흘려 희생하면서 애씁니다. 그리고 그 결과에 대해서 책임을 집니다. 이런 사람만이 가정을 가정답게 세워 나가는 주인이 됩니다.

교회도 이런 성도를 필요로 합니다. 이 평화 교회는 바로 내 교회입니다. 내 수고와 내 사랑 속에서 아름답게 세워집니다. 나의 교회란 이 의식 속에 교회를 사랑하는 교인이 많은 교회가 부흥하고 발전합니다. 평화 교회는 바로 내 교회입니다.

우리 교회가 오늘 창립 기념주일을 맞이했습니다. 내년이면 30주년을 맞이합니다. 30살 나이에 걸 맞는 교회를 세워 나가는 일만해도 그렇습니다. 30주년 기념사업은 그 누구가  해 주는 것이 아닙니다. 남이 하는 일에 나는 몸만 참여해 신앙 생활할 수는 없습니다. 내 집은 내가 세우듯, 내 교회는 내가 세워 나가는 것입니다.

둘째로, 평화 교회는 우리의 교회입니다. 우리는 교회 공동체의 일원입니다. 세상이 홍수로 멸망할 때, 노아의 식구들은 한 배에 탔습니다. 그래서 운명을 같이 했습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한 배에 탄 공동 운명을 지니고 있다는 생각으로 신앙 생활해 나가야 할 것입니다.

우리 교회 성도 어느 누구의 아픔이 곧 나의 아픔이 되어야 합니다. 교회의 어려움이 있으면 공동 책임을 느껴야 합니다. 함께 협력해야 합니다. 그리고 기쁨을 함께 나누고, 힘을 합하여 하나님의 선을 이루어 나가야 합니다. 교회는 우리 교회입니다. 기독교 신앙은 공동체의 신앙입니다.

이런 말이 있습. 전체는 모든 부분의 총화보다 크다. 그리고 모든 부분은 전체에서 자기의 가치를 얻는다. 좀 어려운 말이지만, 이렇게 이해하면 좋습니다. 저기 피아노가 있습니다. 피아노는 많은 부속품으로 조립되어 있습니다.

자, 그런데 나무, 쇠줄, 건반 등등이 하나하나 각각 떨어져서는 별로 유익하지 않습니다. 나무는 장작감 정도이고, 쇠줄은 짐을 묶는데 쓰이는 정도일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들이 한번 기술자의 손에서 조립될 때, 그것은 하나하나의 값을 거한 것 이상의 값과 의미를 지닙니다.

그러나 한 묶음이 될 때 아름다운 음악을 연주하는 예술의 위대한 도구가 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사람도 하나의 묶음이 될 때, 더 큰 가치가 생기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교회를 통해서 더 큰 의미와 값을 인정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교회는 바로 우리의 교회입니다.

셋째, 하나님의 교회라는 의식입니다. 하나님께서 세우시고 역사하시는 교회이기에 우리는 경외심과 충성심을 가지고 교회를 섬겨야 합니다. 교회 생활에 무관심하는 것, 손님같이 구경하는 자세로 만족하는 것, 한걸음 뒤로 물러나서 비평하고 불만하는 것은 바람직한 신앙 자세가 아닙니다.

우리 교회를 친히 세우신 하나님께서는 오직 우리에게 충성을 요구할 뿐입니다.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 잘 하였도다, 적은 일에 충성한 너희에게 큰일을 맡기겠다,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 오직 우리는 하나님의 교회에 충성과 헌신을 다 할 뿐입니다.

이렇듯 우리는 오늘 교회 창립 주일을 맞으면서, 바로 교회의 부흥과 성장은 내 주인의식 속에서, 그리고 우리는 함께 교회를 세워 나간다는 공동체 의식으로, 무엇보다 하나님은 헌신하는 일꾼을 찾으신다는 경외심을 갖고 우리가 신앙생활을 해 나가야 할 것입니다. 교회를 통해 내가 축복을 누리고, 교회의 무궁한 성장과 발전을 통해 내 생활에도 진보가 있음을 믿으면서, 더욱 복된 평화 교회를 세워 나가시는 성도님들 모두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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