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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야이로의 딸이 소생한 신앙교훈 / 막 5:2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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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이로의 딸이 소생한 신앙교훈

사람이 병들거나 죽으면 그것같이 슬프고 괴로운 일은 없습니다. 육신의 수한이 다 되어서 죽는 것도 슬프지만 우리는 때때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믿음과 의욕이 죽은 상태에 이를 때가 있고, 경제적인 어려움에 처할 때도 있습니다.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다 일어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믿음도, 경제도 일어나기를 축원합니다. 건강도 회복되기를 축원합니다. 주 안에서는 능치 못함이 없습니다.

본문에 나오는 회당장 야이로는 당시 유대인의 신앙 공동체인 회당 모임이나 예배를 주관하는 사람으로서 유대인 사회에서 존경받는 위치에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기 딸이 죽게 된 이런 아픈 비극의 상황에서는 그의 지위나 명예가 대신해줄 수가 없었습니다. 죽음은 어떤 힘을 가지고 있다 할지라도 막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서 회당장 야이로의 죽었던 딸이 소생했을까요?


첫째, 예수님께로 나아왔기 때문입니다.

“회당장 중 하나인 야이로라 하는 이가 와서 예수를 보고 발 아래 엎드리어”(22절) 인생이 위기상황에 처했을 때 가장 최선의 방법은 예수님께 나아가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인간의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실 능력이 있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마태복음 4:23,24에 보면 “예수께서 온 갈릴리에 두루 다니사 저희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백성 중에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 그의 소문이 온 수리아에 퍼진지라. 사람들이 모든 앓는 자, 곧 각색 병과 고통에 걸린 자, 귀신들린 자, 간질하는 자, 중풍병자들을 데려오니 저희를 고치시더라”고 말씀했습니다.

야이로는 얼마나 지혜롭습니까? 자기 딸의 죽음을 앞에 놓고 슬퍼만 하지 않았습니다. 절망과 좌절하거나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바로 생명의 근원이신 예수님을 찾아갔던 것입니다. 혹 질병과 사업의 실패로 인하여 절망과 낙심 가운데 처한 분이 계십니까? 예수님께로 나아와 모든 것을 다 회복시키실 수 있는 하나님의 능력과 권세를 가지고 계시는 예수님을 만나십시오. 주님 만나는 순간에 기적이 일어나기 시작합니다. 응답의 역사가 일어나기 시작합니다. 소원이 성취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항상 인생을 향하여 하나님께 나오라고 부르고 계십니다. 아담과 하와가 에덴동산에서 하나님께서 금한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따먹고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동산 나무 사이에 숨어있을 때 하나님께서는 아담을 부르셨습니다. ‘아담아, 네가 어디 있느냐?’(창 3:9) 죄를 해결하는 길은 주님을 만나는데 있습니다. 아담을 부르신 하나님은 오늘도 인생을 향하여 부르십니다.

이사야 1:18에 보면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같이 붉을지라도 양털같이 되리라.”고 하나님은 말씀하시면서 우리 인생을 부르고 있는 것입니다. 이사야 55:1에도 보면 “너희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 돈 없는 자도 오라. 너희는 와서 사 먹되 돈 없이 값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고 말씀했습니다.

누가복음 15:11~32에 보면 탕자의 비유가 나옵니다. 아버지에게 유산을 미리 달라고 하여 아버지의 품을 떠나 먼 나라에게 가서 허랑방탕한 생활을 하다가 재산을 다 허비하고 남의 집에 들어가 돼지를 치면서 돼지가 먹는 쥐엄 열매로 배를 채우고자 해도 주는 자가 없을 정도로 궁핍한 상황에서 아버지를 생각하고 아버지께 돌아간 둘째아들을 기뻐 맞아주시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탕자가 아버지 곁에 함께 있을 때는 행복하고 부족함이 없이 살았습니다. 그러나 아버지를 떠났을 때 굶주리고 헐벗는 자가 되었습니다. 외롭고 쓸쓸한 자가 되었습니다. 굶주린 배를 채우려고 돼지 먹이는 집에 취직을 했는데, 돼지가 먹는 쥐엄열매도 먹을 수 없는 처참한 상황에 이르렀을 때에 ‘내가 왜 이렇게 굶어죽게 되었는가, 내가 왜 이렇게 비참하게 되었는가, 내 인생이 왜 이렇게 무너지게 되었는가?’하고 생각할 수 있는 기회가 된 것입니다. 사람이 자기를 살필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귀한지 모릅니다.

탕자가 아버지를 만나 모든 것을 회복했듯이 우리도 하나님을 만날 때에 우리의 모든 부족한 것을 회복할 수 있습니다. 회당장 야이로가 예수님을 만났을 때 그의 딸이 소생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죄와 질병, 절망, 마귀의 결박, 저주 아래에 있을 때 불러주셨습니다. 하나님 앞에 나오면 무당도, 깡패도, 살인자도 변하여 새사람 즉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습니다. 주님 앞에 나올 때 변하여 새사람이 될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마태복음 11:28에 보면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고 말씀했습니다. 이 말씀은 ‘인류를 향한 하나님의 초청장’이라고도 말합니다.
아직 술이나 담배, 도박을 끊지 못해서 하나님 앞에 나오지 못하는 분들이 계십니까? 하나님 앞에 나오십시오. 하나님 앞에 나오면 끊을 수 있는 힘을 주십니다. 버릴 수 있는 믿음을 주십니다. 하나님께서 새로운 삶의 용기와 비전을 주실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둘째, 하나님 앞에 엎드려 간구했기 때문입니다.

“회당장 중 하나인 야이로라 하는 이가 와서 예수를 보고 발 아래 엎드리어 많이 간구하여 가로되, ‘내 어린 딸이 죽게 되었사오니, 오셔서 그 위에 손을 얹으사 그로 구원을 얻어 살게 하소서’ 하거늘”(22,23절) 예수님 앞에 나아온 회당장 야이로는 주위 사람들로부터 존경을 받는 위치에 있었지만, 전혀 다른 사람들의 이목을 염두에 두지 않은 채 예수님의 발 아래 엎드려 자신의 어린 딸이 죽게 되었으니 자기 집에 오셔서 손을 얹어 안수하시고 살려달라고 간구했습니다. 이 죽음을 해결할 수 있는 길, 절망과 좌절을 벗어날 수 있는 길은 하나님 앞에 엎드려서 간구하는데 있습니다. 여기에서 발 앞에 엎드렸다는 것은 겸손을 의미합니다. 주님 앞에 겸손한 마음으로 우리 자신을 쳐서 복종시키면서 주님의 은총을 구할 때에 하나님께서 이루어주실 줄 믿습니다.

우리 인간이 존재하는데 호흡이 가장 귀하듯이 신앙생활을 하는데 기도의 호흡보다도 더 중한 일은 없습니다. 시편 50:15에 보면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라고 말씀했습니다.

에스라 10:1이하에 보면 에스라 선지자의 기도 내용이 나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도덕적으로 정치적으로 신앙적으로 타락했을 때에 그는 하나님의 전 앞에 엎드려 울며 기도하면서 죄를 자복했습니다. 그 때에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에스라 선지자의 기도로 말미암아 많은 백성들도 감동이 되어 함께 통곡을 하면서 하나님 앞에 기도했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간절한 소원이 있을 때에 이와 같이 하나님 앞에 엎드려 울며 기도해보십시오. 땀이 땅에 떨어지는 피 방울같이 될 정도로 힘쓰고 애써 더욱 간절히 기도하신 예수님(눅 22:44)을 본받아 간절히 기도할 때에 하나님께서 반드시 응답해주실 줄 믿습니다.


셋째, 두려워하지 않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예수께서 그 하는 말을 곁에서 들으시고 회당장에게 이르시되, ‘두려워 말고 믿기만 하라’ 하시고”(막 5:36) 예수님께서 혈루증을 고친 여인과 말씀하시는 중에 야이로의 집에서 사람들이 와서 야이로에게 그의 딸이 방금 죽었다는 소식을 전하며 이제 더 이상 예수님을 귀찮게 할 필요가 없지 않느냐고 말했습니다. 그 때 예수님께서 이 말을 들으시고 회당장 야이로에게 두려워 말고 믿기만 하라고 한 것입니다. 회당장 야이로는 자기 딸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절망할 수도 있었겠지만 전혀 절망하거나 두려워하지 않고 예수님이 하신 말씀을 그대로 믿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믿음대로 역사해주시고, 기적을 나타내주십니다.

그런데 왜 두려움이 생깁니까? 믿음이 없을 때 두려움이 생기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받아들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사야 41:10에 보면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니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고 말씀했습니다. 천지를 창조하시고, 인간의 생사화복을 주장하시며, 우리의 있을 곳 천국을 예비하신 하나님은 언제라도 우리를 도울 준비를 하고 계십니다. 문제는 우리에게 하나님께서 우리를 도우시는 근거가 되는 믿음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대한 부요한 믿음을 가질 때 인간의 힘으로 해결할 수 없는 홍해도 갈라지고, 여리고성도 무너지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많은 기사와 이적을 약속하셨습니다. 마태복음 11:5에 보면 “소경이 보며, 앉은뱅이가 걸으며, 문둥이가 깨끗함을 받으며, 귀머거리가 들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 하라”고 말씀했습니다. 주님께서 하신 이 말씀을 믿을 때에 그대로 이루어지는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오늘 우리는 육신의 눈을 뜨는 것도 귀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영적인 눈을 떠야 됩니다. 또한 예수를 믿기는 믿어도 항상 땅엣 것만 바라보며 사는 영적인 앉은뱅이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영적인 문둥이, 영적인 귀머거리가 되어서도 안됩니다. 영적으로 죽은 자가 있다면 살아나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힘들고 어려운 세상을 살면서 더 이상 희망을 가질 수 없는 극한 상황에 처할지라도 절대 절망하거나 낙심하지 말고 회당장 야이로처럼 예수님께 나아와 그분을 만나십시오. 그리고 두려워하지 말고 하나님께 대한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엎드려 간절히 구하십시오. 그리하여 모든 육적인 문제와 영적인 문제를 해결 받고 항상 소망과 기쁨 가운데 사시기를 예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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