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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됨을 힘써 지키라 / 엡 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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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말씀 : 엡 4:1-6
제목 : 하나됨을 힘써 지키라

그러므로 주 안에서 갇힌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가 부르심을 입은 부름에 합당하게 행하여 모든 겸손과 온유로 하고 오래 참음으로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고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의 하나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 몸이 하나이요 성령이 하나이니 이와 같이 너희가 부르심의 한 소망 안에서 부르심을 입었느니라. 주도 하나이요 믿음도 하나이요 세례도 하나이요 하나님도 하나이시니 곧 만유의 아버지시라. 만유 위에 계시고 만유를 통일하시고 만유 가운데 계시도다.

  이 세상에서 스위스가 제일 살기 좋은 나라이고 그 사람들의 행복지수도 세계 1등이라고 합니다. 한국은 행복지수가 58등, 북한은 153등입니다. 환경, 복지, 삶의 질 등을 100점 만점으로 했을 때 한국은 67점, 북한은 21점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이 땅에 행복하게 살라고 보내셨는데, 과연 여러분은 행복하십니까?

  전도서 9장 9절에 “네 헛된 평생의 모든 날”이라는 표현이 있습니다. 하나님 없이 사는 인생의 하루하루가 헛되다는 것입니다. 무언가 손에 잡은 것 같은 데 막상 손을 펴보면 아무 것도 없다는 뜻입니다. 날아가는 파리를 손으로 잡은 것 같았는데 사실은 손 안에 없는 것과 같습니다. 이 땅에는 영원한 것이 없고 참된 행복이 없다는 말입니다. 무엇 하나 제자리에 있는 것이 없고 끊임없이 변합니다. 고통과 눈물, 한숨과 아픔, 죽음을 체험하며 살아가는 헛된 날들입니다. 최근에 저는 사업으로 갑부가 된 어느 분의 동생이 하신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이제 연세가 많이 드신 그분의 형님은 예수 믿는 동생에게 “아! 허무하다”고 말씀하셨다고 합니다. 70 평생의 결론이 허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또 뭐라고 말씀합니까? “곧 하나님이 해 아래서 네게 주신 모든 헛된 날에 사랑하는 아내와 함께 즐겁게 살찌어다!” 헛되고 고통스러운 인생의 날들도 아내와 함께 즐겁게 사는 것을 하나님이 원하십니다. 그것이 삶의 목적이라는 말씀입니다.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며 결정하는 모든 것들을 사랑하는 아내와 더불어 즐겁게 하는데 삶의 초점을 맞추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 함이라”(요10:10)고 하셨습니다.

  인생이 재미없는 것은 왜 그렇습니까? 죄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에게 동산에 있는 모든 나무의 과일을 먹으라는 자유와 특권을 주셨습니다. 단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만 먹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이 지구의 바다 속 생물 150만종, 땅 위에 250만종 중에서 무엇이든 먹고 싶은 대로 먹으라고 하신 것입니다. 무한하신 하나님께서 무한하신 능력으로 그의 무한하심을 보여주신 것이 창조의 세계입니다. 이 땅에서 행복하고 즐겁게 사는 방법을 따라 살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인간은 죄로 인해서 자신의 창조의 목적을 잊고, 인생의 목적도 모르고, 어떻게 살아야 할지도 모른 채 가정이라는 에덴동산을 파괴하고 있습니다. 자기 아내를 “내 뼈 중의 뼈요, 내 살 중의 살”이라고 고백했던 아담에게 죄가 들어오자 “하나님이 내게 같이 살라고 한 저 여자 때문”이라고 비난했습니다.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 그만 “저 여자”가 되어버린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깨지면 사람과의 관계도 깨지고, 내 지성과 감성과 환경 등 모든 것이 깨집니다. 이 땅에서 행복하게 살 가능성도 점점 적어지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오신 목적이 이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영적인 생명을 받아 하나님의 전망으로 가족을 바라보며 하나님이 명하신 방법으로 풍성한 인생을 살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고 알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 죄를 완전히 사해주시기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나의 구주라는 사실을 믿고 알 때, 비로소 우리는 참된 생명이 무엇이며 제대로 사는 것이 무엇인지, 어떻게 사는 것이 하나님께서 나를 창조하신 목적대로 사는 것인지를 조금씩 깨닫게 됩니다.

  우리는 보통 사람들이 아닙니다. 새롭고 영원한 영적인 삶, 의미와 가치 있는 삶, 행복하고 즐거운 삶을 살라고 하나님이 친히 불러주신 사람들입니다. 본문 말씀에 “그러므로 주안에 갇힌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가 부르심을 입은 부름에 합당하게 행하라”(4:1)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모르고 살던 내가 어느 날, 가족이나 친구, 이웃을 통해서 하나님에 대한 이야기를 듣습니다. 만세 전부터 나를 사랑하신 하나님께서, 영원한 파멸의 길로 치닫고 있던 내게 어떻게 사랑을 베푸셔서 구원해주셨는지, 그리고 그분이 지금도 나를 이끄시고 계시는 것을 알게 됩니다. “아버지께서 너희를 이끌어주시지 아니하시면 아무도 내게로 올 자가 없느니라”고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이 이 아침에 이 자리에 참석한 것도 하나님의 은혜인 줄 아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고 하나님이 이끌어주시지 않으면 하나님 앞에 나올 자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불러주셔서 우리는 복음을 들었고, 영생이 무엇인지, 죄의 파멸이 무엇인지, 예수가 누구신지 알게 되었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부름 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에게는 그 부름에 합당한 모습이 있습니다. 그 모습이 나타나야 행복과 만족과 사는 보람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부르셔서 넓게 하나님 가족의 일원이 되게 하셨고, 이 땅에서도 가족을 이루게 하셨습니다. 이 세상의 수많은 여자와 남자들 중에서 특별히 불러서 부부로 만들어주시고,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하나님 앞에서 살게 하셨습니다. 오늘은 가정의 달의 마지막 주일입니다. 지난 몇 주 동안 우리는 어떻게 하면 사랑하는 아내와 남편과 자녀와 함께 행복하고 즐겁게 살며 하나님의 부르심의 목적에 부합할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오늘 본문에 몇 가지 특징이 나옵니다.

  첫째로, 하나님의 부르신 목적에 부합하는 가정에는 겸손과 온유가 있습니다. 겸손이란 자신을 아는 것입니다. 이 큰 우주에 속한 작은 나의 모습을 알고, 이 우주의 주인이 누구이며 나의 역할이 무엇인지를 안다는 것입니다. 얼마 전 인터넷으로 화성 쪽 인공위성에서 찍은 지구의 사진을 보았는데, 파란색의 지구가 콩알만 했습니다. 구름이 약간 덮여있는 북남미 대륙의 모습이 참 신기했습니다. 그런데 지구는 수백억 개의 별들 가운데 아주 작은 별입니다. 그 방대한 우주를 창조하신 하나님이 이 작은 지구를 선택하셔서 인간을 창조하시고 여러분을 보내셨습니다. 얼마나 신기합니까! 여러분, 우리는 작은 존재입니다. 자신이 대단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착각입니다. 위대하신 하나님을 만난 사람은 자기가 누구인지를 깨닫고 자기 자리를 찾습니다. 그것이 겸손입니다.

  겸손과 온유는 약자나 비겁자의 모습이 아니라 강자의 모습입니다. 여러분의 식구 중에도 남보다 더 온유한 사람들이 있을 것입니다. 그 사람들을 무시하거나 함부로 대하지 마십시오. 온유는 내적으로 강한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자질입니다. 멋대로 말하고 행동하는 것, 누가 못합니까? 교만하고 억세면 상처와 파괴가 있을 뿐입니다. 참으로 행복하게 살려면 우리 가족들이 모두 겸손하고 온유해야 합니다.

  둘째로, 인내와 사랑이 있습니다. 무한하시고 사랑으로 오래 참으시는 하나님 말씀을 듣고 공부하고 닮아가다 보면 자연히 우리 가슴 속에도 사랑과 인내가 자리 잡습니다. 에베소서 5장 25절에, 예수님께서 희생적으로 교회와 인류를 사랑하신 것처럼 아내를 사랑하라고 하셨습니다. 정말 참기 힘든 경우도 있습니다. 정 못 참겠으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참아야 합니다. 그 때 참지 못하면 문제가 생깁니다. 산산조각이 나고 파멸이 옵니다. 정 못 참겠으면 하나님의 도움을 구해야 합니다. “하나님, 정말 참기 힘드니 저 좀 도와주세요!” 기도하면 참을 수 있습니다. 그것은 내 실력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성령의 도우심입니다. 우리가 참고 견딜 때 가정에 행복이 있습니다. 아무리 성질이 급한 사람이라도 성령님의 도움을 구하면 도와주십니다. 내가 실수와 잘못을 할 때마다 회개해야 합니다. “하나님, 잘못했습니다. 제가 성질이 급하니 하나님께서 도와주시지 않으면 저는 이 성격 때문에 망합니다. 온 식구들에게 고통과 아픔을 주는 저를 고쳐주세요.” 잘못할 때마다 하나님 앞에 회개하고 도움을 받으면 하나님의 도움으로 인내와 사랑을 만들어 갈 수 있습니다.

  셋째로, 서로 용납합니다. 있는 대로 받아주는 것입니다. 사람은 용납 받지 않으면 사랑을 느끼지 못합니다. 계속 아내나 자식이나 형제의 약점을 지적하여 “너는 어쩌면 그렇게 코가 납작하냐?” “너는 목소리가 왜 그 모양이냐?” 한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주어진 것, 있는 것 그대로를 받아줘야 합니다. 사도바울이 뭐라고 했습니까?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다!” 무한하신 하나님은 우리를 무한히 다르게 만들어 놓으셨습니다. 어느 한 사람도 똑 같지 않은 것을 보면 하나님은 참 대단하십니다. 저 같으면 붕어빵 찍어내듯이 찍어낼 텐데 말입니다. 사람은 한계가 있으므로 자동차도 똑같이 만들어 찍어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무한히 다른 종류를 만들어서 각자 고유한 특성을 주시고 그 특성대로 살도록 하셨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해서 마치 그것이 잘못된 것처럼 자꾸 지적하고 비판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키가 크든 작든, 머리가 좋든 나쁘든, 재주가 있든 없든, 하나님께서 그 사람을 위해 주신 나름대로의 특별한 것이 한 가지씩 있습니다. 우리 식구들에게 결함이 있다면 그것을 보충해줄 사람은 바로 나입니다. 하나님이 그 기회를 주신 것입니다. 태국 승려들은 아침이면 모두 밥통을 들고 밥을 얻으러 나갑니다. 그런데 밥을 주는 사람들에게 절대 고맙다는 인사를 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그들에게 선을 베풀 수 있는 기회를 주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자녀의 약점을 계속 건드린다면 그는 결국 파괴되고 말 것입니다. 자녀들이 건전한 자아상을 갖게 하려면 부모가 인정해주어야 합니다. 자기도 어찌할 수 없는 단점인데 계속 비판을 받는다면 자아상이 깨지고, 열등감이 생기고, 마음이 불안해집니다. 안정감이 없는 성인이 되어, 제대로 된 역할을 하지 못하게 됩니다. 자기 자신을 싫어하는 사람은 절대 남에게 인정을 받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창조한 모습 그대로를 인정해주고 편안하게 해 주는 부모로부터 건전한 자아상의 유산을 받을 때 자신감이 생깁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의 마땅한 모습입니다. 이런 특징을 알고 계발해가고 있는 사람들은 행복하고 즐겁게 살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의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4:3)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한 가족이 된 것은 하나님의 역사요 섭리입니다. 오늘 1부 예배를 마치자 어린 아이들 네 명이 다가왔습니다. 그 중의 하나가 “목사님, 저는 스트레스가 많아서 힘들어요. 저를 위해 기도해주세요”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나는 저 나이에 스트레스의 ‘스'자도 몰랐는데 어찌 이렇게 달라졌는가’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른 아이가 “목사님, 우리 엄마가 다리도 아프고 팔도 아파서 힘들어요. 엄마를 위해 기도해주세요” 라고 했습니다. 그 옆의 아이는 “저는 괜찮아요”라고 합니다. 그래서 그 네 아이를 끌어안고 기도를 했습니다. 누가 이 아이에게 스트레스를 줍니까? 엄마인지 친구인지 선생님인지 모르지만 그 아이의 모습 그대로를 인정하지 않아서 그런 것입니다. 자신들이 원하는 모습대로 만들어놓으려 하기 때문에 아이에게 스트레스가 생긴 것입니다.

  우리에게 참 소중하고 필요한 것은 우리는 한 몸이라는 강한 지체의식입니다. 내 가족을 있는 그대로 수용하고 참아주고 사랑하고 돌봐주면서 우리가 하나라는 사실을 늘 의식해야 합니다. 어느 지체 하나가 아프면 가족 모두가 아픕니다. 아내가 고통 받고 슬퍼하며 쓴 뿌리가 생기면 가족이 모두 어두워집니다. 아이 하나가 스트레스를 받아 힘들어하면 부모도 얼마나 힘듭니까! 각 사람에게는 하나님이 주신 삶의 목적과, 능력과, 은사가 있어서, 무엇을 하든지 이 땅에서 살 수 있게 해주셨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스트레스를 주어서야 되겠습니까?

  하나님은 우리가 언제나 평화를 추구하기를 원하십니다. “평화의 매는 줄”이라고 했습니다. 우리 가족이 하나의 공동체로서 평안하고 즐겁게 살려면 평화를 깨뜨리지 않고 평화를 추구해야 합니다. 무엇을 하든 언제나 가정의 평화를 추구하는 평화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내 속에 평화가 있어야 내 가정의 염려와 근심과 불안을 제거하는 평화의 도구가 될 수 있습니다. 결혼이란 좋은 것도 나쁜 것도 아니고, 천국도 지옥도 아닙니다. 그저 하나의 도구입니다. 많은 젊은이들은 결혼하면 행복할 줄 압니다. 그것도 감사하지요. 그렇지 않다면 결혼하지 않을 것 아닙니까? 어떤 사람은 결혼이란 새장과 같다고 했습니다. 새장 안에 있는 새는 밖으로 나가기를 원하고 밖에 있는 새는 안으로 들어가 보고 싶은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가정을 만들어서 인구를 증가시키시고 가족과 함께 살게 하신 것입니다.

  가정은 우리가 즐겁게 하면 즐겁고 힘들게 하면 힘든 곳이 됩니다. 만약 지금 여러분 가정이 너무 힘들다고 생각된다면 바로 여러분이 그렇게 만든 것입니다. 행복은 무엇이라고요? 선택입니다. 단 한 번의 선택이 아니라, 생각과 행동, 말 등 모든 것에 대해 순간순간 행복을 선택하는 훈련을 해야 합니다. 그래서 습관적으로 행복을 선택하는 인격이 되어야 합니다. 인생에 갈림길이 있을 때마다 행복을 선택하는 훈련이 바로 신앙훈련입니다. 행복을 선택하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만약 그동안 불행을 선택해서 여러분 가정에 어려움이 많다면 오늘 이 시간에 회개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 내 가정이 이렇게 된 것은 내가 잘못 선택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은혜 주셔서 오늘부터 행복과 즐거운 삶을 선택하게 하여 주옵소서. 인내, 온유, 겸손, 사랑, 용납, 평화를 선택하게 하여 주옵소서!”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의도적으로 행복을 선택함으로써 여러분과 제 가정이 행복해지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모두 한 길을 가는 사람들입니다. 성령도 하나이요, 몸도 하나이요, 소망도 하나이요, 주도 하나이요, 믿음도 하나이요, 세례도 하나이요, 아버지 하나님도 한 분이요, 우리가 갈 천국도 하나입니다. 한 하나님을 섬기며 한 길을 가서 결국은 한 곳에서 영원히 같이 살아야 될 사람들입니다. 버리고 갈 수 없고 모른 척 할 수도 없습니다. 영원히 같이 살아야 될 내 가족들입니다. 우리 자신을 잘 훈련해서 하나님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내가 깨뜨림으로써 불행을 초래하지 않고, 부르심을 받은 자답게 이 땅에서 사랑하는 가족과 즐겁고 풍성한 인생을 살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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