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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회복된 가정 / 창 45: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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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복된 가정
(창45:7-15 )
 
  성경에 나타난 역사의 흐름을 보면 일정하게 진행되는 하나의 중요한 패턴이 있음을 발견합니다. “창조, 타락, 구속”입니다. 성경의 흐름은 이 세가지의 구도속에 언제나 잔잔히 흘러갑니다. 예수님이 오신 이후 펼쳐진 새역사의 구도도 마찬가지입니다. “새창조, 범죄, 그리고 회복”입니다. 십자가로 인간은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범죄합니다. 그러나 그런 인간을 하나님은 다시 회복시켜 가십니다. 이것이 신약의 중심이요, 구도입니다.

이 흐름은 공동체와 개인에게 그대로 적용됩니다. “선택, 문제, 회복”의 구도로 흘러갑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선택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떠납니다. 무서운 징계와 심판이 임합니다. 그러나 다시 회복됩니다.
개인도 마찬가지입니다. 다윗을 보십시오. 하나님은 다윗을 선택했습니다. 그에게 큰 은혜와 축복을 주셨습니다. 개인적으로, 국가적으로 다윗시대는 번영을 누렸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나님의 마음에 맞았던 다윗이 범죄합니다. 그러자 인생의 깊은 수렁에 빠집니다. 하나님은 다윗에게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저가 만일 죄를 범하면 내가 사람막대기와 인생채칙으로 징계하려니와...”(삼하7:19) 다윗은 사람막대기와 인생채칙의 시련을 받습니다. 한 순간에 추락해 인생의 밑바닥을 치는 아픔의 세월이 흘러갑니다. 그러나 그것이 끝이 아닙니다. 성경은 그의 회복을 알려줍니다. 어쩌면 다윗이야기는 회복이 중심입니다. 그는 건강도, 신앙도, 왕권도, 모두 회복했습니다. 그의 말년은 회복의 은혜속에 감사하는 생애였습니다.

  이것이 성경의 흐름이요,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뜻입니다. 성경이 개인과 공동체의 문제와 고통을 보여주는 이유는 거기가 끝이 아니라 어떻게 회복되었는가를 알려주기 위함입니다. 그것을 통해 하나님을 심어주려는 것입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 그분은 회복의 하나님이십니다. 역전의 하나님이십니다.

  우리가 인생을 살다보면 기쁘고 즐거운 일이 있습니다. 그러나 때론 인생의 깊은 수렁에 빠질 때가 있습니다. 사방으로 우겨싸임을 당합니다. 앞이 캄캄하여 아무것도 보이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난관에 부딪칠 때가 있습니다. 이것은 누구나 겪는 것입니다. 믿는 사람도 믿지 않는 사람도, 어린아이도 어른도, 남자도 여자도, 부자도 가난한 자도, 모두가 경험하는 삶의 과정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회복의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입니다. 우리 앞에 때론 문제와 장애물이 있지만 그것이 끝이 아닙니다. 회복이 없다면 신앙은 의미가 없습니다. 인생의 어려움이 있기에 어쩌면 회복은 우리 신앙을 더욱 견고하게 이끌어가는 원동력이 됩니다.

  5월을 우리는 가정의 달로 보냈습니다. 하나님이 만드시고 세우신 소중한 가정을 돌아보았습니다. 자녀와 부모와 그리고 부부의 대한 성경적인 원리를 찾아보았습니다. 가정생활의 원리에 따르면 모든 가정이 늘 행복하고 좋아야 하는데 실제 가정의 현장에는 크고 작은 어려움이 있습니다. 그래서 고민하고 아파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회복의 하나님을 믿습니다. 문제가 끝이 아닙니다. 신앙생활의 여정은 비극이 종말이 아니라 행복입니다. 이것이 성경의 가르침이고,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오늘 아침에 우리는 창세기 45장을 읽었습니다. 창세기는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누는데, 1장부터 11장까지의 전반부와 12장부터 50장까지의 후반부입니다. 전반부는 ‘시작’의 역사를 보여줍니다. 그리고 후반부에는 신앙과 삶의 본이 되는 4명의 족장을 소개합니다. 아브라함, 이삭, 야곱, 그리고 요셉입니다. 이들은 한 개인의 측면에서도 중요하지만 한 가정의 대표라는 측면에서 더욱 중요합니다. 여기 4가정에서 핵심적인 가정은 ‘야곱의 가정’입니다. 왜냐하면 창세기는 그의 가정의 이야기를 가장 많이 할애하여 기록하기 때문입니다. 야곱의 가정은 여느 가정과 같습니다. 아버지 야곱을 중심으로 자녀가 있고, 형제와 자매들이 함께 삽니다. 표면적으로 보면 정말 행복하고 아름다운 가정입니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 야곱의 가정은 문제가 있었습니다. 중요한 것은 문제를 잘 극복했다는 것입니다. 도대체 이 가정의 문제는 무엇이었고, 또 어떻게 그것이 극복되었을까요?

  아버지 야곱의 문제는 자녀에 대한 ‘편애’였습니다. 이 부분에 대해 창세기 37장에 자세히 나옵니다. 야곱에게는 12아들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야곱은 유독 요셉을 사랑했습니다. 그래서 요셉에게 더 많은 사랑을 주었고, 그에게만 채색옷을 입혔습니다. 그의 손에는 물을 묻히지 않게 했고, 늘 자기 곁에 있게 했습니다.

  일반적으로 부모는 모든 자녀를 사랑합니다. 자녀를 향한 부모의 사랑은 언제나 한결같다는 것을 우리가 압니다. 그래서 우리가 잘 쓰는 말 가운데, 열 손가락 깨물어서 아프지 않는 손이 있는가 보라고 말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야곱은 그렇지가 않았습니다. 그는 요셉을 유독 사랑했습니다. 물론 표면적인 이유가 있었습니다. 요셉은 자기가 사랑하는 아내 라헬을 통해 낳은 아들이었고 또 노년에 얻은 아들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더 내면적이고 근원적이 이유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야굡이 부모의 편애를 통해 자랐기 때문입니다. 좋지 않은 것을 따라 했고,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배운 것입니다. 나쁜 것을 부모로부터 배웠습니다. 그것을 자기 대에 끊지 못했습니다. 이것이 야곱의 문제였습니다.

  아들인 요셉도 역시 문제가 있었습니다. 요셉의 문제는 성급하게 말하고 행동한 것입니다. 이것이 창세기 37장 4절이하에 소개되고 있습니다. 요셉은 꿈을 꾸었습니다. 그 꿈은 형들과 아버지가 절하는 꿈입니다. 정말 꿈대로 요셉은 높아졌습니다. 그런데 어쩌자고 요셉은 꿈이야기를 형들에게 했느냐는 것입니다. 꿈이야기를 듣기 전에도 이미 형들은 요셉에 대해 좋지 않은 감정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런 상황을 누구보다도 잘 알던 요셉이 어쩌자고 꿈이야기를 형들에게 했느냐는 것입니다. 그야말로 불난집에 부채질한 것입니다. 결국 꿈이야기를 통해 형제들은 더욱 악한 감정을 가졌습니다. 또 요셉은 인생의 험난한 길을 갑니다. 요셉은 성급했습니다. 즉흥적이었고, 자기 중심으로 판단한 것입니다. 요셉생애의 어려움은 하나님편에서는 높아지는 과정이었지만 자신에게는 뼈져린 실패의 결과입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이 가정의 가장 큰 문제는 미움과 갈등이었습니다. 요셉의 형제들이 이런 면에서 커다란 잘못을 했습니다.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아무리 아버지가 요셉을 사랑하고 편애한다해도 내리사랑이라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이미 아버지에게서 자기들이 먼저 받았던 사랑을 생각하면 그렇게까지 질투할 것이 무엇입니까? 또 요셉이 성급해서 꿈이야기를 했더라도, 이해하지 못하고 한참 커야할 동생의 사기를 이렇게 짓밟을 이유가 어디에 있습니까? 그들의 마음에는 미움으로 가득찼습니다. 그 미움이 죽이려 했고, 구덩이 넣었고, 동생을 팔아 넘기게 된것입니다. 사랑이 아름다운 것이라면 미움은 정말 무서운 것입니다. 가정의 문제는 미움부터 시작됩니다. 그것을 다스리지 않고, 해결하지 않으면 엄청난 결과를 초래합니다. 미움에서 살인이 나왔고, 거짓말로 이어졌으며, 불안과 초조함이 삶을 지배했습니다. 또 화목했던 가정이 완전히 무너져 버린 것입니다.

  여러분, 이것이 바로 야곱의 가정입니다. 우리의 가정에 흔히 일어날 수 있는 이야기입니다. 성경은 그것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이런 가정의 문제와 사람들의 약점을 드러내는 것이 결코 목적이 아닙니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성경구도의 마지막은 ‘회복’입니다. 야곱의 가정은 물론 문제가 있었지만 회복되었습니다. 부모의 편애와 아들의 성급함과 형제의 미움으로 갈기갈기 찢어졌지만 하나님은 이 가정을 결코 잊지 않고 회복의 은혜를 베푸신 것입니다.

  야곱의 편애가 어떻게 해결되었는가 보십시오. 창세기 49장에 야곱이 아들들을 하나 하나 축복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야곱은 여기에서 정말 그의 아들 하나 하나에 대한 사랑과 관심을 쏟았습니다. 누구 하나도 예외없이, 어떤 아들에게도 치중함이 없이, 그는 모든 자녀를 축복합니다. 이제 더 이상 편애는 없습니다. 야곱에게서 요셉만 중요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르우벤도 레위도 유다도 모두 귀한 자녀였습니다. 생애 마지막에 야곱이 이런 일을 한 것을 보면 자기시대에서 나쁜 영향을 끊겠다는 의지입니다. 그래서 성심을 다해 축복을 빌면서 생을 마감합니다.

  성급했던 요셉은 어떻게 회복되었을까요? 그는 이제 기다리는 사람으로 변했습니다. 그는 고향을 떠나 말할수 없는 수모와 고생을 하면서도 하나님의 때를 기다립니다. 억울한 누명을 쓰고 감옥에 있어도 그는 조급하지 않습니다. 술맡은 관원의 꿈을 해몽하고 곧 바로 억울한 누명을 풀어주겠다는 사람을 마냥 기다립니다. 바로가 자기를 찾기까지 그는 오랜 세월을 인내하며 기다립니다. 요셉의 신앙은 기다림의 신앙입니다. 참는 신앙입니다. 이것이 참 귀한 신앙임을 기억하십시오.
  또한 그는 신중한 사람으로 변했습니다. 그는 더 이상 즉흥적이지 않습니다. 계획없이 아무렇게나 하지 않습니다. 말과 행동 하나에 신중을 기합니다. 요셉이 애굽의 총리가 된 것으로 다 끝난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시작입니다. 지금부터 잘해야 했습니다. 그가 애굽을 다스릴 때, 애굽은 가장 번성한 나라가 됩니다. 요셉은 경제정책을 잘 실행했습니다. 모든 것을 신중하고 지혜롭고 계획성있게 추진했습니다. 조급함이 없이 바르게 판단하고 진행했습니다. 그래서 후에 바로왕의 두터운 신임을 얻었고, 백성들의 인정을 받았습니다. 이 모두는 한때 가정에서 그의 성급함이 교훈이 된것입니다. 이것은 요셉이 잘 회복된 모습이 아닐 수 없습니다.

  무엇보다도 이 가정에 있었던 미움과 갈등이 어떻게 회복되었을까요? 오늘 본문이 바로 그것을 전합니다. 형제들은 요셉을 상인에게 팔아 넘기고 마음 졸이며 살았습니다. 미움의 끝이 얼마나 무서운가를 그들은 알았습니다. 그러나 후회해도 소용이 없었습니다. 이미 떠난 요셉인데, 요셉이 풀지 않으면 자기들로서는 평생 해결할 수 없었습니다. 그렇게 20년의 불안한 세월을 보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가나안에 기근이 왔습니다. 그때 그들은 양식을 구하기 위해 애굽으로 내려갔습니다. 거기에서 요셉을 만난 것입니다. 처음에는 애굽의 총리가 요셉인줄 전혀 몰랐습니다. 우여와 곡절 끝에 요셉은 자기의 신분을 밝힙니다. 그것이 45장의 내용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요셉은 지금 자기를 죽이려했던 형들을 만났습니다. 그야말로 원수를 만난 것입니다. 요셉은 충분히 형들에게 빚을 갚을 기회가 왔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보란 듯이 죽일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요셉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을 품었습니다. 미움과 갈등을 용서로 풀었습니다. 미움은 복수로 푸는 것이 아니라 용서로 푸는 것을 알려준 것입니다. 요셉은 자기의 신분을 밝히면서 정을 억제하고 못하고 대성통곡을 합니다. 그 통곡은 20년동안 가슴 깊이 응어리진 한을 더 토해내는 눈물입니다. 이것이 요셉의 믿음입니다. 한 순간도 하나님을 놓치지 않았던 요셉은 눈물로 상처가 치유되었고, 죽이고 싶은 형제를 용서하게 된것입니다. 그리고 그는 본문 8절에 이렇게 말합니다. “그런즉 나를 이리로 보낸 자는 당신들이 아니요 하나님이시라...”

  그제서야 형제들은 요셉의 목을 끌어 안고 같이 울었습니다. 용서와 회복의 현장이요, 미움과 갈등이 해결된 현장입니다. 세상에서 정말 가장 보기좋은 모습입니다. 용서가 있고, 화해가 있고, 사랑이 있는 곳보다 아름다운 곳은 없습니다. 천국은 바로 용서가 있는 곳입니다. 요셉은 바로 천국을 땅에서 만들어 낸것입니다.

  여러분, 이처럼 회복되었습니다. 편애도, 성급함도, 미움도, 모든 것이 회복되었습니다. 이것이 야곱가정을 통해 주시는 교훈입니다. 야곱의 가정은 적잖은 문제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해결이 되었습니다. 극복이 되었습니다. 다 회복되었습니다.

  이제 우리는 가정의 달을 마감합니다. 내가 너와 함께 사는 공동체에 때론 갈등이 있습니다. 그것 때문에 아파합니다. 크고 작은 어려움과 문제가 우리의 삶에 언제나 있기 마련입니다. 사업과 직장과 인간관계와 가정과 교회공동체에 문제가 생길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결코 마침표가 아닙니다. 하나님은 모든 문제와 갈등이 해결되도록 이끌어 가십니다. 이 은혜가 모든 가정위에 임해야 합니다. 그래서 아름다운 가정을 만들어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의 사명입니다. 그러기위해 부모와 나와 형제의 입장에서 무엇을 어떻게 해야하는지 배워야 합니다. 나쁜 것은 내 대에서 끊어야 합니다. 모든 것을 늘 기다리며 신중해야 합니다. 사랑과 용서로 미움과 갈등을 이겨야 합니다.

  오늘 저는 성경이야기에 초점을 맞추었습니다. 성경만이 문제를 알고 답을 제시하기 때문입니다. 성경안에 해결이 있고, 회복이 있습니다. 이제 회복의 하나님을 바라 봅시다. 그래서 가정도, 건강도, 신앙도, 모든 불편한 관계도, 사업도 직장도, 모두 회복되는 놀라운 은총이 삶에 임하시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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