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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님 나라에 맞는 사람 (마 19:1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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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나라에 맞는 사람
마태복음 19: 13-30

오늘 본문을 보면 어는 젊은 부자 청년이 등장합니다. 이 청년은 예수님을 찾아와 영생을 얻는 방법에 대해 물었습니다. 이 이야기는 누가복음 8장에도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청년에 대해 살펴보면 이 청년은 큰 부자였으며, 관원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참 생명 즉 영생을 소유하지 못한 사람이었습니다. 그 청년은 많은 재물과 명예를 얻고 권력을 가지고 있었지만 참 생명의 가치를 모르고 있었고, 하나님나라의 백성이 되는 방법을 알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이 젊은 부자는 오직 재물과 명예, 권력 같은 세상적인 것에만 관을 가지고 살았습니다.

오늘날 우리들 가운데에도 영적인 일에는, 영생의 관해서는 관심이 없으면서 재물에만, 명예와 물질에만 관심을 가지고 사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신앙인들의 가정에도 자녀들의 영혼의 문제보다, 영생의 즉 구원의 문제보다 학교 교육에, 공부 잘하는 것에만 초점을 맞추어 살아갑니다. 그 영혼이 죽었는가 살았는가에 대한 관심보다 세상적으로 잘 된는 것에만 관심을 가지고 자녀들을 가르칩니다. 이렇게 살아가면 결국 우리 자녀들은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기회를 놓치고 말 것입니다. 오늘 성경에 등장하는 젊은 부자는 재물, 권력, 명예에만 관심을 가져 거기에 빠져 있다보니 주님께서 하나님 나라에 갈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 주었지만 이 젊은 부자는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재물이 아까워, 권력이 버릴 수 없어 명예를 버릴 수 없어서 하나님 나라를 포기하는 어리석음을 범했던 것입니다.

그럼 하나님 나라에 맞는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요?

먼저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한 사람은 어린아이들처럼 자기 자신을 겸손하게 낮추는 사람일 것입니다.
예수님을 만나서 영생을 얻으려고 했던 청년은 율법을 지키는 데는 어린아이보다 나았을지 모르지만, 어린아이와 같은 마음을 소유하지 못했습니다. 그렇기 때문 그는 하나님나라를 선물로 받을 수가 없었습니다.
본문 16절 말씀을 보면 그는 영생을 얻기 위해 자기가 무엇인가를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지고 주님께 나왔습니다. 또 20절을 보면 계명을 지키라는 주님의 말씀에 그는 모든 계명을 다 지켰다고 의기양양하게 대답을 했습니다. 그러나 이 청년의 모습 속에 부족한 것이 있었는데 그것은 하나님 나라 백성에게 가장 필요한 겸손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결국 자신의 교만 때문에 자기가 세상에서 내세울 수 있는 물질, 명예, 권력을 버리지 못해 하나님 나라 백성이 되는 일에 실패를 했던 것입니다.

그는 재물 때문에, 명예와 권력 때문에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낮추지 못했습니다.
우리 역시도 이 세상의 또 다른 것들 때문에 이 젊은 부자와 같은 비슷한 실수를 할 수 있습니다. 이 청년에서 있어 문제는 교만, 욕심, 자기 집착이었습니다. 그렇다고 한다면 나는 지금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하나님 보시기에 또 주위 사람들이 보기에 겸손한 태도를 가지고 살고 있는가 하는 것을 살펴보아야 합니다. 그렇지 못하다고 한다면 빨리 자신을 돌이켜 겸손의 자리에 앉아야 할 것입니다. 지혜자는 (잠 29:23)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사람이 교만하면 낮아지게 되겠고 마음이 겸손하면 영예를 얻으리라”

주님께서는 마태복음 18:3-4절 말씀에서 이렇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가라사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돌이켜 어린 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어린 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그이가 천국에서 큰 자니라” 주님은 어린아이처럼 자기를 낮추는 겸손함이 없이는 천국에 들어갈 수 없음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믿음의 성도들은 어린아이들처럼 자신을 낮추고 내게 있는 것을 포기하는 겸손함이 있어야 합니다. 자기 것을 포기하지 못할 때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젊은 부자처럼 하나님의 나라를 소유하는데 실패하게 될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이 부자의 모습을 교훈 삼아 겸손한 마음을 소유함으로 하나님 나라를 소유할 수 있는 복된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하나님 나라에 맞는 사람은 주님을 위해서라면 이 세상 모든 것을 포기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사는 자들입니다. 23절에 청년을 보내고 난 뒤 예수님께서는 경제적으로 풍요한 사람들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기가 어렵다는 아주 파격적인 선언을 하십니다. 경제적인 풍요를 하나님의 축복으로 상징으로 생각했던 사람들로서는 도저히 받아들이기 어려운 이 가르침은 재물자체, 풍요자체를 부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그것을 하나님보다 더 중요하게 여기는 것을 경고하시는 말씀입니다. 특히 요즘 같이 돈 있으면 모든 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물질 만능주의가 만연한 사회에서는 정말 적합한 교훈의 말씀이 아닐 수 없습니다. 믿음의 조상 이었던 아브라함은 자기 친척 본토 집을 떠나라 했을 때 많은 재물과 안정된 생활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 말씀에 순종한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을 주님을 위해, 주님의 말씀이기에 자신에게 손해가 된다 하더라고 기꺼히 그 말씀에 순종하여 떠났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믿음의 조상이 될 수 있었습니다.

믿음을 가진 성도라고 말하면서 예수님보다 어떤 다른 것에 더 관심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면 그것이 바로 우리 마음속에 있는 재물이 될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우리 마음속에 있는 재물까지도 주님을 위해 그 말씀에 따라 순종함으로 기꺼이 버릴 수 있는 성도님들이 되어야 합니다.
어떤 책을 보다가 감동적인 이야기를 읽은 적이 있습니다. 50세가 넘어서야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된 한 치과의사 이야기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뜻 앞에 자신을 굴복시키기로 결정하고 재산을 하나하나 정리했습니다. 그리고 10년 동안 그렇게 정성들여 사둔 산과 별장을 포기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자녀교육에 대한 꿈도 포기하고 여러 가지 미래의 계획도 포기했습니다. 그의 주위 사람들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꼭 예수를 그런식으로 믿어야 되느냐고 질문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오로지 중국 연변에 있는 조선족 생각으로 가득차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생각이라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이야기 하기를 “오십평생 나를 위해서 이만큼 살아왔으니 후회가 없습니다. 이제 주님의 뜻대로 나의 남은 생애를 바치게 되어 얼마나 기쁜지 모르겠습니다. 나의 선택과 결정은 결코 내 자신에게나 다른 사람에게 자랑할 만한 것이 되지 못합니다. 그것은 예수님을 생각하면 너무나 당연한 것이지요”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어느날 조용히 가족들과 함께 조국을 떠나 순종의 삶을 시작했습니다. 이 얼마나 멋진 모습입니까? 과연 나는 주님을 위해 무엇을 포기하고 순종하며 살고 있는지 한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순종하지 못하고 살았다면 주님과의 관계가 우선되기 위해 나의 삶 가운데 무엇이 변해야 합니까? 이 시간 한번 깊이 묵상해보시는 성도님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 나라에 맞는 사람은 장래의 소망을 소망하는 사람입니다.
우리는 주님을 믿고 내세의 소망을 가지고 있다고 하면서도 내가 지금 여기에서 누리고 갖고 또 인정받으려고 하는 모습이, 많은 그리스도인의 모습 속에서 발견하게 됩니다.
그러나 이런 마음이 들때 마다 우리는 주님께서 오시는 날 그 영광을 그리면서 지금 나의 마음자세나 생활하는 모습이 그 영광에 합당한지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바울이 고통 가운데 환난 가운데에서도 감사하며 기뻐할 수 있었던 것은 자신의 미래에 나타날 영광을 바라 볼 수 있었기 때문에 감사하며 기뻐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로마서 8장 18절을 통해 이렇게 고백하고 있습니다. “생각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복음을 전하면서 많은 어려움과 고통을 당하면서 감사하며 기뻐할 수 있었던 것은 이처럼 장차 자신에게 주어질 영광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는 감옥에 갇혀 있으면서도 성도들에게 편지를 통해 “주안에서 기뻐하라 다시 내가 말하노니 기뻐하라”고 끊임없이 말했습니다. 감옥에 갇혀 기뻐할 수 없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바울은 자유롭게 살아가는 자들에게 기뻐하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바울이 할 수 있었던 것은 내세에 대한 소망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바울은 말년에 디모데에게 디모데 후서 4장 7-8절을 통해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니라”
이런 바울의 고백은 그가 미래에 자신에게 주어질 영광을 소망하고 있었기 때문에 어떠한 어려움도 굴하지 않고 굳건한 믿음을 지키고 살았다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바로 이같은 소망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이 하나님나라에 합당한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성도여러분 기억하십시오. 보이는 것은 잠깐이지만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한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정말 어린아이 같지 자신을 낮추는 성도, 주님을 위해서라면 내 모든 것을 드릴 수 있는 성도, 미래에 우리에게 주어질 영광을 바라보면서 어떤 어려움 가운데에서도 주님의 말씀에 순종함으로 말미암아 영원한 나라를 소유하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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