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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천국의 열쇠(4) / 마 16:13 -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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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의 열쇠(4)
마 16 : 13 - 20

많은 사람들이 궁극적으로 추구하고 소원하며 살아가는 것이 있다고 하면 그것은 한 마디로 천국일 것입니다. 아주 단순한 (그래서 좀 유치하게 까지 보이기도 하지만) 말로 표현하자면 그것은 천국에서 행복하게 사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보물섬과 같은 천국에 가는 지도와 그 천국의 문을 여는 열쇠를 얻기 위하여 나름대로 자신의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천국의 열쇠로 생각하고 얻으려고 하는 것들이 여러 가지가 있지만 가장 대표적인 것을 꼽으라고 하면 그것은 돈입니다. 사람들은 돈만 있으면 천국이 열리 줄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돈을 천국의 열쇠로 알고 있습니다. 알고 있는 것이 아니라 아주 확신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무조건 돈이 많은 사람을 잘 사는 사람, 돈이 없는 가난한 사람을 못 사는 사람이라고 단정적으로 생각하고 말하며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의 말씀을 통하여 우리가 배울 수 있는 가장 중요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돈이 천국의 열쇠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돈으로는 천국을 열 수 없다는 것입니다. 베드로가 천국의 열쇠를 얻게 된 것은 돈 때문이 아니라 믿음 때문이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지극히 평범한 말씀 같아 보이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매우 중요한 사실이며 말씀입니다.

전에도 말씀을 드렸습니다만 저는 철학을 중히 여깁니다. 조금씩 나이가 들어 갈수록 결국 모든 문제가 철학의 문제라는 것을 알게 되면 어떤 철학을 가지고 사느냐에 그의 인생이 달려있다는 것을 느낍니다.

제가 중히 여기는 철학 중에 돈에 대한 철학이 있습니다. 저는 돈에 대한 철학이 생에 있어서 무엇보다도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여 스스로도 많은 생각을 하지만 목사로서 할 수 있는 대로 그것을 교인들에게 설교하고 강의하려고 무척이나 노력하고 있습니다. 물론 목사인 저의 철학의 근본은 성경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요즘 제가 계속해서 설교하고 있는 주제는 천국입니다. 특별히 천국의 열쇠입니다. 천국은 구원을 의미하는 것으로 우리 기독교의 가장 핵심적인 단어와 주제입니다. 그 주제를 다루면서 깊이 다루게 되는 것이 바로 돈에 대한 문제입니다. 저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천국과 천국의 열쇠를 생각할 때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깊이 생각하고 빠져 있는 것이 바로 돈이기 때문입니다. 때문에 돈에 대한 문제를 깊이 생각하고 다루지 아니하고 천국을 논하는 것은 수박 겉핥기식의 우를 범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진리이신 하나님의 말씀을 좌우에 날선 그 어떤 검보다도 예리한 것으로 비유하신 적이 있으십니다. 참으로 적절한 비유가 아닐 수 없습니다. 저는 진리를 생각할 때 마다 예리한 검을 생각합니다. 그리고 진리의 그와 같은 예리함을 저는 좋아하고 사랑합니다.

신앙과 돈이라는 주제를 생각할 때 지난 번 설교에서 깊이 다루었다시피 기복주의와 영지주의와 같은 극단적인 두 종류의 사람들이 첨예한 대립을 벌이게 됩니다. 기복주의란 물질을 지나치게 인정하고 긍정하는 주의라면 영지주의란 물질을 지나치게 부정하고 정죄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제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만 기복주의와 영지주의 수준에서 신앙과 돈에 대한 주제를 생각하는 사람들은 진리의 예리함에 미치지 못한 사람입니다. 예리한 칼로 진리를 구별해 내지 못하고 무딘 칼로 진리를 예단하는 사람들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저라고 별 수 있겠습니까마는 할 수 있는 대로 예리한 칼로 무딘 칼에 의하여 뭉그러진 진리를 살려보려고 나름대로는 무척 애를 쓰고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저는 영지주의자도 아니고 기복주의자도 아님에도 불구하고 영지주의자들에게는 신 기복주의자라고 공격을 받게 되고 기복주의자들에게는 신 영지주의자라고 공격을 받게 되는 것 같습니다.

지난 번 설교에서 저는 기복주의와 영지주의를 이야기하면서 그 둘 다 다가 성경이 말씀하는 진리에서 벗어나 있다는 것을 이야기 하였습니다. 그러면서도 특히 영지주의의 문제점을 중점적으로 다루었습니다. 저는 영지주의의 극단적인 물질과 세상을 부정하는 것을 부정하면서 하나님의 구원과 축복 속에는 물질과 세상도 포함되어 있는 것이라는 점을 강조하였습니다. 그리고 물질과 세상도 하나님을 위하여 잘 사용하면 좋고 버릴 것이 없다는 점을 강조하였습니다.

그러나 오늘 설교는 지난 주 와는 달리 기복주의의 한계성과 위험성을 경계하는 쪽에서의 설교를 하려고 합니다. 잘못 오해하면 이랬다 저랬다는 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고 들릴 수 있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나름대로 무딘 칼로 신앙과 돈에 대한 진리를 논하지 않고 보다 좀 예리한 칼로 신앙과 돈에 대한 진리를 논하고 싶은 안타까움 때문이라는 것을 알아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여러분들이 이미 잘 아시는 바와 같이 저는 돈을 부정하지 않습니다. 부자도 부정하지 않습니다. 더 솔직히 이야기하면 저는 돈을 좋아합니다. 이렇게 이야기하는 것 때문에 많은 오해도 받고 공격도 받지만 돈이 좋다는 것이 제 솔직한 심정입니다. 그러나 제가 돈이 좋다고 이야기하는 것은 기복주의자들이 돈이 좋다고 이야기하는 것과는 좀 다릅니다. 돈에 대한 이해와 철학이 조금 다르기 때문입니다. 설명 드리기는 쉽지 않지만 기복주의자들과 같이 돈을 좋아하는 것은 아니니 너무 염려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저는 기복주의자들의 문제점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기복주의자들의 문제점과 위험성을 알고 있다고 꼭 영지주의자들처럼 돈을 죄악시하고 부정해야만 하는 것은 아닙니다.

저는 돈을 좋아하고 인정하지만 돈을 천국의 열쇠로 생각하지 않고 인정하지 않습니다. 저는 오늘 그것에 대한 이야기를 좀 깊이 있게 하려고 합니다. 오늘 설교의 주제는 돈은 영지주의자들이 생각하고 이야기하는 것과 같이 무조건 악하고 부정적인 것은 아니지만 분명한 것은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고 신뢰하고 있듯이 돈이 천국의 열쇠는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제부터 제가 자주 반복하는 내용을 반복하려고 합니다. 들어서 아는 이야기라고 흘려듣지 마시고 마음에 새겨 잘 들으시기를 바랍니다.

모든 귀한 것에는 가짜가 있습니다. 가짜가 있다는 것은 그것이 명품임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복은 귀한 것입니다. 그럼으로 반드시 가짜가 있습니다. 복에는 진짜 복과 가짜 복이 있습니다. 진짜 복의 메이커는 하나님이시고 가짜 복의 메이커는 사탄입니다. 사탄은 아주 교묘한 사기꾼이기 때문에 가짜 복을 아주 진짜처럼 만들어 우리를 속입니다.

‘평안’과 ‘편안’ 둘 중에 하나는 진짜 복이고 하나는 가짜 복입니다. 예. ‘평안’이 진짜 복이고 ‘편안’은 가짜 복입니다. 물론 ‘편안’이 무조건 나쁜 것은 아니지만 분명한 것은 ‘편안’이 우리를 행복하게 해 주지는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복’을 이야기 할 때 ‘편안’은 가짜입니다. 유사품입니다.

‘편안’은 좋은 것 같으나 우리를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그리고 신앙적으로 나약하게 하며 권태롭게 합니다. 그래서 편안은 우리에게 참된 만족과 행복 그리고 진정한 쉼과 안식을 가져다주지 못합니다.

서양 속담에 ‘우유를 마시는 사람보다 우유를 배달하는 사람이 더 건강하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우유를 마시는 사람은 편하게 사는 사람 우유를 배달하는 사람은 힘들게 사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편히 살면 살수록 사람은 점점 약해 질 수밖에 없습니다.

때문에 하나님은 당신의 사랑하는 자녀인 우리들은 온실 속에서 편하게 기르시지 않으십니다. 때로는 불 속에도 집어넣으시고 때로는 물 속에도 집어넣으십니다. 그와 같은 환난을 통하여 당신의 사랑하는 자녀들을 연단시키십니다. 당신의 자녀를 독수리처럼 강한 존재가 되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를 믿으면 무조건 편해 질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착각입니다. 믿음이 우리에게 주는 것은 편안이 아니라 평안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돈은 우리에게 평안을 주지 못합니다. 돈이 우리에게 줄 수 있는 것은 평안이 아니라 편안입니다. 그러므로 돈은 진정한 의미의 복이 될 수 없습니다.

존경하는 교수님 한 분이 옛날에 망원동에 사셨었습니다. 망원동에 큰 수재가 있었을 때 마포에 있는 친척 집으로 피난을 가셨습니다. 그 친척 집은 화장실이 실외에 있는 그다지 넉넉지 못한 집이었던 같습니다. 아침에 대야에 물을 떠서 마당에서 세수를 해야만 했습니다. 가난하다는 것은 불편하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었습니다. 교수님은 불편하게 세수를 하시면서 하나님께서 다시 나를 가난하게 하셔서 이렇게 불편하게 살라하시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하셨답니다. 처음에는 싫은 생각이 강하게 들더니 점점 그렇다고 못 살 것은 없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드셨답니다. 저는 강의 시간에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만들어 내었습니다.

신혼 부부 하나가 결혼 하여 셋방에 살았습니다. 셋방에 살아도 그들은 너무 행복했습니다. 어디서 사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누구하고 사느냐가 중요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사는 것이 저들은 너무 너무 행복했습니다.
그러다가 아이가 태어나게 되었는데 이 아이가 크면서 주인집의 유리창과 장독을 깨는 등 개구쟁이 노릇을 하자 집 주인은 저들에게 ‘방 빼’라는 소리를 하였습니다. 그 말에 깊은 상처를 받은 두 부부는 그날부터 허리띠를 동여매고 안 입고 안 먹으면서 돈을 모아 집을 장만했습니다. 물론 처음부터 크고 좋은 집을 살 수 없어서 작고 화장실이 밖에 있는 허름한 집을 사게 되었습니다. 그래도 너무나 좋았습니다. ‘방 빼’라는 말을 할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친구가 아파트를 장만하고 집들이를 하였습니다. 그 집에 가보니 화장실이 실내에 있었습니다. 그것을 보니 화장실이 밖에 있는 자기 집이 너무 불편해 보였습니다. 다시 허리띠를 동여매고 열심히 안 입고 안 먹고 절약을 하여 드디어 화장실이 실내에 있는 아파트를 장만하게 되었습니다. 얼마나 편하고 좋았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또 문제가 생겼습니다. 아까 그 친구가 좀 더 넓은 아파트를 장만하고 집들이를 하게 된 것이었습니다. 그 집에 가보니 화장실이 둘이었습니다. 그것을 보는 순간 화장실이 하나인 자기 집이 너무 불편해 보였고 그렇게 불편한 집에서 살고 있는 자신들이 너무 초라하고 불행해 보였습니다. 그래서 또 열심히 노력하여 화장실이 둘 있는 아파트를 사서 이사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아파트에서 몇 년 살다가 죽었습니다. 셋방에서 시작한 사람이 화장실이 둘 있는 아파트를 장만하려면 그만큼 시간이 걸리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이 사람은 평생 무엇을 하다가 죽은 사람입니까? 예. 그는 평생 화장실을 바꾸다가 죽은 사람입니다.

그 사람이 여러분은 누구라고 생각하십니까? 여러분 자신이 아니십니까? 저는 화장실이 하나 있는 것 보다는 둘이 있는 것이 좋고, 밖에 있는 것 보다는 안에 있는 것이 좋습니다. 저도 지금은 화장실이 둘 있는 집에서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화장실에 인생을 걸고 싶은 마음은 전혀 없습니다.

그러나 믿음은 우리에게 돈이 줄 수 없는 평안을 줍니다.

막내가 여섯 살 때 손을 잡고 골목을 내려가고 있었습니다. 골목 아래에서 5학년짜리 하나가 올라오고 있었습니다. 그 아이를 보는 순간 우리 아이가 ‘아빠 저 형아가 나 때렸어’라고 일러 주었습니다. 며칠 전에 맞은 복수를 해 달라는 뜻이었습니다. 못 들은 척 그냥 지나려고 하자 우리 막내는 내 손을 뿌리치고 가 그 아이를 발로 차주고 돌아왔습니다. 여섯 살짜리가 5학년짜리 아이를 발로 차주었지만 아무런 문제가 없었습니다. 옆에 뚱뚱한 제 아빠가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저는 그 때 매우 중요한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다윗이 어떻게 골리앗을 이겼는지를 분명히 알게 되었습니다.

다윗 여섯 살. 골리앗 5학년. 하나님 80kg.

믿음은 우리에게 용기를 주고, 믿음은 우리에게 세상이 줄 수 없는 평안을 줍니다. 그러나 절대로 돈은 우리에게 용기와 평안을 줄 수 없습니다. 돈이 우리에게 줄 수 있는 것은 그저 ‘편안’ 뿐입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그러므로 돈에 생명을 걸지 말고 믿음에 생명을 거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귀한 돈으로 평생 화장실만 바꾸지 말고, 귀한 돈을 하나님과 사람을 위하여 씀으로 가치 있는 삶을 살고 돈보다 귀한 믿음을 가지고 돈이 줄 수 없는 구원의 삶을 사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돈은 절대로 천국의 열쇠가 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으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베드로가 천국의 열쇠를 갖게 된 것은 돈 때문이 아니라 믿음 때문이었다는 사실을 배우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돈을 천국의 열쇠를 알고 살아가고 있지는 않으십니까? 영지주의자와 금욕주의자들처럼 무조건 돈을 부정하고 죄악시하며 화장실 둘 있는 것을 정죄하며 살 필요는 없습니다. 한계를 알고, 또 감사하면서 살면 좋은 것이지 나쁜 것은 아닙니다. 그러므로 무조건 부자들을 도둑놈 취급하며 남들이 몇 평 아파트에 살며 무슨 자동차를 타고 다니는가 그리고 그 사람의 연봉이 얼마나 되는가에 온 신경을 곤두세우며 살 필요 없습니다. 자기 기준을 가지고 그와 같은 사람들을 심판하며 살 필요 없습니다. 그와 같은 조부라운 마음과 생각들 때문에 세상이 얼마나 초라해지고 피곤해 지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돈이 천국의 열쇠는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무조건 돈을 모으려고만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무조건 돈을 벌려고만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할 수 있는 대로 깨끗하고 바르게 하나님이 주시는 돈만 받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그것을 무조건 쌓아두려고만 하지마시고 (물론 적당한 저축까지 부정해서는 안 되지만) 하나님을 위하여, 하나님의 뜻대로 잘 쓰는 사람들이 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욕에 대한 욕심 때문에 십일조까지 떼어 먹으면서 돈을 모으지 마세요. 어려운 이웃들에 대하여 인색한 구두쇠가 되면서까지 돈을 모으지 마세요. 돈을 잘 벌 줄 아는 사람이 되세요. 그리고 잘 쓸 줄 아는 사람이 되세요.

말씀을 마치려고 합니다. 오늘로서 돈에 대한 이야기는 일단 마무리하려고 합니다. 다음 주부터는 정말 천국의 열쇠가 되는 믿음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이야기하려고 합니다. 저는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들이 영지주의와 금욕주의에 빠져 이상한 거룩과 이상한 경건에 사로 잡혀 자신과 타인을 판단하고 심판하는 엉뚱하고 피곤한 사람이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기복주의자들처럼 은근히 신앙의 목적을 돈 벌어 부자가 되는데 두고 사람도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돈은 절대로 천국의 열쇠가 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열심히 벌어 바르게 쓰는 사람들이 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있는 힘을 다하여 천국의 열쇠인 믿음의 부자가 되기 위하여 힘쓰는 저와 여러분들이 다 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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