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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여호와를 기뻐하라 (시 3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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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를 기뻐하라(시편 37:1-6)
 
기독교는 기쁨의 종교입니다. 우리가 믿는 기독교는 희락의 종교입니다. 우리 앞서 교회를 섬기던 목사님들이 기록해 놓은 글에 보면 불교는 상갓집과 같다고 했습니다. 인생무상을 말하고 모든 것이 없어지고 모든 것이 죽어 사라진다고 합니다. 그러니 죽음의 종교는 상갓집 종교입니다. 정말 나무아미타불입니다. (공 드려 해놓은 일이 허사가 됨을 의미)유교는 뭣과 같은고 하니 제삿집과 같다고 하였습니다. 밤낮 효도한다고 하면서 제사 지냅니다. 유교대로 살면 일년 내내 제사만 지내다가 세월 다 갑니다. 정말 유교는 제삿집과 같은 종교입니다.

그런데 기독교는 잔칫집과 같다고 하였습니다. 상당히 의미 있는 비교입니다. 기독교는 확실히 기쁨의 종교요, 희락의 종교입니다. 복음은 바로 행복과 기쁨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복음과 접촉하면 기쁨을 맛보게 됩니다. 희락의 사람이 됩니다. (행2장→ 초대교회)

오늘 본문 4절에 <또 여호와를 기뻐하라 저가 네 마음의 소원을 이루어 주시리로다>라고 하였습니다. 다윗은 오늘 본문에서 여호와를 기뻐하라고 하였습니다. 그리하면 하나님께서 소원을 이루어 주신다고 하였습니다.

오늘 3월 네 번째 주일에 이 말씀에 의지해서 은혜 받으려고 합니다. 우리 하나님께서 은혜 내려 주실 줄 믿습니다.

여호와를 기뻐하라는 말은 하나님을 즐거워하라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을 즐거워한다는 말의 뜻이 무엇입니까?

1. 하나님으로 만족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다윗은 시편 23편 1절에서 <여호와는 나의 목자 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 대한 만족이요 하나님 안에서 얻는 행복입니다. 히브리 언어의 축복이란 개념 속에는 "즐거워한다"는 뜻이 있습니다. 이는 마치 어린아이가 엄마를 통해 얻는 만족을 뜻하는 말입니다. 어린아이에게 엄마가 우주입니다. 엄마는 아이의 모든 것이 됩니다. 이렇게 말해도 될 것입니다.

"엄마는 어린아이의 목자이니 아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어린아이에게는 엄마만 있으면 됩니다. 그 엄마 안에 모든 아이의 필요가 있습니다. 제가 여러분에게 자주 말합니다. 아이가 목마른 것도, 배고픈 것도, 아픈 것도, 추운 것도 "엄마"하면 됩니다. 그러므로 어린아이에게는 엄마 있는 것이 복입니다. 어린아이에게는 세상에 좋은 것을 다 주어도 엄마 없이는 기쁨이 안됩니다. 엄마 있을 때 장난감도 장난감이 되는 것이고 엄마 있을 때 초콜릿도 초콜릿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고아는 불쌍한 것입니다. 고아의 얼굴에는 평화가 없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불쌍한 인생이 누구입니까? 인생의 문제를 가지고 갈 대상이 없는 사람입니다. 성도가 왜 행복합니까? 우리 인생의 문제를 가지고 갈 주님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 어떤 문제라도 가지고 가서 "주여" 하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기뻐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안 되는 사람은 아직도 신앙에 문제가 있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믿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을 아버지로 인정하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은 교회는 다니지만 여전히 고아의 상태에 있는 사람입니다.

제 이야기를 해서 미안합니다. 제 어릴 때 저의 고향에서 제 별명은 "에미 없는 자식"입니다. 나를 보면 동네 사람들이 "에미 없는 자식, 쯧쯧" 그랬습니다. 아예 그것이 제 별명이었습니다. 불쌍함과 측은함의 대명사는 "에미 없는 자식"입니다. 그래서 저는 어릴 적 엄마에 대한 사무치는 그리움을 안고 살았습니다. 제가 결혼해서 아이를 낳아 기르면서는 마음껏 엄마를 누리게 하였습니다. 돌이 될 때까지 젖을 먹도록 하였고 특별한 경우를 제하고는 결코 엄마와 떨어지지 못하게 하였습니다. 아이의 기쁨은 엄마 안에 있습니다.

기쁠 때 건강합니다. 기쁠 때 아름답습니다. 기쁠 때 행복합니다. (결혼식) 기쁠 때 능률이 오릅니다. 고전 음악의 대가들은 거의 다 신앙의 대가이기도 하였습니다. 그 중에 하이든이 제일입니다. 그의 곡은 거의 다 기쁨으로 충만해 있습니다. 그가 이런 말을 하였습니다. <나는 작곡 할 때 늘 하나님을 생각한다. 그리하면 내 마음에 기쁨이 솟아오른다. 그리고 마치 악보의 음이 춤추는 것 같고 나의 마음도 춤추며 기쁨으로 충만하게된다> 라고 하였습니다. 기쁘기 때문에 기쁜 음악이 나온다는 것입니다.(기쁜 인생)

성도 여러분, 이 말씀 잘 들으십시오. <여호와를 기뻐하라 저가 네 소원을 이루어 주시리로다> 하나님 기뻐하면 성공하고 하나님 기뻐하면 형통하고 하나님 기뻐하면 소원 성취한다 이것입니다. 자 여러분, 한번 생각해 봅시다. 하나님 기뻐하면 아무렇게나 옷 입고 아무렇게나 행동 할 수 있을까요? 하나님 기뻐하면 예배 시간에 졸거나 흩으러 지는 몸가짐 있을 수 있을까요? 그렇게 안되게 되어 있습니다. (기뻐하면 못할 일이 없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 기뻐하면 예배에서 성공자 됩니다. 주일 성공자 됩니다. 찬송 성공자 됩니다. 전도 성공자, 십일조와 감사 성공자 됩니다. 헌신과 봉사 성공자, 그러면 그 인생 성공자 됩니다. 축복의 성공자 됩니다.

여호와를 기뻐하라 → 하나님으로 만족하는 것을 말합니다.

2. 우리의 길을 여호와께 맡기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5절에 <너의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 저를 의지하면 저가 이루시고...>라고 하였습니다. 잠 16:3절에도 <너의 행사를 여호와께 맡기라 그리하면 너의 경영하는 것이 이루리라>라고 하였습니다. 여기 "너의 길"이란 말이 나오고 "너의 행사"란 말이 나오는데 길이나 행사는 인생의 모든 염려되는 일들과 알 수 없는 미래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맡기라"말은 "굴리라"는 뜻입니다. 여호와께 굴리라는 말은 하나님의 뜻에 맞추라는 의미입니다.

성도 여러분, 이 말을 잘 들으십시오. 무거운 돌을 들고 가거나 지고 가기는 어렵습니다. 그러나 굴려 갈 수는 있습니다. 인생의 모든 염려와 알 수 없는 미래를 내가 지고 가려 하면 그 인생은 말 할 수 없이 피곤합니다. 그러니 내 짐을 지시기 위하여 하늘에서 땅위에 내려오신 예수님께 의뢰하면 쉽고 유쾌합니다.

이것이 신앙으로 얻어지는 안식입니다, 본문 5절 하반 절 말씀을 한번 따라 합시다 <저를 의지하면 저가 이루시고> 여기 <저가 이루시고>란 말의 원 뜻은 <...에게로 돌린다>란 의미입니다. 무슨 뜻인지 아십니까? 나의 모든 인생을 하나님의 뜻에 맞추면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을 나에게 돌려주시겠다는 말씀입니다.성도 여러분, 이것이 성도가 하나님을 기뻐함으로 얻는 은혜요 행복입니다.

<너의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 저를 의지하면 저가 이루시고...>우리의 미래와 우리의 염려거리를 하나님께 돌려보내면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축복으로 우리에게 돌려주신다는 말씀을 생각해보세요. 흥분됩니다. 정말 설레 입니다. 내 속에서는 근심이 있습니다. 내 안에서는 염려가 있습니다. 내 생각 속에서는 불안과 의심이 있습니다. 이런 것들을 주님의 뜻대로 하옵소서 하고 돌려보냈더니 근심과 염려가 불안과 의심이 큰 축복이 되어 나에게로 되돌아 왔다 이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믿으시기를 축원합니다. 이것이 여호와를 기뻐하는 자의 행복입니다.

내 맘속에 있는 참된 이 평화는 누구도 앗아갈 수 없네

주는 내 마음에 구주 되시었네 오 주 없인 살수 없네

오 주 없인 살 수 없네 주님이 날 구하시네

주님 없는 세상 평화 없네 오 주 없인 살수 없네

바위를 산꼭대기로 옮기기란 여간 힘든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그것을 산꼭대기에서 밑으로 굴리기는 쉽고 유쾌합니다.

우리의 바위 같은 인생의 짐을 높으신 예수님 있는 곳에서 세상 속으로 굴려 보내면 그 인생은 재미있는 인생이 됩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 6절에 <네 의를 빛같이 나타내시며 네 공의를 정오의 빛같이 하시리로다>라고 하였습니다.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길 때 이렇게 된다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다윗은 본 시편 25절에서 이런 고백을 하고 있습니다. <내가 어려서부터 늙기까지 의인이 버림을 당하거나 그 자손이 걸식함을 보지 못하였도다>
성도 여러분, 다윗의 이 고백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William Colgate

그가 18세가 되어 성인으로서 인생을 시작하면서 동네에서 연세가 높은 노인을 찾아가 질문을 하였습니다. "이제부터 성인으로서 나의 인생을 개척해 나가야 할텐데 어떻게 살면 좋겠습니까?" 노인이 질문합니다 (지금까지 무슨 일을 했니?) (비누와 양초 만드는 일을 배웠을 뿐입니다) (그러면 그 일을 계속 하게. 다만 조건이 있네! 주님을 동업자로 모시게. 수입이 생기면 1/10을 주님께 드리게. 하나님께 자네 인생을 지배하시도록 그에게 맡기게)

Expl "Colgate"

3. 하나님께 기도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기뻐하는 것은 그에게 나아가 기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즐거워하는 것은 그 하나님께 나아가 자신의 필요를 아뢰는 것입니다. 모세가 그랬습니다. 모세가 백성의 문제를 가지고 회막에 나가기도 할 때, 출 33장에 보니 <사람이 그 친구와 이야기 함 같이 여호와께서는 모세와 대면하며 말씀하시며...>라고 하였습니다. 기뻐하는 사이, 즐거워하는 사이는 함께 있는 것이요, 대화하는 것입니다. 서로 좋아하는 사이는 자꾸 만나려 하고 자꾸 대화하려 합니다. 애인 사이가 그렇고 친구사이가 그렇고 엄마와 딸 사이가 그렇습니다. 저들은 이야기를 해도해도 끝이 없습니다. 제가 어떤 글을 읽어보니 대서양을 사이에 둔 젊은 연인들이 얼마나 국제 전화를 많이 했든지 요금이 한 달에 몇 만 불이 나와서 부모를 파산지경에 몰아 넣었다고 합니다. (Expl)

다윗도 사무엘도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을 기뻐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하나님을 기뻐하는 사람은 몇 시간이고 기도합니다.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을까 생각하지만 좋아하면 그렇게 됩니다. 우리의 믿음의 선배들은 새벽에 기도를 시작하면 10시나 되어서야 자리에서 일어나는 목사님들이 있었고 장로님들이 있었습니다.

목회에 대 성공을 하신 목사님이 쓴 글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하루 15분 이상만 하나님과 대화하면 즉, 하나님께 매일 15분 이상만 기도하면 그는 반드시 성공적인 인생을 살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대상 4장에 보면 야베스에 대한 말씀이 나옵니다. 야베스는 하나님의 백성, 성도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야베스는 그 형제보다 존귀한 자라 그 어미가 이름하여 야베스라 하였으니 이는 내가 수고로이 낳았다 함이었더라> 야베스는 존귀한 자입니다. 세상에서 그 누구와도 비교 할 수 없는 존귀한 존재입니다. 그 어미가 수고로이 낳았기 때문입니다. 이는 하나님이 고난을 통하여 얻은 자녀란 의미입니다.
성도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탄생된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Expl) <야베스가 이스라엘 하나님께 아뢰어 가로되 원컨대 주께서 내게 복에 복을 더 하사 나의 지경을 넓히시고 주의 손으로 나를 도우사 나로 환난을 벗어나 근심이 없게 하옵소서 하였더니 하나님이 그 구하는 것을 허락하였더라>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은 한마디로 설명하면 <야베스가 소리쳐 기도하였더니 하나님께서 그 원하는 것을 가지고 오셨다>는 것입니다. 야베스의 기록은 이것이 전부입니다. 무슨 뜻인지 아십니까? 성도의 생애는 기도의 생애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무엇이든지 기도로 이루라는 것입니다. 어떤 것이든지 기도로 얻으라는 것입니다. 성도가 할 일 중에 제일 귀한 일은 기도라는 것입니다. 재미있는 글을 읽어보았습니다. 스포츠 기자로 이름을 날린 H. Fullerton이란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가 Texas San Antonio 야구팀 감독을 맡은 일이 있습니다. 그런데 Team의 성적이 말이 아닙니다. 감독이 선수들의 야구 방망이를 모아 가지고 근처 교회 목사님을 찾아갔습니다. 목사님께 안수 기도를 받았습니다. 이튿날 안수 받은 배트를 가지고 경기에 임했는데 이 Team이 한 Game에서 37개의 안타를 날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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