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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믿음과 기도 / 막 9:2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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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과 기도
마가9:23-29

"우리는 어찌하여 능히 그 귀신을 쫒아내지 못하였나이까? 이르시되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유가 나갈 수 없느니라 하시니라" (마가 9:28-29)

믿음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믿음을 가지고도 염려하고 두려워하며 실망한다면 그 믿음은 믿음이 아닙니다. 믿음을 가지고도 무력하여 사람들로부터 무시당하고 귀신으로부터 조롱을 받는다면 그 믿음은 잘못된 믿음입니다. 믿음은 위로와 평화이고 인내와 용기이고 극복이며 변화이고 자랑이며 승리와 영광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베드로, 야고보, 요한, 세 제자를 데리고 기도하시기 위해 높은 산으로 올라가셨습니다. 산아래 남아있던 제자들에게 벙어리 귀신들린 아이의 아버지가 그 아이를 데리고 와서 귀신을 내어쫓아 달라고 했습니다. 귀신이 어디서든지 이 아이를 사로잡으면 아이는 거꾸러져 거품을 흘리며 이를 갈며 파랗게 질려버리는 것이었습니다. 제자들은 귀신을 쫓아 보려고 했지만 귀신이 쫓겨나지 않았습니다. 결과는 주위의 많은 사람들에게 실망을 주었고, 제자들 스스로가 망신스럽고 초라하기까지 했습니다. 이러한 제자들을 서기관들이 비난하자 서로 변론하는 상황까지 발생한 것입니다.

이 때에 예수님께서 산에서 내려오셨습니다. 자초지종을 물은 예수님은 "믿음이 없는 세대요" 라고 하시면서 사람들의 믿음 없음을 안타까워하시면서 그 아이를 데려오도록 하셨습니다. 귀신이 예수님을 보자 아이로 심한 경련을 일으키게 함으로 아이는 땅에 엎드려져 굴며 거품을 흘렸습니다. 아이의 아버지는 예수님께 "무엇을 하실 수 있거든 우리를 불쌍히 여기사 도와주옵소서" 라고 간청했습니다. 예수님은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고 하시면서 "벙어리 되고 귀먹은 귀신을 꾸짖어 내어 쫓으셨습니다.

이 사건 후 예수님의 제자들은 심각해졌습니다. 그들 자신의 믿음이 무엇이냐는 것입니다. 왜 그들은 귀신을 내어쫓을 수 없었느냐는 것입니다. 왜, 전에는 그들도 귀신을 쫓아내고 병자들을 고쳤었는데, 왜 지금은 그렇지 못하냐는 것입니다. 그것은, 예수님께서 "믿음이 없는 세대여"라고 말씀하신 대로, 믿음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믿음이 없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잘못된 믿음이라는 것입니다. 그럼 제자들의 잘못된 믿음은 무엇입니까?

제자들은 믿음을 지식이나 변론으로 잘못 알고 있었습니다.
제자들이 예수님과 함께 다니면서 보아왔던 예수님에 대해 아는 것이 믿음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에 대한 지식이나 성경에 대한 지식은 믿음과 별개입니다. 이론적인 지식이나 진리에 대하여 지적으로 동의하거나 수긍하는 것이 믿음이 아닙니다. 대개의 경우 오래 믿었다는 사람들이 이런 타성과 착각의 오류에 빠져 있습니다. 믿음은 능력이며 권세입니다.

바울은 고린도 교회를 향해서 "주께서 허락하시면 내가 너희에게 속히 나아가서 교만한 자의 말을 알아 볼 것이 아니라 오직 그 능력을 알아 보겠노니,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아니하고 오직 능력에 있음이라"(고전4:19-20)고 했습니다. 하나님 나라는 지식이 아니라 능력에 있습니다. 믿음은 예수 그리스도안에서의 하나님의 능력이며 권세입니다.
제자들은 시비하는 서기관들과 변론했습니다. 변론함으로 그들의 믿음을 보이려고 했습니다. 지식인들 가운데 성경을 좀 알거나 상식적인 신학지식을 가진 것이 곧 믿음인줄 착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것을 가지고 변론하면서 그것을 믿음으로 오해하고 있습니다. 믿음은 내가 알고 있는 지식과는 다른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변론에 의한 어떤 결론이 아닙니다. 믿음은 살아있는 것이 되어야 합니다. 곧, 하나님의 능력과 역사를 드러내는 것입니다. 지식이나 신학적 변론이 믿음이 아닙니다.

제자들은 신앙생활의 경력을 믿음으로 잘못 알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예수님을 따라다닌 경력이 믿음이 아닙니다. 지금까지 교회 다닌 기간과 경력이 믿음은 아닌 것입니다. 예수님은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고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될 자가 많으니라"(마20:16)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믿음의 경력이나 믿어온 기간이 믿음이 아님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오히려 때로는 처음 믿는 사람들이 아주 순수하고 겸손해서 살아있는 믿음을 가지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오래 동안 종교의식에 젖은 사람은 타성화가 되어 생명 없는 형식만을 가지고 있으면서 자신이 믿음이 좋다고 착각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어느 신학대학 학장 아들이 미국에서 신학공부를 하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미국친구가 그에게 "당신은 예수를 믿습니까?'' 라고 질문했습니다. 그는 자기가 신학 공부를 하고 있는 사람인데 왜 이런 질문을 하는 가고 당황하면서 대뜸 "나의 아버지가 신학대학 학장입니다." 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미국 친구는 "당신의 믿음과 당신의 아버지가 신학자인 것이 무슨 상관이냐?"고 핀잔을 주었습니다. 내가 몇 대째 기독교 신앙인 이라는 것, 우리 부모가 유명한 신앙인 이라든지, 목사의 아들이라든지 장로의 아들이라든지 이런 것이 믿음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내가 오래 교회를 다녔다든지 내가 중요한 자리의 경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믿음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나의 신앙생활의 과정이나 실적을 믿음과 혼동해서는 안됩니다. 사도 바울은 이 문제를 심각히 여겨서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기가 도리어 버림이 될까 두려워한다"(고전9:27) 고 했습니다. 내가 남을 인도하고 가르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내 믿음의 문제는 다시 생각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내가 이루어 놓은 가치 있는 일들이 믿음과 비례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의 나의 신앙생활의 경력을 믿음과 동일시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지금까지 예수님을 따라다닌 경력과 과정 기간들을 믿음으로 알았습니다. 그러나 믿음은 그런 것들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그들의 경력을 가지고 귀신을 내어쫓지 못했습니다.

제자들은 믿음을 과거의 능력으로 잘못 알고 있었습니다.
마가 6장에 보면, 열 두 제자를 부르셔서 둘씩둘씩 짝을 지어 보내시며 더러운 귀신을 제어하는 권세를 주시고 (막6:7) 복음을 전하도록 하셨습니다. 제자들은 나가서 회개하라고 전파하고 많은 귀신을 쫓아내며 많은 병인에게 기름을 발라 고쳤습니다. (막6:12-13)

제자들은 이미 귀신을 쫓아내 보았고 병자도 고쳤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그렇지 못하다는데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어제의 믿음이 오늘의 믿음이 될 수 없습니다. 어제의 능력이 오늘의 능력이 아닌 것입니다. 믿음은 지금의 믿음이고 지금의 능력이어야 합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선물'' 입니다.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선물로서의 믿음은 지금의 내 믿음이 되도록 잘 관리해야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과거의 믿음이 되는 것입니다. 그저 한 번 받았으니 있으려니 하고 무관심하다 보면 형식만 남아있는 믿음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한 믿음은 엄청난 사건을 만나게 되면, 언제 믿었을까 싶을 정도로 허무하게 무너지고 마는 것입니다. 믿는 사람이 저럴 수가 있을까 싶을 정도로 아무 것도 아닌 것이 됩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제자들에게서 ''믿음은 계속적으로 주어지는 선물'' 임을 알지 못한 실수를 봅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선물로 잘 관리해서 열심히 봉사하고 하나님의 일을 이루는 것으로 지금의 믿음으로 가꾸어야 합니다. 게으르고 소홀하게 하면 믿음은 잃어버리거나 빼앗기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이름으로 말미암아 믿음을 주십니다. 그리고 성령께서는 우리의 믿음을 생명 있게 하시고 능력 있게 하십니다. 우리는 순종과 감사를 통하여 이 믿음을 오늘의 믿음으로 지켜 갈 수 있는 것입니다. 믿음이 계속적인 것이 아닐 때 그 믿음은 과거의 것이지 지금의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귀신을 쫓아내지 못한 것을 믿음의 문제로 보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믿음이 없는 세대여 내가 언제까지 너희를 기다려야 깨달아 알겠느냐"고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내 믿음은 어떻습니까? 여러분의 믿음은 귀신을 쫓아내는 담대하고 힘있는 믿음입니까? 우리의 믿음은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믿음입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권세를 가지고 사는 믿음입니까? 질병과 가난을 물리치는 믿음입니까? 잘못된 인격과 감정과 습성에서 자유로운 믿음입니까? 불의와 악을 깨뜨리는 믿음입니까? 그렇지 못하다면 우리의 믿음은 잘못된 믿음이 아닙니까? 믿음의 지식, 믿음의 경력과 과거에 잘 믿었다는 것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그것은 믿음이 아닙니다.

교인들 가운데는 여러 종류의 교인이 있다고 합니다. 아침에만 보이고 저녁에는 안 보이는 ''나팔 꽃 교인'', 시대에 따라 왔다갔다하는 ''해바라기 교인'', 이 핑계 저 핑계로 미꾸라지처럼 잘 빠지는 ''핑계교인'', 감투를 주어야 교회에 나오는 ''감투교인'', 친구들끼리 모임에서는 말을 잘 하여도 기도한번 못하는 ''벙어리 교인'', 설교비평이나 남의 잘잘못을 잘 찾아내는 ''시험 채점관인 교인'', 이 교회 저 교회로 잘 다니면서 등록하지 못하는 ''유람선 교인'', 집에서 불면증으로 고생하면서 예배만 시작하였다 하면 조는 ''묵상교인'', 한 가정에서 한 명이 대표로 나오는 ''국회위원 교인''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믿음의 모습에서 세상을 하나님의 나라로 변화시키는 능력과 권세가 나타나겠습니까? 우리는 우리의 믿음에 대해서 고민해 보아야 합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고민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 조용히 물었습니다. "우리는 어찌하여 능히 그 귀신을 쫓아 내지 못하였나이까?" (막9:28) 예수님은 고민하는 제자들에게 분명하게 말씀하셨습니다.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유가 나갈 수 없느니라" (막9:29) 기도함으로 살아있는 바른 믿음이 된다는 것입니다. 기도함으로 능력 있고 권세 있는 믿음이 됩니다. 기도만이 믿음이 믿음되도록 하는 것입니다.
나폴레옹은 중국 지도를 가리키면서 이렇게 말한 적이 있습니다. "여기 잠자는 거인이 있다. 그가 깨어나면 아무도 멈추게 하지 못하게 할 것이다" 나폴레옹의 말대로 지금 중국은 잠에서 깨어나 전 세계를 놀라게 하고 세계를 주도할 나라로 변해가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은 권세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믿음이 없어 잠자는 거인들이 되었다는데 문제가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이 세상의 주인이신 만 왕의 왕이신 예수 안에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입니다. 죽음을 정복하시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사람들입니다. 어느 무엇도 막을 수 없는 성령의 권능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이 위대한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의 귀신들을 쫓아내지 못하는 잠자는 거인과 같이 되었습니다. 깨어나는 거인이 되는 것은 기도 외에는 방법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기도 외에 다른 유로 이런 유가 나갈 수 없느니라"고 하신 것입니다.

기도는 능력의 주체이신 하나님과 능력의 관계를 유지시켜 줍니다. 하나님과 함께 합니다. 기도만이 성령의 충만하심에 있게 해줍니다. 기도만이 우리를 하나님과의 관계 안에 있게 함으로 하나님의 사람으로 변하게 해줍니다. 그러므로 믿는 자가 기도할 수 있는 것이고, 기도하는 자만이 참된 믿음과 큰 믿음에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E.M 바운즈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기도는 도처에서 마귀를 이길 수 있는 강력한 힘이 되고 있다. 기도는 어느 면에서 살균작용과 예방작용을 한다. 기도는 공기(영적인 호흡)를 정화시킨다. 마귀의 오염을 소실시킨다". "기도는 하나님을 세상에서 가장 강한 분으로 내세운다. 기도하는 사람에게 하나님이 실제적 힘으로 나타나신다. 기도하는 교회에게 하나님은 영화로운 힘으로 나타나신다."

기도는 믿음을 믿음 되게 하기에 사단은 기도만은 양보하지 않고 방해하려고 합니다. 그래서 선한 일이나 열심히 살아가는 것은 내버려두더라도 기도하는 일은 악착같이 방해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의 사역이 믿음의 역사가 되도록 항상 기도하셨습니다. 기도하심으로 그리스도의 사역을 능력으로 감당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을 따르던 무리들은 예수님께서 승천하신 후에 마가의 다락방에 모였습니다. 사도행전에서는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들어가 저희 유하는 다락에 올라가니 베드로,요한, 야고보, 안드레와 빌립, 도마와 바돌로매, 마태와 및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 셀롯인 시몬, 야고보의 아들 유다가 다 거기 있어, 여자들과 예수의 모친 마리아와 예수의 아우들로 더불어 마음을 같이하여 전혀 기도에 힘쓰니라. 모인 무리의 수가 한 일백이십명이나 되더라." (행1:13-15) 120명의 무리는 기도함으로 성령체험과 성령의 충만하심을 받았습니다.

베드로는 기도함으로 성전 미문의 앉은뱅이를 예수의 이름으로 일으키는 믿음이 되었습니다. 또한 사도행전10장에 보면, 베드로는 기도함으로 그의 신앙의 한계와 편협성을 뛰어넘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유대인이 아닌 고넬료의 가정에 복음을 전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마르틴 루터는 하루를 시작할 때, 아침에 두 시간을 기도하지 아니하면 그날은 마귀가 이긴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루터는 바쁠 때일수록 더욱 많이 기도한다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바쁠수록 실수가 많기 때문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기도의 효과를 믿지만 기도하려고 하지 않는데 문제가 있습니다. 예수님은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류가 나갈 수 없다" 고 하셨습니다. 참된 믿음은 기도함으로 이루어집니다. 기도의 사람이 되어야 믿음의 사람이 됩니다.

히브리 저자는 믿음의 사람들에 대하여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희가 믿음으로 나라들을 이기기도 하며 의를 행하기도 하며 약속을 받기도 하며 사자들의 입을 막기도 하며 불의 세력을 멸하기도 하며 칼날을 피하기도 하며 연약한 가운데서 강하게 되기도 하며 전쟁에 용맹 되어 이방사람들의 진을 물리치기도 하며 전쟁에 용맹 되어 이방 사람들의 진을 물리치기도 하며....... " 히(1133-34)

기도함으로 능력이 있습니다. 기도만이 믿음을 살아있게 합니다. 귀신들린 아이의 아버지처럼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주소서" 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어제 능력을 행했다고 그 능력이 오늘의 것이 아닙니다. 오늘의 능력이 되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는 기도 없이 듣고, 기도 없이 생각하고, 기도 없이 행동하기 때문에 실수하는 것이고 하나님의 뜻과는 전혀 다른 길에 서있게 됩니다. 기도하지 못하기에 믿음이 없어지는 것입니다. 기도해야 믿음을 하나님의 선물로 받습니다.

부끄러움을 당하며 귀신에게 조롱 받는 이유는 바로 기도하지 않음에 있습니다. 지금 바로 이 순간부터 기도의 사람이 되십시오. 기도함으로 귀신을 쫓아내는 권세 있고 능력 있는 믿음의 사람이 되십시오. 기도하여 믿음의 사람으로 승리하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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