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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아름다운 가정 만들기 / 창 2: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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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부 1


제목:아름다운 가정 만들기
성경:창 2:20-24절

가정이라는 것은 인류에게 있어서 가장 아름다운 곳이며 안식처이며 하나님께서 축복하시고 하나님께서 제정해 주신 최초의 기관입니다 5월을 가정의 달로 모든 이들은 가정이 아름답고 건실하며 행복이 넘쳐야 사회도 나라도 아름다워 진다고 이야기합니다 실로 옳은 말입니다 가정은 사회의 기초가 되는 출발점이요 버팀목이 되기 때문입니다 오늘 이 시간부터 우리 교회도 5월을 가정의 달로 정해 보고 진정 아름다운 가정을 만들어 가려면 어찌해야 되겠는가를 생각해 보며 은혜를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최효섭의 명상에서 가정을 말하기를 "상함과 아픔은 가정에서 싸매지고 기쁨과 슬픔이 가정에서 나눠지고 어버이가 존경 받는 곳 그리고 어린이들이 사랑 받는 곳 조촐한 식탁도 왕궁이 부럽잖고 돈도 그다지 위세를 못 부리는 그런 좋은 곳이 가정이다"라고 가정의 아름다움을 표현했습니다

또 어떤 이는 가정을 표현하기를 "가정은 아기의 울음소리와 어머니의 노래 소리가 들리는 곳 가정이란 따뜻한 심장과 행복한 눈동자가 마주치는 곳 가정이란 서로의 성실함과 우정과 도움이 만나는 곳 가정은 어린이들의 처음 학교요 처음 교회요 거기서 어린이들은 무엇이 바르고 무엇이 사랑인지를 배운다"라고 했습니다

이렇게 모든 이들이 가정을 표현하는 것을 종합해 볼 때 가정은 그야말로 아름다운 곳이고 행복이 넘치는 곳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실제 우리의 가정은 어떠한가요 가정에는 가족이라는 구성 요원이 있는데 그 요원은 어버이와 부부 그리고 자녀들이 있습니다 여기에 빼놓을 수 없는 한 가지의 구성 요원이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이십니다 5월 달 3주에 걸쳐 나를 포스트에 세우고 자녀와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해야 하며 부모와의 관계는 어떻게 해야 하며 부부 관계는 어찌해야 하며 하나님과의 관계는 어찌해야 하는가를 살펴보며 은혜를 나누도록 하겠습내다

첫째:아름다운 가정 만들기 위하여는 자녀와의 관계를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마18:1-10절, 잠3:1-10절,)
어른들은 흔히 어린이들을 꽃에다 비유하곤 합니다 꽃은 아름다움을 상징하는데 어린이가 아름답다는 것은 어떤 외면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고 내면에 더 큰 의미를 부여한 것입니다 또한 어떤 이들은 어린이를 새싹에고 비유를 합니다 좋은 열매를 거두기 위해서는 새싹부터 시작되며 그러기에 새싹부터 충실해야 할 것입니다 만약 새싹을 무시해 버리는 농부가 있다면 그는 좋은 결실을 거둘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에 있어서도 어린이는 매우 중요한 것입니다 많고 좋은 열매를 거두기 위해서는 새싹이 충실해야 합니다 큰 나무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묘목이 충실해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인간도 훌륭한 모습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어린 시절의 중요함을 알고 잘 양육하시는 어른들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엡6:4절에 보면"또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말고 오직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라"고 하셨습니다

잠22:6절에 보면"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키라 그리하면 늙어도 그것을 떠나지 아니하리라"고 했습니다

조그만 새싹이 아름다운 한 그루의 정원수가 되기 위해서는 주위의 많은 도움이 있을 때만 가능합니다 자라는 데로 버려 두면 아름다운 정원수가 되지 못합니다 잡초를 제거해 주고 잡 가지를 잘라주고 거름을 주고 병충해를 막아 줌으로 훌륭한 정원수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자녀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나뿐 버릇은 제거해 주고 좋은 습관은 길러 주며 바른 길을 걷도록 어려서 길들여 주어야 할 것입니다  나무가 굽은 것은 어린 묘목일 때는 쉽게 바로 잡을 수 있지만 성장하면 바로 잡기가 힘들듯이 어린이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려서 바로 가르쳐야지 성장하면 힘든 것입니다

부모님은 청소년기의 특성을 이해해야 합니다 우리의 자녀는 청소년기에 접어들어 있는가 하면 분명히 접어 들것입니다 그러므로 자녀를 바로 인도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청소년기에 대한 바른 이해가 있어야 할 것입니다 즉 청소년들의 행동 특성은 어떤 것인가를 종합적으로 검토하고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일반적으로 청소년기의 특성은 다음의 것들을 들 수가 있습니다

발달과 성장의 과도기입니다 청소년기는 아동기와 성인기의 과도기이며 그 두 집단과 분리되는 한계 선상에 있습니다 여기에도 저기에도 속하지 않으며 따라서 다양한 태도 이중적인 가치, 이상과 현실 생활 방식 속에서 계속 충돌을 경험합니다 아동이라 하기에는 지나치게 자랐고 성인으로는 인정받지 못하는 주변인입니다 여기에서 좌절과 불만이 따릅니다  이러한 주변인의 입장은 사회적 책임이 없는데서 오는 무책인한 행동을 수반하기도 합니다

급격한 변화의 시기입니다 급격한 신체의 불균형 성장과 더불어 나타나는 성적 발달과 성 의식 발현은 수치심이 강해지고 이성에 끌리면서도 반발하고 좀 더 완숙한 자기로 성장하려는 자의식의 발로로 인하여 심한 고독감을 느낀다 감정의 변화가 극단적이여서 과격한 정서 표현이 자주 나타나며 자기 본위 자부심 자만심 등도 이때 가지기 쉬운 감정이며 동시에 자기비하 굴종 도피 등도 이 시기의 특성입니다


감정의 양면성이 심하게 표출되는 시기입니다 청소년의 심리 특성 중 감정의 양면성이 있습니다 부모에 대한 의존과 독립, 순종과 반항, 안일과 개척, 쾌활과 우울, 현실타협과 이상고수, 자만과 자기 비하의 감정 사이를 왕래합니다 어떤 때에는 자신감이 넘쳐 보이다가 어떤 때에는 의기 소침하고 자기 비하에 빠지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 부모들은 양 감정의 일면만 보고 오해하여 지도하는 것은 삼가해야 합니다

반항의 시기입니다 청소년은 자신의 신체적 정신력이 배양되고 생활 공간과 사고 영역이 확대됨에 따라 자신의 행동 방향이나 의사에 상치되는 외부 권위에 부디치게 되고 이에 대처하는 행동양식의 주관성, 미숙성이 독단적 행동, 반항적 행동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반항의 형태를 구분해 보면?

첫째:허세적 반항으로서 청소년기 초기에 해당합니다 담배를 피운다든가 금지된 극장을 출입하는 등의 반항입니다 둘째:영웅적 반항으로서 자아 이상에 배치되는 것에 크게 반발합니다 학교 선생님에 대한 반항 부모님에 대한 반항이 지배적입니다 즉 이 시기는 감정표현이 지배적입니다 셋째:논리적 반항인데 청소년 후반기에 옵니다 자신의 문제보다는 사회 제도, 이념 등에 반발하고 조직적 저항을 합니다 그러나 아직 감정과 결부되어 있어 과격한 표현이 따릅니다

성적 성숙의 시기입니다 청소년들의 성적 욕구 표현은 여러 가지 형태로 표현되는데 한편으로는 성에 반발하고 불안, 수치, 혐오의 감정을 가지고 성적인 것을 불결하게 생각하고 이성에 냉담하기도 합니다 다른 한편으로는 성 충동을 무분별하게 발산합니다 대리만족, 상대적 행위를 하는 경우가 많지만 때로는 반사회적 탈선 행위로 나타납니다 여기서 적절한 성교육이 필요합니다

교우 집단을 형성하는 시기입니다 자아가 발달되어 사회적으로 독립된 개체로서의 역할이 강조됨에 따라 자아 중심적인 태도에서 벗어나 타인과 협조하여 집단으로부터 승인되고 수용되어 안정감을 찾으려는 욕구가 강해집니다 이 시기에 교우 관계를 통하여 첫째:인격적 결합에 의한 정신적 지주로서 공감자로서의 우정이 생긴다 성인 사회에 쉽게 동화되지 못하는데서 생기는 불안 열등감 등을 해소하기 위한 노력에서 비롯됩니다 둘째:성적 육체적 성숙과 심리적 경제적 독립을 추구함에 따라 생기는 불안을 친구를 사귐으로 정서적 안정을 찾습니다 셋째:교우 집단을 통해서 사회성 사회적 통합 능력및 사교적 기술을 익히며 적응 행동을 배운다 넷째:교우 집단에 강한 정서적 통합감을 가져 사회적으로 인정받지 못할 때 반사회적인 행동으로 표출 될 수도 있습니다

이렇게 예민한 성장기에 있는 청소년이나 그 과정을 지나야 될 자녀를 두신 부모님들은 꼭 기억해야 할 가지 사실은 내 자녀를 아름답게 만들기 위해서는 내 아이의 주변을 아름답게 만드는 일에도 지대한 관심을 두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직 내 자식만을 생각하다 보니 남의 자식에 대하여는 무관심한게 사실이지요 문제 학생들의 부모를 만나 상담해 보면 모두가 같은 말을 하는데 친구 잘 못 만나 그렇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 말을 바꾸어 보면 내 자식은 착한데 남의 자식이 나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문제를 나에게서 찾지 않고 남에게서 찾으려 할 때에는 해결이 되어지지 않습니다 그리고 우리 부모님들이 아셔야 할 것은 남의 자식이 착하고 잘되어 질 때 내 자식도 잘되고 착하게 자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요 연못에 물은 썪어 가는데 그 연못에다 비단잉어 사다가 넣어 놓는다고 잘 자랄 수 있겠습니까? 내 아이가 자라는 환경이 잘못 되어 가는데 내 자녀가 바로 성장 할 수 있겠습니까?  그렇지 못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부모는 자녀에 대한 바른 인식과 더 나가 청소년에 대한 관심과 바른 인식을 가져야 ? ?것입니다
 
1)부모는 자녀에게 있어서 최초로 만나는 교사입니다
그러므로 자녀는 부모에 의해 인격이 형성되어지고 길들어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부모로 통하여 사랑하는 모습을 배우고 이해하고 용서하는 모습을 배워 가는 것이 자녀입니다 언어를 배우고요 즉 인간 관甕?배우게 되는 것입니다 더 나가서는 하나님을 섬기는 신앙도 배우게 되는 것입니다

2)부모는 자녀를 돌보는 자임을 아셔야 합니다
부모가 자식을 볼 때 너가 아니고 나입니다 즉 부모에게 있어서 자식은 2인칭이 아니라 1인칭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부모님께서 아셔야 할 것은 내 자식도 하나의 인격체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부모는 자녀를 주관적인 입장에서만 보지말고 객관적인 입장에서 봐 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자녀를 부모의 의도와 욕심대로 끌고 가려하지 마시고 지켜보는 입장에서 방향이 잘못 되었을 때에 교정해주는 정도의 위치에 서 계시라는 것입니다 마치 어린아이를 기르는 부모처럼 한창 기어다니는 아이를 끌어안고 있다고 그 아이가 잘 노는 것이 아닙니다 기어다니는 아이는 기어 다녀야 행복하고 즐겁고 잘 성장하는 것입니다 기어다니려고 하는 아이를 끌어안고만 있어 보셔요 울고불고 난리가 나지요 성장한 자식도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그 농도의 차이는 있어도 말입니다

3)자식을 믿어 주는 부모가 되셔야 합니다
인생의 황금기인 아동기에 부모가 믿어 주고 기대해 준다는 것은 자녀에게 큰 힘을 주는 것입니다 지금 자녀의 모습을 보고 평가하시면 아니 됩니다 지금 내 자녀가 공부 잘하고 착하다고 마음놓으실 일도 아니고요 또 공부도 못하고 못된 짓만 한다고 실망 하셔서도 아니 됩니다 그 이유는 지금 자녀들은 진행 중이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나무도 보면 꽃을 일찍이 피우는 나무가 있는가 하면 늦게 피우는 나무가 있고 꽃을 먼저 피우고 잎을 피우는 나무가 있는가 하면 잎을 먼저 피우고 나중에 꽃을 피우는 나무가 있지요 나무들도 이렇게 다양하듯이 우리 자녀들도 성장 과정이 다양하다는 것을 부모님을 들은 아셔야 합니다

그러므로 부모는 자식에게 긍정적인 말을 해야 합니다 "너는 착한 사람이다" "너는 훌륭한 사람이 될 것이다" 반대로 부정적인 표현을 하면 자녀는 자기 비하와 더불어 그렇게 되고 마는 것입니다 "너는 인간 되기는 틀렸어" "나가 없어져라" "아이고 내가 저 원수를 왜 낳았는지" 솔직히 이야기 해 봅시다 누가 낳았어요 자기들 좋아서 낳아 놓고 왜 아이한테 그 화살을 돌려요 그러지 맙시다

말은 무서운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반에서 꼴찌하는 자식한테 어느날 시험을 보아서 꼴찌서 두 번째 했다고 칩시다 그때 부모가 아 너 한명 따랐구나 다음에는 또 한 명 정도는 다를 수 있겠다 참 잘했다 고 해보셔요 다음에는 서울 대학교 수석으로 합격하겠다고 덤벼요 그것이 우리 자녀입니다 부모의 긍정적인 말은 자녀에게 큰 힘을 주는 것임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4)무관심 하셔서도 아니 되고 과잉 보호 해서도 아니 됩니다
자녀에 대한 무관심은 자녀로 하여금 방종의 길로 빠지게 할 위험성이 있습니다 요즘 맞벌이 부모가 많다 보니까 자녀들 혼자 지내는 시간이 많지요 청소년들은 자유를 누릴 만한 정서가 부족하기 때문에 방종으로 빠지기 쉽습니다 청소년의 시기는 부모가 돌보아 주고 지켜 봐 주어야 할 시기입니다 또 과잉 보호를 해서도 아니 됩니다 과잉 보호는 자녀 성장에 큰 장애요인 입니다 예를 들어 학교에서 선생님 않데 심하게 꾸중을 듣고 매를 맞았다고 칩시다 마음은 아프지요 그러나 무관심 하셔야 합니다 이런 일에 과잉 반응을 보이면 그 아이는 선생님에 대한 존경심이나 어려움은 없어지고 버릇없는 아이로 자리를 잡게 되지요  친구와 싸워서 맞고 왔다고 해도 모른 척 하세요 싸우면서 크는 것 아닙니까? 그러나 상습적으로 괴롭히는 아이가 있으면 적극적으로 나서서 정리를 해 주셔야 합니다 

5)인간으로서 예의와 사랑을 가르쳐야 합니다
예의와 사랑을 배운 아이들은 인생의 곁길로 가지 않습니다 잘못을 저질렀을 때에는 용서를 빌 줄 알고 실수를 범했을 때는 사과를 할 줄 아는 어린이로 길러야 합니다  또한 은혜를 입었을 때는 감사 할 줄 아는 어린이로 가르쳐야 할 것입니다 자녀 교육에서 예절 교육은 중요합니다 항상 존칭어를 쓰도록 하시고요 윗사람을 알아보도록 하시고요  신앙은 인간이 어떻게 사는 것이 바른 것인가를 가르치는 부분이 많이 있기에 구원을 떠나서도 바르게 키우는데 도움이 됩니다  부모님들이여 청소년은 나라의 자산입니다 그리고 가정의 자산입니다 그러므로 바르게 양육하는 것은 많은 돈을 저축하는 것과는 비교 할 수도 없습니다 자녀 교육에 관심을 가지고 늘 연구하시는 부모님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6)효도를 가르쳐야 합니다
이 교육은 가정이 행복해 질 수 있는 것은 물론 이거니와 사회와 국가를 튼튼하게 하는 교육입니다  가정은 모든 기관의 기초입니다 효를 바로 배운 어린이는 사회에서도 잘 적응합니다 이 효도 역시 부모님들의 행동으로 보여 주어야만 합니다

7)하ご纛?자녀로 자라도록 양육해야 합니다
천국에 소망을 두고 살아가는 삶을 가르쳐 주어야만 어떤 어려움도 이겨내는 자녀가 될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자녀는 언제나 최상의 것을 추구하기 전에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길러 주어야 합니다 그리고 유익과 손해를 따지기 전 선이냐 악이냐를 따져 선을 택하는 습관을 길러 주어야 합니다 또 오직 말씀 중심해서 살아가야 하는 주일성수 예배생활 기도생활을 가르쳐 주어야 할 것입니다  이런 교육은 부모님들께서 모범이 되지 아니하시면 이론만을 가지고는 불가능한 교육입니다 행동으로 보여주고 가르쳐야만 할 것입니다

우리 어른들이 분명히 기억하셔야 할 것이 있습니다 똑똑한 자녀로 양육하기에 앞서 지혜로운 자녀로 양육하기에 힘써야 할 것이며 지혜로운 자녀의 성장은 하나님을 경외하는데 부터 출발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내세에 소망을 두고 살아간다는 부모님들께서 현세에만 급급해 믿음도 무시해 버리고 하나님 섬김도 무시해 버린 채 현세 일에만 치우쳐 자녀를 양육한다면 이는 자녀들 앞에서 믿음을 가지고 있는 부모님들의 바른 자세가 아닙니다 주일날은 하나님의 교회를 찾아 예배하는 삶을 가르쳐야하고 주일은 교회를 통하여 봉사하는 모습을 길러 주어야만 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은 어린이 주일입니다 어린이의 한 영혼도 하나님 앞에서는 귀중한 한 영혼임을 알고 자녀가 이 땅에서 최초로 만나는 교사라는 사실을 기억하시고 또 보호자로써 자녀의 입장에서 교육하심으로 하나님의 자녀임과 도리를 가르키고 효와 예의를 가르킴으로  아름다운 자녀들을 하나님께 보여 드리시며 그것이 아름다운 가정을 만드는 일에 큰 축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둘째:아름다운 가정을 만들기 위해서는 부모와의 관계를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삼하18:31-33절,엡6:1-3절)
아름다운 가정 만들기의 두 번째 시간은 나와 부모와의 관계를 통하여 자식으로써 부모에게 어떻게 해야 하며 부모 된 우리들은 어떤 자세로 자식들 앞에 있어야 할 것인가를 생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자식으로서 효도 중에 한 방법은 무모의 마음을 헤아려 드리는 것이라 할 것입니다 자식을 향한 부모의 마음이야 이 세상 어떤 것으로도 표현할 수 없는 큰사랑이지요 삼하18장에 보면 다윗이라는 아버지와 압살롬이라는 아들의 관계에서 볼 수 있는 부모의 마음이 있습니다 아버지를 해치려 했던 아들을 죽음 앞에 통곡하는 아버지의 모습 속에서 우리는 어버이의 마음을 읽을 수 있습니다

다윗은 이스라엘의 가장 위대한 임금입니다  그러나 그렇게도 신망을 얻고 위대한 영도자 였지만 그에게는 불효 막심한 압살롬이라는 아들이 있었습니다  아버지인 다윗은 아들인 압살롬의 반역으로 하는 수 없이 왕궁을 버리고 후궁 열 명만을 남겨 궁을 지키게 하고 권속들과 함께 압살롬을 피하게 되었습니다 아들을 피해온 다윗은 감람산을 맨발로 다니며 얼굴을 가리고 눈물을 흘려야만 했습니다 아들에게 쫓겨나 유리하는 신세가 된 아버지의 심정 무어라 말로 형언 할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이제 다윗과 함께 피난 온 백성들을 세 파트로 나누어 압살롬과 싸우기 위하여 출전하게 되었습니다  출장에 앞서 다윗은 요압과 아비새와 잇대 에게 명하여 말하기를 나를 위하여 소년 압살롬을 너그럽게 대접하라고 지시를 하였습니다 이제 전쟁은 시작되어 압살롬이 더윗의 신복과 마주치니 피하여 도망 하다가 자기가 탔던 노새가 번성한 상수리나무 아래를 지날 때 머리가 나무 가지에 걸려 노새는 지나가고 압살롬은 나무에 매달려 있게 되었습니다 이것을 본 한 사람이 요압에게 고하니 요압은 다윗의 부탁도 아랑곳하지 아니하고 불효 막심한 압살롬을 세 창으로 쳐서 떨어뜨리고 요압의 병거를 맡은 열 명이 압살롬을 쳐서 죽였습니다

이때 승전보를 전하기 위하여 다윗을 향해 달릴 때 다윗은 두 문 사이에 앉아 좋은 소식만이 오기를 기다렸습니다  이때 도착한 구스 사람에게 다윗이 묻기를 소년 압살롬은 잘 있느냐고 묻습니다  그때 압살롬의 전사 소식을 전하자 다윗은 마음이 심히 아파 울며 말하기를 내 아들 압살롬아 내 아들 압살롬아 내가 너를 대신하여 죽엇더면 압살롬아 내 아들아 내 아들아 하며 통곡을 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볼 수 있는 부모의 마음은 자기의 승리보다 아들을 사랑하는 마음입니다 이 말은 아무리 불효하고 반역을 한 죄인이라고 다윗에게 있어서 사랑하는 아들 이였고 그 마음에는 조금도 변함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자기를 죽이려고 했던 원수가 죽었다는 승전보를 정해 들었지만 그 승전보는 다윗에게 기쁨이 되지 못했습니다  이 마음 이 사랑이 어버이의 마음이요 어버이의 사랑입니다 

부모님들은 당신들의 희생을 토하여 자식들의 형통을 기대하?있습니다  다윗도 압살롬의 무사한 소식을 더욱 기다렸습니다 그러나 죽었다는 소식을 접하자 다윗은 감람산을 맴발로 다니며 내 아들 압살롬을 외쳐 부르고 있는 것입니다  다윗은 자기가 낳은 아들에게 쫓기는 신세를 한탄하여 흘린 설움의 눈물보다 아들을 사랑하여 흘리는 눈물이 그의 진정한 눈물이였습니다

자신의 행복보다는 자식의 행복을 원하는 부모님의 마음 자신들의 모든 것을 다 바쳐서라도 자식이 잘 되기를 원하는 부모님의 심정 우리는 잊어서는 아니 됩니다  부모가 생각하는 자식은 "너"가 아니고 "나"입니다 바로 다윗도 이러한 의미에서 "내 아들 압살롬아!"하고 통곡하고 있는 것입니다

내가 너를 대신하여 죽엇더면 하는 어버이의 마음입니다 부모는 자식의 불행을 자신이 당할 지언정 자식은 편하기를 원합니다 다윗처럼 자식이 죽을 자리에서 대신 죽어 자식이 살기를 원하는 것이 어버이의 마음입니다 오늘 다윗의 통곡 속에는 차라리 네가 살고 내가 대신 죽었더라면 하는 마음의 눈물입니다 내가 낳은 자식이 나를 죽이려 한다면 마땅히 그 자식을 미워하고 죽여야만 하는데도 어버이의 마음은 그렇지를 못하나 봅니다 전장에 나가는 장수들에게 아들의 안전을 부탁하는 아버지의 심정 아들의 죽음을 전해듣고 오열하는 아버지의 모습에서 우리는 어버이의 마음을 읽어야 할 것입니다

어버이는 범죄하고 방탕한 아들이라도 한 순간도 자식을 마음에서 지워 버리지 않는 것이 어버이 마음입니다 세상의 모든 사람들은 손가락질하고 원성을 보내도 어버이는 언제나 사랑하는 아들입니다 다윗도 나라와 민족과 아버지를 저버린 압살롬이였지만 다윗의 마음은 항상 그 아들 압살롬에게 가서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부족하나마 몇가지로 부모의 마음을 헤아려 보았습니다  지금 여러분은 어떤 마음으로 효를 생각하고 계십니까?  우리 인간은 하나님의 위대한 창조에 의하여 하나님의 형상대로창조 되었습니다 그렇게 창조된 인간은 우리 하나님께서 홀로 살게 버려 두지 아니하시고 배필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형제 자매가 생겨났습니다 하나님께서 부부간의 선택은 인간에게 맡겨 주셨지만 부모와 자식간의 선택은 하나님에 의하여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리하여 결혼을 인륜지 대사라고 한다면 부모 자식간의 만남은 천륜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부모를 거역하는 것은 하나님을 거역하는 것이 됩니다 부모에게 불효는 하나님께 불효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십계명을 주실 때도 인간에게 주신 계명의 첫 계명이 "부모를 공경하라"는 것이 였습니다  삼강오륜에서도 삼강의 첫 번째가 "부위자강"이라하여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를 말하고 오륜에서 첫 번째가 부자유친"이라하여 아버지와 아들의 친함을 이야기합니다

엡6:1-3절에 "자녀들아 너희 부모를 주안에서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이 약속 있는 첫 계명이니 이는 네가 잘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고 하셨습니다
이상의 말씀에서 볼 때 아름다운 가정 행복한 가정을 만들기 위해서는 부모와 자식간의 관계를 잘 맺어야 하는데 그 관계의 끈은 효도라는 것입니다

1)효도란 무엇이니까?
a)효도는 인류의 본분이요 자녀의 도리입니다
인간 된 자로서 부모를 공경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요 의무 중에 첫째 의무입니다 자식이 부모에게 효도하는 것은 후대에게 효도를 받을 수 있는 첩경입니다

잠30:17절에 "아비를 조롱하며 어미 순종하기를 싫어하는 자의 눈은 까마귀에게 쪼이고 독수리에게 먹히리라" 했으니 본분을 망각하는 일이 없어야 할 것입니다

b)효도는 도덕의 근원이요 사회 질서의 기초입니다
도덕은 인간 사회의 질서를 유지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도덕은 가정에서 효를 통하여 출발되어 진다는 것입니다  기초가 부실한 건물은 강풍을 견뎌낼 수 없듯이 가정에서 효도가 없이는 아름다운 사회를 건설 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효도는 인간이 세상을 살아가는 기초입니다

c)효도는 신앙의 첩경이요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기독교는 하나님을 아버지로 믿습니다  효도가 신앙의 첩경이라고 하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을 아버지로 잘 섬기려면 육신의 부모를 잘 섬겨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에서는 보는바 육신의 부모를 섬기지 못하는 자는 하나님을 섬기지 못하리라 했습니다

엡6:1-2절의 말씀을 보면 "자녀들아 너희 부모를 주안에서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이 약속 있는 첫 계명이니"라고 하셨습니다

2)효도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a)순종해야 합니다
엡6:1절에 보면 "자녀들아 너희 부모를 주 안에서 순종하라" 고 하십니다
자녀가 부모님에게 순종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자식 잘 못되라고 순종을 강요하시는 부모님은 않계실 것입니다  단 기억 하셔야 할 것이 주 안에서 라는 말씀입니다

b)공경해야 합니다
"공경"이란 히브리 말로 "자베드"인데 원뜻은 "무겁다"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부모님을 공경 하라는 것은 부모님을 경히 여기지 말고 권위를 세워 드리며 효도 하라는 것입니다  부모님을 무시지 말고 인정해 드려야 된 다는 것입니다

c)기쁘게 해 드려야 합니다
잠 23:25절을 보면 "네 부모를 즐겁게 하며 너 낳은 어미를 기쁘게 하라" 고 말씀 하십니다
자식이 부모님의 마음을 기쁘시게 해 드리는 방법에는 부모님의 뜻을 받드는 것이요 부모님의 뜻을 받든다는 것은 곧 마음을 편하게 해 드린다는 것입니다  마음이 편하면 있고 없고를 떠나서 모든 것이 다 평안하고 즐거운 것입니다 대화의 상대가 되어 드려야 합니다 집안에 무슨 문제나 행사가 있을 때 부모님께 의논드리고 (비록 경제력은 없다 하실 지라도) 시작하십시오 그것이 곧 부모님을 인정해 드리는 것이기에 마음이 기쁘실 것입니다

d)물질로 효도해야 합니다
살아생전 할 수 있는대로 지상에 있는 최고의 것으로 효도해야 합니다 아름다운 음식 아름다운 의복 돌아가시면 모든 것은 끝이기 때문입니다

e)믿음으로 효도해야 합니다
믿음으로 효도하자는 것은 부모님의 영혼을 구원 얻도록 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자는 것입니다 자식되어 부모님의 영혼을 구원 얻도록 하는 일은 가장 큰 효도입니다

3)부모는 자식의 마음을 헤아려 주어야 합니다
지금 내 자식이 무엇 때문에 고민하고 무엇 때문에 어려워하는가 또 무엇을 하고 싶어하고 무엇을 하기 싫어하는 가를 아셔야 합니다 이것이 부모가 하셔야 할 일 중에 큰일입니다 아름다운 가정을 만드는 일에 있어서 사실은 가족 구성 요원 모두가 서로의 마음을 헤아려 주는 일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할 것입니다 부모가 자식의 마음을 헤아려 줄 때 그 자식은 그 헤아림에 힘입어 더욱 효도하는 자식이 될 것입니다

제가 몇 년 전에 남부 지청에서 청소년들을 선도한 일이 있습니다 그때 3명의 아이가 남의 물건을 훔쳐서 검찰청까지 넘어 왔습니다 그때 아이들과 상담을  해 보니 그중 한 아이의 불만은 어머니가 자기를 몰라준다는 것 이였습니다 그 연유를 들어보니 자기 어머니는 붕어빵 장사를 하시면서 자기와 동생을 공부시키고 계신데요 그래서 그 아이는 어머니가 힘드실 것 같아서 학교에 다녀오는 길이나 집에 와서 가끔 어머니가 장사하시는 곳으로 가 본답니다 그러면 어머니는 열 번이면 열 번다 하시는 말씀이 "들어가 공부해라" "학원 가라" 학원 가야 되고 공부해야 되는 것은 이미 알고 있는데 말입니다  그래도 있을라 치면 그 어머니가 매번 하시는 말씀이 "야 이 새끼야 엄마가 누구 때문에 고생하는데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 이러한 어머니가 싫다는 것입니다 같은 말이면 "너 지금 오니 힘들지 빵 하나 줄까?" "들어가 쉬어라" 얼마나 좋습니까? 부모는 자식의 마음을 헤아려 줄줄 알아야 합니다 즉 자식을 인정해 주고 칭찬해 주는데 인색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칭찬은 쾌감을 줍니다  인간은 본래 쾌락을 추구하는 존재입? 求?그러기에 자기가 타인에게 인정을 받는 것은 싫어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칭찬을 하면 반드시 칭찬하는 방향으로 자라게 되어 있습니다  대인 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효도는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그러므로 이 계명은 반드시 지켜야 할 것입니다 또한 우리를 낳아 주시고 길러주신 부모의 은덕을 생각하며 효도하시기 바랍니다 주안에서 순종하며 공경하고 항상 마음을 편하게 해 드리며 물질로 효도하며 부모님의 영혼을 하나님께로 인도하시므로 효도를 다 하시는 여러분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부모되신 여러분들이여 부모입장에서 자식의 입장을 이해하고 헤아려 주는 아름다움으로 더욱 건강하고 힘있고 행복하고 아름다운 가정을 만들어 가시기를 축원합니다

셋째:아름다운 가정을 만들기 위해서는 부부 관계를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창2:20-24, 엡5:31-33절)
지금 까지 아름다운 가정을 만들기 위하여 자식과의 관계 부모와의 관계를 생각해 보았는데 이 시간은 가정의 포인트라고 할 수 있는 부부와의 관계를 생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모든 요원들이 다 중요하다 하겠습니다만 실제 가정을 아름답게 꾸미기 위해서는 부부라는 요원의 관계와 역할은 더욱 중요하다 하겠습니다 그래서 이 시간은 부부의 관계를 면밀히 진단해 보면서 아름다운 가정을 만들어 보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얼마 전 가정의 달을 맞이하여 우리나라의 가정 실태를 조사하여 보고한 내용이 있었는데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이혼율이 2위를 차지하고 있다는 내용과 그 이혼의 사유 중에는 여?가지가 있는데 안정되지 못한 가정생활 즉 물질 문제에서 오는 유동성 때문이라고 하기도 합니다 또는 부부간의 환경에서 오는 열등감 또는 서로의 인격을 무시하는데서 오는 모독감이 그 원인 중에 하나라고 합니다 여러 가지 이유 중에 눈에 띠는 것은 종속적인 관계를 요구하는 데서 오는 무료함과  책임감의 부담이 이혼의 이유로 나와 있었습니다 이것은 함께하는 부부이지만 개체로서의 존재를 인정받고 싶은 것이지요 거기에다 덧붙이기를 실제 이혼은 하지 않았지만 또 놀랄만한 숫자가 별거를 하고 있고 수백만의 부부가 한 지붕 아래 살고 있으면서도 정신적으로는 분리된 채 지내고 있다고 하니 실제로는 세계 1위라고 보고하고 있습니다 또 부부가 함께 살아가는 이유 중에 눈에 띠는 것은 하나는 자식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삶의 목표가 자식이 잘되기를 바라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어찌 보면 당연한 것 같아도 부부 관계만을 놓고 생각해 본다면 가슴 아픈 일입! 니다 부부는 삶의 이유가 남편 때문이고 아내 때문이여야 하고 부부의 삶의 목표고 우선 순위는 부부간의 행복이여야 하는데 말입니다

우리들의 가정은 정신의 화합으로 이루어지는 아름다운 가정이 되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가정이란 하나님으로부터 사랑 받은 사람들이 그 사랑을 서로 교환하면서 사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들의 가정은 지금 까지도 아름답게 꾸며 왔습니다만 더욱 아름답고 행복한 가정을 이루기 위해서는 좀더 보안해야 할 부분은 보안하면서 아름다운 가정을 만들어야 하겠습니다 저는 이 시간 말씀을 증거하면서 우리 성도님들의 가정은 이런 가정이 되기를 바랍니다 즉 투쟁이 없고 사랑만이 가득한 가정 아버지의 왕국이요 어머니의 세계요 아이들의 낙원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럼 아름다운 가정을 만들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겠는가요?

1)부부가 하나되는 일에 힘써야 합니다
결혼은 하나님께서 사람의 유익을 위해 만드신 성스러운 기관입니다 그런데 이상 기류는 가정 때문에 애를 먹는 가정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한편으로는 가정을 만들려고 애쓰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탈피해 보려는 사람들도 있다는 것입니다 도대체 왜 이런 현상이 우리의 현실에 있는가 우리는 창세기 1장에서 그 실마리를 찾아야 합니다 우리가 창세기 1장을 읽어 내려가다 보면 하나님께 만드신 모든 것들이 다 선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일곱 번이나 당신께서 만드신 것을 보시기에 좋았다고 말씀 하셨습니다 그러다가 갑자기 말씀하시기를 "이것은 좋지 못하니" 무엇이 좋지 않다는 말씀인가? "아담이 독처하는 것이 좋지 못하니" 아담은 사실상 혼자 있는 것만은 아니었습니다 모든 동물과 함께 지냈으며 주변 환경은 아름다웠습니다 그러나 동물들은 움직이는 피조물에 불과한 반면에 아담은 영혼을 가진 생명체였습니다 그러므로 동물과는 영적으로 만족을 주는 관계를 맺을 수가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담이 홀로 지내기 때문에 외로우며 그에게 동료가 필요하다는 것을 아시게 되었습니다 고독이란 공허 불안전함 교제의 부족 인간적인 친밀감의 결여에서 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하나님께서는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베필을 지으리라" 이것이 하나님의 선언이셨습니다 "돕는 배필" 이라는 단어는 "도움"과 "그와 동의한다"라는 두 히브리어에서 파생되었습니다 여자는 남자에게 적절한 도움을 주는 자가 되고 남자와 영적 지적 감정적 신체적으로 일치하도록 창조 하셨습니다  여자는 남자의 완전함이 되고 남자에게서 부족 한 것을 보충하며 잠재력을 보충시키는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하나님께서는 남자의 갈빗대 하나를 취하셔서 여자를 만드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남자를 흙에서부터 만드셨고 반면에 여자는 남자의 일부에서 취하여 내셨으므로 여자는 남자의 일부입니다 실제적으로 여자는 남자의 일부를 소유하고 있기에 남자는 아내라는 인격을 통해 그녀가 갖고 있는 그 부분을 되돌려 받기 전까지는 불완전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부부가 일치해야 하는 것 중에 주의를 기울여야 할 것은 남자와 여자는 실제적으로 하나라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여자를 만드시기 위하여 남자의 어느 부분에서 취하셨는가를 살펴 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 부분은 잘 아시는데로 "갈빗대"라는 것입니다 성 어거스틴은 말하기를 "만약에 하나님께서 여자로 하여금 남자를 지배하도록 창조 하셨다면 아담의 머리에서 취하셨을 것이다 또 여자가 남자의 노예가 되기를 원하셨다면 그녀를 아담의 발가락에서 취하셨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여자가 남자의 돕는 자이며 또 그와 동등된 위치로 만드시기 위하여 여자를 남자의 옆구리에서 취하셨던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일리가 있는 표현이라 생각합니다  분명히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아내는 남자의 동료이지소유물이 아닙니다 오늘날 어떤 가정에서는 이 사실을 부인하는데서 부부간의 갈등과 불협화음이 출발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반면에 여자가 남자의 돕는 베필로 만들어 졌다는데 대해서 여자의 품위가 떨어진다고 생각할런지 모르나 그러나 남자들은 여자가 없이는 불안전한 존재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기에서 부부는 일치되어야 한다는 이유를 찾을 수 있습니다 그래야만 행복한 그리고 아름다운 가정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결혼이란 한 지붕 아래 산다거나 같은 침실을 사용한다는 것 이상의 무한한 것입니다 두 사람이 이상적이고 완전한 두 인격체의 결합이 되어야만 하나의 실체로 되어지는 것입니다 두 사람의 의지는 완전히 서로에게 헌신되어져야 하며 하나님께서 주신 강점은 두 개의 짝으로서 상호 표현되어야 합니다 그 목표는 완전히 하나가 되는 것이며 온전히 친밀하고 서로 배우자의 가장 깊은 생각 감정 그 인격 자체를 숨김없이 나누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부부간에 일치를 가져 와야만 행복한 가정을 이룰 수 있음을 아시고 서로의 인격을 존중하며 도움을 받고 도와 주며 살아야 하는 존재임을 명심하시고 아름다운 가정을 이루어 가시기를 축원합니다

2)부부가 성숙해야 합니다
많은 결혼 상담가들이 성공적인 결혼 생활을 하는데 커다란 방해물 중의 하나가 이기주의라는 것입니다 이기주의란 다른 사람은 안중에 없고 지니치게 자기만의 행복과 이익과 쾌락에만 몰두해 있는 것을 말합니다 어린 아이들은 지독하게 이기주의입니다 그들은 자기들의 안일 외에 다른 모든 것은 잘 잊어버립니다 자기가 편치 않을 때에는 인정 사정없이 울어 됩니다 우리는 어린아이들이 점차적으로 신체적 지적 감정적인 면에서 성숙할 것을 기대 합니다 그래서 성장하면 성숙한 모습으로 제 구실을 하는 것입니다

부부의 사이도 마찬가지 입니다 부부 관계에서도 아름다운 성장을 가져오지 못하는 부부는 많은 문제를 표출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예를 들어 부부 관계에서 내 맘에 맟지 않으면 소리를 지르고 물건을 던지고 하는 것은 성숙하지 못하여 아직 까지 이기주의에 머물러 있는 어린아이와 같은 모습입니다 성숙 하다는 것은 이기주의가 아니다는 것입니다 물론 어떤 사람도 전혀 이기적이지 않을 수는 없습니다 우리 모두 어딘 가는 조금씩 미숙한 부분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어른을 한꺼풀 벗겨보라 그러면 당신은 어린아이를 발견하게 될 것이라"고 했고 어떤 사람은 "어른과 아이의 유일한 차이점은 어른의 장난감이 더 비싼 것뿐이다"고 했습니다

어느 누구도 완전하게 성숙할 수 없기 때문에 성숙 하다는 것은 절대적인 것이기보다는 상대적임이 분명 합니다 실제로 성숙이란 고정된 상태이기보다는 하나의 과정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숙한 삶을 살기 위해서는 인간의 의지보다는 성령의 지배하에 있어야 합니다 육신의 지배하에서는 성숙을 기대 하기가 힘듭니다

성숙한 사람의 특성을 살펴 보면? 1)성숙한 사람은 하나님께서 만드신 그대로 자기를 용납합니다 이 말은 자기의 모자란 점을 인해 열등감을 느끼지 않고 자기의 잘난 것으로 인해 자기 중심적이 되지도 않는다는 것입니다 성숙한 사람은 모든 것이 하나님의 목적을 위해 부여된 것으로 압니다 그러므로 성공했다고 자만하지도 않고 실패했다고 실망하지도 않습니다 우리 모두 자기 자신을 스스로 용납 할 줄 아는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2)성숙한 사람은 자기의 실수와 다른 사람의 제안을 통해 유익을 취합니다 미성숙한 사람은 자기가 실패했을 경우 변명한 이유를 찾기에 급급합니다 그런 사람은 책임을 다른 사람에게 전가시킵니다 그런 자는 다른 사람에게 비난을 받을 때 인격적 모독이라 생각하여 성을 냄으로 자기를 방어합니다 반면에 성숙한 사람은 타인의 비평을 폭넓게 받아 드리고 하나님의 말씀에 의존하여 삶의 변화를 꾀합니다 부부는 지혜로운 비판을 통하여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3)성숙한 사람은 다른 사람을 행복하게 해 주는 것으로 자신의 가장 큰 만족을 찾습니다 우리가 자신의 만족을 위해 이기적인 추구는 불행 외에 아무것도 가! 져오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의 유익을 위해 우리가 이기적이지 않도록 살 때 삶은 더 풍성한 것으로 되돌아오며 이것은 결혼한 사람의 대부분이 더 배워야할 과제입니다  우리 모두 부부간에 갈등이 있을 때에 잠시 생각해 봅시다 "내가 왜 그랬을까" 라고 그러면 내가한 행동은 나 자신의 편리와 즐거움 때문이 였다는 결론을 내리게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성숙한 부부만이 행복한 가정을 이룰 수가 있습니다 성숙한 사람은 자신의 유익을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상대의 유익을 위해 산다는 것을 명심하시고 살아가시기를 축원합니다

3)서로 사랑해야 합니다
사랑이란 오늘날 대중적인 주제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사랑이라는 말은 많아 졌는데 행동의 표현은 줄어들었다는데 문제가 있습니다 사랑이란 기독교 복음의 기초적인 개념이며 동시에 성공적인 결혼 생활에 필요한 단 하나의 요소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랑의 진정한 의미를 알아야 합니다 히랍어에 사랑에 대한 최소한의 세 가지 단어가 있는데 각 단어는 사랑에 관해 서로 다른 관점이나 수준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a)에로스 사랑입니다 세속적인 희랍 문학에서 발견되고 성경 자체에는 결코 사용된 곳이 없습니다 에로스는 완전히 인간적인 사랑입니다 이것은 종종 "애욕" 이라는 말의 의미와 같이 성적 사랑에 적용됩니다 에로스에 포함된 기본 사상은 자기 스스로를 위해 무엇인가를 취한다는 것입니다 한편으로는 어떤 특별한 사랑을 위해 순수한 감정이 수반되기도 하겠으나 그러한 감정도 그 사랑이 매력적일 때나 혹은 그 사랑이 나에게 흥분과 기쁨과 만족을 제공할 수 있을 때 불붙여 지는 것입니다 에로스가 말하는 것은 "나는 당신이 나를 행복하게 해 주기 때문에 당신을 사랑한다"이다 에로스는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라고 주장할지 모르나 실제적으로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자기가 준 사랑으로 인해 무엇인가를 되돌려 받기 위함입니다 만약 자기가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하면 그 사랑은 증오와 비통과 미움으로 바뀌게 될 것입니다 b)필리아 사랑입니다 조금 더 높은 차원의 사랑으로서 육체적인 것보다는 좀더 정신적인데 관계된 것입니다 그것은 인격 즉 지. 정. 의를 다룬다는 것으로 또한 서로 참가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의미상 가까? ?단어는 우정이라 하겠다 신약성서에서는 명사형으로 단 한번 사용되었고 "사랑한다""좋아한다"의 동사형과 "사랑하는 "의 형용사로서 여러 곳에서 사용되었다 이것은 베드로가 주님께 고백한 사랑과 같은 정도입니다 필리아 속에는 에로스가 약간 있다 우리는 어떤 사랑과 함께 있어서 즐거운 경우에 그를 친구로 선택하기 때문입니다 그와 기호가 같고 생각이 같을 때 내가 그에게 만족을 주고 나도 그에게서 무엇인가 얻는 것이다 이렇게 주는 데는 이기적인 동기가 결코 없지 않으나 함께 나눈다는 감정속에 아주 모호하게 숨겨 있을 뿐입니다 나만의 행복을 추구하지 않고 우리의 행복이 이루어 가는 점에서 필리아는 에로스보다 고차원적인 사랑이라 할 수 있습니다 비교적 수많은 결혼이 필리아 사랑의 기반위에 세워집니다 남녀가 사랑을 할 때는 모르지만 결혼이라는 과정을 통과해 지내다 보면 장점 보다는 단점이 많이 들어 납니다 이것은 그 사랑의 감정으로 덮어야 하는데 에로스 사랑으로는 불가능하고 필리아 사랑으로는 할 수가 있습니다 부부간의 사랑이 필리아에서 출발 할 때 성장하게 되고 존속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필리아는 사랑의 중간 ? 痴÷都求?그러나 필리아의 사랑에서는 진정한 행복을 맛볼 수 없기에 더 나은 사랑을 추구해야 합니다 c)아가페 사랑입니다 아가페 사랑은 자기의 쾌락을 추구하지 않으며 오히려 자기를 주는 것으로 기쁨을 갖는 것입니다 그것은 사랑하는 대상이 좋은 점이 있다거나 혹은 가치가 있기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본질에서부터 나오는 것입니다 아가페 사랑은 그 대상이 반응도 없으며 불친절하고 사랑해 줄 가치가 없어도 계속해서 사랑해 주는 것입니다 오직 상대의 유익을 위해서입니다 우리는 인간에게 이러한 사랑이 있을 수 없다고 말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렇습니다 이 세상의 어떤 인간도 진정한 아가페 사랑을 창조해 낼 수가 없습니다 아가페 사랑은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것이며 실로 하나님 자신이 사랑이십니다 이런 아가페 사랑을 실천하려면 하나님께서 우리 자신을 무조건 적으로 사랑하신 것과 그 사랑으로 구속의 은총을 받은 사실을 인정하고 감사할 때 그리고 그렇게 사랑하라고 명령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깊이 새길 때 가능한 것입니다

사랑은?
a)오래 견디는 것입니다
사랑은 마음에 분을 갖거나 공격한다든지 분개하는 일에는 더디하며 그런 것들을 참아내는 것입니다

b)사랑은 친절합니다
이것은 사랑의 첫째 원리의 적극적인 면을 말합니다 인내는 화나는 일에 보복하지 않는 자세이며 그 반면에 친절은 상대방이 어떻게 행동하든지 관계없이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적극적인 일을 찾아 하는 것입니다

c)투기하지 않습니다
사랑은 시기하지 않는다 사랑은 사랑하는 사람과 경쟁한다거나 또 자기가 둘째로 밀려날 때 마음에 상처를 입는 것이 아닙니다

d)자기 자신을 자랑하거나 우쭐대지 않습니다
자랑한다는 것은 성공한 것이나 좋은 점 따위를 뽐내는 것이고 우쭐댄다는 것은 거만하거나 잘난 체 하는 것입니다

e)자기의 이익을 구하지 않습니다
사랑의 진짜 핵심은 바로 이것입니다 자기의 방법이나 권리를 주장하지 않고 양보하는 것입니다 결혼 관계에서 문제가 발생하는 것 중에 자기 권리가 무시된다고 생각할 때 분을 내는 것입니다

f)쉽게 화를 내지 않습니다
까다롭고 화를 잘내면 상대방을 초라하게 만듭니다 사랑 안에서는 모든 것을 소화해 냅니다

g)악한 것을 생각지 않습니다
사랑은 그 사랑의 대상으로부터 고통을 받는 좋지 않는 일들을 계속 기억하지 않습니다 또 약점을 확대하지 않습니다 사랑은 용서하고 잃어버리는 것이며 원한을 품거나 불평을 쌓아두지 않는 것입니다

h)모든 것을 참습니다
참는다는 말은 "덮어둔다" "묵인한다" "비밀을 지켜준다" 입니다 사랑은 사랑하는 사람의 잘못을 광고하지 않습니다 사랑한다고 하면서 상대를 깍아 내리는 것은 거짓입니다

i)모든 것을 믿는 것입니다
즉 3단계 질문을 하지 않는 것입니다 "어디 갔었느냐" "무엇을 했느냐" "누구와 함께 있었느냐"등 믿는 것입니다

서로 사랑하라 이것이 가정 행복의 비결입니다 내 유익을 전재로한 에로스 사랑을 버리고 필리아 사랑에서 출발하여 아가페 사랑으로 발전해 가시기를 바랍니다

4)남편들이여 이것을 알자
우리는 남편들의 대화 속에서 여자를 이해 할 수 없다는 말을 듣게 된다 사실 맞는 고백일 수 있다 대부분의 남자들은 여자라는 인격의 체질과 심리를 거의 모르고 있습니다 이것이 부부 생활의 장애가 되고 행복을 저해하는 요소입니다  그러면 남자들이 여자를 이해함에 있어서 어떻게 보고 어떻게 대해야 하는가?

a)여자는 연약한 그릇이다
벧전3:7절을 보면 "저는 더 연약한 그릇이요 또 생명의 은혜를 유업으로 함께 받을 자로 알아 귀히 여기라"고 말씀합니다
이 말은 여가들이 지적 도덕적 그리고 영적으로 열등하다는 의미가 아니라 단순히 여자들은 신체적인 면에서 연약하다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여자들은 남편에게 의존해서 식량공급과 보호를 받습니다 그래서 연약한 여자들은 자식을 낳아서 기르고 부드러운 면에서 가정을 감당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여자들이 이 일을 감당하기 위해서 섬세한 감정을 주셨습니다 여자에게는 때때로 갑자기 일어나는 표현 할 수 없는 기분의 변화로 갈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임신과 출산) 그래서 남자들을 의존하게 됩니다 (남편에 대한 의존도가 떨어지면 여자는 실망하고 불안해 하고 갈등하는 것 입니다)

b)남편은 아내를 사랑해야 합니다
엡5:25절에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위하여 자신을 주심 같이하라"

엡5:28절에"이와 같이 남편들도 자기 아내를 사랑하기를 제 몸같이 할지니 자기 아내를 사랑하는 자는 자기를 사랑하는 것이니라"
               
이 구절의 말씀은 아가페 사랑을 요구하며 그것은 가장 높은 차원의 사랑으로서 되돌려 받을 것이 없을 지라도 계속해서 사랑해 주며 사랑하는 사람을 위하여 좋은 것만 추구하는 것입니다

여자들이란 남편의 사랑을 받으면 반응하게 되어 있습니다  마치 꽃들은 햇빛과 빛을 의존하고 있으며 그것을 받게 되면 화사하고 아름답게 꽃을 피움으로서 반응을 보이는 것입니다 여자들도 각자가 대우를 받는데로 반응하게 되어 있습니다 만약에 남편으로부터 분노와 불평과 무정함을 받으며 인정을 받지 못하면 그녀는 비통함을 느끼며 냉정해 지며 도전적 행동을 취하거나 잔소리를 하는 등의 방어적인 태도로서 반응하게 됩니다 그러나 여자가 사랑을 받고 있다면 그녀도 따라서 사랑으로 반응을 보이게 될 것이며 남편 앞에서 가장 아름다운 존재로 꽃피워 질 것입니다

*자기 아내가 더 이상 자기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남자는 아내를 마땅히 사랑할 만큼 사랑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무의식중에 인정하는 것입니다 *남편이 아내에게 사랑을 해 주고 나면 남편은 아내의 사랑스러운 반응을 즐길 수 있습니다 남편들이여 사랑의 선수를 칩시다

사랑은 관심을 갖는 것입니다 남편의 사랑을 행동으로 제 확인 시켜 주십시요 (선물, 말로 고백) 사랑은 도와 주는 것입니다 여자의 가사를 돕는일 아내를 사랑하는 표현입니다 여자가 할일 이라는 고정관념을 버리자 여자는 신체적으로 연약한 그릇이기에 남자들이여 지금부터 접시를 깹시다 사랑은 희생입니다 자기를 희생하면서 사랑한다는 것은 부수적으로 자기의 시간을 아내에게 주는 것입니다 (취미 생활도 아내와 함께하라) 남자들이여 여자는 연약한 그릇이나 남자로서 보양의 의무를 가지고 생활을 도우며 사랑으로 감싸주는 넓은 가슴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5)아내들이여 이것을 알자
a)복종하라
엡5:22절 "아내들이여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하라

엡5:24절 "그러나 교회가 그리스도에게 하듯 아내들도 범사에 그 남편에게 복종할지니"라고 말씀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의 가정에서 남편들에게 부여된 우선적인 책임은 자기 아내를 사랑하는 것이며 아내들에게 부여된 책임은 남편에게 순종하는 것 입니다 여자는 남편을 돕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만드셨기 때문입니다 남편에게 복종하라는 것은 내 기분에 맞고 정서에 맞는 것만이 아니라 범사에 하는 것 입니다

남편들에게 복종하라는 말에 이견을 제시 할 수도 있다 즉 믿음을 가지지 않은 남편의 말에 어디까지 복종해야 할 것인가 성경은 말씀합니다 벧전 3:1절 에 보면 믿음을 갖지 않은 남편에게도 복종해야 한다고요 그 이유는 복종하는 것이 남편을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열쇠가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대적하거나 말씀에 어긋나는 것을 요구 할 때에는 지혜롭게 대응하여 남편의 마음을 사로잡아야 합니다 

b)남편에게 용기를 주는 자가 되라
남편을 저하시키거나 조롱하거나 깔보거나 다른 사람과 비교하지 말고 그의 능력에 대한 당신의 신뢰감을 표현하도록 하십시요 우리 남편이 가장 잘났고 당신을 만난 것을 감사한다고 이야기 해주십시요

오늘날과 같은 경쟁 사회 속에서 산다는 문제는 그리 쉬운 일이 아닙니다 남편은 아내가 모르는 사이에 종종 절망감과 실망을 느끼고 방해도 받습니다 어떤 사람에게 이용을 당하거나 속거나 빼앗기기도 합니다 그러기에 누군가는 그를 격려해 주고 그에게 감사하고 또 그를 믿어주고 존경해 주는 사람이 필요한 고것입니다 바로 그렇게 해 줄 수 있는 사람은 함께 사는 아내뿐입니다

바로 이 이유 때문에 하나님께서 남자에게 아내를 주신 것입니다 만약 무슨 일이 생기든 지간에 자기를 사모하고 신뢰하고 도와주는 아내가 집에 있다는 사실을 느끼게 되면 남편은 더 많은 어려움이 와도 참아낼 수 있을 것입니다

만약 남편이 직장에서 받는 것과 같은 똑같은 대우를 집에 와서도 받아야 된다면 그는 어떤 형태로든지 다른 도피처를 찾고 싶은 유혹을 받게 되고 가른 불평을 가져 올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존경과 격려하며 미소짓는 아내를 생각하면 그의 발걸음을 자신도 모르게 집으로 향할 것입니다

* 아내들이여 당신들의 사명은 남편을 돕는 위치에 있음을 알고 주관하려 하지 마십시요 늘 조력자 조언자가 되십시요 남편이 곤경에 처해 있을 때 위로하고 용기를 주십시요 남편을 비참하게 만들지 마십시요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남편이 자기 아내를 사랑함으로서 그녀의 필요가 채워지도록 계획하셨고 그와 마찬가지로 아내가 복종함으로서 남편의 필요가 충족 되도록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자연적인 여자의 욕구는 의존적이 되는 것이고 그 반면에 책임을 지고자 하는 욕구가 그 내부에 있습니다

*내가 지금 아내를 진정으로 사랑하고 있지 않다면 복종을 기대하지 마십시요 반면 내가 지금 남편에게 복종하고 있지 않다면 사랑 받기를 기대하지 마십시요   

6)이제 부부간의 문제를 해결하자
두 사람의 사이에는 서로 동의 할 수 없는 영력이 있습니다 서로 동의 할 수 없는 일 때문에 부부간에는 다툼과 싸늘한 공기를 가져옵니다 이런 일들 때문에 자기의 영역 안으로 끌어들이려고 부부는 여러 방법들을 동원합니다
 
*아내는 흔히 쓰는 교정 방법이 잔소리를 하게 되고 때로는 조롱도 하고 필요하다면 울음도 폭팔시킨다 *남편이 쓰는 교정 방법은 빈정 대거는 것으로 여겨지는데 그것은 신란한 비난과 조롱하는 듯한 말투입니다 때로는 성을 내고 오랜 기간 침묵하고 냉전을 사용합니다 또는 폭력을 사용하는 지나친 이들도 있습니다 이러한 방법들을 가지고는 문제를 해결하지 못합니다 자기의 감정을 표현 할 수는 있고 스트레스를 풀 수도 있고 그저 잠시 묻어 둘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해결책은 못 됩니다 이런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a)대화 하십시요
문제가 되는 결혼 관계에 있어서 가정. 일반적인 문제의 하나는 대화의 부족입니다 이것은 부부문제만이 아니라 자녀 문제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요즘 가정은 대화가 부족하거나 부모는 생활 문제와 자녀의 학교 문제가 대화의 장을 마련하기가 어렵습니다
또한 대화를 하려고 해도 대화가 이루어 지지 않는 이유는 대화의 자세 방법에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대화의 자세로는 먼저 상대방의 말을 많이 들어 주어야 합니다 그리고 내 생각과 판단을 상대방에게 고정시키려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내가 이미 결론을 내려 놓고 하는 대화는 대화가 아니라 강의 입니다
그리고 대화의 자세는 사랑으로 진실을 이야기 해야 합니다 그리고 대화의 주제에 다른 것을 끓어드리지 말아야 합니다 대화는 1.2.3의 대화법이 있는데 대화로 상대방을 이해하려는 차원에서 이루어져야 하는 것입니다

b)상대방을 더 깊이 이해하는 것을 목표로 세워야 합니다
부부간의 논쟁 목표는 승자와 패자를 결정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상대방을 이해하여 서로의 명분을 찾는대서 해결점을 찾아야 합니다

c)우리의 감정은 지배 할 수 있기 위해 하나님께 도움을 구해야 합니다
감정이 앞서서는 절대 부부간의 문제를 해결 할 수 없습니다 감정은 이성의 판단을 느리게 하기 때문입니다

d)문제 그 자체만을 공격해야지 그 사람의 인격이나 동기를 공박해서는 안됩니다
서로 걸려 있는 문제만 해결하고자 해야지 지난 일들이나 상대방의 단점들을 지적해서는 아니됩니다 또한 아내는 시댁의 일도 남편은 친정의 문제를 거론하지 말아야 합니다

7)남녀는 동등합니다
창2:18절에는 하나님께서 여자를 창조하시는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사람이 독처하는 것이 좋지 못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 여기서 중요한 말은 "여자는 남자의 돕는 배필로 창조되었다"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말하는 "돕는 배필"이라는 히브리 원문은 "에셀 케네그도(      )"라는 두 단어로 되어 있습니다

"에셀"이라는 말은 "도움, 돕는 자"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이 말은 구약에서 하나님은 돕는 자라든가 하나님께서 주시는 도움이라는 뜻으로 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시121:1-2절에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에셀)이 어디서 올꼬 나의 도움(에셀)이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라고 하셨고  시115편9절에 "여호와를 의지하라 그는 너의 도움(에셀)이시오 너의 방패시로다"라고 했습니다

이와 같이 에셀이라는 말은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들에게 베푸시는 도움, 돕는 자라는 뜻입니다 즉 쓰러질 수밖에 없는 이스라엘을 붙잡아 세워 주시는 하나님의 절대적인 도우심을 뜻하는 말입니다 이렇게 강한 의미를 지닌 말이 여자에게 적용되었다는 것은 매우 놀랄만한 일입니다  여자가 남자의 "에셀"로 창조되었다는 것은 여자가 단순히 남자의 내조라는 정도의 소극적인 뜻이 아니라 여자가 없으면 남자 홀로 설 수 없을 정도로 필수적인 또는 절대적인 도움을 주는 존재로서 창조되었다는 것입니다

또 "게네그도"란 말은 "두 손을 꼭 들어맞듯이 짝이 꼭 맞는다"는 뜻입니다 즉 둘이 완전하게 상응, 대등하다는 말입니다  고로 "에셀 게네그도"란 "완전히 대응되는 대등한 관계로서의 돕는 자"라는 의미입니다 하나님께서 남자의 에셀 게네그도로 여자를 창조하신 것은 남자와 여자의 관계가 우월 관계나 종속관계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 주고 있는 것입니다

또한 창조의 과정 속에서 찾아 볼 수 있는 남녀 평등의 모습은 창1:27절을 보면 원문에는 "하나님이 자가의 형상대로 인간을 창조하시니라 하나님의 형상대로 그를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로 창조하시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 안에서 창조라는 말이 세 번이나 나오는데 중요한 것은 남자와 여자를 똑 같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 하셨다는 것입니다 남자와 여자는 생리적인 성의 구분이 있을 뿐 둘은 똑 같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인간인 것입니다

또한 창1:28절을 보면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복을 주신 내용이 있는데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고 하셨습니다 여기서도 남녀 평등을 찾아 볼 수 있는 것은 남녀 복수 명령 형태로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창3:16절에 나오는 "남자가 여자를 다스리라"하신 말씀은 어떻게 해석해고 이해해 할 까요? 여기서 우리가 기억하고 살필 것은 이 말씀을 하신 시점입니다 창1장과 2장에서는 동등하게 만드시고 축복하신 하나님께서 창3장에서는 왜 종속 관계를 말씀하고 계신가요 이것은 하나님께서 불순종한 여자를 향하여 책망하시는 책망의 말씀입니다 인간이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해서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가 깨어졌을 때 남자와 여자의 바른 관계도 깨어져서 지배와 복종의 관계가 되어진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창조의 질서가 깨어진 상태에서 남녀 관계를 말씀하신 것이지 예수님께서 회복시켜 놓으신 올바른 재창조의 질서 안에서 말씀하신 것이 아닙니다 남자와 여자는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었다는 점에서 동등하다 하지만 기능적인 면을 고려할 때 남성은 책임있는 리더이며 여성은 돕는 자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가정의 기초는 부부로 말미암아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 기초위에 부모님이 계시고 자녀가 있습니다 부부라는 기초가 튼튼하지 못하면 효도도 바른 자녀교육도 불가능한 것입니다 우리 모두 아름다운 가정을 만드는 일에 최선을 다하시는 부부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넷째:아름다운 가정을 만들기 위해서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암4:12-13절)
아름답고 행복한 가정을 이루기 위해서는 성경의 원리 데로 배우고 실천해야 합니다 가정을 그리스도의 가정으로 만들어 믿음으로 하나되게 하는 것은 아름다운 가정을 만드는 지름길입니다 아무리 부부 사이가 좋고 자녀와의 관계가 아름답고 부모에게 효도를 다하는 가정이라 할지라도 하나님과의 관계가 아름답지 못하면 모든 아름다움은 아름다움이 아닙니다 그러기 결혼을 계획하시는 분도 주안에서 결혼하기를 기도해야 하고 이미 이루어서 그리스도 가정이 되지 못한 가정도 주안으로 인도하기에 최선을 다해야 할 것입니다

1)왜 가정을 그리스도의 가정으로 만들어야 하는 가요?
a)진정한 교재가 있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교재란 자신을 나누거나 혹은 참가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볼 때 사죄의 은총을 받은 사람과 받지 못한 사람과는 함께 할 수 있는 공통적인 것이 거의 없기 때문에 가정 생활 속에서 행복스러운 내적 관계를 영위할 수 없는 것입니다

b)친교가 있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친교란 상호 연합이나 밀접한 관계 또는 친근한 사람 사이의 행동을 의미합니다 친교란 교재라고 번역되기도 하지만 친교란 그보다 더 개인적인 것으로 우리들 자신을 인격적으로 나누는 것을 의미합니다 빛과 어두움이 공존 할 수 없듯이 믿음을 가진 자와 갖지 않은 자와는 많은 부분에 공존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c)일치가 있을 수 없습니다
이 단어가 문자 그대로 의미하는 바는 "목소리를 날려보낸다"라는 뜻으로서 여기서 영어의 "교향곡"이라는 말이 나왔습니다 사실 믿음으로 하나되지 못한 부부는 믿음의 한 목소리를 낼 수가 없는 것입니다

d)지체가 될 수 없습니다
지체란 나눈다 혹은 분배한다는 의미로서 반대되는 부분들이 합의 하에 지속되는 것을 말합니다 신자와 불신자와의 사이에는 충분히 동의하고 완전하게 조화를 이룰 수 있는 가능성이 전혀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함께 한 멍에를 멘다는 것은 양쪽 모두에게 부당한 처사가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의 아름다운 가정을 만들려면 그리스도의 가정으로 만드는데 주력해야 할 것입니다 그 이유는 믿음으로 하나되지 못하고는 진정한 교재와 친교와 일체를 이룰 수 없을 뿐더러 지체가 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2)그리스도의 가정을 만들기 위해서는 어찌해야 하는가요?
세상에서 만나는 모든 것들은 양면성을 가지고 있기에 행복과 불행을 함께 가지고 있고 기쁨과 슬픔을 함께 가지고 있습니다 또한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이러한 만남의 대상들이 한 순간의 만남으로 끝이 날뿐 영원하지 못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 안에는 행복과 기쁨과 아름다움만이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과의 만남을 통하여 아름다운 가정을 만들기에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며 이 만남을 지속적으로 유지해 나가야 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모두는 내세까지도 책임져 주시는 하나님을 만났는데 그 만남의 모습은 지금 어떻습니까? 혹시 하나님을 만났기에 하나님이 어떤 분인 줄을 알고 있으면 서도 그 만남이 지속적이지 못하여 내 중심 속에 하나님을 모셔 드리지 못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영원히 사랑해야 할 하나님을 만났기에 우리는 그 분을 영원토록 내 가슴에 모셔 드리고 사모하는 마음으로 지속적인 만남을 유지해 가야 한다는 것을 말입니다

오늘 본문 암 4:12-13절의 말씀에 "그러므로 이스라엘아 내가 이와 같이 네게 행하리라 내가 이것을 네게 행하리니 이스라엘아 네 하나님 만나기를 예비하라 대저 산들을 지으며 바람을 창조하며 자기 뜻을 사람에게 보이며 아침을 어둡게 하며 땅의 높은 데를 밟는 자는 그 이름이 만 군의 하나님 여호와니라"라고 하셨는데 이 말씀의 의미는 하나님의 자녀 된 우리들은 능력의 하나님을 늘 만나기를 예비하라는 내용입니다 이 시간은 본문의 말씀을 주제로 하여 아름다운 가정을 만들기 위해서는 하나님과의 관계가 아름다워야 하겠기에 무엇을 통하여 하나님과의 지속적인 관계를 유지해 갈 수 있는가를 생각해 보겠습니다



a)이 기도를 통하여 하나님과의 지속적인 만남을 시도해야 합니다
기도란 성도가 하나님을 만나는 거룩한 시간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기도를 통하여 하나님과 거룩한 만남을 계속 지속한다면 우리는 인생에 어떤 문제가 온다 하여도 능히 해결함을 받을 수가 있을 것입니다 기도는 성도의 영적 호흡입니다 기도해야 영혼이 날마다 힘을 얻고 새롭습니다 기도는 하나님과의 교제입니다 기도하는 성도만이 하나님의 사랑을 받으며 축복의 길로 들어서게 되는 것입니다 기도는 하나님과의 대화입니다 기도하는 성도는 하나님과 가까워 질 수 있습니다 기도는 하나님을 내 삶의 현장에 초대하는 것이기에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과의 아름다운 교제는 하나님과의 아름다운 만남을 유지한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모두 기도하실 때 먼저 하나님과 교제의 시간을 가지시기를 바랍니다 내가 지금 하나님 앞에 나와 있다는 사실을 감사해 보십시요 능력의 하나님을 의지할 수 있다는 사실 앞에 감사해 보십시요 하나님을 피난처로 삼을 수 있고 목자로 삼고 살아갈 수 있다는 사실 앞에 감사해 보십니다 또한 그 하나님이 나의 아버지 되심을 감사하며 교제의 시간을 가지시기를 바랍니다 그리할 때 무한한 은혜가 넘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기도는 단순한 거래가 아닙니다 기도는 하나님과 우리와의 교제입니다 기도를 통하여 하나님과의 교제하는 즐거움을 누리시기를 마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과 기도를 통한 교제는 관계를 지속적으로 유지하는 비결입니다 하나님과의 아름다운 관계 유지는 곧 우리에게는 축복으로 이어지는 것입니다 기도는 개인의 심령과 교회 부흥의 요소였던 것을 우리는 교회사를 통하여 잘 알고 있습니다 즉 기도하는 성도가 승리하고 기도하는 교회가 부흥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많은 성도들이 기도의 자리를 만들지 못하고 있으니 이것이 문제입니다 왜 우리가 기도하지 못합니까? 그 이유는 기도에 대하여 모르기 때문입니다 즉 기도의 능력을 체험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이론만 알지 실제 생활에서 경험하지 못했기 때문에 기도의 자리를 못 만들고 있는 것입니다 기도하지 못하는 또 다른 이유는 내가 할 수 있다는 자만심 때문입니다 또는 아직 기도하지 않아도 된다는 나태함과 안일함 때문입니다 아니면 나 같은 것이 기도는 해서 무엇하나? 나 같은 것이 기도한다고 들어주시겠는가 하는 열등감 때문에 기도하지 못하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기도합시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기도가 응 답입니다 곳 축복이라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분명히 말씀하시기를 구하면 주신다고 하셨고 부르짖으면 응답하신다고 하셨고 믿음의 기도에는 하나님의 역사 하심이 있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고로 기도는 그 자체가 응답입니다
렘 33,3절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

마7:7-8"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얻을 것이요 찾는 이가 찾을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 열릴 것이니라 "

렘 29:12 "너희는 내게 부르짖으며 와서 내게 기도하면 내가 너희를 들을 것이요 너희가 전심으로 나를 찾고 찾으면 나를 만나리라"

시 77:1 "내가 내 음성으로 하나님께 부르짖으리니 하나님께 내 음성으로 부르짖으면 내게 귀를 기울이시리로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모두 기도합시다 기도는 하나님과의 교제요 이 교제는 우리를 하나님의 지속적인 축복의 자리에 머물게 할 것입니다 왜요? 기도는 성도가 하나님과의 만남을 지속적으로 시도하는 방편이기 때문입니다 고로 이 기도는 나를 변화시키고 환경을 변화시키고 하나님의 응답은 기적을 것입니다 그리할 때 우리 가정은 아름다운 가정이 되어질 것입니다



b)말씀을 가까이 함으로 하나님과의 지속적인 만남을 시도해야 합니다
시 119:103-105절을 보면 "주의 말씀의 맛이 내게 어찌 그리 단지요 내 입에 꿀보다 더하니이다 주의 법도로 인하여 내가 명철케 되었으므로 모든 거짓 행위를 미워하나이다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 "라고 했습니다

기독교는 말씀의 종교입니다 말씀은 신앙과 생활에 있어서 유일한 기준이 되며 잣대가 됩니다 그러므로 성도가 날마다 말씀을 깊이 대하면 신앙이 성장하고 하나님과의 거룩하고도 아름다운 만남을 가질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말씀을 가까이 하는 두 가지 방법이 있는데 하나는 예배 시간에 부지런히 참석하여 말씀을 듣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성경을 부지런히 읽은 것입니다 성도가 말씀을 읽고 듣는 시간은 하나님을 만나는 거룩한 시간이요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시간입니다 이러한 삶을 힘쓰는 자는 어떤 어려움이 그 인생 앞에 온다고 하더라도 능히 말씀의 인도와 위로를 통하여 극복해 나갈 수 있는 것입니다 성도와 말씀은 불가 불리의 관계를 가지고 있으며 성도가 말씀에 따라 사는 것은 곧 축복이요 성도의 재산입니다 웬고하니 하나님의 축복은 말씀을 지키는 자에게 임하기 때문입니다 사실 축복을 떠나서도 성도는 말씀대로 샅아야 할 이유가 있습니다

요1:1절에 보면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고 했으며

요 1:14에 보면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고 했습니다

말씀은 하나님이시요 예수 그리스도 이심을 알 수 있습니다 고로 우리가 말씀을 따라 살자는 것은 하나님을 따라 살자는 것이요 예수님을 따라 살자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말씀 따라 살지 아니하고 말씀을 거역하며 사는 것은 곧 하나님을 거역하며 사는 것이 됩니다 따라서 말씀 속에 사는 삶은 하나님과의 지속적인 만남을 유지하는 비결이기도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을 거역하며 사시렵니까? 아니면 하나님을 따라 사시며 날마다 하나님과의 만남을 지속하시므로 축복의 장중에 세움을 받으시렵니까? 예수 안에 사는 자는 생명이요 축복이지만 예수 밖에 있는 자는 사망이요 저주입니다 우리 모두 하나님의 사람으로 성도라는 아름다운 이름을 받았으니 앞으로 남은 인생을 말씀 따라 살아가시는 성도가 되어 봅시다 가정의 평화와 사업의 형통 그리고 개인의 행복을 원하십니까? 말씀 따라가시므로 하나님과의 만남을 지속적으로 유지하시기 바랍니다

시 119:10-16절을 보면 "내가 전심으로 주를 찾았사오니 주의 계명에서 떠나지 말게 하소서 내가 주께 범죄치 아니하려 하여 주의 말씀을 내 마음에 두었나이다 찬송을 받으실 여호와여 주의 율례를 내게 가르치소서 주의 입의 모든 규례를 나의 입술로 선포하였으며  내가 모든 재물을 즐거워함같이 주의 증거의 도를 즐거워하였나이다 내가 주의 법도를 묵상하며 주의 도에 주의하며 주의 율례를 즐거워하며 주의 말씀을 잊지 아니 하리이다"라고 했습니다

즉 말씀을 따라 살므로 하나님과의 지속적인 만남을 시도하는 성도 "말씀을 떠나지 않고" "말씀을 항상 마음에 두고" "주의 말씀을 즐거워하며" 말씀을 잊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모두 하나님과의 지속적인 만남을 유지하시기 원하시면 mrmfo서 행복한 가정을 만드시기 원하신다면 이제부터라도 말씀을 듣고 대하는 자세를 새롭게 정립하시기를 바랍니다



c)예배를 중히 여기심으로 하나님과 지속적인 만남을 유지하시기 바랍니다
어떤 사람은 예수를 믿으면서도 예배 시간을 중요시 여기지 않는 경우가 있는데 하지만 예배만큼 기독교 신앙에서 중요한 것이 없습니다 예배는 거룩하신 하나님을 만나는 가장 귀중한 시간이요 하나님과의 거룩한 교제 시간입니다 역사가들은 중세 교회 시대를 암흑 시대라고 하는데 그 이유는 다름 아닌 예배의 형식은 있었지만 예배를 통한 하나님과의 거룩한 만남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 우리는 예배를 통한 거룩한 만남을 시도하고 있습니까? 흑시 예배의 단이 무너져 있지는 않습니까? 주일 낮 예배는 탄탄한데 저녁 예배 삼일 예배의 단은 전혀 쌓여져 있지 않습니까? 무너진 예배 생활을 회복하시기 바랍니다 개혁교회에서 예배는 중요한 부분 중에 하나입니다 예배는 인간의 생찰 가운데 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하고도 가장 영광스러운 행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인간에게 영쾅스러운 행동이라고 할 지라도 이것은 반드시 하나님의 뜻에 맞추어 드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배의 본질에 대한 정의를 내린다면 은혜 계약에 의존해서 즉 예수 그리스도를 중보로한 하나님과 사람 곧 예배자와의 만남 교제라고 정의 할 수 있습니다 이러므로 예배는 인간이 하나님께 사랑과 존경과 경외와 순종과 복종으로 드리는 최고의 가치적 행위인 것 입니다 다시 말해 예배는 인간이 마땅히 하나님께 돌려야 할 영광을 돌리는 것 입니다

시29:1-2절에"너희 권능 있는 자들아 영광과 능력을 여호와께 돌리고 돌릴지어다 여호와의 이름에 합당한 영광을 돌리며 거룩한 옷을 입고 여호와께 경배할지어다" 라고 했습니다

"예배""웨쉘"은 인간이 하나님께 무겁고 중한 최고의 가치를 돌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배는 구원함을 받은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께 대한 존경의 표시이며 감사의 표현이고 하나님께 최상의 가치를 돌리는 것입니다

또한 예배는 진리를 통하여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진리를 통하지 않고는 누구도 하나님께 예배 할 수가 없습니다

요4:23-24절을 보면 "아버지께 참으로 예배하는 자들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자기에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지니라"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진정으로"라는 말은 "엔 알레데이아"라고 하는데 이 뜻은 "진리 안에서" "진리에 의하여" 이며 이 진리 "알레데이아"는 "예수 그리스도" 자신을 가리킵니다 예수님은 곧 자신이 진리십니다

요14:6절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상고해 볼 때 우리에게 그리스도가 없이는 예배 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고로 예수님은 예배의 내용이시며 예배의 생명이시며 예배의 길이 십 니다 예수가 없는 예배는 구약의 죽은 예물로 드리는 제사에 불과한 것이기에 결코 예배가 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예배는 인간이 인간적 방법으로 드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보여 주시고 지시하신 방법을 따라 드리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아부라함의 예배도 하나님의 지시에 따라 독자 이삭을 받치는 예배를 드렸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신약의 예배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중보로한 진리를 통하여 드리는 예배 여 야만 합니다

또한 예배는 성령을 통하여 예배 드려야 합니다 누구나 성령을 힙입지 않고는 예배 할 수가 없습니다 요4:23-24절의 말씀 가운데 보면 "신령으로 예배"라는 말이 나오는데 여기서 "신령은" "엔 프뉴마티" 즉 "성령 안에서" "성령에 의해서" 입니다 이와 같이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은 필연적인 길이며 유일한 방법 입니다 왜 예배의 길인 가요? 그것은 성형만이 예수님의 십자가의 구속을 보여주고 깨닫게 하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고전12:3절을 보면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수 없느니라"고 합니다

이러기에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예배는 성령의 감동과 감격을 통하여 드리는 것이며 우리가 주님의 구속의 은총에 감사 감격하여 드리는 예배는 성령의 감화 로 되어지는 것입니다

또한 예수 그리스도에 의하여 그리고 성령을 통하여 드리는 예배는 감사의 예배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예배 할 때 마다 구체적으로 마음의 깊은 갑사를 통하여 예배하지 않으면 아니 됩니다 왜냐 하면 감사가 없는 예배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거나 영광을 돌릴 수 없기 때문입니다 고로 감사가 없는 예배는 무의 미 하며 하나님이 원하시는 예배가 쥘 수 없습니다

시50:23절에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고 말씀합니다

우리가 예배 시간을 통하여 많은 것을 드리지만 감사만큼 귀한 것은 없습니다 기도도 감사를 통하여 드려야 하고 찬송도 갑사의 결과여야 하며 헌금도 감사의 결과여야 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의 삶은 천국으로 이어지는 거룩한 살이기에 이 땅에 현존해 있을 때 우 리는 거룩하신 하나님과의 만남을 날마다 시도하는 성도들이 되어야 할 것입니 다 하나님과의 거룩한 만남이 지속될 때 우리의 삶은 은혜와 사랑이 넘칠 것이며 늘 행복한 삶을 살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또한 아름다운 가정은 만들어질 것입니다 고로 거룩한 만남의 방법은 기도생활 에 최선을 다하며 말씀을 가까이 하며 예배의 삶에 열심을 다는 것임을 아시고 날마다 시도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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