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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예배의 두 기둥 / 마 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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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배의 두 기둥
(마태복음 4:10)

예배라는 주제로 은혜를 나누면서 지금까지 나눴던 말씀을 요약해 보겠습니다. 예배는 하나님을 아는 자만이 드릴 수 있습니다. 모르는 자는 하나님과 늘 싸웁니다. 그러기에 진정한 예배자가 되기 위해 부단히 하나님을 알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예배자를 찾고 계십니다. 예배 받으시기를 원하십니다. 프로그램이 아니라 예배자 자신을 받기 원하십니다. 예배는 방법의 문제가 아니고 예배자 자신이 문제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자의 예배가 성공할 수 있습니다. 예배를 방해하는 자도 있습니다. 사단의 역사에 넘어가지 않아야 예배를 드릴 수 있습니다.

오늘은 예배란 무엇인지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고 그분을 높여드리는 모든 행위가 바로 예배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성전에 야긴과 보아스라는 두 기둥이 있듯, 예배는 두 기둥으로 이뤄져있습니다. 그것은 섬김과 경배입니다. 하나님을 섬기고 경배하는 것이 바로 예배란 말입니다. 여기에 대하여 살피며 은혜를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사람과 동물의 차이

예배의 두 기둥을 말씀드리기에 앞서 사람과 동물의 차이를 알아보겠습니다. 그 차이를 알아보려는 다양한 시도들이 유사 이래 있었습니다. 생물학적으로 차이가 없습니다. 캘리포니아 주립대학의 Ajit Varki 박사팀의 최근 연구에서도 침팬지와 비교할 때 사람의 독특성은 단지 게놈 염기서열의 차이에 기인한 것이 아니라고 발표했습니다. 또, 문화를 만들고 도구를 사용하며 언어를 사용한다는 점을 드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도 그리 납득할 만한 내용이 못되는 것은 동물도 그렇게 하기 때문입니다.

결정적인 차이는 바로 하나님을 예배하느냐 못 하느냐에 따라 결정됩니다. 동물은 예배를 모릅니다. 개나 소가 예배드렸다는 얘길 들어보셨습니까. 그러나 사람은 예배를 위하여 창조된 존재입니다. 안 믿는 사람들 중에 자신은 아무도 예배하지 않는다고 할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아마 자신을 예배하거나 보이는 어떤 것을 예배하거나, 아니면 보이지 않는 무엇을 예배하는 사람일 것입니다. 아니라고 해도 아닐 수 없는 게 인간입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인간을 만드셨기 때문입니다. [사43:7] “무릇 내 이름으로 일컫는 자 곧 내가 내 영광을 위하여 창조한 자를 오게 하라 그들을 내가 지었고 만들었느니라”

예배하는 것은 사람만이 할 수 있는 것이라고 할 때 여기 중요한 진리 하나가 있습니다. 예배를 드리지 못한다면, 제대로 예배드리지 못한다면 그는 짐승과 같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예배하는데 성공하면 사람이지만, 실패하면 동물과 같다는 말입니다. 왜요? 사람과 동물의 결정적인 차이가 예배에 있으니까요. 자신은 그렇게 느끼거나 반아들이지 않지만, 동물 같은 인간이 많습니다. 그럼, 진정한 예배는 어떤 것입니까. 두 기둥이 있습니다.

경배하는 기둥

예수님께서 세 번째 시험을 이기느라 동원한 말씀 속에 그 내용이 들어있습니다. “이에 예수께서 말씀하시되 사단아 물러가라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였느니라” 하나님을 경배하고 섬기는 게 바로 예배입니다. 경배에 대하여 말씀드리겠습니다. [왕하21:21]에 보면, 아몬이 그 아버지 므낫세처럼 우상을 숭배했다는 기록을 이렇게 말합니다. “그 부친의 행한 모든 길로 행하여 그 부친의 섬기던 우상을 섬겨 경배하고” ‘섬기고 경배하는 것’이 바로 예배입니다. 우상숭배를 하는 것도 우상을 예배하였다는 뜻입니다.

예배는 하나님을 경배하는 것입니다. 예배의 사전적 의미도 “초월자에게 경배와 고백과 기도와 감사와 같은 것을 통하여 초월자를 향한 존경과 숭배하는 마음과 경의를 표하는 것”이라 되어 있습니다. 성경에서 예배라는 단어를 사용할 때, 구약이든 신약이든 ‘엎드리다, 절하다, 무릎을 꿇다’라는 뜻을 내포합니다. [시99:5] “너희는 여호와 우리 하나님을 높여 그 발등상 앞에서 경배할지어다 그는 거룩하시도다” 주님의 발 앞에 엎드려 주님을 높여드리는 게 바로 예배입니다. 이런 행위 가운데는 하나님은 높고 위대한 분이지만 나는 낮고 천한 존재라는 걸 보여주는 것입니다.

예배란 자신이 아무 것도 아니란 걸 인정하는 것입니다. 예배는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대우하는 것입니다. 나의 가장 귀한 것을 드려 하나님을 높이고 자랑하며 시인하는 모든 활동이 바로 예배입니다. [시95:6] “오라 우리가 굽혀 경배하며 우리를 지으신 여호와 앞에 무릎을 꿇자” 이것은 예배를 드리자는 내용입니다. 지난시간에 말씀드렸듯이, 자신을 신뢰하고 명예와 부함과 건강을 자랑하는 사람은 그래서 하나님을 예배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런 자는 마귀의 사람입니다.

섬기는 기둥

경배하는 것만 가지고 예배를 드렸다고 하면 안 됩니다. 섬김이 따라야 합니다. 예수님은 오늘 성경에서 마귀에게 “하나님께 경배하고” 그 다음에 “다만 그를 섬기라”라고 대답하십니다. 성경에서 예배라고 할 때, ‘노동, 사역, 일’이라는 개념을 포함합니다. 그래서 영어는 이를 적절히 번역했습니다. 영어는 예배를 Service라고 합니다. 우리의 말로 해석하면 봉사입니다. 하나님께 봉사하는 게 바로 예배란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명령한 예배는 이런 것입니다. [신10:12] “이스라엘아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요구하시는 것이 무엇이냐 곧 네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여 그 모든 도를 행하고 그를 사랑하며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섬기고” 하나님께서 일러주신 말씀을 행하는 것과 사랑하고 하나님을 성심성의껏 섬기는 것입니다. 많은 성도들이 예배를 너무 의식적으로만 생각합니다. 그래서 경배하는 것은 어느 정도 하면서도 섬기는 것은 못하는 성도가 많습니다.

[롬12:1]은 이 점에 대하여 보다 구체적으로 지적합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 몸을 산제사로 드린다는 것이 무엇입니까? 손과 발로 수고하라는 말입니다. 일을 하라는 말입니다. 봉사를 하라는 말입니다. 경배를 잘 하여도 섬김이 없으면 위선입니다. 구약시대에 제사를 수행하는 제사장들이나 레위 사람들이 했던 것은 섬기는 사역입니다. 그게 바로 예배였습니다. [민16:9]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이스라엘 회중에서 너희를 구별하여 자기에게 가까이 하게 하사 여호와의 성막에서 봉사하게 하시며 회중 앞에 서서 그들을 대신하여 섬기게 하심이 너희에게 작은 일이겠느냐”

경배가 마음의 작용이라면 섬김은 행위의 영역입니다. 경배가 의식이라면 섬김은 의식을 살아있게 만드는 내용입니다. 경배가 뼈대라면 섬김은 살입니다. 경배가 원리라면 섬김은 실천입니다. 경배가 내적 태도라면 섬김은 외적 태도입니다. 경배가 예배시간에 하는 것이라면 섬김은 예배시간 밖에서 하는 것입니다. 예배에 있어 이 두 영역 중 한 가지만 있다면 올바른 예배라고 할 수 없습니다. 경배만 있으면 외식이고 섬김만 있으면 사랑의 실천은 돼도 예배는 아닙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배는 인간됨의 특권임을 잊지 맙시다. 예배를 제대로 드려 인간이 되느냐, 예배를 실패하여 동물이 되느냐 여러분이 결정하십시오. 예배는 의식만도 아니고 봉사만도 아닙니다. 경배와 섬김이 잘 어울릴 때 진정 예배는 성공적인 예배가 되는 것입니다. 즐겁고 감사한 마음을 가지도 두렵고 떨린 심정으로 마음을 다하여 하나님께 봉사하는 예배에 성공하시는 여러분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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