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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성전의 두 기둥 (왕상 7:1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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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열왕기상 7:13-22
제목 : 성전의 두 기둥 

오늘은 『성전의 두 기둥』이라는 제목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본문 21절을 보겠습니다. 
  “이 두 기둥을 전의 낭실 앞에 세우되 우편의 기둥을 세우고 그 이름을 야긴이라 하고 좌편의 기둥을 세우고 그 이름을 보아스라 하였으며”

  이스라엘 민족의 조상은 아브라함입니다.  아브라함은 우리들의 믿음의 조상이기도 합니다.  그의 고향은 본래 갈대아 우르였습니다.  하나님은 그를 불러 믿음의 조상을 삼기 위해 고향을 떠나도록 하였습니다.  그의 고향은 우상숭배가 매우 심했던 곳이었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하였습니다.  그리고 가는 곳곳마다 하나님께 제사를 지내었습니다.  예배를 드린 것입니다.  그의 모습을 하나님은 기뻐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이 100세 되었을 때 아들 이삭을 주셨습니다.  100세에 아들을 얻었으니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정말 금지옥엽이었습니다. 

  제가 부산에 살 때 가까이 지내던 장로님이 계셨습니다.  그 장로님이 며느리를 보았는데 마음에 들어하지 않았습니다.  저한테 며느리 험담을 많이 했습니다.  그런데 일년쯤 지나고 나서 손자를 보더니만 며느리 험담이 쏙 들어갔습니다.  손자 이야기만 했습니다.  손자가 너무 사랑스럽다고 했습니다.  금지옥엽은 이때 쓰는 말입니다. 
저는 그때 장로님의 이야기를 이해하지 못했었는데 저도 손자를 보고 나서야 알았습니다.  아들보다 손자가 훨씬 좋았습니다.  인상 좋은 사진을 찍으시려면 앞에 손자를 앉혀 놓고 찍어보십시오.  회보에 나오는 제 사진은 그렇게 하여 찍은 사진입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은 아들을 얻고 나자 예배에 등한해졌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믿음을 시험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이삭을 번제로 바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은 그제서야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자신의 잘못을 깨달은 것입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그대로 순종했습니다.  너무나 귀하고 소중한 아들이었지만 하나님 제일주의로 살아온 아브라함은 아들보다 그 위에 계신 하나님을 먼저 바라보았습니다.  그는 사흘 길을 걸어 모리아 산에 가서 아들 이삭을 제물로 삼아 번제로 드리려 했습니다.  ‘번제’란 제물을 죽여 피를 흘려 불살라 드리는 제사입니다.  아브라함은 아들을 죽여 번제를 드리려 했습니다.  아브라함의 믿음을 보신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아들 대신 수양을 준비하셨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그 수양으로 하나님께 번제의 제사를 드릴 수 있었습니다.  아브라함이 가졌던 그 믿음을 그의 아들 이삭도 가졌고 손자 야곱도 가졌습니다.  그의 후손 요셉도 가졌습니다.  모세, 여호수아, 다윗도 가졌습니다.  그러나 다윗 시대까지 그들의 제단은 정착된 곳이 없었습니다.  일종의 유목생활이라 그들이 가는 곳이 제단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애굽에서 430년 간 종살이한 후 출애굽하여 가나안 땅에 정착한 후 다윗은 완전한 성전을 짓기를 꿈꾸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다윗에게는 성전 짓는 일을 허락지 아니하시고 그 아들 솔로몬에게 허락하셨습니다.  성전은 이스라엘에 있어서 하나님이 주시는 큰복의 절정입니다.  성전을 지을 준비는 다윗이 했지만 착공과 준공, 낙성식은 솔로몬이 했습니다. 

  성전을 짓기 위해서는 많은 물품이 필요했습니다.  좋은 나무도 필요했습니다.  금,은,동,철도 필요했습니다.  기술자도 필요했습니다.  이스라엘 국내에 없는 기술자는 외국에서 불러다가 일을 맡겼습니다.  오늘 의 본문은 성전을 다 짓고 나서 솔로몬이 성전 입구에 두 개의 놋기둥을 세울 때의 말씀입니다.  그 기둥은 높이가 약 25자(약 8m)나 되는 높은 기둥입니다.  기둥의 재료는 놋입니다.  성경에는 구리와 같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첫째, 그 재료를 다룬 사람은 북쪽 두로지방 출신의 희람이었습니다.  그는 노련하고 지혜있는 기술자였습니다.
  본문 14절입니다.
  “저는 납달리 지파 과부의 아들이요 그 아비는 두로 사람이니 놋점장이라 이 희람은 모든 놋 일에 지혜와 총명과 재능이 구비한 자더니 솔로몬 왕에게 와서 그 모든 공작을 하니라”

  교회봉사도 마찬가지입니다.  찬양할 수 있는 사람은 성가대에서 봉사할 수 있어야 합니다.  가르치기를 잘 하는 사람은 교회학교에서 봉사할 수 있어야 합니다.  안내도 봉사입니다.  차량안내도 할 수 있으면 해야 합니다.  식당봉사도 마찬가지입니다.  구원의 감격이 있을 때 복음을 증거할 수 있습니다.  내가 출석하는 교회가 좋을 때 교회를 자랑할 수 있습니다.  그것이 전도입니다. 

  성도 여러분!  내게 주어진 재능이 무엇입니까?  사용하셔야 합니다.  하나님의 교회와 그 나라를 위하여 봉사해야 합니다.  찬양 할 수 있는 분이 성가대석에 있지 못하고 예배당 뒷자리에 앉아서 오늘은 잘했니, 못했니 하면 안됩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가 찾으시기 바랍니다.  또한 교역자들이나 장로님들, 권사님들, 구역장님들 늘 내 교구와 구역원들께 관심을 가지시기를 바랍니다.  일꾼을 찾아서 봉사하도록 지도하시기 바랍니다.  적재적소에 봉사하는 일꾼이 많을 때 교회는 부흥되는 것입니다.

  희람은 놋점장으로 그 귀한 기술을 성전에 사용하여 봉사하므로 그 이름이 성경에 기록되었습니다.  예수님 오실 때까지 히람의 이름은 없어지지 않습니다.  보람을 찾은 것입니다. 
  하나님의 교회에 충성스럽게 봉사하시기 바랍니다.  과천교회의 역사에 귀하게 기록됨과 함께 하늘에 기록되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둘째, 히람이 만든 것은 놋기둥 둘입니다.  15절 상반절입니다. “저가 놋 기둥 둘을 만들었으니”  21절에는 이 두 기둥을 세우는 장소는 낭실 앞이라고 했습니다. 
  낭실은 현관을 말합니다.  놋은 가나안 땅의 명산물입니다.  이 놋은 성막 건축때도 사용했었고 다윗의 성전건축 때도 사용한 중요한 물품가운데 하나입니다.  성전 내부 시설에 이 놋이 가장 많이 사용되었습니다.  놋의 특성은 불변입니다.  튼튼함에 있습니다.  그래서 성전에 사용하는 것입니다.  이는 영적으로 우리의 신앙생활의 견고성을 말하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은 불변해야 합니다.  튼튼해야 합니다.  히브리서 3장 14절입니다.  “우리가 시작할 때에 확실한 것을 끝까지 잡으면 그리스도와 함께 참예한 자가 되리라”  구원의 십자가를 든든히 붙잡아야 승리합니다. 

  예전에 우리 교회에 출석하시다가 미국으로 이민가신 백예섭 집사님이란 분이 계셨습니다.  그분은 지난 2월에 미국에서 95세로 이 세상을 떠나 하나님 나라로 갔습니다.  백집사님은 본래 과천에 사셨는데 과천이 개발되면서 곤지암으로 이사를 하였습니다.  그래도 주일은 반드시 지켰습니다.  왕복 6시간 걸리는 거리를 버스를 여러 번 갈아타고 오셨습니다.  부흥회 때는 낮 집회에는 참석하였습니다.  아흔 가까이 되었을 때 미국에 있는 아들이 모시고 갔습니다.  그래도 그 어른 내외는 오직 과천교회 뿐이었습니다.  일년에 2차례 커피를 한 상자씩 보내셨습니다.  몇 년째 그렇게 했습니다.  김찬종 목사 음성을 듣고 싶다고 국제전화를 주셨습니다.  아드님의 이야기인즉 이민 갈 때 가지고 간 김찬종 목사님의 설교테이프는 얼마나 많이 들었던지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고 해서 몇 개 새로 보내주었습니다.  백집사님 내외는 오직 과천교회 밖에 없었습니다.  김찬종 목사 밖에 없었습니다.

  한번 교회를 선택했으면 불변하는 믿음생활이 있어야 큰복을 받습니다.  믿음생활도 의리가 있어야 합니다.  부모님 장례를 정성껏 교회에서 모셔주었는데 몇 년 안되어 교회를 떠나는 것은 의리 없는 행동입니다.  결혼 주례를 받고 몇 년 안되어 교회를 떠나는 것도 의리가 없는 것입니다.  새문안교회는 역사가 100년이 넘은 교회입니다.  교인들은 3, 4대에 걸쳐 같은 교회를 섬깁니다.  부모님이 섬기던 교회를 내 교회로 섬겼기 때문입니다. 

  놋은 성도에게 주어진 힘으로 상징하기도 합니다.  성도들은 적군 앞에 놋성벽입니다.  그러기에 불신자를 이깁니다.  출애굽 후에 광야에서 이스라엘이 불평 원망하다가 불뱀에 물렸을 때 하나님은 모세의 기도를 들으시고 놋뱀을 장대에 만들어 매달도록 했습니다.  뱀에 물린 자가 그것을 쳐다보면 살았습니다. 장대에 매달린 놋뱀은 십자가에 달린 예수님을 상징합니다.  십자가의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죄씻음 받아 새생명을 얻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과천교회의 튼튼한 놋기둥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흔들리지 않고 변함이 없는 놋기둥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믿을만한 일꾼, 칭찬받는 일꾼, 그리스도의 구원을 자랑하는 일꾼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셋째, 두 기둥의 이름은 야긴과 보아스입니다.  21절 말씀입니다. 
  “이 두 기둥을 전의 낭실 앞에 세우되 우편의 기둥을 세우고 그 이름을 야긴이라 하고 좌편의 기둥을 세우고 그 이름을 보아스라 하였으며”

  우편의 기둥은 야긴입니다.  야긴의 뜻은 ‘저가 세우리라’입니다.  곧 하나님께서 견고하게 하신다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그 기둥을 흔들리지 않게 하신다는 말입니다.  솔로몬이 성전을 지은 장소는 아브라함이 이삭을 하나님께 제물로 드리려 했던 모리아산입니다.  하나님의 뜻이 그곳에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러므로 세우기는 솔로몬이 세운 것 같아도 하나님이 솔로몬을 통하여 세우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이렇게 언제든지 이루어집니다.  지체되어도 이루어집니다.  하나님은 베드로를 통하여 예루살렘 교회를 세웠습니다.  바울을 통하여 유럽교회를 세웠습니다.  청교도들을 통하여 미국교회를 세웠습니다.  언더우드 목사와 아펜젤러 목사를 통하여 한국교회를 세웠습니다.  조원국 목사를 통하여 과천교회를 세웠습니다. 

  우리 교회는 그동안 많은 일꾼을 세웠습니다.  장로님, 집사님, 권사님들입니다.  직원을 세울 때는 교회법에 따라 공동의회에서 투표를 하여 선출합니다.  그러나 이는 사람의 뜻이 아닙니다.  잠언 16장 33절 말씀과 같이 “사람이 제비는 뽑으나 일을 작정하기는 여호와께 있느니라”  하나님이 세웁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 하나님이 세워주셨다는 사실을 믿고 자부심을 가져야 합니다.  그래야 사명감이 생기고 권위가 세워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필요하실 때 교회에 일꾼들을 세우십니다.  목사를 세우고 전도사를 세웠습니다.  장로를 세우고, 집사, 권사, 구역장, 권찰, 교사, 성가대를 세우고 지휘자와 반주자를 세우셨습니다.  바울사도는 고백합니다.  “나를 충성되이 여겨 내게 직분을 맡기심이니”(딤전 1:12)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특히 하나님의 교회 여러 부분에서 봉사하시는 직분자 여러분!  바울의 이 고백이 오늘 여러분의 고백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여러분을 충성되이 여겨서 하나님께서 과천교회에 직분을 주신 것입니다.  여러분은 과천교회의 기둥입니다.  건물은 기둥이 잘 버티고 있어야 오래 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기둥이 흔들리면 그 집은 오래 갈 수 없습니다. 

  예루살렘 교회의 기둥은 야고보사도입니다.  베드로사도입니다.  요한사도입니다.  그들을 통하여 하나님은 예루살렘 교회를 부흥시켰습니다.  120명이 전혀 기도에 힘쓰도록 12사도가 지도했습니다.  불같은 성령충만을 받았습니다.  기둥같은 베드로 사도가 예수님의 부활을 증거했습니다.  예루살렘에 살았던 유대인들이 회개하고 복음을 믿었습니다.  3,000명이 회개하고 세례를 받았습니다.  기둥이 잘 설 때 하나님은 부흥의 큰 복을 주신 것입니다. 

  또한 이 기둥은 현관문 앞에 서 있는 기둥입니다.  그것은 힘을 받치는 것이 아니라 집의 형체와 모양을 더 빛내는 역할도 합니다.  야긴 기둥이 서 있으므로 성전이 더 빛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야긴 기둥은 대표성이 있습니다.
  담임목사만 교회의 대표라 생각하면 안됩니다.  이 교회에 출석하는 모든 성도 여러분들은 모두 다 과천교회의 야긴 기둥입니다.  과천교회의 대표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셨고 우리에게 과천교회를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교회를 사랑해야 합니다.  교회를 존귀하게 여겨야 합니다.  하나님이 계신 집이기 때문입니다.  교회를 사랑하는 자에게 하나님은 큰복을 주십니다.  솔로몬은 성전을 짓고 낙성식을 하나님께 드리며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이방인이라도 이 전에서 기도하면 들으시옵소서.  성전에 오지 못하는 자는 이 전을 향하여 부르짖을 때 들으시옵소서.  주께 범죄한 자가 회개의 기도를 드리면 불쌍히 여기사 용서하옵소서”

  성전은 성도의 영원한 고향입니다.  그러므로 진실한 사랑이 여기에 나타나야 합니다.  찬송가 246장 3절입니다.
  이 교회 위하여 눈물과 기도로
  내 생명 다하기까지 늘 봉사합니다.
  하늘의 영광과 베푸신 축복이
  진리와 함께 영원히 시온에 넘치네.

  다음 좌편의 기둥은 보아스입니다.
  보아스란 ‘여호와의 능력으로 영원히 지켜 주시리라’는 뜻입니다.  보아스는 기둥에게 주시는 능력과 힘입니다.  다윗은 “나의 힘이 되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라고 고백했습니다.  다윗의 승리의 비결은 여기 있습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 고백 위에서 그는 항상 승리했습니다.

  인간에게 힘이 되는 것이 많습니다.  지식, 재물, 권력, 경험, 직장, 건강, 자녀가 출세하는 것도 힘이 됩니다.  그러나 이러한 것은 일시적입니다.  오래가지 못합니다.  변합니다.  유한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에게 영원한 능력이 되십니다.  힘의 근원입니다.  창조의 힘입니다.  통치의 힘입니다.  구속의 힘입니다.  심판의 힘입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힘은 성령입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증인이 되리라”고 사도행전 1장 8절은 말해 줍니다.  성령을 충만하게 주시길 구하시기 바랍니다.  세상의 힘으로는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없습니다.  오직 위로부터 오는 힘으로만 할 수 있습니다.  기둥은 성령의 능력을 충만히 받아야 합니다.  베드로 전서 4장 11절에서는 “누가 봉사하려면 하나님의 공급하시는 힘으로 하는 것같이 하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직분자 여러분!  야긴 기둥 되신 여러분!  보아스 기둥의 능력을 충만히 힘입으시기 바랍니다.  믿음 생활은 성전중심의 생활입니다.  성전은 신앙생활의 고향입니다.  하나님은 그 성전에 계신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교회의 일꾼을 세우십니다.  야긴과 보아스 기둥입니다.  튼튼한 놋쇠 기둥입니다.  재능 따라 하나님의 일을 맡기십니다.  우리 모두 야긴과 보아스 기둥이 되시길 바랍니다.  튼튼하고 변함 없는 놋쇠기둥이 되시길 바랍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나라가 더 부흥하고 평강한 은총이 넘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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