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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안드레 전도운동 / 요 1:4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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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드레 전도운동 ♣
요 1:40-42

무더운 여름철 날씨입니다. 6월 6일 현충일은 어떻게 가족끼리 보람 있는 시간들을 가지셨는지요? 저는 모처럼 만에 아버님 고향 분들이 1년에 한번 모이는 강동면민회에 참석하였다가 용인 에버랜드를 다녀왔습니다. 정말 오랜만에 가져보는 가족 간의 외출이라 몸은 피곤했지만 마음은 홀가분하고 좋았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벌써 다음주면 1년의 반을 결산하는 총동원 주일입니다.
총동원 주일을 앞에 두고 다시금 전도에 대한 도전을 받고자 '안드레 전도운동'에 대하여 말씀을 증거 하고자 합니다.

'안드레'는 시몬 '베드로'의 형제로서 베드로와 같이 갈릴리 해변 벳새다에서 고기잡이하던 어부였습니다. 그는 본래 침(세)례 요한의 제자였다가 "보라 하나님의 어린양이로다."(요 1:35-36)는 스승의 가르침을 듣고 즉시 예수님을 메시야로 믿고 따른 열두 사도 중 제일 먼저 예수님의 제자가 된 사람입니다. 안드레는 열 두 제자 중에 가장 먼저 부르심을 받았기에 초대 교회의 문서에 보면 안드레에게 "먼저 부름을 받은 사람"이라는 별명이 붙어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안드레는 예수가 메시야이심을 믿고 자기 형 베드로를 전도하여 예수님께로 데리고 나왔습니다. 이렇듯 안드레는 자기 아집에 사로잡혀 있지 않고 항상 열린 마음을 가지고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과 관심을 보여준 믿음의 형제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갈릴리 해변으로 지나가시다가 시몬과 그 형제 안드레가 바다에 그물을 던지는 것을 보시고 가라사대 "나를 따라 오너라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하실 때에 곧 " 배와 그물을 버려 두고 예수를 좇았습니다." (막1:16-18)

어부가 그물을 버린다는 것은 전 생계를 포기하는 것을 말합니다. 지금까지 자기의 모든 것을 걸고 살아왔던 삶의 터전을 포기할 정도로 예수님은 소중한 분이었기에 이제 모든 것을 버리고 안드레는 결단하였습니다.

안드레가 주님의 부르심에 응답하는 모습은 단순하게 기록되었지만 그 내면에는 여러 가지 의미가 내포되어 있습니다. 이제까지의 삶의 모든 것을 포기하고 오직 예수께 자신의 삶을 의탁함을 뜻합니다. 실제로 안드레의 삶은 예수께 부름 받은 후부터 많은 것이 달라졌습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신 대로 이제 안드레는 육신의 양식을 위하여 물 속에 있는 고기를 잡
는 자가 아니라 죄악의 물결 속에 떠내려가는 불쌍한 영혼들을 건져내는 사람 낚는 어부가 되었던 것입니다.

Ⅰ. 찾아 전도하는 안드레(41절)

"그가 먼저 자기의 형제 시몬을 찾아." (요 1:41) 안드레는 예수님을 만나자 마자 자기의 형제인 베드로를 예수님에게 데려왔습니다.

안드레가 자기의 형제인 베드로를 즉시 예수님에게 데려올 수 있었던 것은 형제간의 인격적 관계가 좋았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형제가 서로 좋아하고 서로 신뢰하고 서로 존중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지 모릅니다. 지금같이 형제우애가 없고 친구관계가 소원하기만 한 이때에 베드로와 안드레의 관계는 우리에게 많은 도전을 줍니다.

형제나 친척을 귀중히 여기지도 않고 좋아하지도 않는 사람이, 또 형제나 친척으로부터 신뢰와 존경을 받지 못하는 사람이 개인전도를 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합니다. 이런 사람은 오히려 전도의 길을 막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안드레는 베드로를 예수님에게 데려왔습니다. 결국 베드로는 초대교회의 반석과 같은 위대한 전도자가 되었습니다. 예루살렘과 사마리아와 욥바와 가이사랴와 마지막에는 로마에 있는 수많은 이방인들을 예수님에게 데려오는 위대한 전도자가 되었습니다.

어떻게 이런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까? 안드레의 개인전도 때문에 이런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개인전도의 기적이 여기에 있습니다. 안드레는 하루에 삼천 명을 회개시킨 일은 없습니다. 그러나 삼천 명을 회개시킨 사람을 주님께로 인도하였습니다.

베드로가 되라 하면 우리 중에 못할 사람이 많이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안드레는 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인도하는 그 사람중에 어느 누가 베드로와 같은 빌리그레함 목사님과 같은 훌륭한 인물이 되어 나타날지 모릅니다. 하지만 한 사람을 전도함으로 써 놀라운 기적이 일어날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며 전도해야 합니다.

개인전도의 첫 출발은 찾아가는 일입니다.
안드레는 찾아가는 일을 잘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오병이어의 기적을 베푸시는 장면을 보면 무리에게 복음을 증거 하실 때 무리가 기진 하여 곤란을 겪게 되었습니다. 그 곳은 광야인지라 음식을 살수도 없었으므로 제자들은 어찌할 바를 몰라 당황해했습니다. 예수께서 빌립에게 '어디서 떡을 사서 이 사람들로 먹게 하라 하셨을때 빌립이 대답하되 각 사람으로 조금씩 받게 할지라도 이백 데나리온의 떡이 부족하리이다." (요 6:7)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안드레는 그 가 할 일을 찾아 예수께 한 아이가 보리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졌다고 말씀드립니다.
"제자 중 하나 곧 시몬 베드로의 형제 안드레가 예수께 여짜오되 여기 한 아이가 있어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졌나이다 그러나 그것이 이 많은 사람에게 얼마나 되겠삽나이까" (요 6:8-9)』

안드레는 빌립처럼 계산만 하고 있었던 것이 아니라 무엇인가를 찾는 것을 대조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그 적은 음식으로 오천 명이 배불리 먹고도 열 두 광주리가 남는 기적을 행하셨습니다.

안드레는 사람들이 굶주려 고통받는 것을 안타깝게 생각한 나머지 할 수 있는 방도를 찾았던 것입니다. 이러한 안드레의 모습에서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실천함을 볼 수 있습니다. 이는 강도 만난 사람을 만났을 때 여러 가지 이유를 대며 그 자리를 피한 유대 종교 지도자들과 달리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을 찾아 실행하여 그 사람을 구한 사마리아인의 모습과 흡사하다 할 것입니다. 안드레가 사람들의 고통을 안타깝게 여기며 찾아가는 열정이 주님께서 오병이어의 표적을 행하심에 한 도구로 사용 받았습니다.

머릴로가 그린 '안드레의 순교'라는 그림에는 죽어가는 안드레 옆에 어린 소년이 눈물을 흘리고 있다고 합니다. 그 소년은 다름 아닌 물고기 두 마리와 보리떡 다섯 개를 예수님께 바쳤던 소년이었다고 합니다.

성도는 이웃의 고통을 안타까이 여기는 사랑과 긍휼의 마음이 가득한 가운데 할 일을 찾아 실행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성도의 사랑을 통하여 구원의 역사를 이루십니다.
이렇듯 안드레는 찾아 실행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베드로를 찾아 예수님께 소개하고, 오병이어를 가진 어린 아이를 찾아 예수님께 드림으로 주님의 역사를 도왔습니다.

찾아 전도하는 일은 소극적 전도가 아니라 적극적인 전도요, 피동적인 전도가 아니라 능동적인 전도요, 형식적인 전도가 아니라 사명이 넘치는 역동적인 전도입니다. 전도는 이런 정신과 자세로 할 때 교회가 아름다운 교회로 부흥하고 성장해 갑니다.


우리도 이웃을 찾아 전도합시다. 이사온 사람을 반갑게 찾아가서 전도합시다. 어려운 일을 당한 사람을 찾아가 도와주며 전도합시다. 억울한 일을 당하거나 슬픈 일을 당한 사람을 찾아가 위로해 주며 전도합시다. 실패나 좌절에 빠져 있는 사람을 찾아가서 격려하며 전도합시다. "볼지어다 아름다운 소식을 보하고 화평을 전하는 자의 발이 산 위에 있도다." (나 1:15)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으면 어찌 전파하리요 기록된 바 아름답도다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들의 발이여 함과 같으니라." (롬 10:15) "멀리 가서 이방 사람 구원하지 못하나 네 집 근처 다니면서 건질 죄인 많도다 천사같이 말못하고 바울같이 못하나 예수께서 구속함을 힘을 다해 전하세." (263장 2절)라는 찬송대로 전도하되 전도할 기회를 찾고 또 찾아 나서야합니다

『미국의 한 상원의원이 벨기에 대사를 집에 초청하면서 아버지에게 부탁하였습니다.
"아버님, 절대로 대사에게 전도한다고 법석을 피우지 말아 주십시오!"
그러나 대사가 집에 들어섰을 때 아버지는 아들의 부탁을 깜박 잊어버렸습니다. 아들이 아버지에게 대사를 소개하자 아버지는 몇 마디 인사를 하더니 물었습니다.
"대사님, 대사님께서는 그리스도인이신가요."
상원의원은 당황하였으나 대사는 상당히 교양을 갖춘 사람이었다. 몇 달이 지난 후 상원의원의 부친은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리고 장례식에는 수많은 꽃다발이 헌화되었습니다. 특히 그중에서 가장 크고 눈에 띄는 화환이 있었는데, 쪽지에는 다음과 같이 쓰여 있었습니다.
"나의 영혼을 하나님께 인도한 미국 내에서의 단 한 분!"
그리고 그 쪽지에는 벨기에 대사의 싸인이 있었습니다.
-찰스 카우만-[짧은 만남이 준 영원한 생명]』

인간의 영혼을 구하시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전도의 도구로 사용하길 원하십니다.
"그런즉 저희가 믿지 아니하는 이를 어찌 부르리요 듣지도 못한 이를 어찌 믿으리요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롬 10:14). 하시니 전도할 기회를 찾아 전도하는 모두가 됩시다.

Ⅱ. 메시야를 만났다고 증거하는 안드레

"그가 먼저 자기의 형제 시몬을 찾아 말하되 우리가 메시야를 만났다." 하고 (메시야는 번역하면 그리스도라) (요 1:41)

유대인들은 메시야에 대한 구약 예언의 말씀을 믿고 고대하였기에, 메시야를 만났다는 것이 최대의 관심거리가 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안드레는 복음을 베드로에게 전함으로써 사람을 낚는 어부로서의 자질을 보여 주었습니다. 자기가 만난 메시야를 소개하고 자랑했습니다.
"우리가 메시야를 만났다."(요 1:41)는 말은 내가 만난 예수를 전하는 말입니다.
안드레는 자기가 만나고 경험한 예수를 진솔하게 전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전도를 잘하려면 증거하는 간증을 잘할 줄 알아야 합니다.

개인 전도할 때 예수를 만나기 전의 나의 상황은 어떠했으며? 예수 믿고 난 후 나의 삶은 어떻게 변화되었는가? 등 예수 믿고 받은 은혜와 변화된 삶을 증거해야 합니다.

사마리아 여자가 물동이를 버려 두고 동네에 들어가서 사람들에게 이르되 (요 4:28)"나의 행한 모든 일을 내게 말한 사람을 와 보라 이는 그리스도가 아니냐."(요 4:29)라고 전합니다. 예수님을 만난 사람은 환경 여건을 뛰어 넘습니다

『 소련의 쟈부르스키라고 하는 청년은 군인이었습니다. 그는 깡패 출신의 포악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예수를 믿고 새사람으로 변화되자, 소련사회에서 예수를 믿는 것은 손해밖에 돌아오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면서도 만나는 사람마다 예수 이야기를 전했습니다.
한 번은 군대 상관이 그를 불러서 회유하기 시작했습니다. 예수만 부인하면 계급도 올려주고 돈도 벌 수 있게 해 주겠다고 제의했지만 쟈부르스키는 듣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그 상관이 쟈부르스키를 불러놓고 자기의 과거 경험담을 털어놓았습니다.

“우리 부대에 너와 비슷한 사람이 한 사람 있었지. 그는 목에 십자가를 항상 걸고 다녔어. 내가 한번은 그를 불렀네. 그리고 둘이서 이야기를 오래 했다네. 이야기를 다 끝마치자 그 친구는 목에 걸고 있던 십자가를 끌러 탁자 위에 놓더니 다시는 십자가를 목에 걸지 않겠다고 하더군. 그리고는 공산당 입당원서를 달라고 하더니 거기에 자기 이름을 쓰고 공산당에
입당했다네. 그 후로 아주 자랑스러운 공산당원이 되었다네." 상관의 설득은 달콤했습니다. 그러나 쟈부르스키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사실 저도 목에 건 십자가를 벗어 놓을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그런 십자가에 계시지 않고 제 마음에 계시는데 어떻게 합니까? 저도 예수님을 탁자 위에 올려 놓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만약에 그렇게 하면 제 생명에 종말을 의미하는 것이며 제 마음을 칼로 도려내는 일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목에 건 십자가는 탁자 위에 올려놓을 수 있어도 내 마음에 계시는 예수님을 탁자 위에 올려놓을 수는 없습니다.”(마음에 계시는 예수님)』

빌립 집사님도 입을 열어 이 글에서 시작하여 예수를 가르쳐 복음을 전하니(행 8:35) 길 가다가 물 있는 곳에 이르러 내시가 말하되 보라 물이 있으니 내가 침(세)례를 받음에 무슨 거리낌이 있느뇨 (행 8:36)하며 침(세)례를 받았습니다
메시야를 바로 알 때 신분을 뛰어 넘어 영접하는 역사가 나타납니다

『 <명상록>의 저자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Marcus Aurelius, AD 161-180) 황제는 높은 학문으로 유명했으나 기독교를 박해하는데는 네로 황제를 방불케 했다고 합니다.
그는 어느 추운 겨울날 황제 동상에 대한 경배를 거부하는 기독교인 40명을 체포하여 발가벗긴 채 얼어붙은 빙판 위에 세워놓았습니다. 이들 40명의 기독교인들은 굶주림과 추위로 도저히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결국 추위를 이기지 못한 한 사람이 자리를 떠나 황제 동상 앞으로 나가서 절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이것을 본 다른 39명의 기독교인들은 죽기를 각오하고 배고픔과 추위에 맞서 큰소리로 찬송을 부르며 목소리를 다하여 기도하였습니다. 이때 그 모습을 지켜보던 로마군 경비대장이 군복을 벗어 던지고 맨발로 빙판으로 걸어나가 기독교인들 사이에 들어가 비어 있던 자리를 채웠습니다. 결국 그들은 모두 굶주림과 추위로 순교를 당하였고 이들을 가리켜 역사가들은 "빙판 위의 40인"이라고 불렀습니다.』

기쁨, 평안, 병 고침, 축복 받은 간증, 변화 받은 간증 행복함의 간증을 해야 합니다.
교회자랑, 목사님자랑 예수님 자랑을 해야 합니다.
안드레는 그가 고백한 메시야를 만난 사실을 증거하다 순교 했습니다.

안드레는 3년간 꾸준하게 예수님을 따라 다녔던 사람입니다. 사도행전 2장에서 성령이 임할 때 그 120문도 중에 안드레가 있었다는 기록 외에 또 다른 기록을 찾을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교회사를 살펴보면 안드레는 자기가 들은 복음에 만족하지 않고 그리스도를 전하기 위해 세계를 향해 떠나는 선교사가 되었습니다. 유세비우스의 '교회사'를 보면 그는 소아시아의 에베소를 중심으로 사역을 시작한다고 합니다.

260년경에 기록된 안드레 개인의 삶에 대한 자서전과 같은 책을 '안드레 행전'이라 한다는데, 그가 소아시아를 중심으로 특별히 에베소에서 복음을 전하는 사역 가운데 헌신하고, 러시아의 남부까지 찾아가며, 스키티아라는 지역에 가서 복음을 전하다가 돌에 맞아 죽을 뻔한 위기도 당하나, 그는 러시아에서 희랍으로 돌아와, 그리이스의 아가야로 와서 페투테라는 곳에 머물게 되는데, 거기서 에게테스라는 주지사를 만나 그의 동생과 부인에게 복을 전하여 믿게 하자 이것을 탐탁하게 여기지 않은 주지사가 안드레를 죽이게 된다고 합니다.
안드레는 처형당하기 위해 X자형의 십자가 앞에 섰기에 이것을 안드레형 십자가라 한다고들 합니다. 주지사가 "그대는 지금이라도 예수 믿는 신앙을 포기하고 그대의 목숨을 보존하라"고 하자, 안드레는 "지사님이여 그대는 그대의 영혼을 잃지 마시오"라하며, 숨을 거두며 이런 기도문을 남겼다고 합니다. "오 그리스도 예수님이여 나를 받아 주소서. 내가 본 그분, 내가 사랑한 그분, 그분 안에서 나는 내가 되었나이다. 주님이시여, 당신의 영원한 나라의 평안 가운데 이제 나의 영혼을 받아 주옵소서"
안드레는 메시야를 만났다고 증거하며 메시야를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합니다. 우리도 내가 만난 메시야를 증거하며 전도합시다.


Ⅲ. 데리고 오는 안드레

"데리고 예수께로 오니 예수께서 보시고 가라사대 네가 요한의 아들 시몬이니 장차 게바라 하리라 하시니라." (게바는 번역하면 베드로라) (요 1:42)

전도는 찾아가야 합니다. 전해야 합니다. 그리고 한 걸음 더 나아가 전도한 사람을 데리고 와야합니다. 안드레는 항상 사람들을 예수님께 인도하는 은사의 사람이었습니다. 사람들을 찾아 그들을 주님께 안내하는 역할을 한 사실들이 성경에 일관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요한복음 12장 20절에 예루살렘 입성에 관한 말씀이 나오고 있습니다. '호산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라고 수많은 군중이 소리치며 환영하였습니다. 이 무리 중에 유대인 아닌 헬라인 몇이 있었습니다. 이들은 예수님을 만나보기를 원했습니다. 저희가 갈릴리 벳새다 사람 빌립에게 가서 청하여 가로되 "선생이여 우리가 예수를 뵈옵고자 하나이다." 하니 (요 12:21)빌립은 이같은 소식을 안드레에게 찾아가서 말하였습니다. 빌립이 왜 안드레를 찾아갔겠습니까? 무엇보다 인간관계가 원만했기 때문입니다. 나아가 사람들을 포용하고 감싸주는 긍정적인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안드레는 빌립으로부터 이 소식을 듣고 즉시 이들을 반갑게 맞이해 주었으며, 점심식사도 대접했을 것입니다. 아울러 예수님에 대한 놀라운 이야기도 들려주었을 것입니다. 헬라인들이 안드레의 말을 듣고 마음들이 열리기 시작했습니다.

이런 헬라인들을 안드레는 예수님께로 인도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이들에게 죽음과 부활의 생명에 대하여 증거 했습니다. "죽으면 산다."는 진리의 말씀을 선포했습니다. 헬라 철학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진리였지만 이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심령에 기쁨으로 받아드리고 헬라로 돌아갔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알게 모르게 안드레와 예수님께서 전하여준 생명의 복음에 대하여 많은 사람들에게 증거 하였을 것입니다. 그리하여 훗날 사도 바울이 헬라에서 복음을 전할 때 큰 힘이 되어주었을 것입니다.

이렇듯 안드레는 사람들을 인도하여 예수님께로 데려오는 은사가 있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저와 여러분들 중에도 안드레와 같이 사람들을 찾아 전하여 교회로 데리고 나오는 성도들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할 때 늘찬양교회가 부흥할 수 있으며 15일 총동원 주일은 은혜중에 마칠 수가 있을 것입니다.

데리고 오는 감동적인 사건은 소돔 고모라 성에서의 천사의 방법입니다. 두 천사는 소돔성에 들어가 머뭇거리는 롯과 그의 처 그리고 두 딸을 손으로 이끌어 데리고 나왔습니다. 우리도 멸망해 가는 사람들을 이끌어 내는 천사의 손이 되어 그들을 데리고 와야 합니다.
가정에서 남편의 손을 잡고 자녀들의 손을 잡아서 인도하여야 합니다. 친구들의 손을 잡고 인도하여야 합니다. 이를 위해 하나님께 기도해야 합니다.
입으로 전하며 전도해야 합니다. 사랑을 실천해야 합니다

『 어느 젊은 여인이 낯선 도시에 도착했습니다. 그 여인은 결혼하기로 약속한 남자가 마중을 나오리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역에서 이른 아침부터 정오가 될 때까지 기다렸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그 남자는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여인은 가진 돈도 별로 없는 데다 이 낯선 도시에 아는 사람이라고는 단 한 명도 없었으므로 절망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때 여행자 안내 사무소에서 일하고 있던 한 여직원이 그녀의 얼굴에 무언가 난감한 듯한 표정이 역력하게 드러나 있는 것을 보고 다가왔습니다. "제가 좀 도와드릴까요?" 여인은 자기의 딱한 사정을 털어놓았습니다. 여행자 안내 사무소의 여직원은 마중 나오기로 했다는 그 남자에 대해서 친절하게 조사를 해주었습니다. 그리고 그 남자는 이미 이 도시를 떠났
다는 것을 알아냈습니다. 여직원은 실망한 젊은 여인에게 위로의 말을 해주고 훌륭한 식사도 대접했습니다. 그리고 그녀를 어느 그리스도인 가정에 데리고 가 일자리를 구할 때까지 거기서 지내도록 배려해 주었습니다.

어느 날 이 젊은 여인은 사무소에 있는 그 여직원의 친절에 감사를 표하려고 그녀를 찾아가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전, 오랫동안 교회에 나가지 못했기 때문에 역에 도착하던 그 날 하나님께서 저를 완전히 잊으신 줄로만 알았지요. 그런데 지금은 하나님께서 절망에 빠진 사람을 돕도록 당신처럼 친절한 사람들을 예비하고 계신다는 사실을 알아요. 이 깨달음이 저로 하여금 최고의 그리스도인이 되고 싶다는 열망을 갖게 하더군요. 마침내 전 당신의 그 친절한 행위를 또 다른 사람에게 전하기로 결심하게 되었어요."(미션바이블 하나님, 절 잊으셨습니까?)』

안드레는 예수님을 만나자 모든 것을 버리고 따라 가기로 결단하고 형제의 영혼의 가치를 인정하고 찾아가 자기가 만난 예수 그리스도를 소개하고 데리고 오는 '개인전도'의 모범을 보여주었습니다.

전도란 내가 만난 예수님에 대한 감격을 가지고 사람들에게 찾아가 내가 믿는 그리스도를 전하고 예수님을 믿도록 데리고 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6월 15일 안드레 처럼 찾아 전하고 데리고 오는 책임과 의무 속에 총동원 주일이 은혜 넘치는 축복의 날이 되어 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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