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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섬김과 나눔 / 레 19: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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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섬김과 나눔
본문 레위기 19:9∼16

오늘 설교 제목 '섬김과 나눔' 은 새로운 말인 것 같지만 사실은 새로운 말이
아닙니다. 교회에서 아주 많이 쓰고 있는 말을 조금 바꾼 것입니다.
'봉사와 구제'를 바꾼 것입니다.

섬김과 나눔, 봉사와 구제는 서로 다른 두 개의 것이기도 합니다.
교회에서 교사나 찬양대원으로 수고하거나 청소를 하고 주방에서 일하고 하는
것을 봉사라고 하지요. '그 성도, 봉사 열심히 하나?' 하는 것은 교회 활동을 얼
마나 열심히 하느냐는 것과 같은 뜻입니다.
이 경우의 봉사, 섬김은 나눔과 다른 것입니다.

그러나 많은 경우 섬김과 나눔은 하나입니다. 같은 것입니다.
교회가 해야 할 일들은 예배·선교·교육·봉사·교제, 다섯 가지인데 이 때
'봉사는 구제를 말합니다' 하는 설명을 들으셨을 것입니다.
또 섬기려는 마음이 있어야 나눌 수 있습니다. 섬김이 알맹이라면 나눔은 껍데
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논리학에서는 이런 것을 내포(內包)와 외연(外延)이라고 하지요.

이렇게 말을 바꾸면 그 의미가 더 잘 이해가 되고 새로워지기도 합니다.
예전에 말콤 펜윅(Malcolm C. Finwick 1863∼1935)이라는 선교사가 있었습니
다. 이 분은 한국을 진정으로 사랑하고 한국식 생활을 좋아한 분이었습니다. 그
래서 '펜윅은 토착적 선교를 한 선교사이다'라고 말합니다.
펜윅 선교사가 독자적으로 성경을 번역해서 1919년에 출간했는데 한국 사람들
이 이해하기 쉽게, 한국인의 정서에 맞게 번역하느라고 애썼습니다.
이 분은 '성령을 무엇이라고 해야 한국 사람들이 잘 이해할 수 있을까?' 생각하
다가 '숨'이라는 말로 번역했습니다. 호흡이라는 뜻입니다.
오늘은 사도행전 2장 1절에서 4절까지의 일이 일어난 성령강림주일인데 사도행
전 2장 4절
"저희가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라는 말을 펜윅 선교사는 "저희가 다 숨님으로 가득하시
고 다른 여러 가지 말로 숨님께서 말씀하시게 하신 대로 하셨느니라"라고 번
역했습니다.
지금 보면 어색한 느낌도 있고 백 퍼센트 잘 되었다고 하기 어려울지 모르겠지
만 성령이 무엇인지 이해가 부족하던 당시에 '아, 성령은 호흡처럼 우리와 함께
늘 함께 하는 것이로구나!' 쉽게, 분명하게 알려주는 번역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숨을 쉬지 않고는 살 수 없는 것처럼 성령을 떠나서는 살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합니다.

봉사와 구제를 섬김과 나눔으로 달리 표현하는 것은 효과적인 일인 것 같습니
다.

성경에서 구제에 대한 대표적인 말씀은 산상보훈인 마태복음 6장 2절에서 4절
까지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구제할 때에 외식하는 자가 사람에게서 영광을 받으려고 회당과
거리에서 하는 것 같이 너희 앞에서 나팔을 불지 말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
르노니 그들은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 너는 구제할 때에 오른 손이 하
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여 네 구제함을 은밀하게 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
는 너희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이 말씀을,

그러므로 나눌 때에 외식하는 자가 사람에게서 영광을 받으려고 회당과 거
리에서 하는 것 같이 너희 앞에서 나팔을 불지 말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
노니 그들은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 너는 나눌 때에 오른 손이 하는 것
을 왼손이 모르게 하여 네 나누는 것을 은밀하게 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너희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라고 바꿔도 그 교훈이 손상되지 않고 잘 전달됩니다. 더 부드럽게 전달되는 것
같습니다.

오늘 본문은 가난한 사람들, 거류민들(이 거류민들은 외국인들을 말합니다)을
섬기는 마음으로 나눔에 힘쓰라고 강하게 우리에게 말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을 기초로 섬김과 나눔에 대한 교훈을 같이 찾습니다.

첫째, 우리는 섬김과 나눔을 중요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이스라엘에서는 밭에서 곡식을 거둘 때 모퉁이까지 다 거두지 않도록 했습니다.
떨어진 이삭을 줍지 않도록 했습니다.
포도원의 열매를 딸 때에도 다 따지 않게 했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이 그것을 가지고 연명하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이것은 아주 중요한 규례였습니다.
지켜도 좋고 안 지켜도 좋은 것이 아니라 꼭 지켜야 할 규례였습니다.
이 말씀은 성경 한 군데만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 본문에도 나오고 또 같은 성경인 레위기 23장 22절에 한 번 더 나옵니다.

너희 땅에 곡물을 벨 때에 밭 모퉁이까지 다 베지 말며 떨어진 것을 줍지
말고 그것을 가난한 자와 거류민을 위하여 남겨 두라 나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이니라

이 말씀은 신명기 24장 19절에서 22절까지에서 반복해서 또 한 번 나오는데 이
번에는 좀 더 자세하게 나옵니다.

네가 밭에서 곡식을 벨 때에 그 한 뭇을 밭에 잊어버렸거든 다시 가서 가져
오지 말고 나그네와 고아와 과부를 위하여 남겨 두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손으로 하는 모든 일에 복을 내리시리라 네가 감람나무를 떤
후에 그 가지를 다시 살피지 말고 그 남은 것은 객과 고아와 과부를 위하여
남겨두며 네가 네 포도원의 포도를 딴 후에 그 남은 것을 다시 따지 말고
객과 고아와 과부를 위하여 남겨 두라 너는 애굽 땅에서 종 되었던 것을 기
억하라 이러므로 내가 네게 이 일을 행하라 명령하노라

이렇게 성경에 여러 번 거듭해서 나오는 것 한 가지만 보아도 이스라엘 사람들
이 이 규례를 얼마나 중요하게 여겼는지 알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 "나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니라" 또는 "나는 여호와니라" 라는 말
씀이 반복해서 나옵니다. '이 명령을 하는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다' 라는 뜻인데
'이 명령을 안 지키면 안 된다!' 하는 뜻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명령들 가운데에서도 아주 강한 명령이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에게만 하는 강한 명령이 아니고 오늘 우리에게 하는 엄중한
명령입니다.

섬김과 나눔은 교회와 성도들에게 선택과목이 아닙니다. 필수과목입니다.
교회는 그 동안 교회 부흥을 필수과목으로 여기고 섬김과 나눔은 선택과목으로
여기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그 결과 사회로부터 좋지 않은 소리를 듣는 일이 많았습니다. 교회를 평가하는
점수가 낙제점 부근에 맴돌고 있습니다.

한신대학 신학연구소에서 한국 개신교에 대한 한국인의 의식조사'라는 것을 실
시했는데 그 결과를 보도하는 교계 신문 제목이 '개신교 신뢰도 급감, 위기 의
식 절실'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저 참고할 정도의 일이지만 이런 말들이 나오는 이유 가운데 하나가 섬기고
나누는 일에 관심이 적었기 때문인 것은 부인하기 어렵습니다.

감사한 것은 요즘 감리교회가 이 섬김과 나눔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이 일에 많
은 힘을 쓰고 있다는 것입니다.
대구 지하철 참사가 발생했을 때 감독회장님을 비롯해서 관계된 분들이 재빠르
게 현지에 내려가서 유족들을 위로하고 성금을 전달했습니다.
천안 어느 초등학교 축구부 합숙소 화재 사건 때도 그랬습니다.
이번에 이라크 난민들을 돕는 일에도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습니다.
저희 교회에서도 사순절 금식헌금의 일부를 이라크 난민 돕기 헌금으로 보냈고
지난 한 주간 이라크 난민 돕기 사랑의 쇼핑 현장에도 어제까지 많은 성도들이
나가서 기쁜 마음으로 봉사했습니다.
다른 교파들과 교계 언론들이 이런 모습을 보고 '감리교회가 달라졌다' 하면서
놀라고 있습니다.

지난 5월 28일에는 감독회장님을 비롯하여 감독님들 거의 전부, 그리고 감리회
본부 직원들이 광화문 네거리에 나가 노방전도를 했습니다. 이것을 보고는 '감
리교회, 정말 달라지고 있다' 하는 소리가 여기 저기에서 들리고 있습니다.
요즘 광화문은 각종 시위로 몸살을 앓고 있는데 거기에서 감리교의 지도자들과
실무자들이 앞장서서 생명의 복음을 전하는 모습을 보여준 것은 참 신선한 충
격이었을 것입니다.
우리는 더욱 달라져야합니다.

요한1서 3장 17절은 "누가 이 세상의 재물을 가지고 형제의 궁핍함을 보고도
도와 줄 마음을 닫으면 하나님의 사랑이 어찌 그 속에 거하겠느냐"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섬김과 나눔을 소홀하게 여기는 사람들을 하나님은 사랑하지 않으십니다.

우리 나라에는 '까치밥'이라는 좋은 풍습이 있습니다. 감을 딸 때 꼭대기 하나는
까치가 먹으라고 남겨두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동물에게 온정을 베푸는 이런 좋은 풍습이 있는데 이웃을 섬기며
나눈 일을 가볍게 해서는 안 됩니다.

오늘 저희는 평신도주일로 지키는데 총주제가 '섬김과 나눔으로 하나님의 나라
를 이룩하는 평신도'입니다.

섬김과 나눔이라는 단어를 그 동안 잊고 있었으면 오늘 다시 생각해내시기 바
랍니다.
이 말에 먼지가 묻어 있으면 털어 내시기 바랍니다.
이 말을 저 구석에 두고 있었으면 한 가운데로 위치변경을 해 주시기 바랍니다.

섬김과 나눔을 중요하게 여기시기 바랍니다.

둘째, 우리는 섬김과 나눔의 바른 자세를 가져야합니다.

매스컴에 많은 재산을 장학금, 또는 좋은 일에 써달라고 바치는 사람들의 이야
기가 종종 보도됩니다. 이런 것은 많이 보도될수록 좋은 것이지요. 또 이런 일
들을 찾아내서 널리 알리는 것이 매스컴의 사명 가운데 하나입니다.
그들을 인터뷰한 기사를 보면 공통된 대답이 있습니다. '이 재산은 사회가 내게
준 재산이니 그 일부를 사회에 바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하는 것입니다.

어느 학교 앞에서 분식집을 하고 있는 할머니가 많은 돈을 장학금으로 내놓았
습니다. 기자가 취재를 가니까 그 할머니는 '이 학교 학생들 덕분에 이 분식집
이 잘 되고 우리 집이 먹고 살고 있는데 학생들 덕분에 번 돈의 일부를 가지고
그 학생들이 공부 잘 하도록 하는 일에 써달라는 것이 무슨 유별난 일이라고
취재를 오셨나요?' 하더랍니다.

영안모자라는 회사를 경영하고 있는 백성학(白聖鶴)이라는 분은 6·25 때 혼자
월남해서 거지 생활, 미군부대 하우스 보이 생활을 거쳐 모자 가게 사환으로 들
어갔는데 하루에 18시간씩 일해 열아홉 살 때 자신의 모자 가게를 차릴 수
있었다고 합니다.
이 분이 경영하는 회사는 1년에 모자 1억 개를 생산하는 세계 최대의 회사로
미국지역에서 판매되는 모자의 70%가 한국 영안모자 제품이라고 합니다.
이 분에게 변하지 않는 신조가 있는데 '내가 번 돈의 20%는 다시 사회에 기증
한다'는 것입니다.
북한에 있는 어머니가 아들을 위해 내내 기도했고 믿음 때문에 탄압을 받다가
숨졌다는 사실을 알고 어머니를 기념하는 교회를 지어 이화여대에 기부했다고
합니다.

그 분들은 '내가 가진 재산은 내 것이 아니다. 이 사회가 내게 준 것이다'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아낌없이 나눌 수 있었습니다.

성도들은 '내가 가진 것은 내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것입니다. 나는 다만 그것
을 관리하고 있는 사람일 뿐입니다' 라는 생각하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나누는 것은 내가 내 것을 가지고 나누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내게 주신
것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에 쓰는 것입니다.
내가 가진 것의 주인이신 하나님의 뜻에 맞게 잘 관리하는 일입니다.

이것이 섬김과 나눔의 바른 자세 가운데 가장 기본적인 것입니다.

요즘 '봉사와 구제' 대신에 '섬김과 나눔'이라는 말을 쓰는 교회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어느 교회에서는 교회 안에 구제위원회라는 조직이 있었는데 이것을
'나눔위원회'라고 이름을 바꿨습니다.
그 교회 목사님에게 그 이유를 물어보았더니 '구제라고 하니까 교인들이 주는
사람은 위에 있고 받는 사람은 밑에 있는 것으로 여기고 어깨에 힘을 주는 일
도 있기 때문에 그것이 아니고 같은 자리에서 나누는 것이라는 것을 가르치기
위해서 애써 이름을 바꾸었습니다'라고 대답하더군요.

구제라고 하면 우리에게는 6·25 때의 별로 달갑지 않은 추억도 있습니다. 그
때는 구제품 받기 위해서 나오는 교인들도 있었습니다.
이런 교인들을 '라이스 크리스천'(Rice Christian)이라고 부릅니다.

구제라고 하면 가난한 사람들에게 그저 무엇을 주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
에게 15절 중간에 있는 말씀은 많은 깨달음을 줍니다. "가난한 자의 편을 들지
말며" 오해하기 쉬운 말이지요. 저는 이 말을 처음 발견했을 때에 '가난한 자의
편을 들며'가 잘못된 것이 아닌가 하고 다른 번역을 찾아보기도 했습니다. 잘못
된 것이 아니었습니다.
이 말은 가난하다고 무조건 동정하고 감싸는 것도 공의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정부가 노사정책을 세울 때 참고해야 할 말입니다.

기쁨으로 하는 것이 나눔의 바른 자세입니다.
외식, 남에게 보이려고 하지 않는 것이 나눔의 바른 자세입니다.
기도하며 하는 것이 나눔의 바른 자세입니다.
성실하게 하는 것이 나눔의 바른 자세입니다.
착한 일을 같이 하는 것이 나눔의 바른 자세입니다.
인색하게 하지 않는 것이 나눔의 바른 자세입니다.
상대방이 상처 받지 않도록 하는 것이 나눔의 바른 자세입니다.
항상 힘쓰는 것이 나눔의 바른 자세입니다.
사랑으로 하는 것이 나눔의 바른 자세입니다.

바른 자세로 섬기고 나누기에 힘쓰기 바랍니다.

셋째, 말씀을 나누기 위해 힘써야합니다.

나눈다고 하면 물질을 나누는 것을 먼저 생각합니다. 아닙니다. 우리는 여러 가
지를 가지고 섬기고 나눌 수 있습니다.
내가 가진 재주를 나눌 수 있습니다.
내가 가진 시간을 나눌 수 있습니다.
내가 가진 힘을 나눌 수 있습니다.
헌혈을 자기의 피를 나누는 일입니다.
시간이 나는 대로 양로원을 찾아가서 할아버지들의 머리를 깎아드리는 이발사
의 이야기가 매스컴에 소개된 일이 있습니다. 이 분은 자기의 기술을 나누는 것
입니다.
작년에 영동지방에 수재가 발생했을 때 많은 성금이 보내지고 또 많은 사람들
이 현지에 가서 자원봉사 활동을 했습니다. 그 때 현지의 수재민들은 자원봉사
를 통해서 더 많은 힘을 얻었다고 합니다.

뜨르게네프라는 작가의 이야기가 있지요. 추운 겨울철에 나이 많은 거지가 길에
서 구걸을 하는 것을 보고 돈을 주려고 주머니에 손을 넣었는데 그날 따라 지
갑을 가지고 나오지 않았습니다.
트루게네프는 거지의 추위에 터진 손을 잡고 '영감님, 오늘따라 가진 것이 아무
것도 없군요. 아무 것도 드릴 수 없어 미안합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거
지는 '아닙니다 선생님, 선생님은 나에게 가장 귀한 것을 주셨습니다' 하였다는
것입니다.

가장 차원 높은 것, 가장 귀한 것은 말씀을 나누는 것입니다.

선교사들이 여러 지역에 가서 선교를 전할 때 여러 가지 방법을 사용합니다. 유
치원을 운영하기도 하고 장애인들을 위한 일을 하기도 합니다. 요즘은 컴퓨터
학원을 운영하는 선교사들도 많습니다.
그것들은 다 포장입니다. 내용물은 말씀입니다. 말씀을 나누기 위해서 그런 일
을 하는 것입니다.
말씀이라는 내용물이 없이 그런 일을 한다면 그는 사회사업가이지 선교사는 아
닙니다.

젊은 전도사님 한 분이 신학교를 졸업하고 외국인 근로자 지역에 들어가서 선
교활동을 하기로 결심했습니다.
이 전도사님은 그 지역에서 오랫동안 외국인 근로자 선교활동을 하고 있는 목
사님을 찾아가서 조언을 구했습니다. '내가 억눌리고 있는 외국인 근로자들 편
에 서서 악덕 기업주들과 싸우고 그들의 권익을 향상시키는 일에 앞장서려고
합니다. 목사님, 제가 어디에서부터 일을 시작해야할 지, 어떤 일을 해야 할 지
저를 가르쳐 주십시오' 했습니다.
그 목사님은 빙그레 웃으며 '전도사님, 전도사님의 모습을 보니까 십 여 년 전
내가 여기 들어올 때의 모습을 그대로 보는 것 같습니다. 그런 생각부터 버려야
합니다. 외국인 근로자라고 무조건 선하고 기업주라고 무조건 악한 것이 아닙니
다. 그 반대의 경우도 많이 있습니다. 내가 전도사님과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
다가 오랫동안 헛수고를 했습니다. 복음을 나누기에 힘쓰세요. 복음만이 그들을
변화시킬 수 있고 그들의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습니다. 복음을 나누
는 것이 그들을 가장 잘 돕는 길입니다.' 라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서울 마포 합정동에 있는 양화진 외국인묘지에는 선교초기에 우리 나라에 와서
수고하던 선교사들이 많이 묻혀 있습니다.
어느 기독교잡지에서 우리는 미국에 대해서 어떤 생각을 가져야 하는지에 대해
글을 써 달라고 청탁을 받았습니다. 여러 가지를 이야기하면서 끝 부분에 '우리
는 남쪽 부산에는 UN 묘지가 있고 서울에는 양화진이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고 했습니다.
UN 묘지와 양화진에 미국 장병들, 미국 선교사들만 안장되어 있는 것은 아니
고 여러 나라 의 장병들, 여러 나라 사람들이 안장되어 있지만 미국 사람들의
숫자가 제일 많습니다. 다른 나라 사람들을 다 합한 것보다 많을 것입니다.

몇 해 전 가을에 부산의 어느 교회에 일이 있어서 갔는데 약속 시간보다 한 시
간 반 정도 일찍 도착했습니다. '약속 시간까지 어떻게 보낼까?' 하다가 마침
UN 묘지 표지가 있어서 찾아가 보았습니다.
그 때 UN 묘지를 처음 보았는데 스무 살 안팎의 젊은이들 수만 명이 낯선 나
라 한국 땅에 누워 있는 현장을 돌아보면서 정말 숙연한 마음을 갖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세계에 이런 UN묘지는 우리 나라에만 있다고 합니다.

양화진에 가면 선교사들의 무덤 앞 묘비에 새겨진 비문들이 우리에게 많은 감
동을 줍니다.
헐버트라는 선교사의 묘비에는 나는 웨스트민스터 대성당보다 한국 땅에 묻히
기를 원하노라'라는 글이 새겨져 있습니다.
웨스트민스터 대성당에는 국가에 공이 많은 사람들이 안장됩니다. 처칠, 과학자
뉴턴, 시인 롱펠로, 이런 사람들이 묘비가 여기 있습니다. 리빙스턴의 무덤도
여기 있지요. 영국 사람들은 여기에 안장되는 것을 최고의 명예로 여깁니다.
남감리회 여자 선교사로 한국에 와서 많은 수고를 한 켄드릭 분의 묘비에는
"나에게 천의 생명이 주어진다 해도 그 모두를 한국을 위해 바치리라"라는 글
이 새겨져 있습니다.

한국에 제일 먼저 들어왔고 한국을 위해서 목숨을 바친 아펜젤러 선교사의 따
님 앨리스 레베카 아펜젤러(Alice Rebecca Appenzeller 1885∼1950) 선교사의
묘비에는 "나는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습니다"라고 새겨져
있습니다.
이 분은 한국에서 채어난 최초의 백인, 한국에서 최초로 유아세례를 받은 분,
여러 가지 기록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화여대 교장, 지금 총장으로 수고하다가
김활란 박사에게 그 자리를 물려주었는데 1950년 2월 20일에 채플에서 설교하
다가 뇌일혈로 쓰러져 하늘나라로 갔습니다.
철저하게 한국을 섬기고 자기가 가진 모든 것, 심지어는 생명까지 나누어 준 분
입니다.

지금까지 섬김과 나눔에 대해 여러 말씀을 드렸습니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 중
요한 것을 말씀드려야 하겠습니다.

방송사에 캠페인 프로그램이 있는데 60년대에는 '이렇게 합시다' 이런 식으로
했습니다. 지금 그런 식으로 하면 사람들이 잘 듣지 않습니다. '이렇게 하면 이
렇게 수지가 맞습니다' 해야합니다.
60년대에는 '나무를 심읍시다. 그것이 애국하는 길입니다' 했는데 요즘은 들어보
세요 '나무를 심으면 일 년에 얼마만큼의 효과가 있습니다' 하지요.

섬김과 나눔에 힘쓰면 여러분, 복을 받습니다.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지요.

누가복음 12장 33절 보세요.

너희 소유를 팔아 구제하여 낡아지지 아니하는 배낭을 만들라 곧 하늘에 둔
바 다 함 없는 보물이니 거기는 도둑도 가까이 하는 일이 없고 좀도 먹는
일이 없느니라

섬김과 나눔에 힘쓰는 것은 낡아지지 않는 배낭을 만드는 일입니다. 이 배낭에
복이 담깁니다.
다른 배낭들은 낡아지고 삭아져서 새는데 이 배낭은 그런 일이 없습니다.

오늘 말씀을 그대로 실천해서 큰 복을 받은 사람이 있습니다. 누구입니까?
그렇습니다. 보아스입니다.

어떤 복을 받았습니까?
다윗의 증조부가 되는 복을 받았습니다. 예수님의 족보에 오르는 복을 받았습니
다.
복 가운데 복입니다. 요즘 '왕'자가 유행하는데 '왕 복'입니다.

섬김과 나눔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바른 자세로 섬기며 나누고, 말씀을 나누기
에 힘써서 성도의 본분, 특히 평신도의 본분을 다 하고 복 받기를 주님의 이름
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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