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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죽으면 죽으리라 (스 4:1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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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 죽으면 죽으리라
성 경 : 에스더 4:13~17절

기독교는 죽음을 통해서 생명을 얻는 역설적 종교입니다. 
예수님께서도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고 하셨습니다(요12:24).

주님께서는 이 말씀대로 만 인간의 죄를 다지시고, 한 알의 밀알이 되셔서 땅에 떨어져 죽으시고, 약속의 말씀대로 다시 살아나셔서 많은 열매를 맺으신 것이 바로, 오늘 교회입니다.  실로 하나님의 교회는 죽음을 통해서 생명이 오는 사․  활․  의 진리위에 세워졌습니다.

一死覺悟(일사각오)!  죽으면 죽으리라는 이 짧은 한 마디는 자기 민족을 위하여 죽기를 각오한 에스더의 비장한 결단을 나타낸 말입니다.

인간이 타락한 이후부터 하나님의 교회와 하나님의 백성들에게는 여러 가지 위험과 시험이 닥쳐왔습니다.  때로는, 국가적인 위기와 시험이, 때로는 교회적인 위기와 시험이, 때로는 개인적인 위기와 시험이 닥쳐왔습니다.  그러나 역사는 언제나 하나님께서 승리하셨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이러한 성도의 승리의 사실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절대 절명의 위기를 어떻게 극복하고 승리하였는가?


Ⅰ. 용기 있는 믿음으로 위기를 극복하고 승리했습니다.

본문 16절에 “죽으면 죽으리라”는 말은 생명까지도 하나님께 맡기는 절대 의존적인 신앙입니다.
아달월 13일 곧 12월 13일은 바사 왕국의 영토 안에서 모든 유대인을 죽이는 “죽음의 날”로 결정되었습니다.

총리대신 하만은 모르드개와 그의 동족인 유대인을 죽이기 위하여 아하수에로 왕의 어인이 찍힌 조서를 받아서 127도 전국의 각도에 공포했습니다.  특히 바사의 법은 왕의 어인이 찍힌 칙령은 왕자신도 결코 변개할 수없는 절대권위를 갖는 법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유대인의 운명은 어떻게 되는 것인가? 

이 절대 절명의 민족적 위기 앞에서, 에스더는 일사각오의 신앙적 결단을 했습니다.  죽으면 죽으리라는 것입니다.  죽음을 초월하는 용기는 사람으로부터 생기는 것이 아닙니다.  죽음을 이기는 용기는 하나님을 믿는 믿음에서 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기도하면 사자 굴에 던져 넣는다는 느부갓네살의 어인이 찍힌 칙령을 알고도 하루에 세 번씩 예루살렘을 향하여 열린 창에서 무릎을 꿇고 기도하면서 하나님께 감사했던 다니엘의 용기는 어디서 왔는가?(단6:10)

하나님을 믿는 신앙에서 왔습니다.
“느부갓네살이여, 우리가 이 일에 대하여 왕에게 대답할 필요가 없나이다.  만일 그럴 것이면 왕이여 우리가 섬기는 우리 하나님이 우리를 극렬히 타는 풀무가운데서 능히 건져내시겠고, 왕의 손에서도 건져 내시리이다.  그리하지 아니할지라도 왕이요 우리가 왕의 신들을 섬기지 아니하고, 왕의 세우신 금 신상에 절하지도 아니랄 줄을 아옵소서”라고 했습니다(단3:18).

이 믿음을 소유한 자들이 인생의 승리자가 되고, 믿음의 승리자가 되었습니다.  이 믿음을 붙잡고 아브라함은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고, 이삭을 모리아 산의 제단에 바쳤습니다.  이 믿음을 붙잡은 모세는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을 거절하고 -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능욕을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이는 상 주심을 바라봄이라”고 했습니다(히11:26).  “이러한 믿음의 사람을 세상이 감당치 못한다”(히11:38). 

믿음이 세상을 이깁니다. 세상을 이기는 것은 오직 믿음입니다.

그래서 베드로 사도는 “너희 믿음에 덕을 공급하라”고 했습니다(벧후1:6).  만일 우리가 믿음이 있다고 자처해도 용기라는 덕이 없다면 우리의 믿음은 능력이 없는 죽은 믿음이 될 것이고 신앙에 근거하지 아니한 인간적인 덕만을 가졌다면 그것은 하나님 앞에 인정받지 못하는, 쓸모없는 덕이 될 것입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이 믿음인데, 이 믿음 위에 꼭 한 가지 더할 것은 ‘용기’라는 덕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진정한 의미의 용기를 가르쳐 주셨습니다.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코자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마16:25)고 했습니다.

죽으면 죽으리라는 일사각오의 용기 있는 믿음은 위경에 처한 유대인의 생명을 건지는 능력이 되었습니다.


Ⅱ. 기도하는 신앙으로 승리했습니다.

본문 16절에 “밤낮 삼일을 먹지도 말고, 마시지도 마소서, 나도 나의 시녀로 더불어 이렇게 금식한 후에 규례를 어기고 왕에게 나아가리니-”라고 했습니다.

기도는 모든 행위의 예비 동작입니다.  우리들에게 어려움이 닥칠 때, 제일 먼저 할 일은 하나님 앞에 엎드리는 것입니다.  기도는 하나님과 손을 잡는 것입니다.  기도는 하늘로부터 힘을 공급 받는 길입니다. 

그래서 찬송가 395장에 “우리 구주의 힘과 그의 위로를 빌라.  주님 네 편에서서 항상 도우시리”라고 했습니다.

기도는 하나님의 도움을 받는 길입니다.  그러므로 히스기야는 기도를 통해서 앗수르 군대를 물리침을 받고, 기도를 통해서 질병을 고침 받고, 그의 수명을 15년이나 연장 받았습니다.

에스더가 금식하고, 기도하고, 죽기를 각오하고 왕 앞에 섰을 때, 왕은 금 홀을 내밀어 에스더를 영접하고, 그의 말에 귀 기울이게 하시고, 그의 뜻대로 왕을 움직이도록 섭리하셨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고 했습니다(빌4:7).


Ⅲ. 일치단결하여 위기를 극복하고 승리했습니다.

수산에 있는 모든 유대인이 삼일동안 먹지도 아니하고 마시지도 아니하고 기도하였습니다(에4:16).  어려움이 닥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내부적 단결로, 외부적 어려움을 극복하는 것입니다.  밖으로는 모든 수산에 있는 유대인이 - 안으로는 에스더와 에스더의 시녀들이 삼일동안 금식기도 했습니다.

모을 ‘합’자는 인변에 한일자, 입구자입니다.(人一口)  모든 사람이 하나 되는 것입니다.  모을 ‘합’(合 !) 자  ‘합’은 입을 다물어야 하나가 된다는 뜻입니다. 이렇쿵 저렇쿵 입이 열리면 합해지지 않고, 뭉쳐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여호수아는 여리고성 공략 때, “너희는 외치지 말며 너희 음성을 들레지 말며 너희 입에서 아무 말도 내지 말라”고 했습니다(수6:10). 

마귀는 항상 우리를 흩어지게 하고, 성령께서는 모아서 역사하십니다.  예수님께서도 “두 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고 하셨습니다(마18:20).  바울과 실라가 모여서 기도할 때, 빌립보 감옥 문이 열렸습니다(행16:25).

교회가 모여서 기도할 때, 베드로를 가둔 예루살렘 감옥 문이 열렸습니다(행12:5).  오순절 날 120문도가 모여서 기도할 때, 성령 강림을 체험했습니다(행2:2).  유대인과 에스더가 합심하여 기도할 때, 유대인들을 결박한 죽음의 사슬이 풀린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승리의 비결은 용기 있는 신앙입니다.  기도입니다.  일치단결하여 부르짖는 것입니다.  부르짖을 때 여리고 성이 무너져 내렸습니다(수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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