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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신앙의 단계-2 / 자라가라! / 벧후 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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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의 단계 2/ 자라가라! 
성경본문: 베드로후서 3: 18


  우리는 지난주부터 신앙의 네 단계에 대해서 함께 살펴보고 있습니다. 마치 사람이 태어나면 서서히 그 신체와 인격이 자라가듯이 그리스도인으로 거듭나면 성숙한 그리스도인으로 자라가는 데에 있어서 몇 개의 단계를 거치게 됩니다. 저는 그 단계를 네 단계로 나누어 보았습니다. 그 신앙의 네 단계란 지난주에도 말씀을 드렸습니다만 다시 한 번 말하자면,

  1단계/ 거듭남의 단계- 구원의 기쁨을 누리고 구원의 확신 속에 거하는 단계

  2단계/ 성장의 단계(은혜의 단계)- 갓 태어난 아기가 젖을 먹고 부모의 사랑과 관심 가운데 자라가듯 말씀과 기도를 통해 훈련되는 단계입니다. 하나님의 신비로운 능력도 경험하고 말씀을 통해 말씀의 비밀을 깨달아가고 기도의 깊이를 경험하는 시기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영혼을 살찌우는 단계입니다. 이 기간에는 하나님의 은혜를 깊이 경험하는 단계입니다. 성장은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있을 때 일어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3단계/ 사역의 단계(일꾼의 단계)- 영혼을 살찌운 채 가만히 있으면 영적 비만이 됩니다. 이러한 사람은 교만하게 됩니다. 이제 성장의 단계를 넘어서서 사역으로 옮아가야 합니다. 주님과 교회와 다른 이들을 위해 섬기고 봉사하는 단계입니다.

  4단계/ 성품의 단계(인격의 단계)- 이 단계는 모든 사람들에게 있어서 참으로 어려운 단계입니다. 목회자도 사역의 단계에만 머물러서는 안 됩니다. 이 성품의 단계에까지 올라가야 참된 목자가 될 수 있습니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의 최종 목적은 이 성품의 단계에까지 이르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닮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성품을 닮는 단계입니다. 즉 성화(聖化)의 단계입니다.

  오늘은 신앙의 단계 두 번째 단계인 성장의 단계에 대해 나누고자합니다.

  모든 신앙생활은 어느 단계에 있느냐와 관계없이 성장하는 단계입니다. 이 성장은 끊임없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어느 순간 모든 성장이 완전하게 이루어져서 멈추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성장의 단계는 그리스도인의 삶 전반에 걸친 단계입니다. 이 성장은 주님께서 다시 오는 날까지 계속될 것입니다.

  그렇지만 특별히 두 번째 단계를 성장의 단계로 일컫고 싶습니다. 사람의 성장 단계도 그렇습니다. 사람들도 평생 어느 정도씩 성장해 갑니다. 몸도 그렇고 인격도 그렇습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아동기와 청소년 시기까지를 성장의 시기라고 말합니다. 그 시기가 가장 큰 육체적, 심리적, 사회적 성장이 일어나는 시기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그리스도인의 신앙생활도 모든 삶의 전반이 성장하는 시기이지만 막 거듭난 그리스도인이, 막 구원받은 그리스도인이 영적으로 놀랄 만큼 성장하는 시기가 있습니다. 이는 사람마다 그 시기가 약간 다르고 그 기간도 사람마다 다 제각각입니다만 나름대로 그 신앙이 깊어지는 시기가 있습니다. 그러한 것처럼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거듭난 후에 급격하게 성장해 가는 단계가 있을 수 있습니다. 오늘의 본문인 베드로후서 3장 18절 말씀을 다시 한 번 읽어볼까요? “오직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저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가라. 영광이 이제와 영원한 날까지 저에게 있을지어다.” 베드로 사도는 소아시아에 있는 교회들에게 편지하면서 “너희는 자라가라” 즉 “성장해야 한다”라고 권면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성장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 필수적인 것입니다. 성장해도 좋고, 안 해도 좋은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인들은 반드시 성장해 가야 합니다. 오늘의 본문 말씀을 통해 왜 성장해야 하며, 어떻게 성장해야 하는지를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1. 거듭난 그리스도인은 반드시 성장해야 합니다(벧후 3:18).

  베드로 사도는 예수님을 따르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자라 가라”고 명령하십니다.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거듭나기는 했지만 그 신앙이 초보의 단계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경우를 많이 봅니다. 아직도 영적인 어린 아이로 머무는 것을 많이 봅니다. 거듭난 그리스도인이라면, 그리스도의 생명력을 가진 사람이라면 자라가야 합니다. 마치 아기가 태어나면 그 육체와 생각이 자라가듯이, 모든 동물과 식물이 성장을 경험하듯이 자라가야 합니다.

  여러분, 아기가 태어났는데 어느 정도 자란 후에 성장이 곧바로 멈추었다고 생각해봅시다. 얼마나 끔찍한 일입니까? 제가 서울에서 사역할 때에 제가 사역하던 교회에서 크리스마스 때만 되면 문화전도부의 뮤지컬 팀을 이끌고 “우성원”이라는 곳엘 방문했습니다. 그곳에 가서 뮤지컬 공연을 하면서 말씀을 전하고 온고는 했습니다. 그런데 그곳에 있는 사람들은 신체는 다 자랐는데, 신체는 모두 어른이고, 할머니, 할아버지인데 정신연령이 마치 유치원 어린이 수준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가면 몰려와서 반가워하고, 과자를 얻어먹으려고 하고, 어린아이처럼 어리광을 부리고 합니다. 그래서 그들을 향해 할머니, 할아버지, 혹은 아저씨, 아주머니라고 부르지 않고 “얘들아”하면서 부릅니다. 그러한 사람들을 모아서 수용한 곳이 “우성원”이라는 곳이었습니다. 그곳에 갈 때마다 그들의 모습을 보면서 안타까우면서 한편으로는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저러한 모습으로 남아있는 사람들이 많음을 보면서 괜히 속상해하곤 했습니다.

  오늘날 그리스도인은 많습니다. 그런데 거듭나기는 했는데, 구원 받고 영생을 얻은 것은 분명한데 구원 받았을 때의 감격만 잠깐 있을 뿐 자라나지 않는 사람이 너무나 많습니다. 그래서 영적으로 “우성원”같은 교회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이미 한번 말씀드렸습니다만 그리스도인이 성장해 가는 것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적인 것입니다. 그런데 이 필수적인 것조차 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그저 가만히 있으려고만 합니다. 좋은 게 좋은 거라고 그저 편하게 신앙생활을 하려고 합니다. 이것이 현대 그리스도인의 심각한 문제입니다.

  아마 바울 사도가 볼 때에 고린도교회의 모습이 그러했던 것 같습니다. 고린도교회 성도들은 거듭나기는 했는데 성장하는 것에 게을리 했기에, 성숙된 그리스도인의 모습이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교회 안에서 자주 다툼이 일어나고, 분쟁이 일어나고, 서로 헐뜯는 모습들이 적나라하게 드러났습니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고린도전서 3장 1-2절에서 거듭나기는 했지만 아직도 영적인 어린아이와 같은 고린도교회 성도들의 모습을 한탄하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형제들아, 내가 신령한 자를 대함과 같이 너희에게 말할 수 없어서 육신에 속한 자, 곧 그리스도 안에서 어린 아이를 대함과 같이 하노라. 내가 너희를 젖으로 먹이고 밥으로 아니하였노니 이는 너희가 감당치 못하였음이거니와 지금도 못하리라.”

  거듭난 지 시간이 조금 지나면 그 믿음이 자라가야 하는데 늘 제자리에 머물고 있는 성도들을 보면 안타까울 때가 많습니다. 이제는 조금 깊이 있는 말씀도 이해할 수 있고, 기도 생활도 깊어지고, 성도들의 교제도 깊어져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모습이 보이면 안타깝다는 말씀입니다. 그저 어린아이와 같이 자기중심적이고, 다른 사람을 배려할 줄 모르고, 주님께서 원하는 바보다는 자기가 원하는 것에 모든 것을 꿰어 맞추려고 하는 이기적인 신앙으로 변질되어 가는 그리스도인의 모습이 너무 많습니다.

  거듭났으면 자라가야 합니다. 반드시 자라야 합니다. 빌립보서 3장 13절을 한 번 함께 읽어 보도록 하겠습니다.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가노라.” 바울은 우리가 볼 때 거의 완벽할 정도로 신앙생활의 본을 보인 분입니다. 그런데 그가 무엇이라고 고백하고 있습니까?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좇아간다고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나는 아직 완전하지 못하다. 내가 온전한 그리스도인다운 삶을 살려면 아직 멀었다. 그래서 앞에 있는 푯대를 향해 아직도 달음질해야 한다. 나는 더 성장해야 한다.” 이것이 바울의 고백인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교만해서는 안 됩니다. 교회생활을 조금 오래했다고 성숙한 사람이 아닙니다.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듯” 성숙한 그리스도인의 삶도 교회생활 연수의 순서가 아닙니다. 오늘날 많은 교회에서 교회생활을 조금 오래했다고 생각되면 집사로 임명하고, 안수집사로도 임명하는데 교회생활의 연수로 따지면 안 됩니다. 따지고 보면 베드로나, 바나바는 바울보다 훨씬 더 먼저 그리스도인이 된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바울을 동일한 동역자로 손색이 없이 대우하고 있지 않습니까? 오히려 나중에 바울이 바나바보다 더 부각되고 있는 모습이 보이고 있습니다. 조금 교회 나온 지 오래되었다고, 신앙의 연조가 오래 되었다고 교만해져서는 안 됩니다. 신앙생활을 오래하면 신앙이 성숙해져서 오히려 더 겸손해 져야 합니다.

  우리는 항상 이렇게 고백해야 합니다. “나는 아직 어린아이와 같다. 나는 계속해서 성장해 가야 한다.”


2. 하나님의 은혜와 저를 아는 지식으로 자라가야 합니다.

  여러분, 그럼 어떻게 자라갈 수 있습니까? 어떻게 하면 신앙이 성장해 갈 수 있습니까? 오늘 본문 말씀에 베드로 사도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저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가라”고 말씀하십니다.

  첫 번째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우리가 자라가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전적인 은혜로 말미암는다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 흘리심과 십자가의 공로로 말미암아 우리는 거듭난 것입니다. 거듭남이 없이 성장이 있을 수가 있습니까? 그리스도의 공로로 인해, 그 은혜로 우리는 거듭났고 그 은혜로 인하여 성장이 가능해 진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라가기 위해, 성장하기 위해 발버둥을 칩니다. 물론 성장을 향한 갈망은 우리 안에 항상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발버둥친다고 해서 자라가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자라가는 것은, 우리가 성장하는 것은 은혜로 가능한 것입니다.

  “은혜”(恩惠)라는 말은 받을 자격이 없는 데도 주어지는 것이 은혜입니다. 이 은혜를 통해 우리는 하나님의 돌보심 가운데 성장을 경험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가 아주 갓 난 어린아이였을 대 우리가 뭐가 잘나서 부모가 젖 먹여 주고 기저귀 갈아주고 목욕시켜 주고 합니까? 그저 은혜입니다. 부모이기 때문에 돌보아 주시는, 그 부모님의 사랑과 은혜로 우리는 자라난 것입니다.

  하나님도 우리를 성장시켜 주기 위해 말할 수 없는 은혜를 베풀어주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은 단번에 믿지 못하고 의심하면 하나님은 신비스러운 체험을 통해서도 자라나게 하십니다. 그래서 성령의 강권적 역사가 임하게 하십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깊이 경험하는 자들이 자라가는 것입니다. 인위적으로 훈련받고, 성경공부 몇 권을 수료했고, 제자훈련단계를 어디까지 마쳤다고 해서 성장이 일어나는 것은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물론 그러한 것들은 우리가 자라가는 데에 있어서 중요한 요소들입니다. 절대로 무시해서는 안 됩니다. 그러나 먼저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그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우리가 자라간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지식적으로 잘 공부를 해도 그것이 깨달아지지 않고, 마음속에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면 성장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있어야만 우리가 성장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로는 “하나님을 아는 지식”으로 자라가야 합니다. 우리는 거듭난 하나님의 자녀이고, 거듭난 하나님의 자녀들은 하나님의 뜻대로 살기로 결심한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살려면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알아야 합니다. 무엇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있습니까?
  바로 말씀과 기도입니다. 너무 간단한 것 같지만 이 간단한 것을 게을리 해서 성장하지 못한다는 것이 현실이란 말입니다.

  말씀은 영적인 양식입니다. 여러분, 식사를 제 때에 많은 영양소를 골고루 해서 먹는 것만 해도 우리의 건강에는 엄청난 도움을 줍니다. 옛말에 “밥이 보약”이란 말이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제 때에 식사를 안 하지요, 편식하지요, 몸에 안 좋은 음식도 입맛에 맞는다고 해서 그냥 먹지요. 그러니 몸에 이상이 생기는 것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밥을 먹어야만 살 수 있습니다. 말씀은 우리를 자라게 하는 영적인 양식이 됩니다.

  영양가 있는 음식을 섭취하고 소화를 잘 시킬 때 잘 자라가는 것처럼 우리도 하나님의 말씀을 깊이 연구하여 그 말씀 속에 숨겨져 있는 영적인 영양소를 잘 섭취하고 소화시킬 때 우리의 신앙이 자라나는 것입니다.

  이것은 설교를 듣는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성경공부를 개인적으로든, 작은 그룹으로든 할 때 영적 성장이 가능한 것입니다. 그래서 일대일 양육이 필요한 것입니다. 교회학교를 통해서 성경을 공부하는 것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리고 여러 가지 훈련과정을 통해 훈련받는 것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러한 교육과 훈련을 통해 우리가 자라갈 수 있는 것입니다.

  또한 우리가 숨을 쉬어 생명을 유지하듯이 기도는 우리의 영적인 호흡입니다. 아무리 제 때에 좋은 음식을 먹는다 하더라도 신선한 공기로 호흡하지 않으면 건강할 수가 없습니다. 요즘 도시의 공기가 심각하게 오염되어 호흡기 장애 등 건강에 막대한 지장을 주고 있습니다. 기도는 맑은 공기를 제 때에 공급해 주는 것과 같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쉬지 않고 숨을 쉬듯이 쉬지 말고 기도해야 합니다. 그래서 데살로니가전서 5장 17절에도 “쉬지 말고 기도하라”고 말씀하시고 있지 않습니까? 깊이 기도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을 깊이 찾는 자입니다. 그렇기에 깊이 기도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뜻 안에서 잘 성장할 수 있는 자입니다.

  말씀을 깊이 연구하고, 그 말씀에서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을 부지런히 살펴야 합니다. 그리고 기도를 통하여 하나님의 뜻에 내 자신을 맞추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여러분은 성경공부와 기도생활에 헌신하고 있습니까? 여러분, 성장하고 싶습니까? 그렇다면 교회에서 제공하는 각종 교회학교와 훈련 프로그램에 참여하십시오. 일대일 성경공부에 참여하십시오. 열심을 내십시오. 그리고 날마다 무릎 꿇어 기도하는 시간을 확장하십시오. 그렇게 할 때 성장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3. 자라가고자 하는 열망을 품으십시오.

  사도행전 17장 11절에 보면 “베뢰아 사람은 데살로니가에 있는 사람보다 더 신사적이어서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 이것이 그러한가하여 말마다 성경을 상고하므로”라고 기록되어져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우리의 신앙성장을 갈망하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성장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이 될 것입니다. 배고픈 자가 밥을 찾고 목마른 자가 물을 찾습니다. 그리고 허기를 채우고 갈증을 축일 수가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의 심각한 문제가 또 여기에 있습니다. 성장에 대한 갈망이 없는 것입니다. 이 정도면 다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집사가 되었으니, 안수집사가 되었으니 이 정도면 되지 않았냐고 스스로 반문합니다. 어느 정도의 훈련단계를 마쳤다고 해서 “이미 다 안다”며 더 이상 배우려고 하지 않습니다. 한국 교회가 왜 더 이상 성장하지 않을까요? 목회자들이 배우려고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무슨 세미나가 있다 해서 가보면 개척교회 목회자나 작은 교회 목회자, 또 젊은 목회자는 많이들 옵니다. 그런데 큰 교회 목회자들은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습니다. 연세가 지긋한 분들은 별로 오지 않습니다. 이 정도면 되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목회자가 더 이상 성장하지 않습니다. 목회자가 더 이상 성장하지 않으니까 당연히 성도들의 성장도 멈추게 되는 것입니다. 물론 큰 교회 목회자와 연세 드신 분들 중에서도 열심히 배우시는 분들도 많습니다. 우리 교단의 총회장을 지낸 어떤 목사님이 계시는데 저는 그분을 잘 알지 못하지만 참 존경합니다. 왜냐하면 우리 교단의 무슨 세미나가 있을 경우 그 분은 늘 맨 앞자리에 와서 앉으셔서 젊은 목회자가 강의하는 것을 열심히 듣습니다. 얼마나 진지하게 배우시는지 모릅니다. 그 분은 다른 사람을 가르칠 정도의 분이시지만 배우는 데에 열심을 내고 있습니다. 배우려는 갈망이, 성장을 향한 갈망이 그 분 속에 있는 것입니다.

  시편 42편 1절에 보면 “하나님이여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니이다”라고 시편 기자는 고백합니다. 사슴은 목마름을 참지 못하는 동물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목이 마르면 어디서 물소리가 들리고 물 냄새가 나면 뿔이 나뭇가지에 걸리고, 가시나무에 몸이 찢겨도 쏜살같이 물을 향해 달음질한답니다. 이것이 갈급함입니다.

  성장에 대한 갈망이 있어야 합니다. 배우고자 하는 마음(teachable, learning heart)이 있어야 합니다. 여기에서 안주해서는 안 됩니다. 더욱 자라가야 합니다.

  여러분은 자라가기 위한 열망이 있습니까? 우리 새비전교회 성도들의 눈초리에서 배우고자 하는, 성장하고자 하는 열망이 보여지길 바랍니다. 성장에 대한 갈망으로 모두가 매일, 끊임없이, 지속적인 성장을 경험하는 이들이 되시길 기도합니다. 그래서 우리 새비전교회는 꾸준히, 계속해서 자라가는 교회, 계속하여 멈추지 않고 성장하는 교회로 소문난 교회가 되길 기도합니다. 그것은 성도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이 그러한 성장을 하고 있을 때 가능한 것입니다. 그렇기에 여러분 개개인에게 에게 늘 성장이 경험되시길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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