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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지혜가 부족하거든 / 약 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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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제목 :지혜가 부족하거든
† 성경본문 :야고보서 1:5~8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
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
두 마음을 품어 모든 일에 정함이 없는 자로다 


세상 사람 가운데 성도에게만 보장된 축복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자녀로서 누리는 특권이기도 합니다. 창조주 하나님께서 우주적인 대권을 가지시고 그의 자녀 되는 성도들에게 가장 복되게 적용하고 계십니다. 그 중에도 무엇이나 필요한 것이 있으면 언제든지 마음놓고 구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산상보훈을 강론하시면서 “너희 중에 누가 아들이 떡을 달라 하면 돌을 주며 생선을 달라 하면 뱀을 줄 사람이 있겠느냐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고 하셨습니다(마 7:9-11). 이에 하나님의 자녀된 우리들은 일용할 양식을 달라고 하는 물질적인 요구에서부터 시험에 들지 말게 하시고 악에서 구해달라고 하는 기도를 하게됩니다(마 6:11-13).

본문 말씀 5절에는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고 하였습니다.

신약의 야고보는 더욱 성숙된 믿음과 수준 높은 신자의 품위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성도가 응답해주시는 하나님 앞에서 물질이나 건강이나 여러 가지 인간 관계와 같은 세상적이고 육신적인 욕구를 가지고 나아가는데 반하여 그는 지금 더욱 고상한 목표인 지혜를 구하게 하였습니다. 그것은 가장 요긴한 도리이며 그것만 얻게되면 다른 모든 것을 풀 수 있는 열쇠가 된다고 보았습니다. 여기 “지혜가 부족하거든 … 하나님께 구하라”고 하는 이 말씀이야말로 성도들에게 있어서 가장 절실하고 근본적인 것을 붙들게 하는 교훈이 됩니다.


Ⅰ. 자기의 부족을 인식하는 것

5절에“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이라고 하였습니다.
본문 성경이 교훈 하는 중요한 도리는 믿음과 기도입니다. 그러나 그 전제는 부족을 인식하고 이를 하나님께 기도하여 채우게 하라는 것입니다. 야고보는 본서 초두에 성도에게 오는 시험과 환난을 언급하면서 이것도 역시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고 하였습니다(4절). 예수님께서는 성도들로 하여금 하나님 아버지의 온전하심같이 온전하기를 바라십니다(마 5:48).

(1) 부족을 아는 것이 믿음입니다.

믿음이 있는 사람은 자기에게 부족함이 있다는 것을 발견하는 자입니다. 모든 일을 예수 그리스도의 기준에서 판단하게 되고 특히 하나님의 말씀의 거울 앞에 비춰지는 자기의 모습에서 허점투성이라는 점을 올바로 인식하게 되는 것입니다. 자기를 정확하게 진단하고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고백하게 되면 그 순간부터 새로운 세계가 열려집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의 발 앞에 엎드려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하고 고백하였는데, 그때부터 “이제 후로는 네가 사람을 취하리라”고 하시는 예수님의 부름을 받고 제자가 되었습니다(눅 5:5-11).

성전에서 하나님의 임재를 본 이사야는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하고 소리쳤습니다. 그 순간 하나님께서 숯불을 그 입술에 대며 “이것이 네 입에 닿았으니 네 악이 제하여졌고 네 죄가 사하여졌느니라”하시고(사 6:5-10) 그를 위대한 선지자의 길에 세웠습니다.
어느 때나 사람이 하나님 앞에서 자기의 부족을 알고 이를 고백할 수 있는 것은 은혜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라오디게아 사람들처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하고 자기 도취에 빠져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도다”하고 진단하십니다. 그뿐 아니라 “내게서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하게 하고 흰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고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고 처방을 주시는 것입니다(계 3:17-18).

(2) 지혜의 가치

사람에게 부족한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닐 것이며, 또 그것을 하나님께 구하여 보충한다고 할 때 그 우선 순위에 지혜를 먼저 내세우는 것도 용이하지 않을 것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당장 재물이나 권력이나 명예와 같은 눈에 보이는 것을 생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지혜의 가치를 아는 사람은 세상의 모든 것을 다 포기하면서 오직 그것을 붙잡고자 애를 씁니다(빌 3:8). 사도 바울은 그 당시 헬라인은 지혜를 찾는 다고 하였습니다(고전 1:22). 고대 그리스 사람들은 학문을 좋아하였는데 피타고라스(Pythagoras)가 ‘나는 지혜(σοΦία)를 사랑(Φίλέω)한다’고 한 말에서 철학(Philosophy)이라는 말이 생겨났다고 합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지혜는 이와 같은 학문적이거나 이론적인 지식이 아닙니다. 사람에게 있어서 가장 근본적이고 요긴한 지식을 말합니다. 잠언 1:7에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어늘 미련한 자는 지혜와 훈계를 멸시하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사실 지혜의 가치를 가장 잘 아는 사람은 솔로몬입니다. 잠언 3:15-17 “지혜는 진주보다 귀하니 너의 사모하는 모든 것으로 이에 비교할 수 없도다 그 우편 손에는 장수가 있고 그 좌편 손에는 부귀가 있나니 그 길은 즐거운 길이요 그 첩경은 다 평강이니라”고 하였습니다.

(3) 행동하는 지혜

어느 때에나 지혜는 적절한 때와 장소에서 말로써 소리를 내어야 하고 행동으로 나타나져야만 됩니다. 아모스 5:13에는 “그러므로 이런 때에 지혜자가 잠잠하나니 이는 악한 때임이니라”고 하였습니다.
본문 말씀에서 지혜를 언급한 야고보는 그것을 하나님의 자녀가 갖추어야될 가장 요긴한 도리로 알았습니다. 또한 그는 지혜가 단순한 지식의 차원에서 머무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행동으로 옮겨지는 것을 뜻하며 결국 건전한 그리스도인 생활의 원동력이 되는 것을 말합니다.

야고보서의 교훈은 오랜 전통에 얽매여 있는 유대인 신자들의 이론적이고 의식적인 종교행위에 대해서 실랄하게 비판하고 있습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 곧 신앙적 지식은 반드시 생활을 통해서 열매를 맺게 됩니다. 야고보서 2;20에 “아아 허탄한 사람아 행함이 없는 믿음이 헛것인 줄 알고자 하느냐”고 했고, 22절에는 “네가 보거니와 믿음이 그의 행함과 함께 일하고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케 되었느니라”고 하였습니다.


Ⅱ. 하나님께 기도하게 하는 것

본문 말씀 5절에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고 하였습니다. 자기에게 부족함이 있을 때 이것을 두고 기도할 수 있다는 것은 무한한 은혜요 특권입니다. 그것도 들어 주실지 안들어 주실지 모르는 불확실한 상황에서가 아니라 구하기만 하면 들어주시겠다는 확실한 보장을 받고 기도를 하는 사람일 때 엄청난 복을 받은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성도가 세상에서 먹고 입고 사는 의식주(衣食住)문제로 염려하지 말고 하나님께 구하라고 하시면서 “너희 천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고 하였습니다(마 6:32).

(1) 모든 사람의 필요를 채워주십니다.

본문 말씀에는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신다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모든 사람」은 믿는 자나 믿지 않는 자를 다 포함하여 창조주 하나님의 주권 안에 있는 사람을 통칭하는 것입니다. 야고보서 1:17에는 “각양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서 내려오나니 그는 변함도 없으시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시니라”고 하였습니다. “빛들의 아버지”는 생명의 근원 되신 하나님 아버지를 의미합니다. 또 “각양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은 모두 인간에게 있어서 가장 요긴하고 필요로 하는 것들을 통칭합니다. 그런데 이것은 인간의 노력이나 조건에 따라 차등 지급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모든 사람에게 조건 없이 선물로 주어지는 것을 뜻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산상보훈 가운데 “…이는 하나님이 그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취게 하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리우심이니라”고 하였습니다(마 5:45). 하나님께서는 창조하신 아버지로서 각양 좋은 은사를 선물로 주실 때 공중의 새나 들에 핀 꽃과 같은 자연만물에게도 주시고, 악한 자나 선한 자나 의로운 자나 불의한 자의 구별 없이 모든 인간에게 골고루 내려주십니다. 그렇다면 택하신 그의 자녀들을 위해서는 더욱 각별히 챙겨 주실 것은 당연합니다. 예수님께서 “하물며 하나님께서 그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 주지 아니하시겠느냐”고 하였습니다(눅 18:7).

(2) 후하게 주십니다.

여기 후(厚)히 주신다는 말은 풍성하고 넉넉하게 주신다는 뜻입니다. 곧 하나를 구하면 둘을 주시고, 열을 구하면 백을 주신다는 말입니다. 열왕기상 3:9-13에 보면 솔로몬이 기브온 산당에서 하나님께 지혜를 달라고 기도한 말씀이 있습니다. 이 기도를 들으신 하나님은 “…네가 이것을 구하는도다 자기를 위하여 수도 구하지 아니하며 부도 구하지 아니하며 자기의 원수의 생명 멸하기도 구하지 아니하고 오직 송사를 듣고 분별하는 지혜를 구하였은즉…내가 또 너의 구하지 아니한 부와 영광도 네게 주노니 네 평생에 열왕 중에 너와 같은 자가 없을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씀대로 솔로몬은 부귀와 영광 뿐 아니라 인간이 누릴 수 있는 세상적인 모든 복을 다 누렸던 인물이 되었습니다(마 6:29).

하나님께서 이처럼 기도하는 자에게 후하게 주시겠다고 하는 것은 성도는 그의 자녀이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인색한 사람이라도 자기 자식에게만은 후하게 주는 것이 부모의 심정입니다. 누가복음 11:13에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천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고 하였습니다. 또한 성도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값주고 사신 하나님의 소유이기 때문입니다. 로마서 8:32에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 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은사로 주지 아니하시겠느뇨”라고 하였습니다.

(3) 꾸짖지 아니하십니다.

꾸짖지 아니하신다는 말은 책망하지 않으신다는 뜻입니다. 우리 중에 여간 믿음을 지키고 경건하게 사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하나님 앞에 자신 있게 나아가서 당당하게 구할 수 있는 사람은 쉽지 않을 것입니다.
마치 빚을 갚지 못한 사람이 몇 번이나 약속을 어기고도 또 다시 돈을 빌려달라고 말하는 심정일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신앙고백이나 하나님께 대한 약속과 서원한 내용을 기억하시면서 이를 추궁하신다면 어떻게 감히 그 앞에서 또 달라고 같은 간구를 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지난날의 허물을 다시 들추지 아니하시고 또 다시 찾아 온 것만으로도 후한 마음으로 대하여 주십니다. 돌아온 탕자가 아버지에게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치 못하겠사오니 품군의 하나로 써달라고 애원했으나 아버지는 오히려 제일 좋은 옷을 입히고 손에 가락지를 끼우고 새 신을 신기면서 최상의 환영을 해주었습니다(눅 15:20-24).


Ⅲ. 믿음으로 구하여야됩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천국의 비밀을 아는 것이 너희에게는 허락되었으나 저희에게는 아니되었나니 무릇 있는 자는 받아 넉넉하게 되되 무릇 없는 자는 그 있는 것도 빼앗기리라”고 하였습니다(마 13:11-12).
천국의 비밀 중에 하나인 기도 응답의 비결은 믿음입니다. 히브리서 11:6에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지니라”고 하였습니다. 본문 말씀 6절에는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과 같으니”라고 하였습니다.

(1) 의심은 금물입니다.

믿음에는 불가사의한 신비가 행사되지만 거기에 의심이 들어가면 그 모든 능력이 소멸되고 맙니다. 기도에 있어서 언제나 믿음에 균열이 가게 하는 의심을 배제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만일 너희가 믿음이 있고 의심치 아니하면 이 무화과나무에게 된 이런 일만 할 뿐 아니라 이 산더러 들려 바다에 던지우라 하여도 될 것이요 너희가 기도할 때에 무엇이든지 믿고 구하는 것은 다 받으리라”고 하였습니다(마 21:21-22).

본문 말씀 중에 의심을 품고 하는 기도에 대해서 매우 실랄하게 지적하고 있습니다. 본문 말씀 6-8절에 기도하면서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다고 하였습니다. 요란한 소리와 굉장한 위력을 행사하는 것 같으나 한순간 없는 것처럼 잠잠해 버리는 그야말로 실속 없는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또 ‘두 마음을 품어 모든 일에 정(定)함이 없는 자’라고 하였습니다. 반신반의(半信半疑)하는 사람은 어느 한쪽에도 마음이 정착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런 사람은 기도를 할지라도 주님께 응답 받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말아야 된다고 하였습니다. 이런 경우 그 기도는 대개 의례적이고 형식치레로 하는 것이 됩니다.

(2) 주의 뜻을 추구하여야 됩니다.

야고보 선생은 “너희가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아니함이요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함이니라”고 하였습니다(약 4:2-3). 하나님께서 구하는 자에게 후히 주신다고 했으나 기도하기 싫어서 구하지 않는 것도 문제이지만 그 구하는 내용이 자기의 정욕을 위해 쓰려고 목적하기 때문에 응답되지 않습니다. 그런 것은 자기 목적이 이루어 졌을 때 그것을 남용하거나 오용하여 죄를 짓게 되고 그렇게 되면 기도를 들어 주시는 하나님의 뜻에 배치될 뿐 아니라 하나님과 대적이 되어 결과적으로 자기에게 불행을 가져오고 맙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기도 내용이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마 6:33). 솔로몬이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사리에 맞게 재판할 수 있는 지혜를 구했을 때 하나님께서는 크게 기뻐하였습니다. 열왕기상 3:10에 “솔로몬이 이것을 구하매 그 말씀이 주의 마음에 맞은지라”고 하였습니다. 이에 하나님께서는 그가 구하지 않은 것까지도 주셨던 것입니다. 우리가 성령의 도우심을 의존하면서 기도할 때 하나님 뜻과 일치하는 기도를 드릴 수 있습니다. 로마서 8:26에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가 마땅히 빌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고 하였습니다.

(3) 기도의 응답을 확신하는 것입니다.

본문 말씀 5절에는 구하는 자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신다고 하였습니다. 성경에는 예수님의 하신 말씀과 사도들의 교훈가운데 기도에 관한 내용이 많이 있는데 모두 다 기도는 반드시 응답된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기도하는 사람은 마음가짐이나 그 태도가 신앙적이어야 됩니다. 먼저 간절한 마음으로 열심히 간구 하여야됩니다. 예수님께서는 항상 기도하고 낙망치 말아야 될 것을 강조하시면서 불의한 재판관의 비유를 말씀하셨습니다(눅 18:1-8).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을 무시하는 법관이지만 그에게 와서 밤낮으로 간청하는 가난한 과부를 귀찮게 여겨 그 소원을 들어주었다는 것입니다.

또 한가지는 인내하는 자세입니다. 야고보서 5:7-8에 “보라 농부가 땅에서 나는 귀한 열매를 바라고 길이 참아 이른 비와 늦은 비를 기다리나니 너희도 길이 참고 마음을 굳게 하라”고 하였습니다. 씨를 뿌리고 가꾸는 사람에게 확실한 열매가 보장되지만 그 필요한 시간만큼 기다리는 마음을 요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응답을 확신하는 사람도 그 응답의 시기나 방법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주권에 따라야 된다는 사실을 인식하여야 됩니다. 다만 하나님께서는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을 주시고 구하는 것 이상으로 채워주시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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