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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일부러 고생길을 가는 사람들 (마 7:1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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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러 고생길을 가는 사람들(마 7:13~14)


<고생을 사서한다>

이런 비아량 거리는 말이 있습니다. 고생하지 않아도 되는 데 일부러 고생길을 택하는 사람들을 말합니다. 그런데 지구상에서 고생을 사서한 가장 놀라운 사람이 있습니다. 인간적으로는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 사람입니다.
바로 우리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 분은 높은 곳을 버리고 일부러 낮은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 분은 죽음이 없는 곳을 떠나서 일부러 반드시 죽어야 하는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 분은 편안한 곳을 등지고 일부러 불편한 이 곳에 오셨습니다.
그 분은 죄없는 순결한 천국을 떠나서 일부러 갈등이 심한 이 땅에 오셨습니다.
일부러 고생길을 택하신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그 길이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음이니라>(마 7;13-14)

예수님은 일부러 좁을 길을 걸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일부러 좁은 문으로 들어 가셨습니다.
미국에서 화제가 되었던 사람이 있습니다.
헨리 나우웬 박사입니다. 그는 하버드 대학 교수직로 명성을 날리며 강의하는 유명한 교수였습니다. 그는 그런 교수직을 사퇴하였습니다. 그리고 작은 정신장애 교육 시설인 데이브레이크학원의 직원으로 취칙하였습니다. 그리고 장애자들을 돌보면서 살고 있습니다. 이 소식이 알려지자 미국 기독교계가 흔들릴 정도로 신선한 충격을 받았습니다.
신문기자들의 주목대상이 되었습니다. 기자들이 찾아가서 동기가 무엇이냐고 물었습니디. 그는 이렇게 대답하였습니다.

<예수님을 진정으로 이해하려면 그 분이 걸으셨던 길을 걸어 보아야 합니다. 좁은 문, 험한 길을 걸어 보아야 합니다. 머리로만 성경을 이해하였는데 장애인들을 도우면서 몸으로 예수님을 이해해 보겠습니다>
일부러 고생길을 가는 사람들입니다.
성경에서 3대 인물을 들라하면 모세, 바울 그리고 베드로일 것입니다. 이들의 공통점이 있습니다. 일부러 고생길을 택한 사람들입니다.


1. 일부러 좋은 것을 다 버리고 가난을 택한 사람 - 바울

바울은 당시 놀라운 신분의 사람입니다. 그는 자기 자신을 이렇게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나도 육체를 신뢰할만하니 만일 누구든지 다른이가 육체를 신뢰할 것이 있는 줄로 생각하면 나는 더욱 그러하리니 내가 팔일만에 할례를 받고 이스라엘의 족속이요 베냐민의 지파요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요 율법으로는 바리새인이요 열심으로는 교회를 핍박하고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로라>(빌3;4-6)

바울은 당당하게 나는 자랑하고 신뢰할만한 사람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몇 가지 신분상 당당한 것이 있습니다.

1. 8일만에 할례를 받았습니다.
이는 순수한 이스라엘 백성이라고 하는 뜻입니다. 유대인 중에서도 할례를 받지 않은 이들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할례를 받았다는 것은 유대인중에 유대인이라는 자랑입니다.

2. 베냐민 지파입니다.
사울왕도 베냐민 지파였습니다. 모르드개도 베냐민 지파였습니다. 나라가 위기에 있을 때마다 큰 역할을 감당하였던 것이 베냐민 지파였습니다. 바울은 이를 자랑하고 있습니다.

3. 히브리인중에 히브리인입니다.
이는 부모 양 쪽이 다 이스라엘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당시 피가 너무 많이 섞여 있어서 순수 혈통을 찾기가 힘들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순수 혈통이라는 자랑입니다.

4. 바리새인입니다.
바리새인은 구약은 물론 이스라엘 전통까지 철저히 고집하면서 따르는 철저히 율법 주의 자들이었습니다.

5. 가말리엘 문하에서 공부하였습니다.
그리고 바울은 가말리엘 문하에서 공부하였다(행22;3)고 하였습니다. 지금으로 말하면 서울대학교를 졸업하였다는 것보다 더 한 것입니다. 당시 가장 존경받는 랍비는 가말리엘이었습니다. 그 밑에 가서 공부하려는 사람들이 구름떼같이 몰렸습니다. 그 중에 엄격하게 심사하여 몇 명만 공부를 시켰습니다. 이는 자랑중에 자랑입니다.
그러나 결론이 있습니다. 바울은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서 난 의라>(빌3;7-9)

일부러 좋은 것을 다 버리고 가난을 택한 사람 바울의 모습을 우리는 확실하게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일부러 고생을 사서하는 사람 바울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 후 바울은 죽기까지 온 유럽과 아시아를 다니면서 복음을 증거하였습니다. 누가 돈을 보내 준 것이 아니었습니다. 바울은 텐트를 만들줄 알았습니다. 텐트를 수리할 줄도 알았습니다. 가는 곳마다 누가 주면 먹고 없으면 텐트를 수선하여 주고 돈을 받아 먹고 자고 교통비를 쓰면서 일생을 살았습니다.
바울 뒤에는 항상 메고 다니는 개나리 봇집에는 성경과 텐트 수선 도구가 들어 있었을 것입니다. 어쩌면 처량합니다. 어디 가든지 대우받고 살 수 있는 사람이 일생 그렇게 살다가 사형당하였다고 생각하니 일부러 사형길을 걸어간 바울입니다.
조그만 물질에 얽매여 사는 우리 모습이 부끄러워지기만 합니다. 무슨 일이 생겨도 오직 하나님의 음성만 붙들고 따라 가려는 바울의 모습에서 진정한 신앙인 상을 찾았습니다.
바울이 로마로 죄수의 몸으로 끌려 가고 있었습니다. 가면 사형당하는 운명입니다. 그 배에 276명이 타고 있었습니다. 유라굴로라는 태풍이 14일간 불었습니다. 배를 가볍게 하려고 배에 있는 것을 다 버렸습니다. 선원들은 바다에 능숙한 사람이라 배와 사람을 버리고 도망치려고 하였습니다. 모두가 죽음에 직면하여 있을 때 바울은 하나님의 뜻을 찾기 위하여 오직 기도로 매달렸습니다. 그 때 하나님이 바울에게 나타나셔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바울이 276명에게 말했습니다.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이제는 안심하라 너희 중 생명에는 아무 손상이 없겠고 오직 배 뿐이리라. 나의 속한바 곧 나의 섬기는 하나님의 사자가 어제 밤에 내 곁에 서서 말하되 그러므로 여러분이여 안심하라 나는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 되리라고 하나님을 믿노라>(행27;22-25)

바울은 그런 태풍중에서도 하나님만 붙잡았습니다. 그런 소란속에서도 하나님의 음성만 들었습니다. 그렇기에 하나님의 사람이었습니다.
미국의 작가 엘리자벳 엘리옷가 어느 날 개를 훈련시키는 개 훈련소를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훈련의 성과를 실험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49마리의 개와  1백 명의 사람을 섞었습니다. 소란스럽게 뛰어 다니게 하였습니다. 이런 소란함과 복잡함 속에서도 훈련받은 개는 자기 주인의 음성을 곧 바로 알아듣고 주인을 따라 가더라는 것입니다. 훈련이 안된 개는 계속 두리번거리고 다른 개를 따라만 다녔습니다. 주인이 누구인지도 몰랐습니다.
훈련받은 성도는 어떤 복잡함이 있어도 그 속에서도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습니다. 그 분만 의지할 수 있습니다.
바울은 모든 것을 다 버리고 오직 하나님만 따라 간 사람의 상징입니다.


2. 일부러 높은 곳을 버리고 종의 길을 택한 사람 - 모세

모세는 궁중에서 살았습니다. 어쩌면 왕이 될 수도 있습니다. 궁중은 모든 부의 상징입니다. 권력의 금자탑입니다. 없는 것이 없고, 못 할 것이 없고, 안 되는 일이 없는 곳입니다. 그런 곳에서 살고 있었던 모세입니다. 그 궁중에 젖 떨어지자마자 들어갔습니다. 아주 어린 나이에 들어가서 40년을 살았습니다.
40살에 갑자기 자기 동족 이스라엘 백성들을 돌아 볼 생각이 났습니다.

<모세가 애굽 사람의 학술을 다 배워 그 말과 행사가 능하더라 나이 사십이 되매 그 형제 이스라엘 자손을 돌아볼 생각이 나더니>(행7;22-23)

히브리서 기자는 말하고 있습니다.

<믿음으로 모세는 장성하여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을 거절하고 >(히11;24)

아무리 좋아도 하나님이 원하시지 않는 것을 거절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아무리 높아도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것을 피하는 것이 신앙입니다. 하나님이 좋아하는 것을 좋아 하고 하나님이 싫어하는 것을 싫어할 수 있어야 믿음입니다. 모세가 40년을 궁중에서 살았으면 이제 성년입니다. 몸에 굳을 대로 굳었습니다. 궁중에 익숙할 대로 익숙하여졌습니다. 그 때 그 것을 그렇게 칼로 물 베듯이 거절한다는 것은 용기요 믿음이었습니다.
일부러 낮은 곳을 택한 사람이 모세입니다. 모세는 동족에게로 갔습니다. 그리고 같이 고생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들을 인도하였습니다.
섬김을 받던 자리를 일부러 버리고 내려와 섬기는 자가 된다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은 아닙니다. 그러나 이것이 바로 모세의 모습이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이었습니다.

<너희 중에는 그렇지 아니하니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마20;26)

예수님은 섬기는 사람은 큰 사람이 된다고 하셨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섬기는 사람은 눈에 뜨이는 사람이 되기 때문입니다.
지난 주간 188기 성막 쎄미나를 마쳤습니다. 104명 목사들이 오셔서 같이 은혜를 나누었습니다. 자주 오시는 목사님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목사님은 오실 때마다 그냥 오시지 않습니다. 한번은 슬리퍼를 사가지고 오셨습니다. 다른 사람은 한번 볼 때 그 분은 세 번 보게 됩니다. 그 다음에 올 때에는 포도즙을 한 상자가 가지고 왔습니다. 제 눈에 확실히 도장이 찍혔습니다. 그 다음에 또 왔습니다. 이번에는 곶감을 가지고 왔습니다. 손이 까지도록 감을 까서 말려 가지고 왔다는 것입니다. 섬기려고 하면 사랑의 눈길이 쏠립니다. 그런가하면 안 준다고 불평만 하는 이가 있습니다. 그에게도 눈길이 쏠립니다. 안 좋은 눈길입니다.

나는 어느 청년 간증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는 예수님을 위하여서는 아낌없이 드리기로 작정하였습니다. 최선을 다하여 주님을 섬기기로 작정하였습니다. 가지고 있는 전 재산을 선교비로 바쳐서 영혼구원에 사용하였습니다. 그 해 가뭄이 들었습니다. 앞에 있는 저수지가 말랐습니다. 그 곳에 채소를 심었습니다. 가뭄속에서 그래도 습기가 남아 있는 땅이라 채소가 잘 자랐습니다. 다른 밭에 심은 채소는 다 타죽었습니다. 그 곳에 심은 채소가 금값이 되었습니다. 돈을 많이 벌었습니다. 그 돈으로 돼지 새끼 사서 길렀습니다. 돼지들이 잘 자라서 팔아서 13마리 소를 샀습니다. 큰 농장이 되었습니다. 하는 일마다 하나님이 축복하셨습니다. 물질로 남을 섬기려고 하면 하나님은 물질적인 축복을 주십니다.
어느 날 젊은 수녀 한 사람이 마더 테레사 수녀를 찾아 와서 말했습니다.
<수녀님! 오늘 저는 예수님의 손을 만졌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그가 대답하였습니다.
<병원에 실려온 환자 발이 썩어 문들어졌습니다. 몹시 냄새가 났습니다. 그러나 만졌습니다. 지극히 작은 자 한 사람에게 한 것이 예수님께 한 것이라고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테레사 수녀가 말했습니다.
<그렇군요. 사랑의 손길이 닿는 곳에 주님이 계십니다. 사람들이 그리스도인인 우리에게 바라는 것은 긴 말이 아니라 작은 사랑입니다>
섬기는 것은 아름답습니다.
부부도 그렇습니다. 남녀간의 사랑은 의외에도 그렇게 길지 못 합니다. 결혼의 달콤함도 18개월에서 30개월이면 끝나는 것입니다. 이 세월이 지나면 상대방을 보아도 흥분이나 신비로움을 느끼지 못 합니다. 그래서 3-4년이 지나 파경하는 부부가 많아지고 있습니다. 미운 정 고운 정 들면서 사는 것입니다. 결혼 생활의 30%는 사랑이고, 70%는 용서입니다. 이해하고 사랑하고 섬기며 살아야 합니다.
모세가 받은 축복은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큰 영예를 누리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지금까지 이스라엘 백성들 가운데 가장 존경하는 이가 모세입니다. 성경도 그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그 후에는 이스라엘에 모세와 같은 선지자가 일어나지 못하였나니 모세는 여호와께서 대면하여 아시던 자요>(신34;10)

일부러 높은 곳을 버리고 낮은 곳으로 간 모세는 진정 그리스도 예수를 닮아간 그리스도인이었습니다.


3. 일부러 편한 곳을 버리고 좁은 길을 택한 사람 - 베드로

베드로는 갈릴리에서 고기를 잡아 생계를 이어가는 어부였습니다. 당시 갈릴리에서 고기를 잡는 어부들은 그리 부요한 생활은 아니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편안한 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대로 그럭저럭 살아가는 생활이었습니다. 어느 날 베드로는 고기를 잡으러 나갔습니다. 밤새도록 그물을 던졌습니다. 이상하게도 한 마리도 걸리지 않았습니다. 그런 일은 평생 한번도 없었습니다. 밤새 한 마리도 못 잡았다는 것은 평생 남을 기록의 밤이었습니다.
그 때 예수님이 나타나셔서 깊은 곳에 그물을 던지라고 하셨습니다. 처음 만난 그 분이 그렇게 말할 때 이상함을 느끼면 던져 보았습니다. 그물을 씻으며 집으로 가려던 중이었습니다. 놀랐습니다. 그물이 찢어지게 고기가 많이 잡혔습니다. 도저히 혼자서 건져 올릴 수가 없었습니다. 동료 어부들을 불렀습니다. 두 배 가득하게 고기를 잡았습니다. 그 때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나를 따르라 내가 너를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베드로는 이 말씀 한 마디에 즉각 배, 그물, 그리고 고기를 버렸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따라 갔습니다. 옆에 있던 어부들은 어안이 벙벙하였을 것입니다.
<뭐 저런 놈이 있나?>
그리고 서로 차지 하겠다고 싸움이 벌어졌을 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그 후 예수님만 따라 다녔습니다. 3년간 따라 다니며 월급을 받아 집에 송금하였다는 말 한 마디 없습니다.
오직 예수님만 거머리같이 따라 다니며 일하다가 예수님을 위하여 십자가에서 죽었습니다.
삿갓 조개라는 것이 있습니다. 이 조개는 엄청난 부착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바위나 배 밑바닥에 붙어 있으면 이 삿갓 조개를 뗄 수가 없습니다.. 억센 파도가 쳐도 바위에 붙어 있는 이 삿갓 조개를 떼어 내지 못 합니다.
이 조개가 붙어 있는 힘은 사람이 시속 3백 마일의 폭풍 속에서 흔들리지 않고 서 있는 것과 같다고 합니다. 과학자들은 아직도 그 엄청난 부착력의 비밀을 찾아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베드로가 주님에게 붙어 있던 힘은 죽음으로도 뗄 수가 없었습니다.  베드로는 평안함을 버리고 고난의 좁을 길을 걸었습니다. 결코 주님과 떨어지지 않고 죽기까지 붙어 있었습니다.
지금을 상상하여 봅니다.
예수님과 베드로는 지금도 하늘 나라에서 붙어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지금도 이 지구상에서 있었던 이야기를 할 것입니다. 예수님을 잡으러 왔던 말고 귀짜르던 이야기를 재미있게 하고 계실 지도 모릅니다.
안정을 버리고 고난의 좁을 택한 베드로의 모습도 예수님의 모습입니다.

그렇습니다.
일부러 고생을 사서하는 사람들이 성도들입니다. 새벽기도, 전도, 헌신하는 생활 모두가 그런 것입니다.
일부러 좁을 길을 가는 사람들
일부러 가난의 길을 걸었던 바울
일부러 낮은 길을 걸었던 모세
일부러 고난의 길을 걸었던 베드로
모두 우리의 표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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