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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낙심하지 말라!` / 살후 3:6~13 (느 6:1~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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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낙심하지 말라!" 
본문 : 데살로니가후서 3:6~13 (느헤미야 6:1~9 참조)
설교 :  2003년08월31일 설교


  오랜 바벨론 포로 생활을 끝내고 고향으로 돌아온 이스라엘 백성들은 먼저 지도자를 중심으로 힘을 모아 허물어진 성벽을 다시 쌓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저들의 예루살렘 성벽 재건 공사를 모두 다 좋게 생각했던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오히려 대체로 곱지 않은 시선들을 보냈던 것 같습니다. 그 중에서도 주위의 악한 무리들은 공사의 책임자 느헤미야를 끊임없이 위협했습니다. 심지어 그를 암살하려고도 했습니다. 또 그가 성벽 재건 공사를 하는 것은 바사에 대한 반역을 꾀하는 것이라고 거짓 소문을 퍼뜨려서 그를 곤경에 빠뜨리기도 했습니다. 그와 같은 끈질긴 방해 공작 때문에 그는 지쳤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옳은 일을 하다가 중도에 포기할 수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기도했습니다. “오, 하나님! 이제 내 손을 힘있게 하옵소서!” 그렇습니다! 기도는 누구에게나 새 힘을 줍니다. 하나님 나라를 기다리며 사는 우리도 오늘 기도할 수 있기 때문에 절망이 아니라 희망을 안고 전진할 수 있는 것입니다.

  2000년 전 데살로니가 교회 안에도 기다리는 것과 관련된 문제가 있었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 등장하는 무질서하게 사는 사람들이 바로 문제를 일으킨 장본인들입니다. 그렇다면 교회 안에 문제를 일으킨 무질서하게 사는 사람들이란 과연 어떤 사람들일까요? 여기서 무질서하게 산다는 말은 본래 대열에서 벗어난 군인을 가리키는 말이라고 합니다. 사도 바울은 그 말을 그리스도의 군병이라고 할 수 있는 교회의 지체들에게 적용했던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간절히 기다리는 것은 좋습니다. 결코 잘못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다만 기다리는 자세에 문제가 있었던 것입니다. 재림에 관한 가르침을 잘못 이해한 것이 문제였다는 말입니다. 재림을 기다리면서 그들은 모든 것을 포기했습니다. 직업도 버렸습니다. 심지어 가정도 버렸습니다. 전쟁터에 나간 군인이 멋대로 무기를 내려놓고 앉아서 쉴 것 같으면 과연 어떻게 되겠습니까? 지휘관의 명령이 있을 때까지는 결코 긴장을 풀지 말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재림의 순간까지 그 무엇도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는 사실을 분명히 기억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그들에 대한 사도 바울의 조치는 어떤 것이었을까요? 먼저, 그들에게서 떠나라고 했습니다. 그들의 믿음은 분명히 잘못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그런 잘못이 개인의 문제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교회 안의 다른 지체들에게도 나쁜 영향을 준다는 것이었습니다. 며칠 전 압구정동에서 친구들을 만났습니다. 친구들과 저녁을 먹은 후 차를 마시기 위해서 자리를 옮기기로 했습니다. 길을 건너려고 하는데 신호가 빨간불이어서 기다리고 있는데 갑자기 제 친구 하나가 '가자!'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우르르 건너가고 저도 무심코 따라 건너가다가 신호등을 보니까 아직도 빨간불이었습니다. 얼마나 당황스러웠는지 모르고 또 얼마나 제 자신이 부끄러웠는지 모릅니다. 제가 평소 가장 싫어하는 것이 질서를 지키지 않는 것입니다. 그런데 제가 바로 보행 질서를 어겼던 것입니다. 비록 친구가 가자고 했고 또 많은 사람들이 우르르 건너갔다고는 하지만...

  마찬가지입니다. 데살로니가 교회 안에 문제를 일으키는 사람들도 뭐 큰 죄를 저지른 것이 아니었습니다. 부도덕한 죄를 저지르거나 또는 그릇된 교리를 전하는 경우처럼 교회에서 쫓아낼 정도로 그들이 나쁜 죄를 범했던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사도 바울은 다른 성도들에게 그들로부터 떠나라고 했던 것입니다. 비록 의도적인 것은 아닐지라도 올바른 믿음의 길에서 벗어나 그릇된 길로 가고 있는 그들과 함께 가다 보면 다른 성도들도 실족하기 쉽기 때문에 그렇게 말했던 것입니다. 여기서 사도 바울이 무질서하게 사는 사람들로부터 떠나라고 했던 까닭은 결코 그들을 비난하거나 정죄하여 격리시키려는 목적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그보다는 그들로 하여금 깨닫고 돌이키도록 하려는 의도가 더 강했던 것입니다. 아울러 올바른 길을 걷고 있는 다른 성도들을 보호하려고 했던 것입니다.

  다음으로, 그는 자기 자신을 본받으라고 했습니다. 올바른 믿음의 길에서 벗어나 그릇된 길로 가고 있는 그들로부터 떠날 것을 명령한 사도 바울은 이제 좀 더 적극적으로 자기 자신을 본받을 것을 권했습니다. 본받는다는 말은 '흉내를 낸다.''같은 행동을 한다.'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실 데살로니가 교회 교인들에게 있어서 사도 바울을 본받으라는 것은 설명이 필요없는 말이었습니다. 왜냐 하면 지금까지 구체적인 삶을 통해서 충분히 보여줬기 때문입니다. 그가 과연 어떤 삶을 살았습니까? 데살로니가 교회 교인들에게 보낸 첫 번째 편지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그는 고난과 능욕을 당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사람을 기쁘게 하지 않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는 정직하고 겸손했습니다. 그는 또한 수고하고 애썼습니다. 그는 거룩하고 옳고 흠이 없이 행했습니다. 또한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 그는 끊임없이 기도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는 마음이 약한 자들을 격려했습니다. 그는 또한 힘이 없는 자들을 붙들어 주며 모든 사람에게 대해서 오래 참았습니다.

  그렇다면 이와 같은 그의 삶은 어디서부터 비롯된 것일까요? 그렇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비롯된 것이었습니다. 그가 여기서 자기 자신을 본받으라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었던 까닭도 바로 그렇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는 자기 자신을 본받는 것이 곧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것이라는 것을 확신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과연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 후 대열에서 이탈하여 멋대로 행동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습니다. 그는 항상 삶을 통해서 하나님을 높이기를 원했습니다. 아울러 그는 그가 본으로 삼은 그 주님을 닮으려고 언제나 애썼습니다.

  마지막으로, 선을 행하다가 낙심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교회 전체를 향해서 아주 중요한 사실 한 가지를 말합니다. 우리는 교회의 다른 지체들이 그 어떤 잘못으로 인해서 지적을 당하는 것을 볼 때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상대적인 우월감을 갖기 쉽습니다. 쉽게 말해서 신앙적인 교만에 빠지기 쉽다는 말입니다. 그는 여기서 바로 이런 문제에 대해서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어떤 이유로 인해서도 옳은 일을 하다가 중도에 포기해서는 아니 된다는 것이 그의 주장입니다. 왜냐 하면 그것은 악한 마귀 사탄을 이롭게 할 뿐이기 때문입니다. 그의 삶을 통해서도 깨달을 수 있는 것처럼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삶은 자기 자신만을 위한 삶이 되어서는 아니 됩니다. 자기 자신의 필요보다는 오히려 다른 사람들의 필요를 채워 주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사도 바울이 여기서 선을 행한다고 한 말은 누군가에게 선을 베푸는 정도를 가리키는 말이 아닙니다. 좀 더 넓은 뜻을 가지고 있는 말로서 옳고 합당한 일을 한다는 뜻입니다. 또 낙심한다는 말은 지친다 혹은 상심한다는 것과 같은 뜻을 가지고 있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여기서 그가 강조하려는 것은 옳다고 믿는 것을 행하고 있으면 남이야 어떻게 생각하든지 개의치 말고 결코 낙심하거나 실망하여 중도에 포기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왜냐 하면 주님을 믿고 따르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결코 다른 사람들의 말이나 행동을 삶의 기준으로 삼지 않기 때문입니다. 다만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주님의 말씀과 행위를 우리의 삶의 유일한 기준으로 삼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제 조용히 말씀의 거울 앞에 자기 자신을 비춰 보기 바랍니다. 오늘 우리에게 주신 말씀을 통해서 먼저 주님의 재림에 관한 자신의 신앙을 다시 한 번 점검하기 바랍니다. 주님이 다시 오실 것이라는 사실을 확실히 믿고 있습니까? 주님은 때와 시기에 관해서 말씀하시지는 않았지만 그러나 다시 오시겠다고 분명히 약속하셨습니다. 그리고 때와 시기를 알려 주시지 않은 것은 우리로 하여금 항상 깨어 있도록 하기 위해서라고 친히 말씀하시지 않았습니까? 그 비밀 자체가 우리에게 있어서는 또한 신비한 은혜라는 말입니다. 주님의 재림에 관한 우리의 신앙이 얼마나 확고한지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기 바랍니다.

  다음으로 우리의 재림 신앙이 올바른가 확인하기 바랍니다. 사도 바울은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 후 순교할 때까지 임박한 종말 의식을 가지고 살았습니다. 그에게 있어서 임박한 종말 의식은 그 주님이 맡기신 사명과 직결된 문제였습니다. 주님이 재림하시기 전에 단 한 사람이라도 더 구원을 받도록 하기 위해서 그는 최선을 다하지 않았습니까? 그러나 똑같이 임박한 종말 의식을 가지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데살로니가 교회 일부 교인들은 무위도식하며 그 날을 기다리는 무질서한 삶을 살고 있지 않았습니까? 임박한 종말 의식을 가지고 살아갈지라도 그것을 어떻게 소화하느냐에 따라서 자기 자신에게나 또는 다른 사람들에게 큰 유익을 줄 수도 있고 또 큰 피해를 줄 수도 있습니다. 때문에 확실한 재림 신앙을 갖는 것도 중요하지만 올바른 재림 신앙을 갖는 것은 더욱 중요하다는 사실을 잊지 말고 기억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우리도 사도 바울처럼 '나를 본받으라!'고 자신있게 외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외치기 위해서 끊임없이 주님을 닮아가야 합니다. 과연 우리는 사도 바울처럼 '나를 본받으라!'고 자신있게 외칠 수 있습니까? 과연 우리는 끊임없이 주님을 닮아가는 삶을 살고 있습니까?

  지난 2000년 미국 코카콜라 회사의 새 회장으로 지명된 더글러스 대포트는 직원들에게 다음과 같은 신년 메시지를 발표했습니다. '인생은 경주가 아니고 한 걸음씩 맛을 음미하며 걸어가는 여행입니다. 어제는 역사이고, 내일은 미스터리이며, 오늘은 우리가 받은 선물입니다. 그래서 오늘 현재(Present)를 우리는 선물( Present)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종말론적인 삶의 자세를 가지고 살아가는 우리에게 있어서 하루하루는 그 무엇보다 귀한 선물이 분명합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특별한 선물을 아무렇게나 다룰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규모없이 행하는 자들, 즉 무질서하게 사는 사람들로부터 자기 자신을 분리시키기 바랍니다! 그리고 앞서 간 믿음의 선배들처럼 주님을 닮아가는 삶을 살기 바랍니다! 그 주님이 십자가를 지실 때까지 결코 낙심하지 않으셨던 것처럼 선을 행하되 끝까지 낙심하지 말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주님이 다시 오실 때 기쁨으로 그 주님을 영접하며 그 주님과 함께 하늘 아버지의 집에서 영생복락을 누리는 참으로 복된 여러분 모두가 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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